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그리스도인의 율법관(33)] 예수께서는 어떻게 성막의 천장휘장과 지붕덮개가 되셨는가?(출26:1~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HXOPi5vFRPc
1. 들어가며
성막(聖幕, tabernacle)에는 여러 개의 휘장들이 있다. 그것들 중에는 성소와 지성소를 덮고 있는 4가지 막이 있다. 안쪽의 2개는 짜서 만든 휘장들이고, 바깥쪽 2개는 가죽들을 이어붙혀서 만든 덮개들이다. 그러니까 안쪽은 실로 짠 것들이고 바깥쪽은 이어붙힌 가죽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안쪽에 있는 2가지 휘장을 가리켜 '천장 휘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고, 바깥쪽에 있는 2가지 가죽을 가리켜서는 '지붕 덮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성소와 지성소의 막을 4가지로 만들라고 지시하신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막들의 쓰임새는 대체 무엇이며, 이것들에 대한 영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신 성막 제작 지시를 통하여(출26:1~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연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2. 성막을 가리켜 왜 성막이라고 부르게 되었는가?
성막을 왜 성막(聖幕, tabernacle)이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성막이 하나님의 거처가 되기 위한 막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막'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미쉬칸'인데, 이는 '거처, 처소'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쉬칸''은 원래 '살다. 거주하다. 거처하다'는 뜻을 가진 '샤칸'이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이 단어가 하나님의 거처인 성막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을 때에 이 단어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막으로 전용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막이란 하나님께서 거처하시는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거하시도록 이 세상에 쳐 놓은 장막을 우리는 '성막'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막에는 다양한 종류의 막들(오헬=커텐)이 있다. 총 8개의 막들이 있다. 첫째는 성막을 치기 위해서 맨 먼저 치는 울타리 휘장이 있다(출27:9~15). 이는 가로 50규빗 중에 30규빗과 세로 100규빗이 되는 공간에 기둥들을 세우고 세마포로 쳐놓은 흰색의 휘장이다. 둘째는 성막에 들어가는 출입문을 만들기 위한 휘장으로서, 성경에서는 이것을 '뜰의 문'이라고 말하고 있다(출27:16~19). 길이는 총 20규빗이다. 셋째는 성소에 들어가는 문으로서 '성막문' 혹은 '회막문'이라고 부르는 휘장이 있다. 이것의 길이는 10규빗이다. 총 5개의 기둥이 있고 그 기둥들 위에 고리를 달아서 휘장을 걸쳐 놓은 것이다(출26:34~37). 이것을 다른 말로 '첫째 휘장'이라고 한다. 넷째는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기 위해 쳐서 걸쳐놓은 휘장이 있다. 이것은 '둘째 휘장'이라고 부른다. 총 4개의 기둥들 위에 고리를 달어서 휘장을 쳐놓은 것이다(출26:31~33). 그리고 나머지 4개의 휘장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번 시간에 다루게 될 성막의 천장으로서 사용되는 휘장 2개과 지붕 으로 사용되는 덮개 2개이다.
3. 성막의 천장과 덮개는 어떻게 만들라고 하셨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성막의 천장과 덮개를 어떻게 만들라고 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성막의 뜰을 만들고, 이어 성소와 지성소를 널판으로 세운 후에, 성막의 천장과 지붕을 덮을 막들을 제작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천장과 지붕을 덮는 휘장은 총 4가지 종류가 있게 된 것이다.
