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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6. 08. (월)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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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nxSJCvdRCl8?
날짜 2026-06-07
본문말씀 시편 32:1~11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6-06-07(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기독론(115)]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특징(21) 그는 회개하는 자였다(03)(시편32:1~1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nxSJCvdRCl8

 

1. 들어가며

  기독론 강의 115번째 시간이자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특징'을 살펴보는 21번째 시간에는, "그는 회개하는 자였다"는 주제의 세 번째 강의를 다룬다. 오전 예배에서는 다윗이 범죄한 후 열 달 동안 겪은 육체적·영적 고통을 살펴보았다. 죄를 지으면 그 사람에게 어떤 고통이 찾아오는지를 시편 6편을 통해 확인했다. 이번 시간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윗이 어떻게 회개했기에 하나님이 그 죄를 용서해 주셨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다윗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사울왕도 자기 잘못을 인정했는데 하나님이 그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왕위를 빼앗으셨다. 반면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고백하자 나단 선지자가 즉시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라고 응답한다. 언뜻 보면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오전 예배에서 살펴보았듯이, 다윗은 그 말 한마디를 하기까지 열 달 동안 처절한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 사무엘하는 그 과정을 기록하지 않았지만, 시편은 그 모든 것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하나님은 그 열 달의 과정을 다 보고 계셨던 것이다.

삼하 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번 시간에는 그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든다. 다윗의 회개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세 가지 특징을 살펴보되, 오늘은 그 첫 번째 특징에 집중한다. 그 전에 먼저 구약 성경에서 '회개'라는 단어의 뿌리와 의미를 짚어보고, 욥의 회개와 다윗의 회개를 비교하면서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회개는 신앙생활의 핵심이다. 회개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실천할 때,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이 떠나가고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된다. 그리고 회개가 없는 신앙생활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아무리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해도, 내 속의 죄가 처리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단순한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드리고 있는 회개가 과연 진정한 회개인지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2. 하나님이 사울은 용서하지 않으시고 다윗은 용서하신 것이 불공평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오해를 어떻게 풀 수 있는가?

  사무엘하 11장과 12장만을 읽으면, 다윗의 용서가 쉽게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나단이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하자 다윗이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고백하고, 그 즉시 나단이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라고 응답한다. 한 마디 고백에 즉시 용서가 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울왕을 보면 다르다. 사울도 사무엘 앞에서 자기 잘못을 인정했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삼상 15:24)라고 고백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사울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왕위를 빼앗으셨다. 이것을 보면 두 사람의 처우가 너무 다르게 느껴진다. 사울은 안 되고 다윗은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삼상 15: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두 사람의 차이는 회개의 진정성에 있다. 사울의 고백에는 진정한 통회가 없었다. 사울이 "내가 범죄하였나이다"라고 말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인정은 하나님 앞에서의 통회가 아니었다.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고백이었다. 하나님께서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듯이(삼상 16:7), 하나님은 사울의 입술이 아닌 그 마음을 보셨다. 그는 "내가 범죄하였나이다"라고 했지만 그 뒤에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백성이 두려워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청하건대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삼상 15:30)라고 한다. 자기 체면을 세워 달라는 요구를 했다. 그의 관심은 하나님 앞에서의 용서가 아니라, 백성 앞에서의 체면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가 아닌 이유이다.

  반면 다윗의 회개는 달랐다. 사무엘하의 기록만 보면 그가 단 한 마디만 한 것으로 보이지만, 시편 6편, 32편, 38편, 51편, 143편을 통해 보면 그 열 달 동안 그가 얼마나 처절하게 고통받고 통회했는지가 드러난다. 뼈가 흔들리고, 몸이 수척해지고,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고,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기도의 막힘 속에서 열 달을 보냈다. 그것이 이미 깊은 회개의 과정이었다.

