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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7. 14. (화)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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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JvgJ9JALwFo
날짜 2026-07-12
본문말씀 이사야 61:1~3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6-07-12(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 [기독론(141)] 마귀로부터 탈출시키려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사야 61:1~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JvgJ9JALwFo

 

1. 들어가며

  이사야서는 구약의 복음서라고 불릴 만큼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풍성하게 담고 있다. 이사야는 메시야의 신분을 말할 때, 그분을 한 분 하나님이요 처음과 마지막이시며 유일한 구원자라고 증언한다. 또한 아기이자 아들로 오실 하나님, 다윗의 후손이자 의로운 가지, 고난받는 종, 목자, 모퉁잇돌과 반석, 재림주와 심판주로 예언한다. 이사야가 증언한 메시야는 단순한 종교 지도자나 도덕 교사가 아니다. 그분은 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 자신이요, 죄와 죽음과 마귀의 권세 아래 있는 인류를 구원하러 오실 구원자이시다.

  이사야의 예언 가운데 특별히 주목해야 할 선언이 있다. 그것은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는 여호와의 자기 선언이다. 구약에서 여호와께서 유일한 구원자라고 하셨는데, 신약은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자로 선포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두 구원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와 예수님은 서로 다른 두 구원자가 아니라,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이것이 이사야의 기독론이 신약의 복음과 만나는 핵심 지점이다.

사 43: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말씀 한마디로 인류를 구원하지 않으시고, 굳이 아기이자 아들로 오셔야 했는가? 왜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자리로 내려오셔서 혈과 육을 입으셔야 했는가? 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셔야 했는가? 이 질문의 답이 바로 이사야 53장과 42장과 61장에 담겨 있다. 이사야 53장은 메시야가 우리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고난받는 종으로 오실 것을 말하고, 이사야 42장과 61장은 그분이 마귀에게 눌리고 갇힌 자들을 해방하기 위해 오실 것을 예언한다.

  이사야 61장은 특히 예수님의 공생애 첫 설교와 직접 연결된다. 예수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이 말씀을 찾아 읽으시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선언하셨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이 이사야가 예언한 기름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야이며, 그분의 사역이 희년의 성취라는 선포였다. 그러므로 복음은 단지 죄 사함의 소식만이 아니다. 복음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가 선포되고, 갇힌 자가 놓임을 얻고, 눌린 자가 해방되며, 잃어버린 기업으로 돌아가는 희년의 소식이다.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가 왜 유일한 구원자이자 희년의 성취자로 오셨으며, 그분이 우리를 죄와 죽음과 마귀의 권세로부터 어떻게 해방하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이사야는 왜 메시야를 유일한 구원자로 말했는가?

  이사야가 선포한 하나님은 여러 신들 가운데 가장 강한 신이 아니다. 이사야의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시며, 그분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 이사야 44장 6절은 이 사실을 분명히 말한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왕이시며,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시며, 만군의 여호와이시다. 그분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시며, 그분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

사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 외에 구원자가 없다”고 하신 말씀은 단순한 종교적 독점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론적 선언이다. 구원자는 오직 창조주만 되실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를 지으신 분만이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설계하신 분만이 우리를 고칠 수 있으며, 우리를 생명으로 부르신 분만이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내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을 위로할 수는 있지만, 죄와 죽음과 마귀의 권세에서 인간을 완전히 해방시킬 수는 없다. 피조물은 피조물을 영원한 생명 안으로 옮길 수 없다.

  신약성경은 바로 이 이사야의 선언을 예수님에게 적용한다. 누가복음은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다고 말한다(눅 2:10-11). 여기서 “구주”는 헬라어로 “소테르”이며, 구원자를 뜻한다. 사도행전은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선포한다. 요한복음은 예수님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그분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고 말한다(행 4;12). 이것은 예수님이 여호와와 다른 또 하나의 구원자라는 뜻이 아니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아들의 신분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뜻이다.

눅 2:10-11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예수님만이 구원자라는 말씀은 처음 들을 때 독단적으로 보일 수 있다. 세상에는 선한 사람도 있고, 좋은 가르침도 있고, 여러 종교도 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윤리적 개선이나 종교적 위로가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죄의 빚에서 풀려나는 것이요, 죽음의 권세에서 벗어나는 것이요, 마귀의 종노릇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이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 한 분뿐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오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일한 구원자이시다.

  이사야가 메시야를 유일한 구원자로 예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않으신다. 구원은 우상이나 인간 영웅에게 맡겨질 수 없다. 구원은 오직 여호와의 일이며, 신약에서 그 여호와께서 아들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을 단순히 훌륭한 선생으로만 보면 안 된다.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자로 믿어야 한다. 그래야 그분이 이루신 복음의 능력을 실제로 누릴 수 있다.

3. 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야 했는가?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다. 그분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렇다면 죄와 죽음과 마귀의 문제도 말씀 한마디로 해결하실 수 있지 않았겠는가? 이 질문은 성육신의 비밀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은 능력이 없어서 사람이 되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사랑과 공의를 함께 이루시기 위해 사람이 되셨다. 구원은 단순한 힘의 행사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인류의 자리로 내려오셔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되찾으시는 사랑의 사건이다.

  이사야 9장은 한 아기가 태어나고 한 아들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런데 그 아들의 이름은 놀랍다. 그는 기묘자요 모사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영존하시는 아버지이며, 평강의 왕이다(사 9:6). 이 아들은 피조물이 아니다. 이 아들은 하나님과 다른 별개의 신도 아니다. 그는 아들로 오신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아기 예언은 단순히 다윗 왕조의 한 후손을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실 성육신의 예언이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왜 그분은 아들로 오셔야 했는가? 첫째, 우리와 같은 혈과 육을 입으셔야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죽으실 수 없다. 그러나 죄의 삯은 사망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음을 담당하시려면 혈과 육을 입으셔야 했다. 히브리서는 자녀들이 혈과 육에 속하였으므로 그분도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해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셨다고 증언한다.

