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공지

신앙자료실

신앙자료실
조회 수 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정보] 창조사학 특강 - 4. 고대 한민족의 신앙과 번영

https://blog.naver.com/cliok/220924399624

 

 

다음으로, 아사달에 정착한 고대의 한민족은 어떠한 신앙을 가졌으며, 어떻게 살아갔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쪽 사진은 환웅천강도라는 중국에서 발견된 그림입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단군신화를 중국인마저도 그대로 믿고 그려놓은 것이지요.

 

위 사진은 동방에 정착한 셈계의 장자의 백성들은 땅에 충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사달의 넓은 들판과 한반도에 퍼져 나가며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았으나 임금을 세우지 아니하고 그들에게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만이 신앙이 대상이었습니다.
그것은 규원사화 단군기라는 고대 역사책에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신으로 가장 높은 으뜸 자리에 계시며 천지를 창조하고 전 세계를 주관하고, 수 없이 많은 사물을 만드시니 넓고 넓게 둘러싸므로 들어 있지 않은 것이 없고, 아주 밝고 밝아 작은 티끌하나 새지 않도록 하시었다"
이 단군기에 보는 바와 같이 우리민족의 신에 대한 정의가 확실히 보여지고 있습니다. 유일신이요, 창조의 신이요, 빛과 같이 밝은 신이다. 더 이상 논의할 것이 없을 정도로 유대인의 야훼 하나님하고 정의가 똑 같습니다.

또한 고대 한국인들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겼다는 사실이 고조선의 역사학자였던 신지(臣智)의 역사책 삼일신고(三一神誥)에 나타나 있습니다.
"체일용삼(體一用三)이요 삼신일체(三神一體)요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
이렇게 쓰여 있는데, 이것은 몸은 하나인데 활동만 창조의 신, 구원의 신, 역사의 신 이런 식으로 활동만 셋으로 한다. 그리고 이 세 신은 사실은 하나이다. 이 셋이 모이면 하나이다. 이런 뜻입니다. 오늘날의 삼위일체 이론하고 완전히 똑같습니다. 그 까마득한 고대의 우리 조상들이 어찌하여 기독교의 신학에서도 가장 어려운 삼위일체 신학을 정통으로 꿰뚫었을까요?
그것은 원래 우리 민족의 집안이 셈의 제사장 집안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학자인 윤내헌 교수의 고조선사 연구에 보면 "이는 3.1 사상 또는 삼위일체 사상이라고 하는데 그 후에 한민족 사상의 주요한 요소를 형성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흑백논리도 아니고, 있다 없다도 아닌, 항상 세 개의 요소로 설명하고자 하는 의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임금일지라도 항상 나무로 된 집을 짓고 살았고, 돌로 된 집을 짓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이 땅은 나그네와 같은 삶이고 돌아갈 집이 저 세상에 있다는 나그네 정신이 투철했기 때문입니다. 이 나그네 정신과, 훗날에는 구원, 천국, 낙원이 올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복음의 전파가 없었을 때에도 자생적으로 메시아 신앙이 생겨나게 되었고, 옛날부터 지금까지 가지고 오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어떤 때는 미륵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정도령으로 표현되기도 하였지만, 사상 자체는 메시아를 갈망하는 사상이 우리 민족의 고유의 사상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김진홍 목사님의 강연에도 나옵니다.

그 다음으로, 고대 한국인이 지켜 오던 법으로서 팔조(八條)의 금법(禁法)은 유대인들의 십계명과 매우 유사합니다. 오히려 열 개로 늘려 있는 것을 십계명의 뜻은 다 들어 있는 일곱 가지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여덟 번째 계명이 들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align="left"왼쪽>

  1. 너희는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만을 섬기라.
  2. 너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든 생명있는 것을 사랑하라.
  3.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보내신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4.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
  5. 서로 시기하지 말며 간음하지 말라.
  6. 물건을 도둑질한 자는 도둑당한 집의 노비로 삼는다
  7. 남을 상해한 자는 곡물로서 갚아야한다.
  8. 약한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또한 고대 한국인들은 수천 년 동안 왕을 세우지 않고 신정일치의 전통을 잘 이어왔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사무엘이 그토록 원했던, 하나님이 그토록 원했던 그 사상을 고대 한국인들은 오래도록 잘 지켜 온 것입니다. 즉 천군(天君)이라는 제사장의 인도 하에 신정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리고 도읍의 이름도 신시(神市), 즉, 하나님의 도시, 하나님의 마을로 불렀던 것입니다. 나라를 세운 목적도 특정인의 이익이나 특정 종교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은 놀랍게도 '홍익인간(弘益人間)' 즉, 널리 사람 사회에 유익을 끼친다, 모든 인류에게 봉사한다는 뜻의 '이타주의 사상', '박애(博愛)사상', 즉 기독교로 볼 때 '아가페 사상'을 구현하기 위해서 나라를 세웠던 것입니다. 이런 사상을 위해 세워진 나라는 우리나라 외에는 이 세상에 아무 곳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단군(檀君)이 나라를 이끌어 왔는데요, 단군은 어떤 개인의 이름이 아니고 직책의 이름이었습니다. 단군(檀君)이란 신단수(神檀樹)라는 거룩한 나무 밑에서 제사를 인도하던 신정일치 사회에서의 천군(天君)을 뜻합니다.
즉 미스터 헤븐(Mr. Heaven)이지요. 생명나무(生命樹), 즉, 신단수(神檀樹) 아래에서 거룩한 제사를 지내던 천군(天君)을 줄여서 단군(檀君)이라고 한 것입니다. 고대 유대인들도 신이 정한 성역인 에덴동산 중앙에 서 있던 나무아래에서 신에게 경배하였는데요, 우리 민족도 신이 임하셔서 여러 가지를 듣고 지도하던 나무, 즉, 신단수(神檀樹)도 생명나무(生命樹)와 같은 개념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동방으로 이주한 우리민족은 하나님의 규례대로 장자권자(長子權者)가 백성을 보살피는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대제국(大帝國)을 형성하였건만 아무도 영웅호걸을 숭상하지 않고 대제국이라는 이름을 절대로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 기록도 남지 않아 그 대제국의 모습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우리민족을 격하시키기 위해 오랑캐라는 뜻의 동이족(東夷族)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 글자 속에 큰 활이 들어가 있습니다. 동방에 있는 활을 잘 쏘는 나라라는 뜻이지요. 지금도 올림픽에서 활 쏘는 종목은 항상 금메달을 따오지요. 그것은 과거부터 우리민족에 그러한 소질이, 유전자가 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동방족(東方族)이라 불리는 고대 한민족의 여러 나라들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동쪽으로 이주한 한 형제요 공동체의 나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평화와 우애로 살았기 때문에 전쟁이 있을 이유가 없고 자기 자랑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바빌로니아다, 앗시리아다, 징기스칸이다 하며 자기 이름을 남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러한 지식의 부족으로 일부 학자들에 의해 약하고 부족한 민족으로 평가절하 되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평화를 사랑한 우리 조상들은 흰옷을 즐겨 입어서 '백의민족(白衣民族)' 이라고 불려 졌으며, 큰 자는 작은 자를 섬기고, 작은 자는 큰 자를 공경하여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사를 기록한 역사서 중의 하나인 회남자(淮南子)는 이 동방에 있는 장자권의 나라, 곧 엘람과 앗수르의 나라를 군자의 나라라고 기록했던 것입니다. 회남자 대형훈(淮南子 隊形訓)을 한번 읽어보시겠습니까? 

