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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창세기강해(172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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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주소 https://youtu.be/7I76f5lvkJE

2022-03-07 주일찬양예배

제목: 창세기강해(37) 고대 한자 속에 담겨있는 인간창조 및 타락의 숨겨진 비밀(2)(창3:7~12)_2021-03-07(주일)

https://youtu.be/7I76f5lvkJE

 

1. 들어가며

  

2. 고대한자 속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가?

 

1)천지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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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간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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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에덴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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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첫째계명

善惡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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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여자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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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간타락

魔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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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여자의 후손

後孫=後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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種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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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제사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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犧牲祭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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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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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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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잃어버린 기억의 파편을 찾아서

  인류의 역사는 기록된 문자를 통해 전승된다. 전 세계에는 수많은 언어와 문자가 존재하지만,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소리를 기호로 표현한 표음문자(Phonogram)이고, 다른 하나는 사물의 모양이나 뜻을 형상화한 표의문자(Ideogram)이다. 영어나 한글은 표음문자로서 소리를 적는 데는 탁월하지만, 그 글자 자체에 역사적 사건이나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는 않다. 반면, 한자(漢字)는 글자 하나하나가 그림에서 출발하여 뜻을 담고 있는 독특한 문자 체계다. 그렇다면 이 한자는 누가, 언제,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을까?

  놀랍게도 고대 한자 속에는 성경의 창세기, 특히 1장부터 11장까지의 사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천지창조, 에덴동산의 비밀, 인간의 타락, 노아의 홍수, 그리고 바벨탑 사건에 이르기까지, 성경을 알지 못하고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글자들의 조합이 한자 속에 무수히 발견된다. 이는 한자가 단순히 중국인들이 만든 글자가 아니라는 강력한 증거다. 고대 동이족(東夷族), 즉 우리 한민족의 조상들이 바벨탑 사건 때에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그들이 목격하고 경험했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창세기의 역사적 사실들을 문자로 남긴 것이 바로 한자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한자를 불교나 유교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한자가 만들어진 시기는 불교가 들어오기 훨씬 이전, 즉 노아의 홍수 사건과 바벨탑 사건 직후인 고대 시기다. 그때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있었고, 창조와 타락의 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후대에 이 진실을 전하기 위해 글자 속에 그 기억을 암호처럼 새겨 넣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을 잊어버린 후손들은 글자의 껍데기만 남기고 그 속에 담긴 영적인 비밀을 잊어버렸다.

  이제 성경이라는 '해독의 열쇠'를 가지고 고대 한자의 빗장을 열어보려 한다. 이것은 단순한 문자 유희가 아니다. 잃어버린 인류의 시원(始原)에 대한 기억을 복원하는 작업이며, 우리 조상들이 그토록 섬기고자 했던 하늘의 하나님, 상제(上帝)가 바로 성경의 야훼 하나님임을 확인하는 거룩한 여정이다. 이 글을 통해 한자 속에 숨겨진 피 묻은 복음의 진리를 발견하고, 태초부터 우리를 향해 있었던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감격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2. '신(神)'과 '영(靈)'자는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성경의 첫 문장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로 시작된다. 그렇다면 고대인들은 이 창조주 하나님을 문자로 어떻게 표현했을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신 신(神)' 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놀라운 창조의 비밀이 드러난다. 이 글자는 '보일 시(示)'와 '펼 신(申)'의 결합이다. 왼쪽의 '보일 시(示)'는 제단이나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는 형상을 의미하며,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을 뜻한다. 오른쪽의 '펼 신(申)'은 밭이나 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 갑골문을 보면 하늘에서 번개가 치듯 손이 펴져 내려오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즉, '신(神)'이라는 글자는 하나님이 하늘에서 손을 펴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 전능자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하늘과 땅이 열리고 생명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고대인들이 인식한 신의 정의였다. 하나님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손을 펴서 일하시는 창조주이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창세기는 하나님의 영(Spirit)이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고 기록한다. 이 '영 령(靈)' 분석해 보면 성삼위 하나님의 존재 방식과 인간의 본질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영(靈)' 자의 윗부분은 '비 우(雨)' 자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만물을 소생시키는 생명의 물이다. 성경에서 물은 곧 성령을 상징한다. 하늘로부터 내려와 죽은 흙에 생기를 불어넣는 생명의 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다.

