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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7. 08. (수)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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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d2eA95ls78Q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역자론(03)]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자격으로서 첫번째 조건은?(딤전4:11~1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d2eA95ls78Q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실 때에는 아무렇게나 쓰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먼저 사람을 부르신다. 어떤 사람은 성도로 부르시고, 어떤 사람은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 같은 특별한 사역의 자리로 부르신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쓰임 받는 것은 아니다. 부르심에는 분량이 있고, 분량에는 준비가 있으며, 준비에는 반드시 거쳐야 할 영적 질서가 있다.

  사역자론의 앞선 흐름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먼저 확인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이 어떤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둘째, 쓰임 받기 전에 먼저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지만, 주인이 귀히 쓰는 그릇은 먼저 깨끗하게 된 그릇이다. 그러므로 부르심의 크기보다 먼저 보아야 할 것은 그릇의 정결함이다.

  이제 세 번째로 살필 것은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자격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부르셨다면, 그 사람은 맡겨진 일을 감당할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그 자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은사와 달란트요, 둘째는 성품과 순종과 자질의 훈련이요, 셋째는 좋은 영적 지도자를 만나 그 질서 아래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이번 말씀은 그 가운데 첫 번째 조건인 은사와 달란트를 중심으로 한다.

  바울은 젊은 사역자 디모데에게 단지 열심을 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명하고 가르치라고 했고,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고 했으며,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고 했다. 그리고 디모데 속에 있는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그 일에 전심전력하라고 권면했다(딤전 4:11~16).

딤전 4:11~16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여기에 사역자의 자격론이 압축되어 있다. 사역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살펴야 하고, 동시에 자기의 가르침을 살펴야 한다. 자신이 깨끗하지 못하면 은사가 더러워질 수 있고, 가르침이 바르지 못하면 듣는 자의 구원까지 흔들릴 수 있다. 그러므로 은사와 달란트는 단순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성도를 살리고 교회를 세우며 천국을 준비하게 하는 영적 도구의 문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왜 은사와 달란트를 갖추어야 하며, 그것을 어떻게 회개와 훈련과 영적 질서 안에서 바르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은 왜 사람마다 다른 부르심을 주시는가?

 

 

  하나님은 사람을 똑같은 모양으로 부르지 않으신다. 모든 성도에게는 구원으로의 부르심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자이며, 거룩한 자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도록 초청받은 자다. 그러나 그 가운데 어떤 사람은 특별한 사역의 직임으로 따로 부르심을 받는다. 어떤 이는 사도로, 어떤 이는 선지자로, 어떤 이는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이는 목사와 교사로 세워진다. 이것은 사람의 욕심이나 자기 선택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경륜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교회 가운데 사람을 세우셨다고 말한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 주어진 직임이다(엡 4:11~12).

엡 4:11~12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직임이 목적이 아니라 몸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특별한 사역자로 부르시는 까닭은 그 사람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타락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깨우고, 교회를 온전하게 하며, 성도들로 하여금 천국을 준비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자신이 받은 부르심을 자기 영광의 근거로 삼지 말아야 한다. 부르심은 언제나 몸을 위한 것이며, 교회를 위한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위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각 사람의 분량도 다르게 정하신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은 자기 종들에게 각각 그 능력에 따라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다. 여기서 달란트는 헬라어로 탈란톤, 곧 무게와 화폐 단위를 가리키지만, 비유 안에서는 주인이 종에게 맡긴 책임과 분량을 의미한다. 그리고 “각각 그 재능대로”라는 말은 원문상 각 사람의 능력, 곧 뒤나미스에 따라 맡겼다는 뜻을 가진다(마 25:14~15).

마 25:14~15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그러므로 사역자는 남의 분량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을 업신여길 수 없고,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을 흉내 내다가 무너질 필요도 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분량 이상을 하려고 하면 영혼이 찢어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분량 이하로 숨어 버리면 맡겨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역자의 지혜는 자기 분량을 정확히 알고, 그 분량 안에서 충성하는 데 있다.