"동방에 군자의 나라가 있으니 동방의 덕목이 어진 고로 군자의 나라가 있다 하느니라."
'중국의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중국의 정치가 혼란에 이르면 동방에 가서 배워 오라.' 이것이 고대 중국사람들이 오랫동안 진심으로 의존했던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21세기의 중국인들이 오늘날의 한국인들을 회남자(淮南子)의 이 말대로 보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지 않을까요?
"동방에 돈 독(毒)이 오른 나라가 있으니... 돈 독(毒) 의 나라라 하느니라."
한류열풍도 돈과 관련하여 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섬김과 사랑으로 이웃나라를 도와서 고대에 빛나던 한민족의 이름을 다시금 높여야 할 것입니다.

  오른 쪽 그림은 고인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고인돌에 대해서는 무덤이다 제단이다 여러 가지 학설이 많습니다마는 원래는 제단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제단을 지키던 원로가 돌아가시니까 평생 정들었던 고인돌 밑에 묻어드리고,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까 제사보다는 형식만 남아가지고 조상 제사 드리는 무덤으로만 인식 되어 버린 것입니다.
고인돌은 대단히 큽니다. 어떤 것은 상판의 길이가 10m, 폭이 4m 되는 것도 있습니다. 엄청나게 큰 제단, 거대한 돌 강대상입니다. 그래서 그 위에 제물을 올려놓고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편집자 주: 세계적으로 고인돌은 'Dolmen'으로 불리운다. 이것은 우리말의 '돌멩이' 바로 그것이다)
전 세계에 고인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 세계 고인돌의 50퍼센트가 한반도와 만주 땅에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우리 민족이 거의 대부분이 성직자 집안이었다, 곧, 전 세계 강대상의 50퍼센트가 우리나라에 있었으니, 우리는 제사장 집안이었다 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종교적인 민족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세운 고조선의 영역을 지도로 나타내면 왼쪽 그림과 같습니다. 동방족들은 아리라, 곧 지금의 송화강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만주와 한반도, 그리고 일본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흩어져 살면서 서로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따라온 중국인들, 곧 야벳 족속들은 중원대륙으로 내려갔을 때, 기술, 종교, 문화적으로 그 능력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동방족 형님들에게 계속적으로 도움을 청하게 되었으며, 동방족들은 중국인들을 계속해서 도와주다가 그중의 일부는 아예 산동반도에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산동반도와 중국의 동해안에 걸쳐 동이족들이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중국인들을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중국의 역사기록을 토대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동방족들은 이 일대를 중심으로 해상왕국을 만들게 됩니다. 훗날 장보고 시절에도 이 지도가 그대로 복원됩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이주해온 경로를 잘 알기 때문에 심지어는 수메르의 잔재로 남아있던 나라, 비록 니므롯의 나라가 되어 버렸고 바벨론의 나라가 되어 버렸지만, 그 추억을 더듬어서 고대 고구려와 신라의 사신들이 도로 찾아가는데, 그 당시 역사기록을 보면 중동에 '수밀이국'이라는 나라가 있어서 '수밀이국'과 교통하였으며, 무슨 왕 몇 월 며칠에 '수밀이국' 사람 몇명이 찾아 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록 수메르는 망했고, 이미 나라 이름이 바뀌었지만, 과거의 기억을 통해 여전히 수메르라고 불렀으며, 한자로 표현하다 보니 '수밀이'가 된 것입니다.

오른 쪽 그림은 수메르국 여인의 장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래 왼쪽 그림은 수메르 땅의 제국인 페르시아, 곧 성경의 '파사'지역에 남아있는 벽화입니다. 이 벽화에 보면 외국사신들을 맞이하고 있는 모습인데요, 제일 오른쪽에 보시면 긴 도포를 입고 머리에 깃털 장식을 하고 당당하게 칼을 차고 있는 이 청년은 바로 한국 (고구려나 신라)에서온 청년입니다. 그래서 고구려와 신라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여러 나라와 활발하게 교류를 나누었음을 이 벽화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래 오른 쪽 그림은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에 남아있는 사신들의 행렬도 벽화입니다. 전 세계의 사신들이 페르시아 (파사)의 왕에게 알현하면서 선물과 조공을 바치는 모습이지요. 그런데 이 많은 사신 중에 몇몇 사람들은 까마득한 땅 끝, 동방에서부터 온 동방족 사신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규원사화
내용

서문·조판기(肇判記)·태시기(太始記)·단군기(檀君記)·만설(漫說)로 구성되어 있다. ‘규원’이라는 책 이름은 작자가 부아악(負兒岳:지금의 북한산) 기슭에 지은 자신의 서재 이름에서 딴 것이다. 작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쓴 동기가, 과거시험에 낙방한 자신의 울적한 심기를 달래려는 것과 왜란과 호란을 겪은 뒤의 민족적 울분 속에서 씩씩한 국사(國史)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왜란과 호란을 겪은 뒤에 여러 사서(史書)가 출간되어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있었지만, 작자는 유학자들의 사관은 주체성 없는 존화사대사상에 젖어 있다고 비판하면서, 유학자들이 외면해 온 고기(古記)들을 참고하여 우리 나라 상고사를 재구성한 것이다.

작자가 참고한 책은 고려 말의 이명(李茗)이 지은 ≪진역유기 震域遺記≫인데, 이 책은 고려 초 발해의 유민이 쓴 ≪조대기 朝代記≫를 토대로 한 것으로 ≪삼국유사≫보다 훨씬 씩씩하게 쓰여진 사서이다. ≪조대기≫가 실재했던 고기임이 ≪세조실록≫을 통해서 확인되므로, ≪진역유기≫라는 책도 실제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의 <조판기>와 <태시기>에서는 환인(桓因)이라는 일대주신(一大主神)이 천지를 개창하고, 환웅천왕(桓雄天王, 일명 神市氏)이 태백산에 내려와 신정을 베푸는 과정이 서술되어 있다.

