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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9. 27. (일)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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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 멸망이후 사도행전시대까지의 사마리아인의 변천사

 

 

 

먼저 가장 중요한 구분부터 세워야 합니다.

B.C. 722년 이후에는 더 이상 ‘북이스라엘 왕국’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역사에서 존재한 것은
① 앗수르 여러 지역으로 추방된 북이스라엘 후손들,
② 옛 북왕국 땅에 남은 이스라엘 주민들,
③ 외국 이주민과 토착민이 함께 형성한 사마리아 지역사회,
④ 그 가운데 그리심산을 중심으로 여호와를 섬긴 사마리아인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북이스라엘이 어느 나라의 속국이었는가?”라고 묻기보다, “옛 북이스라엘 영토인 사마리아가 어느 제국의 행정구역이 되었는가?”라고 묻는 것이 정확합니다.

또 하나 수정할 것은, 앗수르를 무너뜨린 것은 느부갓네살 한 사람이 아니라 바벨론 왕 나보폴라살과 메대의 연합군이었습니다. 니느웨는 B.C. 612년에 함락되었고, 느부갓네살은 왕세자·장군으로 활동하다가 B.C. 605년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을 격파하여 시리아·팔레스타인에 대한 바벨론의 지배를 확정했습니다.

1. 북이스라엘 멸망 이후 사마리아는 누구의 통치를 받았는가?

 

전체 통치권 변천표

 

시대

대략적 연대

사마리아의 정치적 지위

실제 통치 형태

신앗수르 제국

B.C. 722/720–609

앗수르의 직할 속주 사메리나

앗수르 총독

신바벨론 제국

B.C. 605경–539

바벨론 제국의 영토

지방 행정관 아래 통치된 것으로 보이나 세부 자료 부족

바사·아케메네스 제국

B.C. 539–332

‘강 건너편’ 속주의 사마리아 지방

산발랏 계열 총독

알렉산더·후계자 시대

B.C. 332–301

마케도니아 지배와 후계자 전쟁

사마리아 성은 마케도니아 군사도시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대략 B.C. 301–200/198

이집트계 헬라 왕국의 영토

프톨레마이오스 행정체계

셀레우코스 왕조

B.C. 200/198–2세기 후반

시리아계 헬라 왕국의 영토

셀레우코스 행정 아래 종교적 지방공동체 존속

하스몬 왕조

B.C. 111/110경–63

유대 하스몬 왕국에 정복·편입

그리심산 성전 파괴 후 하스몬 통치

로마 지배

B.C. 63 이후

로마 지배권

client king → 분봉왕 → 로마 총독

예수님 시대

A.D. 26–36 전후

로마의 유대 속주에 포함

본디오 빌라도의 총독 통치

이 표를 세부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앗수르 시대: 속국이 아니라 ‘직할 속주’가 되었다

북이스라엘 마지막 왕 호세아가 잡혀가고 사마리아가 함락된 뒤, 앗수르는 더 이상 이스라엘 왕을 세워 조공만 받지 않았습니다.

사르곤 2세의 왕실 비문은 사마리아를 정복하고 주민 27,290명을 끌고 갔으며, 병거대를 자기 군대에 편입하고, 사마리아를 다시 조직하여 앗수르 관리 아래 두었다고 기록합니다. 즉 북이스라엘은 독립왕국이나 봉신국이 아니라 앗수르의 사메리나(Samerina) 속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추방된 것은 아닙니다. 고고학 자료는 인구 감소와 파괴를 보여 주는 동시에, 사마리아 지역의 토착 도자기 전통과 주민생활도 계속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열 지파 전원이 사라졌다”가 아니라, 일부는 추방되고 상당수는 현지에 남았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앗수르에 끌려간 사람들은 왕하 17:6에 따르면 할라, 하볼 곧 고산 강가, 메대의 여러 성읍 등에 흩어졌습니다. 이들은 이후 그 지역을 차지한 메대·바벨론·바사의 지배 아래 들어가면서 점차 현지사회에 흡수되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열 지파 후손이 사마리아에 계속 산 것은 아닙니다.

