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50)] 중보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기도의 예(02)(요17:1~2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o1VvBcXggnA
1. 들어가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겪는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는,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능력을 알지 못한 채 영적인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이라는 얄팍한 공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성경은 우리가 이 땅에서 악한 영들과 싸워 승리하고, 마침내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여 만국을 다스리는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거듭 촉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약이라는 거대한 영적 설계도와 예수 그리스도라는 완벽한 실체를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시간에 성막의 구조를 통해 칭의(번제단)를 넘어 성화(물두멍의 회개)를 거쳐, 성소의 임재로 나아가는 영적 여정을 살펴보았다. 성소 안에는 금 등잔대와 떡상, 그리고 기도를 상징하는 금 분향단이 놓여 있다. 특히 분향단에서 피워 올리는 향연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드리신 위대한 중보 기도(요한복음 17장)와 완벽하게 맞닿아 있다. 이번 시간에는 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실체를 통합적으로 연결하여, 참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기도가 오늘날 우리의 삶과 사역에 어떤 혁명적인 변화를 요구하는지 그 깊은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2. 구약 성경(율법과 성막)을 단순히 지나간 옛 언약으로 치부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기 위한 '완벽한 설계도(설명서)'로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대 개신교인 중 상당수는 구약 성경을 단순히 이스라엘의 지나간 율법서나 고리타분한 역사책 정도로 취급한다. "나는 신약의 복음 시대에 살고 있으니 십자가만 알면 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마치 최신형 자동차를 사놓고 설명서를 읽지 않아 뒷좌석의 열선 시트(엉뜨) 기능이 있는 줄도 모른 채 7년 동안 덜덜 떨며 차를 타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한복음 5:39)
예수님 당시에 기록된 채 있던 성경은 오직 구약 성경뿐이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구약 성경 전체가 곧 '나에 대한 설명서'라고 명확히 선언하셨다. 구약의 성막과 제사 제도, 율법의 규례들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인류를 위해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완벽한 '말씀의 설계도'라는 것이다. 설명서를 읽지 않으면 물건이 가진 100가지 기능 중 고작 두세 가지만 쓰다가 버리게 되듯, 구약의 예표(모형)를 모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성령의 사역이 주는 그 무한하고도 풍성한 영적 유익을 절반도 채 누릴 수 없게 된다. 구약과 신약은 결코 대립하는 책이 아니라, 모형과 실체로서 완벽하게 하나로 연결된 거룩한 복음 그 자체다.
3. 영안이 열려 천국이나 귀신의 실체를 본다고 할지라도, 말씀(성경)에 대한 깊고 통합적인 이해가 없으면 왜 치명적인 사탄의 미혹에 빠지게 되는가?
오늘날 은사를 사모하며 영안이 열리기를 구하는 자들이 많다. 영의 눈이 열려 귀신을 보고 천국을 경험하는 것은 축사 사역과 영적 전투에 있어 매우 유익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 영적 세계를 본다 할지라도 그것을 분별하고 해석할 '성경적 지식(말씀)'이 결여되어 있다면, 십중팔구 사탄의 간교한 미혹에 넘어가게 된다.
사탄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로 데려가 천하 만국의 영광을 보여줄 만큼(마 4장) 엄청난 권세와 환상 조작 능력을 갖춘 타락한 천사다. 말씀의 기초가 없는 자가 영안이 열리면, 귀신이 교묘하게 꾸며낸 가짜 천국을 보고 와서 "천국에 갔더니 생선 요리가 나오더라", "예수님과 함께 낚시를 했다", "1층 전시관에 애국자 상이 있더라"는 등 성경과 전혀 맞지 않는 황당한 소리를 진리인 양 퍼뜨리게 된다. 인간은 연약하여 초자연적인 현상 앞에서는 쉽게 속아 넘어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마귀에게 속지 않도록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완벽한 기준표인 '성경'을 남겨 주셨다. 성경 전체를 꿰뚫어 보는 지혜 없이 단순히 영적 현상만 좇는 것은 영혼을 파멸로 이끄는 독약을 마시는 것과 같다.