먼저, 안쪽의 2가지는 실로 짠 휘장들인데, 첫째는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의 4가지 종류의 실로 짠 것이다(출26:1, 36:8). 이것은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둘째 휘장처럼 거기에 그룹들을 공교회 수로 놓은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내부 휘장' 혹은 '내부 앙장'이라고 부른다. 특별히 천장의 첫번째와 두번째의 휘장을 가리켜 개역한글판 성경에서는 '앙장'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우러를 앙 자에다가 휘장 장 자'를 쓴 것이다. 또한 '앙장'이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보면 '예리아'라는 단어인데, '떨다. 진동하다'는 뜻의 '야라'라는 동사에서 유래하여 천장을 덮는 휘장을 가리킨다. 이 첫번째 내부 앙장의 크기는 왼쪽 지면에서부터 덮기 시작하여 지붕을 지나 오른쪽 지면까지 늘어뜨리면 28규빗이다. 이는 성소와 지성소가 가로와 높이가 각각 10규빗 10규빗이므로 30규빗의 성소와 지성소의 크기를 28규빗 짜리 막으로 덮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양쪽은 지면에서 1규빗씩 떨어져 있다. 이 앙장은 마음이 슬기로운 여인들이 손수 실을 낳아 가져온 것이다(출35:25). 그러므로 첫번째의 내부 앙장은 실로 아름답과 화려한 휘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는 염소털로 짠 앙장이다. 이것은 외부 앙장이라고 부른다(출26:7, 36:14). 이 앙장도 천장의 기능을 수행함으로 '예리아'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때 사용된 염소털은 검은 색 털이었을까 아니면 흰 색 털이었을까? 그것은 유목민들의 천막을 보면 알 수 있다. 성경에 보면 고대 근동지방의 천막은 주로 검은 색의 염소털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아1:5). 어떤 분들은 염소털이 흰 색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검은 색으로 보는 것이 더 성경적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검은 털이란 곧 염소털을 의미했기 때문이다(아5:11, 마5:36, 아4:1, 6:5). 또한 대속죄일 제사 때에 사용된 염소도 검은 색 털을 가진 염소가 사용되었으리라 추정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때 사용되는 염소가 두 마리였는데, 한 마리를 여호와를 위한 속죄제물로 드렸고, 또 한 마리리는 광야의 아사셀에게 보내는 염소였기에 죄를 넘긴다는 의미로 보면 검은 색을 가진 염소가 더 타당하기 때문이다. 그럼, 왜 두번째 앙장, 곧 염소털의 외부 앙장을 덮으라고 하셨을까? 그것은 성막 내부에서는 보이지도 않을텐데 말이다. 그것은 염소털이 내부의 습도를 조절하고, 보온을 하는데 뛰어난 효과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들도 겨울이 되면 각종 털로 만든 옷을 만들어 입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바깥쪽에는 2개의 막이 있다. 첫째는 안쪽의 덮개로서,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출26:14, 36:19, 39:34). 이것은 숫양을 잡아 털을 제거하고 그 가죽들을 서로 이어붙힌 것이다. 이것은 덮개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해서 그 명칭으로 '미크쎄'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안쪽의 내부 덮개를 숫양의 가죽을 가지고 만들라고 하셨을까? 그것은 이것이 가죽제품이므로 첫째는 단열효과가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밖에서 내리쬐는 뜨거운 열을 차단하려면 단열효과가 뛰어났어야 했는데, 그 용도로서 숫양의 가죽이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 맨 바깥쪽에 있는 해달의 가죽으로부터 새어들어온 빗물이나 이슬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숫양의 가죽은 필요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냥 숫양의 가죽 그대로를 쓰지 말고 그것에다가 붉은 물을 들여 쓰라고 하셨다. 그것은 이전에 내부앙장과 외부앙장이 성막의 지붕과 양쪽 널빤지를 밀찰해서 덮은 것이라면, 내부 덮개와 외부 덮개는 더 바깥쪽을 덮은 후에 덮개 끝쪽에서다 고리를 만들고 끈을 역어서 땅의 박은 말뚝에 묶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빗물이 곧장 성막 내부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이 떨어진 곳에는 고랑을 파 놓아서 빗물이 성막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둘째는 맨 바깥쪽의 덮개로서, 해달(물개,오소리,돌고래)의 가죽으로 만든 막이 있다(출26:14, 36:19, 39:34). 이것은 웃덮개로서 맨 바깥쪽에 덮는 막이다. 