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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jY2N5rUb6C4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52)] 어떻게 하면 나도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을까?(출26:30~3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jY2N5rUb6C4

 

 

1. 들어가며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히 "예수 믿고 지옥에 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실 뿐만 아니라, 그분의 영광스러운 보좌 가까이로 이끌어 새 예루살렘 성의 상속자요 만국을 다스리는 '이기는 자'로 세우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오늘날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얕은 시냇물 같은 신앙에 만족하며, 깊고 푸른 바다와 같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한 채 살아간다.

  구약의 성막은 바로 이 깊은 영의 세계로 나아가는 신앙의 단계와 여정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설계도다. 성막은 크게 안뜰(보통은 '바깥뜰'이라고 불리고 있음), 성소, 그리고 지성소라는 세 가지 영역으로 엄격하게 나뉘어 있다. 안뜰에 머무는 자와 지성소까지 들어간 자는 이 땅에서 누리는 영적 권세가 다를 뿐만 아니라, 훗날 천국에서 얻게 될 지위와 상급에서도 하늘과 땅 차이를 보이게 된다.   그런다면 과연 나는 지금 어느 단계에 머물러 있는가? 둘째 휘장이 찢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수많은 성도가 지성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뜰만 밟고 돌아가는 신앙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우리 영혼이 찢어진 휘장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는지 그 숭고한 영적 비밀을 파헤쳐 보자.

 

2. 성막의 삼중 구조(안뜰, 성소, 지성소)는 우리의 신앙 단계를 어떻게 보여주는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은 울타리 안의 '안뜰(보통은 '바깥뜰')', 첫째 휘장을 열고 들어가는 '성소', 그리고 둘째 휘장 너머에 있는 '지성소'의 삼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세 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의 크기(규격)'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안뜰로 들어가는 문은 넓이가 무려 20규빗(약 9m)이나 되어 누구든지 쉽게 들어올 수 있지만, 그 높이는 5규빗으로 낮다. 반면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은 넓이가 10규빗으로 절반이나 좁아지지만, 높이는 10규빗으로 훌쩍 높아진다. 이는 우리의 신앙 여정이 보여주는 영적인 3단계를 정확히 계시한다.

  먼저 첫째 단계로서, '안뜰(번제단과 물두멍)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칭의)을 받고 구원의 문턱을 넘어서는 '시작 단계'다. 문이 넓기에 많은 이들이 이 단계에 쉽게 진입한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둘째 단계로서 '성소의 신앙'은 좁은 문을 통과하여 촛대와 떡상, 분향단을 섬기며 철저히 자신의 자아를 부수고 헌신하는 '성화의 단계'다. 마지막으로 셋째 단계로서 '지성소의 신앙이 있다. 이 단계는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대면하며 그분의 권세와 영광을 온전히 누리는 '완전한 임재의 단계'다. 안뜰에서 지성소로 갈수록 들어갈 수 있는 자의 수는 적어지고 그 차원은 한없이 높아진다. 우리는 결코 얕은 뜰의 신앙에 안주하지 말고, 가장 좁고 가장 높은 지성소의 영광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해야 한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둘째 휘장이 찢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수많은 성도가 지성소에 들어가지 못하는가?

  구약 시대에는 대제사장만이 1년에 단 하루, 그것도 짐승의 피를 가지고 두렵고 떨림으로 지성소의 문 곧 '둘째 휘장'(히 9:3)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이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마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마태복음 27:5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히브리서 10:19-20)

  예수님께서 당신의 육체(휘장)를 친히 찢으심으로,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은혜의 보좌가 활짝 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오늘날 수많은 교인이 지성소는커녕 성소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가?

  그 결정적인 이유는 '물두멍'의 단계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제사장이 번제단에서 피를 흘렸다 할지라도, 물두멍에서 자신의 더러워진 손과 발을 씻지 않고 성소에 들어가면 죽음을 면치 못했다(출 30:20). 오늘날 많은 이들이 "예수 믿어 과거와 미래의 죄를 다 용서받았다"는 구원파적 맹신에 빠져, 매일매일 지은 죄와 내 속에 자리잡고 있 악한 영들을 '자백(회개)'으로 씻어내지(쫓아내지) 않는다. 철저한 회개 없이 거짓된 확신만 안고 있으니, 하나님의 임재가 시작되는 성소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평생을 바깥뜰에서 맴도는 비극을 맞이하고 마는 것이다.

 

4. 성소의 신앙과 지성소의 신앙은 하나님의 '임재 방식'에 있어 어떤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가?

  물두멍의 철저한 회개를 통과하여 성막 안으로 들어갔다면, 이제 우리는 성소와 지성소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두 공간은 사실 3가지 차이를 보인다. 첫째는 임재 방식의 차이가 있고, 둘째는 하나님과의 체험 방식의 차이가 있으며, 셋째는 하나님의 접촉 영역의 차이가 있다. 

