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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8. 17. (월)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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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_zrobJxRnQk
날짜 2026-08-16
본문말씀 에스겔 2:1~7
설교자 정보배 목사

2026-08-16(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기독론(165)] 에스겔 선지자, 그는 어떻게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었는가?(에스겔2:1~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_zrobJxRnQk

 

기독론(165)

에스겔 선지자,

그는 어떻게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었는가?

(겔 2:1-7)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에 먼저 하늘이 열리는 환상을 보았다. 그발 강가에서 네 생물과 바퀴들, 수정 같은 궁창과 보좌가 나타났고, 보좌 위에는 사람 같은 형상이 앉아 있었다. 에스겔은 그것을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고 기록하였다. 그가 그 영광 앞에 엎드렸을 때에 비로소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이 들렸다(겔 1:28-2:1).

  에스겔의 부르심은 다른 선지자들과 비교해도 조금 독특하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명을 먼저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 사명을 주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환상으로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패역한 백성에게 심판을 선포해야 할 사람은 사람들의 반응보다 자기를 보내신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듣는 이들이 환영하지 않고 오히려 대적할지라도, 보좌에 앉으신 분을 분명히 본 사람은 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전할 수 있다.

  환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르아’는 ‘보다’라는 말에서 왔으며, 다른 문맥에서는 '거울'을 뜻하기도 한다(출 38:8). 환상은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는 창인 동시에 사명 받은 사람이 자신을 살피게 하는 거울이다. 환상 자체가 사람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그 환상이 요구하는 순종이 진실함을 드러낸다.

  에스겔은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 직무를 온전히 수행하지 못한 채 바벨론 포로가 되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의 진로는 무너졌고 그의 자리는 사라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아닌 이방 땅에서 하늘을 여셨고, 성전에서 봉사하지 못하던 그를 말씀을 맡은 파수꾼으로 세우셨다. 사람의 계획이 중단된 장소가 하나님의 부르심이 시작되는 장소가 된 것이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보내시는 장면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고 전하라고 하셨다. 선지자의 성공은 많은 사람이 즉시 반응하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충실히 전하여, 적어도 그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남기는 데 있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이기는 자가 된 까닭은 화려한 환상을 보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보고 들은 것을 끝까지 책임 있게 전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에스겔이 천국에서 왕과 제사장의 반열에 있으며 스물네 장로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섬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성경이 분명히 증언하는 핵심은 에스겔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말씀을 받아 패역한 백성에게 전했으며, 파수꾼의 책임을 감당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에스겔이 어떤 형편에서 부름받았고, 왜 환상과 말씀을 받았으며, 어떻게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여 이기는 자가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에스겔은 어떤 시대와 처지에서 부름받았는가?

  에스겔은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과 더불어 대선지자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는 남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거듭 받으며 멸망으로 기울어 가던 시대에 살았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주전 605년경 1차로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비롯한 일부 사람들을 끌고 갔다. 이어 주전 597년경 바벨론의 2차침공으로 여호야긴 왕과 지도층 인사들을 다시 포로로 잡아갔는데, 에스겔도 이때 바벨론 땅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그때는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시기였다. 그때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백성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두 차례의 침략과 포로 사건은 이미 심판이 진행되고 있다는 경고였다. 그들은 우상숭배와 불의와 반역을 버리지 않았고, 형식적인 종교적 확신으로 현실을 외면하였다. 드디어 주전 586년경 바벨론의 3차 침공으로 시드기야 왕 때에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파괴되고 더 많은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다.

  에스겔은 이러한 격변의 한복판에서 살아야 했다. 그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신다’ 또는 ‘하나님께서 붙드신다’는 뜻을 지닌다. 이름처럼 그는 자신의 힘으로 버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들려 강하게 된 사람이었다. 그는 당시 부시의 아들로서 제사장이었다(겔 1:3). 레위인은 스물다섯 살부터 회막 봉사에 참여하고 서른 살부터 본격적인 직무를 담당하였다(민 8:24-25, 4:3). 에스겔은 제사장으로 봉사할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기에 고국을 떠나 포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겔 1:3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포로가 된 사람에게는 선택권이 거의 없다. 에스겔은 자기 나라와 성전과 익숙한 공동체를 떠나 바벨론 제국의 통치 아래 살아야 했다. 이때 그는 바벨론의 건축 노동에 동원되었을 것이다. 성경이 그의 구체적인 노동 형태를 자세히 밝히지는 않지만, 그가 그발 강가의 포로 공동체 안에서 상실과 수치를 함께 겪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고로 예루살렘에서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려던 그의 꿈은 인간적으로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장소에 갇히지 않으셨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도 하늘을 여시는 분이었다. 바벨론에서 5년의 시간이 흐라자, 에스겔도 서른 살이 되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있었더라면 제사장 직무를 감당했어야 할 바로 그 나이에 하나님의 권능이 그이 위에 임하였다. 비록 그는 지상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되지 못했으나, 포로 공동체를 깨우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로 세움을 받았던 것이다.