즉, 환웅은 신교(神敎)를 선포하고 치우씨(蚩尤氏)·고시씨(高矢氏)·신지씨(神誌氏)·주인씨(朱因氏) 등, 신하의 보필을 받아 366가지 일을 다스렸다는 것이다. 특히, 치우씨는 병기를 제조하고, 고시씨는 농업과 목축을 주관했으며, 신지씨는 문자를 발명하고, 주인씨는 혼인제도를 만들었다. 또한, 복희씨(伏羲氏)는 팔괘를 만들어 음양과 역학(易學)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단군기>에서는 환검(桓儉)으로부터 고열가(古列加)에 이르는 47대의 왕명과 재위기간, 그리고 각 왕대의 치적이 서술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치적이 많은 것은 환검이다. 그는 환웅의 아들로서 요(堯)임금과 같은 시기에 박달나라 임금이 되어 수도를 길림(吉林)에 두었으며, 9개의 대국과 12개의 소국을 거느려 그 영토는 멀리 요서(遼西)지방에까지 미쳤다.

이 시기에는 문화도 더욱 발전하여 8가(八加)의 관료를 두고, 제천(祭天)을 시작했으며, 8조의 가르침을 지어 백성을 교화하였다. 2대 임금 부루(夫婁)는 큰 홍수를 다스리고 도산(塗山)에서 하(夏)의 우(禹)임금과 만나 화해했으며, 환인·환웅·환검을 제사하여 비로소 삼신(三神)에 대한 제사가 확립되었다.

부루는 또한 중국의 순(舜)임금이 차지하고 있던 중국 동북지방을 빼앗고, 국내의 반란을 진압하여 옥저·비류·졸본을 거느리게 되었다. 부루 이후의 임금들은 그 치적이 간단히 처리되어 있는데, 47대 임금 고열가에 이르러 제후가 난립하면서 열국시대가 전개되는 것으로 <단군기>는 끝난다.

마지막으로 <만설>에서는 우리 나라가 만주를 잃어버린 뒤 약소국으로 전락한 것을 개탄하면서,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그 첫째는 지리(地利)로써 잃어버린 만주땅을 되찾는 것이고, 둘째는 인화(人和)로써 당쟁을 버리고 단결하는 것이며, 셋째는 보성(保性)으로써 우리 풍토에 맞는 고유문화의 장점을 지니면서 남의 장점도 받아들이는 일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고유문화는 바로 단군시대부터 내려오는 신교(神敎)이며, 주자학은 사대사상의 근원으로서 철저하게 매도된다.

이 책은 결국 민족고유신앙인 신교의 입장에서 쓰여진 일종의 종교사화(宗敎史話)인데, 엄밀한 문헌고증의 토대 위에서 구성된 역사책이 아니라, 주로 전승되어 온 민속자료에 의거해서 엮어진 것이다. 따라서, 상고사의 역사자료로서 가치를 지닌다기보다는 한국문화의 저류를 이루어 온 민속적 역사인식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 가치를 지니고 있다.

현재 우리 나라 역사의 창세기와 단군조선에 관한 기록은 고기라고 통칭되어 온 국내측 자료밖에 없다. 중국인들은 기자 이후의 역사만 적었을 뿐이다. 고기는 처음에는 삼신(환인·환웅·단군)에 관한 전설만 적었으나, 시대로 내려오면서 삼신 이후의 역사를 첨가해 놓았다.

예를 들어 조선 세조 때 권람(權覽)이 지은 ≪응제시주 應製詩註≫에서는 단군의 아들 부루가 도산에서 하우(夏禹)와 만났다는 이야기가 첨가되고, 18세기 초 홍만종(洪萬宗)의 ≪동국역대총목≫에서는 단군이 백성들에게 편발(編髮)과 개수(蓋首)를 가르치고 군신·남녀·의복의 제도를 정했으며, 단군이 팽오(澎吳)에게 명하여 국내의 산천을 다스렸다고 썼다. 그러나 대체로 유학자들의 역사책에서는 부루 다음의 왕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단군시대 47대 왕명을 나열하고, 나아가 동이(東夷)라고 총칭되었던 동방의 여러 종족들을 단군조선의 주민인 배달민족으로 간주하여, 단군조선의 역사를 웅대한 대제국으로 재구성한 것은 대체로 한말의 대종교(大倧敎) 성립 이후부터이다. ≪단기고사 檀奇古史≫와 ≪환단고기 桓檀古記≫는 대종교인들이 쓴 대표적 사서로서, 전자는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大野勃)이 지은 것이고, 후자는 역대의 고기들을 모은 것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실은 한말·민족항일기의 대종교인들이 창작해서 넣은 대목이 적지 않다. 특히, 단군 47대의 왕명은 ≪규원사화≫의 기사를 그대로 전재하고 있어서, 이 책이 대종교의 역사관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규원사화≫나 그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대종교인의 사서들은 단군조선의 역사를 실제 이상으로 과장하여 서술하였으므로, 이를 역사적 진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여겨진다.

더욱이, 동이족을 모두 배달겨레로 해석한 것은 여진족·거란족·몽고족 등 북방민족까지도 한민족으로 오인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단군조선이 기원전 24세기에 이미 거대한 제국을 형성했다는 것도 문헌자료는 물론이요 고고학자료에 의해서도 아직 증명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책들이 조선 후기와 한말에 유행했다는 것은 그 나름의 사상사적 의미가 크다. 왜냐하면, 조선시대 사상사의 흐름 속에 유학자들의 역사의식에 대항하면서 그들에게 지속적인 자극을 주는 민족고유의 사상적 흐름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상의 근간이 되는 단군민족주의가 민족항일기에는 독립운동의 거점 마련에 커다란 구심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은율 고인돌

 

황해도 은율군 운산리 소재. 길이 약 8미터로,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북방식 고인돌이다.

 

개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에 성행하여 초기철기시대까지 존속한 거석문화(巨石文化)의 일종이며, 고대국가 발생 직전의 사회상을 표현하고 있다. 고인돌은 지역에 따라 호칭이 다른데, 한국과 일본에서는 지석묘(支石墓),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유럽 등지에서는 돌멘(Dolmen) 등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도에는 강화의 부근리·삼거리·오상리의 약 120여 기(基)의 고인돌군, 고창 상갑리·죽림리 등 고창군 전역 205군집(群集) 총 1,665기의 고인돌, 화순 효산리·대신리의 고인돌 500여 기 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전 세계적인 관심 속에 보존·관리되고 있다

 

한반도 고고학 15

 

 

한반도 인류전파설 유력

 

구석기부터 역사시대까지의 주역

일찌기 예술 · 과학 고도로 발달한 민족

 

 

우리나라 예언자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이분이 바로 정감(鄭鑑)이란 분이다.

