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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에 나와있는 저주의 시에 대한 기존 신학자들의 견해

 

저주의 시편은 “개인적 앙갚음의 시”라기보다, 불의·폭력·거짓·압제 앞에서 하나님께 공의로운 심판을 호소하는 탄식 기도로 보아야 합니다. 다만 신약의 성도는 이것을 원수 사랑, 십자가, 최후 심판의 빛 아래에서 읽고 사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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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편의 저주의 시편: 카테고리별 정리

“저주의 시편”, 영어로 imprecatory psalms는 보통 원수에게 하나님의 심판, 징벌, 보응이 임하기를 간구하는 시편을 가리킵니다. 학자들은 범위를 다르게 잡습니다. 어떤 학자는 저주 요소가 있는 시편을 18편 정도로, 또 다른 학자는 24편 또는 28편까지 보기도 합니다. 비교적 공통으로 인정되는 대표 저주의 시편은 시 7, 35, 55, 58, 59, 69, 79, 83, 109, 137편입니다.

A. 저주가 중심 주제인 대표 저주의 시편

카테고리 시편 주요 본문 내용
개인 의인이 억울하게 공격받을 때 시 7편 시 7:6-16 원수의 폭력과 거짓 고발에 대해 하나님이 일어나 심판하시기를 구함
개인 원수의 박해와 조롱 시 35편 시 35:1-8, 19, 24-26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소서”, 원수들이 수치와 패망을 당하게 해 달라는 기도
가까운 친구의 배신 시 55편 시 55:9, 12-15, 23 친구의 배신과 폭력의 도시 속에서 악인을 낮추시기를 구함
불의한 재판관·권력자 시 58편 시 58:1-11 불의한 통치자와 악인의 이빨을 꺾어 달라는 강한 심판 기도
살해 위협과 폭력 시 59편 시 59:1-5, 11-13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할 때,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들을 심판해 달라는 기도
하나님을 위한 열심 때문에 받는 고난 시 69편 시 69:4, 9, 21-28 까닭 없는 미움, 성전 열심, 조롱, 신 포도주, 원수의 생명책 삭제 간구
민족적 재난과 피 흘림 시 79편 시 79:1-12 예루살렘 파괴와 성도들의 피 흘림에 대해 열방에게 보응해 달라는 기도
하나님의 백성을 없애려는 열방 시 83편 시 83:1-18 이스라엘을 끊어 버리려는 민족들을 수치와 멸망으로 낮추시기를 구함
극단적 배신과 악인 심판 시 109편 시 109:1-20 거짓 혀와 배신자를 향해 가장 강한 형태의 저주가 나오는 시편
바벨론 포로기의 집단 탄식 시 137편 시 137:7-9 예루살렘 멸망을 조롱한 에돔과 바벨론에 대한 보응을 구함

시 35, 59, 69, 109, 137편은 여러 연구에서 특히 자주 대표적인 저주의 시편으로 꼽힙니다. 한 연구는 “시편 안의 저주 요소가 한두 절뿐인 경우와, 저주가 시 전체의 주된 요소인 경우를 구분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B. 탄식시 안에 저주 구절이 부분적으로 들어 있는 시편

카테고리 시편 본문 내용
거짓말하는 악인의 패망 시 5:10 악인이 자기 꾀에 빠지고 죄로 인해 쫓겨나기를 구함
압제자의 권세 꺾임 시 10:15 악인의 팔을 꺾어 달라는 기도
의인을 치는 원수 제압 시 17:13 악인을 칼로부터 구원해 달라는 기도
행위대로 갚아 달라는 기도 시 28:4-5 악인의 행위대로 보응해 달라는 기도
거짓 입술의 침묵 시 31:17-18 거짓말하는 입술이 잠잠하게 되기를 구함
조롱자들의 수치 시 40:14-15; 70:2-3 생명을 찾는 자와 조롱하는 자가 수치를 당하게 해 달라는 기도
악인의 악이 되돌아감 시 54:5 원수의 악을 그들에게 돌리시기를 구함
악인의 죄를 보응 시 56:7 악인을 내쫓아 달라는 기도
대적자의 수치 시 71:13 영혼을 대적하는 자들이 수치와 멸망을 당하게 해 달라는 기도
성소와 공동체를 모욕하는 자들 시 74:10-11 하나님을 모욕하는 원수에게 손을 거두지 말아 달라는 기도
악한 권력의 심판 시 94:1-3, 20-23 “복수하시는 하나님”께 악인을 심판해 달라는 기도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 시 129:5-8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이 수치를 당하고 물러가기를 구함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 시 139:19-22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을 떠나게 해 달라는 기도
폭력자의 입술과 손 시 140:9-11 악인의 입술의 해가 자기에게 돌아가게 해 달라는 기도
악인의 그물 시 141:10 악인이 자기 그물에 걸리기를 구함
원수 멸절과 주의 종 구원 시 143:12 주의 인자하심으로 원수를 끊어 달라는 기도

