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디게아교회는 어떤 교회였는가? 왜 주님께서는 이 교회를 책망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는가? 그리고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이 교회를 향하여 당신이 누군지를 소개할 때에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이"라고 소개하셨던 것일까? 사실 이 교회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 언제부터인지 거기에 서 있었는지 모르지만 주님께서는 이 교회의 지도자와 성도들의 마음 문 밖에 서서 오랫동안 계셔왔다. 밤서리를 맞은 채 몇날 며칠을 거기에 있었는지 모른다.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자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늦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오로지 돈에 눈이 멀어 주님을 마음에 모시지 못한 눈 먼 교회였고 영적인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교회, 우리는 라오디게아교회를 통해서 마지막 시기에 놓여있는 교회의 모습이 어떻게 진행될른지를 보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교회 성도들은 과연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 것인가? 과연 어떻게 해야만이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해법이 여기에 있다.
1. 들어가며
라오디게아교회, 이 교회는 A.D.95~-96년경 소아시아에 실재했던 교회들 가운데 하나로서, 예수께서 지상에 있는 교회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보여주신 교회의 유형이다. 이 교회는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없는 부자교회였지만 영적으로는 가난하여 뜨뜻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교회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교회는 부활승천하신 주님으로부터 오직 책망만 듣는다. 그렇다면 왜 이 교회는 이렇듯 뜨뜻미지근한 교회가 되어버린 것일까? 아니, 이 교회의 사자였던 메시지 전달자(목회자)부터 어떻게 되어서 뜨뜻미지근한 신앙이 되어버린 것일까? 아니 주님을 밖에 세워둔 채 그냥 오랫동안 있어왔던 것일까? 사실 겉으로 볼 때에는 이 교회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첫째로, 교리적인 부패와 타락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교회 안에는 에베소와 버가모교회 등에 침투한 니골라당의 가르침이나 버가모교회에 있었던 발람의 가르침 혹은 두아디라교회에 있었던 이세벨 여선지자의 가르침과 같은 잘못된 교리들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유대인들이나 로마정부로부터 또한 핍박을 받았는지에 대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있다면, 이 교회는 너무 부자교회로서 너무 잘 먹고 잘 살아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교회나 교회의 지도자가 돈이 많아지게 되면 이처럼 문제가 되는 것일까? 그러므로 이 교회는 교회사적으로 볼 때에,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지만, 영적으로는 가난하고 열정이 식어버린 교회로서, 말세의 교회(A.D.1900~주님 재림전)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오늘은 물질적으로 부자교회가 가지고 있는 약점은 대체 무엇이며, 이런 상태에 있는 교회는 어떤 처방전을 통해서 구원에 이를 수 있는지를 살펴보자.
2. 라오디게아 도시와 라오디게아 교회는 어떠했는가?
먼저, 라오디게아라는 도시부터 살펴보자. 라오디게아는 요한계시록 2~3장에 등장하는 소아시아에 있는 도시들 가운데 가장 부요한 도시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첫째로, 이 도시에는 고리대금업이 발달하여 금융으로 돈을 많이 벌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 도시는 의과대학이 있었고 의술이 발달하였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안과와 이비인후과와 같은 전문치료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부르기아 안약은 전 세계로 팔려나가고 있는 히트상품이었다. 셋째로, 이 도시는 흑양모로 직조한 고가의 겉옷을 제작 생산판매하고 있어서 많은 수입을 올릴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A.D.60년경에 유래없는 큰 지진이 일어나 이 도시가 거의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도움없이 자력으로 도시를 복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도시에 산다는 것은 물질적으로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뿐더러, 병도 잘 치료받을 수 있는 도시로서 타도시에 비해 참으로 부러움을 살만한 도시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도시에 세워진 교회는 어떠했을까? 먼저 이 도시에 언제 교회가 세워졌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이 교회의 지도자가 상당한 부자였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계3:17).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보면, 이 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이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오직 책망만 가득할 뿐이다. 왜 이 도시에 세워진 교회는 이렇게 책망만 듣게 되었을까? 대체 어떻게 해야 이 교회는 다시 정상적인 교회가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오늘은 이 시대 가운데 마지막 시기에 존재할 교회의 모형으로 등장하는 라오디게아교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3.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소개되고 있는 예수님은 과연 누구신가?
(14절) 그리고 너는 라오디게아 안에 있는 교회의 사자(메시지 전달자)에게 [단번에] 편지하라(쓰라). 아멘이신 이, 신실하고 참된 증인이신 이,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이가 이것들을 말씀하신다.
