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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7. 07. (화)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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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tbaiOFZ7aCo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역자론(02)]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기 위해서 사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은?(딤후2:20~2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tbaiOFZ7aCo

 

1. 들어가며
  하나님의 자녀에게 사역은 몇몇 특별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일꾼으로 쓰임 받고, 어떤 사람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교회를 세우는 일꾼으로 쓰임 받는다. 어떤 사람은 가족의 파수꾼으로, 어떤 사람은 주의 종을 돕는 동역자로, 어떤 사람은 회개와 천국복음와 같은 시대적인 복음을 전 세계에 흘려보내는 통로로 세워진다. 모양은 달라도 근본은 하나다. 하나님께서 불러내신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집 안에서 쓰임 받아야 할 일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열심만으로 감당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을 위하여 일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 그 일을 계산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 사울은 바울이 되기 전에도 매우 열심이 있었다. 그는 율법을 위한다고 생각했고, 조상들의 전통을 지킨다고 생각했으며, 하나님을 위하여 행동한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 열심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열심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꾼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활동량이 아니라 방향이며, 재능이 아니라 정결이며,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앞에 바로 선 상태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집 안에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다고 말한다. 금그릇도 있고 은그릇도 있으며, 나무그릇도 있고 질그릇도 있다. 그런데 주인이 귀히 쓰는 그릇은 단지 재료가 좋은 그릇이 아니다. 먼저 깨끗하게 된 그릇이다(딤후 2:20~21).
딤후 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이것이 사역자론의 출발점이다. 자신이 어떤 그릇인지 아는 것도 중요하고, 하나님께서 어떤 사명으로 자신을 부르셨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자신의 그릇이 깨끗한지 살펴야 한다. 더러운 금그릇은 주인이 음식 담는 데 쓰지 않는다. 깨끗하지 않은 은그릇도 귀한 자리에 내놓을 수 없다.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은 크고 화려한 그릇이기 전에 먼저 씻겨진 그릇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기 전에 왜 먼저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은 성도를 어떤 일꾼으로 부르시는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는 첫 번째 부르심은 구원으로의 부르심이다. 이 부르심은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청이다. 사람은 스스로 천국에 들어갈 길을 만들 수 없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인류는 죄 아래 놓였고, 생명나무의 생명에 스스로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한 분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하여 친히 일하셨다. 그분은 아들과 아기로 오셨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으며, 부활 후 생명 주는 영이 되시어 보혜사 성령으로 오셨다. 구원은 사람이 만들어 낸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신 은혜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성도라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한다(고전 1:2). 성도는 자기가 거룩해져서 하나님께 나아간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하시고, 성도라는 이름으로 불러 주신 사람이다.
고전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여기서 성도의 기본 정체성이 드러난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청에 응답하며, 천국을 향해 부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끝까지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주님의 초청을 거부하면 초청은 자기에게 효력을 나타내지 못한다. 유대인들이 먼저 메시아의 방문을 받았으나 예수님을 배척했을 때, 그 특권은 교회로 넘어갔다. 그러므로 부르심에는 반드시 응답이 따라야 한다.
  성도에게 주어진 일반적인 부르심은 세 가지 책임으로 구체화된다. 첫째, 성도는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의 구원을 위하여 깨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먼저 부르셨다면, 그는 자기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워진 것이다. 둘째, 성도는 교회를 세우고 섬기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한 지체가 받은 은혜는 몸 전체를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셋째, 성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주의 종을 협력해야 한다. 주의 종이 말씀과 기도와 복음 전파에 전념하도록 돕는 일은 평신도 일꾼에게 맡겨진 매우 중요한 사명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단지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성도는 하나님의 집 안에서 맡겨진 자리를 감당해야 하는 일꾼이다. 구원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천국 백성으로 살기 위해 부름 받았고, 동시에 교회를 세우는 일에 참여하기 위해 부름 받았다. 이 기본을 모르면 평생 수고해도 하나님 앞에서 정확히 계산되지 않는 길로 갈 수 있다. 성도의 부르심은 구원받은 신분에서 출발하지만, 반드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섬김으로 이어져야 한다.