이것도 덮는 막이라는 의미로 '미크쎄'인데, 웃덮개라는 뜻에서 '미크쎄 미마알'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외부 덮개 곧 웃덮개를 해달의 가죽으로 만들라고 한 것인가? 그것은 외부 덮개는 방수, 방진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외부 덮개는 태양과 비와 바람과 이슬과 먼지로부터 성막내부를 보호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달의 가죽이 이것에 가장 적합한 것이었다. 이 가죽은 매우 질기고 치밀해서, 비나 습기를 막아내는 방수용 재료로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데에서는 가죽신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된 것이다. 참고로 해달의 가죽은 성막의 외부 덮개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성소의 기물들을 싸고 나르는 도구로서 사용되었다(민4:6~14). 그러므로 해달의 가죽 역시 서로 이어붙여서 성막의 덮개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성막의 천장과 덮개는 예수님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이제는 마지막으로 성막을 덮는 막들이 예수님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보자. 우리는 사도 요한이 쓴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쳐놓은 장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요1:14, 계7:15~16). 그러므로 성막에 쓰인 모든 막들은 다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그 재료들의 특성과 색깔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첫째, 내부 앙장으로 쓰인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은 4가지 의미의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청색(하늘 색) 실'은 하늘의 색깔로서 신성한 본성을 지닌 하나님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자색(보라색) 실'은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홍색(붉은 색) 실'은 인류를 위해 대속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가늘게 꼰 베실 혹 흰색 실은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 내지는 거룩하고 정결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둘째, 외부 앙장으로 쓰인 검은 색의 '염소털'은 우리 인류의 죄를 대신 도말하시려고 죄가 되시고 저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후5:21, 갈3:13).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죄일 제사때에 바쳐진 검은 색의 속죄염소로 예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레16장). 그리하여 그분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되게 하셨으므로, 염소털은 우리를 위해 죄가 되시고 저주가 되신 그리스도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셋째, 내부 덮개로 쓰인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은 먼저는 숫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예수께서 유월절 양으로 오신 숫양이셨음을 알 수 있고, 가죽을 붉은 색으로 물 들였다는 측면에서 보면, 원래는 피흘려 죽지 않아도 되실 분이셨는데, 그만 우리 인류를 구원하려고 예수께서 일부러 피흘려 죽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내부 앙장과 내부 덮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왜냐하면 실내에서 보면 첫번째 내부 앙장만 보이고, 외부에서 보면 마지막 외부 덮개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해 기꺼이 죄가 되시고 저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위해 기꺼이 피흘려 죽으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영원히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넷째, 외부 덮개로 쓰인 '해달의 가죽'은 그것이 비바람과 추위와 태양의 강렬한 빛과 모래바람을 막아준다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를 외부의 환난과 시험으로부터 그리고 마귀의 시험과 공격으로부터 막아주고 보호해 주는 보호 그 자체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을 가리켜 환난 중의 피난처라고 말했다(시55:8, 삼하22:3, 시59:16).
