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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2-05-04
본문말씀 야고보서 5:1~20(신약 375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부한자들에대한경고,재물모을때,재물사용할때,고난이기는방법,안내(길이참음),욥의인내,기도,엘리야의기도,회개,이단자위해기도

예수께서는 왜 부자들이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셨을까? 그러나 이 땅에는 선한 부자도 얼마든지 있다. 그럼 하나님의 뜻에 맞는 부자들은 대체 어떠한 부자인가? 그리고 성도들이 살다가 만나게 되는 고난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가? 무조건 고난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면 되는가? 아니면 고난을 달게 받아야 할까? 우리는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고난에 대해서 그 고난의 종류와 성격도 한 번 쯤은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고난의 종류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도 역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야고보가 말해주는 성경적인 부자관과 아울러 고난을 대처하는 2가지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들어가며

  야고보서는 각 장마다 부한 자들에 대하여 언급을 한다(약1:9~10, 2:1~7, 3:15, 4:3~4, 13~16). 왜 야고보는 짧은 편지 속에서 부한 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많이 할애하여 언급하였던 것일까? 이는 우리가 서신서를 읽을 때에 그 편지의 배경이 되는 것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준다. 편지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성경을 읽다보면 그 편지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야고보서는 A.D.49년어간에 로마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 기독교인에게 보내었던 편지였다. 그런데 A.D.49년 경에 로마의 4대 황제 글라우디오(A.D.42~54)가 로마에서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다. 그러므로 당시 유대인들은 본인이 유대교를 믿든지 아니면 기독교를 믿든지 상관없이 로마에서 떠나야 했다. 그러므로 이 즈음이 바로 유난히도 경제적인 문제가 대두되었던 때다. 특히 유대인들은 B.C.586년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거의 대부분 전 세계에 흩어져서 살았는데 가는 곳마다 회당을 짓고 살았다. 또한 그들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였는데, 그들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은행업이었다. 고리대금업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 중에는 부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이들 부자들이 재물을 취득하는 데에도 문제를 가지고 있었으며, 재물을 사용하는 데에도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야고보는 부자들에 대한 경고를 본론부의 마지막에 가서 최종적으로 강력 선포한다. 그리고 나서 이 편지의 마지막 주제인 고난의 문제를 언급한다. 성도들이 고난을 만났을 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언급한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이 만나게 될 고난 대처법의 아주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2. 야고보서 5장은 어떤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가?

  야고보서 5장은 크게 두 가지 주제가 있다. 하나는 야고보서 1장 19절부터 시작된 본론부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불의한 부자들에 대한 심판의 경고"의 말씀이다(1~6절). 그리고 이어서 5:7~20의 말씀이 나오는데, 이는 야고보서의 결론부로서 고난에 대한 성도의 바른 대처 방법을 언급한 것이다. 5:7~20의 결론부는 또 다시 2개로 나뉘어지는데, 7~11절에서는 고난당하고 있는 의인들을 향한 메시지로서, 하나님의 심판의 날까지 주의 재림을 고대하며 인내하는 태도로 살라는 것이다. 그리고 12~20절에서는 고난에 대한 바른 대처 방법으로서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3. 왜 야고보는 부자들에 대하여 강력한 경고의 말씀을 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재물 자체가 악하거나 정죄받아야 마땅하다고 말씀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재물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율법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 대하여 물질적인 축복을 약속하셨다. 즉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신28:4-5)"라고 말씀하던 것이다. 또한 선한 부자의 사례도 성경에 나온다. 대표적인 경우를 들라고 한다면, 아브라함을 들 수 있겠다. 그는 자기 밑에 집에서 길리우고 훈련받은 병사 318명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하니, 그의 집안 식구는 적어도 1,000명 이상 될 것으로 추정한다. 사실 아브라함은 이미 가나안 땅에서 거부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창14:14). 뿐만 아니라 동방사람 욥은 어떠했는가? 욥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부자였던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의 집에는 양과 낙타와 소와 암나귀와가 넘쳐났으며, 종들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욥1:3). 그러므로 부자라고 해도 다 나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디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고 살아가는 선한 부자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야고보는 부자들에 대해 강력한 경고의 말씀을 한 것인가? 그것은 당시 부자들이 재물을 취득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았으며, 또한 그들이 재물을 사용하는 것 역시 합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축적하고 있었고, 또한 그렇게 해서 모든 재물을 사치와 쾌락을 즐기는데 그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부자들이 품꾼들의 품삯을 주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지적하였다(4절). 이것은 약한 자를 억압하지 말고 착취하지 말며 품꾼들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두지 말라는 율법말씀을 어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레19:13). 그리고 곤궁하고 가난한 품꾼을 학대하지 말고,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가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고도 말씀하셨다(신24:14~15). 만약 그렇지 않다가 품꾼들이 여호와께 호소라도 할 경우 그것이 죄가 된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 부자들은 율법 말씀대로 살지 않았다. 추수한 품꾼들에게 주지 않은 삯이 소리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만군의 귀에까지 들렸던 것이다(4절). 그러므로 야고보는 그들에게 경고한다. 그들의 재물은 이미 썩어 있고, 그들의 겉옷은 좀먹었으며, 그들의 금과 은은 이미 녹이 슬어있다고 말이다(2~3절). 그러니 곧 그들에게 불어닥칠 심판의 날이 찾아오면 그들의 비참함인하여 울라고 경고하였다. 그런데 당시 부자들은 약한 자들의 재물을 착취하는 일에만 죄를 짓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재물을 쓰되 자기의 쾌락을 위해 그리고 사치하는 데에 쓰고 있었던 것이다(5절). 더욱이 그들은 의로운 자들을 정죄하고 죽이는 일까지 범하고 있었다(6절). 그러니 야고보는 어느날 그들이 불같이 살라지는 때가 올 것이라고 경고하였다(3절). 