C. 저주 “기도”라기보다 심판 선언·왕권 심판·종말 심판에 가까운 시편

카테고리 시편 본문 내용
메시아 왕의 철장 통치 시 2:9-12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왕을 대적하는 열방에 대한 경고
왕의 원수 심판 시 21:8-12 왕의 원수들이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소멸됨
악인의 멸망 선언 시 52:5-7 거짓과 악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께 뽑힘
하나님이 원수를 흩으심 시 68:1-2, 21-23 하나님이 원수를 흩으시고 악인의 머리를 치심
의로운 왕의 정결한 통치 시 101:5-8 교만한 자와 악인을 끊어 내는 왕의 통치
악인의 소멸 시 104:35 죄인과 악인이 땅에서 없어지기를 구함
메시아 왕의 심판 시 110:5-6 주께서 진노의 날에 왕들을 쳐서 심판하심
성도의 심판 참여 시 149:6-9 성도들이 하나님의 기록된 심판에 참여함

2. 신약은 원수를 사랑하라 하는데, 시편 기자는 어떻게 원수를 저주할 수 있었는가?

예수님은 분명히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5:43-48은 원수 사랑을 하나님의 자녀 됨과 연결하고, 로마서 12:14-21은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친히 원수를 갚지 말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의 저주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1) 시편 기자는 직접 복수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저주의 시편은 칼을 들고 복수하겠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수의 권한을 하나님께 넘기는 기도입니다. 악을 당한 자가 자기 손으로 피를 흘리는 대신, “하나님, 주께서 보시고 판단해 주십시오”라고 호소한 것입니다. 월터 브루그만 계열의 해석도 이 점을 강조합니다. 저주의 시편은 폭력적 언어를 사용하지만, 실제 행동은 하나님께 맡기는 언어적 기도이며, “복수의 말”을 “복수의 행위”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입니다.

2) 시편의 원수는 단순히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시편의 원수들은 대체로 거짓말하는 자, 살인하려는 자, 가난한 자를 짓밟는 자, 성전을 모욕하는 자, 하나님의 백성을 없애려는 자입니다. 즉 시편 기자가 저주하는 대상은 사소한 개인 감정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백성의 생존을 위협하는 악의 세력입니다. 한 연구는 시편 35, 58, 69, 109, 137편의 저주가 단순한 분노 폭발이 아니라, 원수의 범죄와 그에 상응하는 보응을 구하는 “응보적 정의”의 문맥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3)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언약과 공의에 호소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복 주시는 자를 복 주고,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모세 언약 안에는 축복과 저주의 구조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의 저주는 “내 기분이 상했으니 저 사람을 망하게 해 주십시오”가 아니라, 언약의 하나님이 불의와 폭력에 대해 왕과 재판장으로 행해 달라는 호소입니다. 연구자들은 저주의 시편의 배경에 아브라함 언약, 모세 율법의 언약적 저주, 신명기 32장의 하나님의 보복 사상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4) 신약은 저주의 시편을 단순 폐기하지 않습니다

신약은 원수 사랑을 분명히 가르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심판과 최후의 보응도 분명히 가르칩니다. 신약은 시편 69편과 109편을 가룟 유다의 심판과 연결하고, 로마서에서도 시편 69편을 인용합니다. 따라서 신약은 저주의 시편을 “틀린 구약 윤리”로 버리지 않고, 그리스도와 최후 심판의 빛 아래에서 재해석합니다.

5) 십자가에서 저주와 사랑이 만납니다

본회퍼는 저주의 시편을 십자가로 가져갑니다. 그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들에 대한 심판은 실제로 필요하지만, 그 심판이 먼저 죄인들에게 떨어진 것이 아니라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주의 시편은 결국 십자가로 인도하고,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3. 시편 150편 전체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록이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시편 150편 안에는 마태복음 5:44처럼 “원수를 사랑하라”는 직접 명령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편 안에도 원수를 향한 선의, 기도, 평화 추구를 보여 주는 본문은 있습니다.

