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6(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조상죄 회개와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와 바른 이해(갈라디아서 3:19, 4: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uAzMrquLlV8
주일낮예배
조상죄 회개와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와 바른 이해
(갈 3:19, 4:9)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지난주 금요일에 그토록 바라고 기다리던 『평생 회개기도문』(정보배 목사, 회개와천국복음연구소 )이 출간되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신 뒤 여러 사람이 회개를 위한 기도문을 만들어 왔지만, 이번 기도문에는 그동안 나온 여러 자료들과 실제 축사 현장에서 깨달은 내용이 함께 반영되었다. 이 기도문은 조상들이 지은 죄와 내가 지은 죄를 모두 회개하도록 안내해줄 것이다. 조상죄를 회개하는 일은 조상의 영원한 운명을 바꾸거나 조상이 받아야 할 죄책을 내가 대신 지려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을 믿고 자기 죄를 회개하여 구원받는 문제와 조상의 죄로 인해 후손에게 내려온 저주와 악한 영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문제를 사실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기독교계에서는 조상죄 회개를 '가계저주론'과 동일한 것으로 규정하며 경계해 왔다. 미신적 관행이나 샤먼의 흑주술이며, 행위구원의 변형이고,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완전성과 충분성을 부정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천국 소망을 약화하고 조상 탓을 하게 만들며 회개를 거부하게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이 과연 조상죄 회개가 실제로 가르치는 내용을 정확히 파악한 것인지, 또한 근거로 제시된 성경 말씀을 문맥에 맞게 해석한 것인지는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조상죄 회개를 반대하는 이들은 주로 네 가지 말씀을 제시한다. 첫째,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만 있을 것이며 그리스도인은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는 갈라디아서의 말씀이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않는다는 에스겔의 말씀이다. 셋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는 바울의 말씀이다. 넷째,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장애는 본인이나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예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다. 문제는 이 말씀들이 틀렸다는 데 있지 않다. 각각의 말씀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구별하지 않은 채 조상죄의 모든 영향을 부정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데 있다.
사실 예수께서 메시야로 오셨다고 해서 사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십계명 법까지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담당하셨다고 해서 회개하지 않은 죄와 그 죄를 근거로 역사하는 악한 영이 자동으로 떠나는 것도 아니다. 믿은 뒤에도 자기 죄를 자백하고 두루마기를 빠는 회개가 필요하다(계 22:14). 조상죄 회개는 구원의 조건을 더하려는 행위가 아니라, 십계명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상의 죄로 내려온 현세적·영적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한 회개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조상죄 회개가 구원과 저주 해방에서 어떻게 구별되며, 예수께서 오신 뒤에도 십계명이 왜 유효하고, 반대 근거로 제시되는 네 가지 성경 말씀을 어떻게 바르게 이해해야 하며, 자백하는 회개가 삶과 영적 상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조상죄 회개는 개인의 구원과 저주 해방에서 어떻게 구별되는가?
조상들이 지은 죄는 나의 영원한 구원을 자동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조상이 우상을 숭배하고 많은 죄를 지었다고 해서 후손이 그 죄책 때문에 반드시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닌 것이다. 각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하며 자기 죄를 회개함으로 구원을 받는다. 반대로 부모가 믿고 회개했다고 해서 자녀가 아무런 믿음과 회개 없이 자동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영원한 심판은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보인 믿음과 회개와 행위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한 죄책과 현세적·영적 영향은 같은 것이 아니다. 조상의 죄는 후손의 구원을 대신 결정하지 않지만, 그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과 저주의 결과는 혈통을 따라 후손에게 내려갈 수 있다.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 음란과 중독과 우울과 불면 같은 문제가 한 가계 안에서 반복되는 데에는 조상들이 범한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죄가 영적 통로가 된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조상죄를 회개하는 이유는 조상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도 나를 구원하기 위함도 아니다. 다만 조상의 죄로 인해 내게 내려온 악한 영을 제거하고 그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구원받기 위한 회개와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회개를 서로 구별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 죄인임을 시인하는 회심의 회개는 사실 영원한 생명과 관계된다. 그러나 믿은 뒤에 이미 지은 구체적인 죄를 자백하는 회개는 그 죄를 용서받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는 일과 관계된다. 여기에 조상들이 지은 죄까지 자백할 수 있다면 그 죄를 근거로 후손에게 내려온 악한 영이 떠날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회개기도문은 이 두 영역을 혼동하지 않고 함께 다루어, 구원의 길을 돕고 일상생활의 저주에서도 벗어나도록 안내한다.