  그렇다. 부르심의 자리가 반드시 편안하고 준비된 환경은 아니다. 길이 막히고 익숙한 기반을 잃은 때에도 하나님은 새로운 사명을 주신다. 에스겔에게 바벨론은 실패의 땅인 동시에 계시의 땅이었고, 포로 신분은 파수꾼 사명의 출발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시대의 어둠 속에서 당신의 말씀을 전할 사람을 부르셨다.

3. 하나님은 왜 말씀 전에 환상을 보여주셨는가?

  에스겔서는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환상들이 내게 보이니”라는 선언으로 시작된다(겔 1:1).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말씀을 하시기 전에 먼저 에스겔의 영의 눈을 여셨다. 그래서 그는 네 생물과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을 본다. 만약 그가 그때에 백성의 완고함과 바벨론의 권세만 바라보고 있었다면 그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사명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땅의 왕들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보좌와 그 보좌를 받드는 하늘의 질서를 먼저 환상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눈앞의 형편에 눌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선지자에게 있어서 환상은 중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환상은 꿈보다 선명한 계시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꿈은 주로 잠든 상태에서 경험하지만, 환상은 낮이나 밤에 영의 눈이 열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장면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고 구약시대에 모세와 사무엘 그리고 다니엘과 에스겔을 비롯하여, 신약시대의 사도 요한도 환상을 통하여 영의 세계와 장래의 일을 볼 수 있었다.

민 12:6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그렇다면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 환상을 먼저 보여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로, 그의 사명의 근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에스겔이 전할 메시지는 자신의 정치적 분석이나 자기의 감정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보좌에서 나오는 음성을 들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백성이 거부하더라도 말씀의 권위를 가지고 전할 수 있었다. 그렇다. 선지자는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뜻처럼 포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실제로 보여 주시고 들려주신 것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사람이다.

  둘째 이유는 앞으로 감당할 고난을 견디게 하기 위해서다. 에스겔이 받아 먹은 두루마리에는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기록되어 있었다(겔 2:8-10). 그것은 입에서는 꿀같이 달았지만, 그가 전해야 할 내용은 심판과 멸망을 포함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기쁨과 그 말씀을 패역한 백성에게 선포하는 고통이 함께 있었다. 보좌의 영광을 먼저 보지 않았다면 그는 무거운 메시지와 사람들의 거절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셋째 이유는 현재의 영적 실상과 미래의 경륜을 함께 알게 하기 위해서다. 에스겔은 예루살렘 성전에 우상이 들어와 있는 현재의 죄악을 보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가는 장면과 예루살렘이 심판받을 미래를 보았다. 또한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회복과 새 성전과 새 땅의 분배도 보았다. 환상은 보이는 현실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하나님의 판단과 계획을 드러냈다.

  넷째 이유는 환상을 보는 사람 자신을 비추기 위해서다. ‘마르아’가 거울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환상은 다른 사람의 비밀을 알아내어 자기를 높이는 도구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맡았는지를 보게 하는 거울이어야 한다. 환상을 받은 사람일수록 더 낮아지고, 본 것을 함부로 더하거나 빼지 않으며, 해석할 때에도 성경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신중해야 한다.

  오늘날에도 사람마다 부르심의 통로가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말씀 연구에서 시작하고, 어떤 사람은 성령의 은사나 환상을 통하여 사명을 깨닫는다. 그러나 환상만 있고 말씀이 없으면 분별하기 어렵고, 말씀을 떠난 은사는 악한 영의 속임에 노출될 수 있다. 설교자는 자신에게 먼저 말씀을 깊이 연구하게 하신 뒤 축사와 환상의 은사를 주셨다고 고백한다. 이 개인적 체험이 주는 교훈은 환상을 자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기준으로 환상을 분별하고 사명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이다.

