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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MXgnukYBlHs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49)] 중보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기도의 예(01)(요17:1~2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MXgnukYBlHs

 

 

1. 들어가며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경륜은 구약과 신약이라는 두 수레바퀴를 통해 완벽하게 맞물려 굴러간다. 구약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이 신약에서 실체로 드러나며, 신약에 선포된 말씀의 깊이는 구약의 모형을 통해 입체적으로 해석된다. 그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감당하신 위대한 '중보자'의 사역을 가장 완벽하게 보여주는 구약의 예표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성막의 성소 안에 자리 잡은 '분향단(焚香壇)'이다.

  분향단은 하나님 보좌 앞을 향기로운 연기로 채우는 거룩한 기도의 제단이다. 오늘날 수많은 개신교인이 밤낮으로 기도를 부르짖으면서도 응답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 분향단의 영적 원리를 망각한 채 내 육신의 정욕만을 구하는 이기적인 기도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참된 기도는 내 뜻을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구하며 나를 희생하여 남을 살려내는 거룩한 향연이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드리셨던 요한복음 17장의 대제사장적 기도가 어떻게 구약의 분향단 제도를 완벽하게 성취했는지, 그리고 천국에서 이기는 자로 서기 위해 오늘 우리의 기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그 장엄한 진리 속으로 들어가 보자.

 

2. 신약의 예수님께서 드리신 기도의 참된 깊이를 깨닫기 위해, 우리는 왜 반드시 구약 성막의 '분향단' 제도를 함께 짝을 지어 연구해야 하는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한복음 5:39)

  예수님 당시의 성경은 구약 성경을 의미한다. 즉, 구약 성막의 모든 제도와 규례는 장차 오실 메시아가 이 땅에서 행하실 구속 사역의 완벽한 청사진이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가다락방에서 홀로 드리셨던 요한복음 17장의 '대제사장적 기도'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기도가 구약의 어떤 예표를 성취한 것인지 그 뿌리를 먼저 추적해야 한다.

  구약 성막의 성소 정면에는 지성소의 문 방향에 분향단이 놓여 있었고, 대제사장은 1년에 단 한 번 대속죄일 제사 때 이 분향단에서 '금 향로'와 향을 취하여 지성소로 들어갔다(레 16:12-13). 피어오르는 향연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고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영적 실상을 꿰뚫어 보고 "금 향로가 지성소에 있다" (히 9:4)고 선포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밤 아버지께 비는 기도는 단순한 기도가 아니었다. 그는 대제사장이 속죄일 제사 때에 비는 기도를 드리신 기도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기도는 이방인의 허망한 중언부언이나 종교적인 넋두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친히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어 자신의 생명을 제물 삼아 하나님 보좌(지성소) 앞 금 향로에 올려드린 가장 거룩하고 숭고한 분향단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구약의 이 예표를 짝에 해당하는 기도를 알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요한복음 17장에 담긴 예수님의 피 맺힌 중보 기도의 무게와 깊이를 가슴 벅차게 깨달을 수 있다.

 

3. 예수님께서 당신의 육체(둘째 휘장)를 찢으심으로 지성소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셨음에도, 오늘날 성도들이 주님의 임재와 대화(응답)를 누리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히브리서 10:19-20)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던 둘째 휘장을 위에서 아래로 찢으셨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대화할 수 있는 지성소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참담하게도 오늘날 주님의 음성을 듣거나 환상을 보며 영권을 누리면서 그분의 임재를 일상에서 풍성하게 누리는 성도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길이 열렸음에도 왜 우리는 성소와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예수님이 열어놓으신 문이 좁아서가 아니다. 성도 본인이 뜰 마당에 있는 '물두멍'에서 자신의 손발을 씻는 행위, 즉 '철저한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값싼 칭의에만 안주할 뿐, 내 육체 속에 집을 짓고 거주하며 나를 병들게 하고 죄로 이끄는 더러운 악한 영들(귀신과 뱀들)을 십자가의 피로 씻어내려는 치열한 영적 청소의 과정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내 혼과 육체 속에 죄악과 뱀들이 꽉 들어차 있는데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것이며, 신성한 본성의 빛이 내 육체에 투영되어 밖으로 나타날 수 있겠는가? 물두멍의 통렬한 자백과 회개 없이 지성소의 임재를 구하는 것은 목숨을 잃을 위험성만 커질 뿐이다(출 30:19-20).

 

4. 오직 자기의 죗값만 씻고 혜택만 누리려는 '바깥뜰(번제단)'의 신앙과,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성소'의 신앙은 천국에서 어떤 신분의 차이를 결정짓는가?