이 구별을 놓치면 조상죄 회개를 행위구원이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조상죄를 많이 회개해야만 예수님의 십자가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죄를 용서하는 근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뿐이다. 사람의 회개가 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흘리신 예수님의 피가 자기 삶에 적용되도록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는 것이다. 구속의 값은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게 치르셨으며, 우리는 믿음과 회개로 그 은혜를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조상죄 회개는 모든 고통을 무조건 조상 탓으로 돌리는 운명론도 아니다. 사람은 자기가 지은 죄를 먼저 인정하고 돌이켜야 한다. 조상의 죄를 말하면서 자기의 교만과 거짓과 음란과 탐욕과 미움과 중독을 외면한다면 참된 회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상죄와 자범죄를 함께 회개하라는 까닭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 나를 붙들고 있는 죄의 뿌리와 열매를 모두 처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조상죄가 구원과 무관하다는 말은 조상죄의 영향도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구원과 저주 해방은 서로 연결되면서도 서로 구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을 믿고 자기 죄를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하며, 조상죄와 자범죄를 자백하여 삶을 괴롭히는 악한 영과 저주의 영향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이 구별이 분명할 때 조상죄 회개는 예수님의 대속을 약화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 보혈의 능력을 구체적으로 의지하는 일이 된다.
3. 예수께서 오신 뒤에도 십계명은 왜 여전히 유효한가?
율법에는 '도덕법'과 '의식법'이라는 서로 다른 측면이 있다. 도덕법인 십계명은 사람이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르치는 기준법이다. 반면 할례법, 안식일법, 음식법, 제사법, 성결법, 절기법과 같은 의식법은 장차 오실 메시야가 누구신지를 예표와 그림자와 표지로 보여 주기 위해 주어진 법이다. 그러므로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실체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그 의식법의 모든 목적을 완성하셨으므로, 의식법은 폐지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이상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지키지 않았다고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자가 또다시 의식법을 지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심으로 율법이 전부 폐해진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율법 중에 의식법들만 완성하심으로 폐지하시고, 도덕법은 한층 더 강화하셨기 때문이다. 공생에 기간에 예수께서는 당신이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오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셨다(마 5:17-18).
그러므로 예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말씀을 십계명이 폐지되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살인과 간음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탐심이 예수님의 오심 이후에는 더 이상 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죄도 마찬가지다. 십계명은 행위로 칭의를 얻는 수단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무엇을 죄로 알고 회개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밝히는 도덕적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조상들이 지은 죄악을 자손 삼사 대까지 갚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십계명의 제2계명에 붙어있는 보조 조항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에게 절하거나 그것을 섬기지 말라고 하시면서, 자신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되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하셨다(출 20:5-6).
그런데 어떤 이는 그리스도인들은 더이상 조상들의 죄의 영향을 자손들이 안 받는다고 가르친다. 만약 후손에게 내려오는 죄의 결과를 부정하려면 같은 문맥에 있는 천 대의 은혜도 함께 부정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조상이 하나님을 잘 섬길 때 후손이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말씀은 기쁘게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우상숭배의 죄가 후손에게 미칠 수 있다는 경고도 동일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복에 관한 말씀만 취하고 죄의 결과에 관한 말씀은 폐지되었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또한 십계명을 지키는 일이 결코 예수께서 주시는 은혜와 경쟁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켜 자기 의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우선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 그러나 의롭다 여김을 받은 뒤에도 계속 죄를 범하는데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허락받은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부터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계속해서 회개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 4:17).
고로 십계명은 죄를 드러내어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돕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을 보여 주기에 매우 고마운 것이다. 한 번 믿었다는 이유로 우상숭배와 음란과 탐욕을 계속 행하는데, 자신은 결코 구원에서 탈락할 수 없다고 안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믿음은 죄를 가볍게 여기게 만들어주는 면허가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일수록 십계명의 빛 앞에서 자신의 삶을 살피고, 범한 죄를 자백하며, 끝까지 믿음과 회개 안에 거해야 한다.