 
3. 일반적 부르심과 특별한 부르심은 무엇이 다른가?
  모든 성도에게 일반적인 부르심이 있다면,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한 사역의 부르심이 있다. 이 부르심은 모든 성도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구원의 초청과는 다르다.
  바울은 바로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자이다. 그는 고린도전서의 첫머리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이라고 소개한다(고전 1:1). 그는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에서 멈추지 않고,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었다.
고전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여기서 중요한 말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이다. 사역의 부르심은 사람이 스스로 정하는 직업적 선택이 아니다. 사람이 마음먹었다고 사도가 되는 것이 아니며, 사람이 원한다고 선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며,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기신다. 그러므로 특별한 사역자는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열정만 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정말 자신을 어떤 일로 부르셨는지, 어떤 대상에게 보내셨는지, 어떤 분량의 사명을 맡기셨는지 분별해야 한다.
  바울의 경우가 그렇다. 주님은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을 직접 만나셨지만, 그의 사명을 그 자리에서 모두 직접 설명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아나니아라는 지체를 통해 사울의 사명을 알려 주셨다. 이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사역자가 혼자 서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사역자는 직접적인 음성이나 환상만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몸의 질서 안에서 확인받고 연합해야 한다.
  아나니아에게 주신 말씀은 바울의 사명을 정확히 드러낸다. 그는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 택한 그릇이었다(행 9:15~16). 한 사람의 사명 안에 이방 선교와 권력자들 앞의 증언과 이스라엘을 향한 복음 전파가 함께 들어 있었다. 그만큼 바울의 그릇은 컸고, 그가 감당해야 할 고난도 컸다.
행 9:15~16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그런대 특별한 사역의 부르심에는 반드시 고난도 따른다. 하나님께서 큰 그릇으로 빚으신 사람은 많은 사람을 품어야 하므로 쉽게 흔들리면 안 된다. 작은 일에 삐치고, 사람의 말에 넘어지고, 조금만 어려워도 떠나 버린다면 하나님께서 오래 쓰실 수 없다. 사역자는 자기 마음의 상처보다 하나님의 뜻을 크게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알고, 그 사명 때문에 견디며, 끝까지 중심을 지켜야 한다.
  이때 일반 성도와 특별 사역자의 우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구원의 은혜는 동일하게 크다. 다만 쓰임의 종류와 분량이 다를 뿐이다. 어떤 사람은 가정과 교회 안에서 충성하는 일꾼으로 쓰임 받고, 어떤 사람은 말씀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는 사명자로 쓰임 받는다. 중요한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부르심을 정확히 알고 그 부르심 안에서 충성하는 것이다.
 
4. 왜 사역자의 그릇과 분량은 하나님께 속해 있는가?
  사역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은 그릇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크기의 그릇이 되고 싶어 한다. 어떤 사람은 다섯 달란트 받은 자처럼 쓰임 받고 싶어 하고, 어떤 사람은 많은 사람 앞에 서고 싶어 하며, 어떤 사람은 큰 이름을 갖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릇의 모양과 크기와 쓰임을 정하는 권한이 진흙에게 있지 않고 토기장이에게 있다고 말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따질 수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진흙 한 덩이로 귀히 쓸 그릇도 만드시고, 천히 쓸 그릇도 만드실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롬 9:20~21).
롬 9:20~21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이 말씀은 구원받을 기회를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주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다 구원으로 초청하신다. 그러나 사역의 분량과 쓰임의 종류는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 누가 모세처럼 쓰임 받을지, 누가 사무엘처럼 쓰임 받을지, 누가 다윗처럼 쓰임 받을지, 누가 예레미야처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워질지는 하나님께 속한 일이다. 사명은 사람이 자기를 높여 얻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륜 안에서 맡겨지는 자리이다.
  예레미야에게도 하나님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 보라고 하셨다. 예레미야는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다가 그릇이 터지자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은 이 장면을 통해 이스라엘 족속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알려 주셨다(렘 18:3~8).