 

4. 성도들이 고난에 대처하는 2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고난을 만났을 때에 성도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는 성도들이 고난을 만났을 때에 대처하는 방법 2가지를 소개하고 있다(7~20절). 하나는 그때에 인내하라는 것이다. 길이 참으라는 것이다(7~12절). 그리고 또 하나는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라는 것이다(13~20절). 그것도 자기의 죄를 고하면서 기도하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고난을 만났을 인내하여야 하며, 어떤 고난을 만났을 때에 기도해야 하는가? 사실 성도들이 만나는 고난에는 여러 종류의 고난들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핍박같은 고난이 있다.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할 때에 가족이나 또는 불신자들에 의해 핍박을 당하는 고난이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이럴 때에는 기뻐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늘에서 상이 크기 때문이다(마5:10~12). 그러므로 이때에 성도들이 해야 할 대처는 그러한 고난을 참아내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핍박을 당할 때에 자기에게 고난을 주는 대상에게 대항하라는 말씀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핍박자들 위해 기도하라고만 나온다(마5:44). 그러므로 고난 중에서도 사탄이 사람을 통해 주는 고난은 믿음으로 인내하면서 잘 견뎌내야 한다. 이는 핍박자가 변화되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고난은 우리나 우리의 조상들이 지은 죄 때문에 오는 고난이 있다. 그러한 고난에는 질병의 고난, 가난의 고난, 자녀의 불행의 고난 등이 있다. 이러한 고난에 대해서는 무조건 참아내는 것이 온당한 것은 아니다. 그러한 고난이 왜 자기에게 주어졌는지를 파악하고 그 고난에 맞게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야고보는 그러한 고난에 대해서는 죄를 회개하면서 대처해야 한다고 말씀하였다(16절). 다시 말해, 이러한 고난에 대해서는 무조건 인내하고 참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인 죄들을 회개하여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5. 사탄이 주는 핍박과 같은 고난에 직면했을 때 성도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성도들은 사탄이 사람을 통해 주는 고난에 대해서는 대항하지 말아야 한다. 즉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을 대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그를 저주하거나 그를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고 기도할 경우 하나님께서 그를 치실 수가 있는데, 그러면 그가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갈길이 영영 차단이 될 수도 있다. 스데반의 경우를 보라. 사실 성경 전체를 볼 때에 사탄이 성도들을 핍박할 때 대처하는 방법에는 2가지 정도가 있다. 하나는 도망치라는 것이다(마24:16~20). 그리고 또 하나는 주님의 심판의 날이 올 때까지 길이 참으면서 핍박을 견뎌내야 한다고 했다. 길이 참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야고보가 야고보서에서 제시하고 있는 고난 대처법들이다. 그것은 마치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야 하듯이 참아내는 것이다(7절).

