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02)] 창세기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신가?(02)(창1:1~3, 26~2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tK7VDmsjxQQ
1. 들어가며: 그림자(한자)를 넘어 실체(예수)를 마주하다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한자 속에 담긴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기록, 즉 우리 욕단 민족(동이족)이 간직해 온 일반 계시의 흔적들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매우 놀랍고 소중한 유산이지만, 동시에 명확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림자는 있었으나 실체가 없었기에, 우리 조상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결국 단군을 중보자로 세우고 무당과 귀신의 힘을 빌리는 미신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심지어 '여자의 후손(씨)'을 기다리는 신앙이 변질되어 "밥(쌀)이 곧 하나님이다(식천, 食天)"라는 동학의 사상으로 흐르기도 했다.
이처럼 성경의 정확한 진리(Truth)를 모르면 인간은 반드시 미혹되기 마련이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4장 1절에서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고 경고했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성경을 덮어놓고 신비주의를 쫓거나, 검증되지 않은 교리를 맹신하다가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제 우리는 그림자를 걷어내고 선명한 실체, '예수 그리스도'를 마주해야 한다. 하나님은 벨렉의 후손(이스라엘)을 통해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주셨고, 그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누구인가? 단순히 4대 성인 중 한 명인가?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니면 하나님 자신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면, 우리는 또다시 현대판 영지주의나 신천지 같은 이단 사설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는 조직신학적 뼈대와 요한계시록의 깊은 계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를 파헤쳐 보고자 한다.
2. 예수님을 아는 것이 왜 조직신학의 핵심인가?
신학에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을 분석하며 성경 본문을 연구하는 '성서신학'이 있고, 성경 전체에 흩어진 주제들을 모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이 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이 조직신학적 뼈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조직의 쓴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듯이, 조직신학을 통해 교리의 뼈대를 세워야 이단에게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조직신학에서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다루는 분야를 가리켜 '기독론(Christology)'이라 한다. 기독론은 크게 5가지 주제를 다룬다. 첫째, 명칭(Names)이다. 예수, 그리스도, 주(Lord), 인자, 하나님의 아들 등 그분을 부르는 호칭 속에 그분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둘째, 인격(Person)이다. 그분이 참 하나님이시냐(신성), 참 사람이시냐(인성) 하는 문제다. 셋째, 사역(Work)이다. 그분이 이 땅에 왜 무엇하러 오셨는가를 묻는 것이다. 조직신학은 주로 '속죄(구속)'를 강조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생명'을 주러 오셨다는 점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김기동 목사의 주장처럼 왜곡된 귀신론으로 흐르지만 않는다면, 요한일서 3장 8절의 말씀대로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는 것도 예수님의 주된 사역의 하나임을 놓쳐선 안 된다. 넷째, 신분(States)이다. 예수님의 비하(낮아지심)와 승귀(높아지심)의 과정을 말한다. 곧 그분의 잉태, 탄생, 고난, 죽음과 그리고 그분의 부활, 승천, 재림의 여정이 구약에 어떻게 예언되었으며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다룬다. 다섯째, 모형(Types)이다. 아담, 멜기세덱, 이삭, 요셉 등 구약의 인물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필자는 평생을 바쳐 이 주제들을 파고 들었다. 대충 알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을 설명할 때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우리가 믿는 대상이 누구신지, 그분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명확하게 정리되어야 한다. 그래야 내 믿음이 반석 위에 서고, 남에게도 생명의 길을 제시할 수 있다.
3. 예수님은 피조물인가, 창조주인가? (아리우스 논쟁)
교회사에서 예수님의 정체성을 두고 벌어진 최초이자 가장 치열했던 논쟁이 하나 있다. 바로 '아리우스 논쟁'이다. 4세기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장로였던 아리우스는 성경 구절 하나를 들고나와 교회를 뒤집어 놓았다. 골로새서 1장 15절,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Firstborn)시니..."
