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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QaSUmKsLnL0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3)] 아브라함과 이삭의 시대에 나타난 예수그리스도의 충격적인 예표는?(창18:1~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QaSUmKsLnL0

 

 

1. 들어가며: 성경을 꿰뚫는 두 가지 핵심 질문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명확하게 답하지 못하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 이것은 기독교의 뿌리이자 내 목회의 전부를 뒤흔들 수 있는 자우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첫째, "하나님은 누구신가?" 둘째, "인간은 어떻게 구원받는가?"이다. 필자는 목사가 된 지 20년이 넘도록 이 질문에 대해 교단이 가르쳐준 교리적 수준으로 답해왔다. 그러다가 지난 2013년, 성경을 원문 그대로 파고들면서 거대한 충격에 휩싸였다. 내가 알고 있던 '삼위일체'라는 틀 속에 갇혀, 정작 성경이 소리치고 있는 '한 분 하나님'의 실체를 놓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3:5의 말씀을 통하여,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라도 그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는 발견이었다. 그 충격파는 대단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결국 삼신론적인 생각을 갖게 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희생을 축소시켜 왔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얻은 구원이 만세전에 예정된대로 아니라 믿고 회개할 때에 예정이 되어지며, 한 번 얻은 구원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라가 삼신론적인 신관을 벗기 위해서는 한 분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 했고, 한 번 얻은 구원이라도 그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그래서 한 분 하나님에 대해서는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이 그 해답을 가지고 있고, 구원을 잃어버릴 가능성에 대해서는 마태복음과 히브리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중에서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발견은 요한복음 8장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것의 첫 출발은 창세기 18장과 22장에서부터였다. 여기에는 한 분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구약의 기독론의 핵심이자 근간인 한 분 하나님에 대해 말씀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중에서 구약의 기독론의 심장부인 창세기 18장과 22장의 말씀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곳에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실상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격적인 예표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보내신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아들이 되어 오셨다는 이 놀라운 비밀은 우리의 심장을 울리고 모든 것을 한 분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한다. 이제 바로 그 출발점인 창세기 18장과 22장으로 들어가보자. 그러면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사랑에 전율할 것이다. 

 

2. 예수님은 스스로를 누구라고 소개하셨는가? (알파와 오메가의 비밀)

  믿는 이들은 흔히들 구약의 하나님은 성부 여호와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이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해 왔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그렇게 설명하지 않으셨다. 요한복음 8장 24절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선포하신다.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여기서 "내가 그(I AM)"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Ego Eimi)', 즉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할 때 쓰신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는 신명(神名)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수께서 구약에 나타난 스스로 있는 자 곧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지 아니한다면, 한 분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셔서 행하신 속죄의 효력을 받지 못해서 여전히 죄 가운에 있다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유대인들은 여태껏 메시야 즉 구원자를 기디려왔다. 하지만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실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잇었던 것이다. 너무 충격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예수께서 유대인들과의 논쟁에서 지금 그들에게 말하고 있는 예수님 자신이 "바로 구약의 그 여호와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사실을 믿지 않으면 그들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까지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요한계시록으로 가면 더욱 더 명확해진다. 구약 이사야서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당신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셨다(사41:4,  44:6, 48:12).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께서 '여호와 하나님'처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계1:17, 2:8, 22:13)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만약 예수께서 여호와와 다른 분이라면, 이것은 아버지를 사칭하는 신성모독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창조주 여호와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이다. 예수님은 아들로 오신 한 분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3. 창세기 18장,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세 사람은 누구였는가?

  그런데 이러한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비밀을 푸는 열쇠가 바로 창세기 18장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아브라함의 장막에 세 사람이 찾아온다(창 18:1). 우리는 흔히 그들을 천사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보라. 아브라함은 그들을 보고 "내 주여(Adonai)"라고 부르며 땅에 엎드려 절한다. 그리고 세 분 중의 한 분이 자신을 '여호와'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날개를 달고 오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처럼 왔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들이 누군지를 알아보고는 요리를 준비하여 접대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그 음식을 실제로 먹었다(창 18:8). 이것은 아브라함 앞에 나타난 세 분이 환상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세 사람들 한 사람이 자신을 분명하게 '여호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창 18:13, 22). 그렇다. 보이지도 않고 볼 수 없는 한 분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아브라함과 대화하시고 음식을 드신 것이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서 유일무이한 사건이다. 사실 훗날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던 모세도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형상을 아브라함이 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건은 대체 무엇을 예표하는가? 그것은 장차 하나님께서 영으로만 계시지 않고, 사람의 육체를 입고(Incarnation)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며 구원을 이루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성육신의 리허설과 같은 것이다. 아브라함은 막연한 신을 믿은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찾아오실 그 하나님을 미리 만나 보았던 것이다.