  첫째로, 성소와 지성소는 둘 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장소이지만, 그 '임재의 방식'에 있어서 본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성소에서의 임재'간접적인 임재'다. 제사장은 금 등잔대에서 비추는 불빛에 의존하여 떡상을 차리고 향단에 향을 사른다. 이 빛은 예수 그리스도 혹은 성령의 조명하심을 예표하지만, 아직 하나님 본체의 빛은 아니다. 마치 태양 빛을 반사하는 달빛을 보며 걷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반면, 둘째 휘장을 지나 들어가는 지성소에는 어떠한 등잔이나 창문도 없다. 오직 속죄소(시은좌) 위 두 그룹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Shekinah)만이 그곳을 가득 채운다. 요한일서 1장 5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진리가 눈앞에 실재가 되는 것이다. 즉, 지성소의 신앙은 간접적인 체험을 넘어,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대면하여 직접적으로 보고 음성을 듣는 '완전하고 직접적인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5. 성소와 지성소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방식(섬김 vs 누림)'에서 어떻게 다른가?

  성소와 지성소가 임재의 방식에서 차이가 있듯이, 둘째로, 성소와 지성소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방식' 역시 확연히 다르다.

  '성소'는 철저히 '섬김(노동)'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는 장소다. 제사장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감람유를 채워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해야 했다. 아침에는 불을 간검하였고 저녁에는 불을 켜야 했다. 그리고 매일 정해진 향품을 빻아 아침과 저녁시간에 등불을 끄고 켤 때에 향을 살라야 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반드시 12덩이의 진설병을 정성껏 구워 교체해야 했다. 물론 성소에 들어오면 금빛으로 가득차 있고 천장과 둘째휘장에는 그룹천사들이 있어서, 그곳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비소로 느끼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더욱 더 체험하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수고와 땀이 필요했다. 그리고 철저한 자기 헌신이 동반되어야 했다. 그럴수록 성소의 은혜는 더 경험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성소'는 다르다. 이곳은 섬김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누림(안식)'의 영역이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면 그곳에서는 불을 켜거나 떡을 굽는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지성소의 법궤 안에는 십계명 돌판, 아론의 싹 난 지팡이, 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이미 완성된 형태로 보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누리면 된다. 즉 지성소에 들어간 자는 애쓰지 않아도 하나님의 율법(십계명)이 자기 안에서 저절로 지켜지는 기적을 맛보게 되고, 하나님의 영적 권세(싹 난 지팡이)가 자신의 삶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며, 감추인 만나(신령한 양식)를 특별하게 먹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섬김의 수고를 지나 마침내 도달하게 되는 지성소의 영광스러운 '안식과 누림'의 축복인 것이다.

 

6. 인간의 세 가지 구성 요소(육, 혼, 영)에 비추어 볼 때, 지성소로 들어간다는 것은 영적으로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가?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는 셋째로, 하나님의 접촉 영역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성소가 사람의 혼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접촉한다면, 지성소는 영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접촉하기 때문이다.

  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성막의 삼중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성막은 단순히 건물의 형태를 넘어, 우리 인간을 구성하는 육(Body, Flesh), 혼(Soul), 영(Spirit)의 삼분설(살전 5:23)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위대한 영적 도해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전서 3:16)

  우리 몸 전체가 성전이라면, 육체적 본성과 맞닿은 '안뜰'은 육(肉)의 영역에 속한 것이요, 우리의 이성과 감정과 의지가 활동하는 '성소'는 혼(魂)의 영역에 속하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성소'는 바로 우리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영(靈)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나는 주께서 네 심령(영)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디모데후서 4:22)

  주님은 우리의 육체나 감정(혼) 속에 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거듭난 '영(Spirit)' 속에 좌정하신다. 그러므로 지성소로 들어간다는 것은, 육신의 정욕(안뜰)을 이기고, 자아와 고집(성소)을 파쇄한 뒤에, 내 모든 삶의 중심을 완전히 '영의 영역'으로 돌이키는 것(Turning to the Spirit)을 의미한다. 내가 내 혼의 지배를 받을 때는 얄팍한 지식과 감정에 휘둘릴 수 있지만, 영으로 돌이켜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지배를 온전히 받는다면, 비로소 우리는 지성소의 직접적인 임재와 무한한 권능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7. 성소에 놓인 세 가지 성물(등잔대, 진설병, 분향단)은 우리의 혼(자아)을 어떻게 파쇄하며 지성소로 이끄는가?

  우리의 이성과 자아가 살아 숨 쉬는 혼의 영역(성소)에서, 내 고집을 파쇄하고 지성소(영)로 넘어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성소에 놓인 세 가지 성물을 통한 철저한 자기 부인의 훈련을 통과해야 한다.

  첫째, 금 등잔대다. 우리는 성령의 불을 밝혀 내 혼 속에 숨어 있는 어둠과 거짓, 세속적인 가치관을 매일매일 낱낱이 비추어 몰아내야 한다.