  그 아래에는 '입 구(口)' 자가 세 개(aaa) 나란히 놓여 있다. 왜 하필 입이 세 개일까?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암시하는 강력한 증거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하실 때 말씀으로 역사하셨음을 보여준다. 한 분의 하나님이 하나의 뜻으로 말씀하시고 일하시는 연합의 신비가 '입 구' 자 세 개에 담겨 있다.

  그리고 가장 아랫부분에는 '무당 무(巫)' 자가 있다. 흔히 무속 신앙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글자의 본래 의미는 '장인 공(工)' 자 사이에 '사람 인(人)' 두 명이 들어있는 형상이다. '장인 공(工)'은 하늘(ㅡ)과 땅(_)을 연결(│)한다는 뜻이다. 즉,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존재, 하나님과 피조 세계를 이어주는 중보적 존재가 바로 영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두 사람)는 본래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늘의 뜻을 땅에 이루는 제사장적 존재로 지음 받았다.

  결국 '영(靈)' 자는, 삼위일체 하나님(aaa)께서 생명의 비(雨)와 같은 성령으로 흙으로 빚어진 사람에게 임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巫) 영적 존재가 되게 하셨음을 보여주는 글자다. 인간은 흙에서 왔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할 때 비로소 하늘과 소통하는 존귀한 존재가 된다. 이것이 한자가 말하는 인간론의 핵심이다.

 

3. 에덴동산의 풍요와 금기, '복(福)'과 '금(禁)'에 숨겨진 비밀은?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 에덴동산에 두셨다. 에덴은 기쁨과 풍요의 땅이었다.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복 복(福)'를 보면 에덴동산의 풍경이 그대로 펼쳐진다. 사람들은 돈이 많거나 오래 사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지만, 한자가 정의하는 복은 전혀 다르다. '복(福)' 자는 '보일 시(示)', '한 일(一)', '입 구(口)', '밭 전(田)'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일 시(示)'는 앞서 말했듯 하나님을 상징한다. 그리고 '한 일(一)'과 '입 구(口)'는 한 사람, 즉 아담을 의미한다. '밭 전(田)'은 단순히 농사짓는 땅이 아니라, 네 개의 강이 발원하여 흐르던 에덴동산을 상징한다. 창세기 2장에는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라는 네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밭 전(田)' 자의 십(十) 자 모양은 바로 사방으로 흐르는 이 네 강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복이란 무엇인가? 하나님(示)과 한 사람(一口)이 에덴동산(田)에 함께 있는 상태, 이것이 바로 '복(福)'이다. 하나님과 분리된 풍요는 복이 아니다. 에덴의 모든 풍요로움은 하나님과 함께할 때만 의미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 할 복의 개념도 바로 이것이다. 천국이 복된 곳인 이유는 그곳이 황금 길이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기 때문이다.

  이 완벽한 에덴동산에는 단 하나의 규칙이 있었다.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는 금기였다. '금할 금(禁)' 자를 보면 이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위에는 '수풀 림(林)'이 있고, 아래에는 '보일 시(示)'가 있다. '수풀 림(林)'은 나무 두 그루를 의미한다. 에덴동산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이 두 나무가 있었다. 하나님(示)께서 이 두 나무(林)에 대해 명령하신 것, 그것이 바로 '금(禁)'이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은 "수풀에서는 귀신이 나오니까 가지 마라"는 식으로 엉터리 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의 맥락에서 보면 이는 너무나 명확하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두 나무를 보여주시며 "생명나무는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 말라"고 금지하셨다. 이것은 인간을 억압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인간이 피조물의 위치를 지키고,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할 때 비로소 참된 자유와 생명을 누릴 수 있음을 알려주는 사랑의 안전장치였다. '금(禁)' 자에는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하는 피조물의 운명이 새겨져 있다.

 

4. 성경이 말하는 진짜 '선(善)'과 '악(惡)'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토록 경계하셨던 선악과의 '선(善)'과 '악(惡)'은 도대체 무엇인가? 세상의 윤리 도덕적 기준과는 차원이 다른 영적인 정의가 한자 속에 숨겨져 있다. 먼저 '착할 선(善)' 자를 보자. 이 글자는 '양 양(羊)' 자 밑에 '말씀 언(言)' 혹은 '입 구(口)' 자가 결합된 형태다(고대 문자에서는 양 밑에 눈이나 말씀 언이 배치된다).