5. 나오며
성막의 천장 휘장들과 지붕 덮개들은 다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려주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막들이 성소도 덮고 있으며 지성소도 덮고 있음을 본다. 사실 영적으로 볼 때, 성소는 지상에 있는 교회를 의미하고, 지성소는 하늘에 있는 천국을 의미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는 이미 하나님이셨으며 왕이셨던 분이신데, 우리 인간을 위해 기꺼이 낮아지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와 저주가 되시고 피흘려 죽으셨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내부 앙장에 그룹들을 공교히 수놓았다는 것은 천국에서나 이 지상에서나 항상 천사들이 천국과 교회를 호휘하고 지키게 해 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얼마나 황송한 말인가?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구원얻을 상속자들을 섬기라고 이 세상에까지 당신의 천사들을 파송하고 계신다(히1:14).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처럼 주님의 사랑받고 보호받는 존재들인 것이다. 이것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만약 내가 바로 이러한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는 일평생 이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2024년 03월 18일(월)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성막(聖幕, tabernacle)에는 여러 개의 휘장들이 있다. 그것들 중에는 성소와 지성소를 덮고 있는 4가지 막이 있다. 안쪽의 2개는 짜서 만든 휘장들이고, 바깥쪽 2개는 가죽들을 이어 붙여서 만든 덮개들이다. 그러니까 안쪽은 실로 짠 것들이고 바깥쪽은 이어 붙인 가죽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안쪽에 있는 2가지 휘장을 가리켜 '천장 휘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고, 바깥쪽에 있는 2가지 가죽을 가리켜서는 '지붕 덮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성소와 지성소의 막을 4가지로 만들라고 지시하신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막들의 쓰임새는 대체 무엇이며, 이것들에 대한 영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신 성막 제작 지시를 통하여(출26:1~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연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2. 성막을 가리켜 왜 성막이라고 부르게 되었는가?
성막을 왜 성막(聖幕, tabernacle)이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성막이 하나님의 거처가 되기 위한 막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막'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미쉬칸'인데, 이는 '거처, 처소'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쉬칸''은 원래 '살다, 거주하다, 거처하다'는 뜻을 가진 '샤칸'이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이 단어가 하나님의 거처인 성막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을 때에 이 단어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막으로 전용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막이란 하나님께서 거처하시는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거하시도록 이 세상에 쳐놓은 장막을 우리는 '성막'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막에는 다양한 종류의 막들(오헬=커텐)이 있다. 총 8개의 막들이 있다. 첫째는 성막을 치기 위해서 맨 먼저 치는 울타리 휘장이 있다(출27:9~15). 이는 가로 50규빗 중에 30규빗과 세로 100규빗이 되는 공간에 기둥들을 세우고 세마포로 쳐놓은 흰색의 휘장이다. 둘째는 성막에 들어가는 출입문을 만들기 위한 휘장으로서, 성경에서는 이것을 '뜰의 문'이라고 말하고 있다(출27:16~19). 길이는 총 20규빗이다. 셋째는 성소에 들어가는 문으로서 '성막문' 혹은 '회막문'이라고 부르는 휘장이 있다. 이것의 길이는 10규빗이다. 총 5개의 기둥이 있고 그 기둥들 위에 고리를 달아서 휘장을 걸쳐 놓은 것이다(출26:34~37). 이것을 다른 말로 '첫째 휘장'이라고 한다. 넷째는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기 위해 쳐서 걸쳐놓은 휘장이 있다. 이것은 '둘째 휘장'이라고 부른다. 총 4개의 기둥들 위에 고리를 달아서 휘장을 쳐놓은 것이다(출26:31~33). 그리고 나머지 4개의 휘장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번 시간에 다루게 될 성막의 천장으로서 사용되는 휘장 2개과 지붕으로 사용되는 덮개 2개이다.
3. 성막의 천장과 덮개는 어떻게 만들라고 하셨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성막의 천장과 덮개를 어떻게 만들라고 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성막의 뜰을 만들고, 이어 성소와 지성소를 널판으로 세운 후에, 성막의 천장과 지붕을 덮을 막들을 제작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천장과 지붕을 덮는 휘장은 총 4가지 종류가 있게 된 것이다.