렘 18:3~8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이 말씀에는 개인의 사명만이 아니라 민족과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도 들어 있다. 하나님은 유대 민족을 먼저 선택하시고 메시아가 오실 통로로 삼으셨다. 그러나 메시아가 오셨을 때 그들이 예수님을 거절하자, 하나님은 교회를 세워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문을 여셨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는 회개와 천국복음이 다시 전 세계로 흘러가도록 특정한 민족과 교회와 사역자들을 준비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타임라인이다. 하나님은 창조와 타락, 구속과 교회 시대, 말세의 회복과 심판, 그리고 천국 입성의 길을 자신의 주권 가운데 진행하신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자기 그릇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 큰 그릇으로 지음 받았다고 교만할 일이 아니며, 작은 그릇으로 지음 받았다고 낙심할 일도 아니다. 문제는 크기가 아니라 '깨끗함'이고, 비교가 아니라 '충성'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그릇으로 빚으셨는지 알고, 그 그릇의 분량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또한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에는 즉시 돌이켜야 한다.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진 그릇이라도 악에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고 다시 쓰실 수 있기 때문이다.
 
5. 쓰임 받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 설교의 핵심이다. 많은 사람이 사역의 방법을 먼저 배우려 한다. 설교하는 법, 기도하는 법, 조직을 세우는 법, 사람을 모으는 법, 재정을 운영하는 법을 배우려 한다. 물론 이런 준비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는 일이 있다. 바로 그릇 자체를 깨끗하게 하는 일이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은 큰 집 안에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다고 말한다. 금그릇과 은그릇은 귀하게 보이고, 나무그릇과 질그릇은 상대적으로 천하게 보인다. 그러나 주인이 쓰는 기준은 단순히 재료가 아니다.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 그러므로 깨끗함은 쓰임의 조건이다(딤후 2:20~21).
딤후 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여기서 “깨끗하게 하면”이라는 말은 사역자의 내면과 영적 상태를 가리킨다. 겉으로는 은사가 있어 보이고, 지식이 있어 보이며, 열심도 있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릇 안에 더러운 것이 묻어 있다면 주인이 귀한 음식을 담을 수 없다. 시궁창 냄새가 나는 그릇에 아무리 좋은 음식을 담아도 사람은 먹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회개하지 않은 죄와 더러운 영의 역사가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정결한 통로가 되기 어렵다.
  여기서 사역자는 두 가지 착각을 버려야 한다. 첫째,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으니 나는 이미 안전하다”는 착각이다. 부르심은 특권이지만 동시에 책임이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일수록 더 정결해야 한다. 둘째, “내가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당연히 인정하신다”는 착각이다. 열심이 언제나 순종은 아니다. 열심이 회개 없는 자아와 결합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사역의 자리로 나아가기 전에 먼저 자기 안을 살펴야 한다. 나의 혈기와 분노가 처리되었는지, 교만과 자기 의가 꺾였는지,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우상숭배의 영적 뿌리가 회개로 정리되고 있는지,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십자가 앞에 내려졌는지 살펴야 한다. 이것이 없이 사역하면, 겉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나 속으로는 귀신과 자아가 섞여 사역할 수 있다.
  깨끗한 그릇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시작은 분명하다.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며, 예수의 피로 씻김받는 것이다. 주인은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깨끗하게 하려는 사람을 찾으신다.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사람은 자기 능력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날마다 회개함으로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게 준비되는 사람이다.
 
6. 칭의와 회개는 왜 반드시 구별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일꾼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려면 먼저 칭의와 회개를 구별해야 한다.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을 구원의 완성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성경의 흐름을 정확히 보면, 칭의는 구원의 여정의 출발이다.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은 예수의 피를 근거로 우리를 의롭다 칭해 주신다. 죄인이 실제로 죄를 하나도 짓지 않은 사람이 되어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피가 우리 죄를 덮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말한다(롬 3:23~24). 구원은 은혜이다. 사람이 자기 행위로 의로워져서 얻는 것이 아니다.
