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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3oP8kHITsIc
날짜 2026-02-13
본문말씀 누가복음 9:1~6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6-02-13(금) 금요기도회

제목: [금요기도회] 예수님의 12제자들은 어떻게 이기는 자들이 될 수 있었는가?(눅9:1~6)_2026-02-13(금)

https://youtu.be/3oP8kHITsIc

 

1. 들어가며

  위대한 공연에는 반드시 리허설이 존재한다. 진짜 보아야 할 본 공연의 감동을 완벽하게 전달하기 위해, 배우들은 수없이 서로의 동작과 말을 맞추고 동선을 체크한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구속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열두 아들들의 이야기는 엄밀히 말해 하나의 거대한 '리허설'이었다. 그들은 오실 메시아와 그분이 이루실 하나님 나라를 미리 보여주는기 위해서 리허설을 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차매, '본 공연'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은 홀로 오시지 않고, 구약의 열두 지파를 완성할 열두 제자를 부르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승리가 단회적인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재현되고 확장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제자들을 어떻게 훈련시키셨는지, 그리고 그들이 진정한 '이기는 자(The Overcomer)'가 되기 위해 통과해야 했던 혹독한 과정이 무엇이었는지를 일곱 가지 질문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별히 구약 시대와 달리 신약의 성도들에게만 주어진 강력한 무기인 '영적 전쟁(축사)'의 비밀을 파헤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차지해야 할 영광스러운 보좌의 자리를 재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2. 구약의 인물들이 '이기는 자'의 리허설이었다면, '본 공연'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은 왜 혼자가 아니라 12명의 제자를 따로 세우셔야 했는가?

  예수께서는 하나님이시기에 혼자서도 얼마든지 세상을 구원하고 사탄을 멸하실 수 있으시다. 그러나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자마자 가장 먼저 제자들을 부르셨다. 갈릴리 해변을 거니시며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부르셨고(마 4:18-22), 밤이 맞도록 기도하신 후에 열두 명을 사도로 세우셨다(눅 6:12-16).

  그럼, 왜 12명인가? 이것은 구약의 야곱이 열두 아들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공동체를 이룬 리허설을 완성하기 위함이었다. 야곱이 '이기는 자'의 뿌리라면, 예수님은 그 실체이시다. 예수님은 당신 혼자만 승리자가 되어 왕 노릇 하기를 원치 않으셨다. 당신을 따르는 자들도 똑같이 '이기는 자'가 되어, 천국에서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는 권세를 누리게 하려 하셨다(마 19:28).

  즉, 예수님의 제자 훈련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었다. 그것은 죄와 사망,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는 '이기는 자들을 복제해 내는 과정'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신 그 길을 제자들도 똑같이 걸어가며, 마침내 승리의 면류관을 쓰기를 간절히 원하셨던 것이다.

 

 

3. 성경이 말하는 '이긴다(Overcome)'는 것은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항복하여 상황을 극복해내는 것인가?

  세상은 힘이 세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을 '승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적 의미의 '이김'은 전혀 다르다. '이기는 자'의 시초인 야곱을 보자. 그는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여 이겼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그가 힘으로 천사를 제압했는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환도뼈(허벅지 관절)가 위골되어 절뚝거리는 신세가 되었다. 힘으로는 졌다.

  그러나 야곱은 '항복'함으로써 이겼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형 에서의 칼날을 막을 수 없습니다. 내 꾀와 내 능력으로는 이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를 살리실 수 있습니다." 이 처절한 자기 포기와 하나님을 향한 매달림,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승리다.

  그러므로 '이기는 자'란 자신의 자아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항복하는 자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교만을 내려놓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붙들음으로써 도저히 이길 수 없는 환경과 상황을 '극복해 내는(prevail)' 자가 진정한 승리자로서 이기는 자인 것이다.

 

 

4. 유다(자수성가형)와 요셉(예정형)의 모델을 볼 때, 예수님의 12제자는 어떤 유형에 속하며 그들에게 주어진 특권은 무엇이었는가?

