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5(월) 온라인새벽기도회
제목: 창세기강해(10) 엘로힘과 여호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출6:2~8)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prHMlw5VD2g [혹은 https://tv.naver.com/v/18325116 ]
1.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상용되고 있는 '엘로힘'과 '여호와'는 어떤 단어인가?
창세기 1장 1절에서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엘로힘'이라고 하는 용어(대명사)가 나오지만, 창세기 4장 1절부터는 '여호와'라는 용어(이름)가 나온다. 그렇다면, 둘은 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이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어떤 속성 부분을 강조하기 위하여 다르게 사용하는 용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의 공통점은 둘 다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라는 사실이다. 사실 이것들 중에서 '엘로힘'이라는 용어는 일반 대명사로서, 복수의 형태로 존재하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왜냐하면 한글 성경에서 '하나님'으로 쓰이고 있는 용어에는 '엘로힘' 외에도 '엘', '엘로하' 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호와'는 하나님에 대한 고유 명사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킨다. 물론 이 단어는 단수이다.
2. 엘로힘(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엘로힘)'의 이름은 무엇일까? 어떤 분은 하나님에게도 이름이 있느냐고 묻는 이가 있는데 있다. 그것은 곧 '여호와'라는 용어이다. 물론 우리말 개역 성경에서 그렇게 쓰고 있는 것일 뿐, 실제는 하나님의 이름은 '야훼(야웨)'라는 용어가 훨씬 더 실제에 가까운 발음이라고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구약 성경에 보면, '여호와'에 대한 단축형으로서 '야[흐]'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할렐루야'는 '찬양하다'는 뜻의 '할랄'에다가, '루'라는 2인칭의 복수 접두사이며, '야[흐]'는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라는 용어의 단축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 이름 중에서도 '히스기야, 예레미야' 등에서 '아[흐]'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들이 다 '여호와'를 지칭하는 단축 용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역 성경에서 '여호와'라는 단어를 번역할 때에 '야훼(야웨)'라고 번역했어야 더 좋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여호와'와 '야훼(야웨)'라는 발음 중에서 '여호와'를 선택해서 사용해 왔기에 우리도 그렇게 쓰고 있다.
3. 하나님의 진짜 이름은 무엇인가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진짜 이름은 '야훼(야웨)'가 맞을까? 아니면 다른 이름이 또 있나? 그것은 '야훼(야웨)'라는 용어가 하나님의 이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사42:8, 시83:18). 그런데 놀랍게도 출애굽기 3:14에서는 '야훼(야웨)'라는 하나님의 이름 이외에 '에흐예'(히브리어 맛소라 사본 즉 히브리어 자음에다가 모음을 붙인 버전)라는 이름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에흐예'라는 용어도 사실은 '아하야[흐]'로 발음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짜 이름은 '야훼(야웨)'이거나, '아하야[흐]'일 것이다. 그리고 '야훼'라는 이름은 지금까지 그것이 무슨 뜻을 지녔는지를 모르지만, '아하야[흐](혹은 '에흐예')'는 그 뜻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밝혀져 있다. 그것은 '나는 ~이다' 내지는 '나는 알렙(알파)이다'이거나, '나는 지금 존재하는(존재케 하는)이이다'이다. 고로 우리말 개역 성경에서는 이것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번역하고 있고, 표준새번역에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나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4. 엘로힘과 여호와는 어떻게 차이가 있는가?
그럼,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엘로힘'과 '여호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 용어가 쓰일 때의 강조점에서 차이가 난다. 먼저 '엘로힘'은 창세기 1:1에 나오는 용어로서, 그분이 창조주라는 의미로서 처음으로 나오는데, 이 용어는 한 마디로 그분의 전능성(못 하실 일이 없고, 못 아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을 매우 강조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출6:2~3). 그래서 이 용어는 하나님에 대한 초월성과 전능성이 강조된 객관적인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호와'는 그 뜻이 '아하야[흐]'이므로 그분이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분이자, 그분은 '알렙 곧 시작하는 이'라는 뜻이지만, 특별히 이 용어가 사용된 곳을 보면, 대부분 그분이 어떤 개인이나 민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것을 성취하시는 분으로 나타날 때 사용이 된다(출6:4~8). 그러므로 '여호와'라는 용어는 하나님의 이름으로서, 그분이 시작하시고 홀로 자존하시는 분을 뜻하는 용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대상과 약속을 맺으시거나 혹은 그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으로 사용할 때에 나타나는 용어인 것을 알 수 있다. 곧 여호와는 약속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늘 자신을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약속하셨고 이삭에게 그리고 야곱에게도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약속의 궁극적인 성취자로서 신약 시대에 예수께서 오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로 구약의 '아하야[흐]'가 '여호와'로 표현된 것이라면, 신약의 '아하야[흐]'는 '예수'로 표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대체적으로 구약의 여호와가 '약속하신 이'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면, 신약의 예수님은 '약속을 성취하신 이'로 강조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5. 우리는 어떻게 할 때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먼저, 여호와(신약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을 붙들어야 한다. 곧 언약을 맺으시고 성취하셨던 하나님이신 여호와요 예수님을 붙들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어떠한 약속을 하셨는지를 꼭 붙드는 것이 관건이다. 왜냐하면 그분의 이름('아하야[흐]')은 한 번 약속하셨으면 그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신다의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어떤 것들을 약속하셨는지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둘째는, 그분의 전능성을 믿어야 한다. 이는 우리가 그분을 '엘로힘'으로 믿어야 한다는 뜻이다. 고로 우리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여호와의 약속을 찾았다면, 이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요한일서 5:18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예수)가 그(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거듭난 성도)를 지키시매 악한 자(마귀)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는 약속의 말씀을 들었다면, 우리는 즉시 그 말씀을 이루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또한 믿어야 한다. 그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악한 자 마귀는 결단코 나를 건드릴 수 없으며, 어거하지 못한다는 것을 믿은 후에 담대히 그들에게 떠나갈 것을 명령해야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 믿음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영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러면 그 시간 속에서는 물리적인 법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지대로 모든 것이 움직이고 바뀌게 된다.
2022년 07월 25일(월)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