4. 갈라디아서가 폐지되었다고 말하는 율법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사도 바울은 자신이 3차전도여행 중에 썼던 갈라디아서의 편지에서 율법은 범법함으로 더하여졌으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갈 3:19). 그러므로 이 말씀만 따로 떼어 놓으면 예수께서 오신 뒤 모든 율법이 폐지된 것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전체의 논쟁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면 바울이 문제 삼은 그 율법이 과연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가 분명해진다.
어느날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인 갈라디아 교회 안에 어떤 유대인 형제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았더라도 유대인처럼 율법의 의식법들을 지켜야 온전한 언약 백성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믿음에 할례를 받고 안식일을 지키며 절기들도 준수해야 한다고 가르쳐다. 그러자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얻은 진정한 자유를 버리고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인 율법의 의식법 아래로 돌아가려는 성도들을 강하게 책망하였다(갈 4:9).
그렇다. 여기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은 율법 전체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오심으로 이미 폐지된 바 있는 율법의 의식법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바울은 초등학문의 내용이 무엇인지의 예를 하나 언급하는데, 그것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갈 4:10). 여기서 '날'은 안식일과 금식일을, '달'은 초하루와 관련된 의식을, '절기'는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과 칠칠절과 나팔절과 속죄일과 초막절을, '해'는 안식년과 희년을 가리킨다. 이것들은 메시야의 모형과 그림자로 주어진 의식법들이다.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셨는데도 이러한 날들을 계속 지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이미 폐해진 율법의 의식법들에게 다시 종노릇하는 것이 된다(갈 4:9-11).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5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 '할례'에 관한 바울의 경고도 같은 문맥에 놓여 있다. 할례를 받아야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믿는 사람은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지며,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자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갈 5:2-4).
그러므로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정죄한 것은 십계명을 따라 살며 죄를 회개하는 행위가 결코 아니다. 할례를 받고 절기를 지키는 의식으로 칭의를 얻으려는 시도를 하는 자들에게 경고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의식법을 준수한 공로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음으로 그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칭의의 근거와 구원받은 이후의 사람의 도덕적 삶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십계명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을 메시야가 누군지를 모형과 그림자로 보여 주는 의식법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도덕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3장과 4장을 근거로 하여, 출애굽기 20장의 제2계명을 무효라고 선언할 수 없다. 약속하신 씨가 오시기까지 필요했던 모형과 그림자로서 주어진 의식법들이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고 폐지되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가 죄라는 사실과 살인·간음·거짓·탐심이 죄라는 기준은 여전히 폐지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고로 갈라디아서를 바르게 이해하면 율법주의에서는 벗어나되 도덕적 방종으로 흐르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면서 십계명을 통해 죄를 깨닫고 자백하는 것이 복음에 합당한 삶인 것이다.
5. 에스겔 18장은 조상죄의 영향을 부정하는 말씀인가?
어떤 이는 에스겔 18장의 말씀을 소환하여 조상죄의 영향을 부정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에스겔 18장은 '각자의 행위에 따른 심판의 개별성'을 가르칠 뿐이다. 이 말씀은 범죄하는 그 영혼이 자기의 죄 때문에 죽는 것이며, 아들이라고 해서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아버지라 할지라도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않는다고 하는 말씀이다. 고로 의인의 공의는 그 자신에게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그 자신에게 돌아간다는 뜻이다(겔 18:20).
그러면 이 말씀은 아버지의 죄가 아들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말씀인가? 그건 아니다. 이 말씀은 아버지가 범죄했다고 해서 아들이 그 죄책을 대신 지고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동시에 부모의 믿음이 자녀를 자동으로 구원하지도 않으며, 부모의 죄가 자녀를 자동으로 멸망으로 인도하지도 않는 것이다. 악인이 자기 악에서 돌이켜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며, 스스로 헤아리고 모든 죄악에서 돌이키면 살고 죽지 않기 때문이다(겔 18:27-28).
에스겔의 결론은 위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하실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모든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여 죄악이 심판의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겔 18:30).
