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21)] 야곱에게서 배우는 ‘이기는 자’에 대한 정의는?(창32:1~1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e_22aiDaUiY
1. 들어가며: 흙에서 하늘로, 야곱이 걸어간 길
인생은 흔히 나그네 길에 비유된다. 그중에서도 야곱의 생애는 우리 모든 인간이 걸어가는 영적 여정의 거울과도 같다. 흙에 속한 자로 태어나 하늘에 속한 자로 바뀌어가는 과정, 육체에 갇혔던 영혼이 성령을 통해 자유를 얻고 마침내 영원한 나라의 상속자로 인침 받는 그 드라마틱한 서사가 야곱의 발자취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많은 이들이 야곱을 그저 '복을 탐냈던 교활한 사기꾼' 정도로 기억하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단순히 개과천선한 인격자로 만드시는 데 목적을 두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는 야곱을 이기는 자(Overcomer), 즉 이스라엘로 빚어내는 것이었다. 이것은 성품의 변화를 넘어선 영적 지위의 획득이며, 천국 보좌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고귀한 사역이다.
필자는 지난 30년의 목회 여정 동안 나의 삶이 야곱과 참으로 닮아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적인 꾀로 목회의 성공을 꿈꿨던 시절부터, 환도뼈가 꺾이는 것 같은 육체적·영적 고통의 밤을 지나, 비로소 하나님의 주권 앞에 무릎 꿇기까지의 과정이 야곱의 얍복강 씨름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 32장의 사건을 통해, 이 시대 우리에게 요구되는 '이기는 자'의 참된 정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영광이 어떠한 것인지를 성경의 깊은 샘에서 길어 올리고자 한다.
2. 성경이 말하는 ‘이기는 자(Overcomer)’의 진정한 정의는 무엇인가?
우리는 보통 '이겼다'라는 말을 들으면 상대방을 힘으로 제압하거나 경쟁에서 승리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이기는 자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요한계시록에 17번이나 등장하는 '니카오(Nikao)'라는 단어는 단순히 물리적인 승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닥친 극한의 상황과 자기 내면의 한계를 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함으로 극복해낸 상태를 의미한다.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것은 하나님을 힘으로 눌렀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과도 같았던 지팡이(인간적 수단)와 기름병(인간적 지혜)이 더 이상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절망의 순간에, 오직 하나님의 약속만을 붙잡고 늘어졌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는 고백은 항복 선언인 동시에 가장 강력한 승리의 선포였다.
진정한 승리자는 자신의 무능을 철저히 인정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자신을 투항시킨 사람이다. 이기는 자란, 세상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지인 '아버지의 집'에 기어코 도달하는 자를 말한다. 상황을 역전시키는 힘은 내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고 내 안의 주님이 사심을 확신할 때 비로소 나타나는 권세다. 따라서 이기는 자는 곧 항복하는 자이며, 극복하는 자(Prevailer)라고 정의할 수 있다.
3. 왜 ‘이기는 자’라는 칭호는 오직 ‘인간’에게만 허락되는가?
영적 세계에는 수많은 존재가 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천사를 향해 '이기는 자'라고 칭한 대목은 없다. 하나님 역시 스스로를 이기는 자라고 부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승리자이시며, 천사들은 그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AI 로봇과 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오직 육체를 입고 한계 속에 살아가는 인간만이 '이기는 자'라는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얻을 수 있다.
천사는 감정이 없으며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명령을 받으면 그 분량대로만 움직일 뿐, 상황을 판단하여 의지적으로 극복해내는 주도성이 없다. 반면 인간은 끊임없는 육체의 유혹과 사탄의 공격, 그리고 불합리한 환경 속에서 고뇌한다. 그 척박한 현실 속에서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고, 자신의 자아를 꺾어 순종의 자리에 이르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승리다.
야곱은 96세의 노구로 얍복강에서 사투를 벌였다. 그에게는 늙고 지친 육체가 있었고, 형 에사오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실존적 두려움을 기도로 돌파해 냈다. 이처럼 이기는 자의 권세는 오직 인간이었던 자들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이 무거운 이유는, 우리를 천사보다 높은 보좌에 앉히기 위한 하나님의 정교한 훈련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이 영광스러운 칭호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4. ‘이기는 자’의 최고 정점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세상을 이기셨는가?