  그렇다면 왜 성도들은 핍박같은 고난이 오면 길이 참고 인내해야 하는 것인가? 야고보는 그 이유를 3가지로 언급한다. 첫째는 주님의 강림이 가까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8~9절). 곧 심판주가 오셔서 핍박자들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심판주가 곧 와서 그의 억울한 사정을 신원해 주실 것으므로 인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럴 경우 결코 원망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둘째는 믿음의 선배들이 고난과 오래참음의 본을 보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0절). 왜냐하면 주의 이름으로 말했던 선지자들도 다 이와같이 고난을 견뎌내었기 때문이다. 셋째는 인내하는 자를 위해 하나님께서 복을 준비해놓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1절). 대표적인 경우로서 야고보는 욥의 인내를 든다. 욥은 사탄의 시험으로 인해 고난을 겪어야 했다. 제일 처음 그는 자신의 소유물을 다 잃었으며, 2차 때에는 7남 3녀의 자녀까지 잃었다. 그리고 3차 때에는 자신의 건강과 가정마저 잃게 되었다. 그런데 70인역에 의하면 그는 약 70년 동안을 악성종기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끝까지 참아내었다. 기다린 것이다. 기도를 쉬지 않은 탓이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의 방문을 받게 되었고 진실로 자신의 어리석음과 교만함을 회개한 끝에 이전보다 2배나 더 큰 축복을 받게 되었다. 그렇다. 기도하면서 참고 견디면 하나님께서 언제가 해결해주실 날이 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야고보는 함부로 맹세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붙여서 언급하였다(12절).

 

6. 자신이나 자기의 조상들의 죄에 관련된 고난을 겪게 되었을 때에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고난 중에서도 자신이나 자기의 조상들의 죄에 관련되어 고난을 겪게 되었을 때에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가? 야고보는 고난에 대처하는 두번째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그것은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13절). 그런데 기도할 때에 2가지 조치를 취하라고 하였다. 하나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병낫기를 기도하라는 것이었다(14절). 왜냐하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16절). 또 하나는 자신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죄를 서로에게 고백하라고 하였다(16절). 이것은 질병 치료에 관한 아주 중요한 단서를 우리에게 제공해준다. 다시 말해, 사람이 걸리는 질병이 바로 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사실 인류가 죄를 짓기 전에는 질병도 없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므로 질병도 찾아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질병으로 고통을 당할 때에는 먼저 자신의 죄를 처리해야 한다. 특히 남에게 억울한 일을 하게 만들어서 찾아오는 질병은 반드시 당사자를 찾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실제로 사람이 질병에 걸리게 되었을 경우 대부분은 그것이 영적인 이유와 맞물려 있다. 그 사람 안에 악한 영들이 들어와서 질병을 일으킨 것이다. 모든 질병이 귀신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죄를 지었을 때에 들어오는 귀신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더 실제적인 사실은 자기의 지은 죄로 인하여 생기는 질병보다는 자기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로 인하여 들어온 악한 영들 때문에 질병이 생기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조상들에게 들어가 있던 악한 영들이 자기의 후손들에게 들어가서 질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때 질병으로 역사했던 악한 영이 후손에게 들어가면 그 후손에게 질병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겪고 있는 고난이 질병의 경우라면 가장 먼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이어서 자기의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다. 이런 것이 없이 기도한다면, 비록 의인의 간구로 인하여 병이 나았다고 할지라도 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사람이 질병에 걸렸을 경우에는 철저히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기도의 대표적인 예로서 야고보는 엘리야의 기도를 언급한다(17~18절). 엘리야도 우리와 똑같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더니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으며, 그가 다시 비가 오기를 기도했더니 하늘이 문을 열고 비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사실 그 내부로 들어가서 보면, 우상숭배의 죄 때문에 3년 6개월동안 기근이 찾아온 것이었으며, 우상숭배의 죄를 그치자 큰 비가 다시 내렸던 것이다(왕상17~18장). 그렇다.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고 그 죄에서 떠나야 한다. 그래야 나에게 불어닥친 고난도 이겨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부록처럼 야고보는 형제들 중에 미혹을 받아 진리에서 떠난 자라도 돌이킬 수 있도록 그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그러면 그렇게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영원한 죽음에서 건져내는 것이며, 그의 지은 죄들을 덮을 수 있다고 말한다(19~20절)

 