그렇지만 심판의 개별성이 조상의 죄가 후손의 현재 삶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주어진 것은 아니다. 고로 예레미야애가는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나 후손이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고 있다고 고백한다(애 5:7). 만약 조상들의 죄가 후손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다고 한다면, 예레미야애가 5장 7절과 같은 성경의 말씀들을 찢어버려야 한다.
우리는 출애굽기 20:5의 말씀과 에스겔 18:20의 말씀이 서로 모순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에스겔은 누가 영원한 심판을 받는지를 말하고 있지만, 예레미야애가는 조상이 지은 죄의 역사적·현세적 결과를 후손이 겪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의 죄 때문에 아들이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우상숭배와 음란과 폭력으로 가정을 파괴되면 자녀가 그 상처와 가난과 무너진 환경을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영적으로도 조상의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이 혈통을 따라 내려와 후손을 괴롭힐 수 있는 것이다.
고로 출애굽기 20장의 제2계명에서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갚는다고 하는 말씀은 여전이 유효하다. 만약 에스겔 18장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출애굽기 20:5의 말씀을 찢어 버리거나 억지로 무효화시켜서는 안 된다. 심판의 개별성과 죄의 영향이 세대에 미치는 원리도 함께 보아야 한다. 영원한 죄책은 각 사람에게 돌아가지만, 죄가 낳은 저주와 악한 영의 영향은 후손에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후손이 조상죄를 회개하는 것은 조상의 죄책을 대신 담당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습니다”라고 자백함으로써 그 죄를 인정하고, 그 죄를 근거로 자기에게 내려온 악한 영이 떠나도록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는 것이다. 동시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이 범한 자범죄들에 대해서도 돌이킬 수 있어야 한다. 에스겔 18장이 요구하는 개인의 회개와 조상죄의 영향을 끊는 회개는 서로 결코 경쟁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 회개를 함께 행할 때 남의 탓으로 책임을 돌리지 않으면서도 가계 안에 누적된 죄의 영향까지 처리할 수 있다.
6. 그리스도께서 속량하셨는데도 왜 그리스도인은 자백하며 회개해야 하는가?
또 어떤 이는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로 모든 믿는 이들을 속량하셨기 때문에 더이상 율법의 저주를 받지 않으므로, 율법의 저주를 없애기 위해 조상죄를 회개하는 것은 잘못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게 맞는 말인가? 분명한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다만 죄값인 사망의 값만 치른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받게 되는 저주까지 담당하신 것은 사실이다(갈 3:13). 그러므로 모든 믿는 이들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신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율법의 규정에 따라 나무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받을 저주를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이다(신 21:23).
그랬다. 그날 예수께서는 죄의 형벌인 사망만 담당하신 것이 아니다. 십자가 위에서 헐벗고 굶주리셨으며 멸시와 천대와 조롱과 침 뱉음을 받으신 것이다. 죄 없으셨지만 그 몸으로 채찍에 맞으시고 따르던 이들로부터 버림까지 받으셨다. 이사야는 그가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고 죄악 때문에 상하였으며,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채찍에 맞으므로 나음을 받았다고 분명하게 예언했다(사 53:5).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예수님을 믿는 순간 나의 모든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이 자동으로 제거되지 않는가? 왜 그리스도인이 된 뒤에도 여전히 죄의 습관에 묶여 있고 악한 영에게 눌려 있으며 가정 안의 고통은 반복되고 있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이 불완전해서가 결코 아니다. 십자가에서 마련된 속량의 은혜를 자기 삶에 적용받으려면, 한 가지 과정이 더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기까지 참 오랜 세월이 흘러갔다. 그런데 그것은 회개기도문으로 회개를 하면서 해답을 찾았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다 칭함을 받고 중생을 얻는다. 그러면 그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것이므로 그는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고 해서 자기 속에 들어온 악한 영들이 자동적으로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속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을 내보내기 위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서 아주 중요한 단서를 우리에게 제공해주었다. 그것은 사람이 죄용서를 받을 뿐만 아니라 깨끗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는 회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요한일서에 사도 요한은 신자들에게 죄의 자백이 있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고 의로우셔서 우리들의 죄들을 용서해주실 것이며 모든 불의에서부터도 깨끗하게 하신다고 하셨다(요일 1:9).
