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구원받는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가? 사실 사람의 구원의 여정은 구약시대 이스라엘민족들이 겪었던 출애굽 여정에 고스란히 다 담겨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들어가려면, 2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유월절 절기를 지키는 것이다. 이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유월절 양으로 믿되, 회개하여 그분의 피로 과거의 죄를 다 사함받으며, 그분을 고기로 섭취하여 생명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무교절의 절기를 지키는 것이다. 유월절의 절기를 지켰다면, 이어지는 7일간(완전수)은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 이때는 집안에 누룩이 있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런 자는 이스라엘로부터 끊어지게 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유월절을 지키게 된다. 그러나 이 다음이 중요하다. 자기의 내면에 숨어있는 묵은 누룩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요, 누룩의 가르침들을 수용해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매주 구원론에 관한 잘못된 가르침을 제거해야 하고, 외식된 삶을 제거해 나가야 한다. 이것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초태생을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이것은 당시에 레위인의 성별로 바뀌었고, 오늘날은 주의 종들의 성별로 바뀌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장자와 짐승의 초태생 대신 하나님께 드려진 자들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고맙게 여겨야 한다. 이제 유월절의 규례와 무교절의 규례 그리고 초태생의 구별에 관한 영적인 진리를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자.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온라인새벽기도회] 출애굽기강해(10) 무교절의 규례와 출애굽여정의 시작(무교병과 할례와 초태생 구별의 영적인 의미)(출12:15~13:16)_2021-09-22(수)
https://youtu.be/PXAFjFHgjDc
1. 들어가며
이스라엘민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최대의 사건은 뭐니뭐니해도 "출애굽"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이 다시 탄생했다고 보아도 될만큼 어마어마하게 큰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드러낸 사건이요, 하나님께서 구원자이심을 드러낸 커다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신약의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자로서의 이름인데, 그 뜻은 "여호와가 구원하신다" 혹은 "여호와는 구원자이시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민족에게 있어서 출애굽의 사건은 오늘날 구원자이신 하나님(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리고 출애굽의 사건 직후에 주어진 유월절양을 먹는 규례와 무교절의 규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그리고 장자 및 초태생 죽음 후에 주어진 장자 및 초태생의 구별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시려 하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유월절과 무교절 그리고 초태생의 구별에 관한 말씀을 통하여,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고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유월절에 있어서 어린양의 피 이상으로 양고기에 대한 말씀을 배우게 될 것이며, 무교절에 반드시 제거되지 않으면 안 되는 누룩의 교훈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초태생 구별에 나타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사항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2. 유월절 양으로 오신 예수님
출애굽기는 토라(율법서)의 한 권으로서 메시야에 대한 상징으로 가득차 있는 책이다. 특히 출애굽기에서는 그분이 유월절 양으로 처음 묘사된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린 만나와 반석에서 솟아난 생수 그리고 성막을 통해서 장차 오실 메시야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풍성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그중에서 출12~13장에 나오는 유월절양은 무엇을 예표하는 것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장차 피흘려 죽으시어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고, 양고기를 먹게함으로 자신의 생명을 나눠주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출12~13장에서는 메시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어떤 말씀들을 우리에게 들려주는가?
