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9(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기독론(159)] 이사야의 예언(19)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10가지 풍성한 사역이 들려주는 놀라운 은혜(02)(사35:5~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ZhQjBxs6clQ
기독론(159)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10가지 풍성한 사역이 들려주는 놀라운 은혜(02)
(사 35:5-10)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이사야는 장차 오실 메시야가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를 놀랍도록 풍성하게 예언하였다.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열 가지 사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신다. 둘째,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다. 셋째,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신다. 넷째, 마귀에게 눌린 자를 해방하신다. 다섯째, 병든 자를 치료하신다. 여섯째, 인류의 죄와 저주를 담당하신다. 일곱째, 죽으시고 장사되어 음부까지 내려가신다. 여덟째,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신다. 아홉째, 성령을 보내 새로운 백성을 창조하신다. 열째, 다시 오셔서 심판하시고 상을 주시며 영원한 왕국을 세우신다. 이 열 가지는 서로 떨어진 사건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 경륜을 완성하는 메시야의 연속된 사역이다.
이 모든 사역은 단지 이천 년 전 한 인물이 행한 위대한 업적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지금도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위하여 간구하신다(히 7:24-25). 세상의 위인들은 교훈을 남기지만 그들의 인격 자체가 오늘 우리 안에 들어와 동시에 역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생명 주는 영으로 믿는 자들 안에 들어오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배울수록 그분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시고, 가장 중요한 순간에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를 통하여 일하신다.
필자에게는 교회에서 많은 설교를 들으면서도 예수님 자체를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는 한이 있었다. 어떤 사건을 놓고 열심히 기도하여 복을 받았다는 이야기와 목회자를 잘 대접하여 형통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지금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시는지는 충분히 듣지 못했다. 세상적인 성공만으로는 악한 영이 떠나가고 하늘에 보화가 쌓이는 참된 복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하고 반복해서 전하기로 결심하였다. 그 결과 예수님으로 채워진 사람이 위기의 순간에 분노가 아니라 예수님의 성품을 나타내고, 그 사람을 통하여 예수께서 친히 일하시는 것이 정상적인 신앙임을 확인하였다.
예수님으로 충만한 사람은 어떤 일을 만나도 자기 혈기와 분노부터 쏟아내지 않는다. 그의 안에 가득한 예수님이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관한다. 잘 차려진 음식을 잠시 먹듯 남이 받은 은혜만 소비해서는 말씀이 삶의 좌표가 되기 어렵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무엇을 이루셨는지를 직접 배우고 믿어야 그 말씀이 내 것이 되고, 내 인격과 선택을 움직이는 실제가 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열 가지 풍성한 사역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놀라운 은혜를 주며, 그 은혜를 어떻게 실제로 누려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처녀 탄생과 성령의 기름부음은 어떤 은혜를 주는가?
메시야의 첫째 사역은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이사야는 아하스왕 시대에 하나님께서 친히 주실 징조를 선포하면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7:14).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장차 태어날 아기는 단순한 인간 스승이 아니라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 처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까닭은 우리의 속죄를 위한 흠 없는 제물이 되시기 위함이다. 모든 사람은 아담의 타락 아래 태어나 죄의 영향을 받지만, 예수께서는 남자의 씨를 통하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그리하여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셔서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담당하실 수 있었다. 석가모니나 무함마드나 공자나 간디와 예수님을 같은 차원의 스승으로 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훌륭한 교훈을 남긴 인간이지만, 예수님은 죄 없는 속죄 제물이 되기 위하여 오신 임마누엘이시다.
메시야의 둘째 사역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는 것이다.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위에 여호와의 영이 강림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 영은 여호와의 영이요,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다(사 11:1-2). 이는 한 성령께서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여호와 경외의 풍성한 능력으로 메시야 위에 임하신다는 뜻이다.