  동탄명성교회가 전해 온 한 분 하나님 신앙 안에서 보면, 부르심은 여러 주권자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며, 생명 주는 영으로 오셔서 성도 안에 거하신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고, 시대를 정하시며, 민족과 교회의 쓰임을 결정하신다. 그러므로 부르심의 출발도 하나님이요, 분량의 결정도 하나님이요, 쓰임의 완성도 하나님께 속한다.

 

 

3. 쓰임 받기 전 왜 먼저 깨끗해져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람이 자격을 말하기 전에 반드시 통과해야 할 문이 있다. 그것은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다. 은사와 달란트가 아무리 많아도 그릇이 더러우면 주인의 상에 올릴 수 없다. 금그릇이 더러우면 금이라는 재료가 오히려 부끄러움이 되고, 은그릇이 더러우면 그 빛이 가려진다. 주인은 더러운 그릇에 귀한 음식을 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도 이와 같다.

  바울은 큰 집 안에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다고 말하면서, 누구든지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고 했다. 여기서 “깨끗하게 하면”이라는 표현은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분리하고 정결하게 하는 실제적인 행위를 가리킨다. 그것은 마음속으로만 깨끗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다.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며, 더러운 영의 통로를 끊고, 성령의 다스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딤후 2:20~21).

딤후 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회개가 선행되지 않으면 사역은 언제든지 자기 의가 될 수 있다. 사울은 바울이 되기 전에 하나님을 위한다고 열심을 냈지만, 실제로는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가담했고 교회를 핍박했다. 열심이 있었다고 해서 하나님께 계산되는 것이 아니었다. 방향이 틀리고 영이 더러우면, 열심은 오히려 하나님의 원수 된 자리에서 작동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열심보다 먼저 회개를 배워야 한다.

  구원론적으로도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구원의 여정의 출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죄인을 덮어 주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된다. 그러나 칭의를 구원의 완성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믿음으로 구원의 문에 들어선 사람은 이후에 자기 죄를 자백하고 회개함으로 예수의 피로 계속 씻김 받아야 한다. 요한일서는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한다(요일 1:9).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기에서 귀신론적 실제가 드러난다. 죄는 단순한 기록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더러운 영이 들어오는 통로가 된다. 예수께서 귀신을 “더러운 영”이라고 부르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죄를 지을 때 더러운 영이 역사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그 영은 합법적인 통로를 붙잡고 떠나지 않으려 한다. 그러므로 자백과 회개는 단지 심리적 반성이 아니라, 예수의 피가 더러움을 씻고 악한 영의 근거를 제거하는 영적 사건이다.

  또한 조상들의 우상숭배와 거짓 종교의 죄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우상숭배의 죄가 후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십계명 안에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것은 저주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죄의 뿌리를 정확히 알고 회개로 끊어야 한다는 뜻이다(출 20:5).

출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은 사역은 위험하다. 사역자가 자기 안의 혈기와 분노와 교만과 음란과 탐욕을 처리하지 않은 채 은사만 사용하면, 그 은사가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아니라 자기 왕국을 세우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은 더러운 것과 섞인 수고를 그대로 계산하지 않으신다. 천국의 집과 상급은 성령의 통치 안에서 행한 수고와 연결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자격을 논하기 전에 먼저 회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4. 하나님이 쓰시는 첫 자격은 왜 은사와 달란트인가?

 

 

  회개로 그릇이 깨끗해졌다면, 이제 그 그릇은 맡겨진 일을 감당할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첫 번째 자격은 은사와 달란트다. 이것은 인간적인 성공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을 실제로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와 능력을 말한다. 마음은 뜨거운데 연장이 없으면 일을 오래 붙들고 있어도 열매가 적다. 밭을 갈아야 하는 사람이 호미 하나만 가지고 넓은 땅을 상대한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트랙터가 있으면 훨씬 넓은 일을 감당할 수 있다. 풀을 뽑아야 하는 사람이 손으로만 뽑으면 힘들지만, 낫이나 제초기가 있으면 일의 속도와 범위가 달라진다. 은사와 달란트도 이와 같다.

  은사는 헬라어 카리스마에서 온 말이다. 그 뿌리에는 은혜를 뜻하는 카리스가 있다. 그러므로 은사는 자격 있는 사람이 자기 힘으로 따낸 훈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이다. 그러나 선물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 속에 있는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했다. 은사는 귀히 여기고, 불일 듯하게 하며, 전심전력으로 사용해야 할 영적 책임이다(딤전 4:14~15).