 

4. "내년 이맘때"가 아니라 "생명의 때"에 온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때였다. 식사를 마치신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8:10). 여기서 '내년 이맘때'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문은 '카에트 하야(Ka-et Hay-yah)'이다.  직역하면 "생명의 때(Time of Life)에"라는 말이다. 이 문장은 단순히 달력상의 1년 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고로 이 말은 이중적인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는 그 때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 생명이 잉태되어 이삭이 태어날 때를 가리킨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볼 때, 이 때는 생명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실 때, 즉 '때가 차매(갈 4:4)' 여자의 몸을 빌려 아들로 오실 그날을 가리킨다.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과 유대인들과의 대화에 나온다. 왜냐하면 당시 아브라함이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 8:56).

  사실 여기서 생명의 때라는 것은 생명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시는 때를 가리킨다. 요한복음 5장 26절을 보라. 거기에 보면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은 생명이 없는 영을 가진 상태에서 출발하는데, 예수님은 생명을 가진 영을 소유한 상태로 이 세상에 들어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아들'은 이삭이라는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을 뛰어 넘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오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빈손으로 오지 않으신다. 우리를 살릴 생명을 가지고 오시는 것이다.

 

5. 모리아 산의 비밀, 하나님은 무엇을 보여주려 하셨는가?

  세월이 다시 흘러 이삭이 청년이 되었을 때였다. 이때를 유대역사가 요세푸스는 25세라고 말하고, 야살의 책에서는 37세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쨋든 이삭이 청년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시더니,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아니 주실 때는 언제고 이제는 빼앗아가려고 하시는가? 굳이 빼앗아 죽이려고 작정하셨다면 왜 처음부터 주지 않으시니 주었다가 또 빼앗는 것인가? 그리고 왜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번제로 바칠 장소를 어느 장소라고 딱 지정하셨는가? 왜 모리아 땅으로 가되, 거기에 있는 한 산, 하나님이 지시하는 산이어야 하는가? 예루살렘에는 시온산, 감람산, 성전산 등의 여러 산들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굳이 3일 길을 걸어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으로 가라고 하신 것인가?

  그것은 '모리아(Moriah)'라는 단어에 그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이 단어의 뜻을 찾아들어가보면,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난다. 모리아는 사실 두 단어가 합쳐진 것이다. '보다(Ra'ah)'와 '여호와(Yah)'의 합성어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리아는"여호와께서 보이신다(Jehovah appears)"는 뜻을 가졌다. 여기에서 '라아'라는 단어는 첫 시작은 '보다'는 뜻이지만 점차적으로 분화하여 '준비하다. 예비하다'는 뜻까지 나아간다. 무엇인가를 보여주신 것은 그것을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단순히 아브라함의 믿음을 테스트하기 위해 그 산을 지정하신 것이 아니다. 그 장소는 장차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보이실 장소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2천 년 뒤, 바로 이 모리아 땅의 한 언덕(골고다, 777m)에서 하나님은 육신을 입은 아들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모리아 산 사건은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비극이 아니었다. 하나님 아버지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아들이 되어 죽으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사건이었던 것이다.

 

6. '여호와 이레'의 진짜 의미는 "준비하심"인가, "보여주심"인가?

  그때였다. 이제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나무 위에 올려놓은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자신의 독자 이삭을 잡으려 했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사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으로 아브라함의 행위를 말리셨다. 그리고는 수풀에 걸린 숫양을 보여주셨다. 이삭 대신 숫양을 잡아 번제하라는 뜻이었다. 이에 아브라함은 그 숫양을 잡아서 번제 제사를 드리고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다. 우리는 보통 이것을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라고 해석해오고 있다. 물론 의역하면 이것이 틀린 번역은 말이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의 뜻은 더 깊고 심오하다.

  왜냐하면 '이레=이르예(Jireh)'는 '보다'라는 동사 '라아'의 미래형이기 때문이다.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보이시리라"가 된다. 창세기 22장 14절 하반절도 이렇게 번역해야 정확하다. "여호와의 산에서 그가(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보이시리라." 그때 아브라함은 깨달았다. "아, 하나님이 내 아들 이삭을 받으시려는 게 아니구나. 장차 하나님 당신께서 친히 어린 양이 되셔서, 이 산에서 자신을 제물로 드리실 것을 먼저 알게 하신 것이로구나!" 요한복음 8장 56절을 보라. 예수께서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하신 말씀하셨다. 이삭은 그냥 이삭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아들로 오심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장차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죽으실 것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때 수풀에 걸려 있다가 대신 이삭 대신 번제로 드려진 숫양처럼, 하나님께서는 이미 먼 훗날 인류를 대신하여 가시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달리실 자기자신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것을 그때 아브라함은 직접 현장에서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7. 이삭의 순종에서 우리는 어떤 예수님을 만나는가?

