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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2-04-27
본문말씀 야고보서 4:1~17(신약 37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정욕,기도응답,영적간음,성령시기,교만과겸손,마귀대적,철저한회개,율법판단,형제판단,삶의계획,하나님의뜻,적극적인선행

세속적인 삶은 결국 우리가 죽은 후에 우리를 새 예루살렘 성밖에 살게 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가 생명책에서 이미 기록된 자기의 이름이 지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세속적인 삶에서 떠나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사도 바울은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야고보는 과연 어떤 방법을 제시했을까? 여기 정말 놀라운 방법이 지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1. 들어가며

  야고보서는 교리서가 아니다. 야고보서는 자신의 삶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지를 알려 주는 일종의 윤리 지침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야고보서는 산상수훈(마5~7장)과 많이 닮아 있다. 왜냐하면 산상수훈은 천국 백성의 윤리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야고보의 윤리 지침은 사실 야고보가 익히 들어서 자신의 삶에 배어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그는 대체 누구에게서 산상수훈과 같은 말씀을 들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과 함께 예루살렘 교회를 지도했던 베드로에게서 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베드로전서와 야고보서는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약4:6,10, 벧전5:5~10). 그렇다면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는 로마 치하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대체 무엇을 편지하였던 것일까?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지침을 내린 것인가? 오늘은 야고보서 강해 5번째 시간으로서, 야고보서 4장을 다루고자 한다. 야고보서 4장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짝하는 삶의 원인이 무엇이며, 아울러 하나님의 자녀라면 과연 어떻게 생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삶인지를 기록하고 있다(약4:1~12).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돈을 벌며 살기를 원하는 자의 최후가 어떠한지와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약4:13~17). 이제 야고보가 성령으로 기록한 야고보서 4장의 말씀을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2.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모든 싸움과 다툼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야고보는 야고보서 3장 후반부에서 위로부터 난 지혜와 땅에 속한 지혜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위로부터 난 지혜를 사모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약3:13~18). 그리고 이제 4장에 들어와서 세상 욕망에 대한 경계와 아울러 하나님을 향한 성도의 합당한 자세에 대해 교훈한다(약4:1~12). 그리고 서두를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싸움과 다툼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질문한다(1절).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람 속의 내부에 있는 '정욕(헬라어, '헤도네')이라고 말한다(1절). 그것은 외부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것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싸움과 다툼을 하게 되는 원인은 바로 정욕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이것 때문에 평생을 상대방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다투고 싸우게 될 것이다(2절).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한다. 이것을 그냥 놔 둔다면, 인간은 계속해서 그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야고보는 그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성령을 통하여 영적 순결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5절). 

 

3.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순결을 지켜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죄악된 본성이 가득한 자기 자신 곧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올라오는 그 욕망을 제어한 채 성령의 음성을 좇아 살아갈 수 없는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야고보는 2가지를 먼저 언급한다. 첫째, 인간이 욕심을 내지만 얻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먼저 언급한다(2~3절). 그것은 2가지 때문이라는 것이다. 첫째로 하나님께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2절하). 생각해 보라. 세상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그 욕심을 이루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겠는가? 그러므로 욕심 자체가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것이므로 사람은 그것을 이뤄 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하나님께 구하되 정욕으로 쓰려고 악한 동기에서 구하기 때문에 욕심을 내지만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3절). 자신의 정욕의 필요를 따라 구하는 악한 동기를 하나님께서 모르실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과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구하는 기도인지 아니면 자신의 세상적인 욕심을 따라 구하는 것인지를 하나님이 모르실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몹시 바라지만 그것이 세상적인 욕망이기 때문에 구하지 않아서 받을 수가 없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 구한다고 할지라도 그 내용이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그릇된 동기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는데, 사람은 도리어 교만할 뿐만 아니라 교만을 불러 일으키는 마귀를 대적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6~8절). 야고보의 편지는 일종의 윤리 지침서와 같다고 서두에서 말씀드렸다. 그러므로 야고보가 말하는 있는 바는 산상수훈과 비슷하며, 베드로전서와도 비슷하다. 그리고 구약 성경을 언급한다면 토라(율법서)와 잠언서를 말하고 있다. 야고보는 그리스도의 윤리의 기본 강령을 율법의 십계명에서 따온다. 그리고 각각의 내용들은 잠언의 말씀을 인용한다. 특히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 곧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그가 교만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6절, 잠3:34). 교만이란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오직 자기 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못하게 하며, 자기가 최종 권위가 되고 싶어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의 권위마저 업신여기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그 마음을 주는 사탄 마귀의 지배하에 일평생 매여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지 못하며 세상적인 욕심을 채우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 결과 서로 싸우고 다투며, 미워하며 시기하는 것이다(2절). 

