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개의 바빌론_알렉산더 히슬롭
알렉산더 히슬롭의 "두개의 바빌론"
THE TWO BABYLONS OR THE PAPAL WORSHIP
ALEXANDER HISLOP
제2부 경배의 대상
제3부 명절과 절기
제4부 교리와 계율
제5부 의식과 의례
제6부 종교적 성직계급
제7부 역사적, 예언적으로 살펴본 두 바빌론의 발전과정
제1부 두 체계가 갖고 있는 뚜렷한 특징
두 체계가 갖고 있는 뚜렷한 특징
교황이 이끌고 있는 교회가 바빌론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본 저자는 우선적으로 오늘날 로마교회와 옛 바빌론 종교가 공히 “신비" (MYSTERY)로운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손에 금잔을 들고 있는 여인" 이라는 표어 아래 본문에(계 17:4) 묘사되어 있는 도덕적 부패와 우상 숭배가 가득한 거대한 조직은 “그녀의 행음의 포도주로 모든 민족들을 취하도 록 만든” (계 17:2; 18:3) 조직으로 성경에서 “신비, 큰 바빌론이라” (계 17:5) 고 불리고 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7절에서 바울이 “불법의 신비"(the MYS TERY of iniquity)라고 묘사한 자는 다름 아닌 로마교회 안에 그 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정직한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이 관계에 대해 쉽게 인정할 것이 다. 위대한 검사였던 매튜 해일(Matthew Hale) 경은 이와 같은 사실을 다음과 같은 식으로 말하였다. 그 불법의 두목을 잡기 위해 『휴 앤 크라이(Hue and cry ; 오늘날의 지명수배자 명단과 같은 역할을 했던 옛 범죄공보지 - 역자 주)에 범인의 인상착의를 성경이 묘사한대로 싣는다면 그 어떤 경찰관이라도 로마 주교(the Bishop of Rome) 즉 교황을 체포하고자 할 것이다. 결국 여기에 묘사된 제도 역시 “신비”로서 특징져진다면 두 가지 모두 같은 제도에 대한 언급이라는 사실을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신약(새유언)에 등장한 바빌론에 사용된 언 어적 표현은 모두, 독자들도 인정하시겠지만 우리를 옛 바빌론 세계로 이끌어 간다. 계시록에 등장하는 여인이 손에 잔을 들고 그것으로 민족들을 취하게 하듯이, 옛 바빌론도 이와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바빌론 제국이 그 영광의 절정에 달해 있던 그 시절 주님께서는 그녀의 악행을 예레미야 대언자를 통해 이렇게 고발하셨다. 바빌론은 주님의 손안에 있는 금잔이 되어, 온 땅을 취하 게 하였도다. 민족들이 그녀의 포도주에 취하였고, 그리하여 민족들이 미쳤도다”(렘 51:7),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구약 (옛유언)의 바빌론과 신약(새유언)의 바빌론에 대해 정확히 똑같은 표현을 사용하셨을까?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것은 다름 아닌 예표(豫標, type)와 대형(對型, antitype)의 관계라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계시록의 바빌론이 “신비” 라는 이름으로 특징져지듯이 옛 바빌론 체 계의 뚜렷한 특징은 바로 그것이 "칼데아(Chaldea) 지방의 신비들을 갖추고 있으며 그것들이 이 체계의 본질적인 핵심이라는 사실이다. 이 신비들 (Mysteries)에 대해, 히브리 대언자 예레미야는 비록 상징적인 표현이기는 하 지만, 바빌론을 “금잔 (golden cup)으로 묘사함으로써, 분명히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살베르떼(Salverte)에 따르면 이 신비종교에 회원으로 가입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신비로운 음료를 반드시 마셔야 한다고 한다.Eusébe Salvertè, Des Sciences Occultès, p. 259. 이 “신비로운 음료”는 “포도주, 꿀, 물, 그리고 밀가루” 로 구성되어 있었다.Gebelin, Monde Primitif, vol. iv. p. 319. 공개적으로 사용된 재료와 공개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다른 재료들의 성격으로 보아(그러 나 분명히 사용되기는 했음.Salvert, pp. 258, 259를 볼 것. ) 이 음료는 중독성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이 신비종교에 가입하고자 하는 신청자는 약물투여로 이해력이 흐려지고 감정이 고조된 이후에 그들이 보고 들어야만 할 내용을 배우도록 허락받았던 것이다. 만약 이 옛 “신비종교들” (Mysteries)의 목적과 의도가 무엇인지 조사해 본다면 로마교회로 구체화되어 나타난 “불법의 신비"와 이 신비종교 사이에는 놀랄만한 유사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주요목표는 그 신입회원을 개별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비밀의 인 (印)과 맹세의 구속' 아래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단 번에 공개적으로 공표하기에는 어려운 것들도 이런 식으로 하면 말려들어가게 되는 법이다. 이 비밀종교가 형성된 시 기를 보자면 그 사실이 더욱 분명해진다. 칼데아인의 신비종교의 유래는 홍수 가 있은지 수 세기가 경과하였을 때 살았던 세미라미스(Semiramis)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여자는 그녀 자신의 부패하고 타락한 사고방식을 가지 고 당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쳤다고 알려져 있다. Ammianus Marcellinus, lib, xiv. cap.6, p. ad, 26 and lib, xxiii. cap.6, pp. 371, 374를 저스 티누스(Justinus)의 Historia, lib. i. cap. 1, p. 615, 그리고 유세비우스(Eusebius)의 Chronicle, vol. i. pp. 40, 70, &c.와 비교할 것. 유세비우스는 아브라함이 살던 당시에는 니누스와 세미라미스가 통치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vol. i. p. 41, 그리고 vol. ii. p. 65를 볼 것. 세미라미스의 시대에 대해서는 다음 페이지에 나와 있는 주를 볼 것. 그 아름답고 동시에 파 렴치한 바빌론의 여왕은 그녀 자신이 억제할 수 없는 욕망과 정욕의 전형이었 을 뿐 아니라 그녀가 그 형성에 있어 가장 앞장섰던 신비종교에 있어서도 레아 (Rhea)로서 숭앙 받았다. Chronicon Paschale, vol. i. p. 65. 이 레아는 신들의 위대한 “어머니"로서Hesiod, Theogonia, v. 453, p. 36. 사악한 종교의식으로 인해 비너스(모든 불결의 어미)로 알려졌으며, 그 녀가 다스렸던 성읍을 우상숭 배와 전문적인 창녀짓의 본부 로 만듦으로써 모든 나라들 가운데서 악명을 얻도록 한 장본 인이다. Herodotus. Historia, lib. i. cap. 199, p. 92: Quintus Curtis, v. 1. 따라서 이 칼데아 여 , 왕은 손에 금잔을 들고 이마에
손에 잔을 들고 있는 여인 ,(바빌론) (KITTO'S Biblical Cyclopædia)
여인이 들고 있는 잔의 모양은 앗시리아 왕들이 손에 들고 있던 잔과 동일하다. 잔을 드는 방식도 동 일하다. - Vaux, pp. 243, 284를 볼 것.
(한 서신에 보면 플리니가 세미라미스의 잔에 대해 한 언급이 지적되어 있다. 이 잔은 승리한 코레스의 손에 떨어졌다. 이 잔이 얼마나 거대했는지 바빌론 사람들과 이들과 교류가 있었던 민족들 사이에서는 이 잔이 매우 유명하게 되었다. 그 무게는 약 15 달란트 즉 1200 파운드 였다. - Plinii, Hist. Nat., lib. xxxii, cap. 15)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고 이름이 새겨진 계시록의 여인" 에 딱 어울리는 원형인 것이다. 손에 잔을 들고 있는 창녀의 모습은 옛 바빌론으 로부터 유래한 우상숭배의 상징들에도 구체화되어 나타나 있으며 그리스에서 도 전시된 바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의 비너스는 바로 이것이 기원이었기 때문 이다. 이 주제에 대한 증거를 원한다면 부록의 주 A를 볼 것. 오늘날 특기할 사실은 로마교회가 이 여인을 자신들의 표상으로 삼았다. 는 사실이다. 로마 교황 레오 12세는 역사상 최초로 1825년 한쪽에는 자신의 형상이 새겨져 있고, 다른 한쪽에는 왼쪽손에 십자가와 오른쪽손에 잔을 들고 있 는 “여인"을 로마교회의 상징으로서 새겨놓은 메달을 주조하였다. 동전 주위에 는 "Sedet super universum" 즉 “온 세상이 그녀의 의자”* Elliott's Horæ, vol. iv. p. 30. “(그림 2) 라고 써 있다. 세미라미스가 살았던 시대는 족장들의 믿음이 사람들의 생각 속에 생생 하게 남아 있던 시절로 셈이 살아 있었던 때였다. 셈의 시대에 관해서는 창 11:10.11을 볼 것. 이에 따르면 셈은 홍수 후 502년을 더 살았고 이는 히브리 방식의 연대기에 따르면 B.C. 1846년까지가 된다. 세미라미스의 남편인 니누스(Ninus)의 시대는 앞에서 언 급한 것처럼 유세비우스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시대와 겹치게 된다(아브라함은 B.C. 1996년에 태어났음.). 그 러나 아브라함의 출생은 니누스의 통치가 끝나기 겨우 9년 전이었다(Syncellus, p. 170. Paris, 1652). . 따라 서 이 견해에 따르면 니누스의 통치는 일반적인 연대기에 따라 약 B.C. 1987년 쯤 끝이 났다. 연대기에 관한 한 높은 권위를 자랑하는 클린턴(Clinton)은 니누스의 통치를 약간 더 앞당기고 있다. Fasti Hellenici (vol. i. p. 263)에 보면 그는 니누스의 시대를 B.C. 2182년으로 보고 있다. 레이어드(Layard)는(그의 Nineveh and its Remains, vol. ji. p. 217에서) 이 견해에 동조한다. 세미라미스는 그녀의 남편 사후 42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Syncell, p. 96). 따라서 니누스의 시대에 관해서는 유세비우스의 견해를 따르든, 클린턴과 레이어드의 견해를 따르든 간에 셈이 니누스와 그의 아내보다 더 오래 살았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물론 이 결론은 히브리 연대기의 정확성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에 관한 결정적인 증거에 대해서는 부록 주 B를 볼 것. 따라서 아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충실한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위해 분투하고 있었던 때라 바 빌론 여왕이 창설한 것과 같은 그러한 종교제도를 단 번에 공개적으로 내세운 다는 것은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욥의 선언으로부터 비록 모세의 율 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족장들이 지녔던 순수한 믿음을 따르는 그 후손들 사이에서는 그 어떤 형태의 우상숭배도 범죄로 여겨졌으며 그런 짓을 행하는 사
메달 뒷면에 새겨진 잔을 든 여인(로마)(Elliott's Hore)
람들은 즉결재판을 받아 처벌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욥은 이렇게 고백 했다. “언제 내가 태양이 빛나거나 달이 명랑하게 거니는 것을 바라보고, 내 마 음이 은밀히 유혹되거나(and 내가 "and" 로 번역한 부분이 권위역본(The Authorized Version)에는 "or" 로 나와 있으나 반드시 그래야 된다고 보지는 않는다(원어를 참조할 것). ), 내 입이 내 손에 입맞추었던가. 이 역시 심판자에게 형벌받을 불법이니 이는 내가 위에 계신 하나님을 부인하였을 것임이 라”(욥 31:26~28). 욥의 시대에 이 정도였다면 신비종교가 세워졌을 초기 시대 의 경우에는 우상숭배에 대한 징벌이 이보다 더 심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 서 우상숭배, 특히 그 핵심이 바빌론 신비종교와 같은 사악한 우상숭배가 세워 지려면 비밀리에 은밀하게우리는 이 점진적인 과정과 어떤 이유가 그 뒤에 숨어 있었는지에 대해 차차 살펴보게 될 것이다. 이렇 게 함으로써 그 신비를 벗겨갈 수 있을 것이다. - 2부를 볼 것. 행해져야만 했을 것이다. 비록 당대의 권력자의 손 에 의해 도입되기는 했지만 아마 상당한 반감을 일으켰을 것이고 아직 타락하 지 않고 있었던 인류에 의한 거센 저항이 따랐을 것이다. 아무튼 만약 이 신비종 교가 그 가증스러운 형태를 지닌 채 단 번에 등장했다면 사람들의 양심에 경종 을 울렸을 것이며 원래 의도했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신비로운 체계의 목적은 모든 인류를 비빌론 제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특수 계급들에게 맹목적이고 절대적으로 굴복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계획을 수행하기 위 해서는 모든 지식, 즉 종교적 · 세속적 지식이 사제(제사장) 계급 Eusébe Salvertè, Des Sciences Occultes, passim. 들에 의해 독 점되어야만 했으며 이들은 이 모든 지식들을 이 종교적 독재체제가 요구하는 모든 필요에 따라 그들이 보기에 적합한 형태로 이 “신비종교” 를 창설한 자들에 게 제공하였다. 이로써 바빌론 종교체제가 퍼진 곳에서는 어디서나 모든 사람 이 사제들에게 발목을 붙들리게 되었던 것이다. 사제들은 모든 종교적 지식을 독점하는 계급이었고 모든 종교적 문서나 상징들을 해석할 수 있는 전통을 유 지한 것도 이들이었다. 이들에 대한 맹목적이고 함묵적인 순복이 없이는 구원 에 대한 지식을 알 수가 없었다. 이와 같은 바빌론 신비종교의 탄생과정과 교황 제도의 초기 역사를 비교해 보면 특히 그 방법과 영(정신)에 있어 둘 사이에는 정확한 일치를 발견할 수 있다! 바빌론의 신비들” 이라는 부패한 종교제도가 시 작된 것이 족장들이 아직도 영적인 빛을 발하고 있었던 때라고 한다면 후일 로 마교회체계로 발전해 나온 저속하고 비성경적인 종교제도가 시작된 것은 이보 다 훨씬 더 밝은 진리의 빛이 비추고 있을 당시였다. 이 부패한 종교제도는 초세 기 교회들이 오순절의 영광스러운 열매들로 꽃피고 있을 무렵, 사도들이 사역 하고 있던 그 시기에 그리고 순교자들이 진리를 위해 그들의 피를 흘리고 있을 때 시작되었다. 바로 이 무렵, 복음의 빛이 발하고 있던 그 당시 성령께서는 바 울을 통해 분명하고 확실한 증언을 하고 계신다. “불법의 신비가 이미 활동하고 있음이라” (살후 2:7). 이 때부터 이미 시작된 이 불법의 신비는 엄청난 배도로 이어져 결국은 때가 되면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주님께서 그 입의 영으로 그를 태워버리실 때까지(살후 2:8) 지속될 것이다. 그러 나 이 제도가 교회 안에 들어올 무렵에는 은밀하고 비밀한 방식으로 “온갖 속임 수와 불의” 가운데 침투하였다. 이 종교는 겉보기에 그럴싸 하지만 실상은 거짓 구실을 근거로 “신비롭게 활동하였다. 결국 이 종교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의 단순함으로부터 사람들을 멀리 딴 곳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이렇 게 비밀스러운 방법이 동원된 것은 옛 바빌론 신비종교가 비밀스럽게 조직된 것과 동일한 이유에서이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이 제도는 안전하게 정착 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참된 교회들이 비록 세속적 권력은 없었어도 뜨 겁고 열심이었기에 경계심을 갖고, 들고 일어나 거짓 종교제도를 그 지지자와 함께 기독교의 울타리 밖으로 내어 쫓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신비스 러운 조직은 공개적으로 단 번에 그 정체를 드러낸 것이 아니고 은밀한 방식을 취했던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한 가지씩 한 가지씩 배도는 진행되었고, 이러 다 보니 타락한 교회는 이 종교 조직을 용납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오늘날 우리 가 목격하고 있는 거대한 조직으로 “발전” 하였다. 이리하여 주님께서 세우신 초 대 교회의 정반대에 교황제도가 우뚝 서 있게 된 것이다. 로마종교의 가장 뚜렷 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점진적인 침투가 “불법의 신비" 의 역사를 통해 서서 히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로마의 카타콤에 있는 묘비들에 의해 분명히 증명될 수 있다(이 묘비들은 로마종교 자체가 잘 보존해 오고 있음.). 이들 카타콤은 로 마 근교의 지하 동굴로 처음 3세기 동안 핍박을 받던 그리스도인들이 경배를 드 리고 장례를 치르던 장소였다. 오늘날에도 무덤 위의 돌판에는 묘비문들이 발 견되곤 한다. 그런데 이 묘비문들이 바로 로마제도의 원칙과 실행(오늘날 잘 알 려져 있음)이 얼마나 왜곡된 것들인가를 오히려 입증해 주는 증거인 것이다. 예 를 하나 들어보도록 하자.