  더 나아가, 두 사람의 죄의 본질이 달랐다. 사울의 죄는 하나님을 직접 거역한 것이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좋은 짐승들을 남긴 것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백성의 눈치를 더 중시한 것이었다. 반면 다윗의 죄는 사람에 대한 자범죄였다. 하나님을 거역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향해 심각한 죄를 저지른 것이었다. 이 차이가 결정적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직접 거역하는 죄를 더 엄중히 다루신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다윗이 즉시 용서를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 열 달의 고통이 있었고, 용서받은 후에도 아들 네 명을 잃는 대가를 치렀다. 자기 입술로 "마땅히 죽을 자요 네 배나 갚아야 한다"(삼하 12:5-6)고 선고했던 그 말대로, 밧세바가 낳은 첫째 아이가 죽고, 암논이 죽고, 압살롬이 죽고, 아도니야가 죽었다. 죄의 결과는 반드시 따랐다. 사울의 경우와 방식은 달랐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모든 경우에 온전히 시행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배운다. 하나님의 용서는 죄의 결과까지 다 없애 주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관계의 회복이지, 결과의 소멸이 아니다. 죄를 지으면 그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므로 죄를 짓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죄를 지었다면 즉시 자복하여 더 이상의 고통이 길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3. 구약 성경에서 '회개'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어디이며, 회개의 히브리어 원뜻은 무엇인가?

  구약 성경에서 '회개하다'라는 표현이 한국어로 처음 등장하는 곳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놀랍게도 그것은 욥기 42장 6절이다. 욥이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라고 한 것이 구약 성경에서 한국어로 '회개'라는 단어가 처음 나오는 장면이다.

욥 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그런데 여기서 '회개하나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나함(나함)'이다. '나함'은 '뉘우치다', '후회하다'에 가까운 단어이다. 반면 구약 성경에서 회개의 원뜻으로 더 자주 쓰이는 단어는 '슈브'이다. '슈브'는 '돌이키다', '돌아오다'는 뜻이다.

  에스겔 18장에서 하나님이 "악인이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라고 하실 때 '슈브'를 쓴다. 요엘서 2장 12절에서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실 때도 '슈브'이다. 그리고 신약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에서 '회개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타노에오'는 '마음을 바꾸다', '생각을 돌이키다'는 뜻으로, 구약의 '슈브'와 의미상 대응한다.

마 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요엘서 2장 12절에서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회개를 어떻게 원하시는지가 잘 나타난다.

욜 2:12-13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옷을 찢는 것은 외형적인 슬픔의 표시이다. 이스라엘 문화에서 옷을 찢는 것은 큰 슬픔이나 충격을 나타내는 행위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옷을 찢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이 찢어지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행위보다 마음의 진실함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면에서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회개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회개 기도 모임에 나오는 것, 회개 기도문을 손에 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면서 마음이 진정으로 찢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다. '나함'은 뉘우치고 후회하는 것이다. 이것은 회개의 일부이지만 회개의 전부가 아니다. 가룟 유다도 자신이 죄 없는 피를 팔았다고 뉘우쳤다(마 27:3). 그러나 그 뉘우침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그냥 죽어 버렸다. 뉘우침과 후회는 있었지만, 돌이킴이 없었다. '슈브'가 없었던 것이다.

마 27:3 그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 개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진정한 회개는 뉘우침을 넘어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의 히브리어 원뜻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핵심이다. 우리가 회개 기도를 드릴 때, 단순히 잘못했다는 감정적 느낌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죄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이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뉘우침은 있는데 돌이킴이 없는 회개는 반쪽짜리 회개이다.

 

4. 욥은 죄를 지었는가, 짓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욥을 사탄에게 시험받도록 허용하신 두 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구약 성경에서 욥기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욥기의 저자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욥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즉 독자는 처음부터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대화를 알고 있고, 욥이 왜 시험을 받는지를 안다. 그러나 욥 자신은 끝까지 그것을 모른다. 그에게는 사탄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하나님이 갑자기 자신의 삶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욥기 1장 1절에서 욥의 인물됨이 이렇게 정의된다.

욥 1: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에스겔서는 욥을 노아, 다니엘과 함께 의인의 대표로 언급한다(겔 14:14). 그리고 욥기 1장 8절에서 하나님이 직접 사탄에게 욥을 자랑하신다.

