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에서의 삶(02)] 천국은 과연 어떻게 생겼는가(2)(계21:10~22: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MOgOfqE-too
1. 들어가며
천국에서 성도는 어떻게 살아갈까? 천국은 그리스도인의 참된 소망이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신앙생활하는 목적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함이요, 그곳에서 아름다운 지위와 직분 그리고 상을 얻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반드시 천국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장차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천국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면 그는 참된 신앙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성도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 이를 위하여 지난 시간부터 천국의 실제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이번 시간에는 천국이 장소적으로 실재한다는 것과 아울러, 천국에는 어떻게 들어가거나 방문할 수 있으며, 천국인 새 예루살렘 성의 장광고의 높이와 12기초석과 12진주문 그리고 144규빗되는 성벽 및 천국에서의 이동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2. 천국은 상태를 가리키는 것인가 실제하는 장소인가?
천국은 상태를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면 실제하는 장소를 가리키는 것인가? 신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이라는 두 가지 단어가 동시에 나온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의 원뜻은 사실 '하나님의 왕국'이다. 하나님께서 왕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왕국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하나님께서 아들로 이 땅에 들어오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이신 아들이 다스리는 나라 역시 하나님의 왕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오직 공관복음서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에서만 '천국'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단어를 헬라어로 보면, '하늘들의 왕국'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하늘들의 왕국'이란 하늘들에서 왕이 다스리는 나라를 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완전한 다스림이 있는 곳은 사실 하늘들인 것이다. 러므로 지구에서 천국까지의 하늘을 가리키지 1층천은 천국의 하늘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천국의 하늘들이란 하나님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하늘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 성은 두 하늘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래층(2층천)에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고, 윗층(3층천)에는 하나님님의 보좌가 있어서 '하늘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들의 왕국이란 새 예루살렘 성의 왕국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사람이 거주하는 2층천과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3층천에서 하나님께서 왕노릇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상태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실제하는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천국은 우리들이 들어가는 장소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마5:20, 7:21, 18:3, 19:23, 23:13, 딤후4:18). 왜냐하면 천국은 실재하는 공간이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새 예루살렘 성인 것이다.
3. 천국은 어떻게 들어가거나 방문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실제하는 장소로 천국은 어떻게 들어가거나 방문할 수 있는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이 죽었거나 아니면 살아있는 사람이라도 그 영혼이 빠져나가는 경우에 가능하다. 앞의 경우는 들어간다고 하는 표현이 더 맞는 표현이며, 뒤의 경우는 방문한다고 하는 표현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은 어떻게 방문할 수가 있는가? 그럴려면 먼저 영안이 열려야 한다. 그래서 영안이 열리면 자신의 영혼이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가서 실제하는 장소인 천국으로 이동하는 것을 자신이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천국까지의 이동경로가 보이기도 한다. 특히 자신의 영혼이 은하계를 통과하여 실제하는 장소인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에 도달하면 먼저는 성바깥에 도착하게 된다. 거기서 천국문으로 향해 있는 길을 따라서 걷게 되면 어느새 천국문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러한 천국문에 이르기 전에 다리 위를 통과하여 강을 건너기도 한다. 이 강은 요단강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길을 걸어서 이동하든지, 다리를 건너든지 사람은 천국문 앞으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천국문을 통과하여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아니 천국을 방문할 수가 있는 것이다.
4. 천국의 실제인 새 예루살렘 성의 크기는 어떠한가?
그렇다면 실제하는 천국으로서 새 예루살렘은 어떤 모습인가? 그곳은 빛이 가득 차 장소이다. 그런데 그 모양은 정방형의 정육면체처럼 생겼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2,000스타디온의 크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것을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약 24,000km 정도가 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가 약 400km정도 되니, 천국의 크기는 이보다 6배가 더 크다고 하겠다. 그것도 높이도 24,000km나 된다고 하니, 만약 위로 3m짜리 높이의 건물을 올린다면, 약 8백만층의 건물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성인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성도들이 거주하는 장소는 이 성의 바닦에서부터 수직으로 약 800km의 높이에 있다(이곳을 '시온산'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성도들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시온산 위에 집을 짓고 거기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바닦에서부터 800km 높이의 중심부까지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구조인데, 생명강을 따라서 나선형으로 약 41,482km나 되는 땅에 성도들이 집을 짓고 거기에 거주하고 있다. 이곳은 보통 '성소'라고 일컫는다. 이곳의 집은 높은 곳일수록 높은 층의 대저택이 들어서 있다. 맨 아래 성벽 근처에는 푸른 풀밭만 있고, 거기에는 집이 없다.