히 2:14-15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해 아들로 오셨다. 전능자가 멀리서 명령만 내리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은 알 수 있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낮아지셨고, 육신을 입으셨고, 고난을 받으셨고, 피 흘려 죽으셨다. 이것은 창조주께서 피조물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 주는 가장 깊은 증거다.

  셋째, 하나님은 합법적으로 마귀를 멸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셨다. 마귀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붙잡고 사람을 종노릇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오셔서 죄 없는 사람으로 죽임을 당하셨다. 마귀는 죄 없는 예수님을 죽임으로 불법을 저질렀고, 그 결과 사망과 음부의 권세는 예수님께 넘어가게 되었다. 이것이 십자가의 지혜다. 하나님은 강제로 빼앗듯이 구원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와 지혜로 사탄을 이기셨다.

  그러므로 성육신은 하나님의 약함이 아니다. 성육신은 하나님의 지혜다. 아들로 오신 예수님은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패배자가 아니라 마귀를 멸하신 승리자이시다. 성도는 예수님을 아기와 아들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 아기 안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고, 그 아들의 십자가 안에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 담겨 있음을 보아야 한다.

4. 메시야는 무엇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가?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구원은 두 방향으로 전개된다. 첫째는 죄로부터의 속량이다. 둘째는 마귀의 압제에서의 해방이다.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다. 죄는 마귀에게 틈을 주고, 마귀는 죄를 통해 사람을 묶는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루신 구원은 죄 사함과 귀신의 속박에서의 해방을 함께 포함한다.

  이사야 53장은 메시야가 우리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고난받을 것을 예언한다. 그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한다. 그는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함을 받는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신다. 이것이 대속이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러 오셨다.

사 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러나 메시야의 구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사야 42장은 메시야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고,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사야 61장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정치적 포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약의 빛에서 보면 이것은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 마귀에게 눌린 자들, 귀신에게 묶인 자들이 해방되는 것을 가리킨다.

사 42:6-7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역을 이렇게 정리한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고, 예수께서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는 것이다(행 10:38). 이것이 이사야 61장의 신약적 성취다. 예수님의 구원은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는 구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귀신의 압제와 저주와 질병과 신기와 가난과 막힘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 안 된다. 주님은 그것에서 우리를 해방하러 오셨다.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사도 요한도 예수님의 오심을 마귀의 일과 연결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요일 3:8). 이것은 복음의 핵심이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하시는 구원자이실 뿐 아니라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구원자이시다. 그러므로 성도는 십자가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예수 이름의 권세로 악한 영들을 대적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눌림에서 벗어나야 한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구원은 하늘나라에 가기 위한 종교적 자격증이 아니다. 구원은 죄의 빚에서 놓이는 것이고, 죽음의 두려움에서 놓이는 것이며, 마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는 바로 이 구원을 이루러 오셨다.

5. 이사야 61장은 왜 희년의 성취인가?

  이사야 61장은 메시야 사역의 핵심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 위에 임하셨고,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셨으며, 그 이유는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사 61:1-2). 여기서 “기름부음 받은 자”가 곧 메시야다. 히브리어 “마쉬아흐”와 헬라어 “그리스토스”는 모두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진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신 메시야이시다.

사 61:1-2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이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며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이 말씀의 중심에는 “자유”와 “놓임”이 있다. 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이 본문을 읽으시며 자신에게 응했다고 말씀하신다(눅 4:20-21). 누가복음에 사용된 “자유”라는 단어는 헬라어 “아페시스”다. 이 단어는 자유, 해방, 용서의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죄의 빚이 사해지는 것도 아페시스이며, 포로가 풀려나는 것도 아페시스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복음은 죄 사함과 해방을 동시에 말한다.

눅 4:20-21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사야 61장의 “여호와의 은혜의 해”는 레위기 25장의 희년과 연결된다. 희년은 오십 년째 해에 선포되는 해방의 해다. 종은 자유를 얻고, 빚은 탕감되며, 잃어버린 기업은 원래 주인에게 돌아간다(레 25:10). 그러므로 희년은 단순한 사회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다시 자기 기업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구원의 예표다.

레 25: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예수님은 바로 이 희년의 성취자로 오셨다. 그분은 죄의 빚을 탕감하러 오셨다. 그분은 마귀의 종노릇에서 우리를 해방하러 오셨다. 그분은 우리가 잃어버린 기업을 되찾게 하러 오셨다. 궁극적으로 되찾아줄 그 기업은 '새 예루살렘 성'이다. 그러므로 희년은 단지 구약의 경제 제도가 아니다. 희년은 메시야의 복음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실제다.

  또한 이사야 61장은 보복의 날도 함께 말한다.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주님께서 자기 백성에게는 은혜의 해를 선포하시지만, 그들을 묶고 압제하던 마귀와 악한 세력에게는 보복의 날을 선포하신다. 그러므로 희년은 자유만이 아니라 심판도 포함한다. 포로에게는 해방이지만, 포로를 붙잡고 있던 자에게는 심판이다. 이것이 메시야 사역의 양면이다.

6. 성경의 세 가지 대탈출은 무엇을 보여 주는가?

  성경의 구원 역사는 한 마디로 '대탈출의 역사'라고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대탈출은 B.C.1446년경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바로의 종으로 살았다. 그들은 노예였고, 압제당했으며, 자기 기업을 누리지 못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셔서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셨다. 그들의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었다. 출애굽은 세상 권세와 죄의 종노릇에서 벗어나는 구원의 첫 번째 큰 예표다.

  두 번째 대탈출은 B.C.538년에 있었던 남유다의 바벨론 포로귀환이다. 남유다 백성은 죄 때문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 200년 전에 이사야를 통해 '고레스'라는 이름까지 예언하게 하셨다. 그리고 때가 되자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다(대하 36:22-23, 스 1:1-4). 놀랍게도 이사야는 고레스를 “내 목자”라고 부르고(사 44:28),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고 말한다(사 45:1). 고레스는 영혼의 구원자는 아니지만,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나오게 하는 도구적 메시야의 예표였다.

