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6. 06. 05. (금)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Extra Form
동영상URL https://youtu.be/NMuZ0Ly2igs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13)]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9)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다(01)(시38:1~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NMuZ0Ly2igs

 

1. 들어가며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기억된다. 그는 골리앗 앞에서 물맷돌 하나로 승리한 믿음의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며 기뻐 춤춘 예배자였으며, 수많은 시편을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나눈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내 마음에 합한 자"(행 13:22)라고 부르셨을 만큼, 그는 분명 탁월한 신앙인이었다.

행 13:22 하나님이 그를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그러나 다윗의 생애를 정직하게 살펴보면, 그도 결코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찬란한 믿음의 면모만큼이나 치명적인 죄악의 순간들이 있었다. 성경은 이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은 다윗의 범죄를 시편이라는 그 자신의 기도와 고백을 통해 세상에 영원히 남기도록 하셨다. 위대한 왕도 죄인이었음을 감추지 않는 것, 이것이 성경의 정직함이며 하나님의 방식이다.

  한 사람에 대한 공정한 평가는 그의 좋은 면만을 이야기할 때 완성되지 않는다. 다윗의 믿음과 헌신을 강조하는 것은 필요하고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그 죄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그 죄가 그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도 정직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만 그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올바르게 들을 수 있다. 아무리 위대한 신앙인이라도 그 삶 전체를 들여다봐야 올바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이 땅에서 온전한 자는 없다. 다윗도 그러했고, 모세도 그러했으며, 요셉과 같이 흠 없어 보이는 사람조차 그 삶에 빈틈이 있었다. 성경이 이처럼 인물들의 실패와 죄악을 감추지 않고 기록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인물이 아닌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다윗의 범죄를 정면으로 살펴보는 것은 다윗을 깎아내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기 위함이다.

  기독론 강의 113번째 시간이자,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을 살펴보는 19번째 시간에는 그 특징 중 하나인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다"의 첫 번째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다윗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왜 그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 죄 앞에서 그가 어떤 상태로 무너졌는지를 시편 38편을 중심으로, 그리고 참회 시편 전반의 맥락 안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2. 다윗의 범죄를 성경이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사람을 평가할 때 좋은 면만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이미 공정한 평가가 아니다. 다윗을 설교할 때 그의 믿음과 헌신만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기록하지 않는다. 성경은 다윗의 범죄를 정면으로 다루며, 그가 얼마나 심각한 죄를 저질렀는지를 감추지 않는다.

  사무엘하는 다윗의 범죄 사실 자체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사무엘하의 기록은 그 상황에서 다윗이 내면적으로 어떤 상태였는지까지 세밀하게 보여 주지는 않는다. 선지자 나단이 와서 책망했을 때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라고 단 한 마디로 고백한다. 사무엘하의 본문만 읽으면 그 고백이 얼마나 깊은 고통과 회한에서 나온 것인지를 짐작하기 어렵다.

삼하 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반면 역대상하는 더욱 미화적 표현이 많아서 다윗의 죄악을 상대적으로 약하게 다루는 경향이 있다. 역대상하는 이스라엘 왕정을 신학적으로 정리하고, 성전 예배와 관련된 제도들에 초점을 맞추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의 범죄는 비교적 짧게 다뤄지거나 생략되는 부분도 있다. 그렇다면 다윗의 내면, 곧 그가 범죄하고 은폐하며 고통받던 그 시간의 실상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바로 시편이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자신의 범죄 상황을 시편에 기록하도록 하셨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드린 기도와 고백이 시편에 그대로 남아 있고, 이를 통해 우리는 그가 죄 가운데서 어떤 상태에 빠졌었는지를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이것을 '참회 시편'이라고 한다. 이 참회 시편들은 다윗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 드린 기도로서, 그 고통과 통회와 간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나님이 다윗의 범죄를 시편에 남기신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첫째로, 지도자의 죄는 반드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다윗이 왕이라는 이유로, 하나님이 세우신 자라는 이유로 죄가 감춰진다면, 그것은 오히려 더 큰 해악을 낳는다. 성경은 철저하게 공정하다. 하나님 앞에서는 왕도, 제사장도, 선지자도 예외가 없다. 죄는 반드시 드러나야 하고, 드러난 죄는 반드시 회개되어야 한다.