앞에서 잠깐 밝힌 바 있지만 이분은 조선조 중엽에 활동한 사람으로 이씨 선조 이담이란 사람이 이씨의 대흥자가 될 정씨의 조상인 정감이란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라고 하며, 이씨의 한양 오백년이후 정씨의 계룡산 몇백년, 조씨의 가야산 몇백년, 그 다음은 범씨의 완산(完山) 몇백년 등 이씨왕통이 끝나도 계속해서 위와같이 이어진다는 흥망대세를 추수(推數)하여 밝혔고 그 중간에 세태와 민심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차례로 예언해 놓은 정감록 비결책이 있다.

이 예언서는 격암 · 토정 · 도선 · 무학 등의 예언서에서 발췌한 것을 포함하고 있는데 정감과 이담이 사실인물이란 증거는 없으며, 문헌상으로는 정조9년 1785년 홍복영(洪福榮)의 옥사에서 정감록이라는 책에 대한 언급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감록 비결책은 남사고의 예언을 방불케 하는데 이는 남사고의 예언을 정감록이란 비결책을 만들때 많이 응용했으리라 사료된다.

이밖에 우리 민족에게는 「남조선신앙(南朝鮮信仰)」이란 미래의 영원한 우리나라를 뜻하는 예언이 민간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조선조말때의 어수선한 세태속에서도 희망을 안겨주는 남조선「염원복락 피난처」라는 예언은 이미 오래전부터 민가에 널리 뿌리박고 있었는데 격암비록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남조선신앙」은 외국 여러나라에 나타난 낙원처 유래 즉 인도의 … 히브리인의 에덴동산, 도교의 상청옥경(上淸玉京), 그리스도교의 천국 등에 비하여 매우 세부적이며 객관적 사실의 충동에 의해 자연히 성립되었다는 점과 … 고정하여진 것에 대해 미완성기변동의 것으로서 언제든지 필요한 수정과 보충을 가할 수 있는 점 다시 말하면 다른나라 것은 극히 주관적이며 공중누각에 지나지 않는데 비해 이것은 진보한 형태에 있는 것에 특색이 있다고 본다.

이와같이 한민족의 예언은 수천년을 두고 지속적으로 내려오고 있기 때문에 누구의 예언도 특별한 특징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필자는 위의 예언들을 고고학과 같이 과학적인 분석 검토를 피하고 독자들이 읽으면서 이해하는 방향으로 기술하였다.

지금까지 「한민족기원」을 통해 남다른 민족관을 펴 보임으로써 잊혀졌던 상고사를 재 발굴하는 과정에서 한민족의 역사와 경제와 사회문화 그리고 과학까지 또 장래의 예언까지 구석구석 살펴 보았는데 우리민족은 참으로 위대한 민족임을 재발견케 하였다. 그 결과 우리민족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드문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지닌 민족이며 동양삼국 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종주국(宗主國)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한반도에는 고고학계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적어도 1백만년 전에 한민족의 직계조상으로 믿어지는 고 인류들이 단양을 중심해서 살았으며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면서 석장리와 전곡과 이북 상원 용곡리 등 가는 곳곳마다 구석기시대부터 살기 시작했고 이 조상들이 중기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와 오늘에 이어지면서 계속적으로 살아온 증거가 오산리 신석기 유적과 주암댐 수몰지역 유적에서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러한 한반도에 우리민족의 기원지 및 아시아 특히 중앙 및 동북아시아의 인류기원설을 한반도에 두는 것은 지금까지 믿어왔던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유물보다도 한반도가 훨씬 앞서 있음을 고고학 조사결과 점차 드러나고 있는데 유인된 것이다. 최근 용곡리에서 약40만년전의 유인두개골이 대량 발견됨으로 해서 중국의 주거점 유물을 연대상 능가하거나 맞먹는 시기인데 중국의 북경원인은 실은 그 증거가 미약한 상태이다.

프랑스 고고학자 떼이이르 드 사르댕과 데이비드슨 블랙 박사는 주거점의 석회암 동굴에서 화석퇴적장소를 발굴하여 사람의 어금니 2개를 발견하고 이것을 북경원인이라 명명하고 이 어금니를 중심하여 두개골을 상상해서 복원한 것이 바로 북경원인이다.

그것마저도 없어지고 지금 박물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그 모양을 상상해서 만들어 놓은 석고라는 것이다.

그 이외도 북경원인에 대해 신빙성을 부정하는 증거들이 있다. 함께 발굴한 배문중(裵文中 : 고생물학자)의 1928년 여름 발굴책임자의 보고서 내용에 북경원인은 자바원인과 거의 같다고 밝혔는데 이것은 북경원인이 석회암 광산에서 채석하는 인부들에게 죽은 원숭이 두개골을 가져다가 북경원인이라고 조작한 사실이 무근이 아님을 말해 주는데 자바원인은 발견자 네덜란드 사람 듀보아의 날조품인 첫번째의 두개골은 원숭이뼈로 발각되었고 두번째 두개골은 약 5백년전 화산폭발로 죽은 현대인의 두개골임을 1907년 셀렌카씨의 조사에 의해 탄로난 유명한 일화로 미루어볼 때 북경원인도 치아복원설의 정식보고 뒤안길엔 조작설이 있고 보면 한국의 용곡리의 많은 두개골은 어쩌면 한반도의 인류전파설이 가장 유력함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한민족은 구석기시대는 물론 역사시대의 주역임을 말없이 위와같은 자료들이 뒷받침되고 있어 한반도에서 빙하기시대때 간빙기때 더위를 피해 북상하는 사슴과 곰 등 먹이를 따라 만주와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그리고 알래스카 · 남북아메리카까지 확산됐고 유럽 전지역까지 퍼져 산 흔적이 고고학적으로 발굴되고 있어 황인인 우리 민족이 온 지구상에 선주주민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환인국은 전 아세아에 약 1만년전에 12환국을 두었고 환웅 18대, 환검(단군) 47대로 내려오면서 광활한 영토와 거대한 민족(BC1666년 고불단군왕조시대 인구조사에 의하면 총인구 1억 8천만명이었다고 함. 그 당시에 아시아 인구 전체를 말함)임이 드러났고 세계에서 가장 먼저 예술과 과학이 고도로 발달된 민족임을 여러가지 측면에서 훝어 보았다.

위와같은 유구한 한민족의 모든 역사내용물을 하루속히 한국의 정식 역사책에 수록하고 교과서에 밝혀 한민족의 주체의식을 회복하여 빛나고 잘사는 미래의 한국을 건설하기를 독자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리며 이만 한민족기원을 끝마칠까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다선(茶仙) 우찬무(禹燦武) -

 
갈대아 우르

 


"갈대아인이 살던 '우르' 라는 지역이 있었다."