 

 

2) 바벨론 시대: 북왕국의 부활이 아니라 제국 통치권의 교체였다

앗수르가 무너진 뒤에도 북이스라엘 왕국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니느웨 함락 이후 잠시 앗수르 잔존세력과 애굽의 영향이 있었지만, B.C. 605년 갈그미스 전투 이후 시리아·팔레스타인은 바벨론의 지배권에 들어갑니다. 사마리아도 바벨론 제국의 영토가 되었지만, 유다처럼 다시 왕을 세운 봉신국이 된 것은 아닙니다.

신바벨론 시대 사마리아의 정확한 행정직제에 관한 문헌은 앗수르·바사 시대보다 부족합니다. 다만 고고학 조사는 사마리아가 바벨론 시대에도 완전히 황폐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다보다 인구와 경제력에서 상당한 규모를 유지했다고 평가합니다.

따라서 이 시기의 표현은 다음이 가장 안전합니다.

사마리아는 바벨론의 속국이 아니라 바벨론 제국에 편입된 지방이었다. 다만 정확한 지방행정 명칭과 총독 계보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3) 바사 시대: 사마리아는 ‘총독이 다스리는 지방’이었다

고레스가 B.C. 539년 바벨론을 정복한 뒤 사마리아는 바사제국의 에베르나리(Eber-Nāri), 곧 ‘강 건너편’ 속주에 포함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사마리아는 별도의 지방 행정구역이었고, B.C. 5세기 후반에는 산발랏과 그의 후손들이 사마리아 총독을 맡았습니다. 애굽 엘레판티네 문서도 산발랏을 명백하게 “사마리아 총독”이라 부르며 그의 아들 들라야와 슬레먀에게 보낸 서신을 전합니다.

느헤미야 시대에 성벽 재건을 방해한 산발랏은 독립된 사마리아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사 황제 아래 있는 사마리아 지방의 총독이었습니다.

느헤미야 역시 바사 왕이 임명한 유다 총독이었습니다. 따라서 두 사람의 대립에는 종교적 문제뿐 아니라 바사제국 안에서 인접한 두 지방인 사마리아와 유다의 행정권·영향력 경쟁도 있었습니다.

또한 에스라 4장에 나오는 모든 반대자를 이미 완성된 의미의 “사마리아교 신자들”이라고 단순하게 부르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서로 완전히 분리된 두 종교집단이 되는 과정은 수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4) 알렉산더 이후: 곧바로 셀레우코스가 통치한 것은 아니다

알렉산더는 B.C. 332년경 팔레스타인을 정복했습니다.

알렉산더 사후 이 지역은 여러 장군의 쟁탈지가 되었고, 대략 B.C. 301년 이후 약 한 세기 동안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지배했습니다. 이후 B.C. 200년 파니움 전투를 전후하여 안티오코스 3세의 셀레우코스 왕조가 팔레스타인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가 헬라시대 내내 처음부터 셀레우코스의 지배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정리하면:

알렉산더 → 후계자 전쟁 → 프톨레마이오스 → 셀레우코스

순서입니다.

이때에도 중요한 구별이 필요합니다.

사마리아 성

옛 오므리의 수도였던 사마리아 성은 알렉산더 시대 반란 이후 마케도니아인들이 이주해 온 헬라적 군사도시로 변했습니다.

사마리아인 종교공동체

이들은 세겜과 그리심산을 중심으로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따라서 헬라시대 이후의 사마리아 성 주민과 그리심산 사마리아인 공동체를 항상 같은 집단으로 보면 안 됩니다.

 

 

5) 하스몬 왕조: 그리심산 성전이 파괴되었다

셀레우코스 왕조가 약해지면서 유대의 하스몬 왕조가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요한 힐카누스 1세는 그리심산 성전과 그 주변 도시를 파괴했습니다. 오래된 연대표에는 이를 B.C. 129/128년경으로 적기도 했지만, 최근의 고고학·주화자료는 B.C. 111/110년경을 더 유력하게 봅니다.

그리심산 성전 파괴의 의도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립니다.

  • 종교를 없애려는 적대행위였다는 해석
  • 하스몬 국가와 예루살렘 성전 체제에 강제 통합하려 했다는 해석

이 존재합니다. 어느 경우든 이 사건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분명합니다.