4. 네 생물과 보좌 위 사람 같은 분은 누구인가?

  에스겔이 처음 본 환상의 중심에는 네 생물과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 네 생물은 전체적으로 사람의 형상을 가졌으나 각각 사람과 사자와 소와 독수리의 네 얼굴을 지녔다. 네 날개 가운데 두 날개로 날고 두 날개로 몸을 가렸으며, 갈 때에는 몸을 돌이키지 않고 곧장 나아갔다. 그들의 모양은 불붙는 숯과 횃불 같았고, 번개처럼 왕래하였다. 생물 곁의 바퀴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모양이었으며 둘레에는 눈이 가득했다(겔 1:5-21).

  이 네 생물은 피조된 천상 존재들이다. 에스겔 10장은 그들을 그룹들이라고 부른다(겔 10:20).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를 받들고 하나님의 영이 가려는 곳으로 움직인다. 네 얼굴은 피조 세계의 다양한 특성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보여 주며, 바퀴에 가득한 눈은 하나님의 섭리가 어느 곳도 놓치지 않음을 나타낸다.

  네 생물 위에는 수정처럼 빛나는 궁창이 펼쳐져 있었고, 그 궁창 위에는 남보석 같은 보좌의 형상이 있었다. 보좌 위에는 사람의 모양 같은 형상이 앉아 있었다. 허리 위는 불 가운데 빛나는 단 쇠 같고, 허리 아래도 불 같았으며, 사방에는 무지개 같은 광채가 둘렀다. 에스겔은 이 장면을 하나님 자체를 완전히 보았다고 표현하지 않고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고 거듭 제한하여 기록한다.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신 것이다.

겔 1:28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

  보좌 위의 사람 같은 분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형상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계시다. 본문은 그 광경을 여호와의 영광이라고 분명히 부른다. 기독론적으로 보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타내시는 이 모습은 장차 육신을 입고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한다. 신약은 아들을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다고 증언한다(골 1:15, 고후 4:6). 에스겔이 본 환상을 곧바로 성육신 이후의 예수님의 모습과 동일한 장면이라고 단정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사람 같은 형상으로 영광을 나타내신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히 드러났다고 이해할 수 있다.

  사도 요한도 하늘의 열린 문과 보좌, 보좌에 앉으신 이와 네 생물을 보았다(계 4장). 이어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서 있는 어린양을 보았고, 어린양이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를 취하는 장면을 기록하였다(계 5장).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은 모두 먼저 하늘 보좌의 주권을 보여 준 뒤 땅에서 진행될 심판과 구원의 경륜을 펼친다. 역사의 중심은 바벨론이나 로마 같은 제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에게 있다.

  에스겔이 영광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엎드리는 것이었다. 참된 환상은 사람을 과장하고 높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위엄 앞에 자신을 낮추게 한다. 그때 하나님의 영이 에스겔에게 들어와 그를 일으켜 세웠고, 그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겔 2:1-2). 하나님 앞에서는 엎드리고, 사명을 위해서는 성령으로 일어서야 한다. 이것이 환상을 받은 종의 바른 자세다.

5. 에스겔이 본 네 가지 환상은 무엇을 계시하는가?

  에스겔서의 큰 흐름을 따라가면 네 묶음의 중요한 환상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1장과 10장에 나오는 네 생물과 하나님의 보좌에 관한 환상이다. 이 환상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갇힌 지역 신이 아니라 어디서나 통치하시는 왕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바퀴 달린 보좌가 움직이는 모습은 포로지 바벨론에서도 하나님의 권능과 임재가 에스겔에게 미칠 수 있음을 알린다.

  둘째는 8장부터 11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성전의 죄악과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환상이다. 에스겔은 영에 이끌려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안에서 행해지는 우상숭배를 보았다. 장로들은 어두운 방에서 각종 가증한 형상 앞에 분향했고, 여인들은 담무스를 위하여 울었으며, 사람들은 성전을 등지고 해를 향하여 절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성전이 남아 있었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죄가 가득했다.