 이런 말이 성경에는 기원전 1400년 전, 즉 지금으로부터 3400년 전에 기록된 창세기 11장 31절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나옵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하여 아브라함의 가족들이 갈대아인의 땅 우르라는 곳에 살았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성경의 이 말씀을 한낱 전설과 같이 우습게 알고 수천년을 지나 왔습니다. 근대까지만해도 아무도 이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800년대 후반에 와서야 지금의 이라크 땅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가 만나는 지점에서 많은 고고학적인 발굴이 이루어짐으로써 정말 갈대아 우르지방이 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위에 지도가 나와 있는데요.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고 있고, 티그리스 강이 그 위로 흐르고 있는 그 사이에 비옥한 땅이 주욱 유지되고, 지중해 까지 연결이 됩니다. 그래서 비옥한 초생달 같은 모양이 유지가 되지요. 메소(사이) 포타미아(강)는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으로 시날 평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끝 부분, 바로 이 곳이 우르지역입니다. 그곳에서 많은 고고학자들이 1800년대 중반부터 많은 고생을 하며 연구를 하였습니다. 왼쪽 그림은 갈대아 우르 지역을 발굴하고 있는 실제모습입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들이 발견되었는데, 아주 정밀한 수로를 만들어서 그 지역의 농사를 위해 물관리를 철저히 한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많은 점토판에 완벽한 지도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수메르 

 


엔키의 어깨 위로 물줄기가 흐르고 있으며 엔키 앞에는 태양신 우투의 모습도 보인다.

​ 
  주택단지들을 파 들어가 보다가 고고학자들은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지금 세계사 책에 보면 인류 문명의 최초의 문명으로 갈대아 우르 지역의 수메르문명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최초의 문명임에도 불구하고 건물 하나가 많게는 수백개의 방이 있는 건물을 비롯해 굉장한 주거지역을 이루며 살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당시에 이미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이 완비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상수도와 하수도를 만들었습니다. PVC나 스텐파이프는 아니고요, 도자기를 구워 상하수도 시설을 한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 그저 원숭이 비슷한 존재들이 아니고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조차도 상하수도 시설을 제대로 갖춘 것이 이제 몇 년 되었습니까? 그런데 인류 최초의 문명이 이미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래는 2005. 2. 26. 조선일보 기사 '대영박물관이 온다'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이라크 남부의 고대유적도시 우르. 1920년대 발굴에서, 서기전 2600~2400년으로 추정되는 여왕 푸아비의 무덤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10명의 여인이 순장(殉葬)됐는데, 한 여인의 주변에서 금빛이 번쩍였습니다. 황소의 황금 가면이었습니다. 황금 황소는 목제 11현 수금(竪琴·하프의 일종)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발굴단장 L. 울리는 “순장된 한 여인의 손은 현이 있던 위치에 놓여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20세기 발굴 유물 중 최고품의 하나로 꼽히는 4500여년전 수메르문명의 수금은 이렇게 발굴됐습니다.

   우르 지역에 살던 수메르 인들이 섬기던 신들중에 가장 대표적인 신이 '이난나' 여신인데, 이것이 이난나 여신의 상입니다. 머리에 있는 이것은 뿔이 아니라 '달'(초생달)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여신이 흥분도 하고 땀도 흘리고 하면, 비도 많이 오고 농사도 잘 된다고 생각하여, 봄철에 이난나를 숭배하는 기간동안 모든 여성이 남성들과의 자유로운 성교를 즐길 수 있게 하였으며, 신전은 공공연한 난교의 장이 되었지요. 그런데 이 이난나 여신이 가나안 지역에서는 아스다롯 여신으로 불렸고,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로 들어가면서 이쉬타르 여신이 되었으며, 그리이스로 가서는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되었으며, 결국 로마로 가서 비너스가 되었습니다. 그 신이 다 그 신이고, 그 원조가 이난나 여신입니다. 의학적으로 성병을 베네리얼 디지즈(Venereal disease, VD)라 부르는데요, 이 베네리얼이란 말은 비너스의 형용사로서 비너스 여신으로부터 유래된 말입니다. 비너스 여신이 관련된 병이라는 것이지요. 비너스 신전의 모든 성직자들은 여자들인데, 이 여사제들의 성은 완전개방이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은 하나의 사상으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수메르 문명에 대한 가장 놀라운 발견중의 하나는 수메르 문자의 발견입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자는 수메르 사람들이 쓰던 쐐기문자입니다. 쐐기라는 것은 곤충 중의 풀쐐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고정시킬 때 박는 쐐기(Wedge)를 말합니다. 한자로는 설형문자라고 부릅니다. 보시는바와 같이 이런 수많은 점토판이 발견되었는데요, 그 어순( 語順)이 서양이나 중동 사람 말이 아닌, 한국어와 제일 비슷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문장이 주어+목적어+동사의 순이고요, --'가', --'을' 등의 토시를 붙여서 말을 구성하며, '밭'을 '받'이라고 하고, '길'을 '길'이라고 하고, 아버지를 집에서는 '아바'라 하고, 남에게 말할때는 '아비'라 하며, 높은 분을 높여 부를 때는 이름뒤에 '님'자를 붙입니다. '하늘'을 '아눌'이라고 하고 하늘을 높인 말 즉 '하늘님'을 '아눌님', 혹은 '아누님'이라고 하지요. 그러한 말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또 놀라운 것은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귀하게 숭상하던 꽃이 'Rose of Sharon' 즉, '샤론의 장미'입니다. 예수님의 별명도 '샤론의 장미'이지요. 찬송가 89장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이 꽃의 학명은 히비스쿠스 시리아쿠스(Hybiscus syriacus) 인데요, 그것은 바로 무궁화 꽃의 학명과 동일합니다. 그 옛날 고토 메소포타미아 땅에서 바벨탑 사건 이후에 동방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 유래의 언어와 자취와 그들이 사랑한 꽃을 가져와 극동에 위치한 우리나라까지 대장정을 행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수메르인의 설형문자 점토판에서 발견된 놀라운 사실중의 하나는 대영박물관의 조지 스미스라는 청년이 평생을 바쳐 연구하여 밝힌 '길가메시 에픽'에 관한 기록입니다. 수메르의 길가메시라는 족장이 기록한 서사시인데, 그 내용이 성경의 노아의 홍수 이야기와 내용이 거의 같습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의 기록에 노아의 홍수 사건 기록이 나온다는 것인데, 이는 인류 최초의 문명 이전에 분명 노아의 홍수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수메르 문명이 홍수 이후에 생겨난 문명임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수메르라는 말의 어원은 '세메르'에서 왔는데, '셈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노아의 아들중에서 장자권을 가진 자 '셈의 나라'라는 것이지요.

고대(古代) 수메르의 신전에서 사람들이 맥주를 빚고 성행위를 한 까닭은?