먼저, 안쪽의 2가지는 실로 짠 휘장들인데, 첫째는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의 4가지 종류의 실로 짠 것이다(출26:1, 36:8). 이것은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둘째 휘장처럼 거기에 그룹들을 공교하게 수놓은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내부 휘장' 혹은 '내부 앙장'이라고 부른다. 특별히 천장의 첫 번째와 두 번째의 휘장을 가리켜 개역한글판 성경에서는 '앙장'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우러를 앙 자에 휘장 장 자'를 쓴 것이다. 또한 '앙장'이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보면 '예리아'라는 단어인데, '떨다, 진동하다'는 뜻의 '야라'라는 동사에서 유래하여 천장을 덮는 휘장을 가리킨다. 이 첫 번째 내부 앙장의 크기는 왼쪽 지면에서부터 덮기 시작하여 지붕을 지나 오른쪽 지면까지 늘어뜨리면 28규빗이다. 이는 성소와 지성소가 가로와 높이가 각각 10규빗 10규빗이므로 30규빗의 성소와 지성소의 크기를 28규빗 짜리 막으로 덮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양쪽은 지면에서 1규빗씩 떨어져 있다. 이 앙장은 마음이 슬기로운 여인들이 손수 실을 뽑아 가져온 것이다(출35:25). 그러므로 첫 번째의 내부 앙장은 실로 아름답고 화려한 휘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는 염소 털로 짠 앙장이다. 이것은 외부 앙장이라고 부른다(출26:7, 36:14). 이 앙장도 천장의 기능을 수행함으로 '예리아'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때 사용된 염소 털은 검은색 털이었을까 아니면 흰색 털이었을까? 그것은 유목민들의 천막을 보면 알 수 있다. 성경에 보면 고대 근동지방의 천막은 주로 검은색의 염소 털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아1:5). 어떤 분들은 염소 털이 흰색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검은색으로 보는 것이 더 성경적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검은 털이란 곧 염소 털을 의미했기 때문이다(아5:11, 마5:36, 아4:1, 6:5). 또한 대속죄일 제사 때에 사용된 염소도 검은색 털을 가진 염소가 사용되었으리라 추정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때 사용되는 염소가 두 마리였는데,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한 속죄제물로 드렸고, 또 한 마리는 광야의 아사셀에게 보내는 염소였기에 죄를 넘긴다는 의미로 보면 검은색을 가진 염소가 더 타당하기 때문이다. 그럼, 왜 두 번째 앙장, 곧 염소 털의 외부 앙장을 덮으라고 하셨을까? 그것은 성막 내부에서는 보이지도 않을텐데 말이다. 그것은 염소 털이 내부의 습도를 조절하고, 보온을 하는데 뛰어난 효과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들도 겨울이 되면 각종 털로 만든 옷을 만들어 입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바깥쪽에는 2개의 막이 있다. 첫째는 안쪽의 덮개로서,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출26:14, 36:19, 39:34). 이것은 숫양을 잡아 털을 제거하고 그 가죽들을 서로 이어 붙인 것이다. 이것은 덮개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해서 그 명칭으로 '미크쎄'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안쪽의 내부 덮개를 숫양의 가죽을 가지고 만들라고 하셨을까? 그것은 이것이 가죽제품이므로 첫째는 단열효과가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밖에서 내리쬐는 뜨거운 열을 차단하려면 단열효과가 뛰어나야 했는데, 그 용도로서 숫양의 가죽이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 맨 바깥쪽에 있는 해달의 가죽으로부터 새어 들어온 빗물이나 이슬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숫양의 가죽은 필요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냥 숫양의 가죽 그대로를 쓰지 말고 그것에다가 붉은 물을 들여 쓰라고 하셨다. 그것은 이전에 내부 앙장과 외부 앙장이 성막의 지붕과 양쪽 널빤지를 밀착해서 덮은 것이라면, 내부 덮개와 외부 덮개는 더 바깥쪽을 덮은 후에 덮개 끝쪽에다 고리를 만들고 끈을 엮어서 땅에 박은 말뚝에 묶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빗물이 곧장 성막 내부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이 떨어진 곳에는 고랑을 파놓아서 빗물이 성막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둘째는 맨 바깥쪽의 덮개로서, 해달(물개, 오소리, 돌고래)의 가죽으로 만든 막이 있다(출26:14, 36:19, 39:34). 이것은 웃덮개로서 맨 바깥쪽에 덮는 막이다. 이것도 덮는 막이라는 의미로 '미크쎄'인데, 웃덮개라는 뜻에서 '미크쎄 미마알'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외부 덮개 곧 웃덮개를 해달의 가죽으로 만들라고 한 것인가? 그것은 외부 덮개는 방수, 방진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외부 덮개는 태양과 비와 바람과 이슬과 먼지로부터 성막 내부를 보호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달의 가죽이 이것에 가장 적합한 것이었다. 이 가죽은 매우 질기고 치밀해서, 비나 습기를 막아내는 방수용 재료로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데에서는 가죽신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된 것이다. 