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새벽기도회] 2022-07-01(금)
제목: 이사야강해(04) 메시야 그는 이새의 싹인가 아니면 이새의 뿌리인가?(1)(사11:1~9,9:6~7)_2022-07-01(금)
https://youtu.be/1MfP5jGewYs
1. 들어가며
오늘은 이사야강해 4번째 시간이다. 이사야서는 가장 많은 메시야의 예언을 담고 있는 예언서이다. 이사야선지자는 적어도 메시야에 관해 27번 이상을 예언했다. 이사야는 남유다의 10대왕 웃시야(아사랴)와 11대왕 요담, 12대왕 아하스, 13대왕 히스기야왕 때에, 약 60년간 남유다를 향해 그들에 대해 심판과 회복을 예언했던 선지자이다.
특히 이사야의 예언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들 중 거의 대부분의 영역을 다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메시야의 신분과 출생, 메시야의 공생애, 메시야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 메시야의 승천과 재림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을 그가 예언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지지난시간부터 이사야서에 나오는 메시야의 예언에 관해 살펴보고 있다. 첫번째 시간에는 사9장을 중심으로 '메시야의 신분'에 관해 살펴보았다(https://youtu.be/U9FZ611XQxc). 그때에 우리는 메시야란 사람으로 오시지만 그분은 하나님 자신인 것을 살펴보았다. 그분은 아기이자 아들로 오실 분이지만 그분은 기묘한 보혜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인 것을 살펴보았다(사9:6). 그리고 지난 주 두번째 시간에는 사7장을 중심으로 '메시야의 잉태와 출생'의 신비에 관해 살펴보았다(https://youtu.be/149KRZ8Y4DU). 그것은 앞으로 오실 메시야는 처녀에게 잉태되어 출생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메시야의 이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 곧 임마누엘이라는 사실도 살펴보았다(사7:14, 마1:23). 오늘 이 시간에는 이사야서강해 4번째 시간으로서, 이사야 11장을 중심으로 '메시야의 혈통'에 관한 말씀을 다룰 것이다. 특히 메시야는 과연 어떤 혈통에서 오실 것인지 그리고 메시야 자체는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더불어 예수께서 나사렛사람(마2:23)이라고 불린 이유와 다윗 자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 이유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 지팡이와 막대기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메시야의 혙통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은 무엇인가?
먼저, 메시야의 혈통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을 살펴보자.
사11:1 이새의 줄기(그루터기, 밑동)에서 한 싹(가지=호테르)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싹=네째르)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사야는 다윗이 아닌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고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와서 결실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여기에는 '싹'과 '가지'는 메시야를 지칭하는 표현들이다. 그런데 우리말 성경은 사실 이들 단어의 번역이 거꾸로 되어 있다. 나무의 몸통 줄기에서 나오는 것은 '가지'인데, '싹'이라고 번역했고, 뿌리에서 나오는 것은 '싹'인데, '가지'라고 번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히브리어 원문대로 사용하고자 한다. 곧 이새의 줄기에서 '호테르'가 나오고, 이새의 뿌리에서 '네째르'가 나온다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것은 이사야선지자는 왜 메시야를 '다윗의 후손'이자 "다윗의 뿌리'라고 표현하지 않고, '이새의 후손과 뿌리'라고 표현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앞으로 보게될 메시야는 비천하고 몰락한 집안과 가문에서 나올 것임을 말해준다. 여기서 특별히 '이새'는 베들레헴 촌구석에서 양을 치는 목자라는 비천한 신분을 의미하며, 다윗은 위대한 성군이라는 신분을 의미한다. 그렇다. 이사야는 메시야가 화려한 혈통이 있을 때에 나올 것이 아니라고 예언했다. 그 혈통이 유명무실할 때에 나올 것임을 예언했던 것이다. 사실, 예수님의 법적인 아버지는 요셉이다. 그런데 그 윗대를 살펴보면, 위로 14세대 동안에는 정말 유명무실한 사람들 투성이다. 예수님의 부친 요셉은 사실 다윗왕가를 잇는 적통임에는 분명하지만, 어느새 자신의 고향 베들레헴을 떠나서, 낮고 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인 갈릴리의 나사렛동네에서 사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목수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말할 때, 무슨 목수의 아들이 메시야가 될 수 있느냐면서 비꼬아 말을 하였다. 그런데 메시야는 정말 그때에 그러한 신분을 가지고서 태어나게 된다.
