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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8. 14. (금)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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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Zolp4zYUE70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64)] 이사야의 예언(24) 메시야가 주실 복을 받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사66:1~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Zolp4zYUE70

 

기독론(164)

이사야의 예언 (24)

메시야가 주실 복을 받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사 66:1-6)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들어 쓰신 가장 귀한 선지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기록된 선지서 가운데 이사야서는 보다더 이른 시기의 예언서이며, 그 내용의 풍성함으로 보아 이사야는 으뜸가는 선지자라 할 만하다. 선지자로 부름받은 사람이 전해야 할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장차 오실 구원자 곧 메시야가 누구시며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인지를 알려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치는 것이다. 고로 참된 선지자는 메시야를 증언하며 동시에 회개를 촉구한다.

  하나님께서는 가짜 메시야에게 속지 않도록 장차 오실 메시야의 출생과 사역을 미리 알려 주셨다. 메시야는 처녀에게서 태어나며, 베들레헴에서 나시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가 앞서 그의 길을 준비한다(사 7:14, 미 5:2, 사 40:3). 누구든지 스스로 메시야나 재림주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메시야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신 약속과 실제 성취가 서로 맞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공부하는 까닭은 참된 구원자를 알아보고 거짓된 구원자에게 속지 않기 위함이다.

  필자도 한때 대한민국 사람이 왜 서양에서 들어온 종교를 믿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였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종교를 살피고, 성경의 족보와 하나님의 선택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추적하였다. 필자는 우리 민족을 욕단의 후손과 연결하여 이해하며, 마지막 시대에 대한민국을 쓰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현재 어느 민족으로 태어났느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바른 복음을 듣고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

  성경의 구원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약속은 선택된 계보를 따라 이어진다. 아브라함의 아들들 가운데 이삭이 약속을 이었고, 이삭의 두 아들 가운데 야곱이 선택을 받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과 구원의 약속이 성경에 기록되었고, 그 계보를 통하여 메시야가 오셨다. 필자는 우리 민족의 팔괘와 여러 유물에 나타난 ‘여덟’의 흔적도 노아의 여덟 식구와 연결되어 있음을 살펴보았다. 고로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선민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타락한 이스라엘 말고 전 세계를 복음을 변화시킬 민족은 대한민국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그건 1885년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사들로부터 예수님을 받아들였는데, 세계 유래가 없는 기독교인들을 산출하는 민족이 되었다. 결국 민족적 자부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약속된 메시야를 알아보고 그분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사야서는 메시야를 풍성하게 증언하지만, 그 메시야께서 주실 구원의 복을 실제로 받기 위해 사람이 해야 할 책임도 분명히 밝힌다. 메시야는 오셔서 인류의 구원을 이루신다. 이때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여 회개하고 그분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사야서는 1장에서 회개를 외치며 시작하고 66장에서 통회하고 말씀 앞에 떠는 자를 하나님께서 돌보신다고 선언하며 마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메시야께서 누구시며 어떤 복을 주시는지, 그리고 그 복을 받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선지자가 전해야 할 구원의 두 핵심은 무엇인가?

  선지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구약의 선지서들을 살펴보면 크게 2가지인 것을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장차 오실 메시야가 누군지를 전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해야 할 첫째 사역은 구원자이신 메시야를 전하는 일이다.

  아담 이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에서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 아무리 위대한 성인이나 선지자라도 사람인 이상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속죄할 수 없다. 모세와 다윗과 바울도 하나님의 귀한 종이었으나 모두 죄인으로서 구원받아야 할 인간이었다. 오직 하나님이시면서 참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흠 없는 속죄 제물이 되실 수 있다. 처녀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사람으로 태어나셨으나 그 존재는 하나님이셨기에 우리의 죄를 담당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마 1:20-23, 요 1:1,14).

  그러므로 구원의 역사는 전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다. 하나님이 아들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지 않으셨다면 인류에게는 구원의 길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속죄에 무엇인가를 보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누구시며 십자가와 부활로 무엇을 이루셨는지를 믿고 인정해야 한다. 구원의 근거는 인간의 열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다.