이 예언은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취되었다.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 위에 내려오셨고,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다(마 3:16, 행 10:38). 그 뒤 예수께서는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메시야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장식이 아니었다.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며, 하나님의 나라를 실제로 나타내기 위한 능력이었다.
3. 복음 전파와 마귀에게서의 해방은 무엇을 이루는가?
메시야의 셋째 사역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으신 종이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61:1-2). 예수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바로 이 말씀을 찾아 읽으신 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고 선포하셨다(눅 4:16-21). 자신이 이사야가 예언한 희년의 선포자요 은혜의 해를 가져온 메시야임을 밝히신 것이다.
복음은 세상에서 성공하고 형통하는 방법만을 전하는 소식이 아니다. 악한 영이 떠나가고, 하늘에 보화가 쌓이며, 예수께서 사람의 진정한 주인이 되게 하는 소식이다. 복음은 죄 사함을 주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긴다. 그러므로 복음을 들은 사람은 잠시 감동하여 눈물만 흘리는 데서 멈추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을 삶의 좌표로 삼아야 한다. 그때 복음은 이미 요리된 음식을 한 번 받아먹는 정도가 아니라 날마다 영혼을 살리고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생명이 된다.
메시야의 넷째 사역은 마귀에게 눌린 자를 풀어 주는 것이다. 성경의 큰 흐름에는 세 번의 탈출이 있다. 첫째는 바로의 압제 아래 있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한 사건이다. 둘째는 느부갓네살과 바벨론의 지배에서 해방된 사건이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탄과 마귀의 권세에서 탈출하는 사건이다. 구약의 두 탈출은 신약에서 이루어질 영적 해방을 미리 보여 주는 예표다. 예수님은 사탄 자체로부터 사람을 풀어 주시는 참된 해방자로 오셨다.
이사야는 메시야가 눈먼 자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고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42:7). 이는 정치적 포로의 석방에만 머물지 않는다. 죄와 사탄의 권세에 사로잡혀 영적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사람을 빛으로 이끌어 내는 사역이다.
예수께서 열여덟 해 동안 허리가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던 여인을 고치신 사건은 이러한 해방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성경은 그 여인을 “귀신 들려 앓으며”라고 기록하고, 예수께서는 그가 “사탄에게 매인 바” 되었다고 밝히셨다(눅 13:11,16). 예수께서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라고 선포하시고 안수하시자 여인이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회당장은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고 분노했지만, 예수께서는 안식일이야말로 사탄의 매임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풀어 주는 날임을 가르치셨다.
모든 허리 질환이나 모든 질병이 귀신 때문에 생긴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여인의 경우에는 성경 자체가 사탄의 매임을 원인으로 밝힌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증상만 다루어서는 해결되지 않는 영적 원인이 존재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사람을 억압하는 악한 영을 끊어 내고 몸까지 온전하게 하신다. 복음 전파와 귀신으로부터의 해방은 따로 떨어진 일이 아니다. 아름다운 소식이 선포되는 곳에서 포로가 자유를 얻고, 흑암에 앉은 자가 빛으로 나오며, 하나님의 자녀가 다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4. 메시아는 병든 자를 어떻게 치료하시는가?
메시야의 다섯째 사역은 병든 자를 치료하는 것이다. 이사야는 메시야가 오실 때 맹인의 눈이 밝고,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리며, 저는 자가 사슴같이 뛰고, 말 못하는 자의 혀가 노래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35:5-6). 이는 구원이 영혼의 죄 사함에만 머물지 않고 질병과 장애로 고통받는 육체에도 하나님의 회복이 임한다는 약속이다.
감옥에 갇힌 세례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논쟁적인 설명보다 자신을 통하여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전하게 하셨다. 맹인이 보고,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받고, 못 듣는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것이다(마 11:4-5). 이 답변은 이사야 35장과 61장의 예언이 자신에게서 성취되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이사야의 목록에 나병 환자의 정결과 죽은 자의 살아남까지 더해져 메시야의 치료 사역이 더욱 풍성하게 드러났다.
