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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sUfpe5Q7u2I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03)] 창세기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신가?(03)(창1:1~3,26~2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sUfpe5Q7u2I

 

1. 들어가며: 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공부해야 하는가?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조직신학적 관점과 요한계시록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이번 시간부터는 본론으로 들어가서, 창세기 1장 태초의 현장 속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를 살펴보려고 한다.

  어떤 이들은 필자에게 묻는다. "목사님, 그냥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면 되지, 왜 이렇게 복잡하게 기독론(Christology)을 공부해야 합니까?" 그러나 이유는 명확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히 모르면 이단에 빠지거나 미신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것을 충분히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욕단 계열)을 보라. 우리 동이족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알았으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실체를 몰랐기에 결국 무당 민족이 되고 말지 않았던가!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알려져 있는가? 그것은 마치 "2등 하나님"정도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약에는 예수님이 없었다"라고 주장하기도 하며, 반대로 "세 분 하나님이 의논해서 창조했다"며 삼신론적으로 믿으려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성경을 바르게 알지 못하게 되면 맹신이 되고 만다. 성경은 우리에게 막연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역사와 계시를 통해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라고 말씀하고 있다. 고로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이 없으면 우리는 헛다리를 집는 신앙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 우리는 창조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곳에 계셨던 예수님의 흔적을 찾아내고 우리의 신앙을 반석 위에 세우려고 한다.

 

2. 우리 조상(욕단 민족)은 왜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무당이 되었는가?

  우리는 앞서 우리 민족의 시원인 욕단(Joktan) 족속에 대해 공부했다(창 10:25-30). 그들은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내용, 즉 천지창조, 타락, 홍수, 바벨탑의 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한 채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그들은 생명나무가 있는 곳 곧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 이동하면서, 자신의 기억을 한자(漢字) 속에 담아 놓았고, 끊임없이 하늘에 계신 상제(上帝)께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그들이 갖고 있었던 것들은 '모형(Type)''그림자(Shadow)'였. 그래서 그들에게도 잃어버린 생명나무, 여자의 후손(), 희생 제물(), 뱀을 잡는 활(무지개)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 실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특별 계시'가 없었다.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실체에 대한 약속을 욕단의 형제인 '벨렉(Peleg)'의 자손, 즉 아브라함과 다윗의 가문을 통하여 전달해 주셨다.  그리고 이것의 첫 출발은 아브라함부터인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고 약속하셨다. 이 약속된 씨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벨렉의 후손이 기록해서 전수해준 '성경'이 없이는 그 누구도 구원받기가 여렵다. 특히 우리 동이족은 욕단의 후손이 가진 '기억'만으로 구원자에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생명나무 대신 뽕나무를 분들었고, 여자의 후손 대신 벼농사를 분들었고, 참된 중보자를 대신하는 가짜 중보자인 단군(인간)을 붙들었다. 단군이 중보자를 자처하니, 단군들은 능력이 없어서 귀신을 불러들였고, 결국 고귀한 천손 민족이 그만 무당의 나라가 되고 만 것이다.이것이 우리가 성경을 배우고 기독론을 공부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이유다. 그림자를 넘어 실체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5천 년 묵은 무속의 영을 끊어내고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3.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예수는 다른 분인가?

  많은 성도들이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예수님을 별개의 존재로 생각한다. 구약시대에는 엄한 심판의 하나님(여호와)이 있었고, 신약시대에는 사랑의 하나님(예수)이 있었다고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한 데에서 기인하는 현상이다.

  신약 성경, 특히 예수님의 친동생인 유다(Jude)가 쓴 유다서를 보자. 그는 철저한 유대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유일신을 믿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던 그가 훗날 자신의 형이었던 예수님을 어떻게 불렀는가?"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1:4)."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1:25).라고 말하였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 구원자로 오셨으니 그분이 곧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랬다. 예수님의 친동생 유다는 예수님을 "홀로 하나이신 주재(Master)",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다. 그런데 유대인에게 '홀로 한 분'은 대체 누구였는가? 그분은 오직 여호와 한 분뿐이시다(신6:4~9). 그런데 유다는 자신의 형 예수님을 바로 그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런 것이다. 구약의 여호와는 '창조주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분이라면, 신약의 예수님은 '구원자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분이라는 것이다. 두 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 시대와 경륜에 따라 자신을 다르게 계시하셨다고 믿은 것이다.

