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구원(46)] 소용없는 회개는 무엇이며, 사람은 언제 회개해야 하는가?(눅16:19~31)_2024-07-15(월)
https://youtu.be/Z3fSqLiduWw
1. 들어가며
누가복음은 일종의 회개의 책이다. 왜냐하면 회개의 중요성이 누가복음의 처음과 끝부분에 등장할 뿐만 아니라, 책 중간에 회개에 관한 여러 말씀들 곧 회개의 여러 사례들과 회개의 여러 비유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일종의 비유이기는 하지만 실제상황을 주님이 보시고 들려주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하여 소용없는 회개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가 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회개가 쓸모없는 회개이자 소용없는 회개인가? 그렇다면 쓸모있는 회개는 진정 어떤 회개인 것이며, 쓸모있는 우리도 회개를 하러면 과연 언제 해야 하는가?
2. 소용없는 회개란 어떤 회개를 가리키는가?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매우 복된 자다. 아직 이 땅에서 살고 있다면 그는 회개할 기회를 가지고 있고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목숨이 끊어지면 그때에는 회개할 수 없다. 죽은 후에는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직 이 땅에 목숨이 붙어있을 때에만 회개가 가능한 것이다. 죽은 후에는 회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죽은 후에는 영적인 실상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에는 영적인 세계가 실제로 다가오기 때문에 더이상 믿음이 필요없는 때다. 그러므로 그때에 가서 비로소 깨닫고 회개하는 것은 회개가 아니다. 그러한 것은 하나님께서 받아주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회개를 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회개하기에는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죽은 다음에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안 받아주시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사실 사람이 죽으면 즉시 그 육체 속에서 자신의 영이 빠져나온다. 그래서 그가 육체를 갖고 있을 때 가진 믿음과 회개의 상태를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 그것도 순간적으로 눈깜짝할 사이에 그렇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어떤 이는 천국으로 들어가고 어떤 이는 지옥에 떨어진다. 특히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천사들 2명이 와서 자신의 어깨를 부축하고서 천국에 올라가지만 또 어떤 이는 황금마차가 대기하고 있다가 그를 태워서 천국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그러나 지옥으로 떨어질 사람은 시커먼 악한 영들이 와서 그를 붙잡아 순식간에 음부로 쏙 끌어가버린다.
3. 부자가 떨어진 '음부'와 나사로가 들어간 '아브라함의 품'이란 어떤 곳인가?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따르면, 부자는 죽어서 음부에 떨어졌고, 나사로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붙들려서 아브라함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다면 부자가 떨어진 '음부'라는 곳은 지옥이며, 나사로가 들어간 '아브라함의 품'은 천국인가?
우선, 오늘날의 상황의 말씀드리자면,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지옥으로 떨어지든지 아니면 천국으로 올라가든지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중간상태에서 쉰다는 것은 잘못된 학설이다. 아니다. 죽으면 곧바로 지옥으로 가든지 천국으로 가든지 한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온 말씀처럼, 모든 죽은 자들이 다 백보좌 심판대 앞으로 나아가서 심판을 받는다는 말은 대체 무슨 말인가?(계20:11~15) 그것은 주님께서 재림하신 이후 그때의 모든 인류를 심판하실 때에 그렇게 하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재림하기 전에 죽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죽기 전에 그의 영혼의 문제가 이미 결정된 채 있기 때문에, 죽으면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천사들에 의해 곧바로 천국에 들어가고, 지옥에 들어갈 사람은 즉시 귀신들에 의해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기준은 생명책의 녹명여부다. 그러므로 지금 죽으면 그가 다시 어딘가로 가서 재판을 받고 둘로 갈라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A.D.30년경 예수께서는 왜 부자는 지옥에 아니라 '음부'에 들어갔다고 말씀하셨으며, 나사로는 천국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고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아직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기 전의 상황이므로, 이들도 구약성도들처럼 부자는 '음부'에,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안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여기서 '음부'라고 함은 구약시대에는 '스올'이란 단어로 쓰인 단어로, 헬라어로는 '하데스'라고 불린다. 이곳은 죄를 해결하지 못한 악인들이 들어가는 영혼의 최종적인 거처를 가리킨다. 그곳은 지금 지구의 땅 속에 있다(마12:40).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죽으신 후에 삼일동안 땅 속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곳을 가리켜 음부라고 베드로 사도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행2:27). 그리고 그곳은 한 마디로 '고통받는 곳'이다(눅16:232,8). 보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고문을 받는 곳'이다. 