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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8. 05. (수)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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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3wnvFRnh9Zo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역자론(12)]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주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출17:8~1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3wnvFRnh9Zo

 

아침묵상 · 사역자론(12)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주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주의 날마다 성전으로 나아와 예배드리는 것은 장차 천국 백성으로 살아갈 삶을 이 땅에서부터 시작하는 일이다. 멀리 있어서 온라인으로 참여하더라도 정숙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 천국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시간도 예배드리는 시간이다. 그곳에는 우리를 죄짓게 하는 악한 자가 없고 더러움도 없으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깨끗한 자들이 나아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과 예배를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고, 주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는 복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구원만 준비하는 데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먼저 자신이 구원받은 자인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천국에서 누릴 지위와 신분과 상급을 준비해야 한다. 필자가 천국에 들어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람마다 지위와 신분이 다르고 받을 상급도 다르며, 그것은 영원히 더해지거나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누구를 본받고 어떤 일을 행하느냐는 영원한 삶과 직접 연결된다.

  성경의 인물들을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들어 쓰셨고, 그가 어떤 믿음과 순종으로 사명을 감당했으며, 그 결과 어떤 복을 받았는지를 살펴보면 우리도 가야 할 길을 알 수 있다. 구약의 위대한 인물을 꼽는다면 모세를 빼놓을 수 없다. 필자가 천국에서 본 모세는 행위책을 들고 다닌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어긴 행위들을 살피는 큰 권한을 그에게 주셨다. 그만큼 모세는 하나님께 존귀하게 쓰임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모세의 후계자는 그의 아들 게르솜도 아니었고 같은 레위 지파 사람도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직접 지명하셨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출애굽 2세대를 이끌고 요단강을 건넜으며, 가나안 일곱 족속과 싸워 땅을 정복하고 아홉 지파 반에게 기업을 분배했다. 모세가 애굽에서 백성을 이끌어 내는 사명을 감당했다면, 여호수아는 그 백성을 약속의 땅에 정착시키는 사명을 감당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는 어떻게 모세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었는가? 전쟁 경험도 무기도 없고 승산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왜 아말렉과 싸우라는 명령에 순종했는가? 그는 모세의 권위를 지키려다가 왜 시기한다는 책망을 받았으며, 그 일을 통하여 무엇을 배웠는가? 또한 불리한 환경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작은 전쟁부터 반복하여 치른 일이 어떻게 위대한 후계자의 자격과 천국의 상급으로 이어졌는가? 그래서 이 시간에는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주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었던 세 가지 이유와 그의 순종이 천국의 지위와 상급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여호수아는 어떤 가문의 사람이며 어떻게 모세의 후계자로 지명되었는가?

  여호수아는 갑자기 나타난 이름 없는 장수가 아니다. 그는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에게서 이어진 믿음의 가문에 속한 사람이다. 역대상 7장의 족보는 에브라임의 후손을 이어 기록한 뒤 눈과 여호수아의 이름에 이른다. 필자는 이 족보를 따라 여호수아를 에브라임의 구대손으로 계산한다. 성경이 그의 계보를 기록한 것은 그가 단지 싸움에 능한 사람만이 아니라 뼈대 있는 신앙의 가문에서 준비된 사람임을 보여 준다(대상 7:27).

대상 7:27 그의 아들은 눈이요 그의 아들은 여호수아더라

  여호수아의 본래 이름은 호세아였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할 열두 사람을 뽑을 때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눈의 아들 호세아가 선택되었다. 그때 모세는 호세아를 여호수아라고 불렀다. 호세아가 ‘구원’이라는 뜻이라면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을 담는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 사람과 함께하시어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약속의 땅에 정착시키실 사명을 이름에 새겨 준 것이다(민 13:16).

민 13:16 이는 모세가 땅을 정탐하러 보낸 자들의 이름이라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불렀더라

  모세가 죽을 때가 가까워지자 후계자를 결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모세가 자기 아들이나 레위 지파의 유력자를 세운 것이 아니다. 여호와께서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라고 말씀하시며,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안수하라고 명하셨다. 또한 모세의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온 회중이 복종하게 하라고 하셨다. 후계자의 자리는 인간적인 혈통이나 친분으로 물려주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준비된 사람을 찾아 맡기시는 자리다(민 27:18-20).