3. 메시야는 이새와 다윗의 후손인가 창조주인가?
그리고 메시야가 과연 이새의 아들인 다윗의 자손인가 아니면 다윗의 뿌리(창조주)인가 하는 점을 살펴보자. 구약성경에서 메시야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삼하7:12~14, 대상17:11, 렘33:15). 고로 예수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다. 다윗의 28대손으로 말이다(마1:20, 눅1:27,31~34, 2:4,11, 롬1:3)). 그래서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사람들은 그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다. 두 소경이 그렇게 외쳤고(마20:30), 수로보니게 여인이 그렇게 부르짖었으며(마15:22),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예수님을 향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마21:9)"라고 외쳤다. 그렇다. 예수님은 분명 다윗의 자손으로서 그의 직계후손으로 태어나셨다.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요셉의 피를 물려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요셉 뿐만 아니라 마리아 자신도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마리아는 다윗의 아들 중에서 '나단'이라는 아들의 후손이며, 요셉은 '솔로몬'이라는 아들의 후손이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의 아버지 '헬리'는 아들이 없고 두 딸(마리아와 살로메)만 낳았기에, 사위로서 약혼했던 요셉은 율법의 규정에 따라 헬리의 법적인 아들이 되어버린다(눅3:23). 다시 말해, 요셉은 솔로몬계열의 다윗의 후손이었고, 마리아는 나단계열의 다윗의 후손이었는데, 요셉과 마리아가 결혼함에 따라 두 가문이 하나의 가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요셉과 마리아는 다윗의 법적인 후손임과 동시에 혈통적인 후손이 맞다.
5.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신 다윗의 뿌리(창조주)이신 메시야
그렇다면 예수님은 누구신가? 다윗의 후손인가 아니면 다윗의 주님이자 뿌리인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여러 종류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덤벼들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마22:42)" 그러자 즉시 그들은 "다윗의 자손(마22:42)'이라고 대답했다. 그때 주님께서는 다윗이 쓴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하여, 다윗의 환상 중에 그리스도를 "내 주님"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한 마디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고 그날부터 감히 묻는 자도 없었다(마22:43~46). 그렇다. 예수님은 육적인 혈통으로 볼 때에는 다윗의 후손(씨)이지만, 예수님의 신성에 있어서는 다윗이 주님으로 불렀던 메시야이시며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부활하신지 60년 뒤에 쓰여진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다윗의 뿌리"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계5:5, 22:16). 한 번은 24장로 중의 한 명이 그렇게 고백했고(계5:5), 한 번은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자신을 그렇게 말씀하셨다(계2216). 그렇다. 예수께서는 육체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이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다윗의 뿌리인 것이다. 즉 예수님은 다윗의 근본이요, 다윗을 지으신 이요, 다윗을 창조하신 이인 것이다.
6. 예수님은 왜 나사렛사람이라고 불리웠나?
이제, 이사야 11:1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군지를 정리해보자. 그렇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이새의 잘려진 나무의 밑둥에서 올라온 '호테르'이며, 이새의 뿌리에서 땅을 뚫고 올라온 '네째르'이시다. 이것은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이새의 후손이자 이새의 뿌리인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이상한 말씀을 발견한다. 그것은 마2:23의 말씀이다.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마2:23)" 예수께서 태어나신 곳은 어디인가? 그곳은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이다. 이는 미가5:2의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자라나신 곳은 나사렛 동네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분을 '나사렛예수'라고 불렀다. 이 말은 나사렛 출신의 예수라는 뜻이다(마26:71, 요1:45~46,18:5,7,19:19, 행2:22,24:5). 그래서 철저한 유대종파에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일컬어 "나사렛 이단"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태복음의 저자는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사시게 된 것은 선지자의 말씀에 그가 "나사렛사람이라 칭함을 받으리라"는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기록했다. 그런데 대체 구약성경 어느 예언서에 이러한 예언이 들어 있는 것일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글성경에서는 그 예언을 발견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한글성경은 히브리어를 그대로 음가대로 번역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그 말씀이 바로 사11:1에 나와 있음을 말이다. 그렇다. "나사렛사람"이라는 말은 그가 바로 "네째르"라는 말이었이었다. 