7. 나오며

  말세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는 것은 심판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재물은 하나님과 복음 전파를 위하여 사용해야 하고(마6:19~20,33), 객과 고아와 과부 같은  약한 자를 돕고 구제하는 데에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만일 하나님과 복음전파를 위해 물질을 사용했다면 그는 하늘에서 합당한 상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이 땅에서 약한 자들을 구제했다면 그와 그의 후손은 이 땅에서 복을 받고 살게 될 것이다. 그렇다. 재물 자체만으로 볼 때에 재물은 결코 죄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 재물을 취득하는 과정이 부당하다거나 그 재물을 사치와 방탕에 쓴다면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물질을 취득할 때에는 언제나 합당하게 취득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부자가 되었으면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거나 약한 자를 돕는 데 사용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오늘 기억할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에 직면했을 때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알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하게 살아가려는 성도들을 마귀가 가만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도가 고난에 처했을 때에는 다음과 같은 2가지 경우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는 고난이 핍박으로 주어지는 고난이라면 어떤 고난이든 그 고난을 끝까지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늘에서 큰 상이 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죄로 인하여 우리의 삶에 주는 고난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고난에는 질병의 고난, 물질의 고난, 자녀의 앞길의 고난 등이 있는데, 이때에는 먼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한 다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일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도 찾아가서 그에게서도 죄용서를 빌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당하는 대부분의 고난은 영적인 세력들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도록 권세를 주셨는데 이때에 귀신도 함께 쫓을 수 있는 권세를 주셨음을 알아야 한다. 이처럼 질병은 귀신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치유를 받되 완전한 치유를 받기를 원한다면 그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자신이 지은 죄를 특히 십계명의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풀리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병이 들면 우선 병원부터 찾아간다. 그리고 의사부터 만나본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왜나하면 대부분의 질병은 죄를 지어서 우리 안에 악한 영이 역사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고로 하나님 앞에 먼저 나가 죄를 고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람에게 죄를 지었다면 그에게도 찾아가 죄를 고백해야 한다. 그럴 때에 비로소 완전한 치유가 일어나고 회복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응급처방과 땜질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평생 죄와 더불어, 질병과 더불어, 가난과 더불어 그리고 자녀걱정과 더불어 살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2년 05월 04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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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탄명성교회 2022.05.05 07:44

    예수께서는 왜 부자들이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셨을까? 그러나 이 땅에는 선한 부자도 얼마든지 있다. 그럼 하나님의 뜻에 맞는 부자들은 대체 어떠한 부자인가? 그리고 성도들이 살다가 만나게 되는 고난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가? 무조건 고난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면 되는가? 아니면 고난을 달게 받아야 할까? 우리는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고난에 대해서 그 고난의 종류와 성격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고난의 종류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도 역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야고보가 말해 주는 성경적인 부자관과 아울러 고난을 대처하는 2가지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들어가며

      야고보서는 각 장마다 부한 자들에 대하여 언급을 한다(약1:9~10, 2:1~7, 3:15, 4:3~4, 13~16). 왜 야고보는 짧은 편지 속에서 부한 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많이 할애하여 언급하였던 것일까? 이는 우리가 서신서를 읽을 때에 그 편지의 배경이 되는 것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 준다. 편지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성경을 읽다 보면 그 편지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야고보서는 A.D.49년 어간에 로마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 기독교인에게 보내었던 편지였다. 그런데 A.D.49년 경에 로마의 4대 황제 글라우디오(A.D.42~54)가 로마에서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다. 그러므로 당시 유대인들은 본인이 유대교를 믿든지 아니면 기독교를 믿든지 상관없이 로마에서 떠나야 했다. 그러므로 이 즈음이 바로 유난히도 경제적인 문제가 대두되었던 때다. 특히 유대인들은 B.C.586년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거의 대부분 전 세계에 흩어져서 살았는데 가는 곳마다 회당을 짓고 살았다. 또한 그들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였는데, 그들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은행업이었다. 고리대금업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 중에는 부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이들 부자들이 재물을 취득하는 데에도 문제를 가지고 있었으며, 재물을 사용하는 데에도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야고보는 부자들에 대한 경고를 본론부의 마지막에 가서 최종적으로 강력 선포한다. 그고 나서 이 편지의 마지막 주제인 고난의 문제를 언급한다. 성도들이 고난을 만났을 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언급한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이 만나게 될 고난 대처법의 아주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2. 야고보서 5장은 어떤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가?

