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욥은 왜 고통을 당해야 했을까?
우리는 욥기를 통해서 참으로 많은 질문을 하게 된다. 그 중에 하나는 욥은 왜 죄를 짓지도 아니했는데도 불구하고 고난을 당해야 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 당하는 모든 일에 다 찾아오셔서 그 뜻과 의미와 계획을 설명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창조주께서 우리 피조물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의무는 없는 것 같다.
2.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문제를 다 설명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가?
욥에 대한 시험이 끝날 무렵에 꼭 있어야 할 내용들이 욥기서에는 왜 기록되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보자. 먼저는 하나님 편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이렇게 말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욥아, 내가 사탄에게 너를 시험하도록 허락한 것에 대해 미안하구나. 그동안 고생이 참 많았지? 그것은 다 너를 위한 것이었으니, 나를 너그럽게 이해해 다오." 한편 욥의 편에서 볼 때에도 욥은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 내가 알지도 못하고 아는 체 말했습니다. 그동안 내가 하나님께 쏟아내었던 불평과 원망했던 죄를 다 용서해주옵소서" 그러나 하나님도 사과하지 않으셨고, 욥도 용서를 빌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문제는 깨끗히 마무리되었다. 하나님과 욥 사이에 대체 무엇이 오고간 것일까?
3. 욥은 진정 회개한 자였는가?
그런데 욥기서 40장과 42장에는 욥이 무엇을 회개했는지 우리에게 그가 남긴 말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두 번 나타나서 말씀하셨다. 그것도 둘 다 폭풍 가운데서 말이다. 이때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는 것은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욥을 책망하시는 듯이 보인다. 그때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말씀을 듣고 처음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내가 한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욥40:4-5)" 그후 하나님께서는 한 번 더 욥에게 말씀하셨다. 그러자 욥은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에는 회개한다는 말은 없었지만 두번째는 확실하게 그가 회개했음을 말해준다.
욥42:2-6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여기서 욥은 분명 회개하노라고 대답했다.
4. 욥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가?
우선 그가 지은 죄들을 살펴보면 그가 사탄의 시험을 받기 전까지는 죄를 짓지 아니한 듯 하다. 하지만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면서 그는 그만 죄를 짓고 말았다. 첫째, 그는 자기의 생일을 저주함으로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저주했기 때문이다(욥3;1). 둘째, 자기는 의로운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목하여 화살을 과녁에 쏘듯이 자기에게 엄청난 고통을 허락하신 것은 매우 부당한 것이라고 항변했기 때문이다. 그 자신의 말을 빌리지만 원망과 불평을 한 것이다. 셋째, 그는 자기는 의로운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선하지 않는 방법으로 자신을 대하신다고 따졌기 때문이다. 아니 자기는 의로운데 하나님께서 불의하신 것이 아니냐고 대들었다. 이것이 그가 짓은 죄들이다.
5. 욥은 대체 무엇을 회개했던 것일까?
하지만 욥은 하나님을 저주한 죄나 원망불평한 죄, 따지고 들었던 죄를 회개하지 않았다. 욥은 자기의 무지와 교만함을 회개했기 때문이다(욥40:4~5, 42:2~6). 결국 욥은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는 자신이 지은 자범죄를 회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인 것을 회개한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하나님을 만나보면 금방 알게 되어있다.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 죄인이며, 얼마나 무식한 자였는데 용감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굳이 하나님께서 죄를 죄목마다 지목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죄인은 다 아는 것이다.
6. 진정한 회개란 무엇인가?
결국 사람이 회개한다는 낱낱의 자범죄를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린다기보다는 자신이 얼마나 교만했으며, 자신이 무식했는지를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떤 조치를 취한다 하더라도 그 댓가를 지불함이 마땅한 일인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 고백이 바로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주여, 제가 회개하나이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라는 고백이다.
7. 신약성경에 나오는 진정한 회개의 사례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이제 예를 들어보자. 예를 들기 전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4복음서 가운데 누가복음서가 바로 회개복음서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에는 죄를 지었던 사람이 직접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는 것들이 5회나 걸쳐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는 눅5장의 베드로의 회개다. 이 때 베드로는 얼핏 보기에 죄를 지은 것이 없어보인다. 그래도 직접 하나님을 만나니 즉시 그 자리에 앞으려서 이렇게 말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왜냐하면 나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눅5:8)" 두번째는 눅15장의 돌아온 탕자의 회개다. 이 때 돌아온 탕자는 뭐라고 회개했을까? "내가 하늘과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당신)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눅15:18~19)"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나는 죄인이니 무슨 처벌을 내게 내리신다고 해도 달게 받겠다는 각오이며, 심지어 그것이 자신을 아들로 받아주지 않고 품꾼(날품팔이)로 받아준다 해도 감사할 따름이라는 고백이 아닌가? 셋째로, 눅18장의 세리의 회개다. 그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말했다. "하나님이여, 죄있는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눅18:13)" 여기서도 세리는 구체적으로 낱낱의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행한 것을 볼 때 어떤 처벌을 받아도 마땅한 죄인이니, 다만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는 기도였다. 넷째로, 눅19장의 삭개오의 회개다. 삭개오의 회개는 남의 것을 도둑질한 것이나 속여 빼앗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다만, 그동안 자신이 하나님 대신에 돈을 하나님처럼 알고 섬겨살았던 것을 회개하는 뜻에서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내놓겠다고 말했다(눅19:8). 다섯째로, 눅 23장의 한 편 강도의 회개다. 그는 살인죄와 강도죄를 회개하지 않았다. 자신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자신이 지금 십자가형의 처벌을 받는 것은 마땅하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인데 왜 이 형벌을 받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자신을 생각해달라고 요청했다. 이것이 한편 강도의 회개다.
8. 나오며
그렇다. 우리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5가지 회개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다 자기의 낱낱의 죄를 고백하여 용서해달라고 빌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에 전혀 합당치 않은 죄인인 것을 시인했을 뿐이다. 그리고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을 찾아주신 것에 몸둘 바를 몰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만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회개의 본질이다. 이것이 참된 회개인 것이다. 회개란 입술로 자신의 죄목을 나열하고 용서해달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진정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처벌이라면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마음자세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 다만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지은 낱낱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그를 회복시켜주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자신은 용서받은 자로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평생 죄용서에 받은 자답게 보답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 회개인 것이다. 오늘은 나는 과연 어떤 회개를 드리고 있던 사람이었나를 한 번 돌아보라. 그리고 진정한 회개를 드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2017년 07월 07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