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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hO7N3ZtljY4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39) 하나님의 말씀을 듣긴 들었으나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의 최후(렘37:1~39:18)_2023-04-04(화)

https://youtu.be/hO7N3ZtljY4 [또는 https://tv.naver.com/v/34630496]

 

1. 남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 곁에는 어떤 선지자가 있었는가?

  남유다가 드디어 멸망으로 치닫고 있었을 때에, 시드기야 곁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해 줄 수 있는 선지자가 한 명 있었다. 그는 바로 예레미야였다. 그런데 그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시드기야가 들었을 때에 좋아할 만한 말만 하는 그러한 거짓 선지자는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고 그대로 전달해 주는 선지자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러한 선지자가 항상 시드기야 곁에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다. 

 

2. 남유다의 운명이  기울어질 무렵 시드기야왕은 예레미야에게 어떤 부탁을 했는가?

  자신의 조카였던 여호야긴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던 시드기야는 바벨론이 세우고 간 왕이었다. 왜냐하면 B.C.597년경 바벨론의 2차 침공으로 인하여 바벨론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을 사로잡아 갈 때에, 여호야긴왕 대신에 세워 놓았던 왕이 바로 시드기야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드기야는 바벨론에게 잘 보여야 했다. 하지만 신하들은 거의가 다 친애굽파였다. 왜냐하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가장 먼저 와서 도와줄 수 있는 나라는 남유다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애굽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드기야왕은 늘 갈팡질팡했다. 그래도 그는 신하들의 의견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늘 신하들과는 반대되는 예언을 했다. 바벨론이 와서 남유다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남유다가 하루라도 빨리 바벨론에게 항복한다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결코 파괴되지 않을 것이고, 남유다의 왕과 왕의 자녀들과 백성들의 목숨도 역시 전리품이 되어서 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항복하여 훗날을 기약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시드기야는 만약 자신이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면 포로민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될까 봐 염려하였다. 그래서 그는 신하들의 말을 듣고 끝까지 항전하기로 결정하고 말았다. 그는 끝내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을 귀담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3. 시드기야왕의 복 과 저주는 무엇인가?

  시드기야왕에게 있어서 복은 그의 곁에 항상 예레미야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전달해 주는 메신저로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 주는 일종의 풍향계와 같았다. 그러므로 바벨론 군대가 다시 예루살렘을 에워싸자 그는 곧바로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고 부탁할 정도였다(렘37:3). 하지만 애굽 군대가 올라온다는 소식을 들은 바벨론 군대가 잠시 예루살렘에서 떠나가자마자, 시드기야왕은 금세 마음이 변하였다. 그래서 바벨론에게 항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신하들의 말을 듣고 예레미야를 감옥에 가두어버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애굽 군대가 떠나가고 바벨론 군대가 다시 쳐들어오자 이번에도 역시 시드기야왕은 구덩이에 있는 예레미야를 불러내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예레미야는 만약 바벨론에게 항복하면, 왕도 죽지 아니하고 예루살렘 성도 불타지 아니하며, 왕과 왕의 가족도 살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하지만 만약 바벨론에게 항복하지 아니한다면, 왕은 도망치지 못할 것이며, 예루살렘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어가서 불살라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렘38:17~18). 그렇지만 시드기야는 끝끝내 신하들의 말을 듣고 결국 바벨론과 항전을 벌이게 된다. 그러다가 2년 만에 예루살렘 성은 함락되고 만다. 여기서 정리할 수 있는 핵심 진리는 시드기야왕에게 복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곁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저주는 하나님의 선지자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4. 예레미야가 구 덩이에 던져 넣어졌을 때에 용기 있는 행동을 한 사람은 누구인가?

  예레미야가 왕의 고관들에 의해 미움을 받아 구덩이에 던져졌을 때에 그를 살려 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왕궁 내시 '에벳멜렉'이었다. 그는 예레미야하고는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고관들에 의해 예레미야가 무고하게 구덩이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부당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곧바로 왕에게 그와 같은 사실을 알린다. 이는 잘못하면 자신의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 형국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에벳멜렉의 말을 들은 시드기야는 곧바로 신하 30명을 데리고 가서 예레미야를 건져내어 살리라고 명한다. 그러자 에벳멜렉은 그들과 함께 가서 구덩이에 빠진 채 있는 예레미야를 건져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 에벳멜렉의 용기 있는 행동을 줄곧 지켜보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군대가 공격해 와서 예루살렘 거민을 학살하는 과정 속에서도 에벳멜렉 그 만큼은 절대 죽지 않게 보호해 주셨다(렘39:15~18).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시고 달아보시며, 그것에 상응하는 어떤 보상을 해 주시는 분이신 것이다. 

