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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8. 25. (화)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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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URL https://youtu.be/E8xcYOHRXMA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기독론(173)] 예레미야는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해 어떤 중요한 예언을 쏟아냈는가?(렘23:1~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E8xcYOHRXMA

 

기독론(173)

예레미야는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해 어떤 중요한 예언을 쏟아냈는가?

(렘 23:1-8)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구약의 중요한 직분에는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이 있다. 이 직분을 맡은 사람은 기름부음을 받았으며, 사무엘은 세 직분의 기능을 함께 보여 준 초기 인물이었다. 그중에서도 '다윗'은 왕직을 대표한 인물이었고, '아론'은 제사장을 대표하는 자였으며, '이사야'는 선지자로서 메시아의 탄생과 사역과 고난과 영광을 풍성하게 예언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직분을 온전하게 성취하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그분에게 '그리스도'라는 직책을 붙이는 이유는 예수께서 '기름부음받은 자'로서 완벽한 삶을 살으셨기 때문이다. 

  사실 선지자로서 대표적인 인물을 고르라고 하면 구약인물을 연구하신 분들은 단연코 '이사야'를 거론할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의 선지자들 중에 그만큼 메시야를 풍성하게 예언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보다 약 백 년 뒤쯤에 활동했던 '예레미야'와 '에스겔'과 '다니엘'도 저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한 선지자였다. 참고로 이 셋은 같은 시대에 다른 장소에서 활동했던 선지자들이다. 그중에서 '에스겔'은 환상 가운데 장차 이루어질 성전과 생명수의 강과 회복된 땅을 보았다. 그 환상에서 새 성전이 나오는데, 그것을 오늘날 천년왕국 시대에 지어질 성전이라고 해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한 예언은 100% 성취되지만 인간이나 민족에 대한 예언은 그들의 순종에 따라 일부는 성취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성취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러므로 인간을 향한 예언은 저 천국에서 완전하게 성취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100% 순종할 사람은 예수님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강가의 나무들을 보았는데, 신약시대 사도 요한은 생명수의 강과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를 보았다(겔 47:1-12; 계 22:1-2). 이는 인간을 향한 완전한 성취는 천국에서 실현된다는 것을 여실히 말해준다. 

  예레미야는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서, 베냐민 지파의 땅인 아나돗에 거주하고 있던 제사장이었다. 그는 요시야 왕 제13년인 주전 627년경 부름받아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약 41년 동안 예언했다(렘 1:1-3). 그는 제사장이면서 선지자로 부름받았기에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타락을 누구보다 자세히 알 수 있었고, 그들이 권력과 탐욕을 따라 거짓을 예언하는 모습을 날카롭게 책망할 수 있었다. 또한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현장을 지켜보며 백성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쳤다. 그러므로 그는 눈물의 선지자이자 회개의 선지자라고 불린다.

  예레미야서는 제1장의 그의 소명으로 시작된다. 제2장부터 제25장까지에는 유다를 향한 열두 가지 예언 묶음이 있고, 제26장부터 제33장까지에는 바벨론의 제3차 침공 전후 사건과 예언이, 제34장부터 제45장까지에는 함락 직후의 사건과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제30장부터 제33장까지는 심판 뒤의 회복을 말하므로 ‘위로의 책’이라 불린다. 그리고 제46장부터 제51장까지에는 애굽을 비롯한 열 나라를 향한 심판이 나오며, 제52장은 여호야긴의 회복을 전하는 부록 부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어떤 선지자로 부르셨을까? 예레미야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남유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워 나라들을 뽑고 파괴하며 다시 건설하고 심게 하는 사명을 맡기셨다(렘 1:4-10).

  그러므로 이 책은 대부분 심판과 심판의 중요성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심판만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남유다가 멸망하는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서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키시고, 그를 통하여 유다와 이스라엘을 구원하며 새 출애굽과 새 언약을 이루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렘 23:5-8; 31:31-34; 33:14-18). 예레미야 23장과 33장에 흩어진 내용을 함께 살펴보면, 장차 오실 메시아의 신분과 직분과 사역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을 본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예레미야가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해 예언한 일곱 가지가 무엇이며, 그 약속을 누리기 위해 오늘 우리가 어떻게 회개하고 순종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예레미야가 장차 도래할 메시야에 대해 예언한 7가지는 무엇인가?