첫째, 장차 오실 메시야는 흠없고 일년된 어린양이자 수컷으로 예표되어 있다(출12:5). 그렇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흠없는 양 곧 죄없는 어린양으로 오셨다. 이것을 위해 위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리셨다. 그리고 아들로 오셨다(사9:6, 7:14, 창3:15). 둘째, 어린양은 1월 10일에 취해져서 4일동안 검사를 받은 후에 14일날 해질녁(오후3시)에 죽는다. 그렇다. 예수께서도 일요일에 예루살렘 입성하여 4일동안 종교지도자들로부터 검사를 받으셨다. 첫째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로부터 검사를 받으셨다(마21:23~27). 둘째는,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로부터 검사를 받으셨다(마22:15~22). 셋째는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두개인들로부터 검사를 받으셨다(마22:23~33). 넷째는 마지막으로 바리새인들로부터 검사를 받으셨다(마22:34~46). 그러나 단 한 그룹에서도 예수님의 잘못이나 허물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들로부터 흠없다고 인정을 받으신 것이다. 그리고 1월 14일 해질녁인 오후3시에 돌아가셨다. 셋째, 어린양은 2가지 역할을 감당했으니, 하나는 어린양의 피가 이스라엘사람들의 집의 좌우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짐으로 죽음의 천사가 그의 집 사람들을 치지 않고 넘어가게 했다. 그리고 또하나는 어린양의 고기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이 구워서 먹음으로 출애굽할 힘을 얻게 해 주었다. 다시 말해 어린양은 속죄의 피와 생명공급이라는 2가지 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이 땅에 오시어 피흘려 돌아가심으로 인류의 속죄를 이루셨고, 자신의 몸을 내어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믿는 이들은 회개를 통해 예수님의 피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게 되며, 그분을 믿을 때에 생명의 영이신 성령을 받아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을 분배받는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의 유월절양이신 예수께서 희생되셨음을 언급하고 있으며(고전5:7), 사도요한은 예수께서 세례요한의 안수를 통하여 세상 죄라 전가받아 세상죄를 없이하는 어린양이 되셨음을 분명하게 언급하였다(요1:29). 그렇다. 예수께서는 구약시대 속죄제사의 경우처럼 인류의 모든 죄를 인류의 대표자인 세례요한의 안수를 통해 넘겨받으셨다. 그러자 그 다음날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보고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다. 그제만 해도 그는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아니었다. 하지만 세례요한의 안수를 통해서 세상죄를 전가받은 예수께서는 세상 죄를 없이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고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서 내놓으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치르게 되신다.
3. 무교절은 무슨 절기며, 무교병은 무엇을 의미하고, 이때 절대 자기 집안에 있게 해서는 안 될 "누룩"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유월절양은 장차 오실 예수께서 속죄의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치를 것과 양고기를 제공해주심으로 그분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생명을 얻을 것임을 알려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유월절의 절기를 지키는 것만으로 끝낼 것을 주문하지 않으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다음날부터 7일동안(1월 15일 ~21일) 무교절을 지킬 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이다(출12:15~18).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을 지키는 것만으로 절기를 끝내라고 말씀하지 아니 하시고, 이어서 무교절의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일까? 그것은 오늘날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자들이 그 다음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단서다. 왜냐하면 유월절을 지킨 자가 무교절 기간에 힘써야 할 것이 누룩이 절대 집 안에서 발견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출12:19).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하루와 무교절 7일동안 누룩이 들어가지 않는 고낭의 떡(무교병)을 먹어야 했다. 그런데 이때에는 누룩없는 빵만을 먹어야 했던 것이 아니라 집안에서 아예 누룩을 제거했어야 했다. 특히 여기서 "7"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고 생명을 얻었으면 그날부터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누룩을 자기가 속한 영역으로부터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영적으로 볼 때, "유월절 양"은 우리의 속죄와 생명공급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메시야의 예표다. 그리고 7일동안 이어지는 무교절에는 누룩이 들어 있지 빵인데, 이는 누룩의 신속한 부패성을 지적한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음식에 누룩이 들어감으로 십시간에 그 음식이 부패해져감을 지적한 것이다. 결국 무교절 때에 무교병을 먹으라고 하심은 사람을 죄로 오염시키고 더럽히는 그 어떤 가르침이나 외식을 허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은 누룩일지라도 그것은 온 덩이를 부풀게 하는 만큼(마13:33, 갈5:9, 고전5:6), 무교절의 기간에는 절대 자기 집 안에 누룩을 보이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기간 "7일"}이라고 함은 "7"이라는 숫자가 이 땅에서의 완전수인만큼 이 땅에 사는 모든 날들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유월절 양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유월절의 절기를 지키고 이어서 일평생을 누룩을 제거하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도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여러번 당부하셨다. 이때 누룩은 빵을 부풀게 하는 물질적인 누룩이 아니라, 사람을 죄와 외식으로 오염시키고 부패시키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훈(가르침)과 외식을 주의하라는 말씀이었다(마16:6,11~12, 눅12:1).
4. 유월절과 무교절의 규례가 가르치고 있는 구원관은 어떤 것인가?