예수님의 치료에는 육체와 영혼과 영적 세계를 함께 보는 통전성이 있다. 예수께서는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직접 고치셨으며, 어떤 경우에는 먼저 귀신을 쫓아내신 뒤 병을 치료하셨다(마 8:16-17). 그러므로 병을 위해 기도할 때에는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 붙잡지 말고, 회개해야 할 죄가 있는지 살피며, 질병에 영향을 주는 악한 영이 있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떠나가게 해야 한다. 다만 모든 질병을 귀신 들림이라고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성경이 구별하듯 육체의 연약함과 영적 억압을 분별해야 한다.
병 고침은 사람의 능력을 과시하는 일이 아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고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표적이다. 그러므로 치료를 구할 때에는 병만 바라보지 말고 치료자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십자가와 회개와 죄 사함과 악한 영으로부터의 해방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
5. 죄와 저주를 담당하신 은혜는 어떻게 누리는가?
메시야의 여섯째 사역은 우리의 죄와 저주를 담당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양처럼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지만,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사 53:6).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셨다. 죄의 책임은 죄인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죄 없으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지불하셔야 한다.
예수께서는 죄만이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들어온 저주도 담당하셨다. 이사야는 그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하였으며, 우리의 범죄 때문에 찔리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함을 받았다고 예언하였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는다(사 53:4-5). 십자가의 고난에는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앞길 막힘과 정신적인 상처를 포함한 율법의 저주를 담당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예수께서 나무에 달리신 것은 우연한 처형 방식이 아니다. 율법은 나무에 달린 자를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라고 말한다(신 21:2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심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갈 3:13). 십자가에서 찔리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옷 벗김과 조롱을 당하시고, 모든 제자에게 버림받으신 고난에는 우리의 범죄와 질병과 가난과 수치와 막힘의 저주를 대신 담당하는 뜻이 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저주를 담당하셨는데도 믿는 사람에게 질병과 가난과 여러 막힘이 남아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이루신 일을 믿는다고 반복해서 선포하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차려진 밥도 사람이 떠먹어야 자기 몸의 영양이 된다. 이와 같이 십자가에서 완성된 은혜가 삶의 실제가 되기 위해서는 죄를 자백하는 회개가 필요하다. 예수의 피는 죄를 깨끗하게 하며, 우리가 죄를 자백할 때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한다(요일 1:7,9).
필자도 한때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나는 나음을 받았다”, “나는 병에서 놓임을 받았다”라고 거듭 선포하였다. 말씀을 믿고 환경을 믿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선포만으로 병과 가난의 문제가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회개기도문을 만나 죄를 자백하고, 질병을 일으키는 악한 영이 붙어 있을 근거를 예수의 피로 처리한 뒤 그 영을 내보내야 한다는 원리를 깨달았다. 회개를 실천하면서 피곤할 때에도 예전처럼 병에 쉽게 붙잡히지 않는 실제적인 변화를 확인하였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며, 죄를 통하여 악한 영이 사람 안에 합법적으로 들어올 근거를 얻는다(요일 3:8). 조상의 우상숭배와 개인이 지은 죄는 질병과 가난과 신기와 막힘에 영향을 주는 악한 영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이 악한 영에게 무조건 나가라고 명령만 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들어올 때 죄라는 근거를 가지고 들어왔으므로, 나갈 때에도 그 근거가 예수의 피로 처리되어야 한다.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면 죄 사함을 받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되며, 악한 영이 붙어 있을 법적 근거가 제거된다. 그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질병을 놓고 떠나가라고 명령할 수 있다.