  왜 양(羊)이 선(善)의 기준이 되는가? 성경에서 양은 희생제물을 상징하며, 궁극적으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선(善)' 자를 파자하면 "양(羊)의 말씀(言)" 혹은 "양(羊)과 같은 입(口)"이 된다. 이는 불평 없이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죽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희생이 곧 최고의 '선'임을 웅변한다.

  더 깊이 들어가면, '양 양(羊)' 자 밑에 있는 글자는 '말씀 언(言)'과 더불어 '받들 공(拱)'의 변형으로도 볼 수 있다. 즉, 양을 받들어 모시는 것,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인정하고 그분을 따르는 것이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선이다. 내가 착하게 사는 것이 선이 아니라, 선하신 목자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이 선이다.

  반대로 '악할 악(惡)' 자는 끔찍한 영적 실체를 폭로한다. 이 글자는 '버금 아(亞)' 자 밑에 '마음 심(心)' 자가 있다. '버금(亞)'이란 으뜸 다음가는 두 번째 자리를 말한다. 즉, '악(惡)'이란 "두 번째 마음" 혹은 "두 번째 자리에 있어야 할 존재가 첫째가 되려는 마음"을 품는 것이다.

  이것은 사탄의 기원을 정확히 설명한다. 루시퍼는 하나님 다음가는, 피조물 중 가장 아름답고 높은 지위를 가진 천사였다. 그러나 그는 '버금(亞)'의 자리에 만족하지 못했다. "내가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지극히 높은 이와 비기리라"(사 14:13-14).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한 마음, 자기 분수를 넘어 하나님의 자리를 탐하는 그 마음(心)이 바로 '악(惡)'의 본질이다.

또한 '악(惡)'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 외에 다른 주인, 즉 '두 번째 주인'을 두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의 재물, 명예, 쾌락을 마음에 품는 것, 이중적인 마음을 갖는 것이 곧 악이다. '버금 아(亞)' 자의 모양을 뒤집어 보면 십자가가 네 귀퉁이가 막혀 있는 듯한 형상이다. 혹은 무덤의 형상과도 같다. 생명의 십자가를 거부하고 갇혀 있는 마음, 하나님을 흉내 내지만 생명이 없는 상태가 바로 악이다.

에덴동산에서 뱀은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be like God)"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고 유혹했다. 악의 핵심은 '하나님처럼 되려는 시도'다. 한자는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양(예수 그리스도)을 따르는 것이 선(善)이며, 스스로 하나님 되려는 마음(사탄의 마음)을 품는 것이 악(惡)이다.

 

5. 왜 여자를 '요긴할 요(要)'라고 하며, 해 질 녘에 창조했는가?

  창조 사역의 하이라이트는 인간 창조, 그중에서도 여자의 창조다. 하나님은 아담을 먼저 지으시고 그를 이끌어 각종 짐승들의 이름을 짓게 하셨다. 아담은 그 수많은 동물들이 암수 쌍을 이루어 정답게 노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과 짝이 될 존재는 없었다. 성경은 "아담이 돕는 배필(짝)이 없으므로"(창 2:20)라고 기록한다. 이때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다.

  이 사건이 한자 '요긴할 요(要)' 자에 정확하게 담겨 있다. 우리는 흔히 '중요하다', '필요하다'라고 할 때 이 글자를 쓴다. 그런데 이 글자를 뜯어보면 '서녘 서(西)' 자와 '여자 여(女)' 자의 합성어임을 알 수 있다. 왜 하필 서쪽일까? '서녘 서(西)'는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새들이 둥지로 돌아가는 시간, 즉 하루의 여섯째 날 저녁 무렵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모든 창조를 마치시고, 마지막 순간인 해 질 녘(西)에 아담을 잠재우고 여자(女)를 만드셨다. 이것이 바로 '요(要)' 자의 기원이다. 즉, 남자인 아담에게 있어서 여자는 해가 질 때 만난,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요긴하고 중요한' 존재라는 뜻이다. 여자는 남자의 부속품이 아니다. 남자의 빈 곳을 채워 완성시키는 결정적인 존재다. 남자들이여, 아내를 볼 때마다 이 글자를 기억해야 한다. "당신은 나의 저녁에 찾아온, 내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요긴한 사람이다."