그리고 다시 그곳으로부터 수직으로 약 1,600km높이로 원형의 탑이 성의 중심부에 서 있는데, 이것을 가리켜 '지성소'라고 일컫는다. 이 지성소의 꼭대기가 둥그런 장소로 '영광의 광장'이라고 부르고, 영광의 광장의 공중에 하나님의 보좌가 떠 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공중에 떠 있는 하나님의 보좌에 빛으로 좌정해 계신다.
5. 새 예루살렘의 12기초석과 12진주문은 어떻게 생겼는가?
한편 새 예루살렘 성은 바닥이 보석들로 기초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도 12가지 보석이 가지런히 차곡차곡 쌓여져서 기초를 이루고 있다. 그 기초석의 이름은 12가지인데(계21:18~20), 이 기초석 위에 어린양의 12사도들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다(계21:14).
계21:18-20 그 성곽(성벽)은 벽옥(야스퍼)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사파이어)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에머랄드)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다이아몬드)요 여섯째는 홍보석(루비)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토파즈)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청금석)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계21:14 그 성의 성곽(성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 위에는 각 방향마다 3개씩의 문들이 있다. 이 문들은 동서남북 방향에서 각각 세 개씩이 있는데, 각각의 문들은 하나의 진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계21:12~13, 21).
계21:12-13 크고 높은 성곽(성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계21: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펄)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그렇다면 동서남북의 방향에는 어떤 문들 위에는 어떤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을까?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12지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다고만 나온다(계21:12). 사실 어느 문에 어떤 지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는지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다만 12지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다고만 나올 뿐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동서남북 방향에 있는 문들 위에는 어떤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는가? 천국에 다녀오신 분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그곳에는 다음과 같은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쪽의 세 문에는 유다, 잇사갈, 스불론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남쪽의 세 문에는 르우벤, 시므온, 갓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서쪽의 세 문에는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베냐민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북쪽에는 단과 아셀과 납달리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이름들을 살펴보면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성막을 가운데 두고 진을 쳤을 때에 각 지파의 진영이 위치하는 장소와 동일한 것이다(민2:1~34).
6. 144규빗되는 성벽은 어떻게 생겼는가?
그렇다면 새 예루살렘 성벽은 어떻게 생겼는가? 새 예루살렘의 성벽은 그 두께가 144규빗이다. 12*12규빗인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새 예루살렘 성은 전부 다 12이란 숫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새 예루살렘 성은 12기초석, 12사도들의 이름, 12지파의 이름, 12가지 보석, 12진주문, 144(12*12)규빗의 성벽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천국에 가보면 12바퀴로 돌아가는 생명강의 줄기, 12개의 공원이 있다. 그렇다면 실제 성벽은 어느정도의 크기인가? 그것은 약70m정도 된다. 이는 성문으로 들어와서 성벽을 통과할 때 한참 걸린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벽을 지날 때에는 일종의 터널을 통과하는 느낌을 받는다. 위에는 아치형태로 둥글지만 벽은 수직으로 생겼다. 그런데 이 동굴안은 환하다. 마치 찬란한 보석들이 빛나는 것고 같다. 왜냐하면 성 안으로부터 성벽 터널 안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벽의 안과 밖에는 천사들이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7. 천국에서는 어떻게 이동이 가능한가?
천국에서는 어떻게 이동할까? 천국을 방문하는 성도는 과연 신발을 신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천국을 방문하는 성도는 신발을 신지 않는다. 즉 맨발인 것이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간 성도는 자신이 맨발로 다닌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채 있다.
