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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hCG8jABrxOM
날짜 2026-02-06
본문말씀 사도행전 2:1~4(신약 88면)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6-02-06(금) 금요기도회

제목: [제2회 방언열기세미나(01)] 방언,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하는가?(행2: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hCG8jABrxOM

 

1. 들어가며: 닫힌 하늘 문을 여는 영의 마스터키

  신앙생활에서 가장 신비로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오해를 많이 받는 영역이 있다면 그것들 중의 하나는 바로 '방언'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방언을 기독교의 핵심적인 은사로 사모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이미 사도 시대에 끝난 과거의 유물이나 귀신의 장난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30년 넘게 성경을 연구하고 영적 세계를 마주해 온 필자는 이렇게 단언한다. 방언은 단순히 신비한 소리 내기가 아니라, 성령과 연합된 인간의 영이 하늘 보좌와 직접 소통하는 영적인 소리 장치라고 말이다.

  필자는 보수적인 장로교 전통에서 자랐었다. 박수조차 금기시되던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방언은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그러나 성경 원문을 파고들고 실제적인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방언이 우리 영을 강화하고 기도의 한계를 돌파하게 하는 얼마나 강력한 도구인지를 점차 알게 되었다. 오늘날 수많은 성도가 기도의 갈증을 느끼면서도 방언의 문턱에서 좌절하는 이유는 방언에 대한 오해와 더불어 방언을 실제적으로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실전적인 가이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 우리는 방언에 대한 신학적 오해를 걷어내고, 성경이 말하는 방언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누구나 유창하게 영의 언어를 발설할 수 있는지 그 비결을 나누고자 한다. 이 메시지는 단순한 이론서가 아니다. 현장에서 검증된 실전 지침서임을 밝힌다. 진리에 목말라하는 전 세계 성도들이 이 말씀을 통해 굳게 닫혔던 입술이 열리고 하늘의 평강과 능력을 체험하는 영적 전환점을 맞이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 방언을 '지방 사투리'나 '외국어'로 오해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우리가 방언을 이해하는 데 겪는 첫 번째 혼란은 바로 방언이라는 '용어' 자체에 있다. 한자어로 '방언(方言)'은 본래 '지방의 말'을 뜻한다. 제주 방언, 경상도 방언이라 할 때의 그 의미다. 한글 성경이 번역되던 초기, 선교사들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나오는 초자연적 언어를 표현하기 위해 이 단어를 선택하여 사용했다. 당시 한글은 '언문'이라 불리며 천대받았고 유식한 이들은 한자를 썼지만, 성경이 한글로 번역되면서 비로소 우리나라가 복음의 옷을 입게 되었다.

  문제는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과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사투리'가 같은 단어를 공유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사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이 두 단어는 명확히 구분된다. 성령의 은사로서의 방언은 헬라어로 '글로싸(Glossa)'이고, 지리적 사투리나 외국어는 헬라어로 '디아레크토스(Dialektos)'다. 그런데 우리말 성경은 이를 모두 '방언'으로 번역해 놓았고, 최근 개역개정판에서는 사도행전 2장의 기록을 아예 '언어'라고 수정하면서 방언이 곧 학습된 외국어라는 오해를 더욱더 고착화시켜 놓았다.

  한국 기독교의 오랜 전통은 성령의 언어를 '방언'이라 불렀다. 그리고 지방 말은 '사투리'라고 구분해 왔다. 하지만 일부 한국의 개신교 신학자들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을 근거로 방언을 오직 '배우지 않은 외국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번역도 와전되어버린 것이다. 방언을 외국어라는 정의하는 이러한 주장은 초자연적인 방언이라는 언어를 인간의 지성 체계 안으로 가두어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 것이다. 아니다. 방언은 동서남북 지방의 말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언어이며 우리 영의 비밀스러운 고백이다. 고로 방언이라는 자체 용어에 대한 정확한 정리가 우리를 방언의 초자연적 본질에 접근하게 해 줄 것이다. 

 

 

 

3. 헬라어 '글로사'와 '디아레크토스'의 차이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방언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헬라어 원어를 살피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 4절,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했을 때 제자들은 "다른 언어들(Glossa)로 말하기를 시작했다고 기록했다." 여기서 '글로싸'는 신체 기관인 '혀'를 뜻함과 동시에 인간의 지식으로 구성되지 않은 '영의 소리'를 의미한다. 반면, 그 소리를 듣고 놀란 유대인들이 "우리의 난 곳 방언(Dialektos)으로 들음이 어찌 됨이냐"라고 했을 때, 그때 사용된 지방어가 곧 '디아레크토스'이다.