  구약에서 '이기는 자'의 모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유다처럼 흠이 많고 실수투성이였으나, 회개와 자기 희생을 통해 승리자가 된 '자수성가형'이 있다. 다른 하나는 요셉처럼 어릴 때부터 꿈을 꾸고 하나님의 계획 속에 태어나서 고난을 통과하면서 완성된 '예정형'이 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후자로서 '예정형 이기는 자'에 가깝다. 예수님은 아무나 뽑지 않으셨다. 만세 전부터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자들을 이 땅에 보내셨고 예수께서는 그들을 찾아 갈릴리로 가셨다. 그들은 비록 세상적으로는 비천한 어부였고 세리였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기초석이 될만한 그릇들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대체적으로 그들의 영적 나이가 높다. 

  그들에게 주어진 특권은 놀라운 것이었다.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며 천국 복음을 직접 듣는 특권,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부여받은 특권이 그들에게 있었다(막 3:13-19). 그리고 무엇보다 장차 천국에서 열두 보좌에 앉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마 19:28). 그러나 '예정'이 곧 '완성'인 것은 아니다. 가룟 유다처럼 예정된 자라 할지라도 스스로 그 자리를 차버리면 하나님의 주실 복을 받지 못한 채 구원자체에서도 탈락할 수 있다. 예정은 가능성이며,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치열한 자기 부인과 순종에서다.

 

 

5.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반드시 버려야 했던 것들(그물, 부친, 세관, 야망)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영적 결단을 요구하는가?

  12명의 제자들이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그들이 통과해야 했던 첫 번째 관문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버림(Forsaking)'이다. 그런데 이들은 하늘에서 이미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었기에 주님의 부르심 앞에 그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으며,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다(마 4:19, 22). 마태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세관의 자리를 박차고 기꺼이 나왔다(마 9:9).

막 10: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단순히 직업을 바꾸라는 말이 아니었다. 자신이 의지하고 있던 세상의 안전장치, 자신의 생계수단, 혈연관계를 내려놓아야 했다. 그리고 세상적 성공을 향한 야망을 내려놓으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상태에서도 자신들이 더 높은 자가 되고,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는 것을 바랬다. 자신이 가야할 길이 고난의 길이라는 것을 그들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성령강림 이후 바뀌게 된다. 또한 제자들 중에는 성질이 불같은 것 곧 혈기도 내려놓아야 했다. 그러므로 '우레의 아들(보아너게)'이라 불릴 만큼 불같은 성격을 가졌던 야고보와 요한도 점차 그것을 버리면서 주님을 따라야 했다(막 3:17, 눅9:54). 

  오늘날에도 역시 주님께서 우리에게 묻으신다.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버릴 수 있느냐?" 돈인가? 자존심인가? 가족에 대한 애착인가? 혹은 내 성질인가? 쥐고 있는 손으로는 주님을 잡을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이 어느정도 훈련을 받았을 때에 그들의 대표인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다.(마 19:27)" 이처럼 제자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주님을 따를 수 있을 때에 그들이 이기는 자로 점차 빚어진 것처럼, 우리들 또한 나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것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이기는 자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6. 구약 성도들에게는 없었던, 신약의 제자들에게만 주어신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한 가장 강력하고 독특한 무기는 무엇인가?

  사실 지금 이 부분이 오늘 설교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신약시대에 들어와 이기는 자들의 조건이 하나 더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귀신을 내쫓고 병든 자를 고치라는 것이다(눅 9:1-2, 6).