  둘째로, 지도자의 범죄는 더 크게 징계받는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모세 때부터 이것을 분명히 하셨다. 더 많은 권위를 받은 자에게는 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다윗이 그 범죄에 대해 네 명의 아들을 잃는 엄청난 대가를 치른 것은, 지도자의 죄가 얼마나 크게 물어지는지를 명확하게 보여 준다. 이것을 감추면 안 된다.

  셋째로, 이 시편들은 모든 시대의 성도들에게 교훈이 된다. 신앙의 경력이 아무리 화려해도 죄 앞에서는 안전 지대가 없다는 것, 그리고 범죄 후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지를 다윗의 참회 시편을 통해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이 다윗의 수치스러운 죄를 감추어 주지 않고 성경에 영원히 기록하게 하신 것은, 그것이 후세대를 위한 살아 있는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 위대한 왕의 실패가 기록으로 남아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보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잘못을 투명하게 드러내지 않으면, 그 비리는 결국 약점이 되어 자신을 옭아매는 올무가 된다. 다윗이 요압에게 비리를 알게 한 것이 이후 요압을 제압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듯이, 숨겨진 죄는 반드시 어딘가에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투명하게 해야 하고, 잘못이 있으면 즉시 드러내고 회개해야 한다.

 

3. 다윗의 죄는 사울의 죄와 어떻게 다르며, 무엇이 더 심각한가?

  다윗의 죄와 사울의 죄를 비교할 때, 표면적으로 보면 다윗이 저지른 죄가 결코 사울보다 가볍지 않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사울은 폐위시키시고, 다윗은 그 왕위를 계속 허락하셨는가? 여기에는 두 사람의 죄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첫째, 사울의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였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적으로 어겼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고도 왕 아각을 살려두고 좋은 짐승들을 남겼다(삼상 15:9). 그 이유를 묻자 사울은 "백성이 두려워서"라고 대답한다. 하나님보다 백성의 눈치를 더 보았던 것이다.

삼상 15: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하지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반역, 곧 우상숭배에 가까운 죄였다. 사울은 엔돌의 신접한 여인까지 찾아가서 자신의 미래를 물었다(삼상 28:7).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자 이방의 점쟁이에게로 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위에 다른 것을 두는 행위로서, 1계명을 정면으로 어기는 죄였다. 그는 일평생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백성의 눈치를 보며 자기 권력을 유지하는 것에 더 집중했다. 이것이 사울의 근본적인 문제였다.

삼상 28:7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하니라

  반면에 둘째, 다윗의 죄는 하나님을 정면으로 거역한 죄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범죄였다. 밧세바와의 간음, 우리아를 전장에서 죽게 만든 살인, 권력을 남용한 도둑질과 탐욕이었다. 이것은 인간을 향한 자범죄였지, 하나님 위에 다른 것을 두는 죄는 아니었다.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돌아왔다. 사울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것을 찾아갔다면, 다윗은 하나님을 버리지는 않되 인간에 대해 엄청난 죄를 저질렀다.

  우상숭배의 죄와 자범죄 사이에는 엄연한 구분이 있다.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도 자신보다 다른 것을 위에 두는 것을 가장 싫어하신다. 십계명의 제1계명이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을 향한 자범죄는 물론 심각하고 반드시 징계받지만, 하나님 자신을 직접 거부하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행위는 하나님이 더 근본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죄다.

출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그러므로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윗이 훨씬 나쁜 짓을 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남의 아내를 빼앗았고, 충신을 죽였고, 권력으로 모든 것을 은폐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의 본질에서 보면, 사울은 하나님을 직접 거역했고 다윗은 그러지 않았다. 이것이 핵심적인 차이이다. 다윗의 죄는 더 나쁘게 보일 수 있지만, 사울의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 자체를 단절한 죄였다.

  물론 이것이 다윗의 죄를 가볍게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엄하게 물으셨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삼하 12:10)고 하셨다. 그 결과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다윗의 후처들을 범하는 일이 생겼고, 암논이 죽고, 압살롬이 죽고, 아도니야가 죽는 등 네 명의 아들들이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삼하 12: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나단 선지자가 부자가 가난한 자의 어린 암양 새끼를 빼앗아 음식을 만들었다는 비유를 들었을 때, 다윗은 분노하며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다.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어린 양을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삼하 12:5-6)고 스스로 판결했다. 자기 입술로 네 배를 갚겠다고 했으니, 그대로 네 아들이 죽는 대가를 치른 것이다. 지도자의 말은 이처럼 무섭다. 설교자가 말한 대로 정확히 그 대가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삼하 12:5-6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어린 양을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4. 다윗이 저지른 네 가지 죄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다윗의 범죄는 흔히 '밧세바 사건'이라는 하나의 사건으로 뭉뚱그려 불리지만, 실상 그 안에는 여러 층위의 죄가 겹쳐 있다.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간음죄다. 이것은 십계명의 제7계명, "간음하지 말라"(출 20:14)를 정면으로 어긴 것이다.