과거에 지은 죄를 자백했을 때에 죄들 사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모든 불의에서도 동시에 깨끗하게 되는 삶을 보장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가 지은 죄를 자백했을 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때에는 2가지 조치가 취해진다. 먼저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하늘의 행위책에 기록된 죄목이 예수님의 피로 지워진다. 그리고 동시에 그 죄를 통하여 내 몸에 들어와 있던 악한 영도 떠나갈 근거가 마련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요일 1:7), 모든 더러움에서부터도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
필자도 예수께서 분명하게 저주를 담당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왜 내 삶에는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이 남아 있는지를 오랫동안 질문하고 고찰해 보았다. 그리고 요한일서의 말씀과 실제로 축사를 해 본 경험을 통하여, 이미 지은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할 때에라야 그리스도의 피가 하늘의 죄 기록를 없애줄 뿐만 아니라, 땅에 있는 사람의 몸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을 추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회개는 십자가의 능력을 보충하는 공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하여 죄와 악한 영의 근거를 제거하는 믿음의 반응에 해당하는 것이다.
사실 모든 이들은 자신의 가문이 지은 죄의 종류와 분량은 각각 다르다. 그러므로 아무런 자백 없이 모든 결과가 기계적으로 같아지는 것이 공평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자기 죄와 조상들의 죄를 인정하고 자백한다면, 예수께서 흘리신 피로 용서받고 깨끗하게 될 뿐마 아니라, 자기 몸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도 쫓겨 나가게 된다. 그리스도의 속량은 이미 우리 속에 있는 악한 영들까지 내보내기에 충분하며 완전하다. 그러나 그것이 내 몸에서 실행되려면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를 자백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주를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하려면, 다른 공로나 의식을 의지하지 않은 채,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을 믿으며 날마다 자백하는 회개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생명나무로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가 주어진다고 말했다(계 22:14).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자신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사건만을 붙들고 이후의 죄를 방치해 놓아서는 절대 안 된다. 주님을 만날 때까지 자기 두루마기를 계속 빨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 죄를 회개하여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조상들이 지은 죄도 자백하여 이미 내 몸 속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도 추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이제 저주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은혜를 부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은혜 안에 머물게 해준다.
7.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사건은 조상죄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또 어떤 이는 예수께서 직접 맹인을 언급하시면서 그가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그의 죄도 아니고 그의 부모의 죄도 아니라고 했다는 말씀을 근거로 조상들의 죄의 영향을 후손이 받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이 주장은 맞는 것일까?
어느날이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맹인 된 한 사람을 만나셨다. 제자들은 그가 맹인으로 난 것이 본인의 죄 때문인지 부모의 죄 때문인지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 사람이나 그의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분명하게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대답하셨다(요 9:1-3).
그러므로 조상죄 회개를 반대하는 이들은 이 말씀을 근거로, 부모나 그 윗대 조상들의 죄가 후손에게 어떤 질병과 장애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답변은 출애굽기 20:5의 십계명법을 폐지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답변은 그 사람 본인과 그의 부모, 곧 바로 그 사람의 윗대의 죄로 인하여 맹인이 된 것이 아니라고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계명의 제2계명의 말씀처럼 조상들이 지은 죄의 영향이 그의 자손 삼사 대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했으니, 한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나게 된 것은 그의 3~4대의 조상들 때문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가 맹인으로 태어난 것을 두고, 본인과 그의 부모의 죄가 아니라는 답변만을 가지고서, 윗대 조상의 죄와 그 죄의 영향까지 모두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나는 것은 죄값에 대한 하나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나타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자, 출애굽 직전으로 돌아가보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더러 당신의 백성을 출애굽시키라고 명령하셨다. 그러자 모세는 못하겠다고 거절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입이 뻣뻣하고 둔하여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떤 답변을 해 주셨는가? 사람의 입을 지으신 이도 여호와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말 못 하는 것와 못 듣게 하는 것와 눈을 밝게 하는 것과 맹인이 되게 하는 것도 이 여호와가 한느 일이라고 말씀하셨다(출 4:10-11).