요한계시록 5장 5절은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라고 선포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이기는 자의 원형이자 정점이시다. 주목할 점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이기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지닌 인간으로서 이기셨다는 사실이다(히 5:7~8).
히5:7-8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그것이 극명하게 드러난 장소가 있다면 그곳은 바로 겟세마네동산에서다(마 26:39).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그렇다면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에서다. 고로 이 기도는 인성(Humanity)의 자아를 신성(Divinity)의 뜻에 완전히 복종시키는 사투였다. 주님은 십자가라는 참혹한 형틀 앞에서, 12군단 더 되는 천사를 부르는 권세를 스스로 포기하셨다.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사탄의 머리를 짓밟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이기는 방식이다.
예수님이 이기셨기에 그분을 믿는 우리도 이길 수 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내가 이기고(이겼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 같이 너희도 이기면 내 보좌에 앉혀주리라"(계 3:21)고 약속하셨다. 결국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살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죽을 때에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기 위함이요, 그곳에서 보좌에 앉아 통치하기 위함이요, 주님과 함께 만국 위에서 왕 노릇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이기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나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발자취를 따라가며, 우리도 날마다 우리 자신 안의 정욕과 두려움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의 승리에 동참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5. 얍복강에서 환도뼈(골반뼈)가 어긋난 사건이 상징하는 영적 파쇄의 의미는 무엇인가?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강력했던 것은 그의 '꾀'와 '끈기'였다. 그는 빈손으로 하란에 가서 거부가 되어 돌아온 자수성가형 인간의 표본이다. 그렇지만 얍복강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가장 강한 부분인 환도뼈의 우묵히 패인 곳(허벅지 관절)를 치셨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이는 그의 골반뼈가 틀어져 탈골된 상태를 뜻한다. 걷는 것조차 힘겨웠던, 완전한 무력함의 상태로 밀어 넣으신 것이다.
고로 얍복강에서 야곱의 환도뼈가 탈골된 것은 그의 인생의 모든 자아가 파쇄(Brokenness)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오늘날 나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의지했던 학위, 인맥, 재능, 그리고 나를 지탱해주던 마지막 자존심이 다 무너져내린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역사는 비로소 시작된다. 필자는 불모지의 땅, 동탄에 처음 개척을 했을 때, 필자가 가진 교육학적 지식(국어과 2급정교사, 기독교교육학석사 등)과 가르치는 은사를 사용하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2년 만에 모든 재정을 탕진되고 말았고 성도들이 흩어지는 처참한 실패를 겪었다. 그때가 바로 내 인생의 환도뼈가 부러진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부러진 자리에서 다시 지가했을 때에 2013년 비로소 '회개'의 문이 열렸고, 내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구원론을 제대로 정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20년에 되어서 영의 세계를 알게 됨으로 저주로부터 해방받는 회개를 알게 되었고, 영의 눈이 열려서 천국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환도뼈를 치시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를 미워해서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붙들고 있는 '내 꾀와 내 힘과 내 지혜의 지팡이'를 내려놓게 하기 위함이다. 야곱이 환도뼈가 탈골됨으로 인하여 다리를 절며 지팡이 없이 걷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참된 이기는 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자아의 파쇄는 축복으로 가는 필수 통문이며, 이기는 자로 거듭나기 위한 거룩한 진통인 것이다.
6. 하나님의 군대 ‘마하나임’은 어떤 자의 삶에 동원되는가?