왜냐하면 '고통'받는 곳이라는 헬라어 단어가 '바사노스'라는 단어인데, 이는 "괴로움, 고통, 고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단어에서 동사 '바사니조'가 나왔는데, 이는 '고문하다'의 뜻을 지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자는 음부에 떨어진 후 거기에서 고문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는 지옥 불에서 고문을 받고 있었으며, 또한 귀신들에 의해서도 동시에 고문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사로가 들어간 곳은 '아브라함의 품'이었다. 그렇다면 그곳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아브라함의 품은 죽을 때에 나사로가 천사들의 손에 이끌리어 들어가는 곳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곳은 살아있을 때에 죄가 해결한 자로서 죽은 의인들이 가는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누가복음 23장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 죽은 한 편 강도가 장차 들어갈 곳을 가리켜 '낙원'이라고 말씀하셨다(눅23:43). 그러므로 이 두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의인들이 죽어서 가는 장소인 '아브라함의 품'이 곧 '낙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의인이 죽어서 가는 곳이 곧 낙원인 것이다. 오늘날에는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자가 들어가는 곳이 곧 낙원인 것이다. 그곳은 원래 천국의 한 켠으로서 사람의 영혼이 자라고 있었던 곳이다.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성장하게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있는 영혼들을 지구로 보내어 주신다. 가장 작게는 그의 나이가 4~5세 정도에 보내어 주신다. 그러나 목회자 수준은 10살 정도의 나이부터 이 땅에 보내어진다. 오늘날에 들어와서 목회자 수준의 가장 많은 자는 약 15~16세 정도의 나이이다. 그러므로 의인이 죽으면 곧바로 낙원으로 간다. 그래서 거기에서 자신이 보내어진 사명대로 살았는지 확인을 거친 후에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천국의 자기의 거처로 가는 것이다.
4. 부자가 지옥에 떨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왜 부자는 음부 곧 오늘날에 지옥으로 떨어진 것인가?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율법 말씀에 궁핍한 자들을 보면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고 적극적으로 구제해 주라고 명령하셨는데(신15:7~11), 부자는 자기를 위해서는 날마다 연회를 열 정도로 흥청망정 돈을 써댔지만 거지가 되어 병들어서 대문 앞에서 구걸하는 나사로는 외면했던 것이다. 둘째로, 그는 죽는 날까지 호화로이 살다보니 끝까지 주님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날마다 연회를 즐기는 삶을 살다가 그만 자신이 죄를 지은 지도 모른 가운데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회개할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자신이 죄인인 줄 알아야 회개도 할 텐데, 그는 자신이 죄인인지도 모른 채 죽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자신의 죄값으로 인하여 지옥형벌을 면치 못할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결코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수록 그는 더 회개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잘 먹고 잘 살면 주님을 찾을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나사로는 어떻게 해서 아브라함의 품 곧 낙원인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는가? 그것은 그가 비로소 그때 궁핍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병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가서야 그는 왜 자신이 궁핍해졌고 병이 들었는지를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에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부자의 집 앞에서 구걸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잘못된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먹으면서 얼마나 회개를 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자신이 그간 얼마나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삶을 살았으며, 또한 하나님이 주신 복에 감사하지 못한 채 교만하고 완악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깨달으면서 회개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난하게 되고 병이 들게 된 것이 꼭 저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었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찾다가 회개하고 주님을 믿어서 구원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나사로에게 있어서는 가난과 질병이 오히려 회개하고 주님을 믿어서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는 중요한 도구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5. 이 땅에서는 누가 과연 회개할 수 있으며 회개해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과연 이 땅에서는 누가 과연 회개할 수 있으며, 회개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달은 자라고 할 수 있다. 부자는 지옥에서 자신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을 향하여 간청한다. 