사 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사 45: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이 두 번째 대탈출의 목적지는 '예루살렘'이었다. 바벨론에서 나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사야는 이 탈출을 강하게 선포한다.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말한다(사 48:20). 이것은 역사적으로 포로귀환을 가리키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바벨론의 죄와 우상과 혼합에서 나와야 함을 말한다.

사 48:20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서 갈대아인을 피하고 즐거운 소리로 이를 알게 하여 들려 주며 땅 끝까지 반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의 종 야곱을 구속하셨다 하라

  세 번째 대탈출은 모든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대탈출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모세보다 크시고, 고레스보다 크신 참 메시야다. 모세는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했고, 고레스는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흑암에서 빛으로, 죄와 죽음에서 생명으로, 마침내 새 예루살렘 성으로 인도하신다.

행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대탈출은 점점 더 깊어지고 완성된다. 출애굽은 육체적 노예상태에서의 탈출이었고, 포로귀환은 역사적 바벨론에서의 탈출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영적 포로상태에서의 탈출이다. 이것이 최종 대탈출이다. 이 대탈출의 목적지는 단순한 가나안도 아니고 지상의 예루살렘도 아니다. 최종 목적지는 '새 예루살렘 성'이다.

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성도는 아직도 바벨론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우상과 죄와 마귀의 속박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정상이라고 여기면 안 된다. 예수님은 이미 오셨고, 희년은 이미 선포되었다. 그러므로 성도는 바벨론에서 나오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고,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7.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을 어떻게 성취하셨는가?

  이사야는 메시야의 갈릴리 사역도 예언하였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이방의 갈릴리에 큰 빛이 비칠 것이라고 했다(사 9:1-2).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이사야 9장의 성취로 본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빛이 비쳤다. 그 빛이 예수님이시다(마 4:15-16).

사 9:1-2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마 4:15-16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공생애는 이사야 61장의 실제 성취였다. 그분은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으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마 4;23).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귀신들이 떠나갔고, 병든 자들이 일어났고, 마음이 상한 자들이 회복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기적 쇼가 아니다. 이것은 희년이 실제로 시작되었다는 증거다.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이사야 61장을 읽으신 뒤 곧바로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신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수께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와 “눌린 자에게 해방”을 선포하셨다면, 그 해방의 실제는 귀신이 떠나가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와 축사와 치유는 분리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셨고, 귀신을 쫓아내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다. 이것이 희년의 삼중적 성취다.

눅 4:33-36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예수님은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셨다. 눈먼 자를 보게 하시고, 귀먹은 자를 듣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셨다. 이것은 육체의 치유이면서 동시에 영적 해방의 표적이다. 질병과 저주와 눌림의 배후에는 죄와 마귀의 역사가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치유는 단순한 의학적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임재다.

  오늘 성도들도 예수님의 사역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은 단지 죽은 뒤 천국에 보내려고 오신 분이 아니다. 그분은 지금도 마귀에게 눌린 자를 풀어 주시고, 죄의 빚에 묶인 자를 용서하시고, 흑암에 앉은 자를 빛으로 이끄신다. 복음은 듣는 교리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해방으로 나타나야 한다.

8. 오늘 우리는 희년의 축복을 어떻게 누려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이미 오셨다면, 성도는 그분이 성취하신 희년을 누려야 한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눌린 채 살아간다. 질병과 신기와 가난과 막힘과 두려움과 우울과 중독과 혈기와 음란과 무기력에 묶여 산다. 이것은 복음이 약해서가 아니다. 복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고, 예수님이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는지 제대로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희년을 누리려면 첫째,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자로 믿어야 한다. 예수님 외에는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우리를 건질 이름이 없다. 선한 사람도 많고 좋은 교훈도 많지만,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옮길 수 있는 분은 예수님 한 분뿐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을 단순히 종교적 위로자로만 믿지 말고, 유일한 구원자로 믿어야 한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둘째, 죄 사함을 누려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빚을 탕감하러 오셨다. 죄의 빚은 인간이 스스로 갚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의지해야 한다. 또한 자백을 통해 행위책에 기록된 죄가 지워지고, 죄로 들어온 악한 영들이 떠나가도록 회개해야 한다. 회개 없는 믿음은 희년을 실제로 누리게 하지 못한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셋째, 마귀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요일 3:8). 그러므로 성도는 귀신에게 눌려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된다. 예수 이름으로 대적해야 하고, 회개로 악한 영들의 근거를 제거해야 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그들을 내보내야 한다. 희년은 말로만 선포되는 자유가 아니라 실제로 묶임이 풀리는 자유다.

  넷째,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해 살아야 한다. 희년은 각 사람이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는 해다. 신약의 최종 기업은 새 예루살렘 성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현재의 문제 해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죄와 마귀의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은 이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자로 준비되어야 한다. 성 밖이 아니라 성 안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게 18:4). 그것이 하나님의 경륜의 최종 목적지다.

계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오늘 우리가 누려야 할 복음은 분명하다. 예수께서 이미 희년을 성취하셨다. 죄의 빚은 탕감될 수 있고, 마귀의 압제는 끊어질 수 있으며, 잃어버린 기업은 회복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더 이상 마귀의 속박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면 안 된다. 복음은 실제 능력이며, 예수님은 지금도 구원자이시다.