여기서 죄의 담당과 저주의 제거를 구별해야 한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여 속죄하시는 일은 예수님이 백 퍼센트 이루신다. 인간은 자기 공로로 죄값을 갚을 수 없다. 그러나 죄로 들어온 저주가 실제로 떠나가게 하는 과정에는 믿는 자의 자백하는 회개가 들어간다. 이는 십자가의 완전성을 보충하는 공로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이미 준비된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 누리는 통로다. 그러므로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나음을 받았다”는 말씀을 믿고 선포하는 데서 더 나아가, 자신과 조상의 죄를 자백하고 그 죄를 통해 들어온 악한 영을 내보내야 한다. 이것이 회개기도문을 통하여 실제로 질병과 저주의 세력이 약해지고 떠나가는 원리다.
6. 죽음·음부·부활·승천은 무엇을 성취했는가?
메시야의 일곱째 사역은 죽으시고 장사되어 음부까지 내려가시는 것이며, 여덟째 사역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자신의 죄 때문에 당한 죽음이 아니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이 받을 사망의 값을 지불하신 죽음이다(고후 5:14). 장사되었다는 것은 그 죽음이 실제였음을 보여 주며, 음부에 내려가셨다는 것은 죄의 삯인 사망을 끝까지 담당하셨음을 뜻한다.
사람이 죄 가운데 죽으면 사망 뒤에 음부가 따라와 그 영혼을 삼킨다. 예수님도 실제로 죽으셨으므로 음부가 삼켰다. 그러나 음부는 예수님을 계속 붙들어 둘 수 없었다. 음부가 붙들 수 있는 근거는 죄인데, 예수님에게는 자기 죄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죽음은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한 죽음이었고, 그분 자신은 거룩하고 흠이 없으셨다. 그러므로 음부는 사흘 만에 예수님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사야는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26:19).
다윗도 하나님께서 주의 거룩한 자를 음부에 버리지 않고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예언하였다(시 16:10-11). 베드로는 오순절에 이 말씀을 예수님의 부활에 적용하였다(행 2:25-32). 음부의 문들이 교회를 이기지 못하는 까닭도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께서 죽음과 음부의 권세를 깨뜨리고 살아나셨기 때문이다(마 16:18).
부활은 예수께 죄가 없었다는 하나님의 확증이며, 그 죽음이 우리 죄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다는 증거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고전 15:1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전 15:3-4). 살아나셨다는 사실은 자기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음을 밝힌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곧바로 하늘로 떠나지 않고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행 1:3). 도마에게는 못 자국 난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 주시며 믿으라고 하셨다(요 20:24-29). 제자들이 본 분은 영으로만 나타난 환상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몸으로 살아나신 바로 그 예수님이었다. 여러 차례 나타나신 부활의 증언은 우리가 믿는 복음이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임을 확증한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종이 형통하며 받들어 높이 들려 지극히 존귀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52:13). 이는 고난받는 종이 죽음에 머물지 않고 부활하여 승천하며 높임받을 것을 가리킨다.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하나님 보좌에 앉아 왕으로 다스리시고,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며, 믿는 자들이 거할 처소를 예비하신다.
승천의 능력은 장차 하늘에 올라갈 때만 필요한 능력이 아니다. 지금 우리를 현실의 웅덩이와 사탄의 억압 위로 끌어올리는 능력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높은 곳에 세우신다고 고백하였다(시 18:33). 사탄이 공격하고 환경이 어려워도 거기에 매여 좌절과 낙망의 노예가 되지 않고, 소망을 품고 다시 뛰어오르게 하는 것이 부활과 승천의 능력이다.
7. 성령으로 창조된 새로운 백성은 누구인가?