 

4. 하나님을 향하여 합당한 생활을 하기 위해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힘써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어서 야고보는 하나님을 향하여 합당한 삶을 위해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언급한다. 그리고 그것이 없이는 육체의 소욕을 이기지 못하며, 결국 성령의 소욕도 따라갈 수 없다고 언급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해답은 바로 9절에 나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회개'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지금 이러한 문제를 놓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의 웃음이 결국에는 애통으로 변할 날이 올 것이며, 우리의 즐거움은 근심으로 바뀔 날이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9절). 그렇다. 우리가 육체의 정욕을 이기고 성령의 음성을 쫓아 살아가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수적인 것이다. 사실 이것을 깨닫기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아니, 이러한 영적인 비밀을 깨닫지도 못한 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문제에 묶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오늘도 그냥 세상과 짝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두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는 상태로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요한계시록에서는 음녀와 음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이런 자는 결국 진실한 성도들이 휴거받을 때에 들림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최종의 날까지 남겨져서 주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더러운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은 오직 회개에서 나오는 것이다. 

 

5. 사람 속에서 나오는 더러운 정욕을 이기는 회개의 영적 비밀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사람 속에서 나오는 더러운 정욕을 이기는 회개의 영적 비밀은 무엇인가? 그것은 영안을 열어서 인간의 내부에 있는 죄된 본성을 지켜보는 것이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신 적이 있다. 그것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속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인간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막7:15~16). 예수께서는 이때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셨다. 그것은 바로 12가지라고 하셨다(막7:20~23). 

막7:20~23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의견들)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무분별)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그렇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모든 것이 사람의 속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12가지 항목을 영적으로 분석해 보면, 전부다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들(뱀들)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음란하게 되는 것은 사람의 육체 속에 음란의 영이 있기 때문이요, 사람이 탐욕을 부리는 것은 자기 육체 속에 탐욕의 영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어도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이러한 악한 영들을 내보내지 않는다면 그는 여전히 죄악된 본성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는 훈련을 하면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날마다 영성 운동을 하거나, 기도원이나 수도원에 틀어박혀 있지 않는 한 이러한 훈련은 지속적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이 세상과 접촉하며 살지 아니할 수 없고, 또한 이 세상과 접촉하다 보면 세상의 것이 욕심나지 아니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 속에 악한 영을 계속 내버려둔 채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을 살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적합한 다른 방법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회개하여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들을 아예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문제는 과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영적인 비밀을 알고 회개에 집중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을 때에 이미 다 죄용서를 받았다고 믿기 때문에 무슨 죄를 회개해야 하느냐며 의문을 던진다. 그러나 그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자기 엄마의 태중에 있을 때부터 이미 이러한 악한 영들의 공격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어난 모든 아기의 육체 속에는 이미 더러운 영들이 가득 들어 있다. 그러므로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은 죄악된 본성을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내 육체 속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7:18~20)"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렇다. 내 속에 거하는 죄된 본성이 문제인데, 바로 이것의 실체가 바로 악한 영들(뱀들)이었던 것이다. 그럼 왜 내가 범죄하지 않았는데도 이러한 영들이 내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인가? 그것은 조상들이 지은 우상 숭배의 죄 때문에 조상들의 육체 속에 악한 영들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상들이 회개하지 않고 죽었을 때에 그 악한 영들이 그의 자손에게 내려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십계명에 나와 있다(출20:5). 그러므로 내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내 조상들과 부모 속에 들어 있던 영이 내 육체 속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들 때문에 거기에 내가 지은 죄가 더해져서 점점 더 악한 영들이 내 몸에 쌓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들을 내보기 위해서는 조상들의 우상 숭배의 죄들을 회개하고 내가 지은 죄를 날마다 자백함으로 회개해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평생 죄된 본성을 정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회개함으로 이러한 영들을 밖에 있는 것부터 한 겹씩 떼어 내면 언젠가는 이 영들을 다 내보낼 날이 오고야 말텐데, 처음부터 아예 이러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다. 회개해 보라. 직접 해 보면 이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알게 될 것이다. 

 

6. 왜 그리스도인들은 형제를 비방하거나 판단해서는 아니 되는가?