세상을 바꾼 식품이야기(1) 보리편- 강인한 생명력의 보리 이야기

글 | 홍익희 세종대 교수

쑥 보다도 더 강한 보리의 생명력
 

보리는 그 생명력이 뛰어나 가을에 파종만 해놓으면 추운 겨울에 강인하게 자라서 초여름에 열매를 맺습니다. 농약도 필요 없어 청정 유기농식품입니다. 강한 생명력을 지닌 쑥조차도 겨울에는 뿌리만 땅속에서 그 생명을 유지하는데 보리는 혹한의 추운 땅에서 왕성하게 자라는 걸 보면 보리는 쑥보다도 더 강한 생명력을 지녔습니다.
고대 수메르 지역에 소금기가 지하에서 올라와 밀농사를 못 짓게 되었을 때도 이를 보리로 대체해 농사지을 정도로 보리는 염분에도 비교적 강한 내성을 갖고 있습니다. 추운겨울에 불모의 토질에서도 잘 자라는 보리는 현대과학으로도 해명할 수 없는 놀라운 신비를 품고 있습니다.
밀과 보리, 이 둘은 특히 겨울에 농사를 짓기에 잡풀도 없고 벌레도 없어 무공해 농사가 가능한 작물입니다. 게다가 겨울에 땅을 놀리지 않고 작물을 심어 흙의 생명을 지켜주는 환경 파수꾼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석기시대의 수렵채취 생활을 마감하고 한 곳에 정착하여 밀과 보리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매우 의미가 큽니다. 경제사를 제도발전 차원에서 다룬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더글러스 노스 교수는 이를 ‘신석기혁명’이라 명명하였으며 이는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큰 변화로 보았습니다. 그만큼 밀과 보리는 인류에게 중요한 양식이자 삶의 큰 변화를 가져다준 식량이었습니다.

맥아란 무엇인가?
보리하면 맥주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맥주는 보리의 씨앗을 싹 티운 ‘맥아’로 만듭니다. 신석기시대에 인류는 이미 날곡식의 싹을 틔우면 소화하기에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 곡물이 발아하는 과정에서 효소인 디아스타제가 만들어져 곡물의 녹말을 당분으로 바꾸는 작용을 합니다. 게다가 보리는 겨울에 자라서 성질이 차기 때문에 소화기능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리를 발아시켜 햇볕에 말린 맥아는 따듯한 성질로 바뀌었기 때문에 위장을 편안하게 하여 소화가 잘됩니다.
보리의 싹을 틔운 맥아가 맥주를 만들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주요 재료입니다. 몰트위스키 할 때의 ‘몰트’(malt)가 바로 맥아입니다. 넓은 의미로는 보리 말고도 밀, 호밀, 귀리, 쌀과 같은 다른 곡물의 싹을 틔운 것도 몰트에 들어가지만 보리가 워낙 압도적이라 몰트 하면 그냥 맥아로 통합니다. 명확하게 보리를 싹틔운 맥아를 뜻할 때에는 발리 몰트(barley malt)라고 부릅니다.
보리를 비롯한 곡물은 싹이 틀 때쯤 많은 양의 디아스타제(아밀라아제)를 만들어냅니다. 아직은 광합성도 못하고, 뿌리로 영양을 빨아들이는 것도 힘에 부친 어린 싹은 씨앗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녹말을 당분으로 바꾸어 성장 에너지를 얻어야 하므로 당화효소의 함량이 크게 늘어납니다. 싹이 터서 당화효소의 양은 크게 늘어났지만 녹말은 아직 별로 소비되지 않았을 때 말린 것이 바로 맥아입니다.
맥아의 효소로 녹말은 맥아당(엿당)이라 부르는 당분이 됩니다. 영어로는 말토스(maltose)라 합니다. 밥을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나는 것도 맥아당 때문입니다.


엿기름이 바로 맥아?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부터 즐겨 썼던 재료로 식혜와 엿을 만드는 데 쓰이는 엿기름이 바로 맥아입니다. 껍질을 벗기지 않은 보리를 물에 담가 두어 싹을 내서 말린 것이 엿기름입니다. 엿기름은 싹의 길이가 보리알의 2/3∼3/4 가량인 것을 단맥아, 1.5배∼2배가량 자란 것을 장맥아라고 하는데 1.5배가 되었을 때 아밀라아제와 같은 효소의 양이 가장 많아집니다. 단맥아는 맥주용이고 장맥아는 식혜나 엿을 만드는데 사용됩니다.
이렇게 해서 말린 보리 싹은 녹말을 당분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엿을 만들기 위해 기른 보리 싹'이라는 의미에서 '엿기름'입니다. 옛날에 설탕과 꿀이 귀해 감미료로 쓰인 게 바로 엿기름을 이용한 엿이나 물엿이었습니다.
엿을 만들려면 먼저 엿기름을 이용하여 식혜를 만들고 그것을 오랫동안 고면 됩니다. 전통적인 엿 제조방법에서는 더운 아랫목에 항아리를 놓고 그 속에 고슬고슬하게 지은 뜨거운 밥을 넣고 찬 엿기름물을 붓습니다. 이것이 7~8시간 정도 지나면 삭아서 밥알이 동동 떠오르고 이를 베자루에 담아 눌러 짜면 뽀얀 당화액이 나옵니다. 이것을 솥에 담고 눌러 붙지 않게 잘 저으면서 고아줍니다. 잘 곤 엿은 붉은 호박 색깔이 납니다. 엿은 농도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아주 묽어서 음식에 감미료로 사용되는 시럽 형태의 엿은 조청이라고 하고, 오래 졸여서 단단하게 굳힌 것은 갱엿이라고 합니다.
맥주의 기원- 신전에서 맥주를 빚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기원전 4,200년경의 ‘모뉴멘트 블루’ 점토판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수메르 사람들이 방아를 찧고 맥주를 빚어 ‘니나 여신’에게 바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점토판을 해독한 결과 수메르인들은 오늘날과는 달리 보리로 만든 빵을 물과 함께 섞어서 자연발효 시켜 맥주를 만들었습니다. 그 무렵 수메르 사람들은 다양한 맥주를 만들었습니다. ‘시카루’라고 하는 보통 맥주 외에도 강한 맥주, 검은 맥주, 붉은 맥주 등 여러 종류의 맥주를 만들어 마셨습니다.