우선, 이 교회에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주님께서는 자기자신이 누군지를 소개하실 때에는 반드시 말씀하시려는 교회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게 자기를 소개하셨다. 그러므로 이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에 알려면 예수께서 자신을 어떤 분으로 소개하고 있는지를 보면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교회에 예수님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그것은 3가지 모습으로 표현되었다(계3:14). 첫째로는 아멘이신 분이요, 둘째로는 신실하고 참되신 분이며, 셋째로는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분이시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이 교회에게 자신을 맨 처음 "아멘이시요 신실하고 참되신 분"이라고 소개하셨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주님께서 이 교회를 책망하시기 위함이다. 이 교회는 책망할 것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라오디게아교회와는 정반대에 있는 교회도 있었다. 서머나교회나 빌라델비아의 경우가 그렇다. 서머나교회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소개하셨다(계2:8). 이는 그분이 만물의 주권자이시며, 죽음을 주관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고난에 직면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놀라지 말라고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신 것이다. 그리고 빌라델비아교회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거룩하고 참되신 분이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며,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분"으로 소개하고 있다(계3:7). 이는 빌라델비아교회가 거룩한 교회였고, 참된 교회였으며, 구원의 문을 닫고 여는 권세를 사용하는 교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오디게아교회는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자신을 어떤 존재라고 소개하는 예수님은 라오디게아교회를 책망하기 위해서 자신을 다르게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신을 "아멘이요 신실하고 참된 증인"이라고 소개하신 것은 라오디게아교회를 책망하기 위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역으로 설명하면, 당시 라오디게아교회는 주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순종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그들이 신실하지도 참되지도 않아서 증인된 삶을 전혀 살고 있지 않았음을 표현한다. 더욱이 당신 자신을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이"로 소개하시고 있는 이유는 라오디게아교회가 고쳐서 사용할 만큼의 상태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가 필요할 만큼 부패되고 타락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이 교회와 다시 시작하고 싶으셨다. 그래서 "나는 다시 시작할 수도 있는 자 곧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이"라고 중의적으로 소개하신 것이다. 왜 예수님은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하시는가? 그것은 이 교회의 지도자가 일찌감치 예수님을 문밖에 서 계시도록 오래동안 방치해왔기 때문이다(계3:20). 하지만 그때도 우리 주님은 계속해서 라오디게아교회의 지도자와 성도들을 향해 노크하고 계셨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여전히 예수님의 노크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주님의 마음을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
4. 라오디게아교회는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
(15) [나는] 너의 행위들을 알아왔다.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다는 것을. [나는] [네가] 차겁든지 아니면 뜨겁든지 하는 것을 원하노라.
(16) 이같이 [네가] 미지근하여 네게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기 때문에, [나는] 내 입으로부터 [밖으로] 막 너를 뱉어버리려고(토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라오디게아교회는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 그것은 주님 보시기에 너무 역겨워 토해버려야 할 만큼의 상태였다(계3:15~16). 왜냐하면 이 교회는 차겁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고 뜨뜻미지근한 신앙의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 교회를 무엇인가를 들었어도 회개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감격하고 감사해서 주님을 뜨겁게 찬양하고 감사하는 모습도 전혀 발견할 수 없 교회였다. 특히 이 교회의 미지근한 상태는 꼭 인근지역에서 흘러들어온 식수의 온도와도 같았다. 한 편으로는 히에라볼리에서 내려오는 물이 출발할 때에는 온천수였지만 라오디게아에 도착할 때에는 미지근한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또 한 편으로 식수는 골로새에서 내려오는 찬 물이 있었다. 하지만 그 찬물도 오는 과정에서 데워져서 미지근한 물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 교회를 향해 히에라볼리나 골로새의 물처럼 뜨겁든지 차거든지 하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라오디게아교회의 지도자의 영적인 상태였다. 그들은 정말 까마득히 자신이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계3:17).
(17) 왜냐하면 네가 “나는 부요하다. 그리고 나는 부요한 채 있다. 그리고 나는 필요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는] 네가 곤고하다는 것과 그리고 가난하다는 것과 그리고 눈멀었다는 것과 그리고 벌거벗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있다.
그렇다. 라오디게아교회의 메시지전달자는 자신이 부자요 ,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교회는 고리대금업과 흑양모산업과 부르기아안약의 판매로 인하여 부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영적인 실상은 정말 달랐다. 예수께서는 오히려 정반대로 그 교회를 진단하셨다. 그 교회는 스스로를 부자라고 말하며, 부요하며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 교회는 영적으로 볼 때 매우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영적으로 볼 때 매우 가난하고 궁핍한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교회의 지도자와 교회의 성도들은 부르기아 안약과 같은 놀라운 의학기술 때문에 눈이 잘 보이고, 귀가 잘 들린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만큼은 매우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들은 전부가 다 눈병에 걸려 있었고, 귀가 멀어 있었으며, 헐벗은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5. 주님께서 내리신 처방전은 무엇이었을까?