민 27:18-2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갑자기 큰 사명을 맡기지 않으신다. 사람에게는 크든 작든 이 땅에 온 사명이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먼저 작은 일을 맡겨 그 사람이 순종하는지를 시험하고 훈련하신다. 모세의 사명이 애굽 제국에서 이스라엘을 끌어내 광야 끝까지 인도하는 것이었다면, 여호수아의 사명은 전쟁을 통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백성에게 기업으로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에게 필요한 첫 훈련도 전쟁이어야 했다.

  하나님께서 영적 지도자를 통하여 전에 해 보지 않은 일을 맡기실 때 그것을 귀찮은 부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기 위하여 준비하고 시험하시는 과정일 수 있다. “나는 해 본 적이 없다”, “다른 사람을 시키라”고 거절하면 단지 한 가지 일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 천국에서 받을 지위와 상급을 발로 차 버릴 수 있다. 큰 사명은 작은 순종에서 시작된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로 지명된 것은 한순간의 선택이 아니라 오랜 기간 쌓인 믿음과 순종의 열매였다.

3. 아말렉과의 첫 전쟁은 여호수아에게 어떤 시험이었는가?(출 17:8-16)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뒤 르비딤에 장막을 쳤을 때 아말렉이 뒤에서 공격했다. 아말렉은 낙타를 이용하여 기습하고 약탈한 뒤 빠르게 달아나는 데 능한 족속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출애굽한 뒤 한 번도 전쟁을 치른 적이 없었다. 정규 군대도 없고 전쟁을 위하여 훈련받은 병사도 없었으며, 무기와 말과 낙타 같은 이동 수단도 변변치 않았다. 아말렉과의 싸움은 이스라엘이 민족으로서 맞닥뜨린 최초의 전쟁이었다.

  이때 모세는 성경에 처음 이름이 등장하는 여호수아를 불러 사람들을 택하고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고 명령했다. 하나님께서 이번 전쟁을 여호수아에게 맡기라고 모세에게 직접 말씀하셨다는 기록은 없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지켜보고 그에게 명령한 것이다. 여호수아는 전쟁 경험이 없었고 함께 싸울 조직된 군대도 없었다. 명령을 받는 순간 그는 모세의 말을 들을 것인지 거절할 것인지 자기 자유의지로 결정해야 했다.

  믿음이 있어도 경험이 없으면 두려울 수 있다. 무기가 보잘것없고 적이 강하며 승산이 계산되지 않으면 지도자의 명령을 무모하다고 판단하기 쉽다. 필자는 여호수아의 나이를 계산하여 이때 그가 약 오십오 세였다고 본다. 젊은 용사도 아닌 중년의 사람이 낙타 기습 부대와 싸우러 나간 것이다. 그는 “보낼 만한 다른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핑계하지 않았다. 모세의 말을 믿고 함께할 사람들을 모았으며, 그 가운데 갈렙도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는 동안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갔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겼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 모세의 팔이 피곤해지자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그 손을 붙들었고, 그 손은 해가 질 때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마침내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무찔렀다. 전쟁터에서는 여호수아가 실제로 싸웠고, 산 위에서는 모세가 기도했으며, 아론과 훌은 그 기도를 붙들었다(출 17:8-13).

출 17:8-13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이 첫 전쟁은 여호수아의 평생 사명과 정확히 연결된 시험이었다. 그가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견고한 성읍과 기골이 장대한 족속들을 상대로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가나안 전체를 맡기지 않으시고 아말렉과의 한 전쟁부터 맡기셨다. 만약 여호수아가 이때 거절했다면 그의 사명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수도 있었다. 가룟 유다에게 높은 지위가 예정되어 있었어도 불순종하여 지옥에 간 것처럼, 예정된 사명이 자동으로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작은 일은 장차 감당할 큰 사명의 시험 과정이다. 뜬금없는 명령처럼 보여도 그것이 자신의 부르심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다음 단계로 이끄시지만, 불순종하면 더 큰 일을 맡기실 수 없다. 여호수아의 축복은 자신의 생각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명령 앞에서 모세의 말을 믿고 전쟁터로 나간 데서 시작되었다.

4. 여호수아는 왜 모세의 명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했는가?