(고대의 맥주 제조)

점토판에 의하면 그 무렵 수메르 사람들은 맥주를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로 생각하여 사원 안에서 종교의식의 하나로 이 술을 빚었습니다. 당시 맥주를 만드는 일은 여성이 맡아서 했으며, 술 빗는 양조가는 존경받는 직업이었습니다. 맥주와 관련된 신화에는 어김없이 여신들이 등장합니다.
수메르 사람들은 맥주를 만들어 여신에게 봉양한 후 급료로 지급하거나 선술집에서 이를 마셨습니다. 수메르 사람들은 맥주를 ‘마음에 즐거움을 주고 간장에 행복을 주는 음료’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국가로부터 매일 2~3 주전자의 맥주를 지급받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매일 엄청나게 마셔댄 셈입니다.
그 무렵 맥주는 걸쭉한 죽과 같은 형태로 한 끼 식사대용으로 충분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당시 맥주는 알코올 도수도 낮았습니다. 발효가 많이 되어 술이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초기에 발효를 중단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리로만 만든 게 아니라 잡곡이나 렌즈 콩, 귀리 등을 섞어 만들었습니다. 발효 된 맥주에서 곡물을 거르지 않고 먹었기 때문에 걸쭉한 게 “마시는 빵”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성행위가 종교 의식의 하나

 

(신전에서의 성행위)

그 무렵 신전에서 맥주를 빚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수메르 사람들은 농사에 도움을 주는 비는 신의 땀방울이라고 여겼습니다. 신들이 성행위를 자주 해야 비가 많이 내려 풍년이 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신이 성적으로 흥분해 땀을 흘리게 하기 위해서는 신전의 여사제들이 하늘의 신들이 볼 수 있도록 신전에서 성행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전 제례에 참가하는 사람은 여사제와 '사통하는' 의식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성행위가 곧 종교의식이었습니다. 그들은 성행위 때 맥주를 마셨습니다.

 

 

==========================================================================

성경이 말하는 공룡의 생성과 멸종 원인 [스크렙] |[천지창조의 증거들]

  

 

 

성경이 말하는 공룡의 생성과 멸종 원인

Creation Evidence Museum

 


고체 궁창으로 나뉘어진 물

성경의 창세기에 기록된 궁창의 의미를 이해하면, 노아 홍수 이전의 지구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궁창을 만드시고 궁창 위에 있는 물들에서 궁창 아래 있는 물들을 나누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세기 1:7. 성경은 궁창에 의해서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궁창은 물이 아니었다는 결론을 추론해 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물로 물을 가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궁창이라는 것에 의해서 물이 궁창의 아래와 위로 나뉘었다면, 궁창이란 무엇일까? 궁창에 관한 과학적 이론을 연구해 보면, 지층에서 화석으로 발굴되고 있는 공룡의 생성과 멸종에 관한 신비도 벗겨낼 수 있다.


 

궁창에 대한 히브리 원어를 찾아보면, 궁창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궁창의 히브리 원어는 "라퀴아" 인데, 이것은 어떤 것을 압축시키고 늘려서 만든 고체의 막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창세기에 기록된 궁창은 원어의 의미처럼 고체 상태의 어떤 것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물리학자인 댄 쿡 박사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물 분자를 압축시켜서 초저온 상태에서 냉각시키면 물이 수정같이 투명하며, 빛이 굴절되고, 전기가 매우 잘 통하는 강자성 물질로 변하게 된다고 한다. 현대 과학자들은 지구의 표면으로부터 11마일 상공에는 온도가 급격하게 하강되는 지역이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도 창세기가 말하는 고체 궁창의 가능성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또한 비록 환경이 다르기는 하지만, 토성을 두르고 있는 수정같은 얼음의 테를 통해서도 지구의 고체 궁창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거대한 생물의 생존을 가능케 했던 고체 궁창

성경은 노아 홍수 이전에는 지구에 비가 없었다고 말한다. 성경의 이러한 이야기는 고체 궁창의 이론을 통하여 그 사실 여부를 증명할 수 있다. 에너지 투과력이 강한 고체 궁창은 우주로부터 오는 에너지를 지상으로 전달하며, 지구 전체에 온실과 같은 효과를 주고, 지구의 표면에서 발생되는 수분의 증발을 조절해주었기 때문에 비가 없이도 생물의 성장과 유지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과학자들은 궁창이 태양으로부터 오는 핑크빛 광선을 매우 효과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생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태양에서 오는 이 핑크색 광선은 식물의 세포를 자극함으로써, 세포의 성장을 크게 촉진한다고 한다. 노아 홍수 이전의 지층으로 보이는 지층에서 엄청난 크기의 식물 화석이 발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리콥시드라고 불리우는 이끼 화석은 16인치나 되며, 100피트에 이르는 것도 있다. 그렌로즈 박물관팀은 태양 광선이 고체 궁창을 통과할 때에 발해지는 핑크빛 광성의 영향으로 노아 홍수 이전 세대에 거대한 식물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고 발표하였다.


 

일본의 어떤 생물학자의 실험 결과가 1991년 5월 National Geographic에 소개됨으로써, 핑크빛 광선의 특별한 기능이 온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체리 토마도를 지하실에서 기르던 일본인 과학자는 체리 토마도에 햇빛을 잘 공급해 주기 위해서 지하실 창문에 특별한 햇빛 반사 장치를 설치하였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이 체리 토마도가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현상을 매우 기이하게 생각한 그 과학자는 토마도에 비추어 지는 햇빛을 분석해 본 결과, 햇빛 반사기가 식물에 성장에 해로운 자외선을 여과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즉, 이 햇빛 반사기는 궁창과 같은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첫 2년 동안 이 체리 토마도 나무의 키는 16피트까지 자라났으며, 903개의 토마도를 수확하였다. 이 토마도 나무의 나이가 14살이 되었을 때에는 그 키가 40피트까지 자라났으며, 주먹만한 크기의 체리 토마도 15000개가 열렸다. 지금 현재, 일본의 어떤 호텔 로비에서 아직도 잘 자라고 있는 이 체리 토마도 나무는, 궁창에 의해서 자외선이 제거됨으로서 얻어지는 순수한 핑크빛 광선이 식물의 성장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주는 산 증거이다.


 

노아 홍수 이전에 존재했었던 고체 궁창은 태양 광선으로부터 자외선을 제거해 내었고, 그 결과로서 얻어진 핑크빛 광선은 대형 식물을 가능케 만들어 주었다. 이처럼 거대한 식물은 거대한 동물의 생존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노아 홍수로 인하여 고체 궁창 위에 있던 거대한 수층이 사라짐에 따라, 지구의 생물학적 환경은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노아 홍수 이후, 매우 작아지고 불충분한 식물의 상태는 공룡과 같은 거대한 동물의 필요를 공급할 수 없게 되었는데, 바로 이것이 공룡들이 노아 홍수 이후에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던 이유이다. 현재도 이와 같이 생태계의 파괴로 인하여 멸종의 위협을 받고 있는 동물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노아 홍수 이전의 사람들이 오래 살 수 있었던 이유

성경은 노아 홍수 이전의 사람과 이후의 사람의 수명에 커다란 차이가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인류의 식품으로 허락하셨던 채식을 하였기 때문에 평균 수명 912세라는 장수를 누렸다. 그러나 고체 궁창이 존재하였던 홍수 이전의 기압 상태는 거대한 생물의 생존과 평균 수명 912세라는 장수를 가능케 하였던 또 다른 과학적 증거이다.