출 20:14 간음하지 말라

  다윗은 왕궁 옥상에서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고 사람을 보내어 그녀를 데려온다(삼하 11:2-4). 밧세바는 다윗의 충신 우리아의 아내였다. 뿐만 아니라 밧세바는 다윗의 모사(謀士)였던 아히도벨의 손녀였다. 즉 그녀는 자신의 측근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사람의 가족이었다. 나이 차이도 상당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 욕망을 억제하지 못했다.

삼하 11:2-4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다윗이 전령들을 보내어 그 여인을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인이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다윗이 그와 동침하매 그 여인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다윗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신하가 "그 여인이 우리아의 아내가 아니니이까"라고 분명히 경고성 발언을 했다. 그것을 들으면서도 다윗은 멈추지 않았다. 이것이 죄의 무서움이다. 한번 욕망이 점화되면 이성적인 경고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둘째는 살인죄다. 이것은 제6계명, "살인하지 말라"(출 20:13)를 어긴 것이다.

출 20:13 살인하지 말라

  밧세바가 임신하자 다윗은 이를 은폐하려 했다. 전장에 있던 우리아를 불러내 집에 가도록 유도했으나, 충성스러운 우리아는 동료들이 전장에 있는데 자신만 집에서 쉴 수 없다며 왕궁 문 앞에서 잠을 잔다(삼하 11:9). 다윗은 그를 취하게 만들어 다시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모든 은폐 시도가 실패하자 다윗은 요압 장군에게 우리아를 전투 최전선에 배치하고 물러나도록 명령하는 편지를 보낸다(삼하 11:15). 이것은 사실상 계획된 살인이었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그 편지를 우리아 자신이 직접 들고 전장으로 갔다는 점이다. 자신의 사형선고문을 손수 들고 간 것이다.

삼하 11:15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장 세우고 너희는 그를 떠나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우리아는 원래 이스라엘 민족 출신이 아니었다. 그는 헷 사람, 즉 가나안 족속이었다. 자신의 신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단한 사람이었고, 다윗의 용사 37인 가운데 한 명으로 기록될 만큼 충성스러운 인물이었다(삼하 23:39). 그 충성스러운 사람을 다윗은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전장에서 죽게 만들었다. 이것이 권력 남용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셋째는 도둑질의 죄다. 이것은 제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출 20:15)를 어긴 것이다.

출 20:15 도둑질하지 말라

  다윗은 권력을 사용하여 남의 아내를 빼앗았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과오가 아니라, 권력을 도구로 삼은 탈취였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부자가 가난한 자의 어린 암양 새끼를 빼앗은 비유를 들었을 때(삼하 12:1-4), 그것이 바로 다윗이 저지른 도둑질의 본질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부자는 자기 것이 넘치도록 있음에도 가난한 자의 것을 빼앗았다. 다윗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아내가 있음에도 남의 아내를 빼앗은 것이다.

삼하 12:4 그 부자에게 한 행인이 왔으되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잡기가 아까워서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넷째는 탐욕의 죄다. 이것은 제10계명,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출 20:17)를 어긴 것이다.

출 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다윗은 이미 여러 아내를 두고 있었다. 신명기 17장은 왕이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명백히 경고하고 있었음에도(신 17:17), 다윗은 최소 여덟 명 이상의 아내를 두었다. 그런데도 또 다른 여인을 탐한 것은, 그 욕망의 뿌리가 탐욕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신 17: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이처럼 다윗이 밧세바 사건에서 저지른 죄는 단순히 간음 하나가 아니었다. 간음죄(7계명), 살인죄(6계명), 도둑질(8계명), 탐욕(10계명), 이 네 가지 죄가 하나의 사건 안에 중첩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죄의 공통된 뿌리는 '권력 남용'이었다. 권력이 없었다면 이 죄들은 이처럼 대담하게 저질러질 수 없었을 것이다. 권력은 섬기라고 주신 것이지, 착취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권력을 가진 지도자는 더욱 자신을 낮추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섬기는 데 그 권위를 사용해야 한다. 다윗의 죄는 그 반대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5. 참회 시편 일곱 편은 어떻게 구성되며, 왜 반드시 살펴봐야 하는가?