 

 

6) 로마 시대: 예수님 당시 사마리아는 본디오 빌라도의 관할이었다

B.C. 63년 폼페이우스가 팔레스타인을 로마 지배권 안에 넣었습니다.

이후 헤롯 대왕은 로마의 봉신왕으로 사마리아를 다스렸으며, 옛 사마리아 성을 재건하여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기리는 뜻으로 세바스테(Sebaste)라 이름 붙였습니다.

헤롯이 죽은 B.C. 4년 이후 사마리아는 그의 아들 아켈라오의 통치영역이 되었습니다. A.D. 6년 아켈라오가 폐위되자 유다·사마리아·이두매는 로마의 직접통치 아래 들어갔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공생애 당시 사마리아는 갈릴리의 헤롯 안티파스가 아니라, 유대 속주의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관할에 있었습니다.

다만 사마리아인들은 로마 정치통치 아래에서도 그리심산을 성산으로 삼고 독자적인 제사장·장로 공동체와 종교생활을 유지했습니다.

 

 

2.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웠는가?

먼저 날짜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심산 성전은 B.C. 322년에 처음 건축된 것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요세푸스는 알렉산더 시대 산발랏과 예루살렘 제사장 므낫세의 이야기를 성전 기원과 연결하지만, 발굴결과는 그리심산 성소의 첫 단계가 B.C. 5세기 중엽, 곧 바사시대에 이미 존재했음을 보여 줍니다. 그 주변의 큰 도시는 헬라시대에 확대되었으며, 성전과 도시는 B.C. 111/110년경 요한 힐카누스에게 파괴되었습니다.

그들이 그리심산을 선택한 데에는 적어도 네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세겜과 그리심산은 족장시대부터 거룩한 장소였다

사마리아인들이 자신을 야곱의 후손이라고 한 것은 단순히 “야곱의 열 아들이 북왕국을 이루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을 특히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후손, 그리고 레위 제사장 전통을 계승한 이스라엘인으로 이해했습니다. 현대 연구도 사마리아인이 자신을 북쪽 요셉 지파의 후손인 또 하나의 “이스라엘”로 주장했다고 설명합니다.

세겜 지역에는 다음과 같은 전승이 모여 있습니다.

  • 세겜 모레 상수리나무에서 제단을 쌓음 — 창 12:6–7
  • 세겜 땅을 사고 제단을 쌓음 — 창 33:18–20
  • 우물 전승 — 요 4장
  • 뼈가 세겜에 장사됨 — 수 24:32
  • 세겜에서 언약을 갱신함 — 수 24장

따라서 사마리아 여인이 “우리 조상 야곱”이라고 부른 것은 그 지역과 자신들의 공동체가 야곱·요셉의 이스라엘 전통을 계승한다는 고백이었습니다.

 

 

2) 그리심산은 율법에서 ‘축복의 산’이었다

신명기 11:29은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도록 합니다.

사마리아 오경은 신 27장의 제단 장소를 유대교의 마소라 본문과 달리 에발산이 아니라 그리심산으로 읽습니다. 그들에게 그리심산은 단순히 편리한 지방성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기로 선택하신 참 성소

였습니다.

그리심산 발굴문은 그곳의 신을 실제로 여호와(YHWH)라고 부르며, “성소”, “희생의 집”과 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즉 그리심산 성전은 바알 신전이 아니라 여호와를 섬기는 야훼 성전이었습니다.

 

 

3) 사마리아에는 자기 지역의 제사장과 성소가 필요했다

바사시대 사마리아는 유다보다 인구와 경제력이 큰 별도 지방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이 참 이스라엘이며 모세의 율법을 지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관점에서 그리심산 성전은

  • 성전의 단순한 모조품
  • 거부당한 혼혈인들이 급히 만든 대체성전

이 아니라,

북쪽 이스라엘 공동체가 정통 여호와 신앙과 제사장직을 유지하는 중심지

였습니다.

현대 연구는 유대교와 사마리아교의 결별을 한 번의 사건으로 설명하기보다, 바사시대부터 헬라·하스몬·로마시대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진행된 과정으로 봅니다.