그렇다면 천국에서는 어떻게 이동하는 것일까? 그것에는 3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걷거나 하얀 비둘기처럼 우아하게 약간 공중에서 떠 있는 상태에서 이동하는 것이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천천히 이동할 때에는 이 방법이 쓰인다. 둘째는 금으로 만들어진 수레를 타고 이동하기도 하는데, 마치 말이 끄는 것처럼 수레를 타고 이동하지만, 실제로는 불타는 말이나 바퀴가 없는 수레일 뿐이다. 그렇지만 이 수레는 보이지 않는 힘(성령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수레는 2명이 타는 수레에서부터 수 백명 수 천명이 타는 수레까지 다양하다. 이때 수레는 땅위와 물속과 공중을 여행할 수 있다. 그리고 셋째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순간적으로 이동시켜주는 방법이 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성도는 자신의 생각을 통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즉시 이동할 수가 있다. 대부분은 첫 번째 방법으로 이동한다.
8. 나오며
천국은 이 세상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너무나 다르다. 그런데 천국에서의 이동방법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천국에서는 천천히 이동할 수도 있지만 순식간에 순간이동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때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하는 것을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이 선택한 방식대로 움직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천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도 넓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거주지는 나선형으로 돌아가면서 41,842km나 되는 공간 속에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집은 거할 곳이 많이 있는 것이다(요14:1~3). 그러므로 내가 살 집이 없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걱정할 것은 자신이 이 땅에서 올려보낸 천국집의 재료가 없거나 부족하여서 천국집이 지어지지 않는 경우이다. 한 마디로 천국은 마치 잘 가꾸어진 아름답고 멋있는 공원처럼 생겼다. 그리고 그 안에는 모든 것이 풍성하다. 부족한 것이 없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곳을 낙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2025년 02월 26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천국의 실제적인 구조와 그곳에서의 삶을 성경 구절을 바탕으로 상세히 설명하는 강연 자료입니다. 정보배 목사는 천국을 단순한 마음의 상태가 아닌 새 예루살렘 성이라는 물리적이고 실제적인 공간으로 정의하며, 그곳에 들어가는 것이 신앙의 궁극적 목표임을 강조합니다. 이 설교는 천국의 화려한 보석 기초석과 황금길, 그리고 밤이나 저주, 질병과 같은 고통이 부재한 완벽한 환경을 묘사하며 독자들에게 생생한 공간감을 전달합니다. 특히 천국 시민들의 신분적 구별과 이동 방식, 생명수 강에서의 정결 예식 등 구체적인 생활 양상을 제시하며 성도들이 회개와 영적 전쟁을 통해 이기는 자가 되어 성 안으로 입성할 것을 독려합니다. 결국 이 설교의 목적은 막연한 내세관을 배격하고 천국의 실재성을 일깨워 성도들이 현세에서 깨어 준비하도록 만드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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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투박한 요약).
제목: [천국에서의 삶(02)] 천국은 과연 어떻게 생겼는가(2)(계21:10~22: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1. 들어가며
천국은 막연한 상상이 아니다. 천국은 단순히 마음이 편안한 상태도 아니고, 죽은 뒤 영혼이 어딘가에서 안식을 누리는 추상적 상태만도 아니다. 성경이 보여 주는 천국은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이며, 그 중심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곧 새 예루살렘 성이다. 그러므로 천국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붙들어야 할 정의는 이것이다. 천국은 새 예루살렘 성이다.
요한계시록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한 뒤,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보여 준다(계 21:1~2). 이 성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며,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처럼 준비되어 있다.
계 21:1~2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근거로 “새 예루살렘 성 자체가 신부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본문의 흐름을 세밀하게 보아야 한다. 천사는 요한에게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보여 주겠다고 말한 뒤, 그 성을 보여 주었다(계 21:9~10). 이것은 성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어린양의 신부라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집이 신부인 것이 아니라, 그 집 안에 사는 이들이 신부다. 성은 신부가 거주하는 공간이고, 성 안에 들어간 이기는 자들이 어린양의 신부요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땅의 왕들이다.
계 21:9~10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그러므로 천국을 바르게 알려면 두 가지를 함께 알아야 한다. 첫째, 천국은 실제 공간이다. 둘째, 그 공간 안에 들어가는 자들의 신분은 모두 같지 않다.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것과 성 밖에 머무는 것은 다르며, 성 안에서도 하나님 보좌 가까이 나아가는 정도와 맡겨지는 영광이 다르다. 그래서 천국의 실제를 알아야 이 땅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천국이 실제로 어떤 공간이며, 새 예루살렘 성 안과 성 밖은 어떻게 구별되고, 그곳에 들어갈 성도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천국은 상태가 아니라 실제 공간인가?