겔 8:3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에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에는 질투의 우상 곧 질투를 일어나게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그 결과 하나님의 영광은 성전 안쪽에서 문지방으로, 다시 동문으로, 마침내 성읍 동쪽 산으로 옮겨 갔다(겔 10:18-19, 11:22-23). 성전 건물이 존재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임재가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회개하지 않고 우상숭배를 계속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랑하는 제도와 건물을 떠나실 수 있다. 이 환상은 예루살렘 멸망의 영적 원인을 보여 주는 동시에 오늘의 교회가 외형만 붙들지 말고 거룩함을 지켜야 함을 경고한다.

  셋째는 37장의 마른 뼈 골짜기 환상이다. 골짜기에는 심히 많고 아주 마른 뼈들이 흩어져 있었다. 사람의 눈에는 다시 살 가능성이 전혀 없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생기가 임하자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힘줄과 살과 가죽이 생겼으며 생기가 들어가 큰 군대가 되었다. 이 환상은 포로 생활 속에서 소망을 잃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을 보여 준다.

겔 37: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회복은 인간의 가능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말씀을 대언하고 생기가 들어올 때 죽은 것 같은 공동체가 살아난다. 그러므로 심판의 메시지를 맡은 선지자는 절망만 선포하는 사람이 아니다. 죄의 결과를 숨기지 않으면서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에게 열려 있는 생명과 회복의 길을 함께 전해야 한다. 이 환상은 장차 있을 이스라엘의 회복을 가리키며, 더 넓게는 말씀과 성령으로 죄인이 살아나는 영적 원리를 보여 준다.

  넷째는 40장부터 48장에 나오는 새 성전과 새 땅의 분배에 관한 환상이다. 에스겔은 매우 높은 산에서 성읍 같은 형상을 보고, 한 사람의 안내를 받아 성전의 문과 뜰과 방과 제단을 측량한다. 성전 문지방 아래에서 흘러나온 물은 점점 깊어져 큰 강이 되고, 이 강이 이르는 곳마다 생물이 살아나며 바다의 물도 되살아난다(겔 47:1-12). 마지막에는 회복된 땅이 지파들에게 분배되고 성읍의 이름이 ‘여호와 삼마’, 곧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가 된다.

겔 48:35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설교자는 새 성전이 교회를 상징하고 궁극적으로 하늘에서 성취되며, 새 땅의 분배도 천국의 지위와 상급에 연결된다고 해석한다. 이는 교회와 천국을 바라보는 영적 해석이다. 분명한 핵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임하고 생명의 강이 죽은 것을 살리며, 백성이 그분의 임재 안에서 새 질서를 누린다는 것이다.

  네 환상은 하나의 구원 역사를 이룬다. 하나님의 보좌가 모든 역사를 다스리고, 백성의 감추어진 죄가 드러나 심판받으며, 죽은 백성이 말씀과 생기로 살아나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새 성전과 새 땅에 이른다. 환상은 호기심을 채우는 그림이 아니라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와 회복과 영원한 소망으로 이끄는 계시다. 에스겔은 이 흐름을 보고 기록하여 후대의 성도들에게까지 전해 주었다.

6. 듣지 않는 백성에게도 말씀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보내신 대상은 “패역한 백성”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했고 얼굴이 뻔뻔하며 마음이 굳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반응이 좋을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가시와 찔레가 에스겔 곁에 있고 그가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셨다(겔 2:3-6). 사명은 청중의 호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서 시작한다.

겔 2:7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듣지 않을 가능성이 큰데도 전해야 하는 첫째 이유는 그 가운데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민족 전체가 심판으로 기울었다고 해도 모든 개인의 반응이 똑같지는 않다. 누군가는 경고를 듣고 죄를 깨달으며 돌이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할 한 사람의 가능성을 버리지 않으신다. 선지자가 결과를 미리 단정하여 침묵하면 그 사람이 들을 기회마저 사라진다.

  둘째 이유는 심판의 원인과 회복의 길을 알려 주기 위해서다. 포로가 된 백성은 바벨론이 강해서 자기 나라가 망한다고만 생각할 수 있었다. 에스겔은 그들의 우상숭배와 반역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있음을 밝혀야 했다. 동시에 포로가 된 뒤라도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고 회복하신다는 소망을 전해야 했다. 원인을 모르면 고난 속에서도 회개하지 못하고, 길을 모르면 절망 속에서 돌아오지 못한다.