  성막의 구조는 우리가 장차 천국에서 얻게 될 지위와 신분을 명확하게 가르는 기준선이다. 성막의 '바깥뜰'에 놓인 놋 번제단은 오직 '나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심판을 면하기 위해 제물을 바치는 곳이다. 수많은 개신교인이 이 바깥뜰의 신앙에 멈춰 있다. "예수 믿고 내 죄 씻음 받았으니 나는 구원받았다"며 오직 내 가정, 내 건강, 내 성공만을 구하는 사람은 바깥뜰에만 머물러 있는 신앙이요, 철저히 이기적인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이 비록 천국에 들어갈지라도 그들은 성 밖의 변두리에서 간신히 턱걸이 구원을 얻은 자들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성소'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영적 신분을 향하여 도전하는 것과 같다. 이 때 성소 안에 있는 분향단은 대제사장이 백성들을 위해 이타적인 중보 기도를 피워 올리는 봉사의 현장에 해당한다. 즉, 나를 위한 신앙을 넘어 마귀에게 포로 된 형제와 이웃의 영혼을 구출해 내기 위해 내 생명을 깎아 바치는 '섬기는 자'의 길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땅에서 이기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이웃을 위해 목숨을 걸고 중보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자들만이 훗날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여 만국을 호령하는 14만 4천 명과 24 장로와 같은 영광스러운 '이기는 자'의 지위를 상속받게 되는 것이다.

 

5.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라고 기도하신(요 17:1) 진정한 영적 의미는 세상의 성공을 구하는 기도와 어떻게 다른가?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1)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의 첫 번째 핵심은 자신을 향한 기도였다. 그런데 주님이 구하신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라는 간구는,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높아지며 권력을 잡게 해 달라는 세속적인 탐욕을 구하는 기도가 결코 아니었다.

  여기서 '때가 이르렀다'는 것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실 그 끔찍한 고난의 십자가 형벌이 임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부여하신 가장 위대하고도 무거운 사명, 즉 십자가 대속의 사역 앞에서 결코 도망치지 않았고 그것을 끝까지 감당하여 완성할 수 있는 힘을 구하신 것이다. 나의 죽음과 희생을 통해 구속의 사명을 완수함으로써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 그것이 주님이 말씀하신 진정한 '영광'의 실체였다. 이처럼 예수님의 기도는 "나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옵소서"라고 떼를 쓰는 우리의 이기적인 기도와는 차원이 다른, 오직 십자가 사명 완수를 향한 거룩한 순종의 기도였던 것이다.

 

6. 현대 교인들이 무수히 기도를 부르짖으면서도 그 입술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권능(악한 영의 축사)이 나타나지 않는 치명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날 교회 안에는 철야와 금식을 하며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자들이 많지만,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나 악한 영을 쫓아내는 권능이 도무지 나타나지 않는다. 그 치명적인 이유는 하나님이 엄히 금지하신 '다른 향'을 제단에 사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한일서 2:16)

  출애굽기 30장은 분향단의 향을 반드시 하나님이 정하신 5가지 향재료들로서 곧 소합향, 나감향, 풍자향을 취하여 그것에다가 유향에 섞고 소금을 치라고 하셨다. 이 배합으로만 만든 향만을 분향단에서 사르라고 명령하셨했다.

  여기서 '소합향'처럼 진액을 짜내는 정성이 없고, '나감향'처럼 내 자아를 부수어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부인이 없으며, 무엇보다 '풍자향'처럼 내 육체와 이웃의 삶 속에 들어와 거주하는 악한 귀신과 뱀들을 쫓아내고 결박하는 영적 전투가 빠져 있다면 그것은 향재료를 사용하는 기도가 아니다. 그럼 왜 이러한 기도를 드리지 않는가? 그것은 물두멍에서 자백하는 회개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기도가 '유향'처럼 깨끗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이 땅의 육신적인 필요 곧 넓은 아파트 평수와 자식의 좋은 대학 진학 등 육신의 정욕만을 구하는 더러운 향기를 매일 피워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이러한 이기적인 기도를 흠향하시며 그에게 당신의 임재를 나타내시겠는가?

 

7.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는 어떤 세 가지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우리의 영적 사명에 어떤 우선순위를 가르쳐 주는가?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는 마치 거대한 물결이 우주를 향해 퍼져나가듯 완벽한 세 가지 확장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자신을 위한 기도'(1-5절)가 있다. 이는 아버지께서 맡기신 십자가 대속의 사명을 끝까지 이룰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구하는 기도였다.