메시야의 아홉째 사역은 부활하고 승천한 뒤 성령을 보내 새로운 백성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모든 자녀가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며 그들에게 큰 평안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54:13). 이 약속은 혈통으로만 구별되는 한 민족을 넘어, 성령께서 안에 거하시고 직접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백성을 바라본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고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요 20:19-22). 승천하시기 전에는 자신이 떠나가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이라고 가르치셨다. 육체로 계시는 예수님은 한 장소에서 그분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지만, 보혜사 성령으로 오시면 어디에 있는 사람이든 동시에 그분을 모실 수 있기 때문이다(요 16:7). 예수님은 승천하신 뒤 생명 주는 영으로 믿는 자 안에 들어오셔서 새로운 사람을 산출하신다.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난 새로운 백성의 공동체가 교회다. 교회는 건물이나 종교 조직이기 전에 예수의 생명을 받고 성령이 내주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성령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고, 예수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며, 믿는 자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요 14:26, 16:8-13). 그러므로 교회의 생명은 사람의 지혜나 제도에 있지 않고 그 안에 거하시는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있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 이방인은 이스라엘의 언약 밖에 있었고 유대인에게 부정한 자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막힌 담을 허무셨고, 부활하신 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다(엡 2:14-19, 마 28:18-20).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의 한계, 남자와 여자의 차별, 신분과 민족의 장벽은 구원의 자격을 결정하지 못한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동일한 시민이며 하나님의 권속이 된다.
새로운 백성에게는 새로운 사명도 주어진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께서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며, 자신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마 28:18-20). 처음 제자들을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보내셨던 단계에서 이제 모든 민족을 향한 복음 선교가 열린 것이다. 예수님의 보혈로 장벽이 철폐되었기에 우리 같은 이방인도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고, 다시 다른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제자가 되었다.
이 백성은 단지 천국에 들어갈 자격만 얻은 사람들이 아니다. 성령의 교훈을 받고 큰 평안을 누리며, 예수님의 성품과 능력을 세상에 나타내는 사람들이다. 말씀이 삶의 좌표가 되고 예수님이 인격의 주체가 될 때, 환난 속에서도 평안을 지키고 복음을 전하며 마귀에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주님의 사역에 참여한다. 예수께서 한 몸으로 계실 때 행하셨던 일을 이제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를 통하여 계속 행하신다.
8. 재림하신 예수께서는 어떤 심판과 왕국을 이루시는가?
메시야의 열째 사역은 다시 오셔서 심판하시고 상을 주시며 영원한 왕국을 세우는 것이다. 초림하신 예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육체를 입고 고난받는 종으로 오셨다. 재림하시는 예수께서는 강한 자로 임하여 친히 다스리시며, 행한 대로 갚으시는 심판주와 왕으로 오신다. 이사야는 그의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다고 예언하였다(사 40:10).
재림의 심판에는 두 방향이 있다. 주의 이름을 경외하며 충성한 종들에게는 상을 주시고, 악인과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에게는 진노와 멸망을 내리신다. 이사야는 메시야가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고 정직으로 겸손한 자를 판단하며,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고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11:4).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은 구원받은 자에게는 보상의 날이지만 회개하지 않은 악인에게는 피할 수 없는 심판의 날이다.
사람이 지금 죽으면 그의 영혼은 즉시 낙원이나 음부로 간다. 천국에 들어간 성도는 주께서 세상에 보내실 때 맡기신 사명을 얼마나 충성되게 감당했는지에 따라 상급의 심판을 받는다. 주님은 잘한 종에게 면류관을 씌우시고 천국에서의 지위와 신분과 거처를 정하신다. 충성의 면류관, 인내의 면류관, 사랑과 섬김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과 시들지 않는 면류관은 이 땅에서 믿음으로 충성한 삶이 영원한 나라에서 결코 잊히지 않음을 보여 준다.
마지막 대환난의 시간표도 알아야 한다. 다섯째 나팔이 울리면 무저갱에 갇혀 있던 사탄의 세력이 풀려나고,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의 환난이 진행된다(계 9:1-21).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종들은 특별한 보호를 받지만, 많은 성도가 핍박 가운데 죽임을 당한다. 일곱째 나팔이 울릴 때 예수께서 공중에 임하시고 알곡과 같은 성도들을 거두시는 휴거가 일어난다(계 11:15, 14:14-16). 이때 그 환난 기간에 죽어 주님을 기다리던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성도들이 홀연히 변화되어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살전 4:16-17).