욥 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70인역 성경에 따르면 욥은 시험을 받을 때 이미 70세였고, 그 시험을 30년 동안 받았다고 한다. 100세까지 종기와 구더기, 친구들의 비난, 아내의 조롱 속에서 살아낸 것이다. 아내마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고 했을 만큼 극한의 고통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이 자랑하실 만한 사람도 30년의 극한 고통 앞에서는 불평하고 원망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이처럼 욥은 율법도 없던 아브라함 시대와 같은 시기의 사람으로서 그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았다. 자녀들의 생일 잔치 후에도 혹시 그들이 죄를 지었을까 하여 아침마다 번제를 드릴 만큼 죄에 민감했던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처럼 의로운 욥을 사탄에게 시험받도록 허용하셨는가?

욥 1:10-11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사탄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진심에서가 아니라 복을 받기 때문이라고 참소했다. 하나님이 울타리로 둘러 보호하고 복을 주었기 때문에 경외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 울타리를 걷어내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나님은 그 도전을 허용하셨다.

  하나님이 욥을 시험받도록 허용하신 첫 번째 이유는, 욥 스스로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때문에 복을 받고 잘 산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행위로 의롭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이 울타리로 그를 보호하여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었다. 울타리가 없어지면 그의 속에 잠재된 죄성이 드러난다.

롬 3:10-12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하나님이 욥을 시험받도록 허용하신 두 번째 이유는, 욥의 속에 잠재된 죄성이 있다는 것을 욥 자신이 인정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욥은 자신이 의롭다고 계속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속에는 불평, 원망, 낙심, 교만의 씨앗이 있었다. 평온한 환경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그 씨앗들이, 극한의 고통 속에서 하나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평온한 삶을 살 때는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 그러나 극한의 어려움이 찾아오면, 평소에 숨어 있던 죄성이 드러난다. 원망이 나오고, 불평이 나오고, 하나님을 의심하게 된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해야 한다. 내가 죄를 적게 짓는 것이 내가 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울타리로 지켜 주시기 때문이다.

 

5. 욥이 시험 가운데 지은 죄는 무엇이며, 욥이 회개한 내용은 무엇인가?

  1차 시험에서 욥은 자녀들과 재산을 모두 잃었다. 그때 욥은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라고 고백했다. 성경은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2)고 기록한다.

욥 1:21-22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2차 시험에서 욥의 몸 자체가 공격받았다.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종기가 나서 구더기가 생겼고, 아내마저 그를 버리고 친구들은 와서 날마다 그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비난했다. 이렇게 여러 달이 지나자 욥의 입에서 변화가 생겼다.

  욥기 7장 11절에서 욥은 "나는 불평하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10장 1절에서도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고 했다. 불평과 원망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3장에서는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이라고 하며,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욥 3:1-3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욥기 34장 5절에서 6절에는 더 나아가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였다"고 한다. 자신은 의로운데 하나님이 불공평하게 대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이었다. 30년에 걸친 극한의 고통이 결국 교만의 죄, 불평의 죄, 원망의 죄를 끌어냈다.

욥 34:5-6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내가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지만 화살로 상처를 입었다 하는구나

  그렇다면 욥이 회개한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욥기 42장 1절에서 6절에서 욥은 두 가지를 고백한다. 첫째는 자신의 무지함이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었는데 자신이 그것을 몰랐다고 고백한다.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자신이 잘서 잘 살고 죄를 짓지 않은 줄 알았는데, 사실은 하나님이 울타리로 보호해 주셨기 때문이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욥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둘째는 자신의 죄성이다. 그리고 친구들을 미워했던 것, 불평하고 원망하고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했던 것들을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던 친구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 순간 하나님이 욥을 불쌍히 여기시고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셨다. 잃었던 것의 두 배를 돌려주시고, 새로운 자녀들을 허락하시고, 170년을 더 살아 총 240세에 향수하고 죽게 하셨다.

