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에게 불어닥친 고난은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우리는 이미 욥기서 1~2장의 기록을 통해 욥이 고난받았던 이유가 어떤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특별한 사건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사탄의 시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었던 당사자인 욥에게는 매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욥이 당해야 했던 그 고통의 원인에 대한 분석과 아울러, 인간의 죄된 본성과 회개의 중요성을 모르던 욥이 그것을 어덯게 잘못 판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욥이 당했던 고난이 무엇이었는지부터 살펴봅시다. 욥은 한 번의 고난만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2차에 걸린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첫번째는 그의 모든 소유물을 잃어버리는 고통이었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재산만이 아니라 수많은 종들과 아울러 7남3녀의 자녀들까지 다 잃어버렸습니다(욥1:13~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범죄하지 아니하였고 입을 열어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자신의 건강을 잃어버리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악성 종기가 그의 몸에서 생겨났고 그러자 온 몸에서는 진물이 흘러내리고 구더기가 슬었습니다. 그러자 욥은 구더기를 기왓장으로 긁어내려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욥이 이러한 고통을 겪어야 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먼저 욥을 위로하러 찾아왔던 세 명의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는가? 자네가 하나님 앞에 뭔가 잘못을 한 것이 있어서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아니겠나! 그러니 자신의 죄를 빨리 회개하게나!"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이 정결하지 않은 것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엘리바스도 그렇게 말했고(욥4:17), 빌닷이 그렇게 말했으며(욥8:3~6), 소발도 그렇게 말했습니다(욥11:11).
하지만 실상은 무엇이었습니까? 진짜 어떤 죄를 지어서 그러한 고난을 당하는 것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도덕적으로 흠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율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욥의 세 명의 친구들의 진단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이제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이 욥과 더불어 3차의 변론을 마치자, 젊은 엘리후가 즉시 욥에게 말했습니다. 엘리후는 그동안 욥과 세 친구의 변론을 다 듣고 있으면서 한 마디도 말하지 않고 듣기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연소하고 욥의 세 명의 친구들은 다 연로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셋 중에는 욥의 아버지뻘 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욥15:10). 옛날에는 나이가 많은 자가 대표해서 말하는 시대였고 연륜이 많은 자가 가르치는 시대였기 때문에 엘리후는 잠잠코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도 욥의 당하는 고난에 대해 속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죄를 짓지도 않았던 욥을 정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엘리후가 욥이 당하는 고난의 원인을 정확하게 짚어서 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인간이 말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욥의 세 명의 친구들의 관점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습니다. 욥의 고난은 한 마디로 욥의 죄와는 무관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욥의 유익을 위해 허락하신 징벌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룝32~37장). 사실 엘리후의 말이 옳았습니다. 욥도 엘리후의 변론에 대해서는 그에게 어떠한 댓구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훗날 하나님께서 욥과 욥의 네 친구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욥의 세 친구들이 욥만큼 올바른 것이 아니었다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입니다(욥42:7).
그렇다면, 아직까지 회개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었던 욥은 자신에게 불어닥친 고난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요? 그는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욥은 그것이 영적인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주 특별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쳐주는 원시 율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욥은 율법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흠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그가 잘못하고 실수해도 그는 제사를 통해서 그 죄를 해결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신은 지은 죄가 없는데 자신에게 고난이 불어 닥쳤으니,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도무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욥은 어떻게 자신의 문제를 진단했을까요? 욥이 자신의 세 명의 친구들과 논쟁하면서 그가 얻은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욥기 33장 9절~11절의 말씀입니다.
욥33:9-11 나는 깨끗하여 악인이 아니며 순전하고 불의도 없거늘 10 참으로 하나님이 나에게서 잘못을 찾으시며 나를 자기의 원수로 여기사 11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그렇습니다. 욥의 진단은 이렇습니다. 자신은 절대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고 순전하고 불의한 것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잘못 판단하시고 자기를 원수같이 여기사 자기에게 고난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의롭고 정당할 뿐만 아니라 그 어떤 허물이 없는데도, 전능자께서 무엇을 잘못 아시고 자기에서 징계의 화살을 쏘아버리셨다는 것이었습니다(욥33:5~6).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젊은 날에 욥 자신이 지었지만 용서받았던 죄를 다시 들추어내어 자신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냐며 따졌습니다(욥13:26~27).
그때였습니다. 젊은 엘리후가 나타나서 그에게 말했습니다. 비록 사람이 죄를 짓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징벌을 하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욥에게 그러한 시련이 없다면 절대 나타나지 않았을 그의 죄된 본성이 있음을 깨닫게 하고 오직 그것은 율법의 행위나 제사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회개로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그에게 붙여 욥을 시험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욥의 무지는 폭로되었고, 욥의 교만함과 완악함이 드러났으며, 욥의 내면에 숨어있던 죄된 본성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범죄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열심과 노력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순간순간마다 울타리와 생명싸개로 우리와 우리의 자식과 우리의 산업을 붙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좋지 않는 환경이 찾아오고 그것이 지속된다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속에 꼭꼭 숨겨져 있던 죄된 본성이 스물스물 올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있는 이러한 죄된 본성이 결국에 욥 자신을 파멸로 이끌어가게 될 것이라는 것과 어떤 죄된 본성이나 범죄라 할지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모든 죄를 다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시기 위해 욥에게 사탄의 시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내일 이 시간에는 2차시험 이후에 불거져나왔던 원망과 불평이 얼마나 큰 죄인지에 대해서 살펴보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