  교회 역사에서 전통적으로 '참회 시편'이라 불리는 시편일곱 편이다. 시편 6편, 32편, 38편, 51편, 102편, 130편, 143편이 그것이다. 이 일곱 편은 죄로 인한 고통과 하나님 앞의 통회, 그리고 용서를 간구하는 기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다섯 편, 곧 6편, 32편, 38편, 51편, 143편은 표제어에 "다윗의 시"라고 명시되어 있다. 102편과 130편은 표제어에 다윗의 이름이 나오지 않아 작자 미상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전체 일곱 편이 모두 참회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죄인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가장 직접적이고 절실하게 보여 준다.

  특히 이 일곱 편 가운데 51편은 표제어에 구체적인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단연 핵심이다. 시편 51편의 표제는 다음과 같다.

시 51편 표제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이 시편은 나단이 다윗을 책망한 그 사건 이후에 기록된 것이다. 사무엘하의 기록에는 다윗이 나단에게 책망을 받은 후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는 짧은 고백만 나온다. 그 말 한마디 뒤에 어떤 깊은 통회와 눈물이 있었는지를 사무엘하 본문만으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시편 51편과 시편 32편, 시편 6편을 함께 읽으면 그 내막이 드러난다. 세 편의 시편이 서로를 보완하면서 다윗이 그 사건 전후에 어떤 내면의 여정을 걸었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 준다.

  참회 시편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다른 사람이 쓴 참회 시편은 존재하기 어렵다. 왕이 아니고서는 자신의 범죄를 기록하여 만인이 읽는 시편에 남길 권위도,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범죄한다 해도, 그 죄의 기록을 시편에 남기는 일은 없었다. 그러므로 다윗만이 자신의 범죄와 참회를 시편으로 남길 수 있었고, 하나님은 그것을 영감된 말씀으로 보존하셨다.

  이 참회 시편들은 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죄를 은폐할 때 사람의 내면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진정한 회개란 무엇인지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 주는 자료다. 신앙의 성장을 원하는 성도라면 다윗의 참회 시편을 반드시 깊이 살펴봐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도 언제든지 다윗과 같은 자리에 서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윗의 참회가 얼마나 절실했는지, 그 참회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알면, 우리도 동일한 길을 따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각 참회 시편이 담고 있는 메시지도 조금씩 다르다. 시편 6편은 죄로 인해 육체까지 병들고 쇠약해진 상태를 묘사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한다. 시편 32편은 죄를 숨겼을 때의 고통과 자백했을 때의 해방을 대조하면서, 숨기지 않고 자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시편 38편은 죄로 인해 온몸이 고통받는 상태와 친구들과 가족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처절한 상황을 묘사한다. 그리고 시편 51편은 참회의 정수(精髓)로서, 내면 깊은 곳에서 올려드리는 가장 철저한 통회와 간구를 담고 있다. 이 시편들을 함께 읽을 때 비로소 다윗의 회개가 얼마나 깊고 철저했는지를 알 수 있다.

 

6. 다윗이 범죄할 수밖에 없었던 네 가지 근본 이유는 무엇인가?

  죄는 갑작스럽게 터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가 왜 그 죄를 저질렀는지를 시편의 참회 고백을 통해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죄성(罪性), 즉 내면에 이미 악한 본성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시편 51편 5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시 51: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이것은 단순히 인간의 원죄를 고백하는 것을 넘어서, 다윗 자신의 출생 환경과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취약성을 가리키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의 어머니가 음란의 속성을 지닌 여인이었을 가능성, 그래서 그 악한 영의 영향이 다윗 안에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다윗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아내들을 두었고, 그의 아들 솔로몬은 천 명의 후궁을 두는 데까지 이른다. 세대를 거치며 그 욕망이 더욱 강해진 것이다. 아브라함이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는데, 그 아들 이삭도 동일하게 행하고, 야곱도 그랬다. 악한 영이 대물림되는 양상이 이처럼 성경 곳곳에서 나타난다.