 

 

4) 정치적 독립성과 지역정체성도 작용했다

바사시대의 사마리아와 유다는 서로 다른 지방행정구역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유다의 종교·정치 중심이었다면, 그리심산 성전은 사마리아 지방의 제사장·지도층과 공동체 정체성을 강화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심산 성전에는 순수한 신학적 이유와 함께

  • 행정권
  • 권위
  • 순례
  • 독자성

이라는 현실적인 요소도 함께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3. 사마리아인들이 기다린 메시야는 다윗의 후손이었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마리아인의 대표적인 메시야 기대는 다윗의 아들 왕이라기보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회복자’에 가까웠습니다.

이것이 유대교의 다윗계 메시야 기대와 가장 큰 차이입니다.

 

 

1) 사마리아인은 다윗 언약보다 모세오경을 중심으로 신앙을 형성했다

사마리아인의 정경은 기본적으로 사마리아 오경, 곧 모세오경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유대교의 사무엘서·열왕기·시편·선지서가 같은 권위를 갖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삼하 7장의 다윗 언약이나 시편의 다윗계 메시야 왕권은 사마리아 메시야 사상의 중심이 되기 어려웠습니다.

그들이 중요하게 본 본문은 신 18:15–18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이 때문에 사마리아 전통은 장차 모세와 같은 선지자, 진리를 회복하고 모든 것을 가르칠 존재를 기다렸습니다.

 

 

2) 그를 후대 전통에서는 ‘타헤브’라고 불렀다

사마리아 전통에서 이 종말론적 인물은 흔히 타헤브(Taheb), 곧 “돌아오는 자” 또는 “회복자”로 불립니다.

그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일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 같은 선지자로 등장함
  • 진리를 밝힘
  • 율법해석을 회복함
  • 참 예배를 회복함
  • 이스라엘을 바로잡음

요한복음 4:25에서 여인이 말합니다.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특히 “모든 것을 알려 준다”는 표현은 왕이 군사적으로 통치한다는 기대보다 모세와 같은 계시자·선지자의 기대에 훨씬 가깝습니다. 사마리아 종교의 타헤브 연구도 요 4:19, 25의 배경에 모세적 선지자·회복자 기대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타헤브”라는 명칭과 그에 관한 세밀한 교리는 주로 후대 사마리아 문헌에서 분명해집니다. 따라서 1세기 수가성 여인이 오늘날 정리된 타헤브 교리 전체를 알고 있었다고 단정하기보다,

그녀가 모세와 같은 종말론적 선지자·계시자를 기대했다

고 말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3) 그렇다면 여인이 말한 ‘메시아’는 다윗계가 아니었는가?

유대인에게 “메시아”는 흔히 다윗계 왕의 의미가 강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인의 메시아 기대에는 사마리아 고유의 모세적 선지자 기대가 담겨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그녀가 일차적으로 기다린 인물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왕좌를 회복할 유다 왕보다는,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알려 줄 선지자적 회복자.

그런데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양쪽의 기대보다 더 크신 분임을 보여 줍니다.

  • 기대에는 다윗의 아들
  • 기대에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
  • 결론에는 세상의 구주

이십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단순히 “우리 사마리아의 회복자”라 하지 않고,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 요 4:42

라고 고백합니다.

 

 

4. 예수님과 사도들은 왜 사마리아를 다시 품었는가?

여기에는 역사적·구속사적 이유가 함께 있습니다.

1) 사마리아인은 완전한 이방인이라기보다 갈라진 이스라엘의 후손이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과 상종하기를 꺼렸지만,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을 야곱·요셉·모세의 이스라엘로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사마리아 사역은 단순한 이방선교 이전에,

오랫동안 갈라지고 소외되었던 이스라엘의 한 갈래를 다시 찾아가는 사건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호 1:11의 유다와 이스라엘의 재결합, 겔 37장의 유다 막대기와 요셉·에브라임 막대기의 하나 됨을 생각하면, 사마리아 복음화는 이러한 회복약속과 정경적으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도행전 8장이 이 두 예언을 직접 인용하지는 않으므로, 이것은 성경 전체를 종합한 신학적 연결이라고 밝혀 두는 것이 좋습니다.