그러므로 유월절과 무교절의 규례를 살펴보면, 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2개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하나는 유월절을 지켜야 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유월절 절기가 양의 피를 바르는 것과 양의 고기를 먹는 것이 핵심 골자라면, 무교절의 절기는 자기 집 안에서 누룩을 제거하여 누룩이 결코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핵심골자다. 왜 그런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약 집 안에 누룩이 보이게 하는 자는 이스라엘로부터 끊쳐질 것이라고 경고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끊쳐진다"는 말은 이스라엘공동체로부터 추방된다는 말이 될 수도 있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고로, 만약 무교절의 기간동안에 누룩을 제거하지 못한 자는 결국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공동체로부터 이탈하여 지옥의 멸망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 사람이 유월절양을 믿는 것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이어지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자기의 내부에 여전히 남아있는 누룩을 날마다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이란 누룩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유월절양이신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는 이들로 가득하다.
5. 유월절을 지킬 때 양고기를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유월절 규례 중에서 우리가 특별히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유월절양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대체 누군가 하는 것이다. 첫번째 유월절은 B.C.1446년 1월 14일에 있었다. 이때는 누구라도 유월절양의 피를 바른 집 안에 있기만 하면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거기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자들도 있을 수 있었다. 곧 셈족계열의 사람들과 이집트인도 있었다면 그들은 그날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그들이 이방인이었다고 하더라고 그날에 그들은 죽임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해부터 지켜지는 유월절 절기에는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이나 거류민(나그네) 그리고 품꾼들은 유월절양을 먹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출13:43~45). 하나님의 언약백성의 표시인 할례가 유월절양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짓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할례'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사실 "할례"는 아브라함과 관련이 깊다. 그는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지만, 자신이 가진 믿음을 인치는 표시로서 할례를 처음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84세되던 해에 비록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기는 하였지만(창15:6), 그는 죄된 본성으로부터 완전히 탈출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만 자기 아내 사라의 말을 듣고 첩을 들여 육적인 자식인 이스마엘을 낳게 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곁을 13년간 떠나셨고 아브라함의 99세에 다시 찾아오신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할 것을 명령하셨다(창17:10~11). 아브라함더러 다시는 육체로 행하지 않겠노라고 자기의 살에 표시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할례는 일종의 회개의 도구다. 다시는 육체의 본성을 따라 행하지 않겠다는 표시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할례는 무할례시에 받았던 칭의를 확고히 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고(롬4:11~12), 또한 육적인 몸을 벗는 행위라고도 말했다(골2:11). 그러므로 이미 예수께서 골고다에서 피흘려 죽으신 후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유월절이 찾아오면 회개를 하면서 말씀을 섭취해야 하는 것이다. 당시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양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마음에 할례를 받아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양고기인 말씀을 먹을 수가 없다고 하신 것이다. 말씀을 들어도 그것이 자신의 영혼을 위한 생명의 양식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6. 하나님은 장자와 짐승의 초태생 대신에 왜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구별하여 바치라고 하셨는가?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초태생을 구별하여 거룩히 바치라고 명령하셨다(출13:11~12). 이는 하나님께서 애굽인의 장자와 짐승의 첫것을 죽이시는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들 중의 장자만큼은 죽지 않고 살아남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장자와 초태생이 죽어가는 대신에 어린양이 대신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백성들은 자기집의 장자를 다 하나님께 바칠 수 없었기에,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레위지파(레위인들)을 구별하여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명령하셨다(민3:12~13). 그래서 그후부터는 이스라엘 12지파 사람들 중에 오직 레위지파만이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구별되어 하나님께 거룩히 쓰임받게 된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께서 유월절양이 되어 죽으실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값을 주고 모든 죄인들을 사셨다는 것이다(고전6:20).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피의 희생을 통해서 믿는 자들을 사셨기 때문에, 이제 성도들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고전6:19b~20)"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주님의 소유라고 생각하여 주님께 온전히 드리고 있는가 아니면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주님의 피값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진작 마귀의 소유가 되어서 지옥형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로 오셔서 자신의 핏값을 내주고 우리를 사셨다. 그러니 이제 우리의 몸은 더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며 주님의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사람만이 될 수 있다(롬12:1). 그러므로 앞으로의 시간은 내 시간은 없으며, 내가 가진 재산도 사실은 내 재산이 아니다. 다 주님의 시간이며, 주님의 재산인 것이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물질의 십일조를 거룩한 바치는 행위요, 주일성수는 시간의 십일조를 바치는 거룩한 십일조인 셈이다. 그런데 이것도 아깝다고 하기도 하고, 싫다고 말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이런 자들은 자기가 어떻게 되어서 애굽에서 탈출하게 되었는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아니 그 일을 모른다고 입을 씻어버릴 사람들이다.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된다. 믿는 성도의 시간과 물질의 주권은 우리 주님에게 있다. 그분이 쓰시기에 합당한 삶으로 드려야 한다. 우리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타고 오셨던 나귀가 되어야 한다. 주님이 필요하시다고 하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자가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아는 자요, 그런 자가 주님의 은총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인 것이다.