9. 나오며

  이번 시간에는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가 유일한 구원자이자 희년의 성취자로 오신 사실을 살펴보았다. 이사야는 여호와만이 구원자라고 선포했으며, 신약성경은 예수님만이 구원자라고 증언한다. 이것은 두 구원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바로 아는 것이 구원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아들로 오셨는지를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말씀 한마디로만 구원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사랑과 공의를 이루시기 위해 혈과 육을 입으셨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며, 죽음을 통해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십자가를 단순한 고난의 상징으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십자가는 속죄의 자리이며, 마귀가 패배한 자리이며, 희년의 문이 열린 자리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사야 61장이 희년의 성취를 말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예수께서는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눌린 자에게 해방을 선포하셨다. 이것은 레위기 25장의 희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 사함만 말하고 마귀의 속박에서의 해방을 누리지 못해서는 안 된다. 죄의 빚에서 놓임을 받아야 하고, 귀신의 압제에서도 벗어나야 하며, 잃어버린 기업으로 돌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또한 성경의 세 가지 대탈출도 살펴보았다. 첫 번째는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나아간 출애굽이고, 두 번째는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포로귀환이며, 세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와 죽음과 마귀의 권세에서 새 예루살렘 성으로 나아가는 최종 대탈출이다. 성도는 아직도 바벨론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흑암의 권세에 묶인 삶을 정상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예수께서 이미 오셨으므로, 이제는 해방된 자답게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의 성도는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자로 믿어야 하고, 회개를 통해 죄 사함과 정결함을 받아야 하며, 예수 이름으로 악한 영들을 대적해야 한다. 또한 구원의 목적지가 새 예루살렘 성임을 알고, 그 성 안에 들어갈 자로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예수님이 성취하신 희년은 교리로만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삶에서 자유와 해방과 회복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리하여 죄와 죽음과 마귀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7월 12일(일)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구약 성경의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의 정체성과 그가 가져올 영적인 희년의 축복을 신학적 통찰로 풀어낸 강론입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여호와 하나님과 별개의 존재가 아닌, 인류를 죄와 마귀의 압제로부터 직접 구출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신 한 분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특히 200년 전 고레스 왕을 지명한 예언을 통해 하나님의 전능성을 증명하며, 예수가 선포한 복음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어 잃어버린 천국 기업을 회복시키는 사건이라고 정의합니다. 결국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만이 인간의 고장 난 근본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성도는 회개와 믿음을 통해 이 완전한 구원의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설교요약]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는 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유일한 구원자이며, 죄와 죽음과 마귀의 권세에서 인류를 해방하러 오신 희년의 성취자다. 그분은 이사야 53장처럼 우리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대속물로 죽으셨고, 이사야 42장과 61장처럼 마귀에게 눌리고 포로 되고 갇힌 자들을 해방하기 위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오셨다. 출애굽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의 탈출이었고, 포로귀환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의 탈출이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흑암에서 빛으로, 마침내 새 예루살렘 성으로 인도하는 최종 대탈출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께서 이미 성취하신 희년의 복음을 믿고, 죄와 죽음과 마귀의 속박에서 벗어나 그 자유를 실제로 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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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론(141)] 마귀로부터 탈출시키려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사야 61:1-3)

 

1. 들어가며

  우리 속에 들어와 역사하는 악한 영의 존재에 대하여 우리는 너무나 간과한 채 살아왔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귀신은 없는 것처럼 여기고 살아라. 그러면 없는 것이다. 왜 귀신들에게 눌리고 고통을 받으며 사느냐. 없다고 무시해 버려라." 귀신을 무시하고 사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무시한다고 해서 귀신의 공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 속에 들어온 영들이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정확하게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특히 예수님이 걸어가신 발자취를 따라가고 예수님의 뒤를 이어 사도들이 걸어간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주님이 행하신 대로 우리도 행해야 한다. 주님이 무엇을 행하셨는지 살펴보면 딱 세 가지였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회당에서 성경 말씀을 가르치시고,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 (마 4:23).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래서 우리도 매주마다 천국 복음을 들어야 하고,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배워야 하며,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실재한다는 것을 이 땅에서부터 경험해야 한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천국이 소망이 되겠으며,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지 않는데 어떻게 천국이 상상이 되겠는가.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임재라고 말씀하셨다 (마 12:28).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귀신을 쫓아내 보아야 하나님의 통치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다. 그런데 우리 속에 있는 귀신은 하루아침에 다 나가지 않는다. 그 수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기 때문이다. 거머리를 백 마리나 몸에 달고 살면서 날마다 보약을 마신다고 해서 그 사람이 건강해질 수 없듯이, 우리 속의 악한 영들을 뜯어내는 회개가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로 회개하며 뽑아낸 귀신의 숫자를 헤아려 보면 이만이 넘을 만큼 많으니, 회개기도문으로 이천 번, 삼천 번 기도해야 할 만큼 뽑아내야 할 귀신이 많은 것이다. 일평생 귀신이 직접적으로 역사하지 않아 별문제 없이 산 사람은 그 귀신을 하나도 뽑아내지 못한 채 무거워서 휴거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귀신의 영향으로 병이 들고 신기에 시달리고 잠을 못 자던 사람들이 회개하고 또 회개하면, 죽을 무렵에는 귀신이 다 떠나가서 휴거될 때 맨 먼저 올라가게 될 것이다. 모른 채 살고 무시하며 사는 것보다 성경적 지식을 알고 살아갈 때 놀라운 은혜가 임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가 어떤 분이시며, 그분이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고, 그 구원의 혜택을 우리가 어떻게 누려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이긴 자가 되려면 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하는가?

  우리가 모든 악한 영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려면 악한 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곧 이긴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긴 자이심을 밝히시면서, 우리도 이긴 자가 되면 그 보좌에 함께 앉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계 3:21).

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이겨야 하는가. 옛사람과 세상과 육신 등 이겨야 할 것이 많지만 그 핵심은 세 가지, 곧 죄와 죽음과 마귀다. 그런데 이긴 자의 삶은 무작정 사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이긴 자로 걸어가신 길은 즉흥적인 길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행동은 구약의 예언자들이 이미 예언하였거나, 그 이전 사람들이 율법과 역사서 속에서 예표로 보여 준 것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창세기부터 출애굽기, 모세오경, 사무엘상하, 역대상하, 에스라, 느헤미야까지 쭉 살펴보면서 이사야서까지 왔다. 창세기와 출애굽기에서는 인물적 예표와 모형론적 예표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이긴 자로 살아가실 것인지를 알려 준 모형들을 찾아보았다. 특별히 인물적 예표로서 다윗 왕을 통하여 전쟁에 능한 자가 이긴 자였음을 배웠고, 그 전에 여호수아가 잠깐 그 빛을 비추어 주었다는 사실도 배웠다. 다윗으로 이긴 자의 여정이 끝난 줄 알았더니, 이긴 자의 삶은 결국 성전을 건축하는 솔로몬의 삶으로 이어졌다. 솔로몬을 통해서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들어갈 자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배웠고, 내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으면 다른 사람들도 그 신부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까지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메시아의 삶과 그분이 행하실 일들, 그리고 그분이 어떤 신분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가실 것인지에 관하여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미 구체적으로 말씀해 놓으셨다. 그 예언자들을 선지자라고 하는데, 기록한 분량이 많은 선지자를 대선지자, 분량이 적은 선지자를 소선지자라 하여 모두 열일곱 명이 있다. 그중에서 심판과 회복과 메시아 예언이라는 전형적인 선지자의 길을 걸어간 대표 주자가 이사야다. 이사야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하면서 (사 1:1) 주전 740년부터 680년 어간까지 약 60년 동안 네 왕을 섬기며 예언하였다.