오늘날 성직자의 강제적인 독신주의만큼 교황제도를 현저하게 특징짓는 것도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 묘비문에는 성직자의 독신제도가 없었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여러 무덤 에서 발견된 다음 사항들을 직접 살펴보기 바란다:
[출처] 두 체계가 갖고 있는 뚜렷한 특징|작성자 banpomunzi
제2부 경배의 대상
1. 하나 안에 삼위일체
앞서 살펴본 바빌론의 신비종교 체계와 로마 가톨릭과의 전반적인 일치점은 그것으로 전부인가 아니면 더 세밀한 부분까지도 정확히 일치하는가? 우리가 옛 바빌론의 신비종교를 전반적인 로마 가톨릭 체계에 잘 대비시켜 보게 되면 로마는 바빌론에서 거의 모든 것을 빌어왔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바빌론의 신 비들은 오랫동안 암흑 속에 숨겨져 왔으나, 이제는 그 짙은 어두움이 걷히기 시 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 이집트, 페니키아, 혹은 로마의 문헌에 조금이라 도 관심을 가져 본 사람이라면 이 “신비들 (Mysteries)이 이들 국가들 속에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또한 비록 각 나라의 상황에 따 라 다른 모습을 띨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본질적인 요소들은 모두 동일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앞서 인용한 예레미야 대언 자가 지적했듯이 바빌론이야말로 모든 우상제도가 기원한 그 출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사 실 대다수의 역사가들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에만 근거해서도 동일한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Herodotus, lib. ii. cap. 109, Diogenes Lærtius, pro ëm. p. 22 조나라스(Zonaras)의 저서를 Lib. i. 6, p. 34. 통해 우리는 그가 조사한 옛 저술가들의 증언도 모두 동일한 사실을 증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수학과 천문학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학문들은 칼데아인들로부터 이집트인들에게 전수되었고 이들로부터 다시 그리스인들에게 전수되었다.”
이집트와 그리스의 수학과 천문학이 칼데아로부터 유래했으며 이 두 가지 는 칼데아 지방에서 신성한 학문(sacred science)으로 제사장(사제)에 의해 독점되었다고 하면 그들의 종교 역시 동일한 곳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충분한 증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분센(Bunsen)과 레이어드(Layard) 두 사람 모두 그 들의 연구를 통해 실제적으로 동일한 결과를 내어 놓았다. 분센에 따르면 이집트의 종교제도는 아시아로부터 유래되었으며 “바벨에 세워졌던 고대 제국, 분센의 이집트(Egypt),vol. i. p. 444. 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레이어드 역시 비록 내가 판단하기에는 역사적 사실 그 자체보다는 칼데아 현자들(Chadean Magi)의 종교제도에 대해 더 호 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는 해도 그 역시 바빌론 종교제도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이 원시 숭배사상이 엄청나게 오래 되었다는 데에 관해서는 많은 증거가 있으며 이 제도는 아시리아 평원의 주민들 사이에서 기원하였음이 종교사 및 세속사를 통해 분명히 입증되었다. 이 제도는 “완벽” 하다는 평판을 얻었으며 이집트의 종교체계보다도 앞선 가장 오래된 종교제도라고 믿어진다 (Egyptiis vero antiquiores esse MAGOS Aristoteles auctor est in pri mo de philosophia libro.-Theopompi Frag.). 레이어드의 Nineveh and its Remains, vol. ji. p. 440. 그는 또한 이렇게 덧붙였다: “아시리아의 교리들과 이집트의 교리가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포피리와 클레멘스 같은 사람에 의해 지적된 바 있다.” 그는 또한 바빌론에서 발견되는 원통형의 질그릇과 유적 등에 관해 버크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12궁도의 내용으로 미루어 그리스인들이 그들의 별자리에 대한 개념과 배치에 대한 사상을 칼데아인들로부터 빌려 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또한 그들의 신화도 12궁도와 깊은 관련이 있음은 물론이다.). 님로드(니므롯, Nimrod)가 오리온좌와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Ibid. pp. 439, 440. 우바로프 역시 그의 엘리우시스 제전에 관한 저서에서 동일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는 이집트의 제사장들이 다신교의 핵심 사상을 그리스인들에게 전수해 준 사실을 자랑스럽게 선포하고 있음을 설명한 후에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여러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비록 사상이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을지라도 그 리스에 전달된 바빌론의 신비들은 그리스의 토착종교들과 연합하여 그 특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이 입증된다고 보겠다. 온 세상의 종교적·도덕적 사상 의 요람으로부터 유래된 그 특징들은 그리스신화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모든 사실들과 이 모든 다양한 증언들은 과학과 문명의 중심지가 동방이었음을 입증한다. 우바로프(Ouvaroff)의 Eleusinian Mysteries, sect. ii. p. 20. 이집트와 그리스의 종교가 바빌론으로부터 유래했음이 입증된 것과 같이 우리는 페니키아인들의 종교제도 역시 동일한 기원을 갖고 있음에 대한 증거를 갖고 있다. 마크로비우스(Macrobius)는 페니키아의 우상숭배의 두드러진 특징이 아시리아에서 유래하였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고전작가들의 작품 에서는 아시리아는 바빌론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그는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최초의 비너스(Architic Venus)에 대한 숭배는 오늘날 페니키아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듯이 과거에는 아시리아인들 사이에서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 Saturnalia, lib. i. cap. 21, p. 79. 이제 우리는 옛 바빌론제도와 교황이 주도하는 로마가 동일한 것임을 입증하기 위해서 교황제도가 이들 바빌론 신비들 안에 자리 잡은 제도들과 얼마만큼 일치하고 있는가를 밝혀내야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조사를 하는 데 있어서는 극복해야 할 어려운 문제들이 있는데 이는 지질학에 있어서 지표의 가장 깊고 밑에 있는 지층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종교 연구에 있어서도 어떤 한 나라 안에서 그 나라 안에 어떤 제도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설명 해 주는 자료를 다 발견하기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질학자들이 한 곳에서는 화석을 또 한 곳에서는 융기를 조사하여 그 자료를 그 밖의 다른 지표면에서 얻은 자료와 비교하여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전 지표면 위의 여러 지층의 배열순서와 일반적인 내용들을 결정할 수 있는 것처럼 칼데아 신비들의 탐구에 있어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어느 한 나라에는 없는 사실이 다른 나라에서 발견되어 자료가 보충될 수 있으며 여러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일들이 어느 한 지역에는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많은 것들의 성격을 상당히 폭넓게 결정짓게 된다. 그러면 이집트, 그리스, 페니키아, 그리고 로마의 옛 신비들이 통일성을 지니고 있으며 바빌론 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의 연구를 진행시키는 단서로 하여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바빌론과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바빌론의 교리와 실행을 하나하나 비교해 보도록 하자.
우선 우리는 바빌론(구약의 바빌론)과 로마(신약의 바빌론)에 있어 경배의 대상이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만 한다. 옛 바빌론 사람들은 오늘날 의 로마 가톨릭처럼 신격의 유일성(unity)을 말씀” 으로 인정하였다. 그들은 수없이 많은 작은 신적 존재들을 인간의 삶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끼치는 신들 로 숭배하고 있던 가운데서도 만물 위에 으뜸가는 무한하고 전능한 한 분 창조 자 Jamblichus, sect. viii, chap. ii. Macrobius, Saturnalia, p. 65. 가 있음을 분명히 인정하였다. 이런 사실은 대다수의 다른 민족들에 있어 서도 마찬가지였다. 윌킨슨 박사는 그의 “고대 이집트인들” 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류의 초창기에는 만물을 창조하신 유일하고 전능한 신적 존재에 대한 믿음은 보편적인 것처럼 보인다. 전통 또한 인간에게 동일한 사실 을 가르쳤고 이 전통은 후일 모든 문명국가들에 의해 채택되었다. Wilkinson, vol. iv. p. 176. 말렛 (Mallet)에 따르면 “고트인들의 종교(the Gothic religion)는 우주의 주인인 최고의 신이 존재함을 가르쳤고 만물은 그에게 복종하고 굴복한다”고 한다. (Tacit. de Morib. Germ), 고대 아이슬란드(Iceland)의 신화에서는 이러한
신을 “존재하는 모든 것의 창시자(Author), 영원하고, 살아 있으며, 무시무시한 존재, 숨겨진 것들을 찾아내는 자, 그리고 결코 변하지 않는 존재”라고 불렀다. 아이스랜드인들은 이 존재가 “무한한 능력, 끝없는 지식, 그리고 부패할 수 없는 정의감” Mallet Nothern Antiquities, vol. i. pp. 78, 79. 이라는 속성을 지닌 것으로 생각하였다. 우리는 옛 인도 사람들 역시 동일한 신앙을 지니고 있었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 비록 오늘날의 힌두교는 수백만의 신들을 인정하고 있지만 인도의 경전들을 보면 원래는 이 와 전혀 달랐음을 알 수 있다. 메이져 무어(Major Moor)는 인도인들의 최고신인 브람(Brahm)에 대해 “그 영광이 너무도 위대한 그분은 형상이 없다" (Veda, 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밝히고, 모든 것을 즐겁게 하
며 그로부터 모든 것이 나왔다. 그분은 인간들이 태어나 그로 인해 사는 분이 요 모든 사람이 그분께로 돌아가야 할 그분이다. Moor의 Pantheon, p. 4. (Veda, 베다) 『메뉴 원리」 (Institutes of Menu)라는 책에서는 그는 “생각(mind)만이 감지할 수 있는 자”로서 성격지워졌으며 본질적으로 외부 신체기관이 없으며 보이는 부분이 없고 영원부터 존재하며 .... 모든 존재들은 혼으로 어떤 존재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 Col. Vans Kennedy의 Hindoo Mythology, p. 270. 로 정의 내려져 있다. 이 정의에는 범신론이 존재했었다는 흔적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그 사용된 언어 자체는 한 때 인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지금 보 다 훨씬 더 순수한 신앙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고 하겠다.