 

일리노이 대학의 헨리 보스 박사는 고체 궁창 하에서의 기압 차이를 측정하였다. 현재 해저면에서의 기압은 1 평방인치당 14.7 파운드인데 반하여, 노아 홍수 이전의 기압은 현재의 기압보다 2배 가량 높았을 것이라는 것이 헨리 보스 박사의 연구 결과이다. 이같은 기압의 차이는 생태계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데, 그것은 기압이 공기 중의 산소 비율을 바꾸기 때문이다. 헨리 보스 박사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고체 궁창으로 인하여 기압이 2배 상승될 경우에 공기 중의 산소 비율은 3배 이상 증가된다고 한다. 이러한 기압과 산소 비율은 보통 사람으로 하여금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고 200 마일을 뛸 수 있도록 해준다. 현대의 발달된 고압 산소 의학에 의하면, 이러한 양의 산소 공급을 통하여 몸에 난 상처가 하룻밤 사이에 치료할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연구 보고서들을 통하여, 우리는 홍수 이전의 사람들이 어떻게 수백년을 살 수 있었는지에 대한 신비를 풀 수 있다. 높은 기압과 충분하고 밀도 높은 산소의 공급이 바로 이러한 신비를 푸는 열쇠가 된다.


 

이와 같은 대기의 상태는 바닷물 속의 산소량에도 증가를 가져 오는데, 이것은 큰 고래와 같은 거대한 바닷 생물이 생존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준다.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가끔씩 깊은 땅 속에서 발견되고 있는 거대한 바다 생물의 화석들은 노아 홍수 이전의 기압 상태와 산소량이 오늘날과 달랐다는 사실을 증거해 준다. 왜냐하면 오늘날과 같은 산소량 하에서는 거대한 바다 생물이 생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드레곤 파리와 비행 공룡


 

드레곤 파리는 헬리콥터의 개발에 모형으로 사용되었던 곤충이다. 화석에서 발견되는 드레곤 파리의 날개 길이는 약 1미터이다. 노아 홍수 이전에 살던 곤충들이 이토록 거대한 날개를 가져야만 했던 이유가 고체 궁창으로 형성된 산소량의 증가로 설명될 수 있다.

지금보다 몇배 더 많은 산소가 생태계에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는 고체 궁창이 만드는 기압의 증가가 반드시 필요된다. 거대한 생물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산소 공급이 필요되고, 이토록 많은 양의 산소가 생태계에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는, 산소를 적당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적당한 기압이 필요한데, 이러한 기압은 지구를 온실처럼 둘러싸고 있는 고체 궁창이 없으면 결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미 서부에서 발견된 비행 공룡의 화석에서 52피트의 길이의 날개가 발견되었다. 지금과 같은 대기 상태에서는 생물학적으로 이처럼 거대한 공룡이 비행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고체 궁창이 제공하는 대기의 상태에서는 날개를 가진 거대한 공룡의 비행이 가능하게 된다. 현대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신비가 성경의 창세기를 통하여 쉽게 풀려진다.


 

성경은 노아 홍수를 설명하면서, 지각 변동에 의하여 터져 나오는 지하수를 "그 날에 모든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라고 표현했으며, 고체 궁창이 제거되면서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궁창 위의 물을 "하늘의 창들이 열렸으니"라고 표현하였다(창 7:11). 성경이 말하는 고체 궁창을 통해서만이 화석에 나타난 거대한 생물이 어떻게 존재했으며, 왜 사라지게 되었는지에 관한 정확한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진화론이 추측에 의해서 가설을 펼칠 때, 성경은 과학적인 근거를 통하여 화석의 생성 이유를 설명해 준다. "하늘의 창"이라고 기록된 고체 궁창만이 지하 깊은 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화석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제공해 줄 수 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동탄명성교회 앱을 아이폰, 아이패드 등 iOS 계열 휴대폰에서 사용하기 file 관리자 2014.10.16 57855
공지 동탄명성교회 모바일 홈페이지 어플리케이션 file 관리자 2014.10.15 50680
» 고대 한민족의 신앙과 번영 new 갈렙 2025.12.19 3
966 두 개의 바빌론_알렉산더 히슬롭 newfile 갈렙 2025.12.19 2
965 로마카톨릭주의의 정체_랄프 우드로우 지음 newfile 갈렙 2025.12.19 4
964 한자에 담김 창세기의 발견_라이프북 new 갈렙 2025.12.19 1
963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엘리샤벳의 관계는 갈렙 2025.12.16 14
962 안나(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_위키백과 file 갈렙 2025.12.16 18
961 [해외감동사연] “성경과 팔괘가 일치했다?!” 복희는 한반도에서 온 창조자였다 file 갈렙 2025.12.15 15
960 [해외감동사연] "욕단의 이름을 지운 자들" 성경에서 사라진 이름, 그리고 한반도에서 되살아난 흔적 file 갈렙 2025.12.15 20
959 [해외감동사연] 점괘가 아니었다… 태극기 네 괘에서 다시 읽은 창세기 1장_영국 로버트 애슐리 박사 file 갈렙 2025.12.14 54
958 메타노에어(회개하다)와 에피스트레포(돌이키다)의 차이 분석 갈렙 2025.08.27 3368
957 여리고의 성벽 : 고고학적 확인에 의하면 여리고성의 벽은 정말로 무너져 내렸다_브라이언트 우드 박사 file 갈렙 2025.08.22 7212
956 여리고의 성벽 : 고고학적 확인에 의하면 여리고성의 벽은 정말로 무너져 내렸다_브라이언트 우드 박사 file 갈렙 2025.08.22 336
955 미가엘 반주기_ 곡 이름(제목순과 가사첫줄) file 갈렙 2025.07.14 5455
954 『천국에서의 40일』 - 세네카 쏘디 저 (엘우드 스콧 대필) file 갈렙 2025.06.07 7958
953 '세네카 쏘디'의 《내가 40일간 가 보았던 천국》 file 갈렙 2025.06.06 11182
952 실시간 자막 PPT 만들기 프로그램 file 갈렙 2025.05.28 6653
951 찬송가 하단 자막 PPT만드는 프로그램(videopsalm) file 갈렙 2025.05.28 7445
950 이스라엘 지리와 성경역사_멤연구소 file 갈렙 2025.03.10 10336
949 오덴 헤트릭 목사님의 천국 간증 file 갈렙 2025.02.25 8333
948 성경에 나오는 면류관의 종류 file 갈렙 2025.02.19 671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9 Next
/ 49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