자기 아버지의 집에는 형제 다섯 명이 아직 살아있는데(눅16:28), 그들도 부자로 살고 있기 때문에, 지금 죽으면 그들도 역시 자기처럼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며, 그들을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왜냐하면 자기의 형제들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살고 있고 또한 악한 일을 행한 것 때문에 틀림없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죽었던 나사로를 되살려 형제에게 보내면 그들을 깨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면 죽은 나사로를 본 자신의 5명의 형제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대답은 전혀 예상 외였다. 왜나하면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회개하지 않는 자는, 죽은 자가 살아난 후 가서 알려주어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 회개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이야말로 주 하나님이자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시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구주이자 왕이신 것을 마음으로 영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기 몸 속에 귀신이 가득 들어찬 이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상황이 되도록 귀신은 결코 그냥 두지 않는다. 반드시 거짓으로 미혹하여 넘어뜨릴 것이다. 그리고 믿지 못하게 방해하고 회개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말씀을 들으면서도 항상 분별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래야 귀신에게 속지 않고 자기자신이 누군지를 파악할 수 있으며, 자기자신을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오직 한 분이신 예수님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는 것이다.
6. 나오며
사실 회개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자기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땅에 자신의 목숨이 붙어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은 다음에는 회개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할 기간은 육신에 살아있을 때에 한정해놓으셨기 때문이다. 죽으면 모든 것이 적나나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그때 가서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있을 때에 우리의 지각을 사용하여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죄를 없이하는데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려고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분을 내 구주와 하나님으로 모셔들여야 한다. 그럴 때에 그도 구원을 받아 죄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2024년 07월 15일(월)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누가복음은 일종의 회개의 책이다. 왜냐하면 회개의 중요성이 누가복음의 처음과 끝부분에 등장할 뿐만 아니라, 책 중간에 회개에 관한 여러 말씀들 곧 회개의 여러 사례들과 회개의 여러 비유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일종의 비유이기는 하지만 실제 상황을 주님이 보시고 들려주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하여 소용없는 회개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가 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회개가 쓸모없는 회개이자 소용없는 회개인가? 그렇다면 쓸모 있는 회개는 진정 어떤 회개인 것이며, 쓸모 있는 우리도 회개를 하려면 과연 언제 해야 하는가?
2. 소용없는 회개란 어떤 회개를 가리키는가?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매우 복된 자다. 아직 이 땅에서 살고 있다면 그는 회개할 기회를 가지고 있고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목숨이 끊어지면 그때에는 회개할 수 없다. 죽은 후에는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직 이 땅에 목숨이 붙어 있을 때에만 회개가 가능한 것이다. 죽은 후에는 회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죽은 후에는 영적인 실상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에는 영적인 세계가 실제로 다가오기 때문에 더이상 믿음이 필요없는 때다. 그러므로 그때에 가서 비로소 깨닫고 회개하는 것은 회개가 아니다. 그러한 것은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회개를 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회개하기에는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죽은 다음에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안 받아 주시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사실 사람이 죽으면 즉시 그 육체 속에서 자신의 영이 빠져나온다. 그래서 그가 육체를 갖고 있을 때 가진 믿음과 회개의 상태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 그것도 순간적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그렇게 되어 버린다. 그래서 어떤 이는 천국으로 들어가고 어떤 이는 지옥에 떨어진다. 특히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천사들 2명이 와서 자신의 어깨를 부축하고서 천국에 올라가고 또 어떤 이는 황금마차가 대기하고 있다가 그를 태워서 천국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그러나 지옥으로 떨어질 사람은 시커먼 악한 영들이 와서 그를 붙잡아 순식간에 음부로 쏙 끌고 가버린다.