사 1: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이사야의 예언 가운데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메시아가 어떤 신분을 가지신 분인가에 대한 예언이고, 또 하나는 그분이 무슨 일을 하실 것인가에 대한 예언이다. 곧 그분의 인격과 사역이다. 그중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하여 우리는 먼저 두 가지를 배웠다. 첫째, 예수님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다. 둘째, 그분은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는 분이다. 한 분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 하나님은 동시 존재가 가능하시기에 아들로 오실 때 인격적 구분이 되어, 아들이 아버지께 자기의 뜻을 아뢸 수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눅 22:42). 이는 하나님만이 가능한 일이요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눅 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들로 오시려고 작정하셨고, 아들은 아버지의 품속에 계셨으므로 아직 드러나지 않아 구약 시대에는 마귀도 아들을 한 번도 보지 못하였다. 다만 다윗이 성령 안에서 천 년 뒤에 있을 일을 미리 보았으니 그것이 시편 110편이다 (시 110:1). 하나님은 시간 밖에 계시기에 미래의 일까지 다 보이실 수 있기 때문이다.

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천국에 가면 성부, 성자, 성령의 세 보좌가 있을 것 같으나 보좌는 하나뿐이며, 거기에 예수님이 앉아 계신다. 구약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모세와 다윗에게 나타나신 만군의 여호와가 바로 그분이시다. 처음부터 세 분으로 계셨다고 여기는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면 회개하고, 한 분이신 하나님이 아들로 오셨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사야는 아기와 아들로 오시는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시라고 예언하였다 (사 9:6).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아기와 아들로 오실 그분이 원래 아버지셨다는 것이다. 이 한 분 하나님이 정리되고 나면 귀신을 이길 수 있겠다는 강력한 믿음이 오기 시작한다. 이처럼 이긴 자가 되는 길은 이긴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서 시작되며, 그 예수님을 알려면 그분에 대하여 미리 기록해 놓은 구약의 예언과 예표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3. 여호와는 이사야서에서 자신을 누구라고 선언하셨는가?

  하나님은 이사야서에서 세 번에 걸쳐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자신을 선언하셨다 (사 41:4; 44:6; 48:12).

사 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와도 함께 있는 자니 곧 내가 그니라

사 48:12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도 세 번에 걸쳐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다 (계 22:13).

계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이사야서에서 여호와께서 하신 자기 선언을 예수님이 그대로 하신 것이다. 한 분 하나님을 모르면 이 대목에서 예수님이 아버지를 사칭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분 하나님을 알면 이것이 예수님이 곧 구약의 여호와이심을 밝히는 결정적 증거임을 알게 된다. 그 하나님이 이사야서에서 자신에 대하여 선언하신 것이 또 한 가지 있다. 그것이 바로 이사야 44장 6절이다.

사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여호와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이사야 43장 11절에서는 더 직접적으로 말씀하신다.

사 43: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는 선언만 있는 줄 알았더니 "나는 구원자다"라는 선언이 또 있었던 것이다. 구약 성경 전체를 찾아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심으로 구원자이심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신 곳은 많다. 그러나 "나는 구원자다, 나 외에 구원자가 없다"라고 직접 선언하신 곳은 이사야서 외에 단 한 곳뿐이니, 호세아 13장 4절이다.

호 13:4 그러나 네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처럼 구약의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서와 호세아서를 통하여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셨다. 이 선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지 못하면, 신약 성경과 구약 성경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심각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4. 신약과 구약의 구원자는 어떻게 한 분 하나님으로 통하는가?

  신약 성경은 예수님만이 구원자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선언하셨다 (요 14:6).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베드로도 예수 외에 다른 구원자가 없다고 증언하였다 (행 4:12).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교회에 와서 예수만이 구원자라는 것을 계속 듣고 배운 사람이 구약 성경 이사야서를 읽다 보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아들이 구원자인데 왜 아버지가 자신을 구원자라 하시는가. 구원자를 이 땅에 보내신 분이 아버지시고 구원자는 예수님이시라고 해야 맞지 않는가.' 심지어 여호와가 아들의 자리를 사칭하시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이 아버지를 사칭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는 모두 한 분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양쪽 말씀이 모두 옳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말씀은 '내가 창조주요 내가 구속주다, 내가 구약 성경의 여호와요 신약의 예수다, 내가 시작하고 내가 마친다'는 선언이었다. 구약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히브리어로 '여호와가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마 1:21).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어를 공부하지 않으면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지나가게 된다.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여호와가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는 소식, 하나님이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을 무엇이라 하는가. 바로 복음이다. 그래서 마가는 복음서를 시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의 시작이라고 선언하고 (막 1:1), 예수님도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다 (막 1:15).

막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그리고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신 것 자체가 구원자의 탄생이었음을 천사가 목자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곧 복음으로 선포하였다 (눅 2:10-11).

눅 2:10-11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구약에서 "나 외에 다른 구원자가 없다"라고 하신 여호와께서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으니 그분이 곧 예수님이시다. 신약 성경은 우리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곧 여호와가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을 소개해 주는 책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 구약과 신약이 하나로 꿰어지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모든 소식이 복음이었음을 알게 된다.

 

5. 예수님은 나사렛 취임 설교에서 무엇을 선포하셨는가?

  예수님이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 바로 본문 이사야 61장 1절에서 3절이다.