 

 

2) 예수님은 그리심산 편도, 예루살렘의 배타주의 편도 아니셨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사마리아 종교가 모두 옳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요 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예수님은 구원의 역사적 계보가 유다와 다윗의 집, 그리고 예루살렘 계시를 통하여 왔음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말씀하십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요 4:21

그리고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 요 4:23

즉 예수님은

  • 버리고 그리심산을 택하신 것도 아니고,
  • 정죄하고 예루살렘 건물만 영구화하신 것도 아닙니다.

자기 자신 안에서 예루살렘과 그리심산의 장소경쟁을 끝내고, 성령과 진리 안의 새 언약 예배를 여셨습니다.

 

 

3)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의 기대를 자신 안에서 성취하셨다

여인은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 요 4:26

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녀가 가진 제한된 메시야 이해를 출발점으로 삼으시되, 자신을 단순한 사마리아 선지자가 아니라 생수를 주고 참 예배를 여는 메시아로 나타내셨습니다.

그 결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여인의 증언 때문에 나왔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그분을 세상의 구주로 고백했습니다.

 

 

4) 사도행전에서 사마리아는 세계선교의 필수적인 두 번째 단계였다

예수님의 선교명령은 분명한 지리·구속사적 순서를 갖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행 1:8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루살렘

→ 유대

→ 사마리아

→ 땅끝

사마리아는 유대와 이방세계 사이에 놓인 우연한 중간기착지가 아닙니다. 갈라진 이스라엘의 상처가 복음 안에서 먼저 치유되어야 했습니다.

행 8장에서 빌립이 사마리아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전했고, 남녀가 세례받았습니다. 이어 예루살렘의 베드로와 요한이 내려와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사마리아인이 이등 신자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신자와 사마리아 신자가 동일한 성령을 받고 하나의 사도적 교회에 들어왔다는 것

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참여는 예루살렘교회와 별개의 “사마리아교회”가 독립적으로 생기지 않고, 서로 적대하던 두 공동체가 하나의 성령 안에서 결합되었음을 공적으로 확인하는 역할을 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는 본문에서 도출되는 신학적 추론입니다.

 

 

5) 사마리아 복음화는 교회의 보편성을 보여 주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혈통적·종교적 우월의식을 깨뜨리기 위해 반복해서 사마리아인을 긍정적인 인물로 등장시키셨습니다.

  • 사마리아인 — 눅 10:25–37
  • 돌아온 사마리아 나병환자 — 눅 17:11–19
  • 여인과 마을 사람들 — 요 4장
  • 사마리아 전도 — 행 8장

이는 “사마리아인이 혈통적으로 더 의롭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구원은 유대인이 만든 민족·종교의 경계 안에 갇히지 않는다

는 선언입니다.

 

 

질문별 직접 답변

첫째, 북이스라엘 멸망 후 누구의 지배를 받았는가?

북이스라엘은 더 이상 하나의 왕국이나 속국으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 : 사메리나 직할 속주
  • : 바벨론 제국의 지방
  • : 에베르나리 속주의 사마리아 지방, 산발랏 계열 총독
  • 이후: 마케도니아 지배 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1. 200/198 이후: 셀레우코스 왕조
  2. 111/110경 이후: 하스몬 왕조
  1. 63 이후: 로마 지배
  • 시대: 본디오 빌라도가 다스린 로마 유대 속주

따라서 대부분의 시기에 “속국”보다는 제국에 직접 편입된 지방이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둘째, 왜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웠는가?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을

  • ·야곱·요셉의 성지
  • 축복을 선포한 산
  • 선택하신 참 예배처소
  •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통 성소

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성전은 바알 신전이 아니라 여호와를 섬기는 성전이었습니다. 다만 예루살렘과 경쟁하는 별도의 제사장·성소체계를 만들면서 유대인과의 분열이 점차 굳어졌습니다.

 

 

셋째, 그들이 기다린 메시야는 누구였는가?