  또한 여자가 가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편안할 안(安)' 자에서도 드러난다. 이 글자는 '집 면(宀)' 자 아래에 '여자 여(女)' 자가 있는 형상이다. 집에 여자가 있어야 편안하다는 뜻이다. 남자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와도, 그 집에 지혜롭고 따뜻한 아내가 없으면 그 집은 삭막한 숙소에 불과하다. 여자가 자리를 지키고 가정을 돌볼 때 비로소 그곳은 안식처가 된다.

  하나님은 아담에게서 갈빗대를 취해 여자를 만드시고, 그 여자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다. 그때 아담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했다. 이는 단순한 감탄이 아니라, "당신은 나의 생명과 같습니다"라는 신앙고백이었다. 한자는 여자가 남자의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창조의 완성이자 남자에게 가장 필요한(要) 생명의 동반자임을 증거하고 있다.

 

6. '마귀(魔)'와 '용(龍)'은 어떻게 에덴을 침노했는가?

  에덴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간 타락 사건이 발생했다. 성경은 뱀(사탄)이 여자를 유혹했다고 기록한다. 한자는 이 영적 대적자의 실체를 무서우리만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먼저 '마귀 마(魔)' 자를 보자. 이 글자는 '귀신 귀(鬼)' 자 위에 '수풀 림(林)'과 '집 엄(广)' 자가 덮여 있는 복잡한 구조다.

  이것을 에덴동산의 사건으로 재구성해 보자. '수풀 림(林)'은 두 나무(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는 동산을 의미한다. 그 나무 사이 은밀한 곳(广)에 숨어서 인간을 노리고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귀신(鬼)'이며 '마귀(魔)'다. 마귀는 광명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나무 그늘 속에, 혹은 그럴듯한 명분 뒤에 숨어서 인간에게 접근한다. "이것을 먹으면 네가 하나님같이 될 거야." 마귀는 숲속에 숨어 속삭이는 유혹자다.

  성경은 이 존재를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용'이라고도 한다(계 12:9). 동양 문화권에서 용은 신성한 존재로 숭배받지만, 성경적 관점과 한자의 원형에서 본 '용 용(龍)' 자는 흉측한 괴물이다. '용 용(龍)' 자의 옛 글자(갑골문)를 보면 머리에 뿔이 있고 입을 크게 벌리고 있으며, 긴 꼬리를 가진 짐승의 형상이다. 놀랍게도 성경 요한계시록은 용을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고 묘사한다. 한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흉내 내어 스스로 왕 노릇 하려는(立) 몸뚱어리(肉)를 가진, 날아다니며 미혹하는 존재를 형상화했다.

  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결과는 참혹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는 순간 눈이 밝아져 자신들이 벗은 줄을 알게 되었다. 이 장면은 '벌거벗을 라(裸)' 자에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글자는 '옷 의(衣)' 변에 '열매 과(果)' 자가 합쳐진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열매와 옷 벗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열매를 많이 먹으면 배가 불러 옷을 벗는가? 아니다.

  이 글자는 오직 창세기의 타락 사건으로만 해석이 가능하다. "그 열매(果)를 먹으니, 옷(衣)이 벗겨졌음을(裸) 알게 되었다." 선악과라는 금단의 열매를 따 먹은 결과, 그들을 감싸고 있던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떠나가고, 수치스러운 벌거벗은 육체만 남게 된 것이다. 그들은 부끄러움에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해 입었다. '처음 초(初)' 자는 '옷 의(衣)' 변에 '칼 도(刀)' 자가 결합되어 있다. 인류가 처음으로 지어 입은 옷은 가위나 칼(刀)로 나뭇잎이나 가죽을 잘라서 만든(衣) 것이었다. 한자는 인류 최초의 옷이 죄로 인한 수치를 가리기 위해 시작되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7. '희생(犧)'과 '의(義)'는 어떻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는가?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나무 뒤에 숨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찾아오셨다. 그리고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다(창 3:21). 가죽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짐승의 죽음과 피 흘림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부터 인류 구원을 위한 '제사(Sacrifice)'의 역사가 시작된다.

