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 여자의 씨(제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최초의 약속은?(창3:9~1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cgEGtg-ksDg
1. 들어가며: 구약의 숲에서 예수라는 나무 찾기
성경은 단순한 역사책이나 윤리 교과서가 결코 아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 예수께서는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씀하신 성경은 신약이 아닌 구약성경을 가리킨다. 그것도 모세의 글(토라)과 선지자의 글(느비임)와 시편(케투빔)을 가리킨다(눅 24:44).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이라는 거대한 숲속에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찾아내ㄹ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약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유대인들처럼 껍데기만 붙들고 알맹이를 붙잡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약성경을 읽을 때에 특히 창세기를 읽을 때에 아담의 이야기,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의 제사, 요셉의 생애, 이 모든 것은 장차 오실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구약에 나타난 것은 일종의 모형인데 이것은 원형이 무엇인지를 가리키고 있고, 그림자인 구약성경은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뻗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 우리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약속, 이른바 '원시 복음(Proto-Evangelium)'이라 불리는 창세기 3장 15절의 비밀을 정확하게 파헤치려고 한다. 여자의 씨로 오시는 그분,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그분이 과연 누구이신지, 그리고 그 약속이 오늘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구속사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이다.
2. 창조 기사 속에 숨겨진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창세기를 읽으면서 발견할 수 있는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창조의 기사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첫째로, 아버지의 품 속에 계신 아들이자 창조의 목적이신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둘째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신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창세기 1장 기사를 통하여 예수님이 누군지를 찾아보자. 오늘날에도 여전히 창세기를 읽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를 보고서 성부 하나님만 그때 계셨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창세기 1장에 나타나 있는 창조의 하나님은 '엘로힘'이라고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어떤 이는 '엘로힘'을 복수형태라고 하여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더러 계신다. 그러나 창조는 홀로 한 분이신 '나 여호와'가 창조하신 것이다(사 44:24, 출20:11).
그러나 우리가 보다 더 성경을 깊게 볼 수 있다면, 태초에 있었던 전능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현장에 아들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구약성경 39권만으로 잘 알 수가 없다. 그것은 신약성경의 기록으로 비교했을 때에 확인되어진다. 특히 골로새서 1장 16절을 보라. 여기를 보면, 만물이 다 "'그에게서'(아들 안에서) 창조되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아들을 통하여), '그를 위하여'(아들을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여기서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의 주체이자, 창조의 목적이셨던 것이다. 이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시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구약시대에 아들은 밖으로 나와서 활동하신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둘째,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형상이자 모양이신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창조의 정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아담)을 창조하시는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 1:26)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이자 '하나님의 모양'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고후 4:4, 골 1:15). 오늘날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단순히 인간이 가진 이성이나 도덕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예수님이 바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골 1:15)이신 것이다. 그리고 한 분이신 하나님 곧 나이신 여호와께서 아들의 형상을 본떠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롬 5:14)이라고 증언했던 것이다. 고로 인간은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담아내기 위한 그릇으로 지어진 것이다. 인간은 장갑이고, 예수님은 손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 인간은 자신의 존재 목적을 알 수 없다. 손 없는 장갑과 같아서 자신을 공허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뿐이다.
3. '하나님의 형상'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아들이신 예수님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천사들도 가지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인간들도 가지고 있는 공통분모이다. 그래서 예수님과 천사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조사해 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5가지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은 육체가 아닌 영(Spirit)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도 영이시요, 아들도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본질 또한 영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로 천사도 영을 가졌고 인간도 영을 가진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은 지정의(Intellect, Emotion, Will)를 가진 인격체라는 점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사람의 혼만이 지정의를 갖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사람의 영도 동일하게 지정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셋째,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은 말(Speech)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흉내내는 것이 아니다. 넷째,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은 지혜롭고 명철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혜는 동물이 가진 지혜와는 차원이 다르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은 만물을 다스리는 통치권(Dominion)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의 하나님으로부터 통치권을 부여받은 아담에게 순종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인격체를 가리키는 살펴보자. 그것은 창세기 5장의 족보에서 그 비밀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담이 130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히, '벤')을 낳아"(창 5:3)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는 기사가 나오기 때문이다. 아담이 자신을 닮은 아들을 낳아 자신의 형상을 물려주었듯이,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어 그에게 형상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속사람으로서 사람의 영을 가리키고, 하나님의 모양은 겉사람으로서 사람의 육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서 아들(Son)로 귀결이 된다. 여자가 남자의 씨를 받지 않고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듯, 인류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지 않고는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없다. 아들이신 예수님은 이 형상의 원형이시기 때문이다.
