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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창세기강해(172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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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8(주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창세기강해(54) 皿(그릇 명)과 器(그릇 기)에 담겨있는 노아의 방주와 노아 가족의 비밀(창7:6~7)_2021-03-28(주일)

https://youtu.be/1G3GS4JUaSU

 

1. 들어가며

  방주(方舟)에 관한 진실은 어디까지인가? 노아의 방주의 모양은 대체 어떻게 생겼으며, 노아의 방주는 지금도 여전히 아라랏산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노아의 방주에 관하여 성경말씀이 들려주는 정보는 대체 어디까지인가? 그런데 놀랍게도 조금 있다가 살펴보겠지만 성경이 들려주고 있는 노아의 방주에 관한 정보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흘려 들었기 때문에 방주에 대한 상상도는 제 각각 다르게 그려졌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들려주는 말씀에 따라 노아의 방주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해발 5,137m) 멈춰있던 시기는 연대기적으로 계산해보면, B.C.2458년경이며, 그 시기는 아담창조이후 1656년이 지난 시점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만약 노아의 방주가 머무르게 되었던 장소가 높은 고지라고 한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만년설에 뒤덥혀 있기에 아직도 거기에 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여러 사람들이 보았다는 간증도 있으며, 2010년도에는 중국과 터키의 답사팀이 방주 안으로 들어가서 방주 속을 촬영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과 더불어 성경이외의 기록으로 고대 한자 속에 들어있는 노아의 방주의 모양과 그리고 방주 안에 들어갔던 사람들에 관한 진실을 한자(漢字) 그릇 명(皿) 자(字)와 그릇 기(器) 자(字)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2. 성경이 말하고 있는 노아의 방주의 모양은 어떠한 모습인가?

  창세기 6~8장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 관한 말씀에 따르면 방주의 모양은 다음과 같이 생겼다. 첫째, 방주의 전체적인 모양은 직사각형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노아의 방주의 크기가 길이는 300규빗(135m), 너비는 50규빗(22.5m), 높이는 30규빗(13.5m)이기 때문이다(창6:15). 둘째, 방주는 위에서부터 한 규빗 아래에 창문을 냈다(창6:16). 셋째, 방주에는 덮개가 있어서 덮개로 덮은 것이었다(창8:13). 넷째, 방주의 옆면에 출입문을 하나 달았다(6;16, 7:16). 다섯째, 방주는 상중하 3층으로 만들어졌다(창6:16). 여기까지는 방주에 관한 성경기록의 전부다. 

 

3. 고대 한자(漢字)가 말해주는 노아의 방주의 모양은 어떠한 모습인가?

  그렇다면 고대 한자가 들려주는 노아의 방주의 모양은 어떠하였는가?(참고로, 고대 한자는 노아의 방주의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들이 바벨탑 사건을 통해 언어의 혼잡 때문에 동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이 만든 글자라고 추정된다)  노아의 방주에 관하여 한자가 들려주는 것은 성경과 일치한다. 아니 일치할 뿐만 아니라 더 자세한 내용을 들려주기도 한다.