대표적으로는 다윗계 정치왕보다

신명기 18장의 ‘모세와 같은 선지자’, 곧 진리와 예배를 회복할 타헤브

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므로 수가성 여인의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알려 주시리이다”

라는 말은 모세적 계시자·회복자 기대와 잘 맞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윗의 아들이면서 모세보다 크신 선지자이고, 궁극적으로 세상의 구주로 사마리아인의 기대를 뛰어넘어 성취하셨습니다.

 

 

넷째, 예수님과 사도들은 왜 사마리아를 품었는가?

사마리아인은 완전한 이방인이 아니라 갈라지고 소외된 이스라엘의 한 갈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궁극적으로는 복음이

  • 사마리아인의 적대
  • 그리심산의 경쟁
  • 혼혈이라는 경계

를 넘어,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의 한 백성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유다에 정치적으로 복속시키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모두가 성령과 진리 안에서 한 아버지를 예배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설교를 위한 중심 명제

앗수르는 북이스라엘 왕국을 없앴고, 여러 제국은 사마리아를 지배했으며,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다른 성전을 세우고 미워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다의 왕으로 오셔서 사마리아를 다시 정치적으로 정복하신 것이 아니라,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을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한 백성으로 회복하셨습니다.

이를 호세아와 연결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내 백성이 아니다”라고 불린 북쪽 백성이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은 사라진 북이스라엘 왕국을 복원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심산도 예루살렘도 넘어서는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이 주시는 성령을 받아 한 백성이 되는 데 있었습니다.

호세아가 예언한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는” 회복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머리 아래 유대와 사마리아가 복음으로 결합되는 사건에서 역사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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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이스라엘 멸망이후 사도행전시대까지의 사마리아인의 변천사 갈렙 2026.09.26 4
994 북이스라엘의 19명의 왕들의 지파와 통치년도 정리 갈렙 2026.09.26 7
993 성경(66권)의 구분_구약성경(39권)과 신약성경(27권)의 구분 file 갈렙 2026.09.21 23
992 회복역 성경에 나오는 그림들_한국복음서원 file 갈렙 2026.09.15 31
991 고고학자 론 와이어트와 김승학 장로가 제시하는 자발 알 라오즈산이 시내산인지에 대한 실제 확인 file 갈렙 2026.09.10 42
990 홍해도강_시내산_가데스바네아_누웨이바 도강설을 거부했던 전문 지리학자 Glen Fritz 갈렙 2026.09.10 80
989 다시 보는 명강의 시리즈, 6천년 성경연대기의 정확성 with 김명현 박사 (성경과학연구소) file 갈렙 2026.09.07 239
988 이스라엘의 7절기에 대한 그리스도 예표론적 성경해석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file 갈렙 2026.09.02 469
987 예수님 땅 속에 있었던 '밤낮 사흘'의 의미_김명현 박사 file 갈렙 2026.08.18 1003
986 다윗의 아들들 file 갈렙 2026.06.15 1299
985 솔로몬에 나타난 메시야의 예표들 갈렙 2026.06.14 1364
984 시편 144편 : 70인역 헬라어 원문(ΨΑΛΜΟΙ 143) file 갈렙 2026.06.13 1364
983 참회의 시편 7편 정밀 직역본(시편 6편, 32편, 38편, 51편, 102편, 130편, 143편) file 갈렙 2026.06.06 1422
982 구약 시편 150편 가운데, 다윗이 쓴 회개의 시편(7편)에 대해서(6, 32, 38, 51, 102, 130, 143) 갈렙 2026.06.04 1613
981 메시야의 신분(인격)과 삶(사역)에 대한 구약의 예언들(종합) file 갈렙 2026.06.04 1363
980 시편에 나와있는 저주의 시에 대한 기존 신학자들의 이해 file 갈렙 2026.06.04 1634
979 구약성경에 나오는 메시야 예언들(종합)_2026-06-04(목) file 갈렙 2026.06.04 1719
978 구약성경에 나오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들(창세기~말라기) 갈렙 2026.05.31 1632
977 특수상황별 회개기도문_국제수도서원(안성삼목사) file 갈렙 2026.03.13 2385
976 예수께서 죽으시고 안치된 골고다(해골의 곳)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 file 갈렙 2026.02.02 22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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