7. 나오며
오늘은 믿는 이들은 예수님을 유월절 양으로만 안다. 더욱이 유월절양이라고 해도 유월절양의 피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이 유월절 양으로 오시어 우리 대신 죽으셨기에, 더이상 받을 심판이 우리에게는 없으며, 그러니 죽는다면 자신은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바램일 뿐이다. 유월절양은 피만이 흘려주신 것이라, 자신의 몸으로 양식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유월절 양의 피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지만, 양의 고기는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모든 사람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도착하려면,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어서 무교병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다. 유월절은 하루만 지키면 되는 절기지만, 무교절은 7일동안 지켜야 할 절기이다. 그런데 무교절의 첫날도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고 했으며, 마지막 날도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둘 다 절기의 안식일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돌아가시던 해에는 유월절의 안식일, 무교절의 안식일, 제7일의 안식일이 차례대로 오는 해였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3일3야를 캄캄한 음부 속에서 지내셨다. 그리고 온전한 3일 후에 부활하셨고, 그리고 40일만에 승천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수님을 유월절 양으로 믿어 죄사함을 받고 생명을 받았더라도, 7일동안의 무교병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만약 이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지 않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것은 유월절양인 예수님인 것을 믿는 자라도 자기 내면의 누룩들 곧 구원에서 빗나가게 하는 잘못된 가르침들이나 외식들을 버려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도 버림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월절 양고기를 먹을 수 있는 자는 반드시 할례를 받은 자라고 말씀하셨다. 할례를 받지 못했다면 할례를 받후에 먹으라고 하셨다. 이것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던 자라도 그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할례와 같은 개인적인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믿는 자라도 날마다 회개해야 요단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러므로 죽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그것이 살 길이다.
2021년 09월 22일(수)
정병진목사
사람은 어떻게 구원받는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가? 사실 사람의 구원의 여정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들이 겪었던 출애굽 여정에 고스란히 다 담겨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2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유월절 절기를 지키는 것이다. 이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유월절 양으로 믿되, 회개하여 그분의 피로 과거의 죄를 다 사함받으며, 그분을 고기로 섭취하여 생명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무교절의 절기를 지키는 것이다. 유월절의 절기를 지켰다면, 이어지는 7일간(완전수)은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 이때는 집안에 누룩이 있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런 자는 이스라엘로부터 끊어지게 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유월절을 지키게 된다. 그러나 이 다음이 중요하다. 자기의 내면에 숨어 있는 묵은 누룩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요, 누룩의 가르침들을 수용해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매주 구원론에 관한 잘못된 가르침을 제거해야 하고, 외식된 삶을 제거해 나가야 한다. 이것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초태생을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이것은 당시에 레위인의 성별로 바뀌었고, 오늘날은 주의 종들의 성별로 바뀌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장자와 짐승의 초태생 대신 하나님께 드려진 자들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고맙게 여겨야 한다. 이제 유월절의 규례와 무교절의 규례 그리고 초태생의 구별에 관한 영적인 진리를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자.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온라인새벽기도회] 출애굽기강해(10) 무교절의 규례와 출애굽여정의 시작(무교병과 할례와 초태생 구별의 영적인 의미)(출12:15~13:16)_2021-09-22(수)
https://youtu.be/PXAFjFHgjDc
1. 들어가며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최대의 사건은 뭐니뭐니해도 '출애굽'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이 다시 탄생했다고 보아도 될 만큼 어마어마하게 큰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드러낸 사건이요, 하나님께서 구원자이심을 드러낸 커다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신약의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자로서의 이름인데, 그 뜻은 '여호와가 구원하신다' 혹은 '여호와는 구원자이시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었던 출애굽의 사건은 오늘날 구원자이신 하나님(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리고 출애굽의 사건 직후에 주어진 유월절 양을 먹는 규례와 무교절의 규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그리고 장자 및 초태생 죽음 후에 주어진 장자 및 초태생의 구별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 하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유월절과 무교절 그리고 초태생의 구별에 관한 말씀을 통하여,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고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유월절에 있어서 어린 양의 피 이상으로 양고기에 대한 말씀을 배우게 될 것이며, 무교절에 반드시 제거되지 않으면 안되는 누룩의 교훈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초태생 구별에 나타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사항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2. 유월절 양으로 오신 예수님
출애굽기는 토라(율법서)의 한 권으로서 메시야에 대한 상징으로 가득 차 있는 책이다. 특히 출애굽기에서는 그분이 유월절 양으로 처음 묘사된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린 만나와 반석에서 솟아난 생수 그리고 성막을 통해서 장차 오실 메시야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풍성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중에서 출애굽기 12~13장에 나오는 유월절 양은 무엇을 예표하는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장차 피 흘려 죽으시어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고, 양고기를 먹게 함으로 자신의 생명을 나눠 주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출애굽기 12~13장에서는 메시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어떤 말씀들을 우리에게 들려주는가?