  첫째, 노아의 방주는 네모난 모양이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방주(方舟)의 "방((方)" 자(字)가 "네모"라는 뜻을 지녔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 모양을 직사각형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한자는 네모난 모양이라고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노아의 방주는 무엇인가를 담는 그릇처럼 지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방주 위에도 물이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이 불어 땅을 넘쳤다는 표현을 한자로는 "창일"이라고 하는데, 이 "창일(漲溢)"이라는 글자가 그것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창일(漲溢)의 창은 "넘칠 창((漲)"자이며, 일도 "넘칠 일(溢)"다. 그런데 여기서 "넘칠 일"자를 보라. 이 글자의 고대 글자는 "넘칠 일(益)"자로서, 물 수(水) 변에다가 또 물 수(水) 자가 위에 있고, 그 아래에 그릇 명(皿) 자가 있다. 이는 뜻이 "넘치다"라는 뜻인데, 물이 그릇 명 자의 왼쪽 편에 부수로서 있다. 이것은 그릇이 물에 둘러쌓여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고로 우리는 "그릇 명(皿)"자가 "노아의 방주"의 또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정리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창이 열려서 40일동안 억수같이 물이 쏟아졌기 때문이요, 노아의 방주의 용도 무엇(사람과 동물)을 담기 위한 그릇으로 처음부터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릇도 한자(漢字)의 모양을 보니, 네모난 모양이며 칸칸이 막으로 되어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성경은 상중하 세 층으로 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한자(漢字)는 칸칸이 막으로 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동물들을 한꺼번에 한 곳에 모아놓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한자(漢字)가 들려주는 노아의 방주의 내부의 모습은 칸칸이 막으로 쳐서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노아의 방주는 고대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아주 컸다는 것이다. 이는 방주의 덮개에 대한 한자(漢字)인 "덮개 개(蓋)"자의 고대 한자(漢字)를 통해서 확인해볼 수 있다. "덮개 개" 자는 풀 초(艸)에다가 "덮을 합(盍) 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 "덮을 합"를 더 오래된 한자로 보면, 이 모양(盍)이 아니라, 이 모양(盇)이기 때문이다. 즉 갈 거(去) 자에다가 "그릇 명" 자인데, 여기서 "갈 거(去)" 자를 더 오래된 것으로 살펴보면, "클 태(太)" 라고나온다. 그러니까 설명하자면, 노아의 홍수 때에 방주는 매우 컸었다는 것이다. 또한 방주가 1년이상을 물에 떠있다 보니, 풀들이 노아의 방주 위에 얹혀 있었거나, 혹은 아예 노아의 방주 덮개에 풀을 심어 재배했을른지도 모른다. 아마도 물 위에 떠 다니는 풀들이 노아의 방주 위에 얹혀지게 된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 노아의 가족들은 왜 방주 안에서 각각 따로따로 생활했는가?

... 

 

 

5. 노아의 둘째아들 함이 실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함의 아들이 저주를 받았는가?

 ...

 

 

6. 나오며

 ...

 

 

2021년 03월 28일(주일)

정보배목사

 

[설교핵심]

창세기 강해를 담은 이 설교는 고대 한자의 형상에 담긴 노아의 방주와 가족의 비밀을 성경적 근거와 연결하여 심도 있게 고찰합니다. 저자는 '그릇 명(皿)'과 '그릇 기(器)' 자의 갑골문 및 금문 구조가 직사각형 형태의 방주와 그 안에 격리되어 거주했던 8명의 가족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성경 본문에서 노아의 가족을 네 부류로 나누어 기록한 이유를 방주 내에서의 철저한 절제와 성적 성결을 지키기 위함이었다고 풀이하며, 이러한 신앙적 순종이 훗날 후손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는 근거가 되었음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텍스트는 한자 속에 투영된 고대 역사의 흔적을 통해 성경 기록의 사실성을 증명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성실하고 정결하게 살아가는 태도가 자녀 세대에게 전달되는 복의 마중물이 된다는 영적 교훈을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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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된 역사적 진실

  우리는 흔히 인류의 역사가 수만 년, 혹은 수십억 년 되었다고 배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지구의 역사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성경의 연대기를 역추적하여 솔로몬 성전 건축 연도를 기점으로 계산해 보면, 아담이 창조된 해는 기원전 4114년경이며, 노아의 홍수가 일어난 해는 기원전 2458년경(천지창조 후 1656년)으로 추정된다. 과학계에서는 공룡이 수천만 년 전에 멸종했다고 주장하지만, 불과 1700년대까지도 공룡(거대 파충류)이 인간과 공존했다는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1970년대 일본 근해에서는 부패하지 않은 거대한 사경룡의 사체가 그물에 걸려 올라오기도 했다. 이는 지구가 생각보다 '젊다'는 것을 방증한다.