  '희생 희(犧)' 자는 구약의 제사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완벽하게 예표한다. 이 글자는 '소 우(牛)' 변에 '양 양(羊)', '빼어날 수(秀)', '창 과(戈)'가 결합된 아주 복잡한 글자다. 이를 풀어보면 이렇다. 하나님께 드릴 희생 제물은 소(牛)나 양(羊)이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것이나 드리면 안 된다. 반드시 흠 없고 '빼어난(秀)'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제물은 '창(戈)'에 찔려 죽임을 당해야 한다.

  이것은 골고다 언덕에서 창에 찔려 물과 피를 쏟으신, 흠 없고 점 없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가리킨다. 한자를 만든 고대인들은 죄를 씻기 위해서는 반드시 흠 없는 생명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계시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고 선언한다. 인간의 행위로는 결코 의에 이를 수 없다. 한자 '옳을 의(義)' 자는 우리가 의롭게 되는 유일한 길을 보여준다. 이 글자는 '양 양(羊)' 자 아래에 '나 아(我)' 자가 놓여 있는 구조다.

  이것은 복음의 정수(Essence)다. "나(我)라는 존재 위에 어린 양(羊)을 모시는 것", 그것이 바로 '의(義)'다. 내가 양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 혹은 양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이다. 하나님이 위에서 내려다보실 때, 죄인인 '나'는 보이지 않고 나를 덮고 있는 '어린 양'만 보이신다. 그래서 나를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칭의(Justification)다.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아래에 있는 '나 아(我)' 자는 '손 수(手)' 변에 '창 과(戈)'가 합쳐진 글자다. 즉, '나'라는 존재는 손에 창을 들고 있는, 언제든지 남을 찌르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죄인이다. 그런데 그런 죄인인 내가 어떻게 의로워지는가? 내 손에 든 창을 내려놓고, 그 위에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모실 때, 혹은 내가 든 창으로 내가 죽어야 할 자리에 어린 양이 대신 찔려 죽으심으로 나는 의롭게 되는 것이다.

  한자는 웅변한다. "네가 의로워지고 싶은가? 네 노력으로 쌓은 공든 탑은 무너진다. 오직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 뒤에 숨어라. 그분을 네 머리 위에 모셔라. 그래야 산다."

 

8. '씨(種)'와 아담의 선택은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예표하는가?

  타락한 인류에게 하나님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약속을 주셨다. 바로 "여자의 후손"에 관한 원시 복음이다(창 3:15). 뱀이 여자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했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 여자의 '씨(Seed)'를 통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이 '씨'에 대한 비밀이 한자 '씨 종(種)' 자에 담겨 있다.

  '씨 종(種)' 자는 '벼 화(禾)' 변에 '무거울 중(重)' 자가 결합된 글자다. 왜 씨앗이 무거운가? 농부에게 있어 씨앗은 당장 배가 고파도 먹지 않고 내년을 위해 남겨두어야 하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 작은 씨앗 속에 장차 맺혀질 수많은 생명의 무게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볼 때, 이 '무거울 중(重)' 자는 생명의 무게, 즉 장차 오실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함과 그분이 감당하셔야 할 십자가의 무게를 상징한다.

  흥미로운 점은 '용 용(龍)' 자와 '씨 종(種)' 자의 관계다. '용 용(龍)' 자를 자세히 뜯어보면, 그 안에도 밭이나 씨앗을 감싸고 있는 듯한 형상이 보인다. 이는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치열한 '씨들의 전쟁'을 암시한다. 뱀(용)도 자신의 씨(가라지)를 세상에 뿌려 하나님의 밭을 망치려 하고, 하나님은 여자의 씨(알곡)를 통해 이를 회복하려 하신다. 결국 인류 역사는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의 영적 전쟁터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창세기의 가장 미스터리한 장면, 바로 아담의 선택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와는 뱀에게 속아 선악과를 먹었다. 그렇다면 아담은? 성경은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딤전 2:14)고 명확히 기록한다. 아담은 속지 않았다. 그는 저것을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먹었을까? 단순히 여자가 주니까 생각 없이 받아먹었을까?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최초의 인간 아담은 지혜가 충만한 자였다. 그는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것을 보았을 때 직감했을 것이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인 저 여자가 이제 죽게 되었구나." 그때 아담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하나님께 "저 여자가 죄를 지었으니 폐기 처분하고 새 여자를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죽을 수밖에 없는 아내와 운명을 같이하기로 결단했다. "네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 내가 너의 죄를 짊어지고 함께 죽음의 길을 가겠다." 이것이 아담이 선악과를 받아먹은 진짜 이유가 아닐까? 물론 이것은 아담의 불순종이며 죄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신부(하와)를 살리기 위해 죄가 되기를 자처한 신랑(아담)의 비장한 사랑이 숨어 있다.