  여호수아는 모세를 처음 만난 낯선 사람처럼 대하지 않았다. 그는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과 홍해가 갈라진 사건을 보았고, 물이 없는 광야에서 반석으로부터 생수가 나온 일과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린 일을 지켜보았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시면 모세가 이런 일을 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에게 모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였고, 그의 명령은 단순한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받아들여졌다.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받으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누구를 지도자로 세우셨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인정하지 않는 사람의 말에는 순종하기 어렵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임을 알고 그의 명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면, 자신의 경험과 능력이 부족해도 믿음으로 움직일 수 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지파 사람도 아니고 사위도 아니었지만 모세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인정했기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전쟁터로 나갔다.

  전쟁이 끝난 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고 하셨다. 개역개정의 “귀에 외워 들리라”는 표현은 앞으로 많은 전쟁을 치를 여호수아에게 승리의 원리를 반복하여 잊지 않도록 각인시키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원리는 자기 편의 병력과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승리했다는 사실이었다. 모세는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 곧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고 불렀다(출 17:14-16).

출 17:14-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필자는 이 전투를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를 상상하여 설명했다. 낫이나 쇠스랑 같은 농기구를 든 이스라엘 앞에 낙타 부대가 달려올 때 모래바람이 불어 적의 눈을 가리거나, 다시 싸울 때 갑자기 폭우가 내려 적의 진영을 휩쓰는 장면이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세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든 약한 이스라엘을 도우셨음을 보여 주기 위한 가상적인 예시다. 분명한 성경의 결론은 여호수아가 싸웠고 모세가 기도했으며 여호와께서 승리를 주셨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훗날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더욱 분명히 선언되었다. 다윗에게는 칼과 창과 단창이 없었지만 그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갔다. 물맷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자 다윗은 골리앗의 칼로 그의 목을 베었다. 승리는 무기의 크기에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께서 누구의 손에 적을 넘기시는가에 달려 있다. 그래서 다윗은 전쟁이 여호와께 속했다고 선포했다(삼상 17:47).

삼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여호수아는 아말렉 전쟁을 통하여 하나님의 종의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이것이 훗날 여리고성을 앞에 두고도 두려워하지 않은 밑바탕이 되었다. 칼싸움으로 무너뜨릴 수 없는 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마지막 날 일곱 바퀴를 돈 뒤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고 백성이 외치라는 명령에도 순종할 수 있었다. 이미 그는 승리의 원리가 인간의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배웠기 때문이다.

5. 엘닷과 메닷 사건의 책망은 여호수아를 어떻게 바로잡았는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회막을 떠나지 않고 모세 곁에서 섬겼으며 자신을 모세의 오른팔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약 일 년 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속에 숨어 있던 시기와 잘못된 충성심을 드러내셨다. 큰 사명을 맡을 사람에게 능력과 순종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품는 성품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모세가 혼자 백성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장로 칠십 명을 세워 짐을 나누게 하셨다. 그들이 회막에 모였을 때 여호와의 영이 임하여 예언했지만, 엘닷과 메닷 두 사람은 진중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회막에 나오지 않은 그들에게도 같은 영이 임하여 진중에서 예언하기 시작했다. 한 소년이 이 소식을 모세에게 알리자 여호수아는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라고 요청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권위 밖에서 예언하는 사람들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겉으로 보면 스승의 권위를 지키려는 충성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세는 그 안에서 시기를 보았다. 자신은 목숨을 걸고 싸웠고 늘 회막 곁을 지켰는데, 회막에 나오지도 않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아 예언하니 마음 한쪽에서 “왜 나는 아니고 저들인가”라는 질투가 일어난 것이다. 주의 종을 위한다는 명분 속에 자기 위치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을 수 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자신을 두고 시기하느냐고 물으며, 여호와께서 모든 백성에게 그의 영을 주셔서 모두 선지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모세는 자신의 권위가 줄어들까 염려하지 않았다. 더 많은 사람이 성령을 받고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바랐다. 참된 지도자는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은사를 막는 사람이 아니라 온 백성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지기를 기뻐하는 사람이다(민 11:27-29).

민 11:27-29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전하여 이르되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나이다 하매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이르되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책망은 여호수아의 삶에서 드러난 거의 유일한 큰 잘못이었다. 그러나 그는 변명하거나 대들지 않았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음을 막으려다가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는 책망을 들었던 것처럼, 여호수아도 스승을 위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더 큰 뜻을 가릴 수 있음을 배웠다. 자기 사명은 다른 사람의 은사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전쟁을 충성스럽게 수행하는 데 있었다.