  고로 하나님께서 메시야에 관한 수많은 예언을 미리 주신 까닭도 여기에 있다. ‘내가 메시야다’라는 자기 주장만으로는 참됨을 증명할 수 없다. 출생과 사역과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한 예언이 실제 삶에서 성취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우연히 위대한 종교 지도자가 된 분이 아니라, 성경이 오랫동안 약속한, 적어도 365가지의 예언을 성취하신 분이다. 필자가 우리나라 역사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더 깊이 공부하게 된 것도 그 역사가 생명길을 보여 주는 약속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선지자가 전해야 할 두 번째 사역은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다. 선지자 사역의 두 번째 핵심은 회개인 것이다. 신약을 보라.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보다 먼저 와서 광야에서 주의 길을 준비하며 회개를 선포하였다(사 40:3-5). 예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외치셨다(마 3:1-3, 4:17).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의 성취자이지만,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분께 돌아와 그분을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참된 복음은 메시야만 말하고 회개를 빼서도 안 되며, 회개만 말하고 예수님의 속죄를 빼서도 안 된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이 구원의 온전한 길이다(막 1:15).

  필자는 언제나 ‘믿음으로만(only faith)’이라는 표현을 앞세워 회개를 구원에서 떼어 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왔다.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가 필요하고, 믿은 뒤에도 죄를 지었다면 그 죄를 자백하고 다시 돌이켜야 한다. 승천하여 하늘에 계신 예수께서는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는다고 말씀하셨다(계 22:14). 믿음은 회개를 폐하지 않는다. 참된 믿음은 죄를 붙든 채 안전하다고 말하지 않고, 죄를 깨달을 때마다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씻음을 받게 한다.

  회개는 생명을 만들어 내는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받기 위한 선행 단계다. 죄를 사랑하면서 생명의 주님을 영접할 수 없기에 죄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믿은 뒤에도 죄가 발견되면 즉시 자백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선지자가 메시야와 회개를 함께 전해야 하는 까닭은 이 둘이 구원의 복음 안에서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3. 이사야는 오실 메시야의 정체와 사역을 어떻게 증언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믿어야 할 대상으로서 메시야는 어떤 분이실까? 예수님보다 700년전에 살았던 이사야는 바로 그 메시야가 어떤 존재인지와 그분이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를 가장 풍성하게 예언한 선지자이다. 그가 증언한 메시야의 정체는 실로 풍성하다.

  먼저, 이사야는 메시야가 누군지를 이렇게 알려주었다. 메시야 그분은 한 분 하나님이시며 처음과 마지막이시다. 구원자와 구속자이시고 희년을 선포하시는 분이다. 한 아기와 아들로 오신 하나님 자신이며, 다윗에게서 나오는 의로운 가지이시다.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이며 참목자이시고, 믿는 자에게는 모퉁잇돌이지만 거역하는 자에게는 부딪치는 돌이 되신다. 다시 오실 심판자이시며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분이다(사 9:6, 11:1-5, 28:16, 40:10-11, 43:10-11, 53:1-12, 61:1-2, 65:17).

  그리고 이어서 이사야는 메시야가 오시면 구체적으로 이 땅에서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에 대해서도 예언하였다. 첫째, 처녀에게서 태어나신다. 둘째,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다. 셋째,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신다. 넷째, 마귀에게 눌린 자와 포로된 자를 해방하신다. 다섯째, 맹인의 눈을 밝히고 못 듣는 자의 귀를 열며 저는 자를 걷게 하는 등의 치료를 행하신다(사 7:14, 11:1-2, 35:5-6, 42:7, 61:1-2).