  노아의 홍수는 국지적인 물난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천지개벽할 대격변이었다. 우리 속담에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다. 뽕나무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우리 한반도 서쪽에 있는 황해(서해)는 세계적인 갯벌을 자랑한다. 이 거대한 갯벌은 과거 그곳이 육지였음을 말해준다. 우리 조상인 동이족은 고조선 시대부터 누에를 쳐서 비단을 만들어 입었다. 즉, 지금의 황해는 과거에 뽕나무가 무성했던 광활한 밭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노아 홍수 때 일어난 지각 변동은 육지를 바다로, 바다를 육지로 뒤바꿔 놓았다. 궁창 위의 물이 쏟아지고 깊음의 샘들이 터지면서 해수면이 상승했고, 낮은 지대는 바다가 되었다. 고대 한자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이 엄청난 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노아의 방주 사건은 신화가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목격하고 겪었던, 그리고 문자로 남겨놓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오늘 우리는 한자 속에 화석처럼 굳어 있는 그날의 기억을 꺼내어, 방주의 실체와 그 속에 담긴 구원의 비밀을 파헤쳐 보고자 한다.

 

2. 방주(方舟)는 왜 둥근 배가 아니라 네모난 상자여야 했는가?

  우리는 흔히 '방주(Ark)'를 배라고 생각하여 유선형의 배 모양을 상상하곤 한다. 그러나 성경과 한자는 방주가 일반적인 배와는 완전히 다른 모양이었음을 증언한다. 방주를 뜻하는 한자 '방주(方舟)'에서 '모 방(方)' 자는 '네모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방주는 둥근 배가 아니라 '네모난 상자' 모양의 배였다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방주의 규격을 보면 길이 300규빗, 너비 50규빗, 높이 30규빗이다. 이것은 완벽한 직육면체 비율이다. 왜 하나님은 방주를 네모난 상자 모양으로 만들라고 하셨을까? 일반적인 배는 목적지를 향해 항해를 해야 하므로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유선형으로 만들고, 방향을 조절하는 키(Rudder)와 추진력을 얻는 돛(Sail)이나 노가 필요하다.

  그러나 방주는 항해가 목적이 아니었다. 방주의 유일한 목적은 '뜨는 것(Floating)'과 '보존(Preservation)'이었다. 어디로 갈지는 배 안에 탄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물결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었다. 네모난 상자 형태는 파도에 전복되지 않는 가장 안정적인 구조다. 현대 조선 공학자들의 실험 결과, 이 성경적 비율의 방주는 30미터 이상의 거대한 파도에도 뒤집히지 않고 90도 가까이 기울어져도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복원력을 가진 것으로 증명되었다.

  한자 '방(方)'은 이 배가 스스로 운전하여 가는 배가 아니라, 네모난 상자처럼 생겨서 그저 물 위에 떠 있으며 생명을 보존하는 데 최적화된 구조물이었음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우리의 구원도 이와 같다. 내가 내 인생의 키를 잡고 운전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예수 그리스도라는 방주 안에 들어가 머물기만 하면,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3. '홍수(洪水)'와 '넘칠 일(溢)'은 그날의 상황을 어떻게 증언하는가?

  그렇다면 당시 홍수의 규모는 어떠했는가? 어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노아의 홍수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국한된 국지적 홍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자는 그것이 전 지구적인 대홍수였음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넓을 홍(洪)' 혹은 '홍수 홍(洪)' 자를 보자. 이 글자는 '물 수(水)' 변에 '함께 공(共)' 자가 결합된 것이다.

  '함께 공(共)'은 '모두', '다 함께'라는 뜻이다. 즉, 물이 어느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곳에 '함께' 차올랐다는 뜻이다. 또한 여덟 팔(八) 자 아래에 스물 입(卄)과 한 일(一)이 결합된 형태로 보아, 8명의 식구가 함께 물난리를 겪은 사건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더욱 결정적인 증거는 '넘칠 일(溢)' 혹은 '창일할 창(漲)' 자에 있다. 성경은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창 7:19)라고 기록한다. 여기서 '넘치다'에 해당하는 한자를 파자해 보면 놀라운 그림이 보인다. 현대 한자에서 '넘칠 일(溢)'은 '물 수(水)' 변에 '더할 익(益)' 자를 쓴다. 그런데 이 글자의 고대 형태(갑골문이나 금문)를 보면, 그릇(皿) 위로 물(水)이 넘쳐흐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는 방주(그릇)가 물 위에 떠 있는데, 그 방주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아니 온 세상을 뒤덮을 만큼 물이 차고 넘쳤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하늘의 창이 열리고 땅의 샘이 터져, 방주 밖은 온통 물바다였다. 산들이 물에 잠기고, 방주는 그 망망대해 위에 외롭게 떠 있는 하나의 점과 같았다. '홍(洪)'과 '일(溢)' 자는 그날의 물이 국지적인 범람이 아니라, 지구 전체를 삼킨 심판의 물결이었음을 웅변하고 있다.