옛 인도인들은 신의 자연적인 완전성에 대한 사상을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들은 신의 자애로운 성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그의 자 애는 죄를 지어 잃어버린바 된 세상 사람을 대하는 데서 계시된다. 이런 사실 은 브람이라고 하는 바로 그 이름에 잘 나타나 있으며 이 브람은 그들에 의해 무한하고 영원한 유일한 신에게만 붙여진 이름이다. 이 이름의 의미에 대해서 는 많은 추측이 난무하고 있으나 만족스러운 것은 없다. 그러나 브람에 대한 여러 다른 진술들을 세심히 숙고해 보면 브람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의 람 (Rahm)으로 다이감마(옛 그리스문자의 F, 음가는 (w)가 접두사로 붙여진 것이 며 이런 현상은 히브리어나 칼데아어에서 유래한 산스크리트 어휘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람은 히브리어로 “자비롭거나 혹은 동정심이 많은 분”† Parkhurst Hebrew Lexicon, sub voce, No. V. 이란 뜻이 다. 그러나 람은 또한 자궁 + Ibid. No. II. 혹은 내장,§ Ibid. No. IV. 즉 동정심이 거하는 곳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유일한 최고의 신인 브람에게 이러한 어휘가 적용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브람이 히브리어의 람과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가정에 의하지 않고서는 설명되기 어렵다고 하겠다. 힌두교의 경전 중 한 책에 보면 크리쉬나 (Crishina)라고 하는 신은 최고의 신으로서 그의 최고의 신성이 다음과 같은 어 휘로 묘사되어 있다: “위대한 브람은 나의 자궁이며 그 안에 나는 나의 태아를 놓으며, 이 태아로부터 모든 자연의 번식이 이루어지노라. 위대한 브람은 자연 세계의 모든 자궁들 안에 잉태된 다양한 형태들의 자궁이다.” Moor Pantheon "Crishna," p. 211,
“가장 거룩하고, 가장 높은 신이요, 신성한 존재이며 다른 모든 신들보다 앞선 최고의 신 브람, 태어나지도 않았고, 막강한 주이며 신들 중의 신이며 우주의 주인 브람" Gita, p. 86, apud Moor. 에게 그러한 방식의 표현이 가능했던 것은 “자궁, 이신 람과 “자비로운 분” 이신 람 사이에는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브람은 “에르-라만 (Er - Rahman), 즉 “온전히 자비로운 분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호칭은 터키인들이 최고의 지존 자에게 붙인 이름이다. 또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인도인들은 오늘날 비록 종교적으로 심히 타락한 상태에 있기는 하지만 한 때는 “가장 거룩하고 가장 높으신 신" 은 동시에 “자비의 신” 다시 말해 그는 “의로운 신이며 구세주” 인도인들이 이 주제에 관해 갖고 있던 지식에 대한 더 많은 증거들은 다음 2장의 끝부분을 볼 것. 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브람이라는 이름을 계속해서 해석해 가노라면 인도인들이 창조에 대해 갖고 있는 종교적 지식과 창세기에 기록된 만물의 기원에 대한 내용이 얼마나 정확히 일치하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브라만 계급은 자신들을 다른 모든 계급들이 고개 숙여 받드는 제사장으로서의 반신계급(half divine)으로 높이기 위해 다른 계급들은 브라마(보이지 않는 브람의 가시화된 대리인이요, 나타난 존재로 브람과 동일시 됨)의 팔, 몸 그리고 발에서 나온 반면에 자신들만은 창조의 신의 입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가르쳐 왔다. 그러나 그들의 경전들에는 한 때 이와는 매우 다른 교리가 가르쳐져 왔음 을 입증해 주는 내용들이 많이 들어 있다. 베다의 하나에 보면 브라마에 대한 언급을 할 때 “모든 존재들”은 “그의 입으로부터 창조되었다”Asiatic Researches, vol. vii, p. 294. London, 1807. 라고 분명히 신언되어 있다. 이 문제의 구절은 후일 “신비화 작업이 이루어져 해독이 어려운 것처럼 되어버렸으나 브람의 이름과 본 구절의 내용을 연관시켜 본다면 그 선언의 의미는 브라만 계급의 교만하고 배타적인 주장과는 반대되는 것임은 너 무도 분명하다고 하겠다. 그 선언이 의미하는 바는 인간의 타락이래 인간에게 “긍휼 많고 출애굽기에 나와 있는 원어 역시 람(rahm)과 동일한 단어이며 다만 분사 형태로 나와 있는 것만이 다르다. 은혜로우신 분” (출 34:6)으로 계시되어 오신 분께서는 동시에 전능 하신 분으로 알려지셨는데 그분께서는 태초에 말씀하시자 이루어졌던 분” 이 시며 “명령하시자 만물이 확고히 서게 됐던 분으로 만물을 “그분의 능력의 말 씀”에 의해 지으신 분이셨다. 이제껏 살펴본 바를 염두에 두고 『아시아 리서 치』제7권 293 페이지를 읽어본다면 그 어떤 독자라 할지라도 인도의 이교도 성전들의 상징물들이 되어 버린 모든 가증스러운 것들이 순수한 눈을 가진 자 들에게 그처럼 분노를 자아내는 것은, 그것들이 죄인들에게 그처럼 사랑스러워 야 마땅했던 살아계시고 참되신 한 분 하나님의 신성한 그 이름을 사악하게 왜곡시켜 버렸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브람의 의미가 그러한 반면에, 인도에 있어서의 “신(God)에 대한 보통 명사인 데바(Deva)의 의미는 그와 매우 유사하다. 이 이름은 "빛나다”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 디브(Div)에서 나왔는데 이 디브는 쉬브 (Shiv)의 다른 형태로서 이 쉬브는 역시 “빛나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빛남 혹은 광채 (단 2:31)를 의미하는 칼데아어 지브(Ziv)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것은 대앙숭배 제도가 족장들의 믿음 안에 접붙여지게 되자 신격화된 발광체인 태양의 눈부신 광채가 그 이름 속에 담겨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바”가 훨씬 더 명예스러운 기원에서 나왔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으며 실제로는 원래 “선한 (good)을 의미하는 칼데아어 타브(Thay)로부터 유래되었으며 이 단어는 또한 타브(Thay)로도 합법적으로 발음되었다. 이 테브의 강조형 태는 테바(Theva) 혹은 테보(Thevo)로서 “선” (The good)이란 뜻이다. 이 단어의 첫 글자인 Th는 도날드슨 (Donaldson) "New Cratylus" 라는 책에 나와 있듯이 흔히 Dh로 발음되었다. 따라서 산스크리트어의 데바 (Deva)라는 단어는 “선”을 의미하는 Dheva, 혹은 Theva에서 나온 것이며 또한 이 단어는 다이감마(옛 그 리스 문자 F로 음가는 (w]임) 없이 흔히 쓰이기도 하는데 이 경우는 라틴어로 데우스(Deus)인 “신”을 의미 하는 데오(deo)라는 단어 역시 동일한 어원을 갖고 있다. 또한 그리스어의 테오스(Theos)는 데보스 (Thevos)라는 원어에서 다이감마가 역시 탈락된 형태로 이는 라틴어의 노브스(novus)가 그리스어에서는 네오스(neos)가 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따라서 Theos라는 헬라어 역시 동일한 어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우리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너무도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선한 이는 오직 한 분 곧, 하나님(Theos)뿐 이시니라.” (마 19:17).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한 바빌론인들의 인식이 얼마나 철저하게 우상적이었는지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그것을 장려하는 일을 단호히 정죄하셨다. “스스로 성별하며, 동산들에서 스스로 정결케 하는 자들 은 동산 한 가운데 있는 한 나무 뒤에서 돼지고기와 가증한 것들과 쥐를 먹는 자들이니, 그들이 함께 소멸되리라. 주가 말하노라”(사 66:17).(behind one tree in the midst” 로 되어 있는 A.V. 번역을 본서의 저자는 "after the rites of the Only One" AV에는 “한 나무 뒤에" (behind one tree)로 번역되어 있으나 tree는 이탤릭체로 되어 있어 그것이 원어에는 없음을 보여 준다. 최고의 동양학자인 로우스(Lowth)에 따르면 그 표현은 "after the rites of Achad", 즉 “유일하신 한 분의 의식에 따라”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한다. 물론 "아카드" (Achad)에 관사가 빠져 있으므로 그것을 “유일하신 한 분" (The Only One)으로 번역하는 데에 대한 반론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신명기에서 신격의 유일성을 가장 강조하는 형태는 “아카드" 가 관사 없이 쓰일 때라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분 주시니”에서 "one LORD"는 "only Jehovah" 임) 관 사 문제는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바빌론인들은 신격의 유일성을 가장 강조하고자 할 때 “Adad" 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 Macrobii Saturanlia, lib. I. cap. 23, p. 73. 으로 번역하였고 이 번역에 따르면 바빌론인들이 “유일자” 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가 있다-역자주) 바빌론인들의 한 유일한 신이라고 하는 유일성 안에는 세 인 격이 있었는데 그들은 이 삼위일체의 교리를 상징화시킬 목적으로 삼각형을 사용하였으며 이 사실은 레이어드의 발견에 의해 입증된 바 있다. 이미 잘 알려 져 있다시피 로마교회는 오늘날 동일한 상징을 사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레이어드의 Babylon and Nineveh, p. 605. 이집트인들도 삼각형을 그들의 “세 형태를 지닌 신적 존 재” 의 상징으로 사용하였다. Maurice의 Indian Antiquities, vol. iv. p. 445. London, 1794.
그러나 두 경우 모두에 있어 영원하신 왕께는 그러한 비교는 대단히 모욕적 인 것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사고를 왜곡시킬 목적으로 철저히 짜 맞춘 것에 불과하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그와 같은 상징모형과 “거룩하신 이가 말 하노라.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또한 내가 누구와 동등하게 되겠느냐?” 라고 말씀하신 분 사이에 마치 어떤 유사성이 존재했거나 아니면 존재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려는 것이다.
교황청이 보유하고 있는 교회들 중에는 예를 들면 소위 마드리드의 삼위일 체 수도원이라고 불리는 곳에는 셋-하나인 신(Triune God)의 형상이 몸 하 나에 머리가 셋이 달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 Parkhurst의 Hebrew Lexicon, sub voce, "cherubim”. 최근 더블린에서 발행된 강력한 프로테스탄트 논문인 Dublin Catholic Layman이라는 책자에서 삼위일체에 대한 교황청의 그림에 대한 묘사를 발췌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림의 꼭대기에는 성삼위일체가 묘사되어 있다. 우리는 합당한 경외심을 가지고 이에 대해 말하기를 간구 드린다. 이 그림에는 (아버지)하나님과 (아들)하나님께서 머리가 두 개 달리고 몸은 하나이며 팔은 두 개인 사람으로서 나와 있다. 그 머리 중 하나는 우리 구세주의 일반적인 그림 같이 보이며 또 하나의 머리는 삼각형으로 둘러싸인 노인의 머리이다. 또한 이 형상의 중간 부분에서 비둘기 같은 형상의 성령이 날아오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우리는 이러한 형상을 쳐다본다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고통을 줄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의 정서에 거부감을 일으킬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 Catholic Layman, 1856. 7. 17. 이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신격을 이런 식으로 형상화하는 경향이 또한 이와 유사한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리라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오늘날 New Age 운동이 바로 이런 일에 앞장서고 있음 - 역자주). 바빌론인들도 역시 동일한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 레이어드는 그의 마지막 작품에서 옛 아시리아에서 경배되던f Babylon and Nineveh, p. 160.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에 기록된 히브리어 하나님의 이름의 복수 형태는 신격 안에 여러 인격이 존재한다는 교리를 뒷받침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이는 그 단어의 동일한 복수 형태가 이교도들의 신들에게도 적용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고대 이방국가들의 최고의 신적 존재들이 삼위일체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면 이러한 반론은 그 효용성이 상실되고 만다고 하겠다. 셋-하나인 신적 존재(triune divinity)의 견본을 제시하였다(그림3). 시베리아의 이교도들 사이에서 경배되던 그와 같은 또 다른 신적 존재의 단면 (그림 4)은 성 페테스부르크의 황실 캐비닛에서 발견된 메달에서 얻어낸 것으로 파슨이 쓴 「야펫 (Japhet)i Japhet , p. 184. 이란 책에 나와 있다. 레이어드의 견본에는 세 개의 머리가 떨어져 있는 모습으로 나오지만 이 둘은 모두 다 동일한 위대한 진리를(삼위일체 교리) 상징화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삼위일체에 대한 모든 형상화는 그러한 형상이 널리 유포된 지역의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가 지닌 숭고한 믿음의 신비(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개념을 반드시 그리고 철저히 격하시키는 것은 물론이다. 인도에서는 최고의 신적 존재가 고대 동굴성전들 중의 하나에 비슷한 방식으로 몸 하나에 머리가 셋 달린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에코 테바 트리무르티 (Eko Deva Trimurtti)” 라는 칭호 가 붙어 있다.
이 칭호는 “하나의 신, 세 가지 형태” Col. Kennedy의 Hindoo Mythology, p. 211. 케네디 대령은 “에코데바(Eko Deva)라는 이름을 엘레판타(Elephanta)에 있는 동굴사원에 세워진 세 가지 형태를 지닌 형상에 적용시키는 데에 반대한다. 그에 따르면 그 이름은 오직 지존자인 브람에게만 속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주장은 일관성이 결여된 것으로 이는 그가 그 형상의 첫 번째 인격에 해당되는 브라마(Brahamà)는 지존자인 브람과 동일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는 그 형상에 묘사된 세 명의 신적 존재들인 브라마(Brahamà), 비쉬누(Vishnu), 그리고 세바(Seva) 사이를 구분하는 모든 자에게는 저주가 선포되었음도 인정하고 있다. 라는 뜻이다. 일본에서 는 불교신자들이 산 파오 푸” (San Pao Fuh) Gillespie의 Sinim, p. 60. 라는 이름으로 세 개의 머리를 지닌 동일한 모습의 형상을 그들의 위대한 신적 존재인 부다(부처)로 경배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형상의 숭배는 고대로부터 존재해 왔음은 물론이다. 삼위일체에 대한 사상은 비록 우상숭배로 옷 입긴 했어도 전 세계 모든 민족들 사이에 서 보편적으로 존재해 왔으며 이는 창세기에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는 이 태고 적의 교리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에게 축복을 해 주면서 신성한 이름을 세 번에 걸쳐 불렀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 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요셉을 축복하며 말하기를 나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 앞에서 행하신 하나 님, 나의 평생 동안 오늘까지 나를 양육하신 하나님, 모든 악에서 나를 대속하신 그 천사가 이 아이들을 축복 하시며..." (창 48:15,16) 여기 언급된 천사가 하나님이 아니었다라면 야곱은 결코 그 천사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부를 수 없었을 것 이다. 호세아서 12:3~5절을 보면 “야곱을 대속한 천사"는 분명히 하나님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그는 태에서 자기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자기 힘으로 하나님과 겨루었도다. 과연, 그가 천사와 겨루어 이겼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그가 벧엘에서 천사를 만났고 거기서 그가 우리와 말하였으니 곧 만군의 주 하나님이시 요. 주는 그의 기념이시니라" (호 12:3~5)(삼위일체를 언급하고 있는 “우리" 라는 단어도 주목하기 바란다- 역자주) 가 모든 인류의 가슴 속에 뿌리박고 있었음을 입증해 준다고 하겠다. 우리가 이미 앞서 언급했던 레이어드의 모형에 나오는 상징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것들이 매우 시사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레이어드는 그 모형에 나타난 원은 “끝이 없는 시간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원이 같은 상형문자로서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칼데아 지방에서 원은 제로 (zero)였으며 우리 언어(영어)에서도 우리는 제로(Zero)가 칼데아인들 사이에서 원을 의미했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 제로라는 아라비아 숫자의 이름이 바로 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 고대 사회 최초로 대수, 기하 그리고 우상숭배 제도를 발전시킨 칼데아로부터 이 아라비아 숫자의 이름이 유래한 것이 아니면 달리 어느곳에서부터 유래하였겠는가? 제로는 “둘러싸다” 라는 뜻을 가진 제르(zer)라는 칼데아어에서 기원한 것 이 분명하며 이 단어에서부터 “사로스" (saros)라고 불리우는 바빌론이름(거대한 시간의 사이클을 지칭함)도 유래한 것이 분명하다(분센(Bunsen), vol. i. pp. 711, 712. 칼데아인들에 의해 위대한 “씨”로 여겨졌던 존재 는 육신을 입은 태양으로 간주되었으며(제3부 1장를 볼 것.) 이 태양의 상징이 원이었으므로(분선, vol. i. p. 335. p. 537, NO. 4) 제로와 “원” 그리고 제로와 “씨" 와의 상형문자적인 관계는 쉽게 확정되었던 것이다. 이 제로(0)는 “씨"를 의미했다. 따라서 칼데아 지방의 신비종교 체계에 따르면(그런데 이 종교는 상당 부분이 이중적인 의미에 기초하고 있다)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단지 제로 즉 “원”으로 보이는 것이 이 종교를 시작한 자들에게는 “씨”로서의 제로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자 면 아시리아의 최고의 신적 존재를 상징하는 셋하나의 형상은 성경에 나오는 족장들의 초기신앙이었던 삼위일체 교리를 분명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첫 째로 나이든 노인의 머리가 있고 그 다음에는 제로 즉 원이 있는데 이는 “씨를 의미하며 마지막으로 날개들과 새 혹은 비둘기의 꼬리는 창세기 1장 2절에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퍼덕거리시더라" (fluttered), (A.V.에 moved로 번역된 단어의 원래의미는 flutter임.) 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비둘기가 아주 초기 시대부터 성령의 상징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비록 신성모독 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아버지와 씨 혹은 아들 그리고 성령의 일체성(Unity) 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교적 우상숭배제도에서 셋하나인 신은 원래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표현되었으며 이런 종류의 형상이 산헤립 시대에까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신적 존재에 대해 바빌론인들의 개념 은 아주 초기부터 중요한 변화를 보였다는 증거가 있다. 즉 세 인격은 영원한 아버지, 인간 어머니로 성육신한 신의 영, 그리고 이 성육신의 열매로서의 신성한 아들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출처] 하나 안에 삼위일체|작성자 banpomunzi
2. 어머니와 아이, 그리고 아이의 기원
이론적으로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지만 실제로는 신격의 첫 번째 인격은 사 람들에 의해 간과되었다. 그는 인간사에 직접적인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보이지 않는 위대한 존재(the Great Invisible)이기에, “오직 침묵을 통해 경배를 받아야만 했다. Jamblichus, On the Mysteries, sect, viii. chap. iii. 다시 말해 실제로 그는 전혀 경배의 대상이 되지 못했 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오늘날 인도에서 놀라울 정도로 잘 입증되고 있다. 인도의 경전에 따르면 비록 브라마가 힌두교의 세 신적 존재들 중 첫 번째 이며 인도인들의 종교 역시 그의 이름을 따서 불리고 있지만 그는 결코 경배 의 대상이 아니다. 오늘날 인도 전역 그 어디에도 과거 브라마를 높이기 위해 세워졌던 사원(temple)들 중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Ward의 힌두인 고찰」(View of the Hindus), apud Kennedy's 고대와 현대의 무속신앙에 대한 17,(Researches into Ancient and Modern Mythology), p. 196. 이런 현상은 교황 제도가 완벽하게 발달되어 있는 유럽 대다수의 국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면 교황권이 모든 것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경우, 모 는 여행자들이 공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듯이 영원한 왕이시며 보이지 않으시는 그분에 대한 경배는 거의 사라져 버린 반면 어머니(어미)와 아이가 주요 경배의 대상이 되어 있다(복음이 최근에 들어간 일부 지역은 제외됨.), 옛 바빌론 에서도 어머니와 아이에 대한 동일한 숭배가 널리 유포되었음은 물론이다. 바빌론인들은 그들의 민간종교 속에서 여신인 어머니(성모)와 한 아들을 최고로 경배하였는데 이 아들은 그림과 형상 등에서 자기 어머니의 팔에 안겨 있는 유 아, 혹은 아이로서 묘사되었다(그림 5와 6을 볼 것.). 어머니와 아이에 대한 경배는 바빌론에서부터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이집트에서는 어머니
바빌론의 “어머니와 아이" Kitto's Illustrated Commentary, vol. iv. p. 31.