그럼, 사람은 왜 맹인으로 태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신명기 28장에 답이 나와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저주 가운데 하나가 맹인이 되는 것이다. 더욱이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어긴다면 그의 눈이 멀게 되고 정신병에 걸리게 되며, 형통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신 28:28-29).
그러므로 이러한 말씀들을 함께 살펴보면, 사람에게 나타나는 질병과 장애가 죄와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어떤 사람이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만을 보고서, 본인이나 부모의 특정한 죄를 가지고 그를 함부로 정죄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고로 요한복음 9장의 사건은 제자들이 제시한 두 선택지만으로 그 원인을 재단하지 못한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나타내실 더 큰 뜻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즉 예수께서는 그날 그의 육신의 눈을 뜨게 해 주셨을 뿐 아니라 영적으로 눈먼 이들이 참빛을 보게 하는 하나님의 일도 동시에 하셨다.
그러므로 이 사건에 대한 바른 이해는 두 극단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는 모든 질병을 당사자의 자범죄로만 단정하여 정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죄와 질병과 저주 사이에는 어떠한 관련도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개인의 죄, 부모의 죄, 윗대 조상의 죄, 하나님의 특별한 뜻을 구별하고 있다. 우리는 아픈 사람을 볼 때 그를 판단하기보다 긍휼히 여기고, 가능한 모든 죄의 통로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피며, 회개와 기도와 치유를 간구해야 한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에게서 주님은 치유를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주셨다. 그것은 어둠에 속한 자가 빛에 속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해 예수께서 이 세상에 들어오셨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조상 죄를 회개하는 것이 고통받는 사람을 정죄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된다. 왜 이런 고통이 있는지를 살펴야 하고, 자기와 조상들의 죄를 자백하여 악한 영의 통로를 차단하며, 예수님의 피와 이름으로 자유와 회복을 얻도록 돕는 자가 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회개와 치유의 중심에는 죄와 저주를 담당하시고 어둠 속에 빛을 비추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것이다.
8. 조상죄와 자범죄를 회개하면 삶과 영적 상태가 어떻게 달라지는가?
조상죄와 자범죄를 함께 회개하면 구원과 삶의 두 영역이 바로 세워진다. 자기 죄를 자백함으로 죄를 용서받고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준비를 하며, 조상죄를 자백함으로 혈통을 따라 내려온 악한 영과 저주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회개는 죄의 기록만 지우는 관념적인 절차가 아니다.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이 떠날 법적인 근거를 만들고, 사람의 몸과 혼을 붙들던 영향력을 약화시키며, 삶에 실제 변화가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이때 조상죄로 내려온 악한 영이 육체를 붙들면 질병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혼을 붙들면 우울과 불면과 좌절과 집착과 분노와 신기로 나타날 수 있다. 때로는 가난과 반복되는 실패와 자녀의 앞길이 막히는 문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자기 안의 음란과 중독과 폭력적 성향이 가계 안에서 반복될 수도 있다. 이때 현상만 억누르거나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죄의 뿌리가 해결되지 않는다. 관련된 죄를 찾아 자백하고 그 죄를 버리며,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해 달라고 회개해야 한다.
회개할 때에는 “내가 무슨무슨 죄를 지었습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그 죄를 통하여 악한 영을 자기 안에 받아들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단을 세워야 한다. 입으로만 죄목을 읽고 삶을 바꾸지 않는다면 회개의 열매가 온전하게 나타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십계명을 지키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돌이켜야 한다. 회개는 과거의 죄를 처리하면서 현재의 행동도 바꾸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평생 회개기도문』은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자기 기억에 떠오르는 몇 가지 죄만 회개하고 끝내지 않도록 조상들의 우상숭배와 개인의 성품·생활 속 죄를 체계적으로 살피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문 자체가 부적이나 주문처럼 능력을 내는 것은 아님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기록된 죄를 자기 죄와 자기 가문의 죄로 인정하고 진실하게 자백하며,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할 때 유익이 나타난다.