3. 부자가 떨어진 '음부'와 나사로가 들어간 '아브라함의 품'이란 어떤 곳인가?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따르면, 부자는 죽어서 음부에 떨어졌고, 나사로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붙들려서 아브라함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다면 부자가 떨어진 '음부'라는 곳은 지옥이며, 나사로가 들어간 '아브라함의 품'은 천국인가?
우선, 오늘날의 상황으로 말씀드리자면,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지옥으로 떨어지든지 아니면 천국으로 올라가든지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중간 상태에서 쉰다는 것은 잘못된 학설이다. 아니다. 죽으면 곧바로 지옥으로 가든지 천국으로 가든지 한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온 말씀처럼, 모든 죽은 자들이 다 백보좌 심판대 앞으로 나아가서 심판을 받는다는 말은 대체 무슨 말인가?(계20:11~15) 그것은 주님께서 재림하신 이후 그때의 모든 인류를 심판하실 때에 그렇게 하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재림하기 전에 죽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죽기 전에 그의 영혼의 문제가 이미 결정된 채 있기 때문에, 죽으면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천사들에 의해 곧바로 천국에 들어가고, 지옥에 들어갈 사람은 즉시 귀신들에 의해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기준은 생명책의 녹명 여부다. 그러므로 지금 죽으면 그가 다시 어딘가로 가서 재판을 받고 둘로 갈라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A.D.30년경 예수께서는 왜 부자는 지옥이 아니라 '음부'에 들어갔다고 말씀하셨으며, 나사로는 천국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고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아직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기 전의 상황이므로, 이들도 구약 성도들처럼 부자는 '음부'에,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안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여기서 '음부'라고 함은 구약시대에는 '스올'이란 단어로 쓰인 단어로, 헬라어로는 '하데스'라고 불린다. 이곳은 죄를 해결하지 못한 악인들이 들어가는 영혼의 최종적인 거처를 가리킨다. 그곳은 지금 지구의 땅속에 있다(마12:40).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죽으신 후에 삼일 동안 땅속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곳을 가리켜 음부라고 베드로 사도가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행2:27). 그리고 그곳은 한 마디로 '고통받는 곳'이다(눅16:232,8). 보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고문을 받는 곳'이다. 왜냐하면 '고통'받는 곳이라는 헬라어 단어가 '바사노스'라는 단어인데, 이는 "괴로움, 고통, 고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단어에서 동사 '바사니조'가 나왔는데, 이는 '고문하다'의 뜻을 지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자는 음부에 떨어진 후 거기에서 고문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는 지옥 불에서 고문을 받고 있었으며, 또한 귀신들에 의해서도 동시에 고문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사로가 들어간 곳은 '아브라함의 품'이었다. 그렇다면 그곳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아브라함의 품은 죽을 때에 나사로가 천사들의 손에 이끌리어 들어가는 곳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곳은 살아 있을 때에 죄를 해결한 자로서 죽은 의인들이 가는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누가복음 23장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 죽은 한편 강도가 장차 들어갈 곳을 가리켜 '낙원'이라고 말씀하셨다(눅23:43). 그러므로 이 두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의인들이 죽어서 가는 장소인 '아브라함의 품'이 곧 '낙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의인이 죽어서 가는 곳이 곧 낙원인 것이다. 오늘날에는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자가 들어가는 곳이 곧 낙원인 것이다. 그곳은 원래 천국의 한 켠으로서 사람의 영혼이 자라고 있었던 곳이다.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성장하게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있는 영혼들을 지구로 보내어 주신다. 가장 작게는 그의 나이가 4~5세 정도에 보내어 주신다. 그러나 목회자 수준은 10살 정도의 나이부터 이 땅에 보내어진다. 오늘날에 들어와서 목회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자는 약 15~16세 정도이다. 그러므로 의인이 죽으면 곧바로 낙원으로 간다. 그래서 거기에서 자신이 보내어진 사명대로 살았는지 확인을 거친 후에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천국의 자기의 거처로 가는 것이다.