야곱이 얍복강에서 항복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제 한 무리의 하늘의 군대를 움직이셨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이미 야곱이 외삼촌의 손안귀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집으로 향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다(창32:1-2)
창 32:1-2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천사들)이 그를 만난지라 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그때 이미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았고 그곳을 마하나임(Mahanaim), 즉 '두 무리의 군대'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러한 군대라도 야곱이 자신의 자아를 신뢰하고 있을 때는 단지 그를 지켜보는 구경꾼에 불과했다. 그러나 야곱이 환도뼈가 꺾여 비명을 지르며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비로소 그 군대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외경 "야살의 책"에 따르면,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오고 있을 때였다. 그들 앞에 정체불명의 강력하고도 중무장한 군대를 만났을 때에 에서는 말에 떨어졌다고 전한다. 그때 그들이 누군지를 물었을 때, 그들은 "우리는 야곱의 종들이다"라고 말했는데, 만약 에서가 자신의 야곱의 가족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죽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에서는 손발이 얼어붙었고, 그의 마음을 공포로 극심하게 떨게 된다. 결국 동생을 죽이려던 에서의 살기는 봄눈 녹듯 사라질 수밖에 없었고, 자신을 향하여 다리를 절며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엎드려 절하는 동생 야곱을 보는 순간, 에서는 목을 안고 통곡하는 화해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렇다. 영적 전쟁의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직접 칼을 들고 싸우면 하늘의 군대는 휴가 상태에 있지만, 내가 기도의 무릎을 꿇고 주권을 주님께 이양하면 하나님은 마하나임의 천사들을 급파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기는 자에게 최고의 보상이 주어지는데, 그것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는 영적 청구권인 것이다. 오늘오 우리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잔꾀를 굴리고 있는가? 아니면 얍복강의 씨름을 통해 마하나임의 호위를 요청하고 있는가? 이기는 자는 하늘의 군대를 다스릴 수 있는 권세자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7. ‘이기는 자’가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 ‘아버지의 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야곱의 20년 타향살이의 유일한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벧엘에서의 체험이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홀로 길을 떠나는 야곱에게 나타나 "내가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창 28:15). 그가 얍복강을 건너려 했던 이유도 결국은 브엘세바에 있는 아버지의 집으로 가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아버지의 집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는 동안 2번씩이나 그에게 나타나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첫째, 벧엘에서의 약속이다(창28:13-15). 이때 하나님께서는 벧엘에서 야곱에게 꿈 속에서 나타나셔서 그에게 2가지를 약속하셨다(창 31:13-15). 하나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그가 거류하고 있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며, 그것으로 인하여 그의 자손이 동서남북으로 퍼져나가고 모든 족속들이 그의 그의 후손으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하신 이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며 그를 지킬 것이며, 또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래서 하나님께서 허락한 것을 다 이룰 때까지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창28:13-15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둘째,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마침내 거부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것은 바로 벧엘에서 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그가 태어난 곳 즉 그의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또 한 번 그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는 것이다(창 31:3, 13)
창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창31: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그가 얍복강에서 자신의 환도뼈가 탈골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대신한 천사를 끝까지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끝의 정점은 아버지의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고로 오늘날 이기는 자의 승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확인하려면,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확인하면 된다.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향하는 곳이 결국 지옥이라면 그는 가장 처참한 패배자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최종 목적지가 아버지의 집 곧 새 예루살렘 성이라고 그는 지금 이기는 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이기는 자의 최종 목적지는 새 예루살렘 성, 즉 하늘 아버지의 보좌 앞이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주신 약속들을 전부 살펴 보라. 이기는 자가 되어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으며, 만나와 흰 돌을 받고,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얻는 그 모든 보상은 오직 아버지의 집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입성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들이다.
고로 우리는 이 땅에서 성공하는 것에 취해 천국을 잊고 살아서는 안 된다. 야곱이 벧엘에서의 첫 사랑을 기억하고 다시 그곳으로 올라갔듯이, 우리도 신앙의 본질인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기는 자란 단순히 고난을 잘 참아낸 사람이 아니라, 어떤 유혹 속에서도 '아버지의 집'을 향한 방향타를 놓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킨다. 지금 나의 시선이 지금 저 영원한 세상을 향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이기는 자의 길에 들어선 승리자인 것이다.
8. 우리는 어떻게 나 자신을 넘어 다음 세대를 ‘이기는 자’로 세울 것인가?