롬 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또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된다고 했다(롬 3:28).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모두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롬 3:30). 이것이 칭의이다.
롬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 3: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러나 칭의를 받았다고 해서 회개가 필요 없어진 것은 아니다. 로마서 5장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가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롬 5:1, 9). 이미 시작된 구원이 앞으로 진노하심에서 건짐받는 과정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롬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여기서 예수의 피의 두 가지 적용을 알아야 한다. 첫째, 예수의 피는 믿는 자의 죄를 덮어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한다. 이것은 구원의 여정에 들어오게 하는 은혜이다. 둘째, 예수의 피는 자백하고 회개하는 자의 죄를 실제로 씻어 깨끗하게 한다. 요한일서는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한다(요일 1:7, 9).
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러므로 칭의를 구원의 완성으로 오해하면 회개를 놓치게 된다. 회개를 놓치면 깨끗함을 놓치고, 깨끗함을 놓치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은 이제 예수의 피로 날마다 씻김받아야 한다. 하늘의 행위 책이 예수의 피로 덮이는 은혜를 받았다면, 이제 자기 속에 남아 있는 죄와 더러움을 자백함으로 실제로 씻어 내는 길을 걸어야 한다.
  이것이 동탄명성교회가 전하는 회개와 천국복음의 핵심이다. 한 분 하나님께서 구원의 모든 근거를 마련하셨고, 예수의 피가 우리에게 칭의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는 회개로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사람이어야 한다. 믿음의 시작은 은혜로 주어지지만, 믿음의 길은 회개와 순종으로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
 
7. 왜 회개하지 않은 수고는 하나님 앞에서 헛될 수 있는가?
  사람이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모든 수고가 하나님 앞에서 계산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난 활동만 보지 않으신다. 그 일을 어떤 영으로 했는지, 어떤 상태에서 했는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했는지, 자기 의와 교만으로 했는지를 보신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사역하면, 겉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자기 욕심과 악한 영의 역사가 섞일 수 있다.
  사울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도 열심이 대단했다. 그러나 그 열심은 교회를 박해하는 열심이었다. 그는 스데반의 죽음에 관여했고, 성도들을 잡아가려 했으며, 그리스도의 몸을 대적했다. 그때의 사울은 스스로 하나님을 위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제로는 주님을 박해하는 자였다. 열심은 있었으나 방향이 틀렸고, 종교적 확신은 있었으나 회개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의 수고는 하나님 앞에서 상급이 아니라 책망과 고난의 길로 이어졌다.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한다(약 2:17, 26). 이것은 행위로 구원을 산다는 뜻이 아니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회개와 순종의 열매를 낳는다는 뜻이다.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면서 삶에 회개의 열매가 없고, 주님을 위해 산 흔적이 없다면 그 믿음은 마지막 날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다는 경고이다.
약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회개 없는 수고가 헛될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회개하지 않으면 죄가 그대로 남는다. 둘째, 죄가 남으면 더러운 영의 합법적 근거가 남는다. 셋째, 더러운 영의 역사가 남으면 사역 속에 혈기와 분노와 교만과 시기와 경쟁심이 섞인다. 넷째, 그렇게 섞인 사역은 하나님께서 온전히 인정하시기 어렵다. 하나님은 귀신과 함께 섞여 이루어진 일을 깨끗한 사역으로 계산하지 않으신다.
  이것은 매우 두려운 영적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많은 시간을 교회에 바쳤고, 많은 봉사를 했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사역이 회개 없이 이루어졌다면, 하나님 앞에서 충분히 계산되지 않을 수 있다. 더러운 그릇으로 음식을 담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릇의 재료가 금인지 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릇 안에 더러움이 있으면 주인은 그것을 귀한 식탁에 올리지 않는다.
  또한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작은 일에도 쉽게 무너진다. 조금만 책망을 들어도 시험에 들고, 조금만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도 떠나며, 조금만 인정받지 못해도 삐치고 원망한다. 이것은 단지 성격 문제가 아니다. 속에 처리되지 않은 죄와 더러운 영들이 반응하는 것이다. 사역자는 이것을 영적 팩트로 보아야 한다. 사람과 환경만 탓해서는 안 된다. 자기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무엇이 자기를 움직이는지 살펴야 한다.