곧 예수께서는 다윗의 후손이기는 하지만 진짜 그분은 다윗의 뿌리이자 근원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께는 수많은 갈릴리 동네들 중에서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가셔서 사셨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이사야 11장 1절의 예언을 이루고자 함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7. 목자이신 예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다윗이 시편23에서 노래하던 '주의 지팡이와와 막대기'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다윗이 15세쯤이었을 때 그가 양떼를 치면서 노래했던 가삿말에 이러한 문구가 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이 말씀은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 곧 미래에 아기이자 아들로 오실 예수님을 '지팡이'와' 막대기'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목자가 사용하는 지팡이와 막대기의 재료가 과연 어떤 것인지 아는가? 그것은 1천년이상을 살 수 있는 감람나무의 가지와 싹이다. 감람나무는 거의 죽지 않고 산다. 그래서 그런지 감람나무의 원래 몸통에서 해마다 새로운 가지(호테르)올라온다. 또한 뿌리에서도 땅을 뚫고 싹(네째르)올라온다. 그중에서 네째르는 캐다가 심으면 묘목이 된다. 그런데 줄기에서 올라오는 호테르는 그 가지가 굵고 그 첫마디가 뭉뚱하기 때문에, 목자는 그것을 막대기로 사용한다. 그것은 목자가 양떼를 해치러오는 곰이나 사자를 후려치는 용도로 쓴다. 하지만 뿌리에서 땅을 뚫고 올라오는 네째르는 그 가지가 작고 쭉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대개 지팡이로 사용한다. 지팡이는 양떼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데에 사용한다. 그렇다. 다윗은 일치감치 주님이 자신의 막대기와 지팡이인 것을 고백했던 것이다. 그렇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예수님은 원수마귀를 쳐부수는 막대기이며, 양과 같이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는 우리 인생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지팡이이심을 알라. 그분은 다윗에게만 목자요,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목자요(요10:11, 계7:17),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어주신다(요14:26, 요일5:18).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자. 할렐루야!
8. 나오며
그렇다. 예수님은 작고 보잘 것 없은 이새의 가문에서 나오신 분이시다. 하지만 그분은 이새의 뿌리요 다윗의 뿌리가 되신다. 아니 다윗이 선재하신 예수님을 보고 "나의 주님"이라고 불렀다. 그렇다. 혈통적으로 볼 때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지만, 예수님은 선재하신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을 창조주하신 창조주가 되신다. 다시 말해, 인성으로 볼 때 예수님은 이새와 다윗의 후손이지만, 신성으로 볼 때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이새와 다윗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2022년 07월 01일(금)
정병진목사
1. 들어가며
오늘은 이사야 강해 4번째 시간이다. 이사야서는 가장 많은 메시야의 예언을 담고 있는 예언서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적어도 메시야에 관해 27번 이상을 예언했다. 이사야는 남유다의 10대 왕 웃시야(아사랴)와 11대 왕 요담, 12대 왕 아하스, 13대 왕 히스기야 때에, 약 60년간 남유다를 향해 그들에 대한 심판과 회복을 예언했던 선지자이다.
특히 이사야의 예언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들 중 거의 대부분의 영역을 다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메시야의 신분과 출생, 메시야의 공생애, 메시야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 메시야의 승천과 재림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을 그가 예언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지지난시간부터 이사야서에 나오는 메시야의 예언에 관해 살펴보고 있다. 첫 번째 시간에는 사9장을 중심으로 '메시야의 신분'에 관해 살펴보았다(https://youtu.be/U9FZ611XQxc). 그때에 우리는 메시야란 사람으로 오시지만 그분은 하나님 자신인 것을 살펴보았다. 그분은 아기이자 아들로 오실 분이지만 그분은 기묘한 보혜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인 것을 살펴보았다(사9:6). 그리고 지난주 두 번째 시간에는 사7장을 중심으로 '메시야의 잉태와 출생'의 신비에 관해 살펴보았다(https://youtu.be/149KRZ8Y4DU). 그것은 앞으로 오실 메시야는 처녀에게 잉태되어 출생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메시야의 이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 곧 임마누엘이라는 사실도 살펴보았다(사7:14, 마1:23). 오늘 이 시간에는 이사야서 강해 4번째 시간으로서, 이사야 11장을 중심으로 '메시야의 혈통'에 관한 말씀을 다룰 것이다. 특히 메시야는 과연 어떤 혈통에서 오실 것인지 그리고 메시야 자체는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더불어 예수께서 나사렛 사람(마2:23)이라고 불린 이유와 다윗 자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 이유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 지팡이와 막대기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메시야의 혙통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은 무엇인가?