천국을 상태로만 보면 요한계시록의 묘사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은 새 예루살렘 성의 크기, 성벽, 성문, 기초석, 길, 생명수 강, 생명나무를 구체적으로 말한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 상태가 아니다. 측량할 수 있는 성이고, 들어가는 문이 있으며, 성 안과 성 밖이 구별되는 실제 공간이다.
성경은 성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같다고 말한다(계 21:16). 그 수치는 12,000스타디온이다. 1스타디온을 약 192미터로 보면 약 2,400킬로미터가 된다. 이것은 상징만이 아니다. 숫자에는 의미가 있지만, 실제 크기도 있다. 성경이 실제를 말할 때 그것을 모두 상징으로만 돌려 버리면, 천국의 실재성을 잃어버린다.
계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타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천국은 지금 하늘 어딘가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도성이다.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때, 그 성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목표는 단순히 “죽어서 좋은 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성 안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는 곳이며, 성 밖은 그 빛을 받아 살아가는 민족들이 있는 곳이다.
천국이 실제 공간이라는 사실은 성도의 삶에 매우 중요하다. 목표가 상태라면 사람은 막연하게 신앙생활한다. 그러나 목표가 실제 공간이라면 준비가 구체적이 된다.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야 하고, 더 가까운 중심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기는 자로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야 한다. 그래서 천국의 구조를 아는 것은 호기심 충족이 아니라 신앙의 방향을 정하는 일이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천국 방문과 천국 입성의 차이다.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천국을 방문할 수 있다. 그러나 천국을 보았다고 해서 무조건 그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자라는 뜻은 아니다. 성경과 맞지 않는 간증도 많기 때문에 분별이 필요하다. 천국 간증은 반드시 성경의 증언과 맞아야 한다. 성경은 진리이고, 간증은 참고다. 그러므로 천국의 실제는 성경을 기준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또한 천국을 실제 공간으로 보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성경이 그곳에 들어가는 행위를 반복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셨고, 사도 요한은 성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가는 권세를 말한다. 들어간다는 말은 방향과 문과 경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천국은 마음속 관념이 아니라, 들어가야 할 성이며 도달해야 할 나라다.
마 19: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성경이 보여 주는 실제를 무시하면 신앙은 흐려진다. 시내산도 실제 장소가 있고, 홍해도 실제로 건넌 사건이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도 실제 역사다. 천국도 마찬가지다. 실제가 있기 때문에 약속이 힘을 갖는다. 실제 새 예루살렘이 있기 때문에 성도는 오늘의 고난을 견디고, 회개하며, 영적 전쟁을 감당할 이유를 갖는다.
3.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누가 들어가는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예수님과의 관계에서는 어린양의 신부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하나님 왕국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사명의 관점에서는 그의 종들이다. 그리고 승리의 관점에서는 이기는 자들이다.
요한계시록 21장 7절은 성 안에 들어갈 자의 핵심 신분을 “이기는 자”로 말한다. 이기는 자는 상속을 받는다. 하나님은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계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것은 단순히 예수를 믿는다는 말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깊은 말씀이다. 믿음으로 구원의 문은 열린다. 그러나 천국에서의 신분과 상속과 왕노릇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와 연결된다. 요한계시록은 “이기는 자”에게 약속을 준다. 그러므로 성 안에 들어가는 자는 믿음을 가진 자일 뿐 아니라, 죄와 세상과 마귀와 자기 육체의 정욕을 이긴 자로 준비되어야 한다.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또 다른 표현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다. 성 안에는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가 들어가지 못한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들어간다(계 21:27).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성 밖과 불못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은 불못에 들어간다. 성 밖은 불못 자체와 동일하지 않다. 성 밖에는 민족들이 있고, 그들은 성의 빛을 통해 살아간다. 그러나 성 밖은 주님과의 친밀함과 보좌의 영광에서 멀리 떨어진 자리다. 성 밖에 있는 자는 성 안의 영광과 다르다. 성 안에 들어가야 한다.