일곱째 나팔 뒤에는 땅에 일곱 대접의 재앙이 쏟아지고,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을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을 주신다. 동시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신다(계 11:18). 그러므로 재림은 막연한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행위와 충성을 드러내고, 악의 역사를 끝내며, 하나님의 공의를 완성하는 날이다.
심판 뒤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진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새 하늘들과 새 땅을 창조하시므로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65:17-18). 요한도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은 새 창조를 보았으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계 21:1-2). 구원받은 백성은 그 영원한 왕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불신앙과 죄를 끝까지 붙든 자들은 불못의 심판을 받는다.
예수께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라고 말씀하셨다(계 22:12). 상은 구원을 돈으로 사듯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주께서 맡기신 사명에 얼마나 충성했는지를 주님이 영원히 기억하고 갚아 주시는 것이다. 과거에 충성하지 못한 시간을 붙들고 낙심할 필요는 없다. 가장 빠른 시작은 바로 지금이다. 지금 회개하고, 지금 천국 복음을 전하며, 지금 맡겨진 영혼과 사명을 섬겨야 한다. 나팔이 울리는 날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날마다 준비해야 한다.
9. 나오며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의 열 가지 풍성한 사역과 그것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놀라운 은혜를 살펴보았다. 예수께서는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 흠 없는 속죄 제물이 되셨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나타내셨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마귀에게 눌린 자를 해방하며, 병든 자를 치료하셨다. 우리의 죄와 저주를 담당하시고, 죽어 장사되어 음부까지 내려가셨으나, 죄가 없으셨기에 음부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다. 하늘로 승천하여 왕과 대제사장이 되셨고, 성령을 보내 유대인과 이방인 가운데 새로운 백성인 교회를 창조하셨다. 마지막에는 다시 오셔서 악인을 심판하고 충성한 성도에게 상을 주며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한 왕국을 세우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아는 일은 단순히 교리를 많이 쌓는 공부가 아니다. 항상 살아 계신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오늘 내게 영향을 미치게 하는 생명의 공부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며, 죄와 저주의 세력이 실제로 떠나가도록 구체적으로 자백하는 회개를 계속해야 한다. 병과 약함 가운데서는 치료자로 오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영적 억압 가운데서는 해방자로 오신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 환경이 어렵고 사탄이 공격할 때에는 부활과 승천의 능력으로 다시 높은 곳을 향해 일어서야 한다.
또한 성령으로 지음 받은 새로운 백성답게 예수님의 말씀을 삶의 좌표로 삼아야 한다. 남이 받아 전해 주는 은혜에만 머물지 말고 말씀을 직접 먹고, 예수님으로 충만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안에 계신 그분이 나타나게 해야 한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막힌 담을 허무신 주님의 뜻을 따라 모든 민족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고, 가정과 교회와 세상에서 맡기신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해야 한다.
재림의 날은 반드시 온다. 그날 예수께서는 행한 대로 갚으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 상을 주시며, 땅을 망하게 하는 자를 멸망시키실 것이다.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오늘부터 회개하고 충성할 수는 있다.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의 환난을 지나 일곱째 나팔과 함께 주님을 맞이할 날을 바라보며, 날마다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열 가지 풍성한 사역을 믿음으로 누리고 다시 오실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서도록 준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8월 10일(월)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이사야서의 예언을 바탕으로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는 열 가지 사역을 신학적으로 풀이하며 성도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예수가 단순한 성인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질병을 치유하고 마귀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실질적인 권능을 가졌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십자가 사건이 죄 사함을 넘어 삶의 모든 저주를 담당한 사건임을 역설하며, 이러한 은혜가 개인의 삶에 실재가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백과 회개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사역의 흐름은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지나 재림과 심판으로 이어지며, 성도들이 마지막 때에 하늘의 상급을 얻기 위해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적을 지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