딤전 4:14~15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달란트는 일반 은사라고 할 수 있다. 부모와 가문, 민족적 기질, 성장 과정, 교육과 훈련을 통해 나타나는 재능과 능력이다. 반면 영적 은사는 성령께서 사역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해 주시는 특별한 선물이다. 둘은 성격이 다르지만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의 타고난 기질도 쓰시고, 성령께서 부어 주시는 은사도 쓰신다. 일반 은사만 있으면 사역은 인간적 능력으로 기울기 쉽고, 영적 은사만 있다고 하면서 일반적인 자질과 성실을 무시하면 사람을 온전하게 세우기 어렵다.

  그래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두 가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내게 이미 주어진 것은 무엇인가를 보아야 하고, 앞으로 맡겨진 직임을 감당하기 위해 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달란트가 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조직하고 세우는 능력이 있다. 어떤 사람은 찬양과 예술적 표현의 재능이 있다. 어떤 사람은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할 때 믿음과 권세가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가 필요하다. 사역자는 자신의 직임에 필요한 도구를 알아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다. 사모한다는 것은 욕심을 내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더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은혜를 구하라는 뜻이다. 은사가 없으면 맡은 일의 범위가 좁아질 수 있다. 은사가 있어도 회개가 없으면 위험하고, 은사가 없어도 사역의 현장은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깨끗한 그릇이 필요한 은사를 사모하는 것이 바른 순서다(고전 12:31).

고전 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5. 달란트는 어떻게 주어지고 어떻게 쓰이는가?

 

 

  달란트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출생과 성장 과정 속에 심어 두신 일반 은사다. 사람은 아무 배경 없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부모를 통해 태어나고, 가문의 흐름을 지나오며, 민족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자란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에게는 어려서부터 노래하는 능력이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운동 능력이 있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글을 쓰고 말하는 능력이 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조직을 세우는 능력, 사람을 이끄는 능력, 사람을 섬기고 돕는 능력이 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맡기신 책임의 재료가 될 수 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주인이 종들에게 맡긴 달란트는 소유권이 종에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종들은 맡은 것을 가지고 장사해야 했고, 주인이 돌아왔을 때 결산을 받아야 했다. 달란트는 자랑거리가 아니라 결산의 대상이다.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이 남겨야 하고, 적게 받은 사람도 받은 분량 안에서 충성해야 한다(마 25:19~21).

마 25:19~21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달란트를 말할 때 가문과 조상의 흐름도 함께 보아야 한다. 어떤 가문에는 교육의 흐름이 있고, 어떤 가문에는 예술의 흐름이 있으며, 어떤 가문에는 상업과 조직의 흐름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상숭배와 무속과 불교와 유교 제사의 흐름도 있을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모든 흐름을 그대로 긍정하거나 그대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재료는 회개와 성령의 통치 아래에서 거룩하게 쓰임 받을 수 있고, 우상숭배를 통해 들어온 더러운 영의 통로는 반드시 회개로 끊어야 한다.

  예를 들어 노래와 춤과 예술적 감각이 어떤 사람에게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이 단순히 세상적 재능으로만 쓰이면 사람의 인기와 육체의 욕망을 섬기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회개로 정결하게 되고 성령께 드려지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성도의 마음을 깨우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활쏘기와 운동 능력처럼 민족의 역사 속에 축적된 기질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은 달란트는 세상 왕국을 세우지만, 하나님께 드려진 달란트는 주인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된다.

  달란트 가운데 사역자에게 특별히 중요한 것은 가르치는 능력이다. 사람을 살리는 사역은 결국 말씀을 깨닫게 하는 일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영적 세계를 아무리 보아도 말씀으로 정리하지 못하면 성도를 안정적으로 세울 수 없다. 반대로 말은 잘하지만 영적 실제를 모르면 성도를 귀신의 속임수와 종말의 미혹에서 건져내기 어렵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달란트는 말씀의 정확성, 영적 분별, 성도의 상태를 읽는 목자의 마음과 함께 쓰여야 한다.