4. 성소의 '금 분향단'이 상징하는 참된 기도의 의미는 무엇이며, 예수님이 요한복음 17장에서 드리신 대제사장적 기도는 이를 어떻게 완벽하게 성취하셨는가?
성막의 성소 안에 놓인 '금 분향단'은 제사장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향을 사르는 곳이다. 요한계시록 5장 8절과 시편 141편 2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이 향연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를 상징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분향단에 사용할 향을 만들 때에는 반드시 나감향, 풍자향, 유향을 섞고 거기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만들라고 엄히 명령하셨다(출 30:34-35). 그런데 이 향 재료의 비율과 영적 의미는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마가다락방에서 그날 무슨 기도를 드렸을까? 그것은 3가지 기도를 드렸다. 하나는 자기자신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를 드린 것이었고, 또 하나는 남겨진 제자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드린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제자들을 통하여 믿게 될 미래의 성도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드린 것이었다. 이제 그 기도의 내용을 하나하나씩 살펴보자.
첫째로, 예수께서는 자기자신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셨다(요 17:1-5). 이때 예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적 영광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고,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간절히 구하셨다. 이는 구약 때에 향만드는 향품으로 쓰였던 '나감향'과 같이 조개껍데기를 빻아서 만드는 향으로서, 철저한 '자기 부인과 깨어짐'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원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마 26:39).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1)
둘째로, 예수께서는 남겨진 제자들을 위한 중보 기도를 드리셨다(요 17:6-19). 예수께서는 자기자신을 위한 기도에 이어 남겨진 열 한 명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셨는데, 그 기도의 내용은 딱 2가지다.
첫째는 제자들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기를 기도했다(요 17:11,12,15).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11-12)
그런데 이 기도는 또다시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내적 분열로부터 보호받아서 하나됨을 지키도록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셨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22)
그리고 또 하나는 외적 요소로부터의 제자들을 보전해 달라는 기도로서, 악한 자로부터 제자들을 보호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셨다(마17:15).
그러므로 이러한 기도는 구약 시대 때에 향만드는 향품으로 쓰였던 '풍자향'의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풍자향은 고무나무 진액에서 채취하는 지독한 향으로 짐승이나 해충의 접근을 막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제자들을 사탄 마귀(악한 자)로부터 지켜달라는 강력한 보호의 기도인 것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악한 자로부터)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15)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요한복음 17:21)
그리고 둘째는 진리의 말씀으로 제자들을 거룩하게 하시기를 기도하셨다(요 17:17). 이는 향만드는 재료의 하나인 '유향'과도 같은 기도로서, 제자들이 순결하고 구별되어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기도한 것이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한복음 17:17)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기도는 '소합향과'과 '소금'을 치는 기도를 드리셨다. 예수께서는 소합향처럼 자신의 뜻과 마음을 다하느ㅜㄴ 기도를 드리셨으며, 소금처럼 끝까지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제자들과 인류를 위하여 기도하신 것이다.
셋째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통하여 장차 믿게 될 '미래의 성도들'(요 17:20-26)을 위해서도 간절히 중보기도하셨다. 그 기도는 2가지로서, 하나는 제자들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셨다(요 17:21-23절). 또 하나는 이들은 장차 예수께서 거하시는 곳에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셨다(요17:23). 이는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군지를 믿어서 그들도 예수께서 거하시는 천국에 같이 거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것이다.
5. 우리의 기도가 세상 종교와 다를 바 없는 육신적 필요(성공, 재물)를 구하는 수준을 넘어, 지성소의 깊은 임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목적으로 승화되어야 하는가?