  예수님은 피곤하여 쉬시고 음식을 드셔야 했던 참사람이셨지만, 동시에 죄를 사하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셨다. 여호와와 예수라는 이름은 사실 한 분 하나님께서 구원 경륜 속에서 자신을 나타내신 이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기와 아들로 오신 메시야를 단순한 피조물이나 위대한 인간으로 낮추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속죄와 부활과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이신 메시야가 사람으로 오셨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여섯째, 우리의 죄와 저주를 담당하신다. 일곱째,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어 음부에 내려가신다. 여덟째, 죄가 없으시므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신다. 아홉째, 성령을 보내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를 세우신다. 열째, 다시 오셔서 심판하시고 상을 주시며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한 왕국으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신다(사 53:4-12, 65:17-25). 이 모든 사역은 한 분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 경륜을 메시야께서 완성하시는 연속된 역사다.

  메시야는 사실 우리의 죄만이 아니라 질병과 저주의 문제까지 담당하셨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며,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될 수 있었던 것이다(사 53:4-5). 그분은 죽음과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으며, 믿는 자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 부활 생명으로 이끄신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마련된 은혜가 내 삶에 효력을 나타내려면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께 돌아가야 한다. 잘 차려진 음식도 먹어야 몸의 양식이 되듯, 메시야께서 마련하신 속죄와 해방의 복도 회개하고 믿음으로 받아야 한다.

  그런데 메시야의 사역을 보면 어떤 분명한 순서가 있다. 죄 없는 사람으로 오셔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복음을 전하시며, 병든 자와 눌린 자를 고치셨다. 이어 우리의 죄를 담당하여 죽으시고 음부에 내려가셨으나 죄가 없으므로 그곳에 붙잡혀 있을 수 없었다. 부활하신 뒤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자신을 보이시고 승천하셨으며, 성령을 보내 교회를 세우셨다. 장차 다시 오셔서 악을 심판하고 자기 백성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신다. 어느 한 부분만 떼어 내지 말고 이 구원 경륜 전체를 믿어야 한다.

  그런데 이사야는 메시야에 대해서만 예언하지 않고, 구원을 방해하는 사탄의 교만과 심판까지도 함께 보여 주었다. 바벨론 왕을 빗대어 묘사된 사탄의 존재는 하나님의 뭇별 위에 자기 보좌를 높이고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려 하다가 스올 곧 음부의 맨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사 14:12-15). 사탄은 사람을 속여 참된 메시야를 보지 못하게 하고 회개하지 못하게 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메시야의 정체와 사역을 분명히 아는 일과 자기 죄를 회개하는 일은 영적 전쟁에서도 서로 분리될 수 없다.

4. 메시야가 주실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은 누가 받는가?

  이사야 65장과 66장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한다(사 65:17, 66:22). 메시야께서 주실 궁극적인 복은 잠시 형통하고 건강해지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죄와 사망이 없는 영원한 왕국에 들어가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는 것이 구원의 종착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은 세상에서 복만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새 하늘과 새 땅, 곧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영원한 처소에 들어가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러한 복을 받는가?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는 자를 돌보신다고 말씀하신다(사 66:2).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신에게 구원할 능력이나 자랑할 의가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심령에 통회한다는 것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부서지는 것이다. 말씀을 듣고 떤다는 것은 심판의 말씀을 남의 이야기로 넘기지 않고 자신의 삶을 비추어 순종하는 것이다.

사 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예수께서도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이 있다고 말씀하셨다(마 5:3).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사람은 자신이 이미 충분히 의롭다고 여기지 않는다. 하나님의 빛 앞에서 자신의 죄를 보고, 그 죄 때문에 마음 아파하며, 말씀에 어긋난 길을 버린다. 회개는 천국을 얻기 위한 인간의 공로가 아니다. 예수께서 열어 놓으신 생명의 길로 돌아가는 믿음의 반응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은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것처럼 이름만 어떤 공동체에 올려놓는다고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노아 시대에 방주에 들어가 구원받은 사람은 여덟 명뿐이었다(벧전 3:20). 교회 안에 있다는 사실은 귀한 시작이지만, 끝까지 말씀을 거역하고 죄를 붙들어도 괜찮다는 보증은 아니다.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고 날마다 두루마기를 빠는 사람이 생명나무와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는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녀로 양육하셨으나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버렸다고 탄식하셨다. 소와 나귀도 주인과 주인의 구유를 알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였다(사 1:2-4).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이름이나 예배드리는 종교 생활이 그들을 자동으로 구원하지 못했다. 오늘 우리도 교회에 다니고 직분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알고 그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5. 하나님은 왜 회개 없는 제사와 기도를 가증히 여기시는가?