  달란트는 개발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씨앗을 주셨다고 해서 열매가 저절로 익는 것은 아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고 연구해야 하며, 찬양하는 사람은 훈련해야 하고, 사람을 세우는 사람은 성품을 다듬어야 한다. 달란트가 훈련 없이 사용되면 거칠어지고, 회개 없이 사용되면 오염되며, 성령의 지배 없이 사용되면 자기 확장의 도구가 된다. 그래서 달란트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재료이되, 회개와 훈련과 순종 속에서 익어 가야 하는 맡겨진 책임이다.

 

 

6. 사역자에게 왜 가르치는 은사가 기본인가?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장 강하게 부탁한 일 중 하나는 가르침이었다. “명하고 가르치라”,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피라”는 말씀이 반복된다. 여기서 가르친다는 말은 헬라어 디다스코와 연결된다. 그것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풀어 듣는 자가 순종의 길로 들어가게 하는 일이다. 사역자는 성도의 귀를 열고, 영을 깨우며, 천국을 준비하게 하는 가르침의 책임을 맡은 사람이다(딤전 4:11~13).

딤전 4:11~13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가르침은 목회자의 기본이다. 에베소서 4장에서도 목사와 교사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목자는 양을 먹여야 하고, 교사는 말씀을 풀어야 한다. 성도가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 왜 회개가 구원의 여정에서 계속 필요한지, 천국과 지옥의 실제가 무엇인지, 더러운 영들이 어떻게 사람을 속이는지, 말세에 하나님께서 어떤 경륜으로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 세계에 흘려보내시는지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마지막 시대에는 가르침의 정확성이 생명과 직결된다. 사람들은 많은 설교를 듣지만, 무엇이 한 분 하나님 신앙인지 모를 수 있다. 예수께서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놓치면 구원의 중심이 흔들린다. 믿음으로 칭의 받는 것과 회개로 실제 죄를 씻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구원의 여정을 완성으로 착각한다. 귀신의 역사를 심리 현상으로만 보거나 반대로 무분별한 신비주의로만 흐르면 성도는 영적 싸움에서 패배한다. 그러므로 가르침은 교리의 정리이면서 동시에 영혼을 살리는 전쟁이다.

  사역자의 가르침은 자기 자신과 분리될 수 없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라고 했다. 가르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살피지 않으면 말씀은 지식이 되고 만다. 말은 옳은데 삶이 틀리면 성도는 그 가르침을 신뢰하지 못한다. 은사는 나타나는데 정절과 사랑과 믿음이 없으면 사람은 모이지만 영혼은 병든다. 그래서 사역자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서 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가르치는 은사의 토대다.

  좋은 가르침은 성도를 깨운다. 성도는 자신이 왜 이 땅에 태어났는지, 왜 지금 회개해야 하는지, 왜 천국의 지위와 상급을 준비해야 하는지, 왜 가족을 구원해야 하는지, 왜 교회를 섬기고 주의 종을 도와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알지 못하면 움직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면 결단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역자의 가르침은 성도의 귓구멍을 영적으로 뚫어 주는 일과 같다. 닫힌 귀가 열릴 때, 성도는 자기 인생을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다시 보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가르치는 은사는 가장 기본적인 달란트이면서 동시에 영적 은사와 연결되어야 한다. 성경을 정확히 풀어 주는 지식, 현재 성도의 상태를 분별하는 지혜, 미래의 위험을 경고하는 영적 감각, 귀신의 속임수를 분별하는 능력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단지 지적인 강의만으로는 영을 깨울 수 없고, 단지 은사 체험만으로는 교회를 건강하게 세울 수 없다. 말씀과 성령, 교리와 영적 실제, 구원론과 귀신론과 종말론이 함께 정리되어야 참된 가르침이 된다.

 

 

7. 영적 은사는 어떻게 주어지고 왜 필요한가?

 

 

  영적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는 특별한 선물이다. 하나님은 사역자가 맡은 직임을 감당하도록 필요한 영적 도구를 주신다. 고린도전서 12장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 영들 분별함, 각종 방언, 방언 통역을 말한다. 이 은사들은 사람의 재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영적 세계를 다루기 위해 주어진다(고전 12:8~10).