  예레미야가 예언한 메시아의 모습을 살펴보면, 대략 일곱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그는 다윗에게서 나오는 의로운 가지로 오신다. 둘째, 그는 왕으로 오신다. 셋째, 그는 지혜롭게 다스리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의로운 통치자다. 넷째,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구원자다. 다섯째,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다. 여섯째, 그는 자기 백성을 애굽과 바벨론보다 더 근본적인 종살이에서 이끌어 내는 새 출애굽의 인도자다. 일곱째, 그는 속죄와 성령의 내주를 약속하는 새 언약의 중보자요 체결자다.

  그런데 이 일곱 가지 그리스도에 관한 중심 본문은 일곱째 정의를 제외하면 모두 예레미야 23장과 33장에 나오는 것들이다. 특히 23장과 33장의 말씀은 대부분 겹친다(렘 23: 5-6, 33:15-18). 그중에서 예레미야 23장은 여호와께서 악한 목자들을 책망한 뒤, 하나님께서 친히 남은 양 떼를 모으시고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키실 것이라고 말씀한다. 그러면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릴 것이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고 불릴 것이라고 했다.

렘 23:5-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구원의 규모를 새 출애굽으로 확장한다. 훗날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단지 애굽에서 나온 사건만을 말하지 않고, 북방 땅과 쫓겨났던 모든 나라에서 돌아온 일을 두고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고백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렘 23:7-8). 역사적으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회복을 가리키지만, 그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사탄 마귀의 권세에서 건져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영적 출애굽이다.

렘 23:7-8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방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살리라 하시니라

  다만 예레미야 23장과 33장의 차이는 장차 도래할 메시야가 왕직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직을 함께 수행하실 것을 밝힌다. 다시 말해 예레미야는 다윗의 자손 가운데 이스라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레위 사람 제사장도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릴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다(렘 33:14-18). 그러나 역사 속에 다윗 왕조와 레위 제사장직은 중단되었지만, 예수님 안에서 그 약속의 실상이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영원한 왕이시며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이다(시 110:4; 히 7:20-28).

  그리고 마지막 일곱째 예언은 '새 언약'의 중보자이차 체결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시대처럼 구약시대에는 돌판에 기록된 율법만 주셨느데, 장차 그날이 오면 이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백성의 속에 두며 마음에 기록하고 그들의 죄악을 사하겠다고 약속하셨다(렘 31:31-34). 이 새 언약에는 죄를 처리하는 속죄와 하나님의 법을 마음속에서 따르게 하는 성령의 내주가 함께 들어 있다. 다만 이 내용은 예레미야 기독론에서 따로 살펴야 할 만큼 중요하므로, 여기에서는 메시아가 새 언약의 중보자요 체결자로 오신다는 사실만 먼저 말씀드린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언급한 일곱 예언은 사실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 왕과 제사장의 직분을 담당하고,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며, 자신의 의로 유다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새 출애굽과 새 언약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약속이 한 사람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3. 메시아가 다윗의 의로운 가지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예레미야가 예언한 첫 번째 메시야는  ‘다윗의 의로운 가지’로 오신다는 것이다(렘 23:5, 33:15). 이 말은 메시야가 장차 다윗의 혈통을 따라 사람으로 오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윗 시대에 다윗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삼하 7:12-16). 그러나 다윗의 후손으로 이어진 유다 왕조는 죄로 인하여 타락했고, 예레미야 시대에는 시드기야 왕을 끝으로 무너지게 된다. 인간 왕조로만 바라본다면 그 약속은 끊어진 것처럼 보인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서 한 의로운 가지를 다시 일으키셨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여기서 ‘가지’라는 표현은 잘려 나간 나무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유다 왕조가 바벨론에 의해 잘려 나가고 다윗의 보좌가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그 뿌리에서 새 왕을 일으키신 것이다. 이사야도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고 예언했다(사 11:1-5). 예레미야의 ‘다윗의 의로운 가지’는 이 약속을 이어 받아 멸망 뒤에도 다윗 언약이 끝나지 않았음을 선포했다.