  셋째 이유는 말씀을 듣는 자와 전하는 자의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우셨다. 악인에게 죽을 것이라고 경고해야 할 때 그가 침묵하면 악인은 죄악 중에 죽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 값을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신다. 그러나 에스겔이 분명히 경고했는데도 그 사람이 돌이키지 않으면 그 책임은 말씀을 거절한 사람에게 돌아가고, 파수꾼은 자기 생명을 보존한다(겔 3:17-21).

겔 3: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이 말씀은 선지자가 억지로 사람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선지자는 회개를 촉구하고 생명의 길을 알려 주되 선택의 책임까지 대신 질 수는 없다. 들을 자는 듣고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않는다(겔 3:27). 전하는 사람은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충성해야 하며, 듣는 사람은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고 주어진 경고에 응답해야 한다.

  넷째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와 인내를 증언하기 위해서다. 백성이 끝내 심판받더라도 “그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었던 줄”은 알게 된다(겔 2:5). 하나님께서는 여러 차례 선지자를 보내어 죄를 지적하고 돌아올 길을 열어 주셨다.

  오늘날에도 반응이 냉담하다고 진리를 바꾸거나 침묵해서는 안 된다. 다만 자기 생각과 체험을 하나님의 직접 명령처럼 말해서도 안 된다. 성경의 복음과 회개를 분명히 전하고, 개인적인 환상이나 해석은 그 성격을 밝혀야 한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라는 말씀은 무책임하게 말하라는 허가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진리를 감추지 말라는 명령이다.

7. 에스겔은 어떻게 사명을 완수하고 이기는 자가 되었는가?

  에스겔이 이기는 자가 된 첫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 엎드리고 성령으로 일어섰기 때문이다. 그는 환상을 보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얼굴을 땅에 대었다. 그때 영이 그에게 들어가 발로 일으켜 세웠고, 그는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었다(겔 2:1-2). 자기 힘으로 서서 사역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낮아지고 성령의 능력으로 세움을 받아 출발했다.

  둘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두루마리를 받아 먹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패역한 족속처럼 거역하지 말고 입을 벌려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하셨다. 에스겔이 먹은 두루마리는 입에서 꿀같이 달았지만 그 안에는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기록되어 있었다(겔 2:8-3:3). 선지자는 말씀을 밖에서 구경하거나 남에게만 적용해서는 안 된다. 먼저 자기 안에 받아들여 소화한 뒤 전해야 한다. 달콤한 약속만 골라 말하지 않고 아픈 심판의 말씀까지 전하는 충성이 필요하다.

  셋째 이유는 본 것과 들은 것을 가감하지 않고 전했기 때문이다. 에스겔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을 1장부터 24장까지 선포했고, 주변 이방 나라들의 심판을 25장부터 32장까지 전했으며, 33장부터 48장까지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새 성전과 새 땅을 증언했다. 그는 심판만 말하는 비관주의자도 아니었고, 회개 없는 회복만 말하는 낙관주의자도 아니었다. 죄와 심판, 회개와 회복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함께 전했다.

  넷째 이유는 개인적인 고통 속에서도 사명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에스겔은 포로 생활을 겪었고, 사랑하는 아내를 잃는 큰 슬픔도 감당해야 했다(겔 24:15-18). 하나님께서는 그의 삶 자체를 예루살렘에 닥칠 사건을 보여 주는 표징으로 사용하셨다. 그의 모든 행동을 오늘의 사역자가 문자적으로 모방할 수는 없지만, 그는 자기 감정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앞세우며 매우 무거운 사명을 수행했다.

  다섯째 이유는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메시지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얼굴을 그들의 얼굴에 맞서 굳게 하고 이마를 금강석같이 강하게 하셨다(겔 3:8-9). 여기서 강함은 완고함이나 무례함이 아니다. 패역한 백성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 편에 서는 영적 견고함이다. 그는 말해야 할 때 하나님께서 입을 여시면 말했고, 침묵해야 할 때에는 침묵하였다. 자기 욕망대로 많이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제를 받았다.