새 예루살렘 성 안의 사람들 가운데 특별히 땅의 왕들이 나온다. 이들은 성 밖의 민족들을 다스리고, 그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성 안으로 들어오는 자들이다(계 21:24~26). 성 안에서 서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성 밖에 나가 다스리고 다시 성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계 21:24~26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그러므로 성 안에 들어가는 자들은 모두 존귀하지만, 그중에서도 왕노릇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 땅에서 영적 전쟁을 감당하고, 회개와 말씀과 순종으로 준비된 자들이다. 성도는 단지 성 밖에서 빛을 보는 자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성 안에 들어가고, 더 나아가 왕노릇하는 자로 준비되어야 한다.
4. 성 안과 성 밖은 어떻게 다른가?
요한계시록은 성 안과 성 밖을 구별한다. 성 안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다. 성 안에는 생명수 강과 생명나무가 있다. 성 안에는 밤이 없고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의 종들이 그의 얼굴을 본다. 그러나 성 밖에는 성의 빛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민족들이 있다.
성 밖은 불못과 같지는 않지만, 성 안의 영광과는 비교될 수 없다. 성 밖은 주님이 직접 거하시는 중심 공간이 아니다. 성 밖은 바깥으로 갈수록 어두워지는 영역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 밖의 끝은 불못의 어두움과 연결된다. 그러므로 성 밖에 있다는 것은 영원한 영광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린양의 신부가 되는 것과 연결된다. 성 밖에 있는 자는 성 안의 생명나무와 보좌의 친밀함을 누리지 못한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은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성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는다.
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여기서 “두루마기를 빠는 것”은 정결의 문제다.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회개를 통해 더러운 영들을 내보내며, 행위책에 기록된 죄를 지우는 삶이 필요하다. 성 안에는 더러운 것이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성 안에 들어가려면 속죄와 정결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성 안과 성 밖의 차이는 단순한 위치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신분의 차이다. 성 안에는 어린양의 신부가 있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있고, 이기는 자들이 있고, 왕노릇하는 종들이 있다. 성 밖에는 그 빛을 받아 사는 민족들이 있다. 성 밖의 민족들은 성 안의 왕들이 다스리는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디든 천국이면 된다”는 막연한 생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성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성 안에서도 주님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구별은 이 땅의 삶과 연결된다. 회개하지 않고, 죄를 가볍게 여기고, 영적 전쟁을 피하고,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자가 왕노릇하는 자로 준비될 수는 없다. 성 안의 영광은 은혜로 시작되지만, 충성과 회개와 이김으로 확정된다.
여기서 성 안에 들어가는 권세는 반드시 정결과 연결된다. 성문은 열려 있지만 아무나 통과하지 않는다. 낮에는 성문이 닫히지 않는다고 했으나, 속되고 가증한 것과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문이 열려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초청이 넓다는 뜻이고, 더러운 자가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은 하나님의 거룩이 엄중하다는 뜻이다.
계 21:25 그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성 밖을 생각할 때도 막연히 두려움만 가질 것이 아니라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불못은 둘째 사망의 장소다. 성 밖은 성 안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바깥 영역이다. 그러나 성 밖에 머무는 것은 주님과 보좌의 친밀함에서 멀리 떨어진 매우 낮은 상태다. 그러므로 성도는 불못을 피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아서는 부족하다.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야 하며, 성 안에서도 생명수 강과 보좌 가까이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5. 새 예루살렘 성은 어떤 구조와 재료인가?
새 예루살렘 성은 네모가 반듯한 정방형의 성이다.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다. 성경은 그것을 12,000스타디온이라고 말한다. 또한 성벽은 144규빗이라고 말한다. 숫자 12가 반복된다. 12문, 12천사, 12지파, 12기초석, 12사도, 12,000스타디온, 144규빗이 나온다.
12는 천국의 완전성과 질서를 나타내는 숫자다. 7이 이 땅에서의 완전수를 가리킨다면, 12는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통치와 친밀한 질서를 보여 준다. 새 예루살렘 성은 우연히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한 설계와 질서 안에 있는 도성이다.
계 21:12~14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성문은 진주문이다. 각 문은 한 진주로 되어 있다. 진주는 고난을 통해 만들어진다. 조개 안에 들어온 이물질을 감싸고 또 감싸면서 진주가 된다. 이것은 고난을 통과한 성도들의 영광을 보여 준다. 성 안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다. 성의 성벽은 벽옥이다. 성의 기초석은 12가지 보석이다.