  그러므로 회개는 사역의 부수적인 장식이 아니라 사역의 기초이다. 회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먼저 회개하여 깨끗한 그릇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주님은 큰일을 많이 벌인 사람보다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게 준비된 사람을 찾으신다. 하나님의 일꾼은 자신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회개로 사역의 근본을 바로 세워야 한다.
 
8. 사역자는 왜 평생 회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하는가?
  회개는 한 번 하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사역자는 평생 회개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은 죄도 회개해야 하고, 믿은 후에 지은 죄도 회개해야 한다. 자신이 직접 지은 죄도 회개해야 하고, 조상들의 우상숭배와 죄악으로 인해 내려온 영적 영향도 회개해야 한다. 이것을 모르면, 사역자는 어느 순간 자기 안에 남아 있는 더러운 영의 역사 때문에 무너질 수 있다.
  성경은 우상숭배의 죄가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십계명은 하나님을 미워하고 우상을 섬기는 자의 죄를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신다고 경고한다(출 20:5). 이것은 조상들의 죄가 아무런 영적 결과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동탄명성교회거 전하는 귀신론은 이 지점에서 매우 실제적이다. 죄를 지을 때 더러운 영이 들어온다. 우상숭배를 하면 우상숭배의 영들이 들어오고, 거짓말을 하면 거짓의 영들이 역사하며, 음란을 범하면 음란의 영들이 틈탄다. 혈기와 분노, 교만과 시기, 불순종과 반역도 악한 영들이 들어오는 통로가 된다. 더러운 영들은 불법적으로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죄라는 합법적 근거를 통해 들어온다. 그러므로 그 근거가 회개로 처리되지 않으면 쉽게 떠나지 않는다.
  여기서 예수의 피가 다시 중요해진다. 믿을 때 예수의 피가 하늘의 행위 책을 덮어 의롭다 하심을 받게 했지만, 그 이후에는 자백하고 회개할 때 그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한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다. 죄를 죄로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백하며, 예수의 피로 씻김받는 영적 실제이다. 그때 더러운 영의 근거가 무너지고, 악한 영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만들어진다.
  요한계시록은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을 말한다(계 7:14). 또한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으며,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고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는다고 말한다(계 22:14). 마지막 때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믿는다고 말만 한 사람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로 자기 옷을 씻은 사람이다.
계 7:14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사역자는 이 말씀을 자기에게 적용해야 한다. 남을 가르치는 사람일수록 먼저 자기 옷을 빨아야 한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마음을 씻어야 한다. 귀신을 쫓아내고 영적 세계를 말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안의 더러운 영들을 회개로 몰아내야 한다. 사역자는 안수하고, 상담하고, 사람을 만나고, 영적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다시 오염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 깨끗했다고 내일 자동으로 깨끗한 것은 아니다. 평생 회개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회개는 막연하게 해서는 안 된다. 뭉뚱그려 “내가 죄인입니다”라고만 하는 것으로는 깊은 뿌리가 잘 뽑히지 않는다. 거짓말한 죄는 거짓말한 죄로, 음란한 죄는 음란한 죄로, 혈기 낸 죄는 혈기 낸 죄로, 우상숭배한 죄는 우상숭배한 죄로 구체적으로 자백해야 한다. 조상들이 지은 죄도 우상숭배, 제사, 무속, 미신, 살인, 낙태, 음란, 도둑질, 거짓, 교만 등 구체적인 항목으로 회개해야 한다. 죄가 구체적이었으므로 회개도 구체적이어야 한다.
  회개 기도는 사역자의 생명줄과 같다. 한 번 회개했다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거짓말을 한 번만 한 사람이 아니라면, 거짓의 영도 한 번만 회개했다고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음란한 생각과 혈기와 교만이 반복되었다면, 그것도 반복적으로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천 번, 삼천 번의 숫자만을 채우는 형식이 아니라, 평생 자기 속을 깨끗하게 하는 실제적인 길이어야 한다.