  여호수아는 이 사건 이후 자기 길을 분명히 알았다. 남이 쓰임받는 것을 시기하지 않고, 모세가 명령하면 묵묵히 나가서 맡은 일을 행했다. 하나님께서는 잘못이 전혀 없는 사람만 쓰시는 것이 아니다. 책망을 받을 때 변명하지 않고 자기 잘못을 발견하여 고치는 사람을 쓰신다. 시기와 질투는 사역자를 무너뜨릴 수 있지만, 책망을 받아들이는 겸손은 그를 더 큰 사명에 합당한 그릇으로 만든다.

6. 여호수아는 왜 절망적인 환경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는가?

  아말렉 전쟁으로부터 얼마 뒤 여호수아는 열두 정탐꾼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가나안 땅을 사십 일 동안 정탐했다. 그 땅은 포도송이 하나 달린 가지를 두 사람이 메고 올 만큼 비옥했고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그러나 성읍들은 견고하고 매우 컸으며 그곳에는 네피림의 후손으로 묘사된 기골이 장대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열 명의 정탐꾼은 자신들이 메뚜기처럼 보인다며 그 땅을 정복할 수 없다고 보고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같은 환경을 보았지만 다른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성벽의 높이와 적의 체격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먼저 보았다.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 그들을 그 땅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이며, 그 땅 백성은 이미 보호자를 잃었으므로 이스라엘의 먹이라고 선포했다. 아말렉 전쟁에서 무기와 경험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승리한다는 사실을 이미 체험했기 때문이다(민 14:7-9).

민 14:7-9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하나님께 쓰임받을 사람은 절망적인 환경을 보면서도 절망에 붙잡히지 않는다. 불리한 조건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성벽은 실제로 높았고 적은 실제로 강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 환경보다 더 크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불리한 조건을 바꾸실 수 있다고 믿는다. 여호수아에게 진짜 현실은 눈앞의 거인이 아니라 약속하신 하나님이었다.

  이 원리는 오늘의 회개와 영적 전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회개하려 할 때 악한 영은 두려움을 주고 몸을 누르며 사건과 사고를 일으키고 머리를 아프게 하여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회개하면 예수님의 피가 들어오고, 그 피가 들어오면 귀신이 밀려난다. 조상의 죄가 많은 사람은 회개의 분량도 더 채워야 하지만, 천 번이라도 계속 회개하면 악한 영의 세력은 밀려난다. 지금 당장 나타나는 방해보다 회개하면 깨끗하게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믿어야 한다.

  필자도 처음 회개할 때 몸에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으로 태어나 이 두려움도 이기지 못한다면 누구에게 회개를 전할 수 있겠느냐고 결단했다. 당시에는 보혈을 바르는 법을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나에게 두려움을 주는 모든 영과 십자가 세운다”라고 약 이십 번 선포했고, 그때 평강이 임했다. 경험을 통하여 두려움을 주는 영보다 십자가의 권세가 더 크다는 것을 배웠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고 이기셨다. 악한 영에게 능력이 남아 있어 사람을 괴롭힐 수는 있지만, 예수께서 그들의 계급장을 떼어 무장 해제하셨으므로 성도의 믿음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성도는 십자가를 세우고 보혈을 바르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해야 한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므로 귀신의 세력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골 2:15).

골 2: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물질이 없고 헌신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고 절망할 필요도 없다. 물질을 막는 영을 회개로 몰아내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할 길도 열린다. 중요한 것은 지금 보이는 형편이 최종 결론이라고 믿지 않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거인과 요새를 보고도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고 선포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이 진짜 현실임을 믿고 회개와 영적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

7. 반복된 작은 순종은 여호수아를 어떻게 능숙한 장수로 만들었는가?

  사람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배우지 못하고 하나님께서도 처음부터 모든 능력을 한꺼번에 주시지 않는다. 여호수아는 아말렉과의 첫 전쟁 한 번으로 완성된 장수가 된 것이 아니다. 작은 명령에 순종하고 실제 전쟁을 반복하여 치르면서 전쟁에 능숙한 사람으로 빚어졌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평생 사명에 맞추어 적의 강도와 전쟁의 규모를 조금씩 높이며 훈련하셨다.