본문 내용 의미
시 7:3-5 “내가 악으로 갚았거나, 까닭 없이 원수를 약탈했다면 나를 심판하소서”라는 자기 점검 원수라고 해서 부당하게 해쳐도 된다는 태도가 아님
시 35:12-14 원수들이 악으로 갚았지만, 시편 기자는 그들이 병들었을 때 금식하며 슬퍼함 원수에게도 긍휼을 보인 흔적
시 109:4-5 “내 사랑을 그들이 고발로 갚고, 나는 기도한다”는 고백 저주 시편 안에도 사랑과 기도의 흔적이 있음
시 120:6-7 “나는 평화를 원하나 그들은 전쟁을 원한다”는 고백 시편 기자의 기본 태도가 전쟁광적 복수가 아님

특히 시 35:13-14은 원수들이 악으로 갚았음에도 시편 기자가 그들의 병을 자기 친구나 형제의 병처럼 슬퍼했다고 말합니다. 시 109:4-5도 원수들이 사랑을 미움으로 갚았지만, 시편 기자 자신은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시 7:3-5은 시편 기자가 자기 손에 죄가 있는지 점검하며, 원수에게도 까닭 없는 해를 끼치지 않았음을 하나님 앞에서 호소합니다. 시 120:6-7도 시편 기자가 “나는 평화”라고 고백하지만, 원수들은 전쟁을 원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시편에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신약식 명령문은 없지만, 원수에게 악으로 갚지 않음, 원수를 위해 슬퍼함, 원수를 향해 기도함, 평화를 추구함이라는 요소는 분명히 나타납니다.


4. 구약시대에 시편 기자가 왜 저주의 시를 써야 했는가?

1) 억울한 자에게 하나님께 호소할 언어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저주의 시편은 고통받는 성도에게 “네 분노를 숨겨라”가 아니라, 그 분노를 하나님께 가져오라고 가르칩니다. 피해자가 자기 손으로 복수하지 않고, 하나님께 울부짖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폭력을 억제하는 기능을 합니다. 저주의 시편은 피해자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상처와 고통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처리하도록 돕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2) 하나님의 공의를 예배 안에서 고백하기 위해서입니다

시편은 개인 기도문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예배 책입니다. 따라서 저주의 시편은 예배 공동체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뿐 아니라 “하나님은 심판자이시다”도 고백하게 합니다. 악이 악으로 불리지 않고, 폭력이 그냥 넘어가며, 압제자가 회개 없이 번성한다면 하나님의 공의가 모욕됩니다. 저주의 시편은 바로 그 지점에서 “하나님, 공의를 나타내소서”라고 외칩니다.

3) 언약 백성의 생존과 하나님의 구속사가 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단순한 종교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며, 메시아 약속을 품은 민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없애려는 원수들은 단순한 정치적 경쟁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구속사의 길을 위협하는 세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79편, 83편, 137편 같은 공동체적 저주는 민족주의적 증오라기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세력에 대한 탄원으로 읽어야 합니다.

4) 악에 대한 거룩한 분노를 보존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적 사랑은 악을 선하다고 부르지 않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악을 묵인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저주의 시편은 하나님의 백성이 폭력, 거짓, 학대, 우상숭배, 피 흘림에 대해 무감각해지지 않도록 합니다. 한 연구는 시편의 저주가 하나님의 영광, 응보적 정의, 시편 기자의 상대적 무죄, 원수의 실제 범죄라는 문맥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5) 최후 심판을 미리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주의 시편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악을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종말론적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신약의 원수 사랑도 최후 심판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도가 직접 원수를 갚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마지막에 의롭게 판단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장도 “친히 원수를 갚지 말라”고 하면서, 바로 이어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5. 신약 성도는 저주의 시편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신학자들의 견해

1) C. S. 루이스·피터 크레이기 계열: “인간의 격한 감정으로 보아 조심해야 한다”

C. S. 루이스는 저주의 시편의 언어를 매우 불편하게 보았습니다. 그는 이런 시편들 속에 복수심과 증오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고 보았고, 그것을 그대로 기독교인의 감정으로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습니다. 피터 크레이기도 비슷하게 저주 표현을 고난과 아픔 속에서 나온 이스라엘의 응답으로 보았습니다. 이 견해는 설교자에게 중요한 경고를 줍니다. 저주의 시편을 개인적 분노의 성경적 허가증처럼 사용하면 안 됩니다.