사 61:1-3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이 메시아에 대한 예언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직접 인용하셨기 때문이다 (눅 4:16-21).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자라나신 나사렛으로 가셔서 회당에서 첫 설교, 곧 취임 설교를 하셨다. 이스라엘은 성인 남자 열 명이 있으면 회당을 세울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각 지역마다 회당이 세워졌고, 회당을 맡은 회당장에게는 설교자를 세울 권한이 있어 훌륭한 사람이 오면 설교할 기회를 주었다. 그 기회가 예수님께 주어지자, 예수님께서는 일부러 이사야의 두루마리 성경을 찾으셨다.

  이사야서는 예레미야서 다음으로 분량이 많은 책이다. 그 두루마리는 두 사람이 낑낑대며 들고 와야 할 만큼 무거웠고, 한쪽을 풀면 다른 쪽을 말아 가면서 읽어야 했으므로 61장을 찾으려면 한참을 말아 들어가야 했다. 어느 장이든 펼치면 즉시 나오는 성경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예수님은 그 두루마리를 펴서 이사야 61장 1절과 2절이 기록된 곳을 찾아 읽으셨다.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그리고 예수님은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신 후 놀라운 선언을 하셨다 (눅 4:21).

눅 4: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사야 61장 1절의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에서 '나'는 일차적으로 이사야 선지자를 가리킨다. 이사야도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음을 추측해 볼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이사야도 일종의 메시아였다. 그러나 이사야는 완전한 메시아가 아니라, 그 메시아가 어떤 존재인지를 예언해 준 선지자로서의 메시아였다. 이 말씀이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심으로 확증되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구약 성경을 인용하여 취임 설교로 선포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첫 설교 그대로의 삶을 사셨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부탁하셨다 (막 16:15). 내가 이 땅에 온 목적을 온 세상에 설명해 주라는 것이다.

막 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본문 이사야 61장 1절에서 3절은 주 여호와의 영이 메시아에게 내려와 기름 부음을 받게 하실 것인데,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쳐 주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 갇힌 자를 놓아주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 곧 희년을 선포하기 위해 오신다는 말씀이다. 나아가 슬퍼하는 자에게 재를 대신하여 화관을 주고, 슬픔을 대신하여 기쁨의 기름을 주고, 근심을 대신하여 찬송의 옷을 입혀 주셔서, 그들이 여호와께서 심으신 의의 나무라 일컬음을 받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자로 오신 메시아가 하실 일이며, 예수님은 이 첫 설교 그대로 사셨다.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왜 메시아를 보내셨는지 모른다면 복음을 듣고도 복음을 누리지 못한다. 믿음이 있어도 왜 메시아를 보내셨는지 모르면 예수께서 공생애에 하신 일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린다. 믿음이 있어도 왜 메시아를 보내셨는지 모르면 복음을 통해 받을 축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살게 된다. 믿음이 있어도 왜 메시아를 보내셨는지 모르면 예수께서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건져 주러 오셨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질병과 가난과 시달림과 막힘의 저주 가운데서 귀신들에게 눌려 살면서도 예수께서 이미 해방하러 오셨다는 사실을 모른 채 일평생을 보낼 수 있다. 믿음이 있어도 왜 메시아를 보내셨는지 모르면 예수께서 이미 우리를 해방시켜 놓으셨음에도 그 혜택을 누리는 방법을 모른 채 살아갈 수 있다. 또한 예수님만이 구원자라고 하는 신약 성경만 읽다가 이사야서를 읽으면 앞에서 말한 혼란에 빠질 수도 있고,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오셨다는 이 선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간과한 채 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구원자로 오셨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어떤 혜택을 주는 것인지를 정확히 알고 붙들어야 한다.

 

6. 메시아는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는가?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자이신가. 첫째, 죄와 죽음으로부터다. 죽음은 죄의 삯이므로 이 둘은 하나로 묶인다. 이 구원이 이사야 53장에 예언되어 있다 (사 53:4-6).

사 53:4-6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분은 우리 때문에 이마와 가슴과 손과 발이 찔리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징계를 대신 받아 굶주리시고 목마르시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조롱을 받으시고 모든 피와 물을 다 쏟으신 다음에 죽으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대속물로 오셨음을 친히 말씀하셨다 (막 10:45).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둘째,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어 사망으로 끌어가려는 그 세력 자체, 곧 마귀로부터 우리를 구출하려고 오셨다. 이사야 42장은 메시아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들을 감옥에서 이끌어 내실 것을 예언한다 (사 42:6-7).

사 42:6-7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이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단언하였다 (요일 3:8).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기자도 예수님이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시고, 죽기를 무서워하여 한평생 마귀에게 종노릇하던 자들을 놓아 주려고 오셨다고 증언한다 (히 2:14-15).

히 2:14-15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그래서 이사야 61장과 53장을 합쳐 보면, 예수님은 죄와 사망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하시고 마귀로부터 우리를 구출하러 오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도 베드로가 전한 복음의 핵심도 이것이었다 (행 10:38).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이 받은 사명을 증언하면서, 예수님이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하였다 (행 26:18).

행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해방자이시다. 한때 해방 신학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 표현을 쓰기가 조심스럽다. 해방 신학은 노동자를 억압하는 지주와 경영자를 없애기 위해 주님이 오셨다는 식으로 주장하며, 권력 있는 자를 무조건 없애자고 하는 공산주의자들이 즐겨 써먹은 수법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지주를 없애러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압제하는 악한 마귀를 없애러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시려고 해방자로 오셨다. 그래서 이사야서는 그 압제의 자리에서 빨리 나오라고 계속 선포한다 (사 52:11).

사 52:11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세상의 영인 바벨론에 속한 자들을 향하여 같은 음성이 울린다 (계 18:4).

계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장차 대환란이 닥치면 끝까지 남겨진 자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목숨을 요구받는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주님을 진짜 사랑하는지 그 자리에 남아 목숨을 바쳐 증명하려 하기보다, 지금부터 회개하고 지금부터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지금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자는 익은 곡식처럼 먼저 데려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7. 고레스는 어떻게 해방자의 예표가 되는가?