4. 부자가 지옥에 떨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왜 부자는 음부 곧 오늘날에 지옥으로 떨어진 것인가?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율법 말씀에 궁핍한 자들을 보면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고 적극적으로 구제해 주라고 명령하셨는데(신15:7~11), 부자는 자기를 위해서 날마다 연회를 열 정도로 흥청망청 돈을 써 댔지만 거지가 되고 병들어서 대문 앞에서 구걸하는 나사로는 외면했던 것이다. 둘째로, 그는 죽는 날까지 호화로이 살다 보니 끝까지 주님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날마다 연회를 즐기는 삶을 살다가 그만 자신이 죄를 지은 줄도 모른 가운데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회개할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다. 자신이 죄인인 줄 알아야 회개도 할 텐데, 그는 자신이 죄인인지도 모른 채 죽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자신의 죄값으로 인하여 지옥 형벌을 면치 못할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결코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수록 그는 회개하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 왜냐하면 잘 먹고 잘 살면 주님을 찾을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나사로는 어떻게 해서 아브라함의 품 곧 낙원인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는가? 그것은 그가 비로소 그때 궁핍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병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가서야 그는 왜 자신이 궁핍해졌고 병이 들었는지를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에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부자의 집 앞에서 구걸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잘못된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면서 얼마나 회개를 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자신이 그간 얼마나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삶을 살았으며, 또한 하나님이 주신 복에 감사하지 못한 채 교만하고 완악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깨달으면서 회개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난하게 되고 병이 들게 된 것이 꼭 저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었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찾다가 회개하고 주님을 믿어서 구원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나사로에게 있어서는 가난과 질병이 오히려 회개하고 주님을 믿어서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는 중요한 도구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5. 이 땅에서는 누가 과연 회개할 수 있으며 회개해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과연 이 땅에서는 누가 과연 회개할 수 있으며, 회개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달은 자라고 할 수 있다. 부자는 지옥에서 자신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을 향하여 간청한다. 자기 아버지의 집에는 형제 다섯 명이 아직 살아 있는데(눅16:28), 그들도 부자로 살고 있기 때문에, 지금 죽으면 그들도 역시 자기처럼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며, 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왜냐하면 자기의 형제들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살고 있고 또한 악한 일을 행한 것 때문에 틀림없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죽었던 나사로를 되살려 형제에게 보내면 그들을 깨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면 죽은 나사로를 본 자신의 5명의 형제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대답은 전혀 예상 외였다. 왜냐하면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회개하지 않는 자는, 죽은 자가 살아난 후 가서 알려 주어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 회개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이야말로 주 하나님이자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시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구주이자 왕이신 것을 마음으로 영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기 몸속에 귀신이 가득 들어찬 이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상황이 되도록 귀신은 결코 그냥 두지 않는다. 반드시 거짓으로 미혹하여 넘어뜨릴 것이다. 그리고 믿지 못하게 방해하고 회개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말씀을 들으면서도 항상 분별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래야 귀신에게 속지 않고 자기 자신이 누군지를 파악할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을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오직 한 분이신 예수님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는 것이다.
6. 나오며
사실 회개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땅에 자신의 목숨이 붙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은 다음에는 회개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할 기간은 육신이 살아 있을 때로 한정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죽으면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그때 가서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 있을 때에 우리의 지각을 사용하여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죄를 없이하는데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분을 내 구주와 하나님으로 모셔들여야 한다. 그럴 때에 그도 구원을 받아 죄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2024년 07월 15일(월)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