  그로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족보는 그분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고 시작한다(마 1:1-16). 이는 예수님이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구원자라고 주장한 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오래전부터 약속하신 메시아라는 뜻이다. 메시아를 분별하려면 감동적인 말이나 놀라운 결과만 볼 것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이 그에게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구약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자기가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거짓 영의 미혹을 분별하기 어렵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단지 ‘다윗의 가지’라고 하지 않고 ‘의로운 가지’라고 했다. 다윗의 후손이라고 해서 모두 의로운 왕은 아니었다. 여호야김과 여호야긴과 시드기야를 비롯한 마지막 왕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나라를 멸망으로 끌고 갔다. 장차 오실 메시아는 그들과 달리 죄가 없고,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통치하며, 백성을 의롭게 하는 왕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세우기도 하고 뽑기도 하신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에 말씀을 두시고 또한 그를 여러 나라와 왕국 위에 세우신 목적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는 한편 건설하고 심게 하려는 것이었다(렘 1:9-10). 그러므로 죄악으로 굳어진 왕조는 뽑힐 것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폐기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옛 왕조의 실패를 뛰어넘어 완전한 왕을 새로 심으실 것인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다윗의 의로운 가지라는 이름에는 심판 뒤의 회복과 인간 왕의 실패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함께 담겨 있다.

  또한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다는 사실은 그의 참된 인성이 무엇인지도 보여 준다. 그는 실제 역사 속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인간의 연약함과 고난을 담당하셨다. 동시에 다윗이 ‘내 주’라고 불렀던 분이므로 단지 다윗보다 뒤에 태어난 인간 왕에 머물지 않는다(시 110:1; 마 22:41-46).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본래는 다윗의 주이신 분,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4. 메시아는 어떻게 왕이자 의로운 통치자가 되는가?

  예레미야는 둘째로, 다윗의 가지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린다고 예언했다(렘 23:5, 30:9, 34장). 그러므로 예수님은 탄생부터 왕으로 증언되셨다. 동방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았고(마 2:2),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도 그 머리 위에는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는 죄패가 붙었다(마27:37). 사람들이 조롱의 뜻으로 붙인 칭호까지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왕권을 증언하는 표지가 되게 하셨다.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도 자신의 나라와 왕권을 부인하지 않으셨다. 다만 그의 나라는 세상의 정치 체제와 같은 방식으로 세워지지 않는다(요 18:33-37). 그는 영계의 왕이시며 자연 만물의 왕이시다. 그러므로 귀신들을 꾸짖어 내쫓으셨고, 바람과 바다를 잠잠하게 하셨으며, 물 위를 걸으시고 물고기의 입에서 성전세를 얻게 하셨다(막 1:23-27; 4:39-41; 마 14:25; 17:27). 이러한 사건은 피조 세계가 그분의 명령 아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예수님의 왕권은 힘만 나타내는 권세가 아니다. 셋째로, 그는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의로운 통치자다(렘 23:5). 예레미야 시대의 왕들과 관리들은 권력을 자기 욕심에 사용했고, 제사장과 선지자들까지 탐욕과 거짓에 빠졌다. 그들은 “평안하다”고 외치면서 임박한 심판을 감추었다. 그러나 메시아는 악을 선하다고 부르지 않으며, 뇌물이나 사람의 지위에 따라 판결을 굽게 하지 않는다.

  정의와 공의는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왕은 악을 심판하는 정의를 실행하면서도 회개하는 사람을 구원하는 의로운 길을 마련해야 한다. 예수님은 죄를 눈감아 주는 방식으로 사람을 구원하지 않으셨다. 죄의 삯인 사망을 친히 담당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고, 믿고 회개하는 이에게 자신의 의를 입혀 주셨다(롬 3:23-26). 십자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나타난 왕의 통치다.

  예레미야 33장은 다윗에게 이스라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렘 33:17). 역사상 다윗 왕조는 중단되었으나 예수님의 왕권은 끝나지 않는다. 그분은 부활하고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고, 마지막에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나타나실 것이다(행 2:30-36; 계 19:16). 세상의 왕들은 일정 기간만 다스리지만 예수님의 나라는 영원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죄를 용서해 주는 구주로만 알고 통치자로는 모시지 않는 모순에서 벗어나야 한다. 왕을 믿는다는 것은 그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뜻이다. “주여, 주여”라고 부르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마 7:21). 의로운 왕을 기다리는 사람은 오늘 자기 생각과 생활도 그 왕의 말씀 아래 복종시켜야 한다.

5. 메시아는 왜 유다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예언되었는가?