인도의 “어머니와 아이" Asiatic Researches, vol. vi. p. 393, 인드라니(Indrani), 곧 인디안 신인 인드라(Indra)의 아내이다.
와 아이는 이시스(Isis)와 오시리스(Osiris)라는 이름으로 경배되었으며 오시리스(Osiris)는 대부분 호루스(Horus)로 명명되는 이집트의 아이이다. Bunsen, vol. i. p. 438, 과 pp. 433, 434를 비교해 보라. 인도 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이시(Isi)와 이스와라(Iswara) Kennedy의 Hindoo Mythology, p. 49, 이스와라(Iswara)는 이시(Isi)의 남편임과 동시에 그녀의 품에 있는 유아로 묘사된다. Ibid. p. 338, Note. 라는 이름으로 숭앙받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키벨레(Cybele)와 데오이우스(Deớius), Dymock Classical Dictionary, " 21" (Cybelle) 127 120101" (Deõius) 이교도 로 마서는 포르투나(Fortuna)와 아기 쥬피터(Jupiter-puer), 혹은 소년 쥬피터,키케로(Cicero)의 작품집, De Divinatione, lib, ii, cap. 41, vol. iii. p. 77. 그리고 그리스에서는 위대한 어머니 케레스(Ceres)와 그녀의 품에 안긴 아기,Sophocles, Antigone, v. 1133. 혹은 평화의 여신 이레네(Irene)와 그녀의 팔에 안겨 있는 소년 플루투스 Pausanias, lib. i. Attica, cap. 8. 가 바로 어머니와 아이 숭배의 대상이었다. 심지어는 티벳,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마저 예수회 선교사들이 마돈나* 이탈리아 사람들이 보통 동정녀(the Virgin)를 가리킬 때 쓰는 이름으로 바빌론 여신의 이름 중 하나를 번역한 단어이다. 바빌론에서는 위대한 남신(男神)으로서 바알(Baal), 혹은 벨루스(Belus)가 있었던 것처럼 여신으로서 벨티스(Beltis)라는 이름이 있었다. (Hesychius, Lexicon, p. 188.) 이 이름은 신들의 어머니라는 뜻으로 니느웨(Nineven)에서도 발견 되었다. - (Vaux의 Nineveh and Persepolis, p. 459) 그리고 Eusebii의 Praparatio Evangili, lib. ix. cap. 41 에서는 Nebuchadnezzar(느부갓네살: 개역성경)에게 바치는 헌사가 나왔는데 거기서 “벨루스(Belus)와 벨티스(Beltis)" 의 이름이 각각 바빌론의 위대한 신과 여신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함께 언급된다. 그리스어 "Belus"는 바빌론의 최고신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의심할 여지없이 바알(Baal), 곧 “주(The Lord)" 를 나타낸다. 따라서 벨티스(Beltis)는 여신의 이름으로 “바알티" (Baalti) 에 상응하는데, 영어로는 “My Lady", 라틴어로는 "Mea Domina" 그리고 이탈리아어로는 알려진대로 "Madonna" 로 나타난다. 이것과 연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고대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은 쥬노(Juno)라는 이름(그리스어로는 Hera)이 다름아닌 이 "부인(The Lady)'을 나타내며 로마의 키벨레(Cybele), 혹은 레아(Rhea)도 같은 것(즉, Domiana 또는 The Lady)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 (Ovid, Fasti, lib, iv. v. 340) 나아가 아테네의 그 유명한 미네르바(Minerva)의 이름인 아테나(Athena)도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인 “Adon(The Lord)”은 구두점을 고려할 때 “Athon" 으로 발음된다. 이 이름이 아시아계 그리스인들에게는 “Athan" 이란 형태로 전달되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이 아시아계 그리스인들을 통해 우상숭배의 상당부분이 유럽쪽의 그리스로 건너가게 되었다. 유스타티우스 (Eustathius)는 그의 저서 “the Periergesis of Dionysius(v. 915, apus Bryant, vol. iii. p. 140)" 의 각주 에서 라오디케아 지역에 있는 지역이름들에 대해 언급하며 “아탄(Athan)은 신이다”라고 했다. 아탄(Athan) 의 여성형은 “주(The Lord)”를 의미하는 “아타나(Athana)" 이다. 그런데 “부인(The Lady)"이란 단어도 아테 네 방언으로는 “아테나(Athéna)" 이다. 물론 미네르바는 일반적으로는 한 처녀로 묘사된다. 하지만 우리는 Strabo(Lib, x. cap, 3, p. 405. Paris, 1853)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였다. 즉 크레테에 있는 Hierapytna에서는(뮐러는 Dorians, vol. i. p. 413에서 이 도시의 동전 위에 아테네의 미네르바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그녀가 헬리우스(Helius) 또는 "태양(The Sun)”에 의해 코리반테스(Corybantes)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테네 여신의 원형이 되었던 이집트의 미네르바는 어머니요 (처녀가 아닌), “어머니 여신(Goddess Mother) 혹은 “신들의 어머니(Mother of the Gods)" 로 명명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 Wilkinson, vol. iv. p. 285를 보라. 와 그녀의 아이를 꼭 닮은 우상 들이 로마에서 만큼이나 헌신적인 경배의 대상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중국에서 성모로 여겨지는 싱무(Shing Moo)는 그녀의 팔에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고 동시에 그녀 주위에는 영광스러운 광채가 빛나도록 하였는데, 이는 마치 로마 가톨릭 화가가 그녀를 그리도록 고용된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Crabb's Mythology, p. 150. 구쯔라프(Gutzlaff)는 싱무(Shing Moo)가 가톨릭에서 빌어온 것임에 틀림없다 라고 생각했다. 그가 말한 대로라면 이교풍습과 성경이야기가 혼합되어왔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사실이다. 그러나 J. F. 데이비스경은 중국의 광뚱지역 사람들이 그들의 이교신인 쿠아닌(Kuanyin)과 카톨 릭의 마돈나(유럽사람들에게 친숙한 단어임)사이에서 그런 유사점을 알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같은 대상을 나타내는 이 두 이름은 번갈아가며 쓰인다. - Davis' s China, vol. ii. p. 56. 최초의 예수회 중국 선교사들 은 본국으로 편지를 띄우면서 그 나라의 신성한 책(볼 것도 없이 이교의 책)들에 본국에서 보았던 마돈나와 아이, 이 둘과 너무나도 비슷한 어머니와 아이에 관해 적혀 있다고 말했다. - Le Pere Lafitan, Les Meurs des Sauvages Ameriguains, vol. i. p. 235, Note. 중국의 성모의 이름 중의 하나가 마 추포(Ma Tsoopo)인데 이에 관해서는 부록 주 C를 볼 것.
[출처] 어머니와 아이, 그리고 아이의 기원|작성자 banpomunzi
3. 아이의 어머니
처음에는 어머니가 그녀의 팔에 안겨 있는 아이에게 부여된 신적인 특성들로부터 그녀의 영광을 얻게 되었지만, 결국에는 어머니가 아들의 영광을 완전 히 잠식해 버렸다. 처음에는 어머니에게 신성을 부여하고자 했던 시도는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초기 시대의 인류에게는 언젠가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놀라운 겸손의 방식으로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게 될 것이라는 분명한 약속이 주어졌다. 그리고 인간들은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한 여인이 신성의 지위에까지 올라갈 수 있는 그러한 속성들을 부여받으리라 는 약속은커녕, 그러한 암시조차도 없었다. 따라서 여인이 아이를 팔에 안고 있는 모습으로 최초로 등장했을 때는 그녀를 신격화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주로 신성한 아들을 드높이기 위한 주춧돌로서의 역할을 하였으며, 이는 그의 아들을 온 인류의 찬미의 대상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 다. 물론 그녀는 세상의 유일한 소망인 약속의 씨를 낳은 이브의 딸들의 대표로서 충분한 영예가 주어졌을 것이다. 원래의 의도는 바로 이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우상숭배에서의 분명한 학식이 그러하듯이 감각을 가장 자극하는 그 요소가 모든 사람의 인상에 남는 법이다. 아들의 경우 비록 새롭게 성육 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님로드는 살갗이 더 하얀 매끈한 모습으로 다시 등장 했다고 믿어졌다.) 특별한 매력이 없는 단순한 어린이로서 묘사된 반면 그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모든 화법과 조각기술을 총동원하여 돋보이도록 꾸며졌다. 이로써 그녀는 최고의 미를 갖춘 존재로 부각되었는데 사실 그녀는 그러한 미의 소유자였다. 세미라미스의 아름다움에 관해서는 많은 일화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한 번은 반역을 일으키던 무리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녀 의 모습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다시 그녀에게 굴복하였다고 한다. 또한 사람들은 그녀의 미모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바빌론에다 동상을 세웠는데 그 동상을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이 그녀의 미모에 얼마나 매혹되었는가를 alerius Maximus, lib, ix, cap. 3, leaf 193, p. 2. 발레리우스 막시무스는 세미라미스가 그녀의 팔에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고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세미라미스는 가장 큰 특징이 어머니 여신인 레아로서 신격화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여인의 씨” 즉 조로아스테스(Zoroastes)라는 이름은 인류의 초기 시대 즉 세미라미스 당시까지 그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에(Clericus, De Chaldas, lib. i. sect. i., cap. 3, tom. jii. p. 199), 이 당시 만약 어떤 형상에 대한 경배가 있었다면 이 “여인의 씨" 야말로 그 우상 숭배에 있어 탁월한 지위를 누렸을 것이 분명하다. 전 세계에 걸쳐 어머니와 아이가 그 어떤 형태로든 경배의 대상이었으며 특히 초기의 이집트 유적들에서 이러한 형상들이 발견되고 있는 사실은 이 어머니와 아이의 숭배사상이 인류역사 초기에 이미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하겠다. 따라서 만약 어머니가 단독으로 묘사된 경우 그처럼 매혹적인 자태를 지녔었다면 우리는 그녀가 아이를 팔에 안고 있는 경우에도 역시 동일한 미모를 지닌 모습을 하고 있었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짐작할 수 있도록 묘사되어 있다. 이 바빌론의 여왕은 그리스의 아프로디테(Aphrodité)와 로마의 비너스(Venus)와 일치하는 인물일 뿐 아니라 실제로 고대 세계에서 여인의 미모의 완벽한 형태요, 모든 여성적인 매력을 완벽하게 갖춘 것으로 여겨졌던 바로 그 여신의 역사적인 기원인 인물이었다. 산쿠니아톤(Sanchuniathon)에 따르면 아프로디테 혹은 비너스는 아스타르테 (Astarte) Sanchuniathon, p. 25. 와 동일한 존재이며 아스타르테는 다름아닌 “탑을 세웠거나 혹은 성벽을 둘러쌌던 여자 다시 말해 세미라미스였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Asch-trt. 로부터 나옴. “Astarte라는 이름의 의미에 대하여” 라는 부록을 볼 것. 로마의 비너스는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키프러스(Cyprus)의 비너스였으며 키프러스의 비너스는 역사적으로 바빌론으로부터 유래했음은 이미 입증되어 있다. (제4부 3장을 볼 것.). 이와 같은 상황에서 기대될 수 있는 사건은 당연히 이 미 모의 여인에 대한 숭배였다. 실제로 어머니는 사람들이 가장 숭배하는 대상 바빌론 사람들이 얼마나 광적으로 혹은 특별나게 하늘의 여왕인 그들의 여신을 섬겼는가는 헤로도투스가 lib. i. cap. 199에서 그녀를 달래기 위해 요구되었던 제사방식에 대해 언급할 때 이미 충분히 입증되었다. 고 할 수 있다. 그 곳에 묘사된 그대로의 풍습이 시행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그녀에 대한 경배가 얼마나 크게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고 하겠다. 논누스(Nonnus)는 동일할 여신에 대해 말 하면서 그녀를 “온 세상의 희망" -EATIS Nov KOTIOLO.-(Dionusiaca, lib, xli., in Bryant, vol. iii. p. 226.) 이라고 불렀다. 에베소에서 경배되었던 여신이 바로 이 여신이었다(그림 8과 동일), 성경에는(행 19:27) 은세공업자 데메트리우스(Demetrius)가 이 여신을 “온 아시아와 세상이 숭배하는바 위대한 여신 다 이아나” 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와 같이 바빌론인들의 여왕 신뿐 아니라 고대 세계 전반에 걸쳐 이 여왕신은 압도적으로 경배의 대상이었기에 세미라미스가 그녀의 업적으로 누리던 명성은 그녀의 남편 니누스 즉 님로드의 공적을 이미 압도해 버렸던 것이다. 레아, 키벨레 그리고 비너스의 신원에 대해서는 부록 주 G를 볼 것. 이 되었다. 어린아이가 숭배되어야 했다면 어머니는 더욱더 숭배를 받아야만 했다. 이와 같은 어머니 경배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어머니는 아들과 마찬가지 로 신격화되었으며, 그녀는 뱀의 머리를 부수는 그 임무를 완성할 자로 지정받은 존재로 여겨졌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이 주장, 즉 위대한 아들로서 니누스, 혹은 님로드가 그의 죽을 몸 안에서 이룬 일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입증 할 만한 많은 설득력 있는 근거들을 제시할 수 있다.