 

4. 방주에는 왜 뚜껑(蓋)이 덮여 있었는가?

  노아의 방주는 위가 뚫려 있는 일반적인 배가 아니었다. 성경은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창을 내고"(창 6:16)라고 했으며, 홍수가 끝난 후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창 8:13)이라고 기록한다. 즉, 방주는 뚜껑(덮개)이 있는 구조였다.

  '덮을 개(蓋)' 자를 보면 방주의 덮개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글자는 '풀 초(艹)' 머리에 '갈 거(去)' 혹은 '덮을 합(盍)', 그리고 아래에 '그릇 명(皿)' 자가 있는 복잡한 구조다. 이를 방주 사건과 연결해 보면 이렇다.

  가장 아래에 있는 '그릇 명(皿)'은 방주를 상징한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그 위에 덮개가 덮여 있는데, 맨 위에 '풀 초(艹)' 자가 있다. 이것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방주를 만들 때 역청을 바르고 나무를 엮어 덮개를 만들었는데, 그 틈새를 막기 위해 풀이나 식물성 재료를 사용했을 가능성이다. 둘째, 대홍수 기간 엄청난 물살에 떠밀려온 수많은 수초와 나무 부스러기들이 방주 뚜껑 위에 가득 쌓여 있었던 상황을 묘사한 것일 수 있다.

  방주가 물 위를 떠다니는 동안, 세상의 온갖 부유물들이 방주 덮개 위를 덮었을 것이다. 한자는 '그릇(皿)' 위에 무언가 수북하게 덮여 있는(艹) 형상을 통해, 뚜껑 닫힌 방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뚜껑은 중요한 영적 의미를 가진다. 방주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없다. 옆으로 난 문도 닫혔고, 오직 위로 난 창문만 열려 있다. 이것은 심판의 참상을 보며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위에 계신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뜻이다. 뚜껑은 우리를 세상의 심판으로부터 격리하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날개 그늘과도 같다.

 

5. 왜 배 선(船) 자가 아닌 '그릇 명(皿)' 자가 방주의 원형인가?

  우리는 노아의 방주를 생각할 때 흔히 '배 선(船)' 자를 떠올린다. 이 글자는 '배 주(舟)'에 '여덟 팔(八)'과 '입 구(口)'가 합쳐진 것으로, 배에 여덟 명의 식구가 탔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것 역시 방주 사건을 증거하는 중요한 글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방주의 기능과 본질을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글자는 바로 '그릇 명(皿)'이다.

  앞서 '넘칠 일(溢)'이나 '덮을 개(蓋)' 자를 설명할 때, 그 글자들의 기초(바닥)에 공통적으로 '그릇 명(皿)' 자가 들어있음을 보았다. 왜 고대인들은 대홍수 사건을 기록하면서 배 주(舟)가 아닌 그릇 명(皿)을 사용했을까? 이것은 방주의 목적이 '이동(Navigation)'이 아니라 '담는 것(Containing)'이었기 때문이다.

  '그릇 명(皿)' 자의 모양을 보라. 네모난 바닥에 양옆이 올라와 있는 형상이다. 이는 위가 뚫려 있는 일반적인 그릇이라기보다는, 노아의 방주 단면도를 연상케 한다. 방주는 스스로 동력을 가지고 움직이는 배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생명들을 그 안에 안전하게 '담아두는' 거대한 생명 보존 용기였다.

  그릇의 사명은 무엇인가? 내용물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다. 방주는 심판의 물결로부터 그 안에 담긴 씨앗들과 동물들, 그리고 노아의 가족을 안전하게 지켜내는 그릇이었다. 하나님은 이 그릇을 역청으로 안팎을 칠하게 하여 물이 한 방울도 새어들지 못하게 하셨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영적 교훈을 준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내 힘으로 인생의 바다를 헤쳐 나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거룩한 그릇(방주) 안에 담기는 것이다. 그릇 안에 담겨 있으면, 밖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든 파도가 넘실대든 상관없다. 그릇이 깨지지 않는 한 내용물은 안전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품으시는 구원의 방주이자 깨지지 않는 그릇이시다. 우리는 그분 안에 '담겨' 있을 때 비로소 안전하다.