  이사야 66장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소와 어린양을 드리고 예물을 바치며 분향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면 제사와 절기를 성실히 지킨 신앙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제사를 살인과 같고, 개의 목을 꺾는 것과 같으며, 돼지의 피와 우상을 숭배하는 것처럼 여기셨다. 그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의 길이 아니라 자기 길을 택하고, 마음으로 가증한 것을 기뻐하면서 종교 행위만 지속했기 때문이다(사 66:3-4).

  그런데 이러한 책망은 이사야 1장에서도 동일하게 나온다. 백성은 수많은 제물을 드리고 성전에 모이며 월삭과 안식일과 절기를 지켰다. 손을 펴서 많이 기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손에 피가 가득하고 일상에서는 악을 행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당만 밟는 예배와 악을 함께 행하는 집회를 견디지 못하겠다고 하셨다(사 1:10-15). 이사야 58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금식도 하였지만, 금식하는 날에 자기 쾌락을 구하고 일꾼을 압제하며 다투고 주먹으로 쳤다. 회개 없는 금식은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 것이다(사 58:3-5).

  사실 제사드릴 때에 사용하는 제물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죄인이 제물을 드릴 때에는 자기 죄 때문에 흠 없는 생명 곧 예수께서 오셔서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애통해야 했다. 그러나 백성은 죄를 끊을 생각 없이 ‘또 죄를 지으면 다른 양이나 소를 바치면 된다’는 식으로 여겼다. 제물만 드리면 끝난다는 태도 속에는 메시야의 희생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도, 자기 죄를 미워하는 마음도 없었다. 오늘날 예배에 참석했으니 구원받았다고 안심하면서 한 주간 계속 악을 행한다면 그들과 다르지 않다.

  교회가 회개를 잃으면 예배는 공연이 되고 신앙은 외식이 된다. 화려한 순서와 많은 행사로 사람을 즐겁게 할 수는 있어도, 죄를 슬퍼하고 악한 행실을 버리는 일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아니다. 성가대에서 거룩한 노래를 부르고 집에 돌아가 가족을 상처 입히며, 교회에서는 경건해 보이지만 일터에서는 거짓과 불의를 행한다면 예배와 삶이 갈라진 것이다. 하나님은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라 손과 발의 열매를 보신다.

  교회가 타락하는 데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고, 회개를 가르치지 않으며, 세속적인 즐거움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큰 규모와 화려한 공연이 회개의 열매를 대신할 수 없다. 교회는 사람을 잠시 행복하게 해 주는 장소에 머물지 않고, 죄인이 메시야를 만나 돌이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자는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는 말보다 죄와 의와 심판을 분명히 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악한 행실을 버리고 행악을 그치라고 명하신다. 또한 선행을 배우고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고 하신다(사 1:16-17). 참된 예배는 죄를 인정하고 씻음을 받은 사람이 삶에서 악을 떠나 선을 행하는 데까지 이어진다. 회개 없는 예배는 하나님께 무거운 짐이지만, 통회하는 심령에서 드리는 예배는 사람을 새롭게 한다.

6. 회개는 왜 사람이 의지적으로 감당해야 할 책임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를 완성하셨다고 해서 사람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십자가를 지고 죗값을 치르는 일은 주님만이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회개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대신 회개해 주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지 않고 “회개하라”고 명한다. 회개할 수 있기에 회개하라고 하신 것이다(마 4:17, 행 17:30).