  둘째, '열한 명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6-19절)를 드렸다. 주님이 떠나신 후 험한 세상에 남겨질 제자들이 악한 자(사탄 마귀)의 미혹에 빠지지 않고 보전되며, 또한 그들이 진리로 거룩해지기를 생명을 다해 간구하셨다.

  셋째, 장차 제자들을 통하여 믿게 될 모든 미래의 성도들을 위한 기도(20-26절)를 드렸다. 제자들의 전도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여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될 미래의 성도들 모두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안에서 온전히 하나 되어 천국의 영광을 누리기를 기도하신 것이다.

  이 거룩한 기도의 구조는 오늘날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우리가 영적 사명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명확한 우선순위를 가르쳐 준다. 먼저는 내 자신이 주님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기도를 해야 한다. 그다음은 내 곁에 붙여주신 가족과 교우들이 마귀에게 삼켜지지 않도록 중보의 울타리를 쳐야 하며, 마침내는 나의 복음 전파를 통해 아직 예수를 알지 못하는 이웃과 열방의 죽어가는 영혼들이 구원받기를 향해 기도의 지경을 무한히 넓혀가야만 한다.

 

8.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이기는 자'로 서기 위해, 우리는 매일 기도의 자리에서 어떤 두 가지 거룩한 영적 전투를 병행해야 하는가?

  그러므로 천국에서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주님과 함께 영광의 보좌에 앉는 '이기는 자'의 길은 오직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거룩한 영적 전투를 목숨 걸고 완수하는 자에게만 허락된다.

  첫째는, 철저하고 온전한 '회개'를 하는 것이다. 번제단(구원)을 통과했어도 물두멍(회개)에서 자신의 죄와 조상들의 죄를 철저히 씻어내지 않으면 임재 안으로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내 육체와 골수 깊은 곳에, 내가 지은 죄들 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로 인하여 대대로 내려와 내 몸 속에 집을 짓고 거주하고 있는 흉악한 무당의 영, 제사의 영, 가난의 영들을 십자가의 피로 철저히 씻어내고 몰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육체와 혼이 백지장처럼 맑아질 때 드디어 성령의 등잔불이 켜지며 성령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둘째는, 내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고 이웃을 살려내는 '이타적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내 배가 부르기만을 바라고 내가 높아지기를 바라는 바깥뜰의 기복 신앙으로서는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기 어려운 것이다. 철저히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고, 오직 가족과 이웃의 육체 속에 들어가서 괴롭히고 있는 악한 영들을 내 영의 손으로 집어내고 예수의 이름으로 그들을 단호하게 축사하여 그들을 악한 자들로부터 구출해 내야 한다. 나를 희생하여 남을 살려내는 이 거룩한 중보의 기도 없이는, 누구도 천국의 가장 영광스러운 보좌에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9. 나오며

  우리는 요한복음 17장의 대제사장적 기도를 통해, 참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철저하게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시고 우리를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피눈물 나는 기도를 올리셨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자기의 뜻을 하늘에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나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하늘의 뜻이 성취되기를 구하는 온전한 자기 부인의 기도였던 것이다.

  오늘날 강단을 어지럽히는 헛된 기복주의와 이기적인 탐욕의 기도가 왜 그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게 하지 못했는지를 깊이 묵상해야 한다. "내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으니 이대로 나는 천국 간다"는 안일한 신앙에서 이제는 깨어날 때가 되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입술을 열어 내 속의 모든 악한 뱀들을 십자가의 피로 녹여내는 회개를 해야 한다. 나아가서 내 곁에서 영적으로 죽어가는 이웃을 내 가슴판에 새기고, 그들을 묶고 있는 사탄의 결박을 풀어주는 기도의 전사가 되어야 한다. 철저히 나를 부인하고 남을 살려내는 찬란한 중보의 향연을 계속해서 하늘로 올려드리자. 그러면 마침내 우리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 예루살렘 성에서 영원토록 왕 노릇 하는 영광스러운 '이기는 자'로 우뚝 서게 되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2026년 03월 24일(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성막의 구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를 연결하여 신앙의 깊은 단계로 나아가는 원리를 설명합니다. 이 설교는 구약의 분양단과 향로가 지닌 예표론적 의미를 통해, 단순한 속죄를 넘어 하나님의 거주하시는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회개와 순종의 기도를 강조합니다. 특히 요한복음 17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를 사명 완수와 이타적 사랑의 모범으로 제시하며, 신자들이 육신적인 욕망을 버리고 성령의 조명을 받는 성소와 지성소의 삶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철저한 회개와 성령의 인도를 통해 하나님과 친밀해짐으로써, 천국에서 상속자의 권세를 누리는 이기는 자가 될 것을 촉구하는 영적 지침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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