(18) [나는] 너에게 나에게서 불로부터 [밖으로] 정련된(연단된) 채 있는 금을 [단번에] 사는 것을 권면한다(충고한다). 그리고 너는 너의 벌거벗음의 수치가 드러나지 않도록, 흰 겉옷들을 [단번에] 사입는 것을 [권면한다]. 그리고 나는 네가 보기 위하여, 너의 눈들에 바르도록, 안약을 [단번에] 사는 것을 [권면한다]
(19) 나는 [내가] 사랑하는 만큼 많이 책망한다. 그리고 나는 징계한다. 그러므로 [너는] [계속] 열심을 내라. 그리고 너는 [단번에] 회개하라.
(20) 보라! [내가] 문 위에 서 있는 채 있다. 그리고 [나는] 두드리고 있다. 만일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단번에] 듣고 [단번에] 문을 연다면, [내가] 그를 향하여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먹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3가지 처방전을 내려야만 하셨다. 첫째 처방전으로는, 그들에게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고 하셨고, 흰 겉옷을 사서 입으라고 하셨으며, 안약을 사서 바르라고 하셨다(계3:18). 왜냐하면 이 교회를 육적인 관점으로 볼 때에는 보이는 금덩이를 많이 가지고 있고 흑양모로 짠 비싼 겉옷을 입고 있으며, 부르기아 안약을 발라 건강하게 살고 있지만 실제는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영적으로는 정반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불로 연단된 금 곧 정금같은 믿음을 사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흑양모로 짠 겉옷을 버리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흰 양털로 만든 겉옷을 입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르기야 안약을 사다 발라 눈이 보이게 하기보다는 영적으로 치료하는 말씀을 많이 먹어 영적으로 멀어있는 눈이 보일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둘째 처방전으로는, 계속해서 열심을 내라고 하셨고 단번에 회개하라고 하셨다(계3:19). 그랬다. 라오디게아교회는 열심히 식어버린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말씀을 듣는 일을 멀리하고 있었으며, 기도하는 일에도 동참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라오디게아교회에게 주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보라. 그것은 이 교회가 열심을 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잘못된 것들은 단호하게 뜯어고치고 잘라버리라고 말씀하셨다(계3:19). 사실 이 교회의 지도자는 회개만이 살 길이었다. 그러므로 만약 그러한 상태에 있는데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이 교회의 지도자는 100% 지옥행이 될 것이 뻔하다. 죽을 때에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워버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목숨이 아직 끊어지지 아니한 만큼 그들에게도 회개의 기회는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주님은 줄기차게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외치셨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처방전으로, 주님께서는 당신자신을 그들의 마음 안으로 모여들여 그분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라고 하셨다(계3:20). 라오디게아교회에게 이 편지를 보낼 당시, 이 교회의 지도자인 주의 종들도 다 주님을 마음 밖에 서 계시도록 방치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도 그 세월이 오래된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잘 모르고 있다. 그러자 주님은 이제 그들이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맞아주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러면 주님께서도 그 사람 속에 들어와 그 사람과 영적으로 교제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6. 라오디게아교회의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은 무엇이었나?
(21) 이기고 있는 자, [내가] 그에게 내 보좌 안에 나와 함께 [단번에] 앉는 것을 줄 것이다. 마치 역시 나도 이겼고 그리고 그의 보좌 안에 그리고 나의 아버지와 함께 앉았던 것처럼.
(22) 귀를 가지고 있는 자는 그 영이 교회들에게 무엇을 말씀하는지를 [단번에] 들으라.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회개하여 다시 시작하여 승리하는 자들에게 어떤 축복의 말씀을 주셨을까? 그것은 예수께서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처럼, 주님 앞에 충성하는 자에게도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이것은 일종의 비유다. 누구든지 이기는 자가 된다면 그도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을 할 것임을 뜻하기 때문이다(계20:1~10, 22:5). 그러므로 귀를 가진 자는 성령께서 각 교회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계:3:22)
7. 나오며
그렇다. 사람은 아담으로부터 죄된 본성을 가지고 있기에 혹시라도 범죄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자기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을 때다. 특히 라오디게아교회의 지도자는 자신의 영적 상태가 어딴 상태에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그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어떠했을른지를 상상해보라.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 교회의 지도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다시 너희들과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이는 내가 사실 너희들의 마음 가운데 들어가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너희들은 내게 마음을 열거나 나를 영접한 일이 있었느냐! 너희들 안에는 오로지 금과 흑양모 겉옷과 부르기아 안약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분이 그들의 마음 밖에서 오랫동안 서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들 안으로 들어가려고 주님은 언제부턴가 또다시 그들의 마음의 눈 앞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왜냐하면 그들과 새 교제를 아직 시작도 못해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교회의 지도자들은 자기들은 매주 교회에 출석하고 있으며 십일조를 잘 바치고 있으니, 자신은 이미 구원받은 상태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큰 일이다. 이 시대의 교회지도자들도 상당수가 이런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신도들도 그렇게 들어왔으니 자신의 구원문제에 아무런 걱정이 없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이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다. "오 주여! 이 시대의 교회와 주의 종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저들도 회개할 기회를 주소서!"라고 말이다.
2018년 9월 27일(목) 1차수정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