첫째, 장차 오실 메시야는 흠없고 일 년된 어린 양이자 수컷으로 예표되어 있다(출12:5). 그렇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흠없는 양 곧 죄 없는 어린 양으로 오셨다. 이것을 위해 위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리셨다. 그리고 아들로 오셨다(사9:6, 7:14, 창3:15). 둘째, 어린 양은 1월 10일에 취해져서 4일 동안 검사를 받은 후에 14일 날 해 질 녘(오후3시)에 돌아가신다. 그렇다. 예수께서도 일요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4일 동안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검사를 받으셨다. 첫째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로부터 검사를 받으셨다(마21:23~27). 둘째는,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로부터 검사를 받으셨다(마22:15~22). 셋째는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두개인들로부터 검사를 받으셨다(마22:23~33). 넷째는 마지막으로 바리새인들로부터 검사를 받으셨다(마22:34~46). 그러나 단 한 그룹에서도 예수님의 잘못이나 허물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들로부터 흠없다고 인정을 받으신 것이다. 그리고 1월 14일 해 질 녘인 오후 3시에 돌아가셨다. 셋째, 어린 양은 2가지 역할을 감당했으니, 하나는 어린 양의 피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의 좌우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짐으로 죽음의 천사가 그의 집 사람들을 치지 않고 넘어가게 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어린 양의 고기를 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구워서 먹음으로 출애굽할 힘을 얻게 해 주었다. 다시 말해 어린 양은 속죄의 피와 생명 공급이라는 2가지 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이 땅에 오시어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인류의 속죄를 이루셨고, 자신의 몸을 내어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믿는 이들은 회개를 통해 예수님의 피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게 되며, 그분을 믿을 때에 생명의 영이신 성령을 받아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을 분배 받는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양이신 예수께서 희생되셨음을 언급하고 있으며(고전5:7),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세례 요한의 안수를 통하여 세상 죄를 전가 받아 세상 죄를 없이 하는 어린 양이 되셨음을 분명하게 언급하였다(요1:29). 그렇다. 예수께서는 구약시대 속죄제사의 경우처럼 인류의 모든 죄를 인류의 대표자인 세례 요한의 안수를 통해 넘겨 받으셨다. 그러자 그 다음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다. 그제만 해도 그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아니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의 안수를 통해서 세상 죄를 전가 받은 예수께서는 세상 죄를 없이 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셨고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에서 내놓으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치르게 되신다.