먼저, 메시야의 혈통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을 살펴보자.
사11:1 이새의 줄기(그루터기, 밑동)에서 한 싹(가지=호테르)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싹=네째르)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사야는 다윗이 아닌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고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와서 결실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여기에는 '싹'과 '가지'는 메시야를 지칭하는 표현들이다. 그런데 우리말 성경은 사실 이들 단어의 번역이 거꾸로 되어 있다. 나무의 몸통 줄기에서 나오는 것은 '가지'인데, '싹'이라고 번역했고, 뿌리에서 나오는 것은 '싹'인데, '가지'라고 번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히브리어 원문대로 사용하고자 한다. 곧 이새의 줄기에서 '호테르'가 나오고, 이새의 뿌리에서 '네째르'가 나온다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것은 이사야 선지자는 왜 메시야를 '다윗의 후손'이자 '다윗의 뿌리'라고 표현하지 않고, '이새의 후손과 뿌리'라고 표현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앞으로 보게 될 메시야는 비천하고 몰락한 집안과 가문에서 나올 것임을 말해 준다. 여기서 특별히 '이새'는 베들레헴 촌구석에서 양을 치는 목자라는 비천한 신분을 의미하며, 다윗은 위대한 성군이라는 신분을 의미한다. 그렇다. 이사야는 메시야가 화려한 혈통이 있을 때에 나올 것이 아니라고 예언했다. 그 혈통이 유명무실할 때에 나올 것임을 예언했던 것이다. 사실, 예수님의 법적인 아버지는 요셉이다. 그런데 그 윗대를 살펴보면, 위로 14세대 동안에는 정말 유명무실한 사람들 투성이다. 예수님의 부친 요셉은 사실 다윗왕가를 잇는 적통임에는 분명하지만, 어느새 자신의 고향 베들레헴을 떠나서, 낮고 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인 갈릴리의 나사렛 동네에서 사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목수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말할 때, 무슨 목수의 아들이 메시야가 될 수 있느냐면서 비꼬아 말을 하였다. 그런데 메시야는 정말 그때에 그러한 신분을 가지고서 태어나게 된다.
3. 메시야는 이새와 다윗의 후손인가 창조주인가?
그리고 메시야가 과연 이새의 아들인 다윗의 자손인가 아니면 다윗의 뿌리(창조주)인가 하는 점을 살펴보자. 구약 성경에서 메시야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삼하7:12~14, 대상17:11, 렘33:15). 고로 예수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다. 다윗의 28대손으로 말이다(마1:20, 눅1:27,31~34, 2:4,11, 롬1:3). 그래서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사람들은 그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다. 두 소경이 그렇게 외쳤고(마20:30), 수로보니게 여인이 그렇게 부르짖었으며(마15:22),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을 향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마21:9)"라고 외쳤다. 그렇다. 예수님은 분명 다윗의 자손으로서 그의 직계 후손으로 태어나셨다.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요셉의 피를 물려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요셉 뿐만 아니라 마리아 자신도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마리아는 다윗의 아들 중에서 '나단'이라는 아들의 후손이며, 요셉은 '솔로몬'이라는 아들의 후손이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의 아버지 '헬리'는 아들이 없고 두 딸(마리아와 살로메)만 낳았기에, 사위로서 약혼했던 요셉은 율법의 규정에 따라 헬리의 법적인 아들이 되어 버린다(눅3:23). 다시 말해, 요셉은 솔로몬 계열의 다윗의 후손이었고, 마리아는 나단 계열의 다윗의 후손이었는데, 요셉과 마리아가 결혼함에 따라 두 가문이 하나의 가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요셉과 마리아는 다윗의 법적인 후손임과 동시에 혈통적인 후손이 맞다.
5.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신 다윗의 뿌리(창조주)이신 메시야
그렇다면 예수님은 누구신가? 다윗의 후손인가 아니면 다윗의 주님이자 뿌리인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여러 종류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덤벼들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마22:42)" 그러자 즉시 그들은 "다윗의 자손(마22:42)"이라고 대답했다. 그때 주님께서는 다윗이 쓴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하여, 다윗의 환상 중에 그리스도를 "내 주님"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한 마디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고 그날부터 감히 묻는 자도 없었다(마22:43~46). 그렇다. 예수님은 육적인 혈통으로 볼 때에는 다윗의 후손(씨)이지만, 예수님의 신성에 있어서는 다윗이 주님으로 불렀던 메시야이시며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부활하신지 60년 뒤에 쓰여진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다윗의 뿌리"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계5:5, 22:16). 한 번은 24장로 중의 한 명이 그렇게 고백했고(계5:5), 한 번은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자신을 그렇게 말씀하셨다(계2216). 그렇다. 예수께서는 육체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이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다윗의 뿌리인 것이다. 즉 예수님은 다윗의 근본이요, 다윗을 지으신 이요, 다윗을 창조하신 이인 것이다.