  요한계시록 18절을 보라. 주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자라"고 말씀하셨는데, 2213절에서는 예수님이 이와 똑같이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는 시작하신 이(여호와)와 마치시는 이(예수)가 한 분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은 이러한 '한 분 하나님' 신앙을 확고히 갖추고 있어야 한다.

 

4. 창조 때 예수님은 '망치'를 들고 아버지를 도왔는가? (창조의 주체)

  이제 창세기 1장으로 들어가 보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여기서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로힘(복수형)'라는 명칭이 사용되고 있. 그래서 어떤 이들은 "보, '엘로힘'이 복수이지 않는가? 그러므로 천지창조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같이 망치 들고 천지를 만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구약 성경은 창조의 주체에 대해 아주 단호하게 선을 긋고 있다.

  이사야 4424절을 보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only, alone)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으니."여호와께서 "홀로(By myself)", "나와 함께 한 자 없이(Who was with me?)" 세상을 지으셨다고 선언하신다. 곁에서 도와준 조수(Helper)가 없었다는 뜻이다.

  만약 오늘 우리가 "예수께서 구약 시대에 아버지 옆에서 같이 세상을 만드셨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이사야서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 되고 만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구약 시대에 아들(예수)은 이미 존재(Existence)하고 계셨지만, 아직 외부적으로 활동(Activity)하지 않으셨던 시기라는 것을 말이다. 창조 사역의 실행 주체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의논해서 창조했다"는 식의 설명은 조심해야 할 표현이다. 자칫하면 세 명의 신이 협동 작업을 한 것처럼 들려서 '삼신론(Tritheism)'적인 신앙으로 빠질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창조는 여호와께서 당신의 지혜와 말씀을 사용하여 홀로 행하신 사역이다. 그러므로 모세에게 십계명을 가르쳐주실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출20:11 이는(왜냐하면)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들]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그쳤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하였고) [그리고 그가]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5.  그렇다면 신약은 왜 '아들을 통하여' 지었다고 말하는가? (창조의 목적)

  그런데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구약은 여호와 홀로 지으셨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데, 신약의 요한복음 1장이나 골로새서 1, 히브리서 1장은 "만물이 그(예수)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골1:16 만물이 그에게서(그분 안에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히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그렇다면, 도대체 구약의 증언이 맞는가 신약의 증언이 맞는가? 과연 예수님이 지으셨다는 말인가, 아니 지으셨다는 말인가? 이 비밀을 푸는 열쇠는 사실 헬라어 전치사에 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만물이 아들에게서 직접 나온 것이 아니라, "아들 안에서(en auto)", "아들을 통하여(di autou)", "아들을 위하여(eis auton)" 창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1:16). 이것은 예수님이 작업복 입고 망치질을 했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아들'을 창조의 목적과 설계도로 삼으셨다는 뜻이다.

  사실 하나님은 시간 밖 영원 속에 계신다. 그분은 창조를 시작하시기 전에 이미 장차 오실 아들(예수 그리스도)을 계획하셨다. 그리고 실제로 아버지의 품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들에게 만물을 '상속(Inheritance)'해 주시기 위해 한 분 하나님께서 우주를 설계하신 것이다. 마치 아버지가 장차 태어날 아들을 위해 집을 짓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집은 아버지가 짓지만, 그 집은 아들을 위한 것이고, 아들의 동선을 고려해서(아들 안에서) 지어지는 것이다.

  히브리서 12절을 보라. "[하나님께서]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그를 통하여)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고 말씀한다. , 창조의 원인과 목적, 그리고 설계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창조의 '원형(Archetype)'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창조주'라고 부르는 것도 신학적으로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들을 구약 시대에 여호와 옆에서 별도로 활동하던 작업 파트너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때에 아들은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분 때문에 이분을 통하여 이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다. 

 

6. 구약 시대에 아들은 존재했는가, 활동했는가? (존재 vs 활동)

  우리는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창조의 대목에서 우리는 매우 세밀한 신학적 구분을 해야 한다. 바로 '존재(Existence)''활동(Activity)'의 차이를 말이다. 많은 신학자들이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 구약 시대에도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이 똑같이 활동하시고 서로 대화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인 지지를 받기 어렵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628절에서 "내가 아버지에게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고"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 요한복음 118절에서는 성육신을 가리켜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신 것이라고 묘사한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라. 구약 시대에 아들은 분명히 '존재'하셨다. 하나님은 시간 밖에 계시며, 영원 전부터 아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 밖으로 나와서 인격적으로 '활동'하신 것은 아니었다. 아들이 인격적으로 활동하시게 된 것은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이 땅에 오신 '성육신(Incarnation)' 사건 이후부터이다. 