  회개는 감정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의지를 사용하여 죄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하기 싫어도 하나님 말씀 앞에 앉아 자신의 말과 행동과 마음을 살펴야 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고백하고, 핑계와 남 탓을 멈추며, 그 죄에서 돌이키기로 선택해야 한다. 그 과정을 계속하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뜻이 보이고, 자기 죄가 가족과 이웃에게 끼친 상처를 깨닫게 되며, 마침내 마음에서 통곡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죄를 구체적으로 인정할 때 회개는 막연한 후회에서 실제적인 돌이킴으로 나아간다. ‘죄를 지었습니다’라는 한마디로 덮지 말고 어떤 말로 누구를 상처 입혔는지, 어떤 욕심과 교만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는지 고백해야 한다. 그때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에게 사과하고, 되돌려야 할 것이 있으면 돌려주며, 다시 죄로 향하게 하는 통로를 끊을 수 있다. 회개의 깊이는 말의 양보다 죄를 버리는 순종으로 드러난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나온 고백은 자신이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인정하는 것이었다(사 6:1-5). 하나님을 참으로 만나면 남의 죄보다 자기 죄가 먼저 보인다. 베드로도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경험한 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다(눅 5:8).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수록 적당히 자신을 합리화할 수 없고,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게 된다.

  필자도 어린 시절 섣달 그믐날이면 어머니의 손을 잡고 무당을 찾아다녔다. 우리 민족이 원래는 하늘을 섬기던 흔적을 가지고 있었으나,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지 않은 가운데 신내림을 받은 무당과 귀신에게 속아 5천년을 살았다. 그래서 필자 역시 그러한 우상숭배의 환경과 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은 뒤 회개기도문을 만나 구체적으로 죄를 고백하면서, 자신과 가정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를 깨닫고 통곡하였다. 필자에게 회개는 삶을 살린 가장 큰 보화가 되었다.

  회개를 의지적 책임으로 받아들일 때 예정론을 핑계 삼아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게 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언젠가 나를 회개시키실 것’이라고 미루는 동안 죄는 계속 쌓이고 마음은 굳어진다. 하나님은 지금 돌이키라고 말씀하신다.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할 힘을 주시지만, 죄를 붙들 것인지 버릴 것인지는 사람이 결단해야 한다. 오늘 회개를 미루지 않는 것이 메시야께서 주실 복을 받아 누리는 첫걸음이다.

7. 참된 회개는 자기의 길과 생각을 어떻게 버리게 하는가?

  회개는 무엇인가? 이사야가 말씀하고 있는 회개란 첫째,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다(사 30:15, 31:6, 44:22, 55:6-7). 자신의 생길과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사 55:6-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악인은 자기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자기 생각을 버린 뒤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하셨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너그럽게 용서하실 것이라고 하셨다(사 55:6-7). 죄를 몇 가지 말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삶의 주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바꾸는 것이 회개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길이 하나님의 생각과 길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길과 생각은 사람의 것보다 높다(사 55:8-9).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기 경험과 교리와 상식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만들 수 있다. 성경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라고 하는데도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귀신을 말하느냐’며 자기 생각으로 말씀을 밀어낼 수 있다. 그러나 회개는 말씀에 맞지 않는 삶을 살면서도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을 내려놓고, 예수께서 가르치고 행하신 길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더러 돌아오라고 하신 것인가?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하면서 어려움이 오면 강대국의 힘을 찾았기 때문이다. 앗수르가 강하면 앗수르를 의지하고, 애굽이 강하면 애굽을 의지하였다. 하나님은 그러한 의존을 책망하시고, 마침내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하여 그들의 헛된 의지처를 드러내셨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고레스 왕을 사용하여 포로된 백성을 돌아오게 하실 것을 미리 말씀해 주셨다(사 10:5-19, 30:1-5, 44:28-45:7). 심판 중에도 돌아오는 자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으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길을 버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죄를 낳는 자신의 생활 방식을 실제로 끊는 것이다. 자기 생각을 버린다는 것은 말씀보다 앞세웠던 판단과 교만을 내려놓는 것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모두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 ‘교회만 다니면 괜찮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가정의 아픔과 자녀와 후손의 어려움을 볼 때도 무조건 다른 사람과 환경만 탓하지 말고, 나의 죄와 조상의 우상숭배를 통하여 악한 영이 영향을 미칠 길을 내어 준 것은 없는지 살펴 회개해야 한다.