로마교회는 뱀의 머리를 부술 자는 여인의 씨라기 보다는 차라리 여인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기록된 성경기록의 문법을 완전히 무시한 채, 여인의 씨가 아닌 여인이 뱀에게 하나님의 저주를 퍼부을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녀는 네 머리를 부술 것이요, 너는 그녀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 그런데 바로 이 사 실이 옛 바빌론 사람들에 의해서도 주장되었다. 이는 그들의 신전에 상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바벨탑, 즉 벨루스의 신전의 윗층에는 - 디오도루스의 말에 따르면 - 바빌론의 위대한 신적 존재들의 형상 세 개가 서 있는데 그것 중 하 나는 뱀의 머리를 쥐고 있는 Diodorus, Bibliotheca, lib. ii. p. 70. 본서 p. 81, 그림 23을 볼 것. 이곳에서는 이집트 여신이 호루스를 흉내 내면서 뱀의 머리를 찌르고 있다. 여인의 형상이다.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도 동일 한 모습이 상징화되어 있다. 바빌론의 위대한 여신 본서, pp. 41, 42를 볼 것.과 동일한 인물인 다이아나는 머리가 잘려나간 Smith Classical Dictionary, p. 320. 뱀 한 마리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세월이 흘러가자 세미라미스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은 희미해져 갔고 그녀 의 아들 출생은 대담하게도 기적적인 것으로 선포되었다. 이로써 그녀는 길러 준 어머니라는 뜻의 "알마 마터" (Alma Mater) 알마(Alma)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구약성경에서 이사야에 의해 사용된 정확한 용어이다. 이곳(사 9:6) 에서 이사야는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기 700년 전에 처녀(Alma)로부터 잉태될 것을 예언하였다. 이 히브리 어 단어인 Alma가(로마적인 의미가 아니고 히브리적인 의미에서) 로마에까지 도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대 답은 바로 에트루리아(Etruria)를 통해서였으며 이 에트루리아는 아시리아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Layard, Nineveh and Babylon, p. 190), 영어의 어머니(mother)란 단어의 기원인 마테르(mater) 자체는 원래 히브리어이다. 이 단어는 “밖으로 끌어내다” 를 뜻하는 히브리어 Msh에서 나온 것으로 이는 이집트어로는 MS, 즉 "낳다" 이며(Bunsen, vol. i. p. 540) 칼데아어 형태로는 Mt가 되는데 여기에서 “어머니"를 뜻 하는 이집트어 Maut가 나왔다. Erh, 혹은 Er은 영어에서와 같이(산스크리트어에서도 동일한 형태가 발견 된다.) “행위자" (doer)를 뜻한다. 다시 말해 Mater 즉 Mother는 “낳는 자”란 뜻이 된다.
알마(Alma), 즉 처녀라는 칭호에 대해서는 이 단어가 처녀가 아닌 비너스에 대해 사용되었다는 이유로 이 단어의 의미에 대해 반론이 제기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반대는 사실이기보다는 그저 그렇게 보일 뿐이 다. 왜냐하면 베스타 종교의식의 직접적인 목격자였던 어거스틴의 증언에 따르면 “로마의 처녀여신”이라고 특별히 처녀임이 강조되었던 테라(Terra)라고 불렸던 베스타 여신의 제전은 불결과 방탕의 여신 비너스의 제 전과 동일하였다고 한다(Aug. De Civitate Dei, lib, ii. cap. 26), 어거스틴은 다른 곳에서도 처녀여신 베스 타(Vesta)는 어떤 사람들에 의해 비너스(Venus)라고 불렸다고 말하고 있다(Ibid, lib. iv. cap. 10).
유럽의 스칸디나비아인들의 옛 신화에서조차 Alma Mater, 즉 처녀 어머니는 원래부터 알려져 있었다는 놀라운 증거가 있다. 이들의 신들 중 하나는 하임달(Heimdal)이라고 불렸는데 그는 땅에서 풀이 자라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양의 등에서 양털이 자라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며(놀라운 인식능력의 소유자) 또한 그의 나팔소리는 온 세상에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울려퍼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아홉 처녀의 아들" 이라는 매우 역설적인(처녀가 아들을?)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 (Mallet, p. 95) 실로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는 오딘(Odin-북유럽의 신화에서 예술, 문화, 전쟁, 사자(死者)의 신)의 종교가 원래 전수되었던 그 언어, 즉 칼데아어로 풀면 당장 해결된다. 칼데아어로 “아홉 처녀의 아들은 벤 알무트-테 샤아(Ben-Almut-Teshaah)인데 이 표현은 발음상 벤 알메트-이샤 (Ben-Almet-Ishaa), 즉 “구원의 동 정녀의 아들과 동일하다. 이 아들은 모든 곳에서 “구세주 씨" (saviour seed)로서 알려졌다. 즉 “제라 호샤" (Zera-hosha)(고대 페르시아어인 젠드어로는 "cra-osha" 임)가 그것인데 이로써 그의 처녀어머니는 “구원 의 처녀" 로서 자신을 내세우게 되었다. 하늘들에서조차 섭리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대적들에게 히브리 대 언자(선지자, prophet) 이사야가 선포하는 위대한 성경적인 진리에 대한 증거를 경청하여 마음에 새기도록 하셨다. 그 증거는 다름아닌 “처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였다. 가장 박식한 천문학자들에 의해 처녀자리(Virgo)로서 인정받고 있는 별자리는 케레스(Ceres)에게 봉헌되었는데(Dr. John Hili, in his Urania, and Mr. A. Jamieson, in his Celestial Atlas, Landseer's Sabean Researches, p. 201을 볼 것.) 이 여신은 바빌론의 위대한 여신과 동일하다. 왜냐하면 케레스는 품에 안겨 있는 아기와 함께 경배를 받았는데 이는 바로 바빌론여신이 경배 받는 방식이었던 것이다(Sophocles, Antigone. v. 1 르고(Virgo)는 원래 바쿠스 즉 담무즈의 어머니인 아시리아의 비너스였다. 그렇다면 비르고는 처녀 어머니인 셈이다. 이사야의 예언은 유다인 포로들에 의해 바빌론으로 전해졌고 이리하여 바빌론 여신에게는 새로운 칭호인 처녀(동정녀) 여신이라는 칭호가 부여된 것이다. 로 불리우게 되었다(히브리어 알마는 처녀를 의미하기 때문에 여기서 의도하는 것은 “처녀 어머니" (Virgin Mother)임). 이와 같이 위대한 구출자(혹은 구원자)의 탄생이 기적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은 기독교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 던 것이다. 동정녀 탄생 사건이 있기 전, 수 백년 동안 - 어떤 사람에 의하면 수 천년 동안 - 불교의 사제들은 한 처녀가 이 세상을 축복할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는 전통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이 교황청이나 기독교로부터 유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티벳과 중국을 처음으로 방문하였을 때 그곳에서도 어머니와 아이가 자신들의 고국에서처럼 경배 받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크게 놀란 사건에서 입증되고 있다. 그곳에서는 단순히 어머니와 아이가 경배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어머니가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의 처녀 어머니”,Sir. J. F. Davis의 China, vol. ii. p. 56과 Lafitan 을 볼 것. 그의 증언에 따르면, 가톨릭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보낸 보고서에 보면 중국인들의 경전에는 거룩한 어머니(성모) 뿐만 아니라 처녀 어머니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고 되어 있다(vol. i. p. 245, 주), Salverté, De Sciences Occultes, 부록, 주 A, sect. 12, p. 490을 볼 것. Prescott의 Conquest of Mexico, vol. I. pp. 53, 54 주에서도 동일한 내용의 증언들을 발견 할 수 있다. 이 주제에 대해 더 많은 증거를 원하는 분은 부록 주 H를 볼 것. 즉 그들의 마돈나 “비르고 데이파라 (Virgo Deipara)로 서 경배를 받고 있었다. 그것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혀 알려져 있지 아니 한 Parson의 Japhet, pp. 205,206. 지역에서 그런 사실을 접한 이들 가톨릭 선교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여인의 씨가 뱀의 머리를 부수어야만 할 것” 이라는 그 언약 자체는 이미 기적적인 출생을 암시하고 있었다. 사제들의 술수와 인간들의 지레짐작 에 의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이 약속의 성취는 사악한 방법으로 미리 앞당겨지게 되었다. 이리하여 그 바빌론 여왕이 그 최초의 영예를 차지해 버렸던 것이 다. 이에 따라 최고의 칭호들이 그녀에게 붙여졌다. 그녀는 결국 “하늘의 여 왕” 이라고 불리우게 되었다(렘 44:17,18,19,25). 아쉬타(Ashta), 즉 “여인" 이 “하늘의 여왕'으로 불리게 되었을 때 “여인" 이란 이름은 여성에게 부여되는 최고의 칭호가 되었다. 이는 여왕들과 최고의 지위를 누리는 자들이 “여인" (woma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는 옛 동방 민족들 간에 너무도 잘 알려져 있던 풍습을 잘 설명해 준다. “여인" 이란 칭호는 오늘날 영어에서는 전혀 존칭이 아니지만 원래는 이 단어는 동양에서와 동일한 경칭으로 쓰여졌었다. 영어의 "Queen" 이란 단어는 Cwino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 단어는 고대 고딕어로 그저 여인(woman)을 의미했었다. 이집트에서 그녀는 아토르 (Athor), 즉 “하나님의 거처” Busen, vol. i. p. 401. 라고 불리웠으니, 이는 하나님의 신격의 모든 충만이 그녀 안에 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집트인들은 이 위대한 어머니 여신을 범신론적인 의미에서 무한하고 전능한 존재로서 그리고 처녀 어머니로서 부각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비문을 이집트에 있는 그녀의 신전 가운데, 하나에다 새겨 놓았다. “나는 이제껏 있어왔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자라.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어떤 존재도 나의 베일을 제거할 수가 없었다. 내가 낳은 열매는 태양이다." Ibid, vol. i. pp. 386, 387. 그녀는 그리스에서는 헤스티아(Hestia)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로마인들 사이에서는 베스타(Vesta)로 불리웠는데 이는 일반적으로는 다른 의미로 이해되고 있기는 하지만 실은 “거처하는 장소” 헤스티아(Hestia)는 그리스어로 “집” 혹은 “거주"를 의미한다(Schrevelius와 Photius, sub voce.). 그런데 이 의미는 일반적으로 이 단어의 이차적인 의미라고 생각되었으며 일차적인 의미는 “불” 이라고 믿어 져 왔다. 그러나 헤스티아에 관련된 진술들을 살펴보면 그 이름은 헤스(Hes) 혹은 헤세(Hese) 즉 “덮다” “피 신하다” 라는 단어에서 왔으며 이는 혹독한 날씨로부터 “덮어 주거나” “피신시켜 주는 집이라는 개념과 연관 되어 있는 것이다. "Hes" 라는 동사는, 또한 “보호하다”, “자비를 보이다” 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바로 이 의 미로부터 “탄원자의 보호자" 로서의 헤스티아의 성격이 분명히 드러난다고 하겠다 (Smith를 볼 것.). 헤스티 혼은 “피신하다" 라는 의미로서의 Hes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생각해 본다면 스미스(Smith)의 다 음 진술이 쉽게 이해가 된다. “헤스티아는 가정생활의 여신이었다. 그녀는 모든 가정의 행복을 제공하는 자 였다. 따라서 그녀는 모든 집의 내부에 거주하여 가정을 세우는 기술을 발명한 것으로 믿어져 왔다. 만약 헤스티아의 원 의미가 “불” 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불이 “가정을 세우는 자” 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거주지 혹은 거처하는 장소라는 의미로 헤스티아를 해석한다면 “덮다” 혹은 “피신하다” 라는 Hes로부터 그 단어가 유래했다 할지라도 어째서 헤스티아가 “불과 동일시되었느냐는 쉽게 이해가 된다. “하나님의 거처" 로서 간주되었던 여신은 “여인", 즉 아쉬타(Ashta)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Ashta"는 동시에 불을 의미하였 다. 따라서 헤스티아(Hestia) 혹은 베스타(Vesta)는 바빌론 신비종교가 발전해 감에 따라 “불” 혹은 “불의 여 신”으로 여겨지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어머니여신이 거처라는 의미를 갖고 있음을 보여 주는 근거에 대해서 는 부록 주 I를 볼 것. 를 의미하는 동일한 이름의 변형에 불과하다. 헤스티아 혹은 베스타는 오르페우스 찬가에서는 신격이 거처하는 장소로서 다음과 같이 노래되고 있다.
“존경받는 여인, 새턴의 딸
위대한 불의 영원한 불꽃 속에 거하는 존재
그대 안에 신들은 그들의 거처하는 장소를 정했으니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의 강력하고 견고한 기초라.”
Taylor's Orphic Hymns: Hymn to Vesta, p. 175.
비록 베스타가 이곳에서는 새턴(Saturn)의 딸로 불리고 있지만
그녀는 모든 만신전에서 키벨레(Cybele) 혹은 레아, 즉 새턴의 아내와 동일시되었다.