  인간은 각자 취약한 영역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음란에 취약하고, 어떤 사람은 거짓말에 취약하며, 어떤 사람은 권력에 취약하다. 이러한 취약성의 뿌리에는 악한 영의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어떤 영역에서 특히 취약한지를 알고, 그 부분을 더욱 철저히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내어놓아야 한다. 취약성을 아는 것이 곧 자기 방어의 첫걸음이다.

  둘째는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특히 눈의 정욕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다윗은 저녁에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여인을 보았다(삼하 11:2). 눈앞에 유혹이 펼쳐졌을 때, 그는 그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 앞에서 오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그 자리를 뿌리치고 도망쳤던 것(창 39:12)과 정반대의 반응이었다.

창 39: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하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사람은 죄를 짓게 될 장소와 상황을 미리 알고 피해야 한다. 특히 음란의 죄는 그것의 유혹 앞에서 버텨 이기려 하는 것보다, 유혹이 시작되는 그 자리에서 떠나는 것이 더 지혜로운 방법이다.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결국 유혹에 넘어지고 말았다. 오늘날에도 남녀가 단둘이 있는 상황, 욕망을 자극하는 장소와 환경을 조심해야 하는 것은 그래서다. 이것은 상대방이나 상황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는 지혜의 문제이다.

  셋째는 정신적 해이(解弛), 곧 경각심이 풀어진 것이다. 당시는 전쟁 중이었다. 요압 장군과 군대가 암몬과 싸우는 동안(삼하 11:1),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렀다. 자신의 부하들이 죽기 살기로 싸우는 상황에서, 왕은 낮잠을 자다가 저녁에 일어나 여유롭게 산책을 하고 있었다. 긴장이 완전히 풀린 상태였다.

삼하 11:1 그 해가 돌아와서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의 신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싸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있었더라

  하나님이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목적, 즉 백성을 섬기고 보호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이 흐려졌을 때, 죄가 파고들었다. 지도자가 자신의 사명을 망각하고 긴장을 잃을 때, 그 자리에 죄가 들어온다. 더 나아가 권력이 있으면 주변에 아부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면서 경각심이 더욱 흐려진다. '내가 하는 것은 다 옳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 그것이 바로 무너지기 직전의 신호다.

  넷째는 사탄의 공격에 넘어진 것이다. 성경은 다윗의 인구조사 사건에 대해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대상 21:1)고 기록한다. 이는 다윗의 삶 전반에 걸쳐 사탄이 그를 넘어뜨리려 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대상 21:1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사탄은 항상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다닌다(벧전 5:8). 특히 하나님의 일을 맡은 지도자일수록 사탄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된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그러므로 지도자일수록, 영향력이 클수록 더욱 기도하고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사탄의 속성을 따라가는 것이 곧 권력 남용이다. 높아지고 싶고, 지배하고 싶고, 통제하고 싶은 욕망은 사탄이 루시퍼 시절 가졌던 것과 동일한 욕망이다. 이사야 14장에서 루시퍼가 "내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사 14:14)고 했듯이, 그 높아지려는 욕망을 쫓아가는 것이 결국 사탄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사 14: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다윗이 권력을 남용하여 사람을 착취하고 죽인 것은, 결국 사탄의 속성에 자신을 내어 준 것이었다. 이 네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때, 다윗이라는 위대한 왕도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7. 인간의 세 가지 근본 약점은 무엇이며, 다윗은 어디서 무너졌는가?

  사도 요한은 인간이 세상을 사랑할 때 작동하는 세 가지 근본 욕망을 명확하게 정리한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첫째는 육신의 정욕이다. 이것은 쾌락을 즐기고자 하는 육체의 욕망이다. 먹고 마시고 성적 쾌락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윗의 간음죄는 바로 이 육신의 정욕에서 비롯되었다. 옥상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을 때, 그 욕망이 이성과 양심을 이긴 것이다. 육신의 정욕은 채울수록 더 강해진다. 다윗이 여덟 명 이상의 아내를 두었음에도 또 다른 여인을 탐한 것은, 육신의 정욕이 결코 만족을 모른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것은 비단 다윗만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지도자들이 권력을 가진 이후 육신의 정욕 앞에서 무너졌다. 권력이 있으면 욕망을 채울 수단도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은 욕망을 채우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것을 망각한 순간, 지도자는 타락의 길로 들어선다.