 

5.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3가지 반응과 그 최후는 어떤 것인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되는가? 대체로 다음과 같은 3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첫째, 어떤 말씀을 들었을지라도 그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이다. 그 말씀에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의 선지자들과 고관들의 태도가 이 경우다. 둘째는 말씀을 들었을 때에 관심을 조금 보이기는 하지만 그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시드기야왕의 경우가 그러하다. 셋째, 주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는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들 셋의 마지막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첫째, 어떤 말씀을 듣더라도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인데, 당시 예루살렘의 선지자들과 고관들이 바로 이런 부류에 속했다. 그럼 이들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가? 모두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둘째, 말씀을 듣고 관심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 말씀에 결국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의 경우가 시드기야왕의 경우다. 그런데 이러한 자도 역시 처참한 꼴을 당하고 만다. 그럼, 시드기야왕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2년간 바벨론과 항전을 벌인다. 하지만 결국에 예루살렘 성이 함락될 것 같자, 곧바로 밤에 몰래 군사 몇 명과 함께 도망을 친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바벨론 군대에 붙잡히고 만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왕 앞으로 끌려간다. 그러자 느부갓네살왕은 시드기야왕이 보는 앞에서 시드기야왕의 아들들을 다 죽여버린다. 그리고 시드기야의 눈을 뽑아버린 채, 그를 사슬로 결박하여 포로로 잡아간다. 셋째, 주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도 있다. 그러한 사람에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있었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지켜 주신다. 그러나 그때 당시 거짓 선지자들과 예루살렘의 고관들은 그를 몇 번이고 죽이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결코 그를 죽이지 못했다. 그런데 반대로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에 바벨론의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가장 먼저 감옥 뜰에 갇혀 있는 예레미야를 찾아서 석방시켜 준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살 것 같지만 결국 비참한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신11:26~28, 28:58~64). 

 

 

2023년 04월 04일(화)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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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탄명성교회 2023.04.04 09:40

    1. 남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 곁에는 어떤 선지자가 있었는가?

      남유다가 드디어 멸망으로 치닫고 있었을 때에, 시드기야 곁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해 줄 수 있는 선지자가 한 명 있었다. 그는 바로 예레미야였다. 그런데 그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시드기야가 들었을 때에 좋아할 만한 말만 하는 그러한 거짓 선지자는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고 그대로 전달해 주는 선지자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러한 선지자가 항상 시드기야 곁에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다. 

     

    2. 남유다의 운명이 기울어질 무렵 시드기야왕은 예레미야에게 어떤 부탁을 했는가?

      자신의 조카였던 여호야긴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던 시드기야는 바벨론이 세우고 간 왕이었다. 왜냐하면 B.C.597년경 바벨론의 2차 침공으로 인하여 바벨론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을 사로잡아 갈 때에, 여호야긴왕 대신에 세워 놓았던 왕이 바로 시드기야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드기야는 바벨론에게 잘 보여야 했다. 하지만 신하들은 거의가 다 친애굽파였다. 왜냐하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가장 먼저 와서 도와줄 수 있는 나라는 남유다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애굽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드기야왕은 늘 갈팡질팡했다. 그래도 그는 신하들의 의견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늘 신하들과는 반대되는 예언을 했다. 바벨론이 와서 남유다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남유다가 하루라도 빨리 바벨론에게 항복한다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결코 파괴되지 않을 것이고, 남유다의 왕과 왕의 자녀들과 백성들의 목숨도 역시 전리품이 되어서 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항복하여 훗날을 기약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시드기야는 만약 자신이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면 포로민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될까 봐 염려하였다. 그래서 그는 신하들의 말을 듣고 끝까지 항전하기로 결정하고 말았다. 그는 끝내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을 귀담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3. 시드기야왕의 복과 저주는 무엇인가?