  이사야서를 해방자와 탈출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놀라운 계시가 들어 있다. 이사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장부터 39장까지가 전반부로 심판의 선언이고, 40장부터 66장까지가 후반부로 회복의 선언이며, 양쪽 모두에 메시아가 예언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40장 이후 회복을 선언하시면서 한 사람의 해방자를 등장시키신다. 그가 바로 고레스 왕이다 (사 44-45장).

  희년이란 오십 년마다 돌아오는 해로서, 종 된 자가 해방되고 잃어버린 기업을 다시 찾는 해다 (레 25:10).

레 25: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고레스는 바로 이 희년적 해방의 예표였다. 고레스는 바벨론을 무너뜨린 페르시아의 첫 번째 왕으로, 키루스라고도 불린다. 이 고레스가 주전 538년에 이스라엘의 해방령을 내렸으니, 그 기록이 역사서의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대하 36:22-23).

대하 36:22-23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이같이 말하노라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이 역대하의 기록에 이어지는 내용이 에스라서에 나온다. 에스라 1장 1절부터 3절까지는 역대하의 기록과 같고, 4절부터는 추가된 명령이 나온다 (스 1:4).

스 1:4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세계 대제국을 형성한 왕이 자기에게 조공을 바치던 포로 백성을 놓아줄 뿐 아니라, 돌아가는 그들을 은과 금과 물건과 짐승으로 돕고 성전 건축을 위한 예물까지 드리라고 명령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비를 얻은 것도 아니고 신하가 요청한 것도 아닌데 누가 고레스로 하여금 이런 명령을 내리게 하였는가. 하나님이 하셨다. 역사적으로도 고레스 왕의 원통형 비문이 발견되어 이 조서가 실제 있었던 일임이 확인되었다. 고레스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여 희년의 선포자, 해방자, 구원자의 삶을 살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사야가 이 고레스를 이름까지 지목하여 예언했다는 사실이다 (사 44:28; 45:1).

사 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사 45: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하나님은 고레스를 "내 목자",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부르셨다. 목자와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아라는 칭호는 예수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만큼 고레스는 메시아의 예표로 쓰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사야는 이 예언을 언제 하였는가. 이사야서 36장부터 39장에 히스기야 왕 이야기가 나오므로 이 예언은 히스기야 왕 때, 곧 주전 700년경에 한 것으로 보인다. 히스기야는 주전 728년경에 태어나 697년에 죽었다. 그런데 고레스는 주전 538년에 등장한다. 약 이백 년 뒤에 등장할 사람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미리 알려 주신 것이다.

  이 사실 앞에서 오늘날의 많은 신학자들은 이사야 40장부터 66장은 바벨론 포로 귀환 때에 후대 사람이 기록하여 이사야서 사이에 집어넣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40장부터 55장까지는 제2이사야가, 56장부터 66장까지는 제3이사야가 썼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백 년 뒤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있느냐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견된 이사야 두루마리 가운데 그렇게 나뉘어 발견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4장에서 이사야 61장을 자신에 대하여 기록된 말씀으로 읽으셨는데, 후대 편집설을 주장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뒤집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재단하는 것이다. 신학교에 가서 이런 것을 배우다가 신앙을 잃어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교회에서 말씀을 배울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마태도 예수님의 치유 사역이 이사야 53장의 성취라고 기록하였다 (마 8:17).

마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이렇게 보면 성경의 역사는 삼 대 출애굽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 출애굽은 모세가 바로 왕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것이다. 둘째 출애굽은 바사 왕 고레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짓게 한 것이다. 셋째 출애굽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건져 새 예루살렘 성으로 데려가시려고 구출해 내신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는 메시아가 오시면 고통받던 자들에게 흑암이 사라질 것을 예언하였다 (사 9:1-2).

사 9:1-2 그러나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마태는 예수님이 갈릴리에 오셔서 사역하신 것이 바로 그 예언의 성취라고 기록하였다 (마 4:15-16).

마 4:15-16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8. 창조주이신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신 이유는 무엇인가?

  왜 하나님은 "나 외에 다른 구원자가 없다"라고 말씀하셨을까. 오랫동안 고민해 보면 답은 한 가지다. 그것은 그분이 우리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만 생각했지 창조주로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어졌다고 증언한다 (요 1:3).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만드신 분에게 주권이 있다. 우리가 죄를 지어 고장이 났는데, 만드신 분이 아니고서야 누가 우리를 고칠 수 있겠는가.

  어느 날 포드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 차를 타고 가다가, 어떤 사람이 고장 난 차를 세워 놓고 고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포드 자동차였고, 그 옷차림을 보니 포드 자동차 정비사였다. 노신사가 차를 멈추고 물으니 정비사가 말하였다. "이 자동차가 고장이 났는데 도무지 수리할 수가 없습니다." "정비 일을 몇 년이나 했는가?" "수십 년 했지요. 그런데도 모르겠으니 어떻게 합니까?" "그럼 나에게 시간을 좀 주겠나?" 그는 오 분 안에 차를 고쳐 버렸다. 놀란 정비사가 당신이 누구시냐고 묻자 그가 대답하였다. "내가 이 차를 만든 장본인이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분이시기에 우리를 제일 잘 아신다. 이것밖에 살리시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아시기에, 말로만 하시지 않고 직접 사랑을 보여 주시려고 사람이 되신 것이다. 우리를 창조하신 구약의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러 오셨으니, 그분이 "나 외에 구원자가 없다"라고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주님은 이 땅에 구원자로 오셨고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악한 자 곧 마귀로부터 구출된 것인가, 안 된 것인가. 구출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주장해야 한다. 그런데 귀신들에게 "우리는 해방되었는데 너는 왜 아직도 압제하느냐, 왜 내 몸속에 들어와 있느냐"라고 물으면 귀신들은 자기도 합법적으로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므로 죄를 통해 들어왔다는 것이고 (요일 3:8),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죽이려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롬 6:23).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렇다면 그들을 어떻게 쫓아낼 수 있는가. 성경은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약속한다 (요일 1:9).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죄를 자백하면 그 죄를 근거로 들어와 있던 귀신들이 떠나가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회개해 보면 그들이 떠나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희년의 선포자로 오셔서 우리를 종의 자리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잃어버린 기업을 다시 찾을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분이 이미 예언을 따라 오셔서 다 이루셨기 때문에, 회개하는 자는 그 희년의 축복을 지금 누릴 수 있다. 그분은 우리의 인생을 수리하러 오셨다. 회개만 하면 우리 인생을 다 수리해 주셔서 다시 싱싱하게 달리게 하시며, 성령의 기름까지 넣고 달리면 천국까지 가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