4.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씨'는 누구인가? (기독교 vs 유대교)
인류가 범죄하여 타락했을 때, 하나님은 즉시 구원의 계획을 선포하셨다. 그것이 창세기 3장 15절의 말씀이다. "내(여호와 하나님)가 너(뱀)로 여자(하와)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씨)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기서 '여자의 씨(Zera)'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것에 대해 기독교와 유대교의 해석은 극명하게 갈린다. 그리하여 이 구절에 대한 해석으로 인하여, 기독교는 유대교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교에서는 '여자의 씨'를 무엇으로 해석하고 있는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대교 랍비들은 '여자의 씨'를 집합적 명사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토라(율법)를 지키며 거룩하게 살아가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구원은 율법을 지켜 의인이 되는 도덕적 투쟁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 교회는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도 바울의 해석을 따라서, '여자의 씨'는 약속된 씨로 오신 아들이신 예수님이라고 해석한다. 자, 갈라디아서 3장 16절을 보라. 이 구절은 이러한 사실을 아주 정확하게 짚어준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그렇다. 여자의 씨는 개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은 '여자의 씨'를 복수적인 개념의 존재로 본 것이 아니라 단수(Singular)인 인격적인 예수님이라고 못 박는다. 인류를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구원해낸 자는 어떤 집단이나 민족이 아니었다. 그이는 바로 오직 여자의 몸(마리아)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아들로 태어나신 분,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이 한 분을 통해서만이 뱀의 머리가 깨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5. 창 3:15에 나오는 뱀의 정체는 무엇이며,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유대교는 뱀의 정체 또한 모호하게 해석한다. 그들은 뱀을 실재하는 영적 존재라기보다는 인간 내면에 있는 '악한 충동(Yetzer Hara)'이나 '죄성' 정도로 본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러한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고 수양을 쌓으면 이 악한 충동을 이길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유대교가 가진 한계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뱀의 정체가 누군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을 보라.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뱀'이란 추상적인 악의 개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천사장이요 실재하는 영적 원수인 사탄 마귀다. 그는 천하를 꾀는 자다. 따라서 사람이 받게 될 구원은 도덕적 수양의 결과물이 아니라 영적 전쟁에 대한 결과물인 것이다.
그리하여 창세기 3장 15절의 예언을 따라, 뱀인 사탄마귀는 여자의 후손(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였다. 이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시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겉보기에 뱀과 예수님의 싸움은 뱀이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에게 결코 치명상이 아니었다. 반면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다. 머리를 깼다는 것은 그가 가진 권세를 박살 냈다는 뜻이다. 히브리서 2장 14절 말씀을 보라. 거기에는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날에 사탄마귀의 권세를 박살내고 그에게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되찾는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장 18절에서는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께서 이제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갖고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이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도덕 선생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악한 영들을 이기신 예수님을 나의 왕 나의 주로 믿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인 것이다.