베스타(Vesta)가 불과 동일시되는 그 점에 있어서도 “거처하는 장소” 로서 의 베스타의 특성이 여전히 돋보인다. 필로라우스(Philolaus)는 세계의 정중앙에 있는 불에 대해 말하면서 그 불을 “우주의 베스타, 쥬피터의 집, 신들의 어머니" Note to Taylor's Orphic Hymns, p. 156. 라고 부르고 있다. 바빌론에서는 거처하는 장소로서의 어머니-여 신의 칭호는 사카(Sacca), 사카(Sacca)가 아나이티스(Anaitis), 즉 비너스라는 인물로 경배된 사실에 관해서는 Chesmey' s Eu phrates Expedition, vol. i. p. 381을 볼 것. 혹은 강조 형태로는 “삭타” (Sacta, 장막)이다. 따라서 오늘날까지도 인도에서는 위대한 여신들이 자기들이 대표하는 신의 모든 능력을 행사하는 존재로서, “삭티 (Sacti), 즉 “장막” Kennedy와 Moor, passim. 사카(Sacca), 즉 “장막” 에 대한 동의어는 “아헬" (Ahel)로 구두점을 찍으면 “오헬” (Ohel)로 발음된다. 첫 번째인 아헬로부터는 부처의 아내의 이름인 아할야(Ahalya)가 유래된 것으로 보이며(Kennedy, pp. 246,256), 무어(Moor)의 Pantheon에서는 아힐야(Ahilya, p. 264)로 나온다. 두 번째 형태인 오헬로부터는 마찬가지로 페루인들의 족장의 아내 이름인 "마마 오엘로 (Mama Ollo)가 유래 된 것으로 보인다(Prescott's Peru, vol. i. pp. 7,8), 마마(Mama)는 페루인들에 의해 동양적인 의미로 사 용되었다. 오엘로(Cello) 역시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 것이 거의 분명하다. 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그녀 안에는 모든 능력뿐 아니라 모든 은혜와 선함이 거한다고 믿어져 왔다. 동시에 모든 인자함과 자비함이 그녀 안에 집중 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죽음이 그녀의 일생을 마감하였을 때 그녀는 그녀의 천상의 인자함을 표현하기 위해 신격화되어 비둘기 Diodorus Sic., lib, jii. p. 76. 이와 관련해서 고전 독자들은 Ovid의 Metamorphoses에 나오는 우 화들 중 하나의 제목을 기억하실 것이다. 그것은 "비둘기가 된 세미라미스” 이다. "Semiramis in colum bam" (Metam. iv.). 로 변형되었다고 하며 “디우네” (D' Luné) 비너스의 어머니 디오네(Dione)는 흔히 비너스 자신으로도 여겨졌는데 그 이름은 분명히 위에 나와 있는 이름과 동일하다. 비너스를 뜻하는 디오네라는 이름은 분명히 오비드(Ovid)에 의해 바빌론의 여신에게 적용되었다. Fasti, lib. ii. 461~464, vol. iii. p. 113. 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는데 이는 “비둘기, 혹은 정관 사 없이 그저 “쥬노” (Juno)라고 불리웠다. 이 쥬노는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로마의 “하늘의 여왕” 의 이름으로 그녀는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는 물론 비둘기의 형태로도 바빌론인들로부터 경배를 받았다. 이 신격화된 여왕을 위해 선택된 상징인 비둘기는 보통 입에 올리브 가지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며(그림 25) 그녀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도 역시 손에 올리브 가지를 들 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Layard의 Nineveh and Babylon, p. 250. 그녀가 일반적으로 “제미르-아미트” (Z emir amit) 즉 “가지를 지닌 자”
그림 25 5
A
I
로서 알려진 것도 그녀가 위와 같은 모습으로 묘
1 * Diodorus Sic., lib, jii. p. 76. 이와 관련해서 고전 독자들은 Ovid의 Metamorphoses에 나오는 우 화들 중 하나의 제목을 기억하실 것이다. 그것은 "비둘기가 된 세미라미스” 이다. "Semiramis in colum bam" (Metam. iv.).
f 비너스의 어머니 디오네(Dione)는 흔히 비너스 자신으로도 여겨졌는데 그 이름은 분명히 위에 나와 있는 이름과 동일하다. 비너스를 뜻하는 디오네라는 이름은 분명히 오비드(Ovid)에 의해 바빌론의 여신에게 적용되었다. Fasti, lib. ii. 461~464, vol. iii. p. 113.
t Layard의 Nineveh and Babylon, p. 250.
S Bryant, vol. iii, p. 84. 위에 나와 있는 그림에서 키벨레(Cybele)의 손에 놓여 있는 가지는 보통 나뭇가지이지만 레이어드가 제공하는 그림에서는 분명히 올리브 나뭇가지이다.
“the” 혹은 that" 을 의미하는 제(Ze), “가지" 를 의미하는 에미르(emir) 그리고 “지니고 있는 자” 의 여성형태인 amit 에서 나옴. - 헤시키우스(Hesychius, sub voce,)는 말하기를 세미라미스는 “야생 비둘기"를 뜻하는 이름이라고 한다. 세미라미스의 이름의 원래 의미에 대한 설명은 노아의 야생 비둘기와 관련된 것으로(이 비둘기는 야생 비둘기임이 분명한데 이는 길들여진 비둘기라면 그와 같은 실험에 적합지 않았을 것이 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이 그 어떤 야생 비둘기에게도 그 의미를 적용하였음을 보여 준다.
3. 아이의 어머니 · 107
사되는 데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 여신이 올리브 가지를 입에 문 비둘 기로서 묘사되는 것은 분명히 대홍수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 나 이 비둘기 상징은 단순히 홍수 사건의 기념 이상을 의미하는 무엇을 갖고 있다. “가지”는 이미 살펴본 것처럼 신격화된 아들의 상징이었는데 신격화된 어머니가 비둘기로서 묘사되고 있는 것은 그녀를 비둘기처럼 하나님의 창조 때 깊음을 덮고 있었던 모든 은혜의 성령과 동일시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 이다. 왜냐하면 니느웨에서 출토된 조각품들에서는 이미 살펴본대로 비둘기의 날개들과 꼬리는 아시리아 우상의 삼위일체 중 세 번째 존재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근거로 할 때 아시리아의 “쥬노” (Juno), 즉 “처녀 비너 스”(The Virgin Venus)는 - 그녀는 이렇게도 불리웠다 - 공기와 동일시되었 다. 쥴리우스 피르미쿠스(Julius Firmicus)는 이렇게 말한다. “아시리아인들과 일부 아프리카인들은 공기가 모든 자연요소 중 최고의 지위를 얻기를 원했으 며 그리하여 그들은 이 요소(즉 공기)를 쥬노, 즉 처녀 비너스라는 이름으로 거룩하게 불렀다. Firmicus, De Errore, cap. 4, p. 9. 이렇듯 공기가 아시리아 삼위일체 중 세 번째 존재에 해당되는 쥬노와 동일시되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칼데아어로 공기를 의미하는 단어가 곧 “성령” (Holy Ghost)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었겠 는가? 우리는 프로클루스(Proclus)가 “쥬노는 혼의 생성을 가져온다" Proclus, lib., vi, cap. 22, vol. ii. p. 76. 라고 한 진술을 이제야 비로소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혼, 즉 사람의 영은 그 기원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쥬노가 하나님의 영의 성육신이요, 생명의 원천이며 공기의 여신으로서 여겨진 사실에 대해 “오르페우스 찬가”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오 장엄한 모습을 지닌 왕족의 쥬노,
공기의 형태요, 신성하며, 죠브(Jove)의 복 받은 여왕,
카툴리아의 공기의 품에 왕좌를 세우고,
죽을 인간들은 그대의 끊임없는 보살핌의 대상.
시원케 하는 강풍은 오직 그대의 능력만이 불게 하니,
모든 생명이 갈구하는 생명을 보육하네.
소나기와 바람의 어머니, 오직 만물을 생성하는
그대로부터 죽을 생명이 알려지네.
모든 자연은 그대의 신성한 기질을 내보이니,
온 우주의 주권이 그대만의 것이네.
울리는 광풍과 더불어 솟구치는 바다.
굽이치는 강물은 그대에 의해 움직이며 포효하네."
Taylor의 Orphic Hymns, p. 50. 모든 고전 독자들은 쥬노와 공기가 동일시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에 대해 프로클루스(Proclus)는 다음과 같이 더욱 분명한 예를 제공해 주고 있다. “우리의 주권적 여주인이신 쥬노(Juno)의 주권은 위로부터 시작하여 만물의 마지막 것까지 다 섭렵하여 달 아래 지역에서 그녀의 담당요소는 공기이다. 왜냐하면 공기는 혼의 상징이며 혼은 동시에 영, 프뉴마(Tevua)로 불리기 때 문이다." -Proclus, Ibid. p. 197.
이처럼 모든 면에서 진실된 여인으로 간주되었던 신격화된 여왕은 동시에 평화와 사랑의 영인 성령이 성육신된 존재로서 숭배를 받았다. 시리아의 히에라 폴리스 신전에는 쥬노 여신의 한 유명한 동상이 서 있는데 온 세상으로부터 사 람들이 몰려와 그녀를 경배한다. 이 여신의 형상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데, 머리에는 금으로 된 비둘기가 놓여 있으며 그 지방에서도 독특한 이름인 “세메 이온 (Seméion) Bryant, vol. iii. p. 145. 으로 불렸다. 그런데 이 세메이온이란 이름은 분명히 “거처” that" 혹은 “그 위대한 (the great)을 뜻하는 제(Ze)와 마아온(Maaon), 혹은 마이온(Maion), 즉 “거처”로부터 나왔는데, 이 여신을 묘사한 작가 루시안(Lucian)이 사용했던 이오니아 방언(Ionic dialect)으로 는 당연히 메이온(Meion)이 되었을 것이다. 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그녀의 머리 위에 있는 금비둘기는 그녀 안에 거처하고 있는 존재가 다름아닌 하나님의 영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초월적인 신성이 그녀에게 부여되고 그와 같은 놀라운 매력적인 특징들이 그 녀에게 제공되며 그녀의 형상들이 사람들에게는 “천상의 비너스”, 즉 비너스 우라니아(Venus Urania)로서 제시됨에 따라 그녀의 숭배자들에게 구원을 약 속하는 이 미(美)의 여왕은 거룩치 못한 정욕에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고 타락 하고 관능적인 욕구를 자극하면서 전 세계에서 열정적인 숭배를 받기에 이르렀 다. 바빌론의 여왕이며 여신인 이 존재는, “신들의 어머니” 라는 이름으로 거의 전 세계 모든 곳에서 경배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클레리쿠스에 따르면 “신들 의 어머니는 페르시아인들, 시리아인들,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의 대다수 왕들에 의해 가장 깊은 종교적인 경외심으로 경배되었다. Joannes Clericus, Philos, Orient., lib. ii., De Persis, cap. 9, vol. ii. p. 340. 타키투스(Tacitus)는 이 바빌론의 여신이 독일의 중심부에서도 경배를 받았으며 Tacitus, Germania, ix. tom. ii. p. 386. 시저가 브리튼 지방을 침략했을 때 드루이즈(Druids)로 알려진 이 여신의 제사장들이 이미 그 곳에 있었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Caesae, De Bello Gallico, lib. vi, cap. 13, p. 121. 드루이드(Druid)라는 이름은 오크나무에 해당되는 그리스어 드루스(Drus), 혹은 동일한 나무에 해당되는 켈트어 데루(Deru)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이는 분명히 잘못이다. 아일랜드에서는 드루이드에 해당되는 이름이 드로이(Droi)이며 웨일즈 지방에 서는 드리우(Dryw)이다. 드루이드족들과 오크나무와의 관계는 그들의 이름이 이 나무에서 유래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이름과 그 나무와의 어휘의 유사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드루이드교의 제도는 그 전체가 바빌론의 신비종교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다. 디오니시우스에 따르면 바쿠스 제전은 브리튼 섬에서 오래 전에 거행되었으며 (Periergesis, v. 565, p. 29), 스트라보(Strabo)는 아르테미도루스(Artemidorus) 를 인용하여 브리튼 근처의 한 섬에서는 케레스(Ceres)와 프로세르피네(Proserpine)가 사모스(Samos) 민족 의 제전과 유사한 의식을 통해 숭배를 받았다고 증언한다(Lib. iv. p. 190.), 드루이드족의 케리드웬 (Ceridwen)과 그녀의 아이에 대한 설명으로 미루어 볼 때(제4부 3장에서 다룰 것임) 그녀와 위대한 바빌론 의 어머니 여신과는 매우 커다란 유사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드리우(Dryw) 혹은 드로이(Droi)는 제 사장들에게 적용된 이름들로 그 제도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히브리어, 혹은 초기의 칼데아어의 제로 (Zero) 라는 이름은 위대한 여왕신의 아들에게 붙여진 것으로 후기의 칼데아어에서는 “데로 (Dero)가 되었다. “씨”를 뜻하는 데로의 제사장은 대부분의 종교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신의 이름으로 불렸다. 따라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드루이드 (Druid)라는 이름은 “데로 (Dero), 즉 여인의 약속된 “씨" 의 제사장을 뜻하는 것으로 입증이 된 것이다. 하마드리야즈(Hamadryads)라는 고대 신화의 인물은 분명히 “원하는 씨"를 뜻하는 “하메드 데로 (Hamed-dero)의 여제사장들이라고 할 수 있다. “원하는 씨”(desired seed)는 “모든 민족 이 원하는 것”(the desire of all nations)을 의미한다. 헤로도투스(Herodotus)의 개인적인 증거 에 따르면 이집트에서는 이 “하늘의 여왕 이 “모든 신적 존재들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경배 받는 존재였다.” Herodotus, Historia, lib. ii. cap. 66, p. 117, D. 그녀의 경배가 도입된 곳에서는 그녀는 놀라울 정도의 능력을 발휘하였다. 실로 모든 민족들이 그녀의 음행의 포도주 에 취했다고 표현할만하다고 하겠다(계시록 17장 2절을 참조할 것-역자주), 특히 예레미야 대언자 시절의 유다인들은 얼마나 깊이 이 여자의 포도주에 취해버렸 는지 그들은 그녀의 우상숭배에 완전히 매료되어 바로 이 우상숭배 때문에 예루살렘이 불타 버리고 그들의 조국이 황폐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에도 여전히 이 악습을 내버리지 못하고 말았다. 그들은 이로 인해 이집트에서 비참 한 망명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방종교에 대항하여 하 나님의 증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는 대신 이집트인들과 마찬가지로 이 우상숭배에 빠져 버렸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늘의 여왕을 계속해서 경배한 다면 그들에게 진노를 되부을 것을 예레미야 대언자를 보내 선포하셨다. 그러 나 그의 경고는 헛되었다. 대언자 예레미야의 말을 들어보자. “그때에 자기들 의 아내가 다른 신들에게 분향한 것을 안 모든 남자들과 곁에 선 모든 여인들 의 큰 무리, 곧 이집트 땅 파드로스에 거주하는 온 백성이 예레미야에게 대답 하여 말하되, 네가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고한 그 말씀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입에서 나간 것은 무엇이든지 확실히 행 할 것이니, 곧 우리와 우리 조상들과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들이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의 거리에서 행한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며, 그녀에게 음료헌물을 부으리라. 이는 우리에게 식량이 풍부하게 있고 우리가 건강하며 아무 재앙도 보지 아니하였음이라 (렘 44:15-17). 이와 같이 해서 하나님의 친 백성이요, 특유의 백성인 유다 민족은 하늘의 여왕을 섬기는 데 있어 결코 이집트인들에게 뒤지지 않았던 것이다.