욥 42:10 여호와께서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을 주신지라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하나님이 욥의 회복을 시작하신 것은, 욥이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였다. 자신을 아프게 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회개의 완성이었다. 용서받은 자는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주기도문에서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했다. 회개는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회복으로도 이어져야 한다.

 

6. 욥의 회개와 다윗의 회개는 어떻게 다르며, 왜 다윗의 회개가 진정한 회개의 모범인가?

  욥도 회개했고 다윗도 회개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회개는 성격이 다르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를 아는 데 중요하다.

  욥의 회개는 인간의 의로움의 한계를 깨닫고, 자신의 죄성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 앞에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욥은 실제로 죄를 저질러서 회개한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 잠재된 죄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회개한 것이다. 또한 극한의 고통 속에서 불평하고 원망했던 것,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했던 것을 회개한 것이다. 이것은 중요하고 의미 있는 회개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죄악을 저지르고 그것을 자백하는 회개와는 다르다.

  다윗의 회개는 구체적인 죄악 앞에서 이루어진 회개였다. 간음죄, 살인죄, 도둑질의 죄, 탐욕의 죄, 이 모든 것을 명백히 알면서 그 죄로 인한 고통을 감내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간 회개였다. 구약 성경에서 '회개'라는 단어가 욥기서에 처음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회개의 온전한 모습, 즉 죄를 명백히 인정하고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진정한 회개의 전형은 다윗에게서 발견된다. 다윗의 참회 시편들, 특히 시편 51편은 회개가 무엇인지를 가장 완전하게 보여 준다.

  또한 욥의 회개는 30년의 고통 끝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의롭다"는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붙잡다가, 결국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신 후에야 회개에 이르렀다. 반면 다윗의 회개는 나단이라는 선지자를 통해 지적받는 순간 즉시 이루어졌다. 비록 열 달의 고통이 있었지만, 그 고통 자체가 이미 회개의 과정이었고, 나단이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하는 순간 즉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자복했다.

  무엇보다 다윗의 회개가 진정한 회개의 모범이 되는 이유는, 그의 회개가 하나님의 용서라는 명확한 약속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나단이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라고 즉시 선언한 것은, 다윗의 회개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온전한 회개였음을 보여 준다. 욥의 회개가 회개의 물꼬를 튼 것이라면, 다윗의 회개는 회개의 진면목을 완성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회개 기도를 드릴 때, 다윗의 회개를 배우고 따라야 한다.

  다윗이 우리에게 남겨 준 참회 시편들, 시편 6편, 32편, 38편, 51편, 143편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죄 앞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의 교과서이다. 어떻게 자복하고, 어떻게 통회하며, 어떻게 용서를 구하고, 어떻게 새 마음을 간구하는지를 보여 준다. 회개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다윗의 참회 시편을 읽어야 한다. 이 참회 시편들이 성경에 남아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이것을 모든 세대의 성도들이 배우도록 보존하신 것이다. 다윗의 수치스러운 죄와 그로 인한 고통의 기록을 감추지 않으신 것은, 그것이 인류에게 가장 소중한 회개의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

 

7. 다윗의 회개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첫 번째 특징은 무엇인가? —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

  다윗의 회개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데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특징을 살펴본다. 바로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이다.

  다윗이 이것을 직접 고백한 곳이 시편 51편 16절에서 17절이다.

시 51:16-17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상한'이라는 표현의 히브리어는 '샤바르'로, '부서지다', '깨어지다'는 뜻이다. 마음이 완전히 부서진 상태를 가리킨다. '통회'는 '닥카'로, '짓눌리다', '으깨어지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화려한 제물이나 번제가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이 부서지고 짓눌린 상태에서 드리는 회개라는 것이다.

  이것이 왜 이토록 중요한가? 다윗이 저지른 죄는 구약의 율법 체계 안에서 제사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였다. 고의적 살인죄는 반드시 죽어야 했다. 레위기에는 속죄제와 속건제라는 제도가 있었다. 죄를 지으면 짐승을 끌고 와서 제사를 드림으로 용서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의적 살인은 그 제사의 범위를 넘어선 죄였다. 제물을 드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민 35:16). 제사를 드린다고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아니었다. 그런데 다윗은 용서를 받았다. 왜인가? 제사의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 달랐기 때문이다.