  예레미야는 넷째로, 메시야는 유자와 이스라라엘의 구원자로 오실 것이라고 했다(렘 23:6). 메시아의 날이 도래하면, 유다는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라고 했다(렘 23:6). 예레미야 33장에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하신 선한 말씀을 성취할 날이올 것을 언급하면서 유다의 구원과 예루살렘의 안전을 약속하고 있다(렘 33:14-16). 그런데 예레미야가 활동할 당시 북이스라엘은 이미 주전 722년 앗수르에 멸망한 뒤였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유다와 이스라엘을 함께 부르신 데에는 회복의 범위가 남유다에만 갇혀 있지 않다는 뜻이 담겨 있다.

  먼저, 유다는 예레미야 당시에 혈통적으로 남아 있던 언약 백성을 가리킨다. 그래서 훗날 예수님은 유다 지파와 다윗의 가문을 통해 오셨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한사코 당신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보내심을 받으셨다고 말씀하셨다(마 10:5-6; 롬 1:3). 그리고 그의 제자들에게 남은 유대인들에게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분의 구원은 혈통적인 유대인에게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도 품으려고 했던 유대인들이 그분을 거부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이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하시기에 이른다. 왜냐하면 복음은 혈통적으로 유다민족에게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이방인 민족에게까지 전파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마 28:18-20; 행 1:8).

  고로 예레미야가 서로 구별하여 사용했던 ‘유다’와 ‘이스라엘’은 혈통적인 언약 백성인 유대인들과 영적으로 이기는 자의 무리인 교회로 봐야 한다. 특히 요한계시록 7장과 14장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 명을 해석할 때에 단지 혈통적인 이스라엘의 12지파만으로 단정지어서는 아니 된다. 만약 그렇게 말했다면 144,000명은 야곱의 후손이라고 했어야 했다. 하지만 성경은 144,000명이 이스라엘 12지파에서 나온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이라는 뜻이 '이기는 자'를 가리키는 용어인 만큼 하나님께 충성하여 이긴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함을 알려준다(계 7:1-8; 14:1-5). 

  그렇다고 혈통적인 이스라엘을 완전히 지워 버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이스라엘을 각각 부르시면서 흩어진 자기 백성을 모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언급된 이스라엘은 혈통적인 이스라엘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장차 '이기는 자들'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는 남유다 백성이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회복이 있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메시아를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구원받는 영적 회복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장차 모든 구속받은 백성은 혈통적인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하여 이기는 자들이 어린양의 피로 씻은 한 무리가 되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계 7:9-14).

  여기서 메시아가 구원자라는 말은 단지 외적인 환경을 평안하게 만드는 분이라는 뜻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백성은 바벨론의 칼과 포로 생활에서 구원받아야 했지만, 모든 인간은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에서 구원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마 1:21). 죄를 그대로 품은 채 정치적 안전만 얻는 것은 메시아 구원의 완성이 아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약속과 메시아 자신에 관한 예언도 구별해야 한다.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고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을 이루신 예언은 하나님께서 친히 성취하셨다. 그러나 사람이 받을 복과 직분에 관한 약속은 그 사람의 믿음과 순종에 따라 성취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회복의 약속도 그들이 불순종했기에 이 땅에서 온전히 누리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시지만 사람의 불순종까지 복으로 인정하지는 않으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12제자들 모두에게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릴 약속을 주셨다(눅 22:28-30). 그러나 필자가 천국을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열두 제자 가운데 실제로 이십사 보좌에 앉은 이는 베드로뿐이다. 이 사례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약속을 들은 것과 그 약속에 합당하게 끝까지 사는 것은 같지 않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6.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는 이름은 무엇을 뜻하는가?

  예레미야는 다섯째로, 메시아의 이름이 장차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고 불릴 것이라고 예언했다(렘 23:6). 이는 여호와께서 친히 자기 백성의 공의가 되어 주신다는 뜻이다. 사람은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고 자기 행위로 죄값을 없앨 수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죄인이 받아야 할 심판을 담당하고 우리에게 의로운 길을 열어 주셔야 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요한은 오히려 자신이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만류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라고 말씀하셨다(마 3:13-15). 필자는 이 세례를 인류의 대표자인 세례 요한이 안수하여 세상 죄를 예수님께 넘기는 사건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다음 날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언했다(요 1:29).