많은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을 믿은 자가 되었어도 그 기도가 여전히 육신적인 필요만을 채우기 위한 기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 내 자식 좋은 직장 들어가게 하옵소서", "아파트 로열층에 당첨되게 하옵소서"와 같은 육신적인 필요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사실 성도들일 육신적인 필요를 구하는 것이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가족의 무병장수와 현세적 축복만을 갈구하는 기도는 불교나 무당, 세상의 타 종교인들의 기도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러한 기도를 통해서는 결코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그날 대제사장이 되어 어떤 기도를 드렸는지를 더욱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성막의 번제단(구원의 시작)을 통과해, 분향단(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는 반드시 물두멍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자백하는 기도를 끊임없이 기도하여 내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을 추방해야 한다. 둘째는 바깥뜰에 머물러 있는 신앙에서 벗어나야 한다. 바깥뜰은 그냥 은혜를 받으면 되는 장소이다. 남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나 자신의 죄만 용서받으면 되는 장소이다. 셋째는 나 자신도 성소에 들어가는 것을 사모해야 한다. 그래서 성소에 들어가게 되면 그때부터는 달라진다. 자기자신을 위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다. 자기자신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내용을 보면, 자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가 시작되는 성소의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하며, 내가 아니라 나를 통하여 남들이 구원받고 귀신들로부터 해방받고 보호받으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다시 말해 대제사장이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가서 드렸던 중보기도를 본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 안위를 위하는 기도가 아니다. 오늘도 고통받고 있는 내 형제가 악한 영들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해방을 맞이한 뒤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럴려면 우리는 오늘도 자기자신을 빻아 향기를 발하는 '나감향'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리고 남의 영혼이 이기는 자가 되도록 섬기며 헌신하는 풍자향의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도 역시 거룩한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6. 요한복음과 히브리서가 짝을 이루어 증언하는 가장 충격적이고도 위대한 기독론의 비밀, 즉 '아들이 곧 대제사장이시며 아버지가 곧 아들로 오셨다'는 진리는 왜 영생의 핵심인가?
신약 성경을 조감할 때, 성막 제도의 진정한 실체를 밝혀주는 두 가지 해설서가 있다면 그 책은 대체 무엇인가? 그 책은 요한복음과 히브리서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이 대제사장이시자 아들로 오신 분이 '다름 아닌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 자신(한 분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며, '히브리서'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짐승의 피가 아닌 자신의 피로 단번에 제사를 드리신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증언해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신약성경 가운데 예수님이 누군지를 구약성경과 견주에 공부하려면 필수적으로 요한복음과 히브리서를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첫째로, 우리는 가장 먼저 구약의 모형과 그림자로서 주어진 성막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한복음'을 공부해야 한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형과 그림자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출애굽기에서 예수님의 모형은 그분 자신이 성막이요(요 1:14) '유월절 어린양'이요(요 1:29), '광야의 만나'요(요6:35)', '쪼개진 반석'이요(요 7:37-39), '율법말씀' 자체(요5:39)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요한복음은 성막을 해설해주는 완벽한 지침서인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번제단의 속죄제물이요(요 1:29), 물두멍이요(요 13:10), 성소의 등잔대의 빛이자(요 8:12), 분향단의 향이며(요17장), 떡상의 떡(요 6:35)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요한복음'은 아들로 오신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의 자신이라고 계속해서 말한다는 것이다(요 8:24, 10:30, 20:28). 특히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께서 한사코 대제사장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계속해서 "내가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아서 이 땅에 왔으며, 이제는 이 땅을 떠나 아버지를 향하여 간다"는 말씀을 계속하셨기 때문이다. 동시에 예수께서는 아들로 오신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께서 보낸 아들이지만 실제는 하나님께서 아들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제자들로 하여금 믿게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미래의 성도들도 이것을 깨닫게 될 천국에도 들어가고 악한 영으로부터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요한복음 8:24)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한복음 14:9)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요한복음 10:30)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한복음 20:28)
둘째로, 우리가 구약의 모형과 그림자로서 주어진 성막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히브리서'을 공부해야 한다. 왜냐하면 히브리서는 선지자의 예표인 모세보다 뛰어난 그리스도를 다루고 있으며, 대제사장이신 아론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히브리서'는 성경 전체 가운데 가장 독보적으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대거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에 기록된 13장의 말씀 가운데, 히브리서 2장부터 10장까지 8장에 걸쳐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들로 오신 그분이 바로 대제사장이라는 것이다(히 5:5-6).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브리서 5:5-7)