민 35:16 만일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살인자니 그 살인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형식적인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 여기서 형식적인 제사라는 것은, 마음은 없이 의무를 이행하듯이 제물을 드리는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죄에 대해 진정으로 마음이 아프지 않은 채 입으로만 "잘못했습니다"를 반복하거나, 혹은 마음의 회개는 없이 예물만 더 드리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이 받으시겠는가?

  오늘날 회개 기도를 할 때 숫자만 채우는 방식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회개 기도문을 읽으면서 몇 번 했는지 동그라미 치고 계산하는 것이다. 그 숫자 채우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숫자를 채우는 것이 목적이 되어 버리면,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 없이 입술로만 하는 형식적 회개가 될 수 있다. 다윗은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요를 띄울 만큼 울었다. 그 죄로 인해 마음이 진정으로 아팠기 때문이다.

시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34편 18절도 같은 진리를 증언한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마음이 상한 자, 영 안에서 통회하는 자를 하나님이 가까이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죄에 대한 감각과 관련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고문과 죽음을 당하셨다. 우리의 간음죄, 살인죄, 탐욕죄, 교만죄, 거짓말의 죄가 그분을 고통스럽게 했다. 그 사실을 진정으로 마음으로 느끼는가?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주님이 그런 고통을 당하셨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가? 그 아픔이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의 원천이다. 단순히 "내가 잘못했습니다"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죄로 인해 주님이 고통받으셨다는 사실이 마음을 찌를 때, 그 눈물과 통회가 진정한 회개의 제사가 된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다.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 자신의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주님이 더 기뻐하신다는 것을. 그래서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셨고, 그 진심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다. 다윗이 회개할 때 밤마다 침상을 눈물로 띄울 만큼 울었다는 것은, 그 죄가 얼마나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를 보여 준다. 15살 정도밖에 안 되었을 밧세바를 유린하고, 충성스러운 신하 우리아를 죽게 만들고,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 그 죄에 대해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는지가 그 눈물 속에 담겨 있다.

시 6:6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8. 형식적 제사(예물)와 진정한 회개는 어떻게 다르며, 오늘 우리는 어떻게 진정한 회개를 실천해야 하는가?

  형식적 제사와 진정한 회개의 차이를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해 죄를 지으면 속죄제와 속건제를 드리도록 명령받았다. 속죄제는 죄 자체를 용서받기 위한 제사이고, 속건제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끼친 피해를 보상하며 드리는 제사이다. 레위기에 자세히 기록된 이 제사 제도는,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공식적인 방법이었다.

  그런데 다윗이 저지른 간음죄와 살인죄는 이 제사 체계 안에서 단순히 제사를 드린다고 용서받을 수 있는 수준의 죄가 아니었다. 고의적 살인은 율법상 반드시 죽어야 했다. 그런 다윗이 용서를 받으려면 단순히 황소를 끌고 와서 제단에 드리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그 죄에 상응하는 철저하고 진심 어린 회개가 필요했다.

  형식적 제사의 문제는 마음 없이 행위만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회개하기가 싫어서 예물을 더 드리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물론 회개와 함께 예물을 드리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낫다. 그러나 회개하는 마음 없이 예물만 드린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내 자녀가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시지, 물질로 무마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반면 진정한 회개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회개를 실천할 때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이다. 내가 지금 회개하는 것이 입술로만 하는 것인가, 아니면 진정으로 그 죄에 대해 마음이 아프고 주님께 죄송한 것인가?

  진정한 회개를 실천하는 방법이 있다. 첫째, 구체적으로 죄를 떠올린다. 막연하게 "나는 죄인입니다"가 아니라,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지었는지, 조상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를 하나씩 떠올린다. 우상숭배의 조상죄, 제사의 죄, 억압과 폭력의 죄, 음행의 죄, 혈기 분노의 죄, 거짓말의 죄를 하나씩 떠올리며 그것이 주님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를 생각한다.