  이것은 장차 오실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벽하게 예표한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다. 뱀에게 속지도 않으셨다. 그러나 자신의 신부인 우리(교회)가 죄를 지어 죽게 되었을 때,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주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친히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 우리가 마셔야 할 진노의 잔을 대신 마시셨다. 아담의 실패한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성되었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너를 위해 기꺼이 죽노라."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속(Redemption)의 핵심이다.

 

9. 나오며: 한자 속에 새겨진 피 묻은 복음

  지금까지 우리는 고대 한자라는 타임캡슐을 열어 창세기의 잃어버린 기억들을 복원해 보았다. 하나님(神)은 손을 펴서 만물을 지으신 분이며, 인간(靈)은 하나님의 생명의 비를 맞아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존재였다. 에덴동산의 축복(福)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었고, 타락은 하나님처럼 되려는 악(惡)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죄로 인해 벌거벗은(裸)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희생(犧) 제물을 준비하셨고, 어린 양(羊) 뒤에 숨는 자만이 의(義)롭다 함을 얻는 길을 열어 주셨다.

  이 모든 글자들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바벨탑 사건 이후 흩어졌던 우리 조상들, 동방으로 이동했던 고대인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었고, 그분이 베푸신 창조와 타락과 구원의 드라마를 뼈에 사무치도록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후대에게 이 진실을 전하기 위해 글자 하나하나에 복음의 DNA를 심어 놓았던 것이다. 비록 후손들은 그 의미를 잊고 글자만 사용해 왔지만, 이제 성경의 빛으로 그 봉인을 뜯어보니 그 안에서 선명한 십자가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우리는 목격했다.

  우리는 우연히 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창세 전부터, 아니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하나님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해 놓으셨다(계 13:8). 아담이 타락할 것조차 아셨던 하나님은, 그를 버리는 대신 아들을 죽여서라도 다시 살려내기로 작정하셨다. 한자는 그 하나님의 집요하고도 위대한 사랑의 기록이다.

  이제 우리는 한자를 볼 때마다, 그리고 성경을 읽을 때마다 그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눈물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값싼 것이 아니다. 창조주의 생명과 맞바꾼 기적이다. 이 놀라운 비밀을 깨달은 자라면 어찌 잠잠할 수 있겠는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우리의 영원한 신랑 되시며, 우리를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리신 참된 '씨',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린다. 그분의 사랑이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의 심령에 생명의 씨앗으로 심겨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21년 03월 07일(주일)

정보배목사

 

[심화 연구] 한자에 숨겨진 에덴동산의 문(門)과 제사의 비밀

Q. 성경의 창세기 사건이 한자(漢字) 속에 담겨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

  놀랍게도 그렇다. 한자는 동양의 고대 문자이지만, 그 형성 과정을 깊이 들여다보면 성경의 창세기, 특히 에덴동산의 사건과 제사의 원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인류의 조상들이 홍수 이후 흩어지면서, 그들이 기억하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제사의 규례를 문자에 담아 후대에 전한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문(門)'과 '제사(祭祀)'에 관련된 글자들을 파자(글자를 깨뜨려 분석함)해 보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왜 이 땅에 오셔야 했는지를 더욱 선명하게 깨닫게 된다.

1. 문(門), 문(問), 문(聞): 에덴의 문 앞에서 일어난 일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을 때, 하나님은 그룹들(천사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창 3:24). 이때부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경계, 즉 '문(門)'이 생겼다. 이 문은 두 개의 문짝이 마주 보고 있는 형상으로, 닫혀 있는 에덴의 입구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쫓겨난 죄인인 인간은 그 문 앞에서 무엇을 해야 했는가? '물으러 갈 문(問)' 자를 보라. 문(門) 사이에 입 구(口) 자가 있다. 죄인은 닫힌 문 앞에서 입을 열어 하나님께 "어떻게 해야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 계십니까?"라고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기도의 시작이다.