  둘째는 안목의 정욕이다. 이것은 소유욕, 곧 보이는 것을 갖고자 하는 욕망이다. 다윗은 옥상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갖고 싶어 했다. 눈으로 보는 순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점화된 것이다. 십계명의 열 번째 계명인 탐욕의 죄가 여기서 시작되었다.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보기에 좋고 먹음직하다"(창 3:6)고 느끼는 순간 손을 뻗었던 것처럼, 안목의 정욕은 눈에 보이는 것을 갖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안목의 정욕은 현대 사회에서 더욱 강력하게 작동한다. 끊임없이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눈앞에 보여 주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매 순간 안목의 정욕에 노출되어 있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타인의 것을 탐내는 마음, 그것이 안목의 정욕이 낳는 죄의 출발이다. 만족을 모르는 소유욕은 결국 타인의 것을 빼앗는 죄로 이어진다.

  셋째는 이생의 자랑이다. 이것은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고 싶은 욕망이다.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고, 권위를 확인받으려 하며, 자기 이름을 기억시키려는 욕망이다. 다윗의 인구조사는 이와 관련이 있다.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가 얼마나 큰지를 확인함으로써,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이 이생의 자랑이다. 나의 자리, 나의 지위, 나의 업적을 통해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 세 가지 욕망은 서로 독립적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종종 합쳐져서 더 강력한 죄로 이어진다. 다윗의 경우, 육신의 정욕이 안목의 정욕을 자극했고, 그것이 권력을 통한 탐욕으로 이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이생의 자랑 곧 아무도 왕인 자신을 막을 수 없다는 자만심이 합류했다. 이 세 가지가 하나로 합쳐졌을 때, 다윗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어떤 욕망에 가장 취약한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욕망이 자극받는 상황과 장소를 미리 알고 피해야 한다. 다윗이 저녁 산책을 하며 옥상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그 욕망은 점화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죄는 대부분 그렇게 시작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작은 자극이 거대한 죄의 출발점이 된다. 마가복음 10장 42절에서 44절까지 예수님은 이방인의 지도자들이 권력을 남용하는 것과 달리, 제자들 가운데서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막 10:43-44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다. 크고자 할수록 섬겨야 하고, 높아지고자 할수록 낮아져야 한다. 세상의 원리와 정반대다. 다윗이 이 원리를 잊었을 때 그는 무너졌다.

 

8. 죄를 은폐한 열 달 동안 다윗이 겪은 내면의 고통은 어떠했는가?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한 후 약 열 달 동안 그 죄를 은폐했다. 밧세바의 임신이 알려졌을 때부터 아이가 태어나고 나단 선지자가 찾아오기까지, 다윗은 겉으로는 왕의 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기에 속으로는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다윗의 그때의 그 고통을 시편 32편에 생생하게 남겨놓았다. 

시 32:3-4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함으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뼈가 쇠하였다"는 표현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극심한 내적 고통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날 만큼, 다윗은 죄로 인해 피폐해졌다.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극도로 수척해지고 생기를 잃은 상태를 가리킨다. 열 달 동안 이런 상태가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종일 신음하는 상태였다.

  시편 6편에도 같은 고통의 흔적이 나타난다.

시 6: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이는 밤마다 침상을 적실 만큼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윗의 내면 상태였다. 죄를 은폐하고 있었지만, 그 죄의 무게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하나님의 손이 그를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낮이고 밤이고 죄의식이 그를 짓눌렀다. 눈물이 침상을 둥둥 뜨게 할 만큼, 즉 요를 완전히 적실 만큼 운 것이다.

  죄를 짓고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내면에 반드시 이런 고통이 있다고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양심은 죄를 기억하고, 하나님은 그 죄인을 그냥 두지 않으신다. 성령이 내주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죄를 지으면 성령이 근심하신다(엡 4:30). 그 근심이 사람의 내면에 고통으로 나타난다.