이때 아리우스는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했다. "봐라, '먼저 나셨다'고 하지 않느냐. 낳았다는 것은 시작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피조물 중에 가장 으뜸인 존재일 뿐, 영원하신 하나님은 아니다." 이 주장은 논리적으로 매우 그럴듯해 보였다. 그래서 당시 수많은 주교와 성도들이 아리우스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예수님을 하나님보다 열등한 존재, 최고의 피조물로 격하시킨 것이다.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헬라어 원문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여기서 '먼저 나신 이'로 번역된 헬라어 '프로토토코스(prōtotokos)'는 굳이 시간적인 순서로 따진다면,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먼저 나온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고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만든 피조물이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만물의 원형이요 으뜸이요 장자(맏이)라는 뜻이다. 그분이야말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분으로서,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의 창고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대 사회에서 장자(Firstborn)는 아버지의 모든 권한을 상속받는 자였다. 고로 예수께서 '먼저 나신 자'라는 뜻은 그분이 모든 피조물의 원형으로서 그분이 '으뜸'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리 인간과 관련지어서 말할 때에는 장차 출현하게 될 하나님의 자녀들의 맏이(맏아들)라는 뜻이다.
이단들은 항상 성경의 한 구절을 떼어내어 자기 식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성경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1장 3절은 "만물이 그(로고스, 말씀)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말씀)이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창조된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으로서 만물의 근원이 되시고 그분이야말로 만물이 나오는 통로가 되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타나시우스를 비롯한 정통 교부들은 이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고,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예수는 성부와 동일 본질(Homoousios)"임을 확정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 신앙의 유산 위에 서 있다.
4.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증거하는가? (리차드 보컴의 통찰)
그렇다면 신약의 결론인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증거하는가? 여기에 대해 탁월한 통찰을 제시한 현대 신학자가 있다. 영국의 리차드 보컴(Richard Bauckham, 1946년 9월 22일~ )이다. 그는 영국의 성공회의 신학자이자 신약학자요 역사신학자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요한계시록 신학』이라는 책에서 예수님이 단순히 하나님의 대리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체'이심을 놀랍도록 정교하게 증명해 냈다. 필자도 성경을 연구하다가 깨달은 내용이 이 학자의 주장과 일치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리차드 보컴 교수가 이 책에서 말한 것을 요약하면 3가지다. 첫째는 예수께서 하나님이신 이유는 그분이 하나님과 동일하게 모든 피조물로부터 경배를 받고 계신다는 것이다(계5장). 그리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말씀하실 때에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표현을 주 예수께서도 동일하게 사용하신다는 것이다(계1:17, 22:13). 셋째, 예수께서 승천후 하늘에 올라가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보좌가 곧 아버지의 보좌라는 것이다. 즉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는 아버지와 보좌와 아들의 보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의 보좌라는 것이다(계22:1,3).
자, 그럼, 보컴의 핵심 논증 중 첫 번째의 증거로 예수께서는 '예배(Worship)'를 받으신다는 측면을 살펴보자. 유대교와 기독교는 철저한 유일신을 믿는 종교이다. 고로 피조물은 그 어떤 존재도 경배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천사도, 24장로도 역시 다른 사람으로부터 경배받기를 거절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있다(계 19:10, 22:9). 그런데 요한계시록 5장을 보면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경배를 받고 계시는 분이 보좌에 앉으신 이(성부 하나님)뿐만 아니라, '어린 양(예수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어린양에게도 똑같은 경배와 찬양이 올려지고 있는 것이다. 먼저는 24장로가 거문고를 가지고 새 노래로 어린양께 찬송한 후에 기도를 어린 양께 올린다(계 5:9-10). 그리고 이어서 모든 천사들과 피조물들이 어린양께 찬양을 올려드린다(계 5: 12, 13). 그때 사도 요한은 들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계 5:13). 그렇다. 모든 피조물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을 '동등하게' 경배하고 있었다. 만약 예수님이 피조물이라면 이것은 명백한 우상숭배요 신성모독에 해당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을 천상의 참된 예배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은 피조물의 범주에 속한 분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범주, 즉 '신적 정체성(Divine Identity)' 안에 포함된 분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받으실 수 있는 찬양을 받으시는 것이다. 이것은 조직신학적 논쟁을 넘어, 요한계시록의 예배 현장이 예수님의 신성을 가장 강력하게 증명하고 있다.
5. 하나님의 보좌는 하나인가, 두 개인가?