  이는 매우 놀라운 구속사적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그날 대부분 갈릴리 출신이었던 120명의 제자가 각기 다른 나라의 외국어를 유창하게 학습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헤테로스 글로싸(질적으로 다른 영의 언어)'를 발설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를 위해 초자연적인 역사를 일으키셔서, 듣는 사람들의 귀에 그 영의 소리가 각자의 모국어인 '디아레크토스'로 번역되어 들리게 하신 것이다. 즉, 말하는 120명의 성도들은 각자 영의 언어인 자신만의 '방언'을 발설했고, 15개국에서 오순절을 지키러 왔다가 마가다락방에 모인 자들 중의 일부는 기적적으로 해석된 자기나라의 말(모국어 혹은 자국어)을 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 발설되어 나온 방언을 '말하는 자의 외국어 능력'으로 오해하면 고린도전서 14장의 가르침과 충돌하게 된다. 바울은 방언을 가리켜 본명하게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이라고 정의했기 때문이다(고전 14:2). 만약 방언이 외국어라면 그 언어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결코 비밀이 될 수 없다. 방언이 오직 하나님만 알아들으시는 비밀인 이유는 그것이 이 세상의 언어 체계인 '디아레크토스'가 아니라 하늘의 소리인 '글로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저자는 그 말이 이 세상에서 사용하던 같은 종류의 여러 다른 언어('알로스'=another)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는 전혀 들을 수는 없는 딴 종류의 언어('헤테로스'=different)였다고 정확히 기록해 놓았다. 참고로 같은 종류들 중에 다른 것은 헬라어로 '알로스'를 사용하고, 딴 종류의 다른 것들을 표현을 할 때에는 '헤테로스'를 사용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딴 종류의 언어로로 방언을 이해함으로써, 방언이 이성의 산물이 아닌 성령의 선물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4. 방언은 성령의 '신령한 은사'인가, 배우면 가능한 '외국어'인가?

  오늘날에 대한민국의 일부 기독교 교단에서는 방언을 그저 전도하기 위한 '외국어 은사'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외국어는 학원을 다니거나 독학을 통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그러한 기술에 불과하다. 그건 성령의 내주하심이 없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성경이 방언을 어떻게 말하는가?. 그것은 "성령의 신령한 아홉 가지 은사"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노력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초자연적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2장 11절을 보라. 이 모든 은사를 "한 성령이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만약 방언이 단순한 외국어라면, 바울이 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했겠는가? 외국어라면 사전을 찾아보거나 공부하라고 했을 것이다. 또한, 사도행전 10장 고넬료 가정의 사례를 보라. 이방인인 고넬료 가정 사람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는 도중 성령이 임하자 즉시 그들은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로마 군인으로서 배우지 않은 유대인의 방언이나 다른 외국어를 말해야 할 필요가 어디 있었겠는가? 그들은 성령을 받은 표적으로서 영의 언어를 그냥 쏟아낸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보고할 때에 고넬료 가정이 모든 자들이 어떻게 말했는지를 이렇게 말했다. 

행 11:15-17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그랬다. 그날 고넬료 가정에서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유대인들이었던 베드로와 120명의 성도들,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기도하고 있었을 때 받은 것과 똑같은 종류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였다. 

  고로, 방언이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은 예수께서 마가복음 16장 17절에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새 방언을 말하며"라고 약속하신 것과 일치한다. 여기서 '새(Kainos)'라는 단어는 기존에 있던 외국어가 아니라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하늘의 소리를 뜻한다. 따라서 방언을 학습의 영역인 외국어로 치부하는 것은 성령의 초자연적인 권능을 부인하는 안타까운 신학적 오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방언은 거듭난 영이 하늘 아버지를 향해 터뜨리는 사랑의 언어이자 강력한 무기인 것이다.

 

 

 

5. 성령의 방언과 악한 영이 장악한 '귀신 방언'을 어떻게 분별하는가?

  방언에 대한 두려움 중 하나는 "혹시 내가 귀신 들려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일 것이다. 실제로 영적 세계에는 '귀신 방언'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도나 미얀마의 이교도 사원에서도 역시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뱉는 현상이 나타나곤 한다. 이것은 악한 영들이 사람의 혀를 장악하여 내는 소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방언을 무서워 멀리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 말에도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성령이 주는 진짜 방언과 귀신이 주는 가짜 방언을  구별할 수 있는가?  그것은 성경적 기준과 실제 현상을 통해 어느 정도 분별이 가능하다. 그럼, 성령의 방언과 귀신의 방언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첫째, 먼저 방언소리의 질감을 통해서다. 성령의 방언은 평강과 기쁨을 동반하며 영혼을 소생시킨다. 반면 귀신이 주는 방언은 소름이 끼치고 불쾌하며 거북한 느낌을 준다(스스스~, 샤샤샤~, 쉿쉿쉿~ 등).