  자기 길을 고집하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 결정에서는 세상의 힘을 택하게 된다. 돈과 권력과 사람의 인맥이 있어야 안전하다고 여기며 하나님께 묻지 않는다. 반대로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은 자신의 계획을 말씀 아래 내려놓고, 손해가 있더라도 정직과 순종을 택한다. 회개는 생각 속의 종교적 동의가 아니라 의지처와 선택의 기준이 바뀌는 사건이다.

  필자는 먼저 믿게 된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가족에 대한 구원의 책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부르신 것은 나만 구원받고 끝내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가족이 복음을 듣고 회개하도록 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족을 위하여 한 일이 별로 없었다. 내 죄와 잘못된 영적 유산 때문에 자녀와 후손이 고통받았다’고 인정할 때 진실한 중보와 섬김이 시작된다. 조상의 영원한 운명을 후손이 바꾸는 것이 아니라, 피로 연결된 가정에 내려온 악한 영의 영향을 회개와 예수님의 이름으로 처리하며 살아 있는 가족을 생명길로 이끄는 것이다.

8. 통회하고 말씀 앞에 떠는 삶은 어떤 열매로 나타나는가?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하고 있는 회개는 둘째로, 자신의 죄에 대해 통회자복하는 것이다(사 57:15, 66:2). 하나님은 높고 거룩한 곳에 계시면서도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하시며, 겸손한 자의 영과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시기 때문이다(사 57:15). 참된 회개는 ‘잘못했습니다’라는 말만 반복하는 요식 행위가 아니다. 자기가 하나님 노릇 하며 가족을 주관하고, 남편이나 아내를 무시하고, 자녀에게 상처를 주며, 높은 자리에 서려 했던 죄를 구체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의 눈에 자신의 죄가 보일수록 마음이 아프고, 그 마음의 부서짐이 삶을 바꾸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눈물이 회개의 유일한 기준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회개하면서도 자기 죄 때문에 한 번도 마음 아파한 적이 없다면 회개가 형식이 된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처음에는 진실하게 회개했어도 시간이 지나면 횟수를 채우는 일이 될 수 있다. 회개기도문을 읽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내용을 통하여 실제 죄를 발견하고 인정하며 버리는 것이 목적이다. 항상 처음 은혜를 기억하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나 주님께서 나를 불러 주셨다’는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사야가 말하는 회개란 셋째로, 회개는 악을 버리고 선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사 1:16-17). 이때 회개의 열매는 성품과 생활과 가치관의 변화로 나타나야 한다. 지금 자신이 무엇에 시간과 물질과 달란트를 쓰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남는 시간을 오락에만 쓰고, 물질을 자기 즐거움에만 사용하며, 은사를 자기 이름을 높이는 데 쓴다면 삶의 중심은 아직 자기 자신인 것이다. 한 주의 첫날(주일)을 주님께 드리고 하루의 첫 시간(새벽기도)을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며, 하나님 나라와 영혼 구원을 위하여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사용하는 것이 회개의 열매다.

  그러므로 나의 가치관이 바뀌려면 우선순위도 바꾸어야 한다. 주일은 남는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날이 아니라 한 주의 첫 시간을 주님께 드리는 날이 되어야 한다. 새벽의 첫 시간도 형식적으로 자리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말씀을 받고 자신을 살피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물질도 자기 만족을 위하여 먼저 쓰고 남은 것을 드리는 데서 벗어나, 복음과 구제와 교회를 세우는 일에 기쁨으로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메시야께서 주신 복이 생활 속에서 열매 맺는 모습이다.

  그러나 내가 새벽기도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서도 안 된다. 잠시 앉아 졸다가 돌아가는 형식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자기 죄를 살피며 하나님 앞에 떨어야 한다. ‘내가 심판받을 일을 행했습니다. 주님, 용서해 주옵소서’라고 구체적으로 고백해야 한다. 말씀 앞에 떠는 사람은 설교를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기 전에 자신에게 적용하며, 잘못을 발견하면 즉시 돌이킨다.