마 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님은 이때 인류의 대표자였언 세례 요한으로부터 넘겨받은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가볍게 넘기지 않으셨고, 죄 없으신 아들에게 죄의 형벌을 담당하게 하심으로 공의를 이루셨다. 동시에 그 대속을 믿고 회개하는 사람에게 죄 사함의 길을 여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공의’는 우리가 스스로 의롭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루신 속죄를 의지한다는 고백이다.

  예레미야 33장에서는 메시아만이 아니라 그분의 성읍도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는 이름을 얻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메시아의 의가 그가 다스리는 백성과 성읍의 정체성이 된다는 뜻이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인간의 공로나 교단의 이름을 앞세워 들어갈 수 없다. 오직 어린양의 피로 씻고 예수님의 의를 입은 사람이 들어간다(계 7:13-14; 21:27).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칭의의 복음을 들을 때, 이제는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으니 죄를 계속 지어도 괜찮다는 허가로 들어서는 안 된다.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는 길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요일 1:7-9). 종교개혁 시대에는 행위 공로에 맞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진리가 강력하게 선포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 시대의 교리만 붙들고 예수님이 명하신 회개와 순종과 거룩함을 밀어내서는 안 된다.

  사도 바울은 인간 가운데 가장 뛰어나게 쓰임받은 종이지만 하나님은 아니다. 필자는 사도 바울이 말했던 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발언과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딸을 결혼시키지 말라는 권면 및 우상 제물에 관한 바울의 일부 권면에도 당시 상황과 인간적 한계가 들어있다고 본다(고전 7:25-40; 8:1-13; 14:34-35). 사실 바울은 어떤 진리의 말씀에 대하여 한 쪽 측면만을 증언했지만, 예수님은 전체 구원 경륜의 주인이심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이나 종교개혁자의 말을 예수님의 말씀보다 위에 두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불법을 행하는 사람을 결국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요한계시록에서 예수께서는 믿는 자가 되었어도 날마다 죄를 씻어야만 생명나무와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마 7:21-23; 계 22:14-15). 그러므로 ‘여호와 우리의 공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속죄를 붙드는 동시에 날마다 죄를 자백하고 깨끗함을 받아 그분의 뜻대로 사는 것이어야 한다. 공의의 이름은 값싼 위로가 아니라 죄를 끊고 거룩한 성에 들어가게 하는 구원의 능력이다.

7. 메시아는 어떻게 새 출애굽의 인도자이자 영원한 제사장이 되는가?

  여섯 번째로 예레미야는 장차 오실 메시아를 새 출애굽의 인도자라고 예언하였다(렘 23:7-8). 사실 성경에는 육적인 출애굽의 큰 모형이 두 번 나타난다. 첫째는 모세를 통하여 애굽의 종살이에서 나온 출애굽이고, 둘째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새 출애굽이다. 예레미야는 훗날 백성이 더 이상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사건만을 고백하지 않고, 북방 땅과 흩어진 모든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고백할 것이라고 예언했다(렘 23:7-8). 당시 백성에게 이러한 말씀은 바벨론 귀환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애굽 왕 바로와 바벨론 왕이 붙들고 있던 종살이는 더 깊은 영적 실상을 가리킨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여 죄의 종이 되었고 사탄 마귀의 권세 아래 놓여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강한 자를 결박하고 그 세간을 빼앗듯이 마귀의 일을 멸하며 사람을 자유롭게 하려고 오셨다(마 12:28-29; 요일 3:8). 그러므로 새 출애굽의 최종 목적은 이 땅의 한 나라로 돌아오는 데 있지 않고, 죄와 사망과 악한 영의 권세에서 벗어나 천국에 들어가는 데 있다.

  출애굽에는 피가 필요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름으로 죽음의 심판을 피했다(출 12:5-13). 새 출애굽에서도 예수님의 피가 필요하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자기 피를 흘려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셨다(요 1:29; 계 1:5-6). 피가 죄를 처리하므로 마귀가 사람을 붙들던 법적 근거가 제거되고, 믿고 회개하는 사람은 어둠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다(골 1:13-14).

  이 사역을 위해 메시아는 왕일 뿐 아니라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왕은 원수를 정복하고 백성을 다스리지만,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속죄를 담당한다. 예레미야 33장은 다윗의 왕위에 앉을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릴 레위 제사장이 끊어지지 않을 것을 함께 말한다(렘 33:17-18).