팔에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 여신에 대한 경배는 기독교가 들어올 때까지 도 이집트에서 지속되었다. 만약 복음이 대중들 가운데 강력하게 들어왔었더라면 이 여신이요 여왕인 존재에 대한 경배는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그저 명목상으로만 소개되었을 뿐이었다. 따라서 바빌론의 여신이 추방당하는 대신 여러 경우에 있어 그녀의 이름만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녀는 동 정녀 마리아로 불리웠다. 그래서 입으로만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많은 자들이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경배했는데, 이는 과거 이교도들에 의해 공공연히 자행되었던 우상숭배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그 결과 A.D. 325년 니케 아 공의회가 아리우스 이단을 정죄하기 위해 소집되었을 때 - 물론 그리스도 의 참된 신성을 거부했던 이 이단은 정죄되었다 - 동정녀 마리아를 그의 아들 과 동일한 지위에 놓고자 하는 자들, 즉 피조물을 창조주와 동일한 위치에 놓고자 하는 분명한 의도를 지니고 있었던 자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님로드" (Nimrod)의 저자는 니케아 공의회에서 있었던 일을 다음과 같이 증언 하고 있다. “멜카이트파(The Mechite section)는 이들은 소위 이집트 기독교 의 대표자들이었음 아버지와 동정녀 마리아와 그리고 그들의 아들이라는 세 인격이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Nimrod, iii. p. 329, quoted in Quarterly Journal of Prophecy, July, 1852, p. 244. 니케아 공의회에서 나온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해 뉴먼(Newman) 신부는 그러한 토의가 마리아를 영화롭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징조라고 매우 커다란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삼위일체 논쟁은 그 논쟁으로는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제기 하게 되었다. 소위 빛의 영역에 관해서 보자면 교회가 아직 누구에게 그 영역 을 부여할 것인지를 정하지 못한 그러한 새 영역이 생겨난 셈이다. 따라서 하늘에서는 이적이 있었다. 한 왕좌가 보였는데 이 왕좌는 모든 창조된 권능들, 즉 모든 중재자, 중보자, 원형적인 호칭, 새벽별 같은 왕관, 영원한 왕좌에서 나오는 영광, 하늘처럼 순수한 겉옷 그리고 모든 것 위에 다스리는 홀과 같은 모든 권세들 위에 놓여 있는 왕좌였다. 그렇다면 이 모든 장엄한 것들을 상속 받을 자는 누구인가? 그와 같은 지혜자는 누구이며, 그녀의 이름은 무엇인가? 아름다운 사랑의 어머니, 두려움과 거룩한 소망의 어머니, 엥게디(Engaddi)의 야자수처럼 드높임을 받으며 예리코에 있는 장미(안산수(安産樹)라고 함)처 럼 높임을 받고, 창세로부터 존재하였으며, 하나님의 참모로서 예루살렘에 그 권세를 갖고 있는 이 여자는 누구인가? 그 여자는 계시록에서 '태양으로 옷입고,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머리 위에는 열두 개의 왕관을 쓴 여인' 으로 환 상 가운데 나타났다.” Newman의 Development, pp. 405,406. 지성을 갖춘 독자라면 계시록에 나오는 “여자” 의 환상을 동 정녀 마리아에게 적용시키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를 즉각 알 수 있을 것이다. 요한은 그가 본 것은 “표 적, 혹은 “상징” (semeion)이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만약 여기에서 나오는 여자가 진짜 여자라면 일곱 언덕 위에 앉아 있는 여자도 마찬가지로 문자적인 여자여야만 한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여자”는 “상징, 이 다. “일곱 언덕 위에 있는 여자는 거짓 교회의 상징이요, '태양으로 옷을 입고 있는 여자는 참된 교회 - 즉 어린양의 신부요. 아내의 상징인 것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만일 마리아 숭배자들이 참된 신앙에서 떠났다고 말한다면, 이는 그녀의 아들을 모독하는 자들을 참된 신앙에 다다른 자들이라 말하는 것과 같다. 로마교회가 결코 우상숭배자가 아 닌 것은 아리안주의가 정통이 아닌 것처럼 분명하다.” Ibid. 이 발언은 그야말로 신성모독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그의 발언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담고 있다. 즉 만약 그리스도께서 참되고 합당하게 하나님으로서 받아들여지신다면, 그리 하여 하나님으로서의 경배를 받을 자격이 있으시다면, 그분에게 인성을 부여 하신 그분의 어머니께서도 그분처럼 하나님으로서 받아들여져야 하며 모든 피 조물을 훨씬 초월하는 지위로 높임을 받아야 하며, 신격의 동참자로서 경배를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신격은 그의 어머니의 신격과 더불어 굳게 서 있을 수도 있고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19세 기의 로마 가톨릭이요, 영국의 로마 가톨릭의 참 모습인 것이다. 영국 이 외의 곳에서는 로마 가톨릭은 대담하고 뻔뻔스럽게도 온갖 신성모독을 일삼고 있음 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포르투칼 리스본에는 한 교회 건물 앞에 다 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탈리아 민족은 로레토(Loretto)의 동정녀 여신에게, 그녀의 신성 앞에 이 신전을 바침 Journal of Professor Gibson, in Scottish Protestant, vol. i. p. 464. 이러한 신성모독적 발언은 이제껏 영국에서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영국에서도 그러한 주장 을 듣기에 이르른 것이다. 이것은 다름아닌 위대한 어머니 여신을 섬겼던 옛 바빌론의 교리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그러니까 로마의 마돈나(Madonna) 는 다름아닌 바빌론의 마돈나인 것이다. 바빌론의 “하늘의 여왕” 과 로마의 “하늘의 여왕” 은 동일한 인물인 것이다. 바빌론과 이집트에서 “장막”, 혹은 “하나님의 거처”로서 경배되는 여신은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로마교회에 의해 “하나님께 봉헌된 집”, “두려움이 거주하는 장소”, The Golden Manual in Scottish Protestant, vol. ii. p. 271. 이 작품의 라틴어로 “거주하는 장소” 에 해당되는 단어는 순수한 칼데아어인 “자불로” (Zabulo) 인데 제불룬(Zebulun, 스불룬, 창 30:20)과 동일 한 동사로부터 유래하였다. 이 스불룬이란 이름은 레아가 그녀의 아들에게 붙여 준 이름으로 그녀는 “이제는 내 남편이 나와 함께 거하리라고 하면서 스불룬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저택”, Pancarpium Marie, p. 141. “성령의 장막, Garden of the Soul, p 488. “삼위일체의 성전" Golden Manual, in Scottish Protestant, vol. ii. p. 272. 으로 불리는 그 여신과 동일한 인물이다. 어떤 사 람들은 성경은 모든 믿는 자들이 성령의 전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하 나님의 성도였던 동정녀 마리아에게 그와 같은 이름 혹은 그와 유사한 이름을 붙여 주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로마 가톨릭을 옹호하려 들지도 모르겠다. 바울이 말하기를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 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3:16)고 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사실일 뿐 아니라 위대한 진리이며, 우리에게 큰 축복이 되는 진리로서 우리가 즐거울 때는 커다란 위안을 주며 우리가 괴로울 때는 모든 어려움을 제거해 주는 소중 한 진리이다. 아마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동일한 사도가 “... 너희가 살아계 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고 그들 가운데 걸으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고후 6:16)고 한 이 말씀을 어느 정도는 체험했으리라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는 주님께서 “....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 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우리의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3) 고 하신 말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영광스러운 신격의 세 분 모두가 우리 안 에 내주하심을 또한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와 같이 교황의 교리와 성경의 교리 가 겉보기에는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상을 보여 준다. 믿는 자가 “하나님의 성전” 혹은 성령의 전이라고 말할 때, 그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믿음으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이다(엡 3:17). 그러나 로마교회가 마리아는 “하나님의 성전 혹은 장막” 이라고 했을 때 는 이교도들이 사용하는 의미와 동일하다. 즉 그녀와 신격과의 연합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합체(hypostatical union)와 유사한 개념이다. 그리스도 의 인성은 하나님의 성품을 지니신 그분께서 인간의 본성을 입으심으로 그 영광이 그 안에 가리워져 있어 인간이 압도됨이 없이도 거룩하신 하나님께 다가 갈 수 있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성전” 인 것이다. 이 영광스러운 진리에 대해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문자적으로는 장막을 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에게서 유일하게 나신 이로서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와 같은 의미에 서 볼 때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 인간으로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장막” 이신 것이다. 로마교회가 마리아를 “하나님의 장막” 혹은 “성령의 장막” 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게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동정녀를 드높이기 위해 바쳐진 한 가톨릭 저서의 저자는 그리스도께 해당되는 모든 특별한 칭호와 특성을 마리아에게 부여하고 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요, 하나님의 저택이며, 하나님 의 거처요, 하나님의 성읍이 사람과 함께 하며, 사람들 안에, 사람들을 위해 있으니 이는 그들의 구원과, 존귀과, 영원한 영광을 위한 것이다. 이것은 거룩한 교회에 해당되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이것은 또한 주님의 몸인 성체용 빵에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참된 그리스도인들인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물론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신비를(존재하는 그대로) 우리 주님의 가장 거룩하신 어머니 안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Pancarpium Marie, 혹은 Marianum, pp. 141,142. 이와 같이 이 저자는 “마리아가 인간과 함께하는 하나님의 장막으로 간주되는 것은 옳다”는 주장을 내세운 후에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성전" 이라는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마리아는 특별 한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장막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표현한다. “하나님의 장막 이 인간과 함께하여 그 안에서 인간이 되신 하나님께 안전하게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실로 커다란 유익이요 독특한 특권이 아닐 수 없다.” Ibid. p. 142. 이 표현에는 하나님의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육체로 그 안에 거하는 하나님-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모든 중보자로서의 영광이 마리아에게 부여되어 있으며 적어도 그녀와 그 영광을 나누어 갖는 것으로 되어 있다. 위에 나오는 인용문 은 200여년전에 발행된 한 책에서 발췌한 것인데 그 이래로 로마 가톨릭교회가 조금이라도 개선되었던가? 혹은 자신들의 신성모독죄를 회개라도 했단 말인가? 그들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더욱더 신성모독적으로 “발전 했다. 뉴먼(Newman) 신부가 한 진술에서 우리는 이미 이 사실을 확인 한 바 있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증거가 있다. 최근에 발행된 한 책에는 동일한 신성모독적 사상이 훨씬 더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마리아가 “하나님께 봉헌된 집” 그리고 “삼위일체의 성전" 으로서 불리는 동안, 다음의 창화단구(교회 에서 신도들이 신부의 선창에 화답하는 짤막한 시-역자주)는 그와 같은 표현이 어떤 의미인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V. Ipseldeus] creavit illam in Spirit Sancto. R. Et effudit illam inter omnia opera sua. V. Domina, exaudi," &c., 이것을 번역하면 이러하다. “V. 주님께서 직접 그녀를 성령 안에서 창조 하셨도다. R. 그리고 그분의 모든 역사 가운데 그녀를 부으셨도다. V. 오 여주인이시여, 들으소서.” Golden Manual, p. 649. 이 작품은 "멜리포타무스(Melipotamus)의 주교인 니콜라스(Nicholas)'의 출판승인을 받았음. 그는 현재 와이즈맨(Wiseman) 추기경임. 그녀에 대해서 “하나님의 모든 역사” 위에 “부어졌다" 라고 표현한 것은 분명히 마리아를 성령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이미 살펴본대로 이교도들에 의해 “장막” 혹은 하나님 의 집으로서 여겨졌던 그 여인이 숭배받던 방식도 이와 동일하였다. 그런데 동 정녀에 관해 이와 같은 표현들이 사용된 곳은 스페인(99%가 가톨릭)도 아니 고, 오스트리아(로마 가톨릭 세력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음.)도 아니고, 유럽 대륙에서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곳들도 아닌 소위 전세계에서 가장 계몽되고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런던이라는 사실은 실로 우리를 경악케 만드는 일이 아 닐 수 없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마리아에게 부여한 신성모독적인 이름들은 성경적인 근거는 전혀 없는 반면 전부 바빌론의 우상제도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로마교회와 바빌론 우상제도의 마돈나들은 그 성품과 특성이 동일하다. 라파엘의 그림에서는 이제까지의 전통과는 약간 다르게 묘사되어 있지만, 그럴지 라도 로마 교회의 마돈나의 모습에서 유다 여성이나 이탈리아 여성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만약 로마의 동정녀 마리아의 그림들과 형상들이 정말로 우리 주님의 어머니를 묘사하기 위한 의도로 제작된 것이라면 그것들은 당연 히 유다적이거나 이탈리아(로마)적인 모습들을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로는 그렇지 않다. 검고 아름다운 눈을 지니고 칠흙처럼 검은 머리타래를 지녀 야 할 유다 여인 마리아 대신 마돈나는 항상 우리 주님의 어머니에게 당연히 속해야 할 유다 여인의 특성과는 전혀 다른 푸른 눈의 금발의 여인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이 모습은 바로 모든 고대인들이 바빌론의 여왕이요 여신에 게 속한 것으로 생각했던 외모의 특징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위대한 여신은 금발 혹은 노란색 머리를 가진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 는 모든 여신들이 본으로 삼았던 하나의 원형이 있었음을 입증해 준다. “노란 머리의 케레스(Ceres)" 즉 “플라바 케레스" (Flava ceres)라는 여신이 그저 자 신이 수호신으로 있는 옥수수 털의 색깔을 빌어 그와 같은 노란 머리로 묘사되 었다고 생각해서 이 여신은 어느 특정 지역의 여신일 뿐이라고 간주할지 모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다른 많은 여신들에게도 동일한 호칭들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쥬피터가 황소의 형태로 데려간 에우로파(Europa)는 “노 란 머리의 에우로파” Ovid, Fasti, lib. v. 1. 609, tom, iii. p. 330. 라고 불리우며 미네르바(Minerva) 역시 호머에 의해 “푸른 눈의 미네르바" Iliad, lib. v. v. 420, tom. i. p. 205. 라고 불리는 동시에 오비드(Ovid)에 의해서는 “노란머리를 한 여신” Ovid, Tristium, lib. i.; Elegia, p. 44; and Fasti, lib. vi, v. 652, tom. iii. p. 387. 으로 불리운다. 일반적으로 달과 동일하게 여겨지는 여자 사냥꾼 다이아나(Diana)는 아나크레온(Anacreon)에 의해 “노란 머리를 한 쥬피터의 딸” Anacreon, Od. lx. p. 204. 이라고 불리웠는데 이 칭호는 결코 은빛의 달이 갖고 있는 창백한 얼굴로부터 온 칭호라고는 할 수 없다. 또한 비너스의 어머니인 디오네 (Dioné)는 테오크리투스(Theocritus)에 의해 "노란 머리를 한 여신" Idyll vii. v. 116, p. 157. 으로 묘 사되었다. 비너스 자신도 흔히 “아우레아 비너스 (Aurea Venus) 즉 “금발의 비너스" Homer의 Iliad, lib. v. v. 427. 로 불리운다. “우주의 어머니" 라는 인도의 여신 라크쉬미(Lakshmi) 는 “황금빛 피부” Asiatic Researches, vol. xi. p. 134. 를 갖고 있다고 묘사되고 있다. 바쿠스의 아내인 아리아드네(Ariadne)는 “노란 머리의 아리아드네" Hesiod, Theogonia, v. 947, p. 74. 라고 불리웠다. 드라이든(Dryden) 은 그녀의 금발 혹은 노란 머리에 대해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 다이아나 항구에 거친 파도가 노는 그곳에
아름다운, 내버려진 아리아드네가 누워있네,
슬픔으로 마음이 아프고 절망으로 필사적인 그녀가 그곳에,
그녀는 그녀의 옷을 찢고 그녀의 금발 머리를 쥐어뜯었네,
Heathen Mythology Illustrated, p. 58.
또한 골곤 메두사(Gorgon Medusa, 머리가 뱀이며, 보는 사람을 돌로 변화 시켰다는 세자미의 괴물 골곤(Gorgons) 중 하나)도 그녀의 변형이 있기 전 그 아름다움을 사람들이 기릴 때 역시 그녀의 금발을 노래했다.