  그중에서도 목회자의 회개는 특별히 중요하다. 교회를 이끄는 사람이 품은 죄와 영적 상태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주님은 일곱 교회의 사자들에게 말씀하시며 그들을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하셨다. 목회자가 타락하고 자기 죄를 감추면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누구보다 가슴을 치며 회개해야 하고, 성도들도 목회자가 말씀과 성령의 인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필자는 회개를 외친 뒤 자신의 삶과 사역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 어려운 시기에 약 50억 원 규모의 교회 건축을 진행하고, 성전에 유리창이 달리고 내부 벽이 세워지는 모습을 보며 감격하고 있다. 필자가 자랑할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회개를 깨닫고 온 힘을 다해 나누어 온 일뿐이다. 자기 교회 성도가 아닌 이들까지 건축을 위하여 헌금한 것은 회개와 복음을 전하려는 진실성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받은 은혜를 자신만 누리지 않고 유튜브와 여러 통로로 나누어 다른 이들도 회개의 길을 걷게 해야 한다.

  이처럼 참된 회개는 악을 떠나 선을 행하게 한다. 정의를 구하고 학대받는 자를 도우며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고, 가족에게 먼저 사과하며, 이웃의 영혼을 생명길로 이끈다. 예배와 기도와 금식도 삶의 순종과 하나가 된다. 이렇게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말씀 앞에 떠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메시야께서 마련하신 죄 사함과 해방과 천국의 복을 실제로 누리게 하신다.

9. 나오며

  선지자가 전해야 할 메시야와 회개의 두 핵심,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정체와 사역,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을 받을 사람의 조건을 살펴보았다. 또한 하나님께서 회개 없는 제사와 기도를 가증히 여기시는 까닭, 사람이 의지적으로 감당해야 할 회개의 책임, 자기 길과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과정, 통회하고 말씀 앞에 떠는 삶의 열매도 살펴보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사람으로 오신 유일한 구원자다. 그분은 우리의 죄와 저주를 담당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성령을 보내 새 백성을 세우시고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한 왕국으로 인도하신다. 사람의 공로나 종교 행위가 이 구원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구원의 모든 근거는 메시야께서 이루신 십자가와 부활에 있다.

  그러나 메시야께서 마련하신 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제사와 절기와 기도와 금식을 행하면서 자기 길과 생각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고 악한 행실을 버리며, 말씀에 맞지 않는 교리와 습관과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회개는 하나님이 대신 해 주시기를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오늘 내가 의지를 사용하여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자신과 가정의 죄를 살피고, 남과 환경을 탓하기 전에 나의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회개가 깊어질수록 성품과 말과 행동이 바뀌며, 시간과 물질과 달란트를 하나님 나라와 영혼을 위하여 사용하게 된다.

  특별히 목회자와 지도자는 자신의 죄가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두려워하며 먼저 회개해야 한다. 성도도 형식적인 예배에 머물지 말고 삶에서 악을 그치고 선을 행해야 한다. 처음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마음이 가난하며 심령에 통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자신을 비추어 즉시 돌이켜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을 온전히 믿고 날마다 진실하게 회개하며,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자가 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한 복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8월 14일(금)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이사야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와 인간의 진실한 회개라는 두 축으로 설명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형식적인 제사와 율법 준수에만 매몰되어 하나님을 떠난 상태임을 지적하며, 메시아가 주시는 참된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과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의지적 결단이 필수적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구원은 단순히 입술로 고백하는 지적 동의가 아니라, 자신의 죄를 통회하며 삶의 가치관과 우선순위를 바꾸는 구체적인 회개의 열매를 통해 완성된다는 점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마지막 시대의 성도들이 외식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 떠는 가난한 마음을 회복함으로써 천국 시민의 자격을 갖출 것을 촉구하는 목적을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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