6. 우리는 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런데 창세기 3장 15절에서 시작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미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십자가에서 뱀은 여자의 씨인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였다. 그리고 여자의 씨인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사건으로 인하여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이미 승리는 예수님에 돌아갔다. 그러나 뱀이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 뱀의 몸과 꼬리는 아직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다. 사탄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자신의 부하들인 뱀들과 귀신들을 시켜 최후의 발악을 하며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공격하고 있다.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려 하고 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몸된 교회인 성도에게 '이기는 자(The Overcomer)'가 될 것을 거듭해서 촉구한다. 특히 두아디라 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보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계 2:26-27)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철장(Iron Scepter)'은 쇠지팡이다. 이것은 시편 2편에서 아들이 묘사된 다윗 왕에게 주셨던 권세다. 여기에 묘사된 다윗 왕은 예수님을 예표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미이 이 철장 권세로 뱀의 머리를 박살 내셨다. 그리고 재림하시는 날, 아마겟돈 전쟁에서 사탄과 짐승과 거짓선지자를 따르는 무리들을 철장권세로 치실 것이다(계 19:15). 이는 그때까지 여전히 뱀이 살아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살아있는 뱀들을 처단하는 일이다. 그것들을 우리들의 몸에서 제거해야 하고, 다른 성도들의 몸에 침투하여 역사하는 것을 끌어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은 역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전사가 되는 것이다. 악한 영들과 싸워서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께서는 철장 권세를 혼자 독점하지 아니하시고, 악한 영과 싸워 이겨 천국에 들어온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나눠주겠다고 약속하시고 있다. 고로 이 땅에서 사는 성도들은 이러한 권세를 사용해서 귀신을 쫓아내다가 육신이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면 그러한 철장권세를 성밖에 사는 사람들에게 사용할 것이다(계 2:26-27, 21:24-26).
천국은 '착한 사람'이 가는 곳이 결코 아니다. 천국은 예수님의 생명을 소유한 자가 들어가는 나라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왕노릇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전사들이다. 고로 예수께서 승리했다고 해서 이 땅에 내가 자동적으로 승리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싸워야 한다. 귀신과의 싸움에서 구경꾼만으로 살아서는 아니 된다. 우리는 날마다 내 속에 들어있는 죄성 곧 뱀들과 귀신들을 내 보내야 한다. 그리고 외부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악한 영들을 예수 이름으로 대적해야 한다. 그리고 회개했지만 떠나지 않고 버티고 있는 다른 사람 속의 뱀들과 귀신들을 쫓아내는 한다. 그래서 실천적인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천국에서 들어갔을 때에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왕 노릇 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7. 이 시대에 우리가 붙잡아야 할 영적 무기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붙들어야 할 무기는 대체 무엇인가? 다시 말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구체적인 전략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첫째, 뭐니뭐니 해도 그것은 회개(Repentance)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뱀은 죄를 먹고 살기 때문이다(창 3:14, 흙을 먹을지니라). 처음에 인간은 땅(아다마)의 흙(아파르)으로 지어졌는데, 뱀에게는 땅의 흙을 먹고 살라고 했다. 고로 사람이 죄를 지으면 영적으로 뱀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고백하는 회개야말로 뱀의 식량을 끊어버리는 가장 강력한 병기가 된다. 우리가 죄를 자백할 때에 주님의 보혈에 의하여 하늘에 있는 행위책에 있는 나의 죄목들이 지워지면서, 동시에 이미 우리 몸 속에 침투해 있는 악한 영들을 내쫓아 내 육체를 깨끗하게 만들 수있다(요일 1:9).
둘째, 예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는 것이다. 마가복음 16장 17절에서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라고 약속해 주셨다. 그런데도 오늘날 수많은 성도들은 여전히 귀신을 두려워하거나, 아예 없는 존재로 취급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귀신을 두려워하셨는가 있는데도 무시하며 사셨는가?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내내 귀신과 싸워 승리하셨고 그것들을 쫓아내셨다.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시면서 뱀들의 머리를 짓밟고 귀신들을 쫓아낼 수있도록 예수님의 권세를 위임해주셨다. 그러므로 질병 앞에서, 가난 앞에서, 우울함 앞에서 결코 소극적이 되지 말라. 지은 죄를 회개하고, 회개했다면 즉시 뱀들은 집어놓리로 짓밟아버리고, 동시에 귀신들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떠나가라!"라고 명령해야 한다. 이때 권세있는 우리 입술의 선포가 뱀의 머리를 타격하는 철장이 될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Rhema)과 성령의 검을 사용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를 물리치실 때 "기록되었으되"라며 말씀을 사용하셨듯, 우리도 성경의 약속을 근거로 그것을 마귀에게 적용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거짓말을 베어버려야 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병기로 사용하여, 악한 영들을 대적하라. 그 말씀으로 악한 영들을 물리치라. 그러면 말씀 앞에 그들은 복종하게 될 것이다.