고전 12:8~10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영적 은사는 구경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마귀에게 속한 자를 건져내고, 병든 자를 일으키며, 속임을 분별하고, 닫힌 영을 열어 주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기 위한 도구다. 특히 귀신론을 모르면 영적 은사의 필요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사람 안에는 개인의 죄를 통해 들어온 더러운 영들이 있을 수 있고, 조상들의 우상숭배와 무속과 거짓 종교를 통해 내려온 영들도 있을 수 있다. 이 영들은 성도를 죄짓게 하고,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며, 회개하지 못하게 막는다. 그러므로 영들 분별함과 축사의 권세와 믿음의 은사가 필요하다.

  은사는 첫째, 모태로부터 주어질 수 있다. 믿음의 부모와 기도의 부모를 만나는 것은 큰 복이다. 디모데에게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에게 있던 거짓 없는 믿음의 흐름이 있었다. 바울은 디모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라고 했다. 이미 주어진 은사가 있었지만, 영적 지도자의 안수와 권면을 통해 다시 활성화되어야 했던 것이다(딤후 1:5~6).

딤후 1:5~6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둘째, 은사는 성령 세례를 받을 때 주어질 수 있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고 말했다. 사도행전의 역사 속에서 성령이 임할 때 방언과 예언과 환상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이것은 성령께서 사람의 영을 깨우시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시는 표지로 주어진 것이다(행 2:38).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셋째, 은사는 직임을 감당하기 위해 주어질 수 있다. 말씀 사역자에게는 지식의 말씀과 지혜의 말씀이 필요하다. 과거의 묶임을 알고, 현재의 상태를 분별하며, 장차 다가올 영적 위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병든 자를 섬기는 사람에게는 병 고치는 은사와 믿음이 필요하고, 귀신을 대적하는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과 영들 분별함이 필요하다. 방언과 방언 통역, 예언과 환상도 사역의 현장에서 성도를 세우기 위해 주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은사를 받는 일에는 위험도 따른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은사를 받으면, 은사가 자기 자랑의 근거가 되기 쉽다. 더러운 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능력이 나타나면, 그 사람은 자신이 최고인 줄 착각할 수 있다. 질서를 무너뜨리고, 지도자를 거부하고, 자기 사역을 하나님 나라보다 앞세울 수 있다. 그러므로 은사는 회개와 함께 가야 하고, 성품의 훈련과 함께 가야 하며, 말씀의 검증과 영적 지도자의 질서 안에서 사용되어야 한다.

  은사는 한 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다. 성령의 은사가 나타난다고 해서 하나님 외에 다른 근원을 좇아서는 안 된다. 무속의 신내림, 점술, 귀신의 예언과 성령의 은사는 근원이 다르다. 겉으로는 비슷한 현상이 있어도, 한쪽은 더러운 영이 사람을 묶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 은사를 사모하는 사람은 더욱 철저히 회개해야 하고, 은사의 근원과 열매를 분별해야 한다.

 

 

8. 은사 받은 사람은 왜 지도자 아래 훈련받아야 하는가?

 

 

  은사와 달란트를 받은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훈련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홀로 세워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게 하지 않으신다. 모세는 80세에 쓰임 받기까지 애굽 궁정과 미디안 광야를 지나야 했고, 요셉은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종살이와 감옥의 시간을 지나야 했다. 다윗도 기름부음을 받은 뒤 곧바로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사울의 추격을 견디며 훈련받았다. 큰 쓰임에는 큰 훈련이 따른다.

  훈련의 핵심은 성품과 순종과 자질이다. 은사가 나타난다고 성품이 자동으로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방언을 한다고 혈기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예언을 한다고 교만이 죽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사람에게 붙여 훈련하신다. 영적 지도자는 은사를 받은 자의 방향을 잡아 주고, 잘못된 길을 갈 때 막아 주며, 그 속에 있는 악한 영의 작용을 분별하게 도와준다. 지도자가 없거나 지도자의 말을 듣지 않는 은사자는 위험하다.

  예수께서는 제자가 선생보다 높지 못하고 종이 상전보다 높지 못하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단지 인간 조직의 서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 세계에는 질서가 있으며, 하나님은 그 질서를 통해 사람을 빚으신다. 제자가 선생을 통과하지 않고 스스로 높아지려 하면, 아직 다루어지지 않은 자아가 은사를 타고 올라와 사역을 망칠 수 있다(마 10:24~25).