  둘째, 뱀의 영이 강하게 역사하는 경우는 자신의 혀를 낼름거린다. 만약 그의 혀가 쑥 바져나와서 방언을 하고 있다면 100% 귀신이 주는 방언이다.

  셋째, 방언의 발음이 매우 지저분하면서 혀로부터 침이 과도하게 튀거나 가래를 계속해서 뱉는 등의 추한 현상을 동반하기도 한다. 혹은 중간중간에 동물 울름소리 비슷한 소리를 내는 경우가 있다.

  위와 같은 경우, 방언하는 사람의 말을 통역해보면 교회를 저주하거나 음란한 욕설을 퍼붓는 경우도 아주 많다. 이는 혀가 성령의 통제를 벗어나 귀신의 노리개가 된 상태인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진정한 성도는 이러한 것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철저한 회개를 통해 심령을 깨끗이 한 자에게는 결코 악한 영이 틈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력한 성령 사역자의 지도 하에 방언을 받으려 할 때에는 전투천사들이 와서 지켜주기 때문에 안전하게 방언을 받을 수다 있다.

  그러므로 만약 자신이 하고는 방언이 의심된다면 사역자에게 안수를 받아서 영들을 제압하고, 자신의 혀를 붙잡고 있는 영들을 불로 태워버리면, 진짜 방언을 할 수 있다. 그렇다. 깨끗한 그릇에 성령의 기름이 부어질 때 비로소 순수하고 투명한 영의 언어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방언은 결코 지저분하지 않다. 그것은 하늘 보좌의 수정을 통과해 나온 맑은 시내와 같은 언어이기 때문이다. 

 

 

 

6. 방언을 간절히 사모하면서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회에 수십 년을 다녀도 방언을 못 하는 성도들이 꽤 많다. 그들이 믿음이 없거나 기도가 부족해서일까? 그렇지는 않다. 다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장벽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잘못된 지식의 장벽 때문이다. "방언은 은사 중지론에 따라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거나 단지 "외국어일 뿐이다" 혹은 그것은 "귀신이 가득했던 고린도교회가 받은 잘못된 현상이다"는 가르침을 들으면 그만 자신의 영이 위축되어 입을 닫아버린다. 이때는 방언에 대한 바른 지식의 교정을 받지 아니하면 영의 자유함은 끝내 오지 않을 수 있다.

  둘째는 방언을 '받으려만 하는 태도'의 문제다. 많은 이들이 "방언을 주시옵소서"라고 한국말로만 수십 번 수백 번을 외친다. 그렇지만 그는 방언을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성령은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계셔서 우리의 혀를 사용하여 발설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위에서 무언가를 툭 던져주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방언은 성령이 강권적으로 혀를 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내가 입술을 벌려 '발설(發說)'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말로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영의 언어가 우리 혀에서 나오지 못한다. 

  셋째는 영적인 방해다. 특히 유교 전통이 강한 제사 가문의 후손들이나 이성적 논리가 강한 지식인들은 방언을 하는 것을 '미친 짓'으로 여기는 불신앙의 영에 사로잡혀 있다. 머리에 가득 찬 제사의 영은 끊임없이 의심과 논리를 들이대며 혀의 주권을 내어주지 못하게 막는다. 그럴 때에는 이 결박을 끊어내야 한다. 머리를 붙잡고 있는 제사의 영과 혀를 붙잡고 있는 악한 영들을 안수를 통해 불로 태워서 제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은 머리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배로부터 생수의 강이 터져 나와서 자신의 혀가 영의 언어를 말하는 사건이다. 이 세 가지 장벽만 허물어지면 방언은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영적 호흡이 된다.

 

 

 

7. 방언을 터뜨리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육체적 실습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방언을 말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방언은 영적인 사건이지만 동시에 '혀'라는 육체적 기관을 사용하는 일이다. 말을 배우지 못한 아이를 언어치료기관에 보내듯, 방언이 안 터지는 이들에게는 일종의 '영적 언어 치료'가 필요하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혀를 푸는 연습이다. 혀를 "도로로로로..."라고 말함으로 혀를 떨리게 해보라. 혀가 자유롭게 떨리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 것이한다. 혀가 굳어 있는 상태에서는 영이 내 혀를 장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할렐루야 루야 루야 루야"를 반복하는 것이다. 혹은 필자가 고안한 것으로 '리커바커(Lika-baka)' 훈련이다. "리커바커 리커바커"를 빠르게 반복하다 보면 혀가 약간 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자국어의 리듬을 잃게 된다. 그때 혀가 가고자 하는 대로 소리를 내는 것이다. "샤카바야, 알라시야" 같은 의미 없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이 방언의 마중물이다. 처음에는 내가 억지로 만드는 것 같아 어색할지 모르지만,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운전대가 성령께로 넘어가며 영의 에너지가 실리게 된다.