      야고보서 5장은 크게 두 가지 주제가 있다. 하나는 야고보서 1장 19절부터 시작된 본론부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불의한 부자들에 대한 심판의 경고'의 말씀이다(1~6절). 그리고 이어서 5:7~20의 말씀이 나오는데, 이는 야고보서의 결론부로서 고난에 대한 성도의 바른 대처 방법을 언급한 것이다. 5:7~20의 결론부는 또 다시 2개로 나뉘어지는데, 7~11절에서는 고난당하고 있는 의인들을 향한 메시지로서, 하나님의 심판의 날까지 주의 재림을 고대하며 인내하는 태도로 살라는 것이다. 그리고 12~20절에서는 고난에 대한 바른 대처 방법으로서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3. 왜 야고보는 부자들에 대하여 강력한 경고의 말씀을 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재물 자체가 악하거나 정죄받아야 마땅하다고 말씀하지는 않으신다. 왜냐하면 재물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율법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 대하여 물질적인 축복을 약속하셨다. 즉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신28:4-5)"라고 말씀하던 것이다. 또한 선한 부자의 사례도 성경에 나온다. 대표적인 경우를 들라고 한다면, 아브라함을 들 수 있겠다. 그는 자기 밑에 집에서 길리우고 훈련받은 병사 318명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하니, 그의 집안 식구는 적어도 1,000명 이상 될 것으로 추정한다. 사실 아브라함은 이미 가나안 땅에서 거부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창14:14). 뿐만 아니라 동방 사람 욥은 어떠했는가? 욥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부자였던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의 집에는 양과 낙타와 소와 암나귀가 넘쳐났으며, 종들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욥1:3). 그러므로 부자라고 해 다 나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디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고 살아가는 선한 부자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야고보는 부자들에 대해 강력한 경고의 말씀을 한 것인가? 그것은 당시 부자들이 재물을 취득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았으며, 또한 그들이 재물을 사용하는 것 역시 합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축적하고 있었고, 또한 그렇게 해서 모든 재물을 사치와 쾌락을 즐기는데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부자들이 품꾼들의 품삯을 주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지적하였다(4절). 이것은 약한 자를 억압하지 말고 착취하지 말며 품꾼들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두지 말라는 율법 말씀을 어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레19:13). 그리고 곤궁하고 가난한 품꾼을 학대하지 말고,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가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고도 말씀하셨다(신24:14~15). 만약 그렇지 않다가 품꾼들이 여호와께 호소라도 할 경우 그것이 죄가 된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 부자들은 율법 말씀대로 살지 않았다. 추수한 품꾼들에게 주지 않은 삯이 소리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만군의 귀에까지 들렸던 것이다(4절). 그러므로 야고보는 그들에게 경고한다. 그들의 재물은 이미 썩어 있고, 그들의 겉옷은 좀먹었으며, 그들의 금과 은은 이미 녹이 슬어 있다고 말이다(2~3절). 그러니 곧 그들에게 불어닥칠 심판의 날이 찾아오면 그들의 비참함 인하여 울라고 경고하였다. 그런데 당시 부자들은 약한 자들의 재물을 착취하는 일에만 죄를 짓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재물을 쓰되 자기의 쾌락을 위해 그리고 사치하는 데에 쓰고 있었던 것이다(5절). 더욱이 그들은 의로운 자들을 정죄하고 죽이는 일까지 범하고 있었다(6절). 그러니 야고보는 어느 날 그들이 불같이 살라지는 때가 올 것이라고 경고하였다(3절). 

     