 

6. '그릇 기(器)' 자 속의 네 명은 누구이며, 왜 그들은 따로 지내야 했는가?

  이제 시선을 방주 밖에서 안으로 옮겨보자. 방주 안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한자 '그릇 기(器)' 자는 방주 내부의 생활상과 영적 질서를 놀랍도록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글자는 '입 구(口)' 자가 네 개(ㅁㅁㅁㅁ) 있고, 그 가운데에 '개 견(犬)' 혹은 고대 글자에서는 '장인 공(工)' 자가 들어있는 형상이다.

  우리는 여기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입이 네 개일까? 방주에 탄 사람은 총 8명인데 말이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그 답이 보인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로 들어가라고 명하실 때, 그리고 그들이 방주에 들어간 순서를 기록할 때 독특한 화법을 사용하신다.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은 함께 방주로 들어가고"(창 6:18). "노아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그의 며느리들이... 방주로 들어갔고"(창 7:7).

  하나님은 "너희 부부와 큰아들 부부, 둘째 아들 부부..." 이렇게 부부 단위로 묶어서 말씀하지 않으셨다. 남자들(노아와 세 아들)과 여자들(아내와 세 며느리)을 철저하게 구분하여 언급하셨다. 이것은 총 4번에 걸쳐 반복된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방주 생활 1년 동안, 그들은 부부 관계를 맺지 않고 철저히 금욕하며 성별(聖別)된 삶을 살았음을 암시한다.

  방주는 신혼여행을 즐기는 유람선이 아니다. 온 세상이 심판받아 죽어가는 장례식장과 같은 곳이며, 새로운 인류의 씨앗을 보존해야 하는 거룩한 인큐베이터였다. 세상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다가 홍수를 만났지만(마 24:38), 구원받은 노아의 가족은 방주 안에서 철저히 절제했다.

  그렇다면 '기(器)' 자에 있는 네 개의 입(口)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바로 네 명의 남자들(노아, 셈, 함, 야벳)이다. 고대 한자에서 가운데 들어있는 '장인 공(工)' 자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제사장 혹은 기술자를 의미한다. 노아와 세 아들은 120년(혹은 100년) 동안 방주를 짓는 거룩한 기술자(工)들이었다. 그들은 방주 안에서도 수많은 동물을 먹이고 돌보는 사역을 감당해야 했다.

  '그릇 기(器)' 자는 네 명의 남자(口)가 기술자(工)로서 방주의 사명을 감당하며, 여자들과 구별된 공간에서 식사하고 생활했음을 보여주는 글자다. 이들은 육체적 쾌락을 절제하고, 오직 하나님의 생명 보존 사역에 집중했다. 이것이 바로 '그릇(Vessel)'의 본질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그릇은 깨끗해야 한다(딤후 2:21). 노아의 가족, 특히 남자들은 방주라는 그릇 안에서 자신들을 또 하나의 거룩한 그릇으로 준비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7. 왜 아버지를 욕보인 함 대신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는가?

   방주에서 나온 후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한다.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고 잠이 든 것이다. 이때 둘째 아들 함이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 형제들에게 알렸다(창 9:22). 이는 아버지의 권위를 훼손하고 수치를 드러낸 죄였다. 반면 셈과 야벳은 뒷걸음질 쳐 들어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드렸다.

  술에서 깬 노아는 이 사실을 알고 저주를 선포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죄를 지은 '함'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함의 아들인 '가나안'을 저주한다(창 9:25).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도대체 왜 함이 아닌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을까? 성경의 난제 중 하나인 이 질문에 대해, 앞서 살펴본 '그릇 기(器)' 자와 방주 생활의 비밀이 그 해답을 제시한다.

  함은 비록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는 지난 100년 동안 아버지 노아를 도와 묵묵히 방주를 지었던 '장인(工)' 중 한 명이었다. 또한 방주 안에서의 1년 동안, 혈기 왕성한 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고 철저히 절제하며 동물을 돌보는 사역에 충성했다. '기(器)' 자 속에 있는 네 개의 입 중 하나가 바로 함이었다.