  필자는 여호수아가 죽을 때 백십 세였다는 말씀과 광야 생활 사십 년, 가나안 정복과 기업 분배에 걸린 기간을 종합하여 그의 나이를 계산한다. 그 계산에 따르면 여호수아는 아말렉과 싸울 때 약 오십오 세였고, 약 구십오 세에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정복을 시작했다. 이는 성경이 각 사건에서 그의 나이를 직접 밝힌 것이 아니라 설교에서 제시한 연대 계산이다. 분명한 사실은 여호수아가 백십 세까지 살았고 나이가 많아져도 사명을 내려놓지 않았다는 것이다(수 24:29).

수 24:29 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가나안 진입을 앞두고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상대하게 하셨다. 특히 옥은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로서 그의 철 침상은 길이가 아홉 규빗, 너비가 네 규빗이었다. 보통 규빗으로 계산하면 길이 약 사 미터 오 센티미터, 너비 약 일 미터 팔십 센티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침상이다. 이는 장차 가나안에서 상대할 거인 족속과의 전쟁을 미리 훈련하는 과정이었다(신 3:11).

신 3:11 (르바임 족속의 남은 자는 바산 왕 옥뿐이었으며 그의 침상은 철 침상이라 아직도 암몬 족속의 랍바에 있지 아니하냐 그것을 사람의 보통 규빗으로 재면 그 길이가 아홉 규빗이요 너비가 네 규빗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옥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그와 그의 백성과 땅을 이미 이스라엘의 손에 넘겼다고 선언하셨다. 앞서 시혼에게 행한 것처럼 옥에게도 행하라고 하셨다. 여호수아는 아말렉에게 승리한 뒤 시혼과 옥을 이기며, 적의 몸집과 무기의 크기가 승패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듭 체험했다. 전쟁을 치를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과 실제 전투를 수행하는 능력이 함께 자라났다(민 21:34).

민 21:3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와 그의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나니 너는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인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 같이 그에게도 행할지니라

  필자의 축사 사역도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시작한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성령의 불이 어떻게 들어가는지도 몰랐지만 계속 기도하고 귀신을 쫓아 보면서 불이 들어가는 정도와 귀신이 머무는 위치를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하나씩 순종하고 실제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다음 것을 알려 주셨다. 영적 전쟁도 이론만 공부해서 능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싸움부터 계속 수행하면서 분별력과 권세 사용이 자라난다.

  여리고성은 수천 년 동안 누구도 정복하지 못한 천연 요새와 같았지만 여호수아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육 일 동안 하루 한 바퀴씩 돌고, 일곱째 날 일곱 바퀴를 돈 뒤 나팔을 불고 외치면 성벽이 무너질 것을 믿었다. 아말렉과 시혼과 옥을 거치며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는 사실이 그의 뼛속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반복된 작은 순종이 그를 가나안 정복을 감당할 능숙한 장수로 만들었다.

8. 여호수아의 충성은 천국의 지위와 상급에 어떻게 이어졌는가?

  여호수아는 모세보다 작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필자가 천국에서 확인한 그의 지위는 모세와 같은 높이에 있다. 천국에서 여호수아는 구약의 인물 가운데 아브라함과 노아 다음으로 높은 반열에 속하고, 모세와 더불어 십일 층 집을 가진 사람으로 소개된다. 그는 이스라엘의 이십사 장로 가운데 한 사람이며 이십사 마을 가운데 여호수아 마을의 대표다. 그 마을에는 함께 믿음으로 싸웠던 갈렙도 들어가 있다.

  여호수아는 천국에서 네 개의 면류관을 받았다. 원문에서 분명히 언급된 면류관에는 충성의 면류관, 승리의 면류관,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이 있다. 주님께서 그를 자랑으로 여기신 까닭은 자신의 능력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는 조건이 모두 갖추어진 뒤에 순종한 사람이 아니다. 능력과 경험이 없을 때 명령을 먼저 따랐고, 하나님께서는 그 순종 위에 필요한 능력과 경험을 더하셨다.

  천국의 지위와 상급은 이 땅에서 맡은 사명과 무관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여호수아는 아말렉과의 작은 전쟁을 거절하지 않았고, 모세에게 책망받을 때 변명하지 않았으며, 열 명의 정탐꾼이 절망적인 보고를 할 때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다. 또한 오십 대부터 아흔이 넘도록 계속 싸우며 가나안 땅을 정복했다. 이 모든 순종과 충성이 천국에서 영원히 누릴 지위와 상급으로 연결되었다.