  이처럼 야고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윤리를 먼저 말한다(6~10절). 그것은 교만한 생각을 버리고 이것을 추종케 하는 마귀를 버리고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죄된 본성을 이기기 위해서는 철저하고도 즉각적인 회개를 해야 한다고 했다(9절). 그러고 나서 야고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윤리에 대해 언급한다(11~12절). 그것은 자신의 형제들을 함부로 비방하거나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 모두는 율법을 제정자도 아니며 율법의 심판자(재판관)도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형제 모두가 율법의 준행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1절). 오직 형제의 잘못됨을 판단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사람을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시기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12절). 그렇다. 사람이 죄된 본성 곧 자기 육체 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들을 제어할 때에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꺼내려는 마음보다는 자기 속에 들어 있는 들보를 꺼내는 일을 먼저 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남의 육체 속에 들어 있는 죄된 본성은 사실 그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가지고 그 사람을 평가해서는 아니 된다. 그 원인은 자기 뿐만 아니라 자기 조상들의 죄로 인하여 들어온 악한 영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 회개하여 내 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들을 뽑아내는 데에 중점을 두라. 그것이 바로 성도의 올바른 자세인 것이다. 
 

7. 세상의 물질을 얻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는 것은 무조건 나쁜 일인가?

  이제 마지막으로 야고보는 그리스도인들의 물질관에 대해서도 언급한다(13~17절). 그리스도인들이 물질을 얻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는 것은 무조건 잘못된 일인가 아니면 그것은 허용되는 일인가를 말한다. 그런데 야고보서의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이 부분을 읽지 못한다면, 돈을 벌기 위해 시간과 장소와 목적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고 말하는 자들을 야고보가 책망하고 있기 때문이다(13절).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아예 돈 벌 계획을 세우지도 말아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 야고보의 권면의 말씀은 그것이 아니다. 돈을 벌려고 해도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설정해 놓고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자신의 육체의 이익만을 위하여 돈 벌 계획을 세워 놓고 일을 추진한다면 그것이 어느 날 허무하게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자신이 일평생 애써서 모아 둔 모든 물질이 하루 아침에 안개처럼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14절). 그러므로 우리가 물질을 벌어들일 계획을 세운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어디에 쓸 목적으로 계획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는 것으로 판가름 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중심에 바르지 못한 것 곧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욕심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돈을 벌어들일 계획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의 뜻과 부합되는 삶이라면 그것을 무조건 나쁘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옳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모든 직업을 다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님의 뜻이라면 우리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행할 것입니다(16절)"라고 말이다. 그런데 사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어떻게 사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행하지 않을 때가 참 많다. 다시 말해, 자기가 돈을 버는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데에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렇게 행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데 야고보가 언급하는 것처럼,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것이 분명히 죄라고 하였다. 그렇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죄라는 것인 줄 우리는 알고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나의 미래를 온전히 준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8. 나오며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자신의 죄된 본성을 이기는 법에 대해서 알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대체 얼마나 될까? 사도 바울도 이것을 깨닫고 사람이 스스로 죄된 본성을 이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 로마서 7장에 기록해 놓았다. 그것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사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로마서 8장이다. 그런데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명의 성령의 법 가운데서 사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사도 바울이 제시해 주는 방법도 육체의 정욕을 이기는 완벽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이는 많지 않다. 왜 그런가? 그렇게 훈련을 받고 있을 때는 괜찮지만 그렇지 못한 환경에 처했을 때에는 금방 옛날로 다시 되돌아가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의 내부에 있는 죄된 본성 곧 육체의 정욕을 이기게 도와주는 다른 방법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육체 속에 이미 들어 있는 더러움의 실체 곧 자기 속에 있는 악한 영들(뱀들)을 회개를 통해 내보내는 것이다(출20:5, 요일1:9). 이 방법은 정말 대단한 방법이다. 한번 내보낸 영은 내 몸에서 깨끗하게 제거되기 때문에, 만약 회개하여 음란의 영을 내보내었다면 우리는 그만큼 음란의 영에 대해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실로 놀라운 영적인 발견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야고보는 분명하게 말했다. 자신이 죄된 본성을 이기지 못하고 마귀를 따라가고 있다면 그때에는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어야 한다"고 말이다(약4:9). 그래야 우리 속에 있는 죄된 본성들의 실체 곧 악한 영들이 우리 속에서 제거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는 우리 육체 속에 들어 있는 죄된 본성에게 승리를 거두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모든 사람들이 자기 속에 있는 모든 악한 영들을 다 내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이러한 회개를 지속한다면, 우리도 어느 정도 죄된 본성에서 자유롭게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죄된 본성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육체의 정욕에서 헤매이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회개다. 회개만이 이 모든 것의 열쇠인 것이다. 야고보는 말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 역시 죄가 된다고 말이다. 예수님께서도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또한 그분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라고 했다(눅12:46). 이제는 우리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자. 주님을 다시 만날 그 영광스러운 날을 위하여...

 

 

2022년 04월 27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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