  하나님은 함의 과거의 순종과 헌신을 기억하신 것이다. 비록 지금 큰 허물을 범했지만, 방주를 짓고 그 안에서 인내하며 생명을 보존했던 그 공로(Merit)를 보시고, 당대에 내려질 저주를 유예해 주신 것이다. 함이 쌓아 올린 순종의 분량이 그를 덮어주었다. 그래서 그 저주는 함 본인이 아니라, 아마도 그 현장에 같이 있었거나 죄의 속성을 드러낸 그의 아들 가나안에게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두려우면서도 감사한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쌓아둔 기도의 분량, 헌신의 분량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이다. 때로 우리가 넘어져 실수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과거에 흘렸던 눈물과 땀을 기억하시고 진노를 거두시거나 유예하신다. "내가 그때 너를 보았다. 네가 묵묵히 순종하던 그때를 내가 기억한다." 이것이 함이 직접적인 저주를 피할 수 있었던 비밀이다.

  그러나 동시에 죄의 대가는 엄중하다는 것도 보여준다. 나의 죄가 내 사랑하는 자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깨어 있어야 하는지를 경고한다. 노아의 방주 사건은 단순한 구원 스토리가 아니라, 순종과 절제, 그리고 죄와 은혜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거대한 영적 파노라마이다.

 

8. 나오며: 과거의 순종은 현재의 실수를 덮는 은혜의 마중물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고대 한자라는 렌즈를 통해 노아의 방주 사건을 재조명해 보았다. 방주는 둥근 배가 아니라 네모난 상자(方)였고, 온 세상을 뒤덮은 홍수(洪) 속에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뚜껑(蓋)을 덮은 거대한 그릇(皿)이었다. 그리고 그 그릇 안에는 성적 쾌락을 절제하고 묵묵히 사명을 감당했던 네 명의 남자들(器)이 있었다.

 이 모든 기록은 노아의 홍수가 먼 옛날의 신화가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생생하게 목격하고 기억했던 역사적 사실임을 증웅변한다. 방주는 단순한 목재 구조물이 아니라, 타락한 세상에서 거룩한 씨앗을 보존하려는 하나님의 눈물겨운 구원 프로젝트였다.

우리는 특히 함의 사건을 통해 깊은 위로와 도전을 받는다. 함은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내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다. 율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비난받아 마땅한 죄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의 입을 통해 함을 직접 저주하지 않으시고, 그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셨다. 왜 그러셨을까? 하나님은 '그때'를 기억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비웃을 때 묵묵히 산 위에서 나무를 베고 역청을 바르던 그 100년의 시간, 그리고 방주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자신의 본능을 억제하며 짐승의 오물을 치우고 먹이를 나르던 그 1년의 시간. 하나님은 함이 흘린 그 순종의 땀방울을 결코 잊지 않으셨다. 그가 쌓아 올린 충성의 분량이 방패가 되어, 그의 치명적인 실수로부터 그를 지켜낸 것이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행하는 헌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자원하여 감당하는 수고, 그리고 죄의 유혹 앞에서도 거룩함을 지키려는 몸부림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차곡차곡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훗날 우리가 연약하여 넘어질 때 우리를 붙들어주는 은혜의 마중물이 된다.

  오늘 우리가 교회 주방에서 흘린 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드린 기도, 묵묵히 감당한 운전 봉사나 청소...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그릇 기(器)' 자 속에 들어있는 거룩한 '장인(工)'의 사역이다.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신다. "내가 그때 너를 보았다. 네가 그때 나의 편에 섰지 않느냐." 이 한마디가 심판의 날에, 혹은 위기의 순간에 우리를 살릴 것이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자. 실수했다고 너무 자책하지도 말자. 우리에게는 우리의 부족함을 덮어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있고, 또한 우리가 주를 위해 심어놓은 기도의 씨앗들이 있다.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라는 그릇 안에서 생명을 보존받았듯이,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라는 방주 안에서, 그리고 순종이라는 그릇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의의 방주'를 지어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갚아주시는 은혜가 임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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