“ 메두사는 한 때 매력이 있었네,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갈망하는 연인들의 라이벌들이 싸웠다네,
그녀를 본 자들은 결코 자신을 따르지 않고
더 부드러운 얼굴에서 더 감동적인 모습을 찾았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의 긴 머리를 그들은 인정했네.
물결치는 금발의 고수머리, 우아하게 빛나네.”Ibid, p. 90.
북부유럽에서 낭만적인 이야기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인어는 분명히 시리아의 물고기 여신인 아테르가티스(Atergatis)의 이야기로부터 빌어온 것으로 이 여신은 세미라미스의 어머니로 불렸으며 때로는 세미라미스 자신과 동일시 되었는데 Lucian de Dea Syria, vol. iii. pp. 460,461. 루시안에 의해 언급된 이름은 데르케토(Derketo)이다. 그러나 데르케토와 아테르가티스(Atergatis)가 동일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동일한 노란 머리를 지닌 것으로 묘사되었다. 인어에 대한 스칸디 나비아어로 된 이름인 “엘레여인" (Ellewoman)은 “아름답고, “금발이며 현악기를 매우 부드럽게 다룬다” Danish Tales, p. 36.고 한스 안데르센(Hans Andersen)의 『덴마크 설화」(Danish Tales)의 서문에 나와 있다. “그녀는 흔히 물의 표면에 머리를 빗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Ibid. p. 37.이집트의 비너스인 아토르(Athor)가 암소로서 묘사될 때 그 암소의 머리와 목은 금박으로 입혀지는데 Herodotus, lib. ii. p. 158 1217 Wilkinson, vol. i., Note to p. 128. 이는 분명히 그 암소 가 대표하고 있는 여신의 얼굴 모습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탈리아 에서 가장 유명한 동정녀 마리아의 그림들이 하얀 피부에 금발을 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고, 아일랜드 전 지역에 걸쳐서 동정녀 마리아가 오늘날까지도 변 함없이 동일한 방식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동정녀가 이교도들의 신 적 존재들이 그러하듯이 동일한 원형으로부터 유래했기 때문에 그와 같이 묘사되었음에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리도록 해 준다고 하겠다.
피부색뿐만이 아니라 얼굴의 특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엿보인다. 유다인들의 용모는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눈에 띄며 그들만의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 마돈나의 원본을 볼 것 같으면 전혀 유다적인 특징 이 없다. 오히려 그녀는 피부색은 물론 용모에 있어서도 로버트 케르포터경 (Sir Robert Ker Porter)이 바빌론의 유적 가운데서 발견한 바빌론의 마돈나들 과 일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사실은 두 마돈나를 비교해 본 사람들에 의 해 확인되었다. H. J. Jones, in Quarterly Journal of Prophecy, October, 1852, p. 331. 이들 그림들 가운데서 또다른 현저한 특징들 중 주목할만한 것은 바로 흔히 로마의 마돈나의 머리를 두르고 있는 후광, 즉 독특한 원형의 빛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형상 역시 머리에 이 원을 두른 모습으로 흔히 등장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유래된 것일 까? 우리 주님의 경우에는 그의 머리가 빛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두고 복음서 에 보면 변화산에서 그의 얼굴이 빛처럼 빛났다는 기록이 있다는 사실을 그 기 원으로 내세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성경 그 어디에 그의 머리가 빛으로 된 둥근 원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가? 성경에서는 이런 기록을 전 혀 찾아 볼 수 없는 반면에 바빌론의 위대한 신들과 여신들을 묘사한 예술 작품들에는 이 원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 원반 특히 원 모습의 형상은 태양신의 상징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동양의 상징들 중에 주로 등장하고 있다. 바로 이 태양신의 머리는 원 혹은 원반 모습의 빛으로 둘러싸여 있다. 로마신화에 나오 는 태양의 아들 아폴로 역시 자주 동일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태양과 친족임을 내세우는 여신들은 후광 혹은 빛나는 원으로 장식 받을 자격이 동등하게 주어 졌다. 본서에서 우리는 폼페이(Pompeii)에서 나온 “태양의 딸” 키르케(Circe)의 모습을(그림 26) 제공하고 있는데 그녀의 머리는 오늘날 로마의 마돈나의 머리 와 동일한 방식으로 그 둘레에 원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누구라도 키르케의 머리를 둘러싸고 있는 후광과 가톨릭의 동정녀의 머리를 둘러싸고 있는 후광을 비교해 본다면 그 둘이 얼마나 정확히 일치하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림 26)의 목판화에 대한 설명은 Pompeii, vol. ii, pp. 91,92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그 그림들 중 하나는 오디세이(Odyssey)에서 취한 것으로 율리시즈와 키르케를 묘사한 것인데 이 영웅 율리시즈는 마법의 잔을 마셨지만, 머큐리가 준 해독제의 효능으로 회복되었고, 그 후 그는 칼을 뽑아 들고, 그녀의 잔(키르케가 바빌론의 비너스와 마찬가지로 금잔' 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을 마시고서 돼지로 변 해 버린 자신의 동료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그녀에게 다가 섰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여신은 즉시 항복한다. 여기에 호머가 율리시즈의 입을 빌어 묘사한 내용이 있다.
'그러므로 돼지 우리를 찾으라, 그곳에서 네 친구들과 뒹굴어라'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의 넙적다리 옆에서 나의 날카로운 칼을 빼 들고서 그녀에게 돌진 하였다.
그녀는 두려움으로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지르며 나의 치켜든 팔 아래로 달려들어 나의 무릎을 꽉 잡았다.
그리고는 애절한, 엄숙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 다. 말하시오, 그대는 누구신가,
" 중략. Cowper s Odyssey, x. 320.
이 그림은 흔히 성자들의 머리에 둘려져 있는 그 추하고 의미없는 영광의 기원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 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폼페이』의 저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 영광은 후광, 혹은 원광이라고 하는데 세르비우스가 내린 정의에 따르면 그것은 신들의 머리들을 두르고 있는 빛나는 유동체라고 한다(On Eneid, lib. ii. v. 616, vol. i. p. 165). 이 후광은 태양의 딸로서의 키르케에게 속하는데 이는 매우 합당하다고 생각 된다. 황제들은 겸손하게 그것을 그들의 신성의 표라고 받아들였고 이러한 황제들의 후원을 입고 다른 여러 가지 이교적 미신들과 풍습들처럼 교회 안으로 유입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실상은 황제들은 애매한 비난 을 받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교적 미신"을 교회 안으로 들여온 자들은 황제라기보다는 오히려 로마의 주교, 즉 교황이었기 때문이다. 제7부 2장을 볼 것.
이 모든 사실들이(이제껏 살펴본 두 여인 사이의 일치점들) 그저 우연이라고 그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물론 마돈나가 동정녀 마리아를 매우 정확히 닮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우상숭배의 변명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로마 교회 안에 그 추종자들의 최고의 경배대상인 그 여신이 자기 “아들” 님로드, 즉 니누스를 그리스도의 라이벌로서 세웠던 그 바빌론의 여왕인 것이 분명 하고 그녀 자신은 모든 방탕의 화신이라고 한다면, 로마의 우상숭배에 새겨진 바빌론 우상숭배의 흔적은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이 우상숭배의 가증스러운 성격을 완화시킨다고 해서, 다시 말해 그녀가 경배의 대상으로 제시하는 아이가 예수라는 이름으로 불리도록 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녀 가 옛 바빌론에서 그녀의 아이와 함께 경배를 받던 시절 그 아이는 그리스도의 독특한 이름이요, 그분의 영광스러운 특성을 나타내는 특별한 이름인 예수님 의 이름으로 불렸다. 그는 “조로 아쉬타” (Zoro-ashta), 즉 “여인의 씨” 라고 불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질투를 유발시키는 질투의
형상”을 에스겔 8:3. 이 “질투의 형상” 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고대의 우상숭배의 가장 커다란 특징이 바로 어머니와 아이의 숭배였다는 사실과 그 아이는 하나님의 아들의 화신으 로 경배되었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분명해진다고 할 수 있다. 3절과 5절을 14절과 비교해 보면 담무스를 위하여 우는 여인" 은 질투의 형상 매우 가까이서 울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경배하던 자들에 대해 진노를 거두어들이신 것은 아니었다. 마찬 가지로 로마의 마돈나의 팔 안에 안겨 있는 아이에게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부 여했다고 해서 “질투의 형상” 이 가장 높으신 지존자의 진노를 누그러뜨릴 수 도 없으며 그분의 불쾌감을 지울 수도 없다. 이는 그 아이가 하늘의 여왕으로 서 숭앙을 받던 그녀의 아들로서 경배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모든 신성을 부여받은 채 동시에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 였던 것이다. 모든 형상 숭배를 주님께서는 미워하시지만 그 중에서도 이런 종류의 형상숭배는 그분의 거룩하신 성품에 특별히 가증스러운 것임에 틀림없다. 내가 제시한 사실들이 진실된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로마의 배도에 대해 무서운 경고가 담겨 있으며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진노의 호리병이 그녀의 죄악에 찬 머리 위 에 부어지도록 정해져 있다는 사실은 놀랄 사실이 못된다. 만약 이 일들이 사실 이라면(그런데 이 사실을 누가 반박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누가 감히 로마 가톨릭 교회를 변호하고 나설 수 있으며 그 교회를 기독교회라고 부를 수 있단 말 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이 사실들을 읽고 있는 독자 중 성삼위일 체가 “아버지와 동정녀 마리아 그리고 아들이신 메시야" Quarterly Journal of Prophecy, July, 1852, p. 244. 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그와 같은 교리가(니케아 공의회에서 이집트파인 멜카이트들이 고백 한 교리였음) 분명히 이교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 이 어디 있겠는가? 또한 이런 신성모독적인 교리 앞에 흠칫 놀라지 않을 사람 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기도문 속에 담겨 있는 삼위일체를 숭배하도록 가르치는 그런 교회에 대해 독자 여러분은 뭐라고 말하겠는가?
“ 예수의 마음, 난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마리아의 마음, 난 당신께 간구하나이다. 요셉의 마음, 순수하고 의로우니
이 세 마음 안에 난 나의 신뢰를 두나이다.”
더블린에서 제임스 두피(James Duffy)에 의해 출간된, 퍼니스 신부(the Rev. J. Furniss)의 저서 『모 든 크리스천이 알고 행해야 할 것(What every Christian must Know and Do) 참조. 위에서 인용한 카톨 릭편람에는 인용된 신성모독적인 내용 이 외에도 매우 부도덕한 원칙들이 들어 있는데 예를 들면 합당한 범 위 내에서만 사용된다면 사기수법도 해가 될 것은 없다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책에 대한 항 의가 거세게 일었고 이에 아마 이 판의 경우 일반인들에게 회람이 금지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위에 인 용한 구절의 진실성은 확실하다. 나는 리버풀에 있는 한 친구로부터 이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판을 받아 현재도 소유하고 있으며 그 이전에 이미 아르마그(Armagh)의 리챠드 스미스 목사가 갖고 있던 책에서도 그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삼위일체 사상이 로마교인들의 경배를 위해 유포되고 있는 것은 아일랜드에서만이 아니다. 선더랜드(Sunderland)의 로마 가톨릭 사제들이 발행한 카드 혹은 면지 (面紙)에는(이것은 "Paschal Duty, St. Mary' s Church, Bishopwearmouth, 1856" 라는 서두와 함께 내앞
에 놓여 있다.) “친애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네 번째 경고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4. 선교회의 갱신기간 동안 그처럼 자주 여러분에게 권면한, 선한 그리스도인의 행동을 결코 잊지 마시오.
예수님, 마리아 그리고 요셉을 송축할지어다.
예수님, 마리아, 그리고 요셉이여, 당신께 나의 마음 나의 생명, 나의 영혼을 드리나이다.
예수님, 마리아, 그리고 요셉이여, 항상 나를 도우소서.
그리고 나의 마지막 고뇌의 순간, 예수님, 마리아, 그리고 요셉이여, 나의 마지막 숨을 받으소서. 아멘.”
로마의 추종자들에게 이와 같은 “선한 그리스도인의 행동”을 수행하도록 권유하기 위해 로마교회는 많은 뇌물을 제공하고 있다. 위에 언급된 퍼니스(Furniss)의 편람 30페이지에는 “생활규범” 이라는 제목하에 다음 과 같은 구절이 들어 있다. “아침에 당신이 일어나기 전 십자가 성호를 긋고 예수님, 마리아, 그리고 요셉이 여 내가 당신들께 나의 마음과 나의 영혼을 드리나이다.” 라고 말하시오(여러분이 이 기도를 드릴 때마다 당신 은 연옥에 가 있는 영혼들에게 100일 간의 면죄부를 부여하는 셈이니까요)!" 위에서 언급한 퍼니스(Furniss) 의 책의 제목은 Smyth씨의 책제목임을 밝혀야 할 것 같다. 내가 갖고 있는 책제목은 『모든 크리천이 알아야 할 것』(What every Christian must know)이다(London: Richardson & Son, 147 Strand), 두 책 모두 위 에 인용한 신성모독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대주교 파울루스 쿨렌(Paulus Cullen)의 출판승인이 들어 있다.
이것이 이교적 우상숭배가 아니라면 무엇이 우상숭배란 말인가? 바로 이것 이 아일랜드의 로마 가톨릭 교도들이 유아시절부터 찬양하도록 배우는 삼위일체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가장 최근에 나온 교리문답 지침서에서 로마 가톨릭 신도들에게 가장 위대한 헌신의 대상이라고 제시하고 있는 그 삼위일체인 것 이다. 이 신성모독적인 교리를 담고 있는 교리집은 더블린의 대주교 파울루스 쿨렌(Paulus Cullen)의 “출판승인” (Imprimatur)을 분명히 얻은 책이다. 이 순간부터 로마 가톨릭교회는 삼위일체를 교리로 붙들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기독교회로 불려야만 한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이교도 바빌로니아사람들, 이집트인들, 그리고 오늘날의 인도 사람들 역시 로마교회와 동일한 의미 에서 삼위일체의 교리를 붙들었었고 또한 붙들고 있는 것이다. 이들 모두는 삼위일체를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삼위일체이신 여호와, 즉 영원하신 왕이요, 죽지 않으시며, 보이지 않으시는 그분을 경배했다는 말인가? 또한 이제까지의 증거를 눈 앞에 두고서 로마교회가 삼위일체이신 여호와를 경배한다. 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말하는 자는 로마 교회는 기독교회라는 치명적인 착각과 더불어 사라져 주기 바란다. 로마 교회를 기독교라고 생각할만 한 그러한 정상참작요소들이 한 때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이 “위대한 신 비”는 날마다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으며 더욱더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바빌론” 안에서는 인간의 혼들이 쉴만한 안전지대는 없으며 앞으로도 있을 수 없다. “내 백성아, 그녀에게서 나오라.” 이것은 하나님의 분명하신 음성이요 명령인 것이다. 이 명령에 불순종하는 자들은 스스로 파멸을 선택한 셈이다.
[출처] 아이의 어머니|작성자 banpomun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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