  지금은 마지막 때이며 영적 전쟁을 수행해야 할 때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이루기 원하시는 일에 동참할 사람을 찾으신다.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은 회개를 전하고 천국복음을 전하며 악한 영에게 눌린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하여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여호수아의 길을 따라갈 수 있다.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지도자의 말씀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받아들이고, 절망적인 환경보다 말씀을 더 신뢰하며, 영적 전쟁을 실제로 수행해야 한다.

  주의할 것도 있다. 영적 지도자에게 순종한다는 말은 사람을 맹목적으로 따르라는 뜻이 아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증거를 오랫동안 지켜본 뒤 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엘닷과 메닷 사건에서는 모세의 책망을 통하여 자기 판단이 잘못될 수 있음을 배웠다. 참된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안에서 이루어지며, 자기 욕심과 시기를 내려놓고 맡은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큰 능력을 이미 갖춘 사람만 찾으시는 것이 아니다. 여호수아처럼 작은 명령 앞에서 “해 본 적이 없다”고 물러서지 않고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을 찾으신다. 그가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전쟁을 도우시고, 반복되는 훈련을 통하여 능숙한 사람으로 만드신다.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작은 일이 장차 천국에서 받을 놀라운 지위와 상급의 출발점일 수 있다. 그러므로 부르심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지금 순종해야 한다.

9. 나오며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주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와 그의 충성이 천국의 지위와 상급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살펴보았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의 믿음의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혈통만으로 후계자가 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맡기신 아말렉과의 첫 전쟁에 순종하고, 모세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으며, 작은 싸움부터 계속 감당했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준비된 후계자로 세우셨다.

  여호수아의 첫째 특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알아보고 그의 명령에 순종한 것이다. 둘째 특징은 눈에 보이는 절망적이고 불리한 환경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신뢰한 것이다. 셋째 특징은 작은 일을 반복하여 실천함으로 가나안 정복을 감당할 능숙한 장수가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시작하여 시혼과 옥과의 전쟁을 거치게 하시고, 마침내 여리고성과 가나안 족속들을 정복하게 하셨다.

  엘닷과 메닷 사건의 책망도 그의 준비 과정이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위한다는 명분 속에 숨어 있던 시기와 자기 위치에 대한 욕심을 발견했다. 그는 변명하지 않고 책망을 받아들여 자기 사명에 집중했다. 하나님께 쓰임받으려면 능력만 키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성령을 받고 쓰임받는 것을 기뻐하며, 책망을 받을 때 자기 잘못을 고치는 성품을 갖추어야 한다.

  오늘 우리 앞에도 아말렉과 거인과 견고한 성처럼 보이는 환경이 있다. 회개를 방해하는 악한 영과 물질의 막힘과 두려움이 있어도 그것을 최종 현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 십자가로 악한 영의 권세를 무장 해제하셨다는 말씀을 믿고, 십자가를 세우고 보혈을 바르며 영적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 경험과 능력이 부족해도 작은 명령부터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능력을 더하시고 사명에 합당한 사람으로 빚으신다.

  천국의 지위와 상급은 이 땅에서의 믿음과 순종으로 준비된다. 구원받았다는 사실에만 머물지 말고 하나님께서 지금 맡기신 사명을 발견해야 한다. 영적 지도자를 통하여 주시는 훈련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환경보다 말씀을 신뢰하며, 회개와 천국복음과 축사 사역에 충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여호수아처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천국의 높은 지위와 풍성한 상급을 얻도록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8월 05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구약 성경의 여호수아가 어떻게 모세의 뒤를 잇는 위대한 영적 지도자로 성장하고 천국에서 높은 지위와 상급을 얻게 되었는지를 세 가지 핵심 원리로 설명합니다. 첫째로 여호수아는 자신의 한계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며 절대적으로 순종함으로써 전쟁의 승리가 여호와께 속해 있음을 체험하였습니다. 둘째로 그는 눈에 보이는 절망적인 환경이나 육체적 조건보다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더 신뢰하는 긍정적인 신앙의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임무부터 시작해 영적 전쟁의 실전 경험을 쌓으며 점진적으로 준비된 일꾼이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이 메시지는 현대의 성도들이 회개와 순종을 통해 각자의 사명을 완수함으로써 장차 천국에서 누릴 영광스러운 지위를 예비해야 한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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