  둘째, 그 죄가 주님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는지를 생각한다. 내가 지은 그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느낀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를 이어받은 자식으로 태어나, 나 또한 그 죄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통회한다.

  셋째, 그 마음에서 나오는 눈물과 통회를 하나님께 드린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사이다.

  다윗이 만년에 아비삭이라는 아름다운 수냄 여인을 곁에 두었어도 동침하지 않은 것(왕상 1:1-4)은 그의 진정한 회개의 증거였다. 두 번 다시 그런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결단이 삶으로 나타난 것이다. 진정한 회개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변화되는 것이다. 회개하고 나서 또 같은 죄를 반복하는 것은, 그 회개가 얼마나 깊지 않았는지를 보여 주는 신호이다.

왕상 1:1-4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한 명을 구하여 그 아이가 왕을 모시고 또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게 하소서 하고 이스라엘 사방에서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다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에게 데려왔으나 왕이 그를 알지 못하였더라

  회개 기도를 할 때 숫자를 채우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꾸준히, 많이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숫자 채우기가 목적이 되어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진심 어린 회개 한 번이 입술만 움직이는 천 번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닿는다. 오늘 회개 기도를 마치고 나서,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아팠는가를 점검해야 한다. 그 죄에 대해 내 마음에서 무언가 무거운 느낌이 들었는가? 주님께 정말 죄송하다는 느낌이 들었는가? 그것이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회개 기도를 드릴 때 그 죄에 대해 진심으로 마음이 아파야 한다. 주님이 그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며 드리는 눈물 어린 회개, 그것이 다윗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진정한 회개의 첫 번째 특징이다.

 

9. 나오며

  구약 성경에서 회개의 원뜻, 욥의 회개와 다윗의 회개의 차이, 그리고 다윗의 회개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첫 번째 특징인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살펴보았다.

  회개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돌이킴이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뉘우침은 있지만 돌이킴이 없었던 가룟 유다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회개는 마음이 부서지고 짓눌리는 경험을 동반한다. 내가 지은 죄가 주님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를 느낄 때, 그 마음에서 나오는 눈물과 통회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가 된다.

  욥은 자신이 의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탄의 시험을 통해 자신 속에 잠재된 죄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30년의 고통 끝에 그는 자신의 무지와 죄성을 인정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했다. 다윗은 간음, 살인, 도둑질, 탐욕이라는 구체적인 죄를 저지르고 열 달의 처절한 고통 끝에 나단의 책망 앞에서 즉시 자복했다. 그 자복은 오래 전부터 준비된 것이었고,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 충분히 무르익어 있었기 때문에 즉시 터져 나올 수 있었다.

  시편 34편 18절의 약속을 기억해야 한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하나님은 화려한 예물이 아니라 부서진 마음을 원하신다.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신다는 것은, 그 부서진 마음이 하나님의 임재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오늘도 회개 기도를 드릴 때, 숫자를 채우는 것 이전에 먼저 마음이 부서져야 한다. 내 죄로 인해 주님이 고통받으셨다는 사실이 마음을 찌를 때, 그 눈물과 통회가 진정한 제사가 된다. 회개는 어렵지 않다. 단지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된다. 가룟 유다처럼 뉘우치기만 하고 돌이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욥처럼 자신의 한계와 죄성을 인정하고, 다윗처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네 죄를 사하였다"고 응답하신다. 그리하여 다윗처럼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의 사함을 받고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07일(일)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본 설교는 회개하는 왕으로서 다윗이 지닌 영적 특징을 조명하며, 구약의 인물인 욥과 사울의 사례를 대조하여 참된 회개의 본질을 규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다윗이 사울과 달리 즉각적인 용서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분석하면서, 회개는 단순한 후회나 뉘우침을 넘어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전인격적 변화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다윗의 회개가 지닌 핵심 가치는 형식적인 제사나 예물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처절히 아파하며 낮아진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에 있음을 역설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학습자들에게 입술의 고백을 넘어 부서진 마음의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회복할 것을 독려하는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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