눅 9:1-2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권세)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눅 9:6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그런데 구약 성경을 아무리 읽어봐도 귀신을 쫓아내라는 명령이나 사례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신약에 들어와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할 때에 아주 독특한 권세를 주어 보내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자신의 12제재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권세)"(마 10:1)를 주어보내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신약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귀신 축사'가 이기는 자들의 조건으로 등장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구약시대에는 이것이 가려져 있거나 혹은 예표론적으로만  언급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야곱의 얍복강의 기도로 인하여 마음을 바꾼 것은 형 에서의 마음 뿐만 아니라 에서를 따라왔던 악한 영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라 거의 숨겨겨 있는 것이었다. 또한 여호수의 시대에 보자. 그가 하늘의 기업을 예표하고 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귀신들로 예표된 가나안 일곱 족속들을 싸워서 몰아내야 했었다. 이는 영적 전쟁의 필요성을 아주 강하게 예표하고 있다. 둘째, 구약시대에는 창세기 3:14의 말씀에 따라 이 땅에 있던 타락한 천사들 곧 뱀들이 엄청나게 사람들의 육체 속에 들어갔지만, 하늘에 있는 타락한 천사들 곧 귀신들이 들어간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 귀신들 곧 타락한 천사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늘에서 있으면서 죄지은 자들을 참소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구약 시대에는 보혜사 성령께서 아직 사람 속에 내주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전부 머리 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약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은 성도 안에 성령께서 거처를 정하시는 시대가 되었다. 거룩한 영이 믿는 자들 안에 들어오시어, 귀신들을 싸울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서 자기 안에 성령님을 모시게 되었다고 해서 저절로 육체 속에 있는 귀신들이 떠나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영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육체 속에는 여전히 뱀들과 귀신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님을 믿어 거듭난 자라도 그가 회개함으로 자신의 육체에 예수님의 피가 들어오게 함으로 인하여, 내 육체 속에서 들어와 있던 아니면 내 육체 속에서 집을 짓고 살던 더러운 영들(귀신들)을 몰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럼, 우리 사람들 속에는 어떤 영들이 들어있는가? 그것은 째로, 조상 대대로 내려온 뱀들 곧 혈기의 영, 음란의 영, 거짓의 영, 미움의 영, 두려움의 영들이 뱀의 형상을 하고 똬리를 틀고 있다. 둘째로, 하늘의 타락한 천사들인 귀신들이 제사의 영, 부처의 영, 무당 점쟁이의 영, 미신 잡신의 영으로 이미 우리 몸에 들어와 있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그대로 놔두고는 결코 '이기는 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우리 몸에서 죄를 짓도록 유혹할 뿐만 아니라, 우리 몸과 혼에 계속해서 저주를 퍼붓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병들고 가난해지고 신기가 오고 앞길이 막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영들을 몰아내야 한다. 그래야 내 몸에서부터 하나님의 왕국이 실질적으로 임하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러한 뱀들과 귀신들을 제압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당신의 권세 있는 이름을 주셨다. 그리고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막 16:17-18). 그런데 천국에서 기업을 차지하는 자가 되고, 왕노릇하는 자가 되려면 귀신축사는 더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큰 자는 자기만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남도 이기는 자가 되게 하여 천국에서 기업을 차지하고 왕노릇하게 하는 자는 돕는 자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자기 안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을 내보내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 힘으로 하는 싸움이 아니다. 예수께서 이미 이겨놓은 전쟁을 믿음으로 선포하여 이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천국에 단지 들어가는 자가 만족하려 하지 말고, 내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과 다른 사람들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을 몰아내는 것이야말로 신약 성도들 중에 진짜 이기는 자가 되는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7. 3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훈련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제자들이 무너지고 가룟 유다가 탈락한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12명의 제자들이 주님의 제자들로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자신의 배도 버리고 그물도 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주님을 따라 이기는 자들이 되기 위해, 자기들을 먹고 사렉 해주는 생업도 버리고, 가족도 내려놓고, 돈버는 일도 버리고 자신의 성질까지도 내려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둘로 나가서 귀신을 쫓아내는 실습도 하고 병도 고쳤다.

  그러나 그들은 십자가라는 결정적인 죽음의 위기 앞에서 모두가 도망쳤다. 심비어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고, 가룟 유다는 스승을 팔고 자살까지 했다. 왜 그토록 훈련받은 그들이 무너졌을까?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그들은 물질은 버렸으나, '목숨'에 대한 애착과 '두려움'은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자 그들 내면에 숨어 있던 두려움의 영이 발동한 것이다. 가룟 유다의 경우, 사탄이 넣어준 생각("예수를 팔라")을 물리치지 못하고 받아들였고, 죄책감 속에서 마귀의 정죄("너는 죽어야 해")에 굴복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둘째, 그들이 아직 자기 속에 보혜사 성령 곧 한 분 하나님이 내주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비록 예수님으로부터 귀신을 쫓는 권세를 부여받았지만 그들 속에는 여전히 보혜사 성령이 내주하지 않은 상태에 있었기에 그들은 죽음의 위기 앞에서 살기 위해 스스로 도망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역시 오순절 이후 성령을 받은 다음에는 목숨을 내어놓고 복음을 증거하다가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는 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순교의 길을 걷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안겨준다. 이것은 거듭난 성도라고 할지라도 다 이기는 자들이 될 수도 없음을 시사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 결정적인 위기 앞에서 자기 내면의 두려움과 싸워 이기지 못한다면, 우리들도 역시 다시 넘어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내 안에 악한 영들이 많이 있으면 그것들은 자석처럼 다른 사람와 주위에 있는 영들을 빨아들인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내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을 내보내는 일이다. 그것은 오직 자백하는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지은 죄를 자백하고, 조상들이 지은 죄를 자백하여, 내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8. 12보좌 중 비어버린 가룟 유다의 자리는 오늘날 누구에게 열려 있으며, 우리는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어떤 싸움을 싸워야 하는가?