      시드기야왕에게 있어서 복은 그의 곁에 항상 예레미야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전달해 주는 메신저로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 주는 일종의 풍향계와 같았다. 그러므로 바벨론 군대가 다시 예루살렘을 에워싸자 그는 곧바로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고 부탁할 정도였다(렘37:3). 하지만 애굽 군대가 올라온다는 소식을 들은 바벨론 군대가 잠시 예루살렘에서 떠나가자마자, 시드기야왕은 금세 마음이 변하였다. 그래서 바벨론에게 항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신하들의 말을 듣고 예레미야를 감옥에 가두어버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애굽 군대가 떠나가고 바벨론 군대가 다시 쳐들어오자 이번에도 역시 시드기야왕은 구덩이에 있는 예레미야를 불러내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예레미야는 만약 바벨론에게 항복하면, 왕도 죽지 아니하고 예루살렘 성도 불타지 아니하며, 왕과 왕의 가족도 살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하지만 만약 바벨론에게 항복하지 아니한다면, 왕은 도망치지 못할 것이며, 예루살렘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어가서 불살라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렘38:17~18). 그렇지만 시드기야는 끝끝내 신하들의 말을 듣고 결국 바벨론과 항전을 벌이게 된다. 그러다가 2년 만에 예루살렘 성은 함락되고 만다. 여기서 정리할 수 있는 핵심 진리는 시드기야왕에게 복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곁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저주는 하나님의 선지자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4. 예레미야가 구덩이에 던져 넣어졌을 때에 용기 있는 행동을 한 사람은 누구인가?

      예레미야가 왕의 고관들에 의해 미움을 받아 구덩이에 던져졌을 때에 그를 살려 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왕궁 내시 '에벳멜렉'이었다. 그는 예레미야하고는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고관들에 의해 예레미야가 무고하게 구덩이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부당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곧바로 왕에게 그와 같은 사실을 알린다. 이는 잘못하면 자신의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 형국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에벳멜렉의 말을 들은 시드기야는 곧바로 신하 30명을 데리고 가서 예레미야를 건져내어 살리라고 명한다. 그러자 에벳멜렉은 그들과 함께 가서 구덩이에 빠진 채 있는 예레미야를 건져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 에벳멜렉의 용기 있는 행동을 줄곧 지켜보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군대가 공격해 와서 예루살렘 거민을 학살하는 과정 속에서도 에벳멜렉 그 만큼은 절대 죽지 않게 보호해 주셨다(렘39:15~18).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시고 달아보시며, 그것에 상응하는 어떤 보상을 해 주시는 분이신 것이다. 

     

    5.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3가지 반응과 그 최후는 어떤 것인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되는가? 대체로 다음과 같은 3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첫째, 어떤 말씀을 들었을지라도 그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이다. 그 말씀에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의 선지자들과 고관들의 태도가 이 경우다. 둘째는 말씀을 들었을 때에 관심을 조금 보이기는 하지만 그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시드기야왕의 경우가 그러하다. 셋째, 주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는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들 셋의 마지막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첫째, 어떤 말씀을 듣더라도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인데, 당시 예루살렘의 선지자들과 고관들이 바로 이런 부류에 속했다. 그럼 이들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가? 모두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둘째, 말씀을 듣고 관심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 말씀에 결국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의 경우가 시드기야왕의 경우다. 그런데 이러한 자도 역시 처참한 꼴을 당하고 만다. 그럼, 시드기야왕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2년간 바벨론과 항전을 벌인다. 하지만 결국에 예루살렘 성이 함락될 것 같자, 곧바로 밤에 몰래 군사 몇 명과 함께 도망을 친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바벨론 군대에 붙잡히고 만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왕 앞으로 끌려간다. 그러자 느부갓네살왕은 시드기야왕이 보는 앞에서 시드기야왕의 아들들을 다 죽여버린다. 그리고 시드기야의 눈을 뽑아버린 채, 그를 사슬로 결박하여 포로로 잡아간다. 셋째, 주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도 있다. 그러한 사람에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있었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지켜 주신다. 그러나 그때 당시 거짓 선지자들과 예루살렘의 고관들은 그를 몇 번이고 죽이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결코 그를 죽이지 못했다. 그런데 반대로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에 바벨론의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가장 먼저 감옥 뜰에 갇혀 있는 예레미야를 찾아서 석방시켜 준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살 것 같지만 결국 비참한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신11:26~28, 28:5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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