  그런데 이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은 아브라함만이 아니다. 이삭도 포함된다. 당시 아브라함은 100세가 훌쩍 넘은 노인이었고(아마도 125세 내지는 137세였을 것이다), 이삭은 혈기 왕성한 20~30대 청년이었다(요세푸스는 25세, 야살의 책은 37세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이삭이 마음만 먹으면 늙은 아버지를 뿌리치고 도망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삭은 다 한 번도 아버지께 혹은 하나님에게 반항하지 않았다. 야살의 책에 보면 이삭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여, 나를 단단히 묶어 주소서. 내가 움직여서 아버지께서 나를 찌를 때에 잘못 될까 두렵나이다."

  그랬다. 이삭은 이처럼 자신을 기꺼이 제사의 예물로 내어놓았다. 죽기까지 순종한 것이다. 이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며, 스스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아버지가 아들을 내어주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픈 마음을 대변했다면, 이삭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잠잠히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되신 아들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당시 모리아 산의 제단 위에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서 있었던 것이다.

 

8. 아브라함이 만난 하나님, 그 '한 분'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 우리가 도달해야 할 결론은 하나다. 그것은 하나님은 한 분의 일하심이다. 구약의 여호와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아들 예수로 오시려고 계획하신 것을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이것을 믿는 것이 구원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이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는 제자 빌빕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고 말씀하신 것과 똑같다. 

  오늘날 많은 성도가 하나님을 멀리 계신 무서운 아버지로 알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아버지의 명을 받고 순종하신 아들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만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날 십자가에 매달리신 분은 아들이지만 아들로 나타나신 한 분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그분이 구약시대에 나타나 모든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죽을 운명에 처한 인류를 위하여 피조물이 되어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리고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 커다한 사랑을 알지 못한 채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것이다. 피조물이 자신을 살리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몰라고 그분을 죽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 18장과 22장을 보면,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 곧 '자기 희생'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우리는 삼위일체라는 교리적 논쟁을 넘어 하나님의 그 뜨거운 심장 속으로 들어야 한다. 아브라함이 만난 그 하나님, 아들로 오신 여호와를 만날 때 우리 신앙은 진짜가 되기 때문이다.

 

9. 나오며: 한 분 하나님, 그 사랑의 깊이에 빠지다

  창세기 18장의 마므레 상수리나무 아래서 아브라함과 함께 식사하시던 그분은 대체 누구셨는가? 창세기 22장의 모리아 산에서 숫양을 준비하여 당신의 죽음을 미리 보여주신 그분은 대체 누구셨는가? 그분이 한 분 하나님이셨다. 그분이 바로 2천 년 전 베들레헴 말구유에 사람으로 오셨고, 골고다 언덕에서 피 흘리리셨다. 그분이 바로 우리의 주 우리의 하나님, 영원히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낯선 어떤 신적 존재를 믿는 것이 아니다. 태초부터 아버지의 품 속에 계셨던 아들이요, 모든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친히 사람의 옷을 입고 찾아오신 그분을 믿는 것이다. '모리아의 한 산", "여호와 이레."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누군지를 보여주신 귀한 사건이다. 그분이 아들로 오셔서 인류를 대신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그가 자기자신을 보여주실 것이다". 그 산이 모리아의 한 산이요 그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그분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내가 네게 다시 돌아오리니 그러면 네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한 분 하나님 곧 여호와이신 것이다. 그랬다. 하나님께서 죄인된 우리 인류를 살리려고 친히 당신의 몸을 준비하셨던 것이다. 그것이 '여호와이레'이다. 주님이 따로 있는 아들을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큰 사랑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하는 것뿐, 달리 해야 할 일은 없다. 두 손들고 그분이 하신 일을 경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를 살려서 천국에 들어오게 하고, 하늘나라를 물려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이 하시는 일에 나도 동참하여,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상속자가 되게 하고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물려받을 자이자 왕노릇할 자는 산출하는 것이다. 창조주이자 구원자이신 한 분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자 예수 그리스도로 오신 하나님, 우리는 오직 그 한 분만을 영원토록 사랑하고 높이기를 바란다. 

 

2026년 1월 30일(금)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본 설교는 정보배 목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한 분 하나님 사상을 아브라함과 이삭의 사건을 통해 조명한 강해입니다. 본 설교는 창조주 여호와가 곧 구원자 예수라는 신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약의 아브라함이 생명의 때에 아들로 오실 하나님을 미리 보고 기뻐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특히 창세기 18장과 22장을 분석하며 모리아와 여호와 이레라는 지명이 '여호와께서 자신을 보여주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밝혀, 이삭의 번제 사건이 하나님이 직접 인류를 위해 죽으러 오실 것에 대한 강력한 예표임을 설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교단적 교리를 넘어 성경 원문을 통해 예수님이 단지 보냄을 받은 존재가 아닌 육신을 입고 오신 한 분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그 희생의 의미를 되새길 것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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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26.01.31 By갈렙 Views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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