  사실 예수님의 12제자들 중의 하나였던가룟 유다는 예정된 자리에서 탈락하여 그만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70줄의 11번째로 예정된 그의 자리는 비어 있다. 이것은 영적으로 매주 중요한 원리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이기는 자'의 보좌가 아직은 다 차지 않았다는 것이. 요한계시록 7장과 14장에 나오는 14만 4천의 수, 즉 이 땅에서 승리하여 왕 노릇 할 자들의 숫자가 아직 덜찼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남아있는 그 빈 자리를 차지할 자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었던 유다처럼 '자수성가형 이기는 자들'의 기회가 남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들 중의 대부분은 야곱의 11번째 아들이었던 요셉이나 신약의 12사도들처럼 처음부터 사도로 부름받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다. 교회를 통해, 회개를 통해, 내 안의 귀신을 쫓아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유언을 성취함으로써, 비어 있는 그 영광스러운 보좌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영적 전쟁의 시대다. 단순히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구경꾼 신앙으로는 안 된다. 내 안의 더러운 영들과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하는 것이다. 나의 혈기, 나의 교만, 나의 음란을 회개를 통해 우리 몸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싸움을 계속해서 수행해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어느날 우리도 이기는 자가 되었을 때, 가룟 유다가 놓쳐버린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아 주님과 함께 세세토록 왕 노릇 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9. 나오며

  예수께서 12제자들을 불러모아 이기는 자로서 훈련시키신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시청각 교재이다. 주님은 우리를 단순히 '교인'으로 부르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턱걸이로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부르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천국에서 상속자가 되어 하늘나라의 기업을 물려받을 자로 부르셨고, 또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여 주님이 마련해주신 144,000석의 보좌에 함께 앉을 '전우'이자 '이기는 자자'로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버렸고 내려놓았는가? 그리고 지금은 내가 무엇과 싸우고 있는가? 혹시 아직도 세상의 줄을 놓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는 사람은 아닌가? 혹은 내 안의 악한 영들이 던지는 생각에 속아서 날마다 패배감에 젖어 있지는 아니한가?

  기억하라.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음을 말이다(눅 9:17, 막16:17-18, 행16:18).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다는 사실을 말이다(요일 4:4). 그러므로 귀신들과 싸움에서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의 스위치를 켜서 불을 밝히라. 내 안의 어둠을 회개와 축사로 몰아내라. 실수하고 넘어질지라도 베드로처럼 다시 일어나서 전열을 가다듬어라.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예정된 자라도 탈락할 수 있고, 부족한 자라도 싸워 이기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이제 우리 모두가 다 영적인 야성을 회복하여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할 뿐만 아니라, 원수의 영역에 당당히 승리의 깃발을 꽂는 주님의 용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02월 13일(금)

정보배 목사

 

 

[설교요약]

본 설교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이기는 자로 변화되었는지를 성경적 관점에서 통찰력 있게 설명합니다. 본 설교는 '이김'을 인간적인 완력이 아닌 자신의 자아와 한계를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께 항복하여 얻는 극복과 승리로 정의하며, 이를 구약의 야곱과 신약의 제자들을 연결하여 풀이합니다. 특히 신약 시대의 제자들은 만세 전부터 예정된 이기는 자로서 부름받았으며, 주님으로부터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권능을 부여받아 실제적인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모델이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들이 세속적인 욕심과 혈기를 버리고 내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할 때, 비로소 악한 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천국의 보좌와 기업을 차지하는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음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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