 

9. 나오며

  지금까지 마귀로부터 탈출시키려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실 메시아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을 살펴보았다.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서에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선언과 함께 "나 외에 구원자가 없다"라고 선언하셨다 (사 43:11; 44:6). 신약 성경은 예수님만이 구원자라고 증언하는데, 이 둘은 모순이 아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 곧 구약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아들의 신분으로 이 땅에 오셨으니 그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여호와가 구원하신다는 뜻이며, 그 구원자가 오셨다는 소식이 곧 복음이다.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의 취임 설교에서 이사야 61장 1절과 2절을 일부러 찾아 읽으시고 이 글이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선포하심으로, 자신이 이 예언의 성취자이심을 밝히셨다. 그분은 죄와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나아가 우리로 죄를 짓게 하여 사망으로 끌어가는 세력인 마귀를 멸하시고 그에게 종노릇하던 우리를 해방하러 오셨다. 하나님은 이 해방자의 예표로 고레스를 이백 년 전에 이름까지 지목하여 예언하셨고, 모세의 출애굽과 고레스의 출애굽에 이어 예수님을 통한 셋째 출애굽으로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새 예루살렘 성으로 이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창조주이시기에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 해방을 주장하며, 죄를 자백하는 회개를 통하여 우리 속에 합법적으로 들어와 있던 귀신들을 쫓아내야 한다. 믿음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왜 메시아를 보내셨는지 모르면 복음을 듣고도 복음을 누리지 못하므로,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희년의 축복이 무엇인지 알고 누려야 한다. 그리하여 구원자 되신 주님을 힘입어 죄와 죽음과 마귀에게서 온전히 자유함을 얻고, 성령의 기름을 가득 채운 채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7월 12일(일)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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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론(141)] 마귀로부터 탈출시키려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사야 61:1~3)_2026-07-12(주일) updatefile 갈렙 2026.07.12 65
680 [기독론(140)]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리스도는 대체 어떤 분이신가?(이사야 44:6, 9:6)_2026-07-05(일) 갈렙 2026.07.05 112
679 [기독론(140)]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리스도는 대체 어떤 분이신가?(이사야 44:6, 9:6)_2026-07-05(일) file 갈렙 2026.07.05 77
678 [기독론(134)] 다윗의 아들 솔로몬(12) 예수 그리스도의 8가지 신분(06) 신부를 사랑한 신랑(아2:3~5)_2026-06-28(주일) file 갈렙 2026.06.28 97
677 [기독론(128)] 다윗의 아들 솔로몬(06) 지혜문학의 최고봉인 아가서가 들려주는 놀라운 비밀(아가1:14, 2:2)_2026-06-21(일) file 갈렙 2026.06.21 146
676 [기독론(121)]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27) 다윗의 모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사무엘상 17:32~50)_2026-06-14(일) file 갈렙 2026.06.14 195
675 [기독론(114)]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20) 그는 회개하는 자였다(02)(시편6:1~7)_2026-06-07(일) 갈렙 2026.06.07 201
674 [기독론(107)]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13) 그는 자신이 받은 고난을 통해 비로소 메시야를 알았다(시편69:19~28)_2026-05-31(일) file 갈렙 2026.05.31 194
673 [기독론(100)]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06) 그는 항상 배우는 자였다"(시편 97:1~3)_2026-05-24(주일) file 갈렙 2026.05.24 326
672 [기독론(93)] 하나님께서 세우시고자 했던 진정한 왕 다윗, 그는 누구인가?(사무엘상 13:13~14)_2026-05-17(주일) file 갈렙 2026.05.17 195
671 [주일1부] 천국에서 성도들이 실제로 갖게 될 4가지 신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한계시록 1:5~6)_2026-05-10(일) file 갈렙 2026.05.10 267
670 [기독론(81)] 가나안 땅 기업 분배에 나타나 있는 천국 기업 분배의 놀라운 비밀(수14:1~5)_2026-05-03(일) file 갈렙 2026.05.03 302
669 [기독론(77)] 가나안 정복전쟁을 통해 드러난 귀신들의 10가지 특징(02)(여호수아 6:1~5)_2026-04-26(일) file 갈렙 2026.04.26 333
668 [기독론(70)] 온 인류의 죄는 어떻게 예수님에 의해 속죄함받게 되었을까?(레위기4:13~21)_2026-04-19(주일) file 갈렙 2026.04.19 660
667 왜 신약시대에는 제사를 드리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가?(요한복음 4:23~24)_2026-04-12(일) file 갈렙 2026.04.12 657
666 [부활주일] 예수께서 죽으셨지만 살아나실 이유가 대속죄일 제사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고전15:17~20)_2026-04-05(일) file 갈렙 2026.04.05 848
665 [기독론(53)] 어떻게 하면 나도 지성소 안에서의 삶을 살 수 있을까?(히브리서10:19~20)_2026-03-29(주일) file 갈렙 2026.03.29 1076
664 천국에서 영광스런 지위를 얻는 것에 대하여 성막이 들려주는 놀라운 계시의 말씀(출애굽기 26:34~37)_2026-03-22(일) file 갈렙 2026.03.22 1079
663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란 대체 어떤 것이며, 그 시작과 끝은 무엇인가?(로마서 1:16)_2026-03-15(일) file 갈렙 2026.03.15 665
662 다른 사람이 이기는 자들이 되도록 도우려면 어떻게 나의 영적인 은사를 준비할 것인가?디모데후서 1:6) _2026-03-08(일) file 갈렙 2026.03.0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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