6. 예수님은 왜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리웠나?
이제, 이사야 11:1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군지를 정리해 보자. 그렇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이새의 잘려진 나무의 밑둥에서 올라온 '호테르'이며, 이새의 뿌리에서 땅을 뚫고 올라온 '네째르'이시다. 이것은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이새의 후손이자 이새의 뿌리인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약 성경에서 이상한 말씀을 발견한다. 그것은 마2:23의 말씀이다.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마2:23)" 예수께서 태어나신 곳은 어디인가? 그곳은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이다. 이는 미5:2의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자라나신 곳은 나사렛 동네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분을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다. 이 말은 나사렛 출신의 예수라는 뜻이다(마26:71, 요1:45~46, 18:5,7, 19:19, 행2:22, 24:5). 그래서 철저한 유대 종파에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일컬어 "나사렛 이단"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태복음의 저자는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사시게 된 것은 선지자의 말씀에 그가 "나사렛 사람이라 칭함을 받으리라"는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기록했다. 그런데 대체 구약 성경 어느 예언서에 이러한 예언이 들어 있는 것일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글 성경에서는 그 예언을 발견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한글 성경은 히브리어를 그대로 음가대로 번역해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그 말씀이 바로 사11:1에 나와 있음을 말이다. 그렇다. "나사렛 사람"이라는 말은 그가 바로 "네째르"라는 말이었다. 곧 예수께서는 다윗의 후손이기는 하지만 진짜 그분은 다윗의 뿌리이자 근원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수많은 갈릴리 동네들 중에서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가셔서 사셨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이사야 11장 1절의 예언을 이루고자 함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7. 목자이신 예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다윗이 시편 23편에서 노래하던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다윗이 15세쯤이었을 때 그가 양떼를 치면서 노래했던 가삿말에 이러한 문구가 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이 말씀은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 곧 미래에 아기이자 아들로 오실 예수님을 '지팡이'와' 막대기'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목자가 사용하는 지팡이와 막대기의 재료가 과연 어떤 것인지 아는가? 그것은 1천 년 이상을 살 수 있는 감람나무의 가지와 싹이다. 감람나무는 거의 죽지 않고 산다. 그래서 그런지 감람나무의 원래 몸통에서 해마다 새로운 가지(호테르)가 올라온다. 또한 뿌리에서도 땅을 뚫고 싹(네째르)이 올라온다. 그중에서 네째르는 캐다가 심으면 묘목이 된다. 그런데 줄기에서 올라오는 호테르는 그 가지가 굵고 그 첫마디가 뭉떵하기 때문에, 목자는 그것을 막대기로 사용한다. 그것은 목자가 양떼를 해치러 오는 곰이나 사자를 후려치는 용도로 쓰인다. 하지만 뿌리에서 땅을 뚫고 올라오는 네째르는 그 가지가 작고 쭉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대개 지팡이로 사용한다. 지팡이는 양떼를 바른길로 인도하는 데에 사용한다. 그렇다. 다윗은 일찌감치 주님이 자신의 막대기와 지팡이인 것을 고백했던 것이다. 그렇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예수님은 원수 마귀를 쳐부수는 막대기이며, 양과 같이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는 우리 인생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지팡이이심을 알라. 그분은 다윗에게만 목자요,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목자요(요10:11, 계7:17),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어 주신다(요14:26, 요일5:18).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리자. 할렐루야!
8. 나오며
그렇다. 예수님은 작고 보잘 것 없는 이새의 가문에서 나오신 분이시다. 하지만 그분은 이새의 뿌리요 다윗의 뿌리가 되신다. 아니 다윗이 선재하신 예수님을 보고 "나의 주님"이라고 불렀다. 그렇다. 혈통적으로 볼 때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지만, 예수님은 선재하신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은 창조주가 되신다. 다시 말해, 인성으로 볼 때 예수님은 이새와 다윗의 후손이지만, 신성으로 볼 때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이새와 다윗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2022년 07월 01일(금)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