마 10:24~25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다. 평신도는 어떤 주의 종을 만나느냐에 따라 말씀의 깊이와 영적 분별력이 달라진다. 사역자는 어떤 스승 아래에서 훈련받느냐에 따라 쓰임의 질이 달라진다. 영적 지도자는 단지 정보를 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은사를 불일 듯하게 하고, 막힌 부분을 열어 주며, 때로는 책망하고, 때로는 기다려 주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향으로 사람을 세워 간다.

  훈련받지 않은 은사는 거칠다. 훈련받지 않은 달란트는 자기중심적이다. 회개하지 않은 능력은 더 위험하다. 사역자는 자기에게 나타나는 은사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는 자동 보증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능력만 보지 않으시고 질서와 순종과 정결함을 함께 보신다. 모세도 마지막 순간 혈기와 불순종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사실은 모든 사역자에게 두려운 경고가 된다.

  그러므로 은사 받은 사람은 더 많이 배워야 한다.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더 낮아져야 하고, 크게 쓰임 받을 사람일수록 더 강한 훈련을 통과해야 한다. 은사는 연장이지만, 훈련은 그 연장을 바르게 쓰는 손이다. 달란트는 재료이지만, 순종은 그 재료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양으로 빚는 과정이다. 영적 지도자의 질서 아래에서 회개하고 배우고 다듬어질 때, 은사와 달란트는 비로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역의 도구가 된다.

 

 

9. 나오며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첫 번째 자격으로서 은사와 달란트가 왜 필요한지를 살펴보았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부르심과 분량을 알아야 한다. 그 부르심은 자기 욕망의 확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맡겨진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사역자는 은사보다 먼저 회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깨끗하지 않은 그릇은 금그릇이라도 귀히 쓰임 받을 수 없으며, 회개하지 않은 능력은 언젠가 교만과 혼합과 무질서로 흘러갈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날마다 예수의 피로 씻김 받고, 자기 안에 있는 더러운 영의 통로를 끊어야 한다.

  은사와 달란트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연장임을 기억해야 한다. 달란트는 출생과 가문과 훈련 속에서 주어진 일반 은사이며, 영적 은사는 성령께서 직임을 감당하게 하시려고 주시는 특별한 선물이다. 이 둘은 모두 주인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며, 천국의 결산 앞에서 충성의 열매로 드려져야 한다.

  마지막 시대에는 회개와 천국복음이 전 세계로 흘러가야 한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한 분 하나님을 바르게 증언하고, 믿음과 회개의 구원론을 정확히 전하며, 귀신의 역사를 분별하고, 종말의 때에 성도들이 천국의 지위와 상급을 준비하도록 깨워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은사와 달란트를 사모해야 하며, 동시에 좋은 영적 지도자 아래에서 성품과 순종과 자질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일꾼은 많이 나타나는 사람이 아니라 바르게 준비된 사람이어야 한다. 받은 은사를 자랑하지 말아야 하고, 맡겨진 달란트를 묻어 두지 말아야 하며, 주인의 뜻을 따라 깨끗하고 충성되게 사용해야 한다. 그리하여 회개로 깨끗해진 그릇이 되어 은사와 달란트를 주인의 뜻대로 사용하고 천국에서 인정받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7월 07일(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사역자가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 갖춰야 할 핵심 자격으로 부르심에 대한 깨달음철저한 회개를 통한 정결, 그리고 은사와 달란트의 구비를 강조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개인의 선천적 재능인 일반 은사(달란트)와 성령을 통해 주어지는 영적 은사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특히 지도자에게는 가르치는 은사가 필수적임을 역설합니다. 이러한 자격은 단기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지도자의 훈련 아래 인격과 성품이 깎이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무엇보다 지속적인 회개로 자신을 깨끗한 그릇으로 유지해야 능력이 변질되지 않습니다. 결국 이 설교는 사역의 효율을 높이는 영적 도구로서의 은사를 사모하되, 그 기초는 반드시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순종 위에 놓여야 함을 일깨우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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