야곱이 얍복강에서 사투를 벌인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단지 자기 목숨을 구걸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아버지의 집으로 되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그리고 하란에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자신을 죽이러 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환도뼈가 탈골되는 상황에서도 기도를 놓치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첫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다시는 자기와 같은 비극 즉 자식들 중에 한 사람만 상속자가 되고 나머지는 탈락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4명의 아내들과 12명의 자식들의 목숨이 경각간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자신에게 붙혀진 다른 영혼들까지 살려내야 하기 때문에 처절한 기도의 싸움을 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이 얻은 한 무리의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환도뼈를 내주면서까지 기도에 전념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헌신의 결과, 그는 훗날 애굽에서 12아들 모두를 하나님의 상속자로 축복하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저 하늘에 준비된 새 예루살렘의 12대문 위에 왜 야곱의 아들들의 이름이 새겨진 있는가? 왜 그곳에서 위대한 신앙의 위인들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고, 야곱의 12아들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가? 그것은 야곱이 이룩한 승리가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그에게 달린 모든 가족들의 승리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자기 개인만이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을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우리에게 달린 배우자와 자식들까지 그리고 영적인 자식들까지도 다 이기는 자가 되기를 바라신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나 혼자 간실히 구원받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으로 만족하는 자는 결코 진정한 '이기는 자'라 말할 수 없다. 내 자녀를, 내 남편을, 내가 섬기는 양들을 '이기는 자'로 길러내야 진정한 이기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야곱이 147세를 향유하면서, 죽음의 문턱에서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무엇을 했는가? 그것은 자신의 12아들에게 기업을 분배하여 주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는 다음 세대에게 영적 유업을 물려주는 사명자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다. 이기는 자 한 사람이 내 가문에서 나온다면 그 가문에 속한 공동체가 살아난다. 우리가 얍복강에서 또다른 씨름꾼이 되어 자신의 모든 꾀와 힘과 능력을 포기하고, 오직 한 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듦으로, 내가 주어진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게 될 때, 우리도 이스라엘이라는 칭호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달린 여러 자녀들도 역시 천국 성문을 통해 새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복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9. 나오며: 이스라엘의 유전자를 깨우라
이번 시간에 우리는 야곱의 생애를 통해 '이기는 자'의 참된 실체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이기는 자는 그가 강한 자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가 부서진 자이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는 그가 똑똑한 자여서가 아니다. 자기의 모든 능력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만을 고집스럽게 붙잡는 자이기 때문이다. 지금 과연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 잔꾀와 내 힘과 능력을 상징하는 우리의 환도뼈인가? 아니면 환경은 전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가? 만약 내 자아가 깨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자신을 주장하고 있다면 그때는 기뻐하라. 바로 그 자리가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을 영광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철머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결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이다(마28:19). 세상은 계속해서 우리 위에서 우리의 타고난 자아를 속이고 라반처럼 우리의 수고의 산물을 갈취할지 모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능력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끝까지 그곳을 놓치지 않을 때에, 그분은 우리를 위해 지금도 마하나임의 군대를 준비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흙에 속한 야곱의 성품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붙잡아 야곱에서 이스라엘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 걸음 더나아가 나만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 한계를 뛰어넘 다른 영적 자손을 산출하는 생산적인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참으로 이 시대는 주님께서 참된 이기는 자가 산출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이기셨듯이(요 6:33), 우리도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마침내 저 황금 성 예루살렘의 진주문을 당당히 통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남은 생애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여, 이기는 자의 간증으로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란다.
2026년 2월 9일(화)
정보배 목사
[설교요약]
이 설교는 야곱의 생애를 통해 진정한 '이기는 자'란 단순히 힘으로 승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적인 꾀와 능력을 포기하고 고난의 상황을 극복해 내는 자라고 정의합니다. 이 설교는 천사와 씨름하며 환도뼈가 어긋난 야곱의 사건을 자기 부인의 과정으로 설명하며, 인간의 육체적 수단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약속만이 유일한 승리의 근거가 됨을 강조합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이기는 자의 원형이자 성부, 성자, 성령이 한 분 하나님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함을 설파하며, 신자들 또한 첫사랑을 회복하고 끝까지 인내하여 천국 보좌에 참여하는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설교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오직 주의 동행하심을 의지하는 것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핵심 열쇠임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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