계 21:18~21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금은 하나님의 신성을 상징한다. 은은 속죄를 상징한다. 보석은 성령의 다루심을 통과하여 변화된 성도의 영광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것을 상징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실제 천국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문으로 이루어진다. 상징적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실제 재료이기도 하다.
성벽의 두께는 144규빗이다. 약 70미터로 볼 수 있다. 성문을 통과해 성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매우 장엄하다. 이는 성 안에 들어가는 것이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님을 보여 준다. 성문을 통과하는 것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있고, 두루마기를 빨아 정결케 된 자에게 주어지는 권세다.
또한 성 안은 높이 2,400킬로미터에 이르는 엄청난 공간이다. 그 안에는 생명수 강이 흐르고, 생명나무가 있으며,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신분과 준비에 따라 거주한다. 천국은 공산주의적 동일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질서가 완성된 세계다. 구원은 은혜로 받지만, 영광과 위치와 상속은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주어진다.
성벽이 벽옥이라는 것도 깊은 의미가 있다. 벽옥은 요한계시록 4장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신 분의 모양을 설명할 때도 등장한다. 그러므로 성벽은 단순한 방어 구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이 성을 감싸고 있음을 보여 준다.
계 4: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또 기초석 위에 어린양의 열두 사도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신약 교회의 기초가 사도들의 증언 위에 놓였음을 보여 준다. 성문에 열두 지파의 이름이 있고, 기초석에 열두 사도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과 신약의 교회가 새 예루살렘 안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경륜 안에 통합된다는 뜻이다. 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성취가 한 성 안에서 만난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의 재료는 믿음의 역사를 담고 있다. 진주문은 고난을 통과한 문이고, 보석 기초석은 성령의 압력과 다루심을 통과한 변화이며, 정금 길은 하나님의 신성이 사람들의 생활 길이 된 것이다. 천국은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경륜이 재료와 숫자와 구조 안에 새겨진 실제 도성이다.
6. 천국에는 무엇이 없으며 왜 없는가?
천국에는 없는 것이 많다. 밤이 없다. 저주가 없다. 사망이 없다. 애통과 곡함과 아픔이 없다. 눈물과 고통과 슬픔이 없다. 더위와 추위도 없다. 해와 달과 등불도 필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빛이시고 어린양이 등불이 되시기 때문이다.
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2:3~5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없는 이유는 한 가지로 모아진다. 천국에는 귀신이 없다. 죄와 저주와 사망은 악한 영의 역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이 땅에서는 귀신들이 사람 속에 들어와 병을 만들고, 혈관과 신경과 생각을 막고, 죄와 중독과 슬픔과 죽음을 일으킨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단 한 마리의 귀신도 들어갈 수 없다. 성문은 하나님의 거룩한 질서 안에서 지켜지고, 더러운 것은 결코 들어오지 못한다.
그래서 천국에는 병원이 필요 없다. 약도 필요 없다. 장례식도 없다. 울부짖는 소리도 없다. 추운 날에 히터가 필요 없고, 더운 날에 에어컨이 필요 없다. 빗물과 눈이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생명과 빛이 모든 것을 공급한다.
이것은 단순히 편리한 환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천국은 저주의 원인이 제거된 세계다. 죄가 없고 귀신이 없으며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가 들어오지 못한다. 그래서 저주가 없고, 죽음이 없고, 애통이 없다. 그러므로 천국을 준비한다는 것은 이 땅에서부터 죄와 더러운 영을 처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땅에는 아직 귀신이 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이 필요하다. 회개가 필요하고, 예수 이름의 권세로 악한 영들을 대적해야 한다. 그러나 천국에는 그런 싸움이 없다. 싸움은 이 땅에서 해야 한다. 이 땅에서 회개하고, 이 땅에서 영적 전쟁을 감당하고, 이 땅에서 이기는 자가 되어야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반열에 들어갈 수 있다.
천국에 밤이 없다는 것은 시간의 단절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땅에서는 밤이 오면 활동이 멈추고, 두려움이 찾아오며, 어둠 속에서 악한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천국에는 어둠의 영역이 없다. 하나님이 빛이시고 어린양이 등불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국의 생활은 감추어야 할 어둠이 없는 생활이다.