  만약 예수님이 구약 시대에도 이미 아버지 밖으로 나와서 활동하고 계셨다면, 굳이 신약에 와서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왔다"고 말씀하실 이유가 없다. 내가 아버지와 함께 활동하다가 이제야 육신을 입었다고 말씀해야 한다. 그러므로 구약의 창조 기사에서 아들이 아버지 옆에서 망치를 들고 아버지와 함께 못질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무리적인 해석이다. 창조의 실행은 여호와 하나님이 홀로 하셨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사44:24). 그러나 , 하나님 안에 '아들'이라는 영원한 계획과 목적, 그리고 지혜가 내재해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품 속에서 창조의 이유가 되셨고, 때가 차매 우리 눈에 보이는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시어 '활동'을 시작하신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경륜(Economy of God)'적인 안배라고 말한.

 

7. 하나님은 무엇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는가? (말씀과 지혜)

  그렇다면 홀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도구로 사용하여 이 우주 만물과 세상과 사람을 지으셨는가? 구약 성경은 딱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는, '말씀(Word)'이다. 시편 336절을 보라.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라고 증거한다. 창세기 1장에서도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그제야 빛이 있었다고 증언한다(창 1:3).

  둘째, '지혜(Wisdom)'. 시편 1365절은 "지혜로 하늘[들]을 지으신(만드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말씀하며, 잠언 319절도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시편 136편을 보면, 하늘[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이며(시 136:1), 그분이 홀로 지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시 136:4). 그리고 그분은 하늘들만 홀로 지으신 것이 아니라, 땅도 큰 빛들(광명체들)도, 해도 달과 별들도 지으시고 주관하게 하셨다고 증언하고 있다(시 136:6~9). 그리고 잠언 8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사용하여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음을 알 수 있다. 

잠8:22-31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지혜)를 가지셨으며 23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24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 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2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28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29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30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31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입에서부터 나오는 '말씀'과 당신 안에 있는 '지혜'를 사용하여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런데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그것은 말씀에 대한 해석이다. 그 말씀이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이 육신을 입어서 아들이 되셨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자, 요한복음 1장을 보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1:1, 14)라고 말씀한다. , 예수님이 곧 그 '말씀'이시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고린도전서 124절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한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골2:3에서 예수님은 지혜와 지식의 보화의 창고라고 말씀하산다. , 예수님이 곧 그 '말씀'이신 것고, 그 '지혜'이셨던 것이.

  결국 퍼즐이 맞춰진다. 구약에서 여호와께서 말씀과 지혜로 세상을 지으셨다는 말은,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세상을 지으셨다는 말과 정확히 일치한다. 다만 구약에서는 그것이 인격적인 '아들'로 표현하지 않고 하나님의 속성(말씀, 지혜)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예수님께서 창조 때 없었던 분이 결코 아니다. 그분은 창조의 도구이자 능력이셨던 말씀 그 자체요, 지혜 그 자체로 함께 하고 계셨다. 그래서 요한복음 13절에서도 "만물이 그(말씀)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8. 인간은 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는가?

  이제 창세기의 하이라이트인 인간 창조를 살펴보자. 창세기 126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여기서 '우리'라는 복수형 때문에 많은 신학자가 "성부, 성자, 성령이 회의를 하셨다"라고 해석한다. 물론 그것이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앞서 살펴본 '존재와 활동'의 관점에서 더 깊이 들어가면, 이러한 해석은 올바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요 4:24). 영은 형체가 없다.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형상''모양'이 존재할 수 있는가? 골로새서 115절은 그 해답을 우리에게 제시해준다. "(아들)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또한 고린도후서 44절도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증언해주고 있다. 그렇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입으실 형상,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인 것이.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먼 훗날 아들이 입고 오실 그 육체의 모양을 염두에 두시고 인간을 빚으신 것이다. , 아담이 원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원형(Original)이고 아담은 그것에 대한 모형(Copy)인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 514절에서 사도 바울은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표상)"이라고 못 박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 영혼과 육체가 예수님을 닮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만세전부터 아들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맨 처음 당신으로부터 나오게 하시고, 그 아들과 똑같이 생긴 존재들로서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아들의 형제로 삼아 천국을 상속해 주시려고 계획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이다. 예수님을 생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은 내용물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게 된다. 모든 외형은 알맹이(예수)를 만날 때 비로소 가치를 지니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야 인생의 의미를 알고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들의 허무함은 오직 우리의 영의 원형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해결되는 것이다. 