리차드 보컴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두 번째 강력한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Throne)가 두 개가 아니라 한 개라는 것다. 요한계시록 22장은 천국의 가장 중심부를 묘사하고 있다. 그곳에는 생명수 강이 흐르고 생명나무가 있다. 그런데 그 생명수 강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온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The throne of God and of the Lamb)로부터 나와서"(계 22:1). 그런데 여기서 문법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실이 하나 발견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분명 '하나님'과 '어린 양' 두 분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정작 그들이 앉는 '보좌'는 복수가 아닌 '단수(Throne,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만약 잘못된 삼위일체론자들 곧 삼신론(Tritheism)자들의 생각대로라면, 천국에서는 성부 하나님의 보좌가 가운데 있어야 하고 그 옆에 성자 예수님의 보좌가 따로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단호하게 이를 거부한다. 보좌는 하나라는 것이다. 그 하나의 보좌를 가리켜, 성부의 보좌라고도 부르고, 동시에 어린 양의 보좌라고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두 분이 좁은 한 개의 의자에 억지로 끼어 앉았다는 뜻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보좌에 어린양이 앉아계신다는 뜻이다. 즉 어린 양이 '통치권'과 '신적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과 하나라는 것이다. 즉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곧 어린 양이시고, 어린 양이 곧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필자가 천국에서 직접 확인해 본 바도 성경과 정확히 일치한다. 천국 보좌에는 결코 두 분이 앉아 계시지 않는다. 오직 한 분, 얼굴에 광채가 나서 도무지 쳐다볼 수 없는 분 곧 광채로 얼굴을 볼 수 없는 분이 앉아 계신다. 그런데 그분이 보좌에서 내려오시면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보게 된다. 그리고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내가 곧 한 분 하나님으로서 내가 곧 여호와다." 조직신학자들은 이 말을 들으면 기절초풍할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고 선포한다(신 6:4).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자, 우리를 위해 나타나신 하나님의 형상인 것이다.
6. 하나님은 어떻게 동시 존재(Simultaneous Existence) 하시는가?
여기서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는 두 분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분명 한 분이신데 어떻게 동시에 여러 군데에서 활동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피조물인 인간의 이성으로는 상당히 이해하기 힘든 신비한 영역이다. 왜냐하면 오직 홀로 한 분이요 창조주이신 하나님만이 '동시 존재(Simultaneous Existence)'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삼위일체를 잘못 이해하여 처음부터 '세 명의 하나님(삼신론)'으로 존재하고 활동하고 있다고 믿는 이유는, 창조주를 피조물의 수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실 피조물로서 인간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존재이다. 내가 교회에 있으면 집에는 없고, 집에 있으면 교회에 없다.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은 다르시다. 그분은 영이시며, 시공간을 초월하신다. 또한 그분은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지만, 동시에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아들'로 존재하실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성도들의 심령 속에 '성령'으로 임재하실 수 있다. 이것이 '동시 존재'라는 의미이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3장 13절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어떤 사본에는 "하늘에 있는 인자(who is in heaven)"라는 구절이 덧붙여져 있다. 즉, 땅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동시에 하늘에도 계신다는 뜻이다. 필자가 처음으로 교회에 나가서 예배드릴 때는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 교회학교 중고등부 교사가 기도하는 것을 들으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나님, 이 곳에 오셔서 이 예배를 받으시옵소서." 그러자 필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나님이 여기 오시면 저쪽 교회에는 못가실텐데, 왜 이 곳에 오시라고 기도하지? 어느 교회로 가셔서 예배를 받으실 것인지는 하나님의 소관인데 말이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필자가 하나님을 제대로 몰라서 하나님을 피조물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다르다. 하나님은 보좌를 비우지 않으시면서도 동시에 만물 안에 충만히 거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시 존재'의 신비를 깨달아야 삼신론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성경의 난제들을 풀어낼 수 있는 것이다.