왜 우리는 아들로 오신 그분이 하나님 자신이며 그분이 대제사장이었다는 것이 중요한가? 그것은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곧 영생을 얻는 비결이 되기 때문이다(요17:2, 요 8:24). 만약 하나님이 당신의 피조물이나 하위 대리자인 아들을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라고 파송한 것이라면, 십자가의 사랑은 철저히 반감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곧 아들로 오셨다"는 이러한 진술은, 우주 만물을 지으신 지존무상하신 창조주께서 나 같은 버러지만도 못한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친히 인간의 피와 살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와 십자가에서 당신의 살을 찢고 피를 쏟아 내어주셨음을 더 강력히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제 한 분 하나님의 무한하신 희생과 십자가의 참된 사랑을 가슴 뼈저리게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양심은 통회 자복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 뜨거운 감사를 올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떨어지는 회개의 눈물이 있을 때, 우리들도 물두멍을 지나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인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7. 만왕의 왕이시자 한 분 하나님이시면서도 자신을 철저히 낮추어 중보하셨던 예수님의 기도는, 오늘날 은사를 받고 사역하는 성도들에게 어떤 '이기는 자'의 태도를 요구하는가?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요한복음 17장의 기도를 보면, 우리는 한 분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는지를 직감하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제자들과 인류를 위해 베푸신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계속해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한사코 자신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셔서 왔을 뿐이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순종함으로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간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자신이 본래 하나님이셨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지극히 낮추어 표현하시는 겸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신 것이다. 그분은 하나님 본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종의 형체를 가져 죽기까지 복종하셧던(빌 2장) 자기 부인의 삶이 있었기에,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성소의 삶을 살아내실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겸손의 모습은 사실 오늘날 주의 일을 감당하며 은사를 담당하고 있는 사역자들과 성도들에게 무거운 경고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철저한 회개를 통해 영안이 열리고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내 그는 교만해져서 오히려 예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자신이 마치 하나님처럼 군림하려고 시도하는 끔찍한 타락의 길로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많은 이단 교주들과 타락한 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왜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었는가? 그들 모두가 물두멍의 단계를 철저히 통과하지 않은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흉내내었기 때문이다. 고로 누구든지 진정 성소의 임재를 누리며 '이기는 자'로 살기를 원한다면, 그는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타날수록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려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자백하는 회개와 눈물을 주앞에 드려, 악한 영들이 틈타지 않게 해야 한다.
8. 나오며
우리는 성막의 분향단과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기도를 통해, 우리는 참된 기도의 본질과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살펴보았다. 예수님은 단순한 구원자를 넘어, 죽을 수 없는 하나님이 친히 인간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사 나를 대신해 목숨을 던지신 한 분 하나님이자 위대한 대제사장이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이러한 한 분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깨달으면서 신앙의 길을 걸어간다면, 우리는 결코 세상의 썩어질 축복을 구하는 어리석은 신앙인이 될 수가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바깥 뜰의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의 임재가 시작되는 성소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날마다 내 육신과 자아를 곱게 빻아 십자가에 못 박는 나감향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리고 내 가족과 교회가 사탄의 공격에 무너지지 않도록, 악한 영의 궤계를 깨뜨리고 진리로 하나 되기를 간구하는 풍자향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내게서 능력이 나타나고 은사가 불일 듯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더욱더 옷깃을 여미고 철저한 회개하여 무당의 나의 삶에 틈타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위해 아버지와 아들로서 행하셨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을 품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 형제들을 살리기 위해 나도 주의 일에 동참해야 한다. 그러한 자가 될수록 그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상속자가 될 것이며, 하늘에서 왕노릇하는 반열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2026년 03월 25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구약의 성막 구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자적 사역과 요한복음 17장에 나타난 대제사장적 기도의 영적 의미를 깊이 있게 해설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성소의 분양단과 향기로운 향 재료들을 그리스도의 성품에 비유하며, 신앙의 성숙은 단순한 구원의 확신을 넘어 자기 부인과 겸손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인 지성소로 나아가는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본질적으로 한 분 하나님이심을 깨닫는 것이 영생의 핵심이며, 성도들이 이 진리 안에서 내적 일치와 외적 거룩함을 회복하여 각자에게 부여된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그리스도의 낮아짐을 본받아 철저한 회개와 순종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참된 신앙의 단계에 진입할 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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