회개가 깊어진 후에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죄에 대한 충동과 악한 영의 압박은 더 심해질 것이고,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의 저주가 임하여 형통한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죄는 미워하고 성령을 통한 거룩함을 사모해야 한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받을 지위와 신분 그리고 상급을 얻기 위해 그것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야 한다. 이것은 세상에서 편안하게 살기 위한 욕망을 채우는 일이 아니다. 저주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며 천국을 준비하기 위한 변화이다.
그러므로 그동안 우리가 신뢰해왔던 교리들 특히 종교개혁자들이 만들어낸 교리라 할지라도 그것을 결코 성경보다 위에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로 오늘날 강단에 서는 설교자는 교단의 교리나 익숙한 주석만 반복하여 보지 말고, 성경 전체와 실제 영적 현장을 함께 그 죄값을 함께 살펴야 한다. 성경말씀에 대한 해석이 실제 말씀과 열매에 맞지 않는다면 무엇을 놓쳤는지 다시 점검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우리가 성경을 잘못 해석할 수는 있어도 성경 자체가 틀릴 수는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는 하나님께 불평과 불만을 쏟는 데 머물지 말고 회개를 시작해야 한다. 자기 죄를 먼저 철저히 회개하고, 할 수 있으면 조상들이 지은 죄까지 회개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구원을 이루어 가고 악한 영을 떠나보내며, 형통한 삶으로 복음을 드러내야 한다. 『평생 회개기도문』은 이 길을 꾸준히 걸어가도록 돕는 실제적인 안내서가 될 것이다.
9. 나오며
조상죄 회개와 관련하여 자주 제기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바르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조상죄 회개는 조상의 영원한 죄책을 후손이 대신 지거나 조상을 구원하는 행위가 아니다. 자기 죄를 회개하여 구원받는 문제와 조상의 죄로 내려온 저주와 악한 영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문제는 분명히 구별된다.
예수께서 오셔서 완성하신 율법은 메시야의 모형과 그림자로 주어진 의식법이다. 사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법인 십계명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므로 제2계명에 기록된 죄의 삼사 대 영향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갈라디아서의 초등학문은 할례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의식법의 종노릇을 가리키며, 십계명을 지키며 회개하는 삶을 금지하는 말씀이 결코 아니다.
에스겔 18장은 각 사람이 자기 행위대로 영원한 심판을 받는다는 심판의 개별성을 가르치지만, 조상의 죄가 후손의 삶에 미치는 현세적·영적 영향까지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완전하게 속량하셨으므로, 우리는 그분의 피를 의지하여 이미 지은 죄를 자백해야 한다. 자백할 때 죄를 용서받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며, 죄를 근거로 역사하던 악한 영도 떠날 수 있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사건도 본인이나 바로 윗대 부모의 죄가 아니라는 말씀을 모든 조상죄의 영향이 없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질병과 고통을 겪는 사람을 함부로 정죄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더 큰 뜻을 구하면서 자기와 조상들의 죄를 겸손히 살피고, 예수님의 피와 이름으로 치유와 자유를 구해야 한다.
우리는 교리를 성경 위에 두지 말고 말씀을 문맥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 자기 죄를 시인하여 구원의 길에 들어선 뒤에도 날마다 두루마기를 빠는 회개를 계속해야 한다. 또한 할 수 있으면 조상들의 죄까지 자백하여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의 저주에서 벗어나야 한다. 회개를 통하여 죄의 충동과 악한 영의 압박을 끊고, 거룩한 삶과 천국의 상급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해 끝까지 회개하고 구원과 저주 해방의 은혜를 누리며 천국을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7월 26일(일)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신자들이 겪는 삶의 저주와 영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죄의 회개가 반드시 필요함을 역설하며, 이를 위해 제작된 ‘평생 회개 기도문’의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현대 교계가 갈라디아서나 에스겔서 등의 성경 구절을 편협하게 해석하여 율법의 도덕적 책임과 죄의 대물림을 부정함으로써 성도들이 실제적인 영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대속이 의식법을 폐한 것이지 십계명에 명시된 가계의 저주까지 자동으로 소멸시킨 것은 아니므로, 성도는 자백을 통한 성결의 과정을 거쳐야만 악한 영을 축출하고 진정한 형통함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회개만이 개인의 구원을 완성하고 가문의 영적 굴레를 끊어내는 인류사적 기념비적 도구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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