7. 왜 예수님은 승천 후에도 아들의 형상으로 계시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신 후에 어떻게 되셨는가? 요한복음 16장 28절을 보니 "내가 아버지에게서[부터] 나와서 세상에(안으로)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를 향하여) 가노라"고 하셨다. 한 분 하나님의 경룬과 계획 속에 존재하고 계시던 예수께서 드디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이 땅 안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의 과업을 완수하신 예수께서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런데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신 예수께서 다시 아버지 안으로 들어가신 것이 아니다. 다시 돌아가실 때에는 아버지를 향하여 가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예수께서 영이신 하나님 속으로 흡수되어 들어가셨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살펴보면 천국에 올라가신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품 속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모습, 즉 사람의 형상을 입고 계심을 알 수 있다(계 5:6).
왜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예수께서 굳이 사람의 모습으로 계시는가? 여기에는 눈물겨운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인류를 사랑하셔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영원히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한 마디로 천국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영원한 간증'으로 남아계시는 것이다. 특히 그분의 손바닦 한 가운데에는 큰 구멍이 한 개씩 뚫려있다. 그것을 감추지 아니하시고 그대로 갖고 계신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내가 너희를 이만큼 사랑했다. 내가 너희를 구원하기 위해 피조물이 되었으며,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했다. 이 손들의 못자국들을 보라. 나는 이 사랑의 흔적을 영원히 지우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올라가서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을 보게 될 때, 우리는 그분의 손과 발에 있는 못 자국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나를 위해 치르신 희생을 영원토록 기억하면서 감사하게 될 것이다. 만약 천국에 올라가신 예수께서 아버지와 합쳐져서 형상이 사라졌다면, 우리는 빛만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의 눈을 마주치며 사랑을 나누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기독론의 클라이맥스다.
8. 나오며: 한 분 하나님만을 사랑하라.
이제 결론으로 가보자. 리차드 보컴은 요한계시록 1장 8절이 증거하고 있는 바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씀과, 22장 13절에서 예수님이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신 말씀을 연결한다. 요한계시록 1:8의 '주 하나님(The Lord God)'은 한 분 하나님을 가리키지만 더 구체적으로 구약의 '여호와'를 가리킨다. 그런데 예수께서도 역시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 즉 여호와라고 선언하셨다. 고로 스가랴 14장에는 여호와께서 감람산에 재림하신다고 예언되어 있는데, 신약은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에 그분을 다른 말로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동시에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 자신으로서, 피조물 중에 으뜸이 아니다. 그분으로 인하여 만물이 생겨나고 그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위하여 만물이 창조되었으니, 그분은 만물의 원형이자 만물의 으뜸이시요, 사람으로 치자면 그분은 맏아들이시다. 그분은 한 마디로 창조주이신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물과는 달리 여기에 계시면서 저기에도 계실 수 있고, 아버지로도 계시면서 아들로도 계실 수가 있다. 그분은 지금도 하늘의 보좌에 앉아 계시면서 동시에 내 안에 성령으로 들어와계시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 작게만 믿어왔다. 세 분의 하나님을 따로따로 섬기느라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성경은 선포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 6:4). 그 유일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이다.
이 거대한 비밀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신앙은 차원이 달라지게 된다. 그분은 나를 위해 기꺼이 피조물의 형상을 입으셨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고귀한 희생을 치르셨다. 그래서 당신의 손과 발에 영원히 흔적을 갖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 앞에 무릎 꿇고, 전심으로 그분만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분이야말로 우리의 생명나무이시며, 우리의 희생제물이시며, 우리의 무지개이시기 때문이다.
2026년 01월 15일(목)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기독론 강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을 조직신학적 관점과 요한계시록의 성취를 바탕으로 설명하며, 그분을 나타난 하나님이자 유일한 중보자로 정의합니다. 필자는 구약을 실체의 그림자로 보며, 우리 민족도 역시 과거에 하나님에 대한 희미한 정보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라는 실체의 실상을 알지 못해 영적 혼란에 빠졌음을 지적합니다. 특히 요한계시록 5장의 경배 장면과 보좌의 단일성을 근거로 삼아, 예수님을 성부와 구별되는 별개의 신이 아닌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자 동시 존재하시는 전능자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텍스트는 성도들이 삼신론적 오해를 벗어나 하나님의 자기희생과 사랑이 집약된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앎으로써 이단의 미혹을 물리치고 구원의 길을 확신하기를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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