천국에 저주가 없다는 것은 모든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뜻이다. 이 땅에서는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교회와 성도, 민족과 민족 사이에 저주와 상처가 들어온다. 그것은 죄와 악한 영이 관계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는 관계를 깨뜨리는 영이 없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피조세계 사이에 참된 평화가 흐른다.
7. 생명수와 생명나무는 무엇을 보여 주는가?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생명수 강이 있다. 이 강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온다. 맑은 수정같이 흐른다.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다. 생명나무는 달마다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다.
계 22:1~2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생명수 강은 단순한 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 공급이 실제화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고, 믿는 자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다. 요한은 이것이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킨 것이라고 해석했다(요 7:37~39).
요 7:37~39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천국의 생명수 강은 정결과 생명 공급을 함께 보여 준다.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은 생명수 강에서 씻기고, 그 물을 마신다. 이 땅에서 묻었던 죄악의 찌꺼기와 상처와 더러움이 씻긴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이 풍성하게 공급된다. 그래서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다.
생명나무도 마찬가지다. 에덴동산 중앙에 있던 생명나무가 새 예루살렘 안에 다시 나타난다. 인간은 죄로 인해 생명나무에 나아갈 수 없게 되었지만, 어린양의 피로 씻김받은 자들은 다시 생명나무에 나아간다. 이것이 구속의 완성이다.
천국에는 음식도 있다. 생명과가 있고, 만나가 있으며, 여러 종류의 열매와 떡이 있다. 그러나 그 음식은 썩어질 육체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천국의 음식은 생명과 기쁨과 교제를 위한 것이다. 굶주림이 없고 목마름이 없는 이유는 어린양이 목자가 되어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계 7:16~17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그러므로 생명수와 생명나무는 천국의 중심이다. 하나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 어린양을 통하여 공급되는 생명, 성령으로 흘러나오는 생명이 천국을 채운다. 성도는 이 땅에서부터 생명의 말씀을 먹고 성령의 생수를 마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천국의 생명을 낯설게 여기지 않는다.
생명나무의 열매가 열두 가지라는 것도 중요하다. 열두 달마다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생명 공급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땅에서는 계절이 바뀌고, 음식이 떨어지고, 몸이 지치지만, 천국에서는 생명의 공급이 계속된다. 그것은 하나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또 생명나무 잎사귀가 만국을 치료한다고 했는데, 성 안에는 병이 없으므로 이것은 단순한 질병 치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국이 하나님 생명의 질서 안으로 회복되고, 이 땅에서 상처 입었던 모든 흔적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정돈되는 것을 말한다. 천국의 치료는 병든 몸을 고치는 차원을 넘어, 존재 전체가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온전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수와 생명나무는 천국 생활의 중심이다. 성도는 이 땅에서도 말씀과 성령으로 생명을 공급받아야 한다. 이 땅에서 생명수를 갈망하지 않은 사람이 천국의 생명수 강을 사모하기 어렵다. 이 땅에서 말씀의 열매를 먹지 않은 사람이 천국의 생명나무 열매를 깊이 누리기 어렵다. 천국의 삶은 이 땅에서 시작된 생명의 삶이 완성되는 것이다.
8. 천국에서는 어떻게 이동하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천국의 이동 방식도 이 땅과 다르다. 천국에서는 자동차나 기름이나 매연이 필요 없다. 성도는 걸어갈 수도 있지만, 이 땅에서처럼 무겁게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가고자 하면 몸이 가볍게 움직이고, 마치 살짝 떠서 이동하듯이 빠르게 간다. 천국의 몸은 이 땅의 무거운 육체와 다르다.
어떤 경우에는 황금 수레를 타고 이동할 수도 있다. 천국의 수레는 이 땅의 자동차가 아니다. 지위와 사명에 따라 주어지는 영광의 이동 수단이다. 또 주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는 순간 이동도 가능하다. 생명수 강가에서 있다가 주님이 부르시면 보좌 앞에 서게 된다. 천국의 공간은 실제이지만, 그곳의 이동은 이 땅의 물리적 제한 안에 갇히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설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누가 그 천국에 들어가며, 어떤 신분으로 들어가느냐는 문제다. 천국을 방문하는 것과 실제로 입성하는 것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살아 있을 때 천국을 보았지만, 자기 속의 귀신과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천국 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회개와 정결과 순종이다.