  여섯째 이유는 파수꾼의 책임을 끝까지 감당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는 심판을 경고했고, 멸망 소식이 전해진 뒤에는 회복의 소망을 더욱 분명히 선포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의 강조점은 달라졌지만, 생명을 살리려는 목적은 한결같았다. 악인에게는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고 하고, 의인에게는 과거의 의만 믿고 죄로 돌아가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설교자는 이러한 충성의 결과로 에스겔이 천국에서 최고의 신분과 지위 가운데 왕과 제사장으로 섬기고 있다고 영적으로 확인했다고 말한다. 이는 성경이 에스겔의 현재 천국 지위를 직접 설명한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기는 자에게 보좌에 함께 앉게 하고 왕 노릇 하게 하며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게 하신다는 약속을 전한다(계 3:21, 20:6). 에스겔의 생애가 보여 주는 확실한 원리는 맡은 부르심에 충성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이기는 자로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이기는 것은 사람을 많이 모으거나 세상에서 유명해지는 일이 아니다. 듣지 않는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전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를 사명을 위해 사용하며, 고난 속에서도 돌아서지 않는 것이 이김이다. 환상을 본 것 자체가 상급이 아니라 그 환상에 순종한 삶이 상급이 된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남의 사명을 흉내 내는 일이 아니라 자기에게 맡기신 일을 끝까지 이루는 것이다.

8.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부르심과 책임은 무엇인가?

  에스겔의 이야기는 먼저 우리가 왜 이 시대에 태어나 이 말씀을 듣고 있는지를 묻게 한다. 모든 성도의 직무가 선지자와 같지는 않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자신이 받은 복음을 증언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명을, 어떤 사람에게는 환상이나 영 분별의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섬김과 물질과 중보기도의 사명을 맡기신다. 중요한 것은 은사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의 목적을 알고 순종하는 것이다.

  첫째로 우리는 회개의 중요성을 전해야 한다. 설교자는 회개를 하나님께 돌아와 예수님을 믿는 회심의 회개와, 믿은 뒤 지은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하는 자백의 회개로 구분한다. 또한 조상과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할 때 그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이 떠나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영적 인과관계의 세부 내용은 설교자의 해석과 체험에 속하지만, 죄를 숨기지 말고 자백하며 악한 길에서 돌이켜야 한다는 명령은 성경이 분명히 가르치는 진리다(요일 1:9).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회개를 전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이 회개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죄를 정죄하면서 자기의 교만과 탐욕과 음란과 거짓을 감추면 파수꾼의 외침에 능력이 없다.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자기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고, 성품과 생활의 열매가 달라져야 한다. 회개는 두려움만 주는 메시지가 아니라 죄인에게 다시 살 길이 열려 있다는 복된 소식이다.

  둘째로 우리는 천국의 소망과 상급을 전해야 한다. 설교자는 천국에서 성도들의 신분과 지위가 같지 않으며, 천국 집과 면류관과 보좌 자리도 충성에 따라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세부 분류는 설교자의 천국 체험과 영적 해석에서 나온 것이다. 성경이 직접 강조하는 핵심은 구원이 은혜로 주어지지만 각 사람의 충성에 따른 상급과 책망이 있다는 사실이다(고전 3:8-15, 계 22:12).

  셋째로 우리는 말씀과 성령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 말씀만 연구하면서 성령의 실제적인 인도와 능력을 부인해서도 안 되고, 은사와 환상을 추구하면서 성경의 기준을 떠나서도 안 된다. 설교자는 자신이 말씀으로 구원론과 그리스도론과 종말론을 먼저 공부한 뒤 귀신론과 성령의 은사를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순서는 은사의 출처와 내용을 분별하는 데 중요하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는 장식품이나 자기 과시가 아니라 영혼을 살리고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위한 도구다.

  넷째로 우리는 받은 것을 자기 형편에 맞는 방법으로 전해야 한다. 직접 설교하거나 선교지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순종하면 된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은 바른 복음을 담은 책을 선물하거나 유튜브 말씀을 알려 줄 수 있고, 선교사를 물질과 기도로 후원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일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복음과 영혼을 위하여 사용할 길을 찾아야 한다.