  마지막 시대에는 몰라서 핑계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하나님은 여러 통로를 통해 회개와 천국복음을 듣게 하신다. 말씀을 찾고, 배우고, 적용하려는 사람에게는 길이 열린다. 그러나 듣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더 큰 책임이 따른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 원하는 사람은 지식만 쌓아서는 안 된다. 성경을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성경 앞에서 자기 죄를 회개하는 일이 더 먼저이다. 회개하지 않은 성경 지식은 교만을 만들 수 있고, 회개하지 않은 은사는 사람을 넘어뜨릴 수 있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평생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회개는 사역을 시작하기 전의 준비일 뿐 아니라, 사역하는 동안 계속 붙들어야 할 영적 호흡이다.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은 날마다 씻겨진 그릇이다. 회개로 더러운 영의 근거를 제거하고, 예수의 피로 자기 속을 씻으며,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 끝까지 쓰임 받을 수 있다.
 
9. 나오며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를 구원으로 부르시고, 그중 어떤 사람은 특별한 사역의 부르심으로 세우신다. 또한 하나님은 토기장이로서 각 사람의 그릇과 분량을 정하시며, 시대와 민족과 교회를 자신의 경륜 가운데 사용하신다. 그러나 어떤 그릇이든 주인의 손에 귀히 쓰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깨끗해야 한다.
  성도는 자신의 부르심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자기와 가족의 구원을 위해 깨어 있어야 하고, 교회를 세우며, 주의 종을 돕는 일에 충성해야 한다. 특별한 사역자로 부름 받은 사람은 더욱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의 사명과 분량을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릇을 자랑하지 말고, 그 그릇을 깨끗하게 보존해야 한다.
  칭의와 회개도 반드시 구별해야 한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구원의 여정에 들어선 은혜로운 출발이다. 그러나 그 길은 회개와 순종으로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 예수의 피는 믿는 자의 죄를 덮어 의롭다 하시며, 동시에 자백하고 회개하는 자의 죄를 씻어 깨끗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칭의를 구원의 완성으로 오해하지 말고, 날마다 예수의 피로 자기 옷을 씻어야 한다.
  회개 없는 열심은 헛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활동의 크기만 보지 않으시고, 그릇의 상태와 영의 순결함을 보신다. 더러운 영과 자기 의가 섞인 사역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계산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말씀을 전하기 전에, 봉사하기 전에, 사람을 세우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회개로 씻어야 한다.
  마지막 때의 성도는 회개를 생명처럼 붙들어야 한다. 조상들의 우상숭배와 자기 죄로 인해 들어온 더러운 영들의 근거를 회개로 제거해야 한다. 막연한 후회가 아니라 구체적인 자백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평생 회개함으로 깨끗한 그릇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사역자가 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일꾼이 되며, 천국에서 후회 없는 결산을 맞이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일꾼에게 가장 큰 복은 쓰임 받는 것만이 아니다. 깨끗한 그릇으로 끝까지 쓰임 받는 것이 더 큰 복이다. 하나님께 부름 받은 사람은 부르심을 알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분량 안에서 충성하고, 무엇보다 회개로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깨끗한 그릇으로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게 쓰임 받고 천국에서 빛난 옷과 상급을 얻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7월 06일(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귀하게 쓰임받기 위해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영적 자격과 사전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모든 성도가 각자의 부르심을 받은 일꾼임을 전제하며, 특히 특별한 사명을 맡은 자들은 자신이 어떤 그릇으로 부름받았는지를 명확히 깨닫고 그 분량에 맞게 헌신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무엇보다 본질적인 핵심은 철저하고 구체적인 회개를 통해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며, 과거의 죄와 가문의 우상숭배로 유입된 악한 영들을 몰아내야만 비로소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성결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회개 없는 수고는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않는 헛된 노력이 될 수 있으므로, 지속적인 자기 정결 작업이야말로 사역의 성패와 천국의 상급을 결정짓는 가장 우선적인 과업임을 역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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