  이것은 자전거 타기와 같다. 처음 배울 때는 비틀거리고 남이 잡아줘야 하지만, 한 번 중심을 잡으면 평생 잊어버리지 않고 자유롭게 탈 수 있다. 방언도 마찬가지다. 한 번 터진 물꼬는 기도의 분량이 쌓일수록 깊은 강을 이룬다. 주저하지 말고 입을 크게 벌려 선포하라. 당신의 영은 이미 당신의 혀를 통해 하나님과 대화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리커바커"라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너머에는 광대한 하늘의 언어가 기다리고 있다.

 

 

 

8. 방언 기도가 성도의 영권 강화에 주는 5가지 유익은 무엇인가?

  내가 새롭게 방언을 말한다면 어떤 유익을 얻게 되는가? 방언은 단순히 신비한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도들의 삶에 엄청난 영적인 유익을 가져다준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기의 덕을 세운다(고전 14:4).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고 영적 구조물을 견고하게 건축하여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만든다.

  둘째, 영을 사용하고 강하게 하는 방법을 터득케 한다. 방언을 통해 영이 강화되면 사물에게 명령하고 귀신을 제압하는 실제적인 영적 권세(Power)가 생기는 것이다.

  셋째, 모든 신령한 은사의 기초가 된다. 방언은 환상, 예언, 치유, 영 분별의 은사로 나아가는 영적인 입구요 통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넷째,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뜻을 발견하게 한다. 방언을 통역하게 되면 내 영이 하나님께 무엇을 간구하는지, 주님이 나를 향해 어떤 비전을 가지고 계신지 알게 된다.

  다섯 번째는 주님과의 친밀한 연합이다. 특히 방언 찬양으로 들어가면 영이 주님과 밀착되어 천국 보좌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 방언 찬양이 유창한 자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하늘의 영광을 보게 된다.

  방언을 하는 자는 결코 영적으로 굶주리지 않는다. 말로 하는 기도는 내 욕심이 섞여 들어가지만, 내 영의 기도는 100% 하나님의 뜻만을 간구한다. 그러므로 허물어지고 깨어진 자신의 신앙을 건축해준다. 그리고 이것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전투방언, 방언찬양, 방언통역으로 나아간다면, 나를 영적인 전사로 무장시켜 준다. 그런데 이렇게더 귀한 선물을 어찌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며 거부하겠는가? 방언의 가치를 아는 자만이 마지막 시대에 이기는 자의 반열에 서게 될 것이다.

 

 

 

9. 나오며: 성령의 물결에 몸을 던지라

  오늘 우리는 방언의 정체성과 실전적인 비결을 살펴보았다. 방언은 신학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오늘 당장 당신의 삶에 터져 나와야 할 실질적인 권세다. 성령은 이미 당신 곁에서 당신의 입술을 쓰기 원하신다. 당신의 영은 하나님을 향해 노래하고 싶어 탄식하고 있다. 이제 육체의 논리를 잠재우고 성령의 물결에 몸을 던져라.

  지금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영적인 힘이 필요한 시대다. 이론에 갇힌 종교인이 되지 말고, 실제적인 능력을 소유한 성령의 전사가 되라. 혀를 풀고, 마음을 열고, "리커바커"를 외치며 믿음의 발걸음을 떼라. 당신의 입술을 통해 선포되는 하늘의 언어가 가문의 저주를 끊고, 질병의 결박을 풀며,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당신의 열린 입술을 기다리고 계신다. 성령의 불이 당신의 혀에 임하여,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하는 승리자의 노래가 그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란다.

 

 

2026년 2월 6일(금)

정보배 목사

 

 

[설교요약]

본 설교는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를 바탕으로 방언의 본질과 유익을 성경적으로 정의하며, 방언이 단순한 외국어가 아닌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영이 말하는 하늘의 언어임을 강조합니다. 본 설교는 방언을 신령한 소통의 표적이자 모든 영적 은사의 통로로 규정하고, 잘못된 신학적 오해나 악한 영의 방해를 제거하면 거듭난 그리스도인 누구나 자연스럽게 방언을 말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우고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도구이며, 말씀 경청과 기도, 그리고 안수를 통해 실질적으로 방언이 열리는 영적 체험에 이를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이 텍스트는 학습과 실습을 통해 성도들이 영의 언어를 회복하고 영적인 권세를 사용하는 삶으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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