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침을 받았느니라

  이 고통에는 또 다른 차원이 있었다. 죄를 은폐하는 과정에서 요압 장군에게 비밀을 공유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후 요압을 통제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다. 요압은 나중에 다윗의 아들 아도니야의 반란에 가담하는데(왕상 1:7), 다윗은 이 요압을 끝내 제대로 제압하지 못했다. 자신의 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을 제압하기가 어려운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왕상 1:7 요압은 스루야의 아들로서 아도니야와 모의하여 따랐고 제사장 아비아달도 아도니야를 돕더라

  이처럼 죄의 은폐는 단기적으로는 문제를 덮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문제를 낳는다. 은폐된 죄는 반드시 어딘가에서 새어 나와 더 넓은 범위의 손상을 입힌다. 다윗이 열 달 동안 겪은 내면의 고통은, 죄를 은폐하는 것이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온몸으로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단 선지자가 왔을 때, 다윗은 즉시 자복했다.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열 달간 쌓인 고통이 눈물과 통회로 터져 나온 것이다.

시 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는 고백 속에 다윗의 회개가 얼마나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했는지가 담겨 있다. 죄를 자복하자마자 하나님은 용서해 주셨다. 이것이 회개의 능력이다. 은폐는 고통을 만들고, 자복은 회복을 만든다. 다윗의 열 달간의 고통이 이것을 정직하게 증언하고 있다.

 

9. 나오며

  다윗의 범죄와 그 내면의 고통, 그리고 참회 시편이 남겨진 이유를 살펴보았다.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도 육신의 정욕과 권력의 남용 앞에서 무너졌다. 그가 저지른 죄는 간음, 살인, 도둑질, 탐욕이라는 네 가지 계명의 위반이었으며, 그 모든 죄의 뿌리에는 권력 남용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다윗의 범죄의 배경에는 악한 죄성, 유혹에 넘어간 것, 정신적 해이, 사탄의 공격이라는 네 가지 근본 이유가 있었다.

  신앙의 경력이 아무리 화려해도 죄 앞에서는 안전 지대가 없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불린 사람도 죄 앞에서 무너졌다는 사실은, 인간 누구도 자신의 의로움을 자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준다.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바울이 경고한 것처럼,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고전 10:12).

고전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또한 죄를 은폐하는 것은 더 큰 고통을 낳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이 열 달 동안 뼈가 쇠하고 진액이 빠져나갈 만큼 고통받은 것은, 죄를 감추면 반드시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죄는 회개할수록 빨리 치유되고, 감출수록 더 깊이 곪는다. 바로바로 하나님 앞에 드러내어 회개할 때 악한 영이 발붙이지 못한다. 시편 32편 5절의 다윗의 고백처럼, 자복하는 즉시 하나님은 용서해 주신다.

  아울러 권력과 지위는 섬기라고 주어진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윗의 죄는 하나님이 주신 왕의 권력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 사용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친히 "섬기러 왔다"고 하셨고, 자기 목숨까지 대속물로 내어 주셨다. 지도자는 더욱 낮아져야 하고, 더욱 섬겨야 한다. 권력을 착취에 사용하는 것은 사탄의 속성을 따르는 것이고, 권력을 섬김에 사용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성을 따르는 것이다.

  인간의 세 가지 근본 약점인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앞에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이 욕망들이 자극받는 상황을 미리 피하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며 기도하는 것이 죄를 예방하는 가장 실제적인 방법이다. 위대한 다윗도 이 욕망들 앞에서 무너졌다. 그러므로 누구도 자신은 괜찮다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서 있는 줄로 생각하는 자라도 항상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고전 10:12). 다윗의 참회 시편이 우리에게 살아 있는 교훈이 되어, 죄 앞에서 더 지혜롭게 서며 하나님 앞에 더욱 투명하게 나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05일(금)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성경 속 인물 다윗을 완벽한 성군으로 미화하기보다, 그가 가진 인간적인 결함과 권력 남용의 죄를 정직하게 드러내며 참된 회개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충신 우리아를 살해한 사건을 통해, 신앙의 경력이 오늘의 거룩함을 보장하지 않으며 누구든 육체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앞에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특히 지도자가 갖춰야 할 본분은 군림이 아닌 희생과 섬김에 있음을 강조하며, 다윗이 시편에 남긴 고통스러운 참회의 고백들을 통해 죄를 은폐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는 태도를 강조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함만을 따르며 날마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철저한 회개의 삶을 촉구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기독론(113)] 인포그래픽.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pdf_1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pdf_2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pdf_3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pdf_4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pdf_5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pdf_6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pdf_7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pdf_8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pdf_9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pdf_10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pdf_11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pdf_12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pdf_13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 (1).pdf_1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 (1).pdf_2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 (1).pdf_3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 (1).pdf_4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 (1).pdf_5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 (1).pdf_6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 (1).pdf_7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 (1).pdf_8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 (1).pdf_9_vora.jpg.webp