3. 무교절은 무슨 절기며, 무교병은 무엇을 의미하고, 이때 절대 자기 집안에 있게 해서는 안될 '누룩'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유월절 양은 장차 오실 예수께서 속죄의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치를 것과 양고기를 제공해 주심으로 그분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생명을 얻을 것임을 알려 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유월절의 절기를 지키는 것만으로 끝낼 것을 주문하지 않으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다음 날부터 7일 동안(1월 15일 ~21일) 무교절을 지킬 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이다(출12:15~18).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을 지키는 것만으로 절기를 끝내라고 말씀하지 아니 하시고, 이어서 무교절의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일까? 그것은 오늘날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자들이 그 다음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매우 중요한 단서다. 왜냐하면 유월절을 지킨 자가 무교절 기간에 힘써야 할 것이 누룩이 절대 집안에서 발견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출12:19).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하루와 무교절 7일 동안 누룩이 들어가지 않는 고난의 떡(무교병)을 먹어야 했다. 그런데 이때에는 누룩없는 빵만을 먹어야 했던 것이 아니라 집안에서 아예 누룩을 제거했어야 했다. 특히 여기서 '7'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고 생명을 얻었으면 그날부터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누룩을 자기가 속한 영역으로부터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영적으로 볼 때, '유월절 양'은 우리의 속죄와 생명 공급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메시야의 예표다. 그리고 7일 동안 이어지는 무교절에는 누룩이 들어 있지 않은 빵인데, 이는 누룩의 신속한 부패성을 지적한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음식에 누룩이 들어감으로 삽시간에 그 음식이 부패해져감을 지적한 것이다. 결국 무교절 때에 무교병을 먹으라고 하심은 사람을 죄로 오염시키고 더럽히는 그 어떤 가르침이나 외식을 허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은 누룩일지라도 그것은 온 덩이를 부풀게 하는 만큼(마13:33, 갈5:9, 고전5:6), 무교절의 기간에는 절대 자기 집안에 누룩을 보이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기간 '7일'이라고 함은 '7'이라는 숫자가 이 땅에서의 완전수인 만큼 이 땅에 사는 모든 날들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유월절 양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유월절의 절기를 지키며 이어서 일평생을 누룩을 제거하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도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여러 번 당부하셨다. 이때 누룩은 빵을 부풀게 하는 물질적인 누룩이 아니라, 사람을 죄와 외식으로 오염시키고 부패시키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훈(가르침)과 외식을 주의하라는 말씀이었다(마16:6,11~12, 눅12:1).
4. 유월절과 무교절의 규례가 가르치고 있는 구원관은 어떤 것인가?
그러므로 유월절과 무교절의 규례를 살펴보면, 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2개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하나는 유월절을 지켜야 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유월절 절기가 양의 피를 바르는 것과 양의 고기를 먹는 것이 핵심 골자라면, 무교절의 절기는 자기 집안에서 누룩을 제거하여 누룩이 결코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핵심 골자다. 왜 그런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약 집안에서 누룩이 보이게 하는 자는 이스라엘로부터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끊어진다'는 말은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추방된다는 말이 될 수도 있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고로, 만약 무교절의 기간 동안에 누룩을 제거하지 못한 자는 결국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 공동체로부터 이탈하여 지옥의 멸망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렇다. 사람이 유월절 양을 믿는 것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이어지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자기의 내부에 여전히 남아 있는 누룩을 날마다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이란 누룩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유월절 양이신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는 이들로 가득하다.
5. 유월절을 지킬 때 양고기를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유월절 규례 중에서 우리가 특별히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유월절 양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대체 누군가 하는 것이다. 첫 번째 유월절은 B.C.1446년 1월 14일에 있었다. 이때는 누구라도 유월절 양의 피를 바른 집안에 있기만 하면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거기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자들도 있을 수 있었다. 곧 셈족 계열의 사람들과 이집트인도 있었다면 그들은 그날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그들이 이방인이었다고 하더라고 그날에 그들은 죽임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해부터 지켜지는 유월절 절기에는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이나 거류민(나그네) 그리고 품꾼들은 유월절 양을 먹을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출13:43~45).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표시인 할례가 유월절 양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 짓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할례'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사실 '할례'는 아브라함과 관련이 깊다. 그는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지만, 자신이 가진 믿음을 인치는 표시로서 할례를 처음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84세 되던 해에 비록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기는 하였지만(창15:6), 그는 죄된 본성으로부터 완전히 탈출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만 자기 아내 사라의 말을 듣고 첩을 들여 육적인 자식인 이스마엘을 낳게 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곁을 13년간 떠나셨고 아브라함의 99세에 다시 찾아오신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할 것을 명령하셨다(창17:10~11). 