8. 여자의 씨에 대한 믿음이 가져오는 실제적인 유익은 무엇인가?
우리가 창세기 3장 15절의 '여자의 씨'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믿고, 그분과 연합할 때 얻게 되는 유익은 무엇을까? 그것은 실로 엄청나다.
먼저 가장 큰 유익은 사망과 음부의 권세로부터의 해방받는 것이다. 예수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함으로 인하여,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빼앗아오셨다(계1:18). 그것은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사탄마귀가 가져간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대신 사망의 값을 지불하시고 음부에 들어갔다가 나오심으로 인하여, 이제는 사망의 열쇠와 음부의 열쇠를 가지게 되셨다.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기 마련이듯, 사탄이 가지고 있는 것을 사탄은 예수님에게 내주어야 했다. 예수께서 사망의 값을 치르시고 음부에 내려가셨지만 그분에게는 정작 죄가 없었기에 예수께서는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3일만에 음부의 문을 열고 나오셨다. 그래서 그분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생명으로 사망을 이긴 첫 사례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실 때에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라고 알려주셨다. 고로 주 예수를 믿고 자기 안에 생명을 소유한 자는 뱀이 가져다준 가장 큰 저주로서 '사망'이 그를 더 이상 가두어 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여자의 씨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은 모든 성도는 둘째 사망(불못)의 해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여자의 씨이신 예수님을 믿고 그분과 연합되면, 그는 이 땅에서도 천국을 확장하는 통로로 사용된다. 우리가 귀신을 쫓아내면 하나님의 나라가 즉시 이 세상 공간 안에서 임하게 된다(마 12:28). 무당 민족이라 불리던 우리 민족이 복음을 받아들인 결과를 보라. 그리고 여자의 씨를 받아들인 지금이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제사장 나라가 되었다. 이렇듯 여자의 씨이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어둠은 떠나가고 생명의 빛이 비치게 된다.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고, 민족이 살아나는 것이다.
9. 나오며: 승리자의 반열에 서라
사실 성경의 역사는 일종의 '씨(Seed)의 전쟁'이 아닐 수 없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시작된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의 끊임없는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말은 이미 정해진 채 있다. 여자의 씨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2천년전에 십자가로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활로 확증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님을 붙들어야 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처럼 도덕적인 노력으로 뱀을 이겨보려 한다면 그는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다. 예수님의 피가 아니고서는 절대로 뱀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주님의 권세를 받아야 한다. 그분의 보혈을 의지하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의 말씀을 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내 안에 똬리 틀고 있는 뱀의 본성으로서 악한 충동, 그리고 질병과 저주, 신기와 막힘의 저주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우리에게 위임해주신 예수의 이름으로 처단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의 싸움은 패배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승리하게 되어있는 싸움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얻으신 승리는 영원무궁토록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이라면 그는 승리하도록 부름받은 상속자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이 원시 복음의 능력을 붙잡고 뱀의 머리를 밟기를 바란다. 그리고 천국을 향해 당당히 달려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26년 1월 28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본 설교는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여자의 후손(씨)’에 대한 약속을 기독론적 관점에서 풀이하며, 구약 성경 전체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과 그림자로 해석할 것을 강조합니다. 본 설교는 창세기를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과 설계도로 정의하고, 특히 아담과 이삭 같은 인물들이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예표한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유대교가 해당 구절을 도덕적 투쟁이나 공동체적 의무로 해석하는 것과 달리, 기독교는 이를 사탄의 권세를 파괴할 단 한 명의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확신한다는 점을 비교하여 제시합니다. 궁극적으로 성도는 이 약속의 실체인 예수를 믿음으로써 하늘의 상속자이자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영적 목표를 제시하며 이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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