참고로 해달의 가죽은 성막의 외부 덮개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성소의 기물들을 싸고 나르는 도구로서 사용되었다(민4:6~14). 그러므로 해달의 가죽 역시 서로 이어 붙여서 성막의 덮개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성막의 천장과 덮개는 예수님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이제는 마지막으로 성막을 덮는 막들이 예수님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보자. 우리는 사도 요한이 쓴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쳐놓은 장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요1:14, 계7:15~16). 그러므로 성막에 쓰인 모든 막들은 다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그 재료들의 특성과 색깔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첫째, 내부 앙장으로 쓰인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은 4가지 의미의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청색(하늘색) 실'은 하늘의 색깔로서 신성한 본성을 지닌 하나님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자색(보라색) 실'은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홍색(붉은색) 실'은 인류를 위해 대속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가늘게 꼰 베실 혹 흰색 실은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 내지는 거룩하고 정결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둘째, 외부 앙장으로 쓰인 검은색의 '염소 털'은 우리 인류의 죄를 대신 도말하시려고 죄가 되시고 저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후5:21, 갈3:13).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죄일 제사때에 바쳐진 검은색의 속죄 염소로 예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레16장). 그리하여 그분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되게 하셨으므로, 염소 털은 우리를 위해 죄가 되시고 저주가 되신 그리스도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셋째, 내부 덮개로 쓰인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은 먼저는 숫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예수께서 유월절 양으로 오신 숫양이셨음을 알 수 있고, 가죽을 붉은색으로 물들였다는 측면에서 보면, 원래는 피 흘려 죽지 않아도 되실 분이셨는데, 우리 인류를 구원하려고 예수께서 일부러 피 흘려 죽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내부 앙장과 내부 덮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왜냐하면 실내에서 보면 첫 번째 내부 앙장만 보이고, 외부에서 보면 마지막 외부 덮개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해 기꺼이 죄가 되시고 저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위해 기꺼이 피 흘려 죽으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영원히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넷째, 외부 덮개로 쓰인 '해달의 가죽'은 그것이 비바람과 추위와 태양의 강렬한 빛과 모래바람을 막아 준다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를 외부의 환난과 시험으로부터 그리고 마귀의 시험과 공격으로부터 막아 주고 보호해 주는 보호 그 자체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을 가리켜 환난 중의 피난처라고 말했다(시55:8, 삼하22:3, 시59:16).
5. 나오며
성막의 천장 휘장들과 지붕 덮개들은 다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려주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막들이 성소도 덮고 있으며 지성소도 덮고 있음을 본다. 사실 영적으로 볼 때, 성소는 지상에 있는 교회를 의미하고, 지성소는 하늘에 있는 천국을 의미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는 이미 하나님이셨으며 왕이셨던 분이신데, 우리 인간을 위해 기꺼이 낮아지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와 저주가 되시고 피 흘려 죽으셨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내부 앙장에 그룹들을 공교히 수놓았다는 것은 천국에서나 이 지상에서나 항상 천사들이 천국과 교회를 호휘하고 지키게 해 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얼마나 황송한 말인가?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구원얻을 상속자들을 섬기라고 이 세상에까지 당신의 천사들을 파송하고 계신다(히1:14).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처럼 주님의 사랑받고 보호받는 존재들인 것이다. 이것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만약 내가 바로 이러한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는 일평생 이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2024년 03월 18일(월)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