아브라함더러 다시는 육체로 행하지 않겠노라고 자기의 살에 표시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할례는 일종의 회개의 도구다. 다시는 육체의 본성을 따라 행하지 않겠다는 표시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할례는 무할례시에 받았던 칭의를 확고히 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고(롬4:11~12), 또한 육적인 몸을 벗는 행위라고도 말했다(골2:11). 그러므로 이미 예수께서 골고다에서 피 흘려 죽으신 후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유월절이 다가오면 회개를 하면서 말씀을 섭취해야 하는 것이다. 당시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양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마음에 할례를 받아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양고기인 말씀을 먹을 수가 없다고 하신 것이다. 말씀을 들어도 그것이 자신의 영혼을 위한 생명의 양식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6. 하나님은 장자와 짐승의 초태생 대신에 왜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구별하여 바치라고 하셨는가?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초태생을 구별하여 거룩히 바치라고 명령하셨다(출13:11~12). 이는 하나님께서 애굽인의 장자와 짐승의 첫것을 죽이시는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들 중의 장자만큼은 죽지 않고 살아남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장자와 초태생이 죽어가는 대신에 어린 양이 대신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집의 장자를 다 하나님께 바칠 수 없었기에,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레위 지파(레위인들)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령하셨다(민3:12~13). 그래서 그 후부터는 이스라엘 12지파 사람들 중에 오직 레위 지파만이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구별되어 하나님께 거룩히 쓰임받게 된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께서 유월절 양이 되어 죽으실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값을 주고 모든 죄인들을 사셨다는 것이다(고전6:20).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피의 희생을 통해서 믿는 자들을 사셨기 때문에, 이제 성도들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고전6:19b~20)"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주님의 소유라고 생각하여 주님께 온전히 드리고 있는가 아니면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주님의 피값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진작 마귀의 소유가 되어서 지옥 형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로 오셔서 자신의 핏값을 내주고 우리를 사셨다. 그러니 이제 우리의 몸은 더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며 주님의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사람만이 될 수 있다(롬12:1). 그러므로 앞으로의 시간은 내 시간은 없으며, 내가 가진 재산도 사실은 내 재산이 아니다. 다 주님의 시간이며, 주님의 재산인 것이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물질의 십일조를 거룩히 바치는 행위요, 주일성수는 시간의 십일조를 바치는 거룩한 십일조인 셈이다. 그런데 이것도 아깝다고 하기도 하고, 싫다고 말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이런 자들은 자기가 어떻게 되어서 애굽에서 탈출하게 되었는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아니 그 일을 모른다고 입을 씻어버릴 사람들이다.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된다. 믿는 성도의 시간과 물질의 주권은 우리 주님에게 있다. 그분이 쓰시기에 합당한 삶으로 드려야 한다. 우리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타고 오셨던 나귀가 되어야 한다. 주님이 필요하시다고 하면 기꺼이 자신을 내어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 자가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아는 자요, 그런 자가 주님의 은총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인 것이다.
7. 나오며
오늘은 믿는 이들은 예수님을 유월절 양으로만 안다. 더욱이 유월절 양이라고 해도 유월절 양의 피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이 유월절 양으로 오시어 우리 대신 죽으셨기에, 더이상 받을 심판이 우리에게는 없으며, 그러니 죽는다면 자신은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바램일 뿐이다. 유월절 양은 피만이 흘려주신 것이라, 자신의 몸을 양식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유월절 양의 피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지만, 양의 고기는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모든 사람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도착하려면, 유월절을 지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어서 무교병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다. 유월절은 하루만 지키면 되는 절기지만, 무교절은 7일 동안 지켜야 할 절기이다. 그런데 무교절의 첫날도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고 했으며, 마지막 날도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둘 다 절기의 안식일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돌아가시던 해에는 유월절의 안식일, 무교절의 안식일, 제7일의 안식일이 차례대로 오는 해였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3일3야를 캄캄한 음부 속에서 지내셨다. 그리고 온전한 3일 후에 부활하셨고, 그리고 40일 만에 승천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수님을 유월절 양으로 믿어 죄사함을 받고 생명을 받았더라도, 7일 동안의 무교병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만약 이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지 않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것은 유월절 양이 예수님인 것을 믿는 자라도 자기 내면의 누룩들 곧 구원에서 빗나가게 하는 잘못된 가르침들이나 외식들을 버려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도 버림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월절 양고기를 먹을 수 있는 자는 반드시 할례를 받은 자라고 말씀하셨다. 할례를 받지 못했다면 할례를 받은 후에 먹으라고 하셨다. 이것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던 자라도 그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할례와 같은 개인적인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믿는 자라도 날마다 회개해야 요단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러므로 죽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그것이 살 길이다.
2021년 09월 22일(수)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