    4. 성도들이 고난에 대처하는 2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고난을 만났을 때에 성도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는 성도들이 고난을 만났을 때에 대처하는 방법 2가지를 소개하고 있다(7~20절). 하나는 그때에 인내하라는 것이다. 길이 참으라는 것이다(7~12절). 그리고 또 하나는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라는 것이다(13~20절). 그것도 자기의 죄를 고하면서 기도하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고난을 만났을 때에 인내하여야 하며, 어떤 고난을 만났을 때에 기도해야 하는가? 사실 성도들이 만나는 고난에는 여러 종류의 고난들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핍박같은 고난이 있다. 말씀대로 살아 보려고 할 때에 가족이나 또는 불신자들에 의해 핍박을 당하는 고난이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이럴 때에는 기뻐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늘에서 상이 크기 때문이다(마5:10~12). 그러므로 이때에 성도들이 해야 할 대처는 그러한 고난을 참아내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핍박을 당할 때에 자기에게 고난을 주는 대상에게 대항하라는 말씀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핍박자 위해 기도하라고만 나온다(마5:44). 그러므로 고난 중에서도 사탄이 사람을 통해 주는 고난은 믿음으로 인내하면서 잘 견뎌내야 한다. 이는 핍박자가 변화되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고난은 우리나 우리의 조상들이 지은 죄 때문에 오는 고난이 있다. 그러한 고난에는 질병의 고난, 가난의 고난, 자녀의 불행의 고난 등이 있다. 이러한 고난에 대해서는 무조건 참아내는 것이 온당한 것은 아니다. 그러한 고난이 왜 자기에게 주어졌는지를 파악하고 그 고난에 맞게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야고보는 그러한 고난에 대해서는 죄를 회개하면서 대처해야 한다고 말씀하였다(16절). 다시 말해, 이러한 고난에 대해서는 무조건 인내하고 참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인 죄들을 회개하여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5. 사탄이 주는 핍박과 같은 고난에 직면했을 때 성도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성도들은 사탄이 사람을 통해 주는 고난에 대해서는 대항하지 말아야 한다. 즉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을 대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그를 저주하거나 그를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고 기도할 경우 하나님께서 그를 치실 수가 있는데, 그러면 그가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갈 길이 영영 차단이 될 수도 있다. 스데반의 경우를 보라. 사실 성경 전체를 볼 때에 사탄이 성도들을 핍박할 때 대처하는 방법에는 2가지 정도가 있다. 하나는 도망치라는 것이다(마24:16~20). 그리고 또 하나는 주님의 심판의 날이 올 때까지 길이 참으면서 핍박을 견뎌내야 한다고 했다. 길이 참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야고보가 야고보서에서 제시하고 있는 고난 대처법들이다. 그것은 마치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야 하듯이 참아내는 것이다(7절).

      그렇다면 왜 성도들은 핍박같은 고난이 오면 길이 참고 인내해야 하는 것인가? 야고보는 그 이유를 3가지로 언급한다. 첫째는 주님의 강림이 가까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8~9절). 곧 심판주가 오셔서 핍박자들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심판주가 곧 와서 그의 억울한 사정을 신원해 주실 것므로 인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럴 경우 결코 원망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둘째는 믿음의 선배들이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보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0절). 왜냐하면 주의 이름으로 말했던 선지자들도 다 이와 같이 고난을 견뎌내었기 때문이다. 셋째는 인내하는 자를 위해 하나님께서 복을 준비해 놓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1절). 대표적인 경우로서 야고보는 욥의 인내를 든다. 욥은 사탄의 시험으로 인해 고난을 겪어야 했다. 제일 처음 그는 자신의 소유물을 다 잃었으며, 2차 때에는 7남 3녀의 자녀까지 잃었다. 그리고 3차 때에는 자신의 건강과 가정마저 잃게 되었다. 그런데 70인역에 의하면 그는 약 70년 동안을 악성 종기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끝까지 참아내었다. 기다린 것이다. 기도를 쉬지 않은 탓이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의 방문을 받게 되었고 진실로 자신의 어리석음과 교만함을 회개한 끝에 이전보다 2배나 더 큰 축복을 받게 되었다. 그렇다. 기도하면서 참고 견디면 하나님께서 언제가 해결해 주실 날이 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야고보는 함부로 맹세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붙여서 언급하였다(12절).

     