  그때 문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이것이 '들을 문(聞)' 자이다. 문(門) 사이에 귀 이(耳) 자가 들어 있다. 죄인이 밖에서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혹은 죄인이 문에 귀를 대고 하나님의 용서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계시와 응답의 원리이다. 하나님은 문 밖으로 쫓겨난 인생들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 문 앞에서 소통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것이 바로 제사이다.

2. 희생(犧牲): 흠 없는 소와 양이 창에 찔려 죽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희생(犧牲)' 제물이다. 이 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완벽하게 예표하고 있다.

  먼저 '희생 희(犧)' 자를 분석해 보자. 이 글자는 소 우(牛) + 양 양(양) + 빼어날 수(秀) + 창 과(戈)가 합쳐진 글자이다. 이를 영적으로 해석하면, "가장 빼어난(秀, 흠 없는) 소(牛)와 양(양)이 창(戈)에 찔려 죽는 것"이 바로 희생이라는 뜻이다. 구약 시대에 흠 없는 소와 양을 잡아 제사 드렸던 것을 묘사함과 동시에, 장차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창에 찔리시고 피 흘리실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다음으로 '희생 생(牲)' 자를 보자. 소 우(牛) + 날 생(生)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날 생(生)'은 다시 사람 인(人) + 흙 토(土)로 분해된다. 즉, "흙(土) 위에 오신 사람(人)이 소(牛)처럼 되어 제물이 되시는 것", 이것이 희생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土)에 사람(人)으로 오셨다. 그리고 묵묵히 일하는 소처럼 우리를 섬기시다가 결국 제단 위의 제물처럼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다. 이것이 성육신의 목적이다.

3. 제사(祭祀)와 선(善): 양(Lamb)을 고백하는 것이 선이다

  그렇다면 제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리는 것인가? '제사 제(祭)' 자는 고기 육(⺼, 육달월) + 또 우(又, 손) + 보일 시(示, 하나님/계시)로 구성되어 있다. "손(又)으로 고기(⺼)를 잡아 하나님(示)께 보여드리는(바치는) 행위"가 바로 제사이다. 여기서 고기는 희생 제물의 살, 곧 십자가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살을 의미한다. 우리는 예배 때마다 예수의 피와 살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경이 말하는 '선(善)'이란 무엇인가? 세상은 도덕적으로 착한 행실을 선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자의 '착할 선(善)'은 양 양(양) + 혀 설(舌)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양(羊)의 말을 혀(舌)로 하는 것" 혹은 "양(예수 그리스도)을 혀로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 더 나아가 "양의 맛을 혀로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에덴동산의 사건과 연결해 볼 때, 진짜 선은 인간의 의로운 행위가 아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어린 양(羊)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입(舌)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이 최고의 선이다. 또한 유월절 어린 양의 고기를 먹으며 그 은혜를 맛보는 것이 선이다.

  결론적으로 한자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인생의 문(門) 앞에서 자신의 죄를 묻고(問)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聞) 있는가? 당신을 위해 창에 찔려 희생(犧牲)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예배(祭) 드리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의 혀로 그 어린 양을 시인하는 선(善)한 삶을 살고 있는가? 이 고대의 문자들은 수천 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 우리에게 성탄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

 

[설교요약] 
이 설교는 성경의 창조와 타락 사건이 고대 한자의 구조 속에 비유적으로 보존되어 있다는 독특한 관점을 제시합니다. 특히 한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성경적 계시와 인류의 기원을 담고 있는 표의문자임을 강조하며, 에덴동산의 환경과 인간의 범죄 과정을 한자 획 하나하나에 투영하여 상세히 풀이합니다. 본문의 핵심은 **메시아를 상징하는 '양(羊)'**의 형상이 '의(義)'나 '선(善)' 같은 주요 글자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하나님이 인류 타락 전부터 희생을 통한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음을 역설하는 데 있습니다. 결국 이 텍스트는 한자라는 언어적 유산을 통해 성경 기록의 역사적 사실성을 뒷받침하고,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랑이라는 복음의 정수를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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