렘 33:17-1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내 앞에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사를 항상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역사 속 레위 제사장들은 죽음 때문에 직분을 영원히 계속할 수 없었고, 그들이 드린 제사도 반복되어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다 지파에서 오셨으면서도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이 되셨다(시 110:4; 히 7:11-28). 그는 짐승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로 단번에 속죄를 이루셨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하신다(히 9:11-14; 10:10-14).

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새 출애굽을 시작만 해 놓고 떠나는 지도자가 아니다. 왕으로서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고, 대제사장으로서 자기 피로 죄를 씻으며, 끝까지 중보하여 백성을 목적지에 이르게 하신다. 이 구원의 완성은 새 언약과 연결된다. 죄를 사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기록하여 성령을 따라 걷게 하시는 것이다(렘 31:31-34). 새 언약의 두 측면인 속죄와 성령의 내주(內住)는 다음 말씀에서 더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

8. 메시아의 약속을 누리려면 왜 회개와 순종이 필요한가?

  예레미야는 회개의 선지자다. 그는 패역한 백성에게 돌아오라고 끊임없이 외쳤다. 이스라엘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팠다(렘 2:13). 언약 백성이라는 신분과 성전과 다윗 왕조가 있다는 사실만 믿고 우상숭배와 불의를 계속했기에 결국 땅에서 뽑혀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약속을 받은 것과 약속을 실제로 누리는 것은 같지 않다.

  구약에서 회개와 관련하여 주목할 인물이 있다면 그는 바로 '욥'과 '다윗'과 '예레미야'가 있다. 그 중에 '욥'은 하나님을 직접 뵌 뒤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했고, '다윗'은 자신의 죄를 숨기지 않고 통회했으며, '예레미야'는 한 민족을 향하여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외쳤다(욥 42:5-6; 시 51:1-17; 렘 3:12-14). 이런 의미에서 예레미야는 구약의 세례 요한과 같은 회개의 선지자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메시아의 길은 회개로 준비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속죄와 칭의만 말하고 정결과 성결을 외면하면 구원을 온전히 준비할 수 없다. 믿음으로 예수님의 피를 의지해야 하지만, 믿은 뒤에도 죄를 자백하여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어야 한다(요일 1:7-9). 생각과 감정과 생활 속의 죄를 그대로 둔 채 구원받았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과 불법을 행하는 사람을 분명히 구별하셨다(마 7:21-23).

  죄를 반복하면 악한 영이 들어와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붙들고 회개를 방해한다. 처음에는 회개의 말씀이 옳다고 느끼다가도 속에 있는 영들이 쫓겨날 것을 알고 사건과 두려움을 일으키면 중간에 멈추기 쉽다. 그러므로 영적 싸움은 가볍게 시작할 일이 아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끝까지 회개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한 영을 대적해야 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다(엡 6:10-18).

  영적 현상이 나타난다고 모두 성령의 역사는 아니다. 필자는 일부 신사도 계열에서 나타나는 기괴한 웃음과 통제되지 않는 몸짓을 악한 영의 역사라고 여기고 있다. 자기 안의 영을 점검하고 회개로 깨끗하게 하지 않은 채 예언과 능력만 좇으면 마지막에 미혹될 수 있다. 은사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회개와 정결이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귀신만 쫓아내는 교회인 것은 아니다. 축사는 전체 사역 가운데 한 부분이다. 중심은 회개와 천국 복음이며, 죄를 자백하고 깨끗하게 되어 마침내 천국에 들어갈 사람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악한 영을 내보내는 목적도 사람이 죄의 충동에서 벗어나 성령의 다스림을 받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데 있다. 회개와 축사 체험 자체를 자랑해서는 안 되며, 변화된 생각과 성품과 순종의 열매가 나타나야 한다.

  필자가 영적 세계를 살피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처음에는 필자는 장차 천국에서 세례 요한 마을에 들어갈 사람으로 보여졌다. 그리고 필자는 그것을 회개를 외쳐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명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2024년경 천국의 집이 세례 요한 마을에서 엘리야 마을로 옮겨지는 장면을 보았고,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싸울 때 사용했다는 칼을 받는 체험을 했다. 이 체험을 통하여 회개를 선포하는 사명에 더하여 악한 영들과 싸우는 영적 전사의 사명을 맡았음을 깨달았다.