  둘째, 금 분향단이다. 기도의 향을 피우기 위해서는 나감향(조개나 소라 껍데기)처럼 나 자신을 산산조각 내야 한다. 내 가족의 육신적 잘됨만을 구하는 기복적인 기도를 버리고, 다른 영혼들이 악한 자로부터 보호받고 구원받도록 중보하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로 전환되어야 한다.

 셋째, 떡상(진설병)이다. 곡식을 맷돌에 곱게 빻아야 떡이 되듯, 내 혈기와 자아를 말씀의 맷돌에 철저히 부수어야 한다. 그리고 나 혼자 배부르는 것이 아니라, 12지파(이웃)를 먹이기 위해 이타적으로 생명의 말씀을 나누는 수고를 감당해야 한다. 

  이처럼 성령을 의지하여 내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등잔대), 이타적인 기도로 헌신하고(분향단), 이웃을 위해 말씀을 나눌 때(떡상), 우리의 혼은 비로소 완전히 파쇄되고 지성소로 향하는 휘장이 열리게 된다.

 

8. 뜰만 밟는 신앙을 버리고 지성소의 영광으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 우리는 무엇을 결단해야 하는가?

  오늘날 수많은 교인이 성전 마당만 밟고 돌아가며 "나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으니 천국 갈 것이다"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물두멍에서 죄를 씻지도 않고, 성소에서 자아를 파쇄하지도 않은 채 세상 사람과 똑같이 돈과 쾌락만을 좇는 자의 이름이 과연 생명책에 계속해서 선명하게 남아있게 되는 것일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요, 그들의 결국은 심판의 보좌 앞일 뿐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성소로 나아오라 하신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오라고 하신다(히브리서 4:16). 그런데 지성소에 마련된 보좌는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물두멍에서 철저히 회개하고, 성소에서 철저히 자신을 비운 자들에게만 허락되는 '은혜의 보좌'이기 때문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당장 육신의 안일함에서 깨어나야 한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회개 기도문을 펴 들고 내 몸을 장악하려 드는 조상들의 우상 숭배의 죄와 나의 자범죄를 물두멍의 맑은 물로 처절하게 씻어내어야 한다. 내 고집과 교만을 성소의 맷돌에 갈아 부수고, 오직 내 영(Spirit) 안에 계신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때에 둘째 휘장이 열려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9. 나오며

  예수께서는 뜰의 문이 되셨고(요 10:7,9), 이제는 물두멍을 통과한 자들에게 성소의 문이 되어주고 계신다. 그러나 지성소의 문은 아무나 통과할 수는 없다. 자아 파쇄와 이타적인 철저힌 헌신을 통과한 자만이 살아생전일지라도 영안이 열려 주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지성소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매우 귀한 일이다. 이것을 영적으로 볼 때에 우리는 궁극적으로 그것이 우리가 죽어 요단강(둘째 휘장)을 건너,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지성소에 들어오는 것을 그때만 허락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막은 하나님을 이 땅에서 만나도록 하기 위한 처소로 지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출 25:22). 그것이 바로 성막이요 그것이 바로 성막이 발전한 교회로서 우리의 몸이다. 그러므로 거듭난 성도라면 아직 자신의 육신이 죽지 않은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지성소를 경험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 몸에 영의 처소를 마련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이라도 성령과 내 영이 하나된 연합된 영으로 돌이킬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지성소를 경험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거듭난 영을 사용하는 것이다. 관건은 얼마나 성령처럼 내 영이 깨끗한 상태가 되어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내 영이 깨끗한 영이 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즉시 지성소의 영광스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말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십계명의 두 돌판)이 지켜지게 되고, 권세(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나타나게 되며, 은밀한 영의 양식(만나의 항아리)으로 배불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은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기를 힘쓰기를 바란다.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장소, 그러나 지성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부디 바깥뜰에 머무는 종교 생활을 뛰어넘기를 바란다. 두렵고 떨림으로 회개와 성소의 성화의 문을 통과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영의 영역으로 완전히 돌이키기를 바란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의 영으로 바로 과거와 미래를 통찰할 수 있게 되며, 예수 이름의 권세로 더러운 귀신들을 말로 떨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밀한 특별 말씀으로 사람들을 천국으로 이끌 수가 있다. 

 

 

2026년 03월 27일(금)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성막의 구조를 인간의 영적 성장 단계로 비유하며, 신앙인이 바깥뜰과 성소를 넘어 하나님의 임재가 완성되는 지성소의 신앙으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단순히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는 바깥뜰의 단계에 머물지 말고, 성령의 조명 아래 자아를 파쇄하고 섬기는 성소의 단계를 거쳐,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고 누리는 영의 영역인 지성소로 진입할 것을 촉구합니다. 특히 물두멍에서의 철저한 회개가 성소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 조건임을 강조하며, 지성소에 들어간다는 것은 혼의 영역에서 영의 영역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이 글은 천국에서의 영광스러운 지위와 이 땅에서의 권세 있는 삶을 위해 신자들이 단계적인 영적 도약을 실천해야 한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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