  다섯째로 우리는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가족이나 이웃에게 말씀을 전해도 즉시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다. 그때 낙심하여 포기하거나 억지로 굴복시키려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과 인내로 진리를 전하고 자신의 변화된 삶으로 복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들을 자는 들을 것이고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않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충성스럽게 씨를 뿌린 수고를 기억하신다.

  우리 교회가 받은 부르심에 대해서도 분명히 해야 한다. 설교자는 회개와 천국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고, 말씀과 성령의 두 영역을 함께 섬기는 것이 자신과 교회의 비전이라고 고백한다. 이 비전은 다른 교회를 낮추거나 자기 공동체를 높이는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에스겔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성경에 비추어 분별하며, 영혼을 살리려는 사랑으로 충실히 전할 때 비로소 부르심에 합당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각자는 자기 부르심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고난이 예상된다고 사명을 무시하거나, 다른 사람의 은사가 더 커 보인다고 자기 몫을 버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 은사를 더하시고 길을 여신다. 에스겔이 성전에서 봉사하지 못하는 포로였지만 그발 강가에서 대선지자로 부름받았듯, 지금의 형편이 사명을 막는 최종 조건은 아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오늘 순종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할 때 그 삶이 이기는 자의 길이 된다.

9. 나오며

  에스겔이 어떤 시대와 처지에서 부름받았고, 하나님께서 왜 말씀 전에 환상을 보여 주셨으며, 그가 어떻게 맡은 사명을 완수하여 이기는 자가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는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성전에서 일할 미래를 잃고 바벨론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발 강가에서 하늘을 여시고, 네 생물과 움직이는 보좌와 사람 같은 형상으로 나타난 여호와의 영광을 보여 주셨다. 인간의 길이 막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부르심이 시작되었다.

  에스겔이 본 네 가지 환상은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과 회복의 큰 흐름을 드러낸다. 보좌의 환상은 역사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 주고, 성전의 죄와 영광의 떠남은 회개하지 않는 종교의 종말을 경고한다. 마른 뼈의 환상은 말씀과 생기로 죽은 백성이 살아날 것을 선포하며, 새 성전과 새 땅은 하나님의 임재와 생명이 충만한 최종적인 회복을 바라보게 한다.

  그는 이 놀라운 환상을 자기 명예로 삼지 않았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엎드렸고, 성령으로 일어섰으며, 두루마리를 받아 먹고, 듣든지 아니 듣든지 받은 말씀을 전했다. 심판을 말해야 할 때 심판을 전하고 회복을 선포해야 할 때 소망을 전했다. 백성이 거절해도 침묵하지 않았고, 개인의 상실과 고난 속에서도 파수꾼의 자리를 지켰다. 바로 이러한 충성이 그를 이기는 자의 길로 이끌었다.

  우리도 자신에게 맡겨진 부르심을 살펴야 한다. 말씀을 맡은 사람은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은사를 받은 사람은 성경의 기준 안에서 영혼을 살리는 데 사용하며, 물질과 시간과 재능을 받은 사람은 복음을 위하여 드려야 한다. 특히 회개의 길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천국의 소망을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누어야 한다. 사람들이 즉시 듣지 않더라도 사랑과 진실함으로 전한 책임은 하나님 앞에 남는다.

  환상보다 중요한 것은 환상을 주신 분께 순종하는 것이고, 은사보다 중요한 것은 은사를 주신 목적을 이루는 것이며, 사람의 반응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는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성령으로 일어서고, 말씀을 받아 먹으며, 맡겨진 자리에서 보고 들은 복음을 가감 없이 전해야 한다. 그리하여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충성스럽게 전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부르심을 끝까지 완수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8월 16일(일)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정보배 목사의 강해를 통해 에스겔 선지자의 소명과 천국의 실상을 조명하며, 오늘날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이기는 자의 삶을 강조합니다. 에스겔은 제사장 가문의 영성을 바탕으로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계획을 입체적으로 깨달았으며, 이 과정에서 24장로의 반열에 오른 승리자의 모델로 제시됩니다. 정보배 목사는 환상이 단순한 초자연적 경험을 넘어 자기 성찰과 사명 확인의 도구임을 설명하고, 에스겔이 폐역한 시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말씀을 선포했음을 부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현대인들이 철저한 회개와 영적 분별력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부르심을 발견하고, 천국에서의 상급을 예비하는 종말론적 신앙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목적을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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