2) 어거스틴·델리취·알렉스 룩 계열: “예언적 심판 선언으로 보아야 한다”

어거스틴은 시편 109편 같은 저주 표현을 단순한 악담이 아니라, “악을 바라는 모양으로 표현된 미래 예언”으로 보았습니다. 알렉스 룩 등은 다윗이 신약에서 선지자로 불린다는 점을 들어, 저주의 시편을 악인에 대한 예언적 심판 선언으로 이해합니다. 이 관점에서는 시편의 저주가 개인적 복수라기보다,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고로 읽힙니다.

3) 언약신학·개혁주의 계열: “하나님의 공의와 언약적 보응에 대한 기도”

칼 레이니, 앨런 하먼, 게할더스 보스, 존 데이 등은 저주의 시편을 언약적 배경에서 설명합니다. 곧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대적하는 악을 심판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시편 기자는 그 약속에 근거해 하나님께 공의를 구했다는 것입니다. 보스는 저주의 시편을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호소로 보았고, 존 데이는 원수 사랑과 저주 기도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극단적 악과 억압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구하는 “극한 윤리”로 보았습니다.

4) 본회퍼: “그리스도 안에서만 바르게 기도할 수 있다”

본회퍼는 저주의 시편을 매우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읽었습니다. 죄 없는 자만이 하나님의 복수를 온전히 구할 수 있는데, 참으로 죄 없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원수들을 향한 진노를 십자가에서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본회퍼에게 저주의 시편은 복수심을 부추기는 노래가 아니라, 십자가로 이끄는 기도입니다.

5) 월터 브루그만·에리히 쳉어 계열: “정직한 탄식과 비폭력적 호소”

브루그만 계열은 저주의 시편을 억압받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고통을 정직하게 말하는 언어로 봅니다. 에리히 쳉어도 “저주의 시편”이라는 명칭 자체가 오해를 줄 수 있다고 보며, 그것들은 실제로 저주 주문이라기보다 폭력과 불의 앞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격렬한 탄식과 청원이라고 봅니다. 이 견해는 설교적으로 매우 유익합니다. 성도는 분노를 부정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6) 존 파이퍼: “극단적 악을 멈춰 달라는 기도는 가능하지만, 개인의 멸망을 쉽게 빌어서는 안 된다”

존 파이퍼는 나치 같은 잔혹한 악이 사람들을 학살하는 상황이라면 “하나님, 그들을 멈춰 주십시오. 필요하다면 심판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오늘날 성도들이 시편 기자처럼 성경을 기록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사람의 영원한 멸망을 쉽게 구해서는 안 되며, 기본 방향은 원수를 사랑하고 그들의 회심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7) 헨드릭 필스·스테픈 젠킨스 계열: “신약 시대에는 복음과 최후 심판의 빛 아래에서 변형되어 사용된다”

헨드릭 필스는 신약에서도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복음 선포 때문에 저주 기도의 사용 방식은 달라진다고 봅니다. 지금은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은혜의 시대이므로, 성도의 기본 태도는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입니다. 그러나 긴급하고 극단적인 악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구하는 기도는 여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스테픈 젠킨스도 저주의 시편과 신약 윤리 사이의 간격을 너무 크게 보면 안 된다고 하며, 시편은 원수의 회개와 열방의 복까지도 바라보게 한다고 설명합니다.


설교적 결론: 신약 성도는 저주의 시편을 이렇게 읽어야 합니다

첫째, 저주의 시편은 내 분노를 정당화하는 본문이 아니라, 내 분노를 하나님께 넘기게 하는 본문입니다. 성도는 원수를 직접 갚지 않습니다.

둘째, 저주의 시편은 악을 미워하되 사람의 회개를 구하게 하는 본문입니다. 신약 성도는 “주여, 저 사람을 지옥 보내소서”라고 서두르기보다, “주여, 악을 멈추시고, 피해자를 구하시고, 가해자를 회개시키시며,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악은 의롭게 심판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저주의 시편은 십자가에서 완성됩니다. 하나님의 저주는 마땅히 악인에게 임해야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악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사실도 믿습니다.

넷째, 저주의 시편은 피해자와 약자를 위한 기도입니다. 학대받은 사람, 전쟁과 폭력의 피해자, 거짓 고발을 당한 사람, 권력형 불의에 짓눌린 사람에게 성경은 침묵만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을 말을 줍니다.

다섯째, 신약 성도의 최종 윤리는 원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원수들을 위해 용서를 구하셨고, 스데반도 돌에 맞아 죽으면서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므로 저주의 시편은 신약 성도에게 “원수를 미워하라”가 아니라, “악을 하나님께 고발하고,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며,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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