 

9. 나오며: 아들을 위하여 창조된 세상, 아들을 위하여 사는 인생

  오늘 우리는 창세기의 숲 안으로 들어가 예수님을 만나 보았다. 우리는 확인했다. 천지 만물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자신을 여호와라고 말씀하신 그분께서 '아들(예수 그리스도)'을 위하여, 아들을 통하여, 아들 안에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히 홀로 세상을 지으셨다. 하지만 이미 그분의 가슴속에는 영원 전부터 아들에 대한 사랑과 계획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고로 이 모든 세상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으로 인하여 모든 만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분이 창조주이신 것이다. 사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이유는 그분에게 만유를 상속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피조물인 우리의 삶의 목적은 대체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육신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인가? 그게 아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 목적대로 사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아들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 그리고 '아들을 위하여' 사는 것이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시는 이유요 태어난 목적인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그림자(한자)를 붙들고 헤매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더 이상 미신과 이단에 속지 말아야 한다. 구약의 창조주이시며 신약의 구원자이신 '한 분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들어야 한다. 그분은 말씀의 원형이시고, 지혜 자체이시다. 그분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믿을 때에 내 안에 들어와서나를 성전삼고 거하신 예수님이 바로 나의 창조주이심을 믿고, 그 위대하신 이름 앞에 무릎 꿇어 경배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2026116()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본 설교는 창세기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을 기독론적 관점에서 고찰하며, 특히 그분의 인격과 신격에 대한 성경적 정의를 핵심 주제로 다룹니다. 필자는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예수가 별개의 존재가 아닌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며, 구약에서는 창조주로, 신약에서는 구원자로 자신을 계시하셨음을 강조합니다. 비록 아들이라는 위격이 구약 시대에 인격적으로 활동을 표출하지는 않았으나, 만물은 처음부터 아들 안에서, 아들을 위하여 설계되었기에 그리스도가 모든 창조의 목적이자 중심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잘못된 삼위일체론적 오해를 바로잡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모든 신학과 구원의 정수임을 일깨우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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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라는 주제로 '기독론 (03): 그분은 누구신가?'를 다루는 강의 제목 슬라이드입니다.
기독론 공부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계시의 부재로 인해 조상들의 창조주에 대한 막연한 기억이 무속 신앙으로 변질된 과정을 설명합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오해인 2등 하나님론(Subordinationism)과 삼신론(Tritheism)을 제시하고 성경은 삼신론을 배격함을 설명합니다.
구약의 여호와와 신약의 예수가 동일 인물임을 유다서와 요한계시록의 구절 비교를 통해 증명합니다.
창조에 대한 두 가지 성경 구절(이사야 44:24와 히브리서 1:2)을 통해 하나님께서 '홀로' 창조하셨는지, '함께' 하셨는지에 대한 딜레마를 제시합니다.
창조 딜레마의 해결 열쇠로 성육신을 기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활동 시기를 구약과 신약으로 구분하는 도표입니다.
골로새서 1:16의 전치사를 분석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에서 망치질 대신 설계도와 원형(Archetype)의 역할을 하셨음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용하신 두 가지 도구인 '말씀'과 '지혜'를 시편과 잠언 구절을 통해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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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26절의 '우리의 형상'에 대한 질문에, 형상이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입으실 육체(Body)를 의미함을 골로새서 구절로써 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원형/Archetype)와 아담/인류(모형/Type)의 관계를 로마서 구절을 인용하여 설명하며, 인간은 예수님을 담기 위해 설계된 그릇임을 제시합니다.
장갑과 손의 비유를 들어,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담기 위해 만들어진 그릇이며, 예수님이 없을 때 느끼는 공허함의 근원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영원, 창조, 구약, 성육신, 구원 다섯 단계로 나누어,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그림자에서 실체로 나아가는 과정을 정리합니다.
아들을 위하여 창조된 세상과 아들을 위하여 사는 인생을 강조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의 원형이자 지혜 그 자체이심을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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