[기독론(113)] David_s_Fall_and_Restoration (1).pdf_10_vora.jpg.webp

 

 

 

Who's 갈렙

profile
Atachment
첨부 '24'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동영상URL
» [기독론(113)]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9) 그는 진정 회개하는 자다(01)(시38:1~13)_2026-06-05(금) newfile 갈렙 2026.06.05 34 https://youtu.be/NMuZ0Ly2igs
2325 [기독론(112)]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8) 다윗의 저주시, 과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시51:10~12)_2026-06-04(목) file 갈렙 2026.06.04 61 https://youtu.be/Bu-ht_hrNmM
2324 [기독론(111)]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7)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4)(시22:1~21)_2026-06-03(수) file 갈렙 2026.06.03 61 https://youtu.be/SMRwAH_FhHU
2323 [기독론(110)]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6)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3)(시22:1~21)_2026-06-02(화) file 갈렙 2026.06.02 81 https://youtu.be/MpzXbxrIduQ
2322 [기독론(10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5) 그는 메시야에 대한 최고의 예언자였다(02)(시22:1~21)_2026-06-01(월) file 갈렙 2026.06.01 102 https://youtu.be/8_z-Y2WW3yY
2321 [기독론(10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2) 찬양대장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위엄(시78:65~71)_2026-05-29(금) 갈렙 2026.05.29 149 https://youtu.be/ZUPCGQWtCgU
2320 [기독론(105)]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1) 고라자손에게 미친 진정한 왕의 위엄(시48:1~14)_2026-05-28(목) file 갈렙 2026.05.28 104 https://youtu.be/Y1hbJRiwHcs
2319 [기독론(104)]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10)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3)(시110:1~7)_2026-05-27(수) file 갈렙 2026.05.27 110 https://youtu.be/O7qFXjZSbUA
2318 [기독론(103)]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9)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2)(시110:1~7)_2026-05-26(화) file 갈렙 2026.05.26 92 https://youtu.be/dK6eZeWZvT4
2317 [기독론(102)]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8) 그는 예수께서 왕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예언하였다(01)(시110:1~7)_2026-05-25(월) file 갈렙 2026.05.25 146 https://youtu.be/_Y-0B3nPzV4
2316 [기독론(99)]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5)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2026-05-22(금) file 갈렙 2026.05.22 131 https://youtu.be/nXjJaFuelYY
2315 [기독론(98)]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4)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2026-05-21(목) file 갈렙 2026.05.21 181 https://youtu.be/-YVS--SER50
2314 [기독론(97)]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3)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2026-05-20(수) file 갈렙 2026.05.20 140 https://youtu.be/EJEfSxYsP64
2313 [기독론(96)]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2)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2026-05-19(화) file 갈렙 2026.05.19 126 https://youtu.be/6WsAuOlbj40
2312 [기독론(95)]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1)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2026-05-18(월) file 갈렙 2026.05.18 127 https://youtu.be/INsYN08YZ2k
2311 [기독론(95)]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01) 사명과 마음과 은사의 측면에서(시110:1~7)_2026-05-18(월) file 갈렙 2026.05.18 81 https://youtu.be/INsYN08YZ2k
2310 [기독론(92)] 사람들이 세운 왕과 하나님이 세운 왕의 차이는?(삼상9:1~17)_2026-05-15(금) file 갈렙 2026.05.15 117 https://youtu.be/e0IZ5pgUl98
2309 [기독론(91)]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를 위한 왕을 구한 대가는?(삼상8:1~22)_2026-05-14(목) file 갈렙 2026.05.14 134 https://youtu.be/IwGzbUx6KzA
2308 [기독론(90)] 성경에 등장하는 나실인의 공통된 특징은 무엇인가?(민6:1~12)_2026-05-13(수) file 갈렙 2026.05.13 145 https://youtu.be/WFt1wA-q5AE
2307 [기독론(89)] 오늘날에는 누가 다시 오실 왕을 준비할 자로 쓰임 받을까?(민6:1~12)_2026-05-12(화) file 갈렙 2026.05.12 113 https://youtu.be/uTvBqdV892s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17 Next
/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