  사역의 활동영역이 커진 것도 처음부터 알았던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회개하여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일에 집중했지만, 한 영혼을 돕는 과정에서 악한 영을 내보내는 사역까지 열렸다. 필자는 어떤 필요한 사람이 떠났을 때 안타까워했으나,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위험을 막기 위해 그를 뽑으셨다는 깨달음을 받기도 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심기도 하고 뽑기도 하시며, 순종하는 정도에 따라 처음보다 더 큰 사명을 맡기시기도 한다. 그러므로 과거에 받은 약속만 붙들고 현재의 순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오늘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 한마디로도 마귀를 멸하실 수 있지만 우리를 영적 싸움에 동참시키신다. 흙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회개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길 때, 교만하여 타락한 사탄은 수치를 당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순종할 기회를 주시고 그 수고에 따라 하늘의 상을 주기 원하신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은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며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는 기회다.

  많은 사람이 유튜브를 통해 회개와 천국 복음을 듣고, 직접 만난 적이 없어도 회개기도문으로 500번씩 회개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민족 안에 아직 회개하는 무리를 남겨 두셨다는 소망의 표지다. 횟수만 채우는 것이 목적은 아니지만,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고 같은 죄를 끊기 위해 꾸준히 기도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귀가 가벼워서 새로운 말만 따라다니지 말고, 옳다고 깨달은 진리 안에 뿌리를 내리며 끝까지 가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치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가 타락하더라도 진실로 회개하는 한 무리가 있다면 소망이 있다. 그러나 교회까지 회개를 버리고 죄를 괜찮다고 말하면 예레미야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과 다를 바 없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은 죄를 방치하게 하는 면허가 아니라 회개하고 순종하도록 부르시는 은혜다. 우리는 메시아가 이루신 속죄를 믿고, 성령께서 마음에 새기시는 법을 따라, 생각까지 예수님의 피로 씻으며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9. 나오며

  예레미야가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해 쏟아낸 일곱 가지 예언과 그 약속을 누리는 길을 살펴보았다. 예레미야는 멸망 직전의 예루살렘에서 약 41년 동안 회개를 외쳤지만, 심판의 한복판에서도 다윗의 의로운 가지가 오실 소망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예언한 메시아는 다윗의 의로운 가지이며 왕이자 의로운 통치자다. 그는 유다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자기 백성을 죄와 사탄의 권세에서 이끌어 내는 새 출애굽의 인도자다. 또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속죄를 이루고, 죄 사함과 성령의 내주를 약속하는 새 언약을 체결하신다. 이 모든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만난다.

  다윗의 왕조와 레위 제사장직은 역사 속에서 중단되었지만 예수님의 왕권과 제사장직은 영원하다. 그는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며 자기 피로 죄를 씻고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만 부르고 왕의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는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지만 사람이 받을 복과 직분에는 믿음과 순종이 요구된다. 이스라엘은 언약과 성전과 다윗 왕조를 자랑하면서도 회개하지 않아 땅에서 뽑혔다. 우리도 칭의만 붙들고 정결과 성결을 버려서는 안 되며, 죄를 자백하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어야 한다. 회개의 횟수보다 중요한 것은 죄를 끊고 생각과 성품과 생활이 실제로 변화되는 열매다.

  예레미야의 메시아 예언은 절망 속에서 주어진 소망이다. 이사야와 에스겔과 다니엘의 예언이 서로 다른 측면에서 그리스도를 증언하듯이, 예레미야는 의로운 왕과 새 출애굽과 새 언약을 통하여 예수님을 보여 준다. 우리는 사람의 교리나 명성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높은 기준으로 삼고, 회개와 순종으로 그분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다윗의 의로운 가지이자 여호와 우리의 공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붙들고 새 출애굽의 구원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8년 24일(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해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사역을 신학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레미야를 왕과 제사장, 선지자의 타락상을 고발하며 회개를 외친 눈물의 선지자로 규정하고, 그가 예언한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인 의로운 가지이자 통치자로 오실 것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사하고 성령의 내주를 가능케 하는 새 언약의 체결자라는 점을 부각하며, 이를 통해 성도가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목적지가 거룩한 회개와 천국 입성에 있음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구약의 예언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지 설명함으로써, 현대 신앙인들에게 영적 분별력과 철저한 회개의 삶을 촉구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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