    6. 자신이나 자기의 조상들의 죄에 관련된 고난을 겪게 되었을 때에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고난 중에서도 자신이나 자기의 조상들의 죄에 관련되어 고난을 겪게 되었을 때에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가? 야고보는 고난에 대처하는 두 번째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그것은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13절). 그런데 기도할 때에 2가지 조치를 취하라고 하였다. 하나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병낫기를 기도하라는 것이었다(14절). 왜냐하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16절). 또 하나는 자신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죄를 서로에게 고백하라고 하였다(16절). 이것은 질병 치료에 관한 아주 중요한 단서를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다시 말해, 사람이 걸리는 질병이 바로 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사실 인류가 죄를 짓기 전에는 질병도 없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므로 질병도 찾아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질병으로 고통을 당할 때에는 먼저 자신의 죄를 처리해야 한다. 특히 남에게 억울한 일을 하게 만들어서 찾아오는 질병은 반드시 당사자를 찾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실제로 사람이 질병에 걸리게 되었을 경우 대부분은 그것이 영적인 이유와 맞물려 있다. 그 사람 안에 악한 영들이 들어와서 질병을 일으킨 것이다. 모든 질병이 귀신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죄를 지었을 때에 들어오는 귀신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더 실제적인 사실은 자기의 지은 죄로 인하여 생기는 질병보다는 자기 조상들이 지은 우상 숭배의 죄로 인하여 들어온 악한 영들 때문에 질병이 생기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조상들에게 들어가 있던 악한 영들이 자기의 후손들에게 들어가서 질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때 질병으로 역사했던 악한 영이 후손에게 들어가면 그 후손에게 질병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겪고 있는 고난이 질병의 경우라면 가장 먼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이어서 자기의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다. 이런 것이 없이 기도한다면, 비록 의인의 간구로 인하여 병이 나았다고 할지라도 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사람이 질병에 걸렸을 경우에는 철저히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우상 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기도의 대표적인 예로서 야고보는 엘리야의 기도를 언급한다(17~18절). 엘리야도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더니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으며, 그가 다시 비가 오기를 기도했더니 하늘이 문을 열고 비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사실 그 내부로 들어가서 보면, 우상 숭배의 죄 때문에 3년 6개월 동안 기근이 찾아온 것이었으며, 우상 숭배의 죄를 그치자 큰 비가 다시 내렸던 것이다(왕상17~18장). 그렇다. 우상 숭배의 죄를 회개하고 그 죄에서 떠나야 한다. 그래야 나에게 불어닥친 고난도 이겨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부록처럼 야고보는 형제들 중에 미혹을 받아 진리에서 떠난 자라도 돌이킬 수 있도록 그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그러면 그렇게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영원한 죽음에서 건져내는 것이며, 그의 지은 죄들을 덮을 수 있다고 말한다(19~20절)

     

    7. 나오며

      말세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는 것은 심판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재물은 하나님과 복음 전파를 위하여 사용해야 하고(마6:19~20,33), 객과 고아와 과부 같은 약한 자를 돕고 구제하는 데에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만일 하나님과 복음 전파를 위해 물질을 사용했다면 그는 하늘에서 합당한 상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이 땅에서 약한 자들을 구제했다면 그와 그의 후손은 이 땅에서 복을 받고 살게 될 것이다. 그렇다. 재물 자체만으로 볼 때에 재물은 결코 죄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 재물을 취득하는 과정이 부당하다거나 그 재물을 사치와 방탕에 쓴다면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물질을 취득할 때에는 언제나 합당하게 취득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부자가 되었으면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거나 약한 자를 돕는 데 사용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오늘 기억할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에 직면했을 때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알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하게 살아가려는 성도들을 마귀가 가만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도가 고난에 처했을 때에는 다음과 같은 2가지 경우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는 고난이 핍박으로 주어지는 고난이라면 어떤 고난이든 그 고난을 끝까지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늘에서 큰 상이 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죄로 인하여 우리의 삶에 주는 고난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고난에는 질병의 고난, 물질의 고난, 자녀의 앞길의 고난 등이 있는데, 이때에는 먼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한 다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일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도 찾아가서 그에게서도 죄용서를 빌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당하는 대부분의 고난은 영적인 세력들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도록 권세를 주셨는데 이때에 귀신도 함께 쫓을 수 있는 권세를 주셨음을 알아야 한다. 이처럼 질병은 귀신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치유를 받되 완전한 치유를 받기를 원한다면 그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자신이 지은 죄를 특히 십계명의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풀리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 병이 들면 우선 병원부터 찾아간다. 그리고 의사부터 만나 본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왜나하면 대부분의 질병은 죄를 지어서 우리 안에 악한 영이 역사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고로 하나님 앞에 먼저 나가 죄를 고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람에게 죄를 지었다면 그에게도 찾아가 죄를 고백해야 한다. 그럴 때에 비로소 완전한 치유가 일어나고 회복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응급 처방과 땜질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평생 죄와 더불어, 질병과 더불어, 가난과 더불어 그리고 자녀 걱정과 더불어 살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2년 05월 04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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