천국 간증도 분별해야 한다. 성경과 맞지 않는 천국 간증은 받아들일 수 없다. 천국에서 스포츠카를 타고 다닌다든지, 이 땅의 세속적 욕망을 그대로 투영한 간증은 조심해야 한다. 천국은 하나님의 거룩과 생명과 빛의 세계다. 그곳에는 매연도 없고, 기름도 필요 없고, 세상 욕망을 만족시키는 장난감도 필요 없다.
성도가 준비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첫째, 회개해야 한다. 죄를 자백하여 행위책의 죄가 지워져야 한다. 둘째, 더러운 영을 내보내야 한다. 귀신이 없는 천국에 들어가려면 이 땅에서부터 자기 몸과 영혼을 정결케 해야 한다. 셋째, 영적 전쟁을 감당해야 한다. 이 땅에는 아직 귀신이 있기 때문에 싸움이 필요하다.
에베소서 6장은 우리의 씨름이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엡 6:12).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천국에 들어가 왕노릇할 자는 이 땅에서 싸움을 배워야 한다. 회개하고, 말씀을 붙들고, 예수 이름으로 악한 영을 대적하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장차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주님 가까이 거하며, 성 밖의 민족들을 다스리는 왕노릇의 반열에 참여할 수 있다.
천국의 이동은 신분과도 연결된다. 어떤 이는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이동하고, 어떤 이는 주님이 보내신 수레를 타고 이동한다. 이 땅에서도 왕이 보내는 가마를 타는 사람은 특별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다. 아가서에서 솔로몬의 가마가 신부를 데리러 왔던 것처럼, 천국에서도 주님이 귀히 여기는 자에게는 특별한 영광이 주어진다.
그러나 신분은 이 땅에서 결정된다. 죽은 뒤에 갑자기 왕노릇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 회개하고, 말씀을 붙들고, 주님을 사랑하고,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영적 전사가 되어야 한다. 천국의 이동 방식은 흥미로운 정보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자격과 신분으로 그 세계에 들어가느냐 하는 문제다.
또 순간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은 천국이 이 땅의 물리 법칙에 갇혀 있지 않음을 보여 준다. 부활의 몸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문들이 닫혀 있는데도 제자들 가운데 서셨던 것처럼, 천국의 몸은 현재 육체와 다른 차원의 몸이다. 그러나 그 몸은 허상이 아니라 실제 몸이다. 천국도 허상이 아니라 실제 공간이다.
요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9. 나오며
이번 시간에는 천국이 상태가 아니라 실제 공간으로 존재하는 새 예루살렘 성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천국은 마음속의 평안만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성이다. 그 성은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있는 실제 도성이며,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문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완전한 공간이다.
성도는 성 밖이 아니라 성 안에 들어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성 안에 들어가는 자는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이며, 두루마기를 빨아 정결케 된 자이고, 이기는 자로 준비된 자다. 성 안과 성 밖은 분명히 다르다. 성 안에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고, 생명수 강과 생명나무가 있으며, 밤과 저주와 귀신과 사망과 고통이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천국을 막연한 위로의 장소로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천국은 실제로 들어가야 할 장소이며, 지금 이 땅의 삶은 그곳에 들어갈 준비 과정이다. 회개하지 않은 죄는 처리되어야 하고, 더러운 영은 내보내야 하며, 말씀과 성령으로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또한 성도는 천국을 방문한 이야기만 좇아서는 안 된다. 성경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천국 간증이 성경과 맞지 않으면 분별해야 하며, 천국의 실제를 알수록 더 겸손히 회개하고 더 충성스럽게 살아야 한다.
천국에는 눈물이 없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눈물로 회개해야 한다. 천국에는 귀신이 없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악한 영과 싸워야 한다. 천국에는 저주가 없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예수의 피로 저주를 끊어 내야 한다. 천국에는 사망이 없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생명의 주님을 붙들어야 한다.
성도는 오늘도 새 예루살렘 성 안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단지 들어가는 것만이 아니라, 성 안에서 주님 가까이 거하고, 이기는 자로 상속을 받고, 왕노릇하는 자로 준비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 어린양의 신부와 이기는 자로 서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5년 02월 26일(수)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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