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5(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48)] 예수님의 권위 질문을 두 아들 및 포도원 농부의 비유로 답하시다(마21:23~4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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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권위에 대한 도전, 그리고 비유로 답하시는 예수님
예수께서는 공생애의 마지막 주간을 맞이하시자,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자기들의 겉옷을 땅 위에 깔고 어떤 이들은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라고 찬양하면서 주님을 맞이한다. 곧이서 예루살렘 입성하신 예수께서는 성전 안에서 돈 바꾸는 자들과 비둘기 파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성전을 정화하신다. 이 사건은 예루살렘 성전의 주인으로서 마땅히 행하신 왕적 심판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성전의 기득권을 쥐고 있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심기를 정면으로 건드리고 만다. 그러자 산헤드린 공회는 즉시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마 21:23)고 따져 묻는다. 이 질문은 단순히 권위의 출처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 이 질문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교활한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만약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고 답하면 신성모독죄로 고발할 것이고, “내게 있는 권위다”라고 하면 교만한 자로 몰아붙일 심산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시고, 오히려 역질문을 통해 그들의 위선을 드러내신다. 그리고 이어서 ‘두 아들의 비유’와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라는 두 가지 강력한 비유를 통해, 참된 순종과 불순종의 실체가 무엇이며, 하나님의 권위를 거부한 자들이 맞이하게 될 비참한 결말이 어떠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신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예수님의 지혜로운 답변을 따라가면서, 오늘날 우리가 진정 순종해야 할 권위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우리에게 진정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2. 예수님의 역질문: 세례 요한의 권위는 과연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예수님에게 "당신의 권위는 어디로부터 온 것이요?"라고 묻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음흉하고도 교활한 질문에, 예수께서는 직접적인 답변을 하시는 대신에 역질문으로 그들의 의도를 꿰뚫고 나가신다.
마 21:24-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 [자신]도 한 [가지]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만일] 너희가 [나에게 이런 그것을] 대답하면 나 [자신]도 [역시] 무슨 권위(권세)로 이런 일[들]을 [행]하는지 이르리라 25 요한의 [그] 세례가 어디로부터 [있어]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러자 이 질문은 종교 지도자들을 진퇴양난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만약 그것이 ‘하늘로부터 왔다’고 대답하면, “그런데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는 책망을 피할 수 없게 되며, 반대로 ‘사람으로부터 왔다’고 대답하면, 모든 백성이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고 있었기에 백성들로부터 돌에 맞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는 비겁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고, 예수께서도 “나 [자신]도 [역시] 무슨 권위(권세)로 이런 일[들]을 [행]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도전을 무력화시키셨다. 이 사건은 진리를 알면서도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진실을 외면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과 불신을 명백히 드러내는 것이다.
3. 예수께서 음흉한 종교지도자들에게 들려주신 '두 아들의 비유'는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는가?
이어서 예수께서는 ‘두 아들(자식들)의 비유’를 통해, 겉모습이 아닌 실제적인 순종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신다.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한다. 그러자 첫째인 이는 “싫습니다”라고 하면서 가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후에 뉘우치고 갔다. 그런데 딴 이는 “가겠습니다”라고 응답했지만 끝내 가지 않았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고 물으셨고, 그들은 “첫째인 이이니이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이 말씀은 맏아들과 둘째 아들의 위치가 우리말 개역성경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고대사본인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에는 둘째 아들이 "딴 이"라고 나오며, 첫째 아들은 '첫째인 이'로 나오며, 그 대답도 우리말 개역성경과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 비유는 어떤 비유인가? 이 비유는 딴 이는 겉으로는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즉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첫째인 이는 처음에는 죄를 짓고 하나님을 거부했지만, 나중에 뉘우치고 돌이켜 순종하는 세리들과 창녀들을 가리킨다.
마 21:31-32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이 말씀은 실로 충격적인 선언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기준은 종교적인 지위나 겉으로 드러나는 경건함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와 순종하는 행함에 달려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이 회개를 외쳤을 때, 종교 지도자들은 응당 세례를 받고 회개를 해야 했지만 그들은 그를 배척했다. 하지만, 죄인으로 낙인찍혔던 세리들과 창녀들은 처음에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지만 곧이어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이처럼 말로만 ‘예’라고 대답하는 신앙이 아니라, 비록 처음에는 ‘아니오’라고 답했을지라도, 진정 뉘우치고 돌이켜 순종하는 자야말로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4.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어떤 비유인가?
예수께서는 이어서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권위를 거부하고 그분의 아들까지 죽이는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의 만행과 그들에게 임할 무서운 심판을 경고하신다.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다. 열매 거둘 때가 되어 종들을 보냈으나, 농부들은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돌로 쳤다. 주인은 더 많은 종들을 보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주인은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생각하고 자기 아들을 보냈지만, 농부들은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고 하며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죽여 버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비유의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 비유의 시작에서 그 방향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너희는 딴 비유를 들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즉 예수께서 이전에 들려주셨던 '두 아들의 비유'와는 같은 종류의 비유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비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앞에 들려주었던 '두 아들의 비유'는 사실 뒤의 비유와 다른 종류의 비유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앞의 비유는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누가 천국에 들어가는지를 알려주는 비유라면, 뒤의 비유인 '농부들의 비유'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방 사람들 중에 누가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지를 알려주는 비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비유에 등장하는 것들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첫째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를 상징한다. 그리고 둘째로, 포도원은 이스라엘 나라로서 먼저된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다. 그리고 셋째로 농부들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종교 지도자들(대제사장, 장로, 바리새인)을 가리키다. 그리고 넷째로, 종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약의 선지자들을 가리켜, 다섯째로, 아버지가 보낸 자기의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고로 이 비유는 구약 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스라엘의 불순종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 회개의 열매를 촉구하셨지만(렘 35:15), 그들은 선지자들을 핍박하기를 손으로 때리고 살해하고 돌로 쳤던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예레미야 선지자는 거짓 예언자인 임멜의 아들 바스훌에게 맞았다(렘 20:1~2).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 왕의 아들인 므낫세 왕에게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한다(히 11:37). 그리고 바가랴(베라갸)의 아들 사가랴(스가랴)는 성전에서 돌에 맞아 순교한다(대하 24:20~21, 마 23:34). 그러자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기회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보내셨지만, 그들은 끝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그 아들마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을 계획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 그래서 곧이어 예수님을 성문밖 골고다로 끌고가서 거기에서 십자가에 못박아 살해한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셨고, 그들은 스스로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라고 대답하며 자신들의 심판을 선고하고 말았다.
그렇다. 누가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가 아니다. 그 나라의 열매맺는 백성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일찍 익어야 할 무화과였지만 때가 되었어도 열매를 맺지 못한 채 잎만 무성한 무화가로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주님은 결국 그들을 심판하신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죽고 난 후 40년만에 예루살렘은 로마의 디도 장군의 공격을 받아 270만명이 죽고, 10만명은 포로로 잡혀가 로마의 콜롯세움을 건축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된다.
5. 예수님은 천국집을 지어야할 나에게 건축자들이 버린 돌인가 아니면 모퉁잇돌인가?
그러자 예수께서는 시편 118편 말씀을 인용하여, 이 모든 사건의 결론을 선포하신다.
마 21:42-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여기서 ‘건축자들’이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버린 돌을 구원 역사의 가장 중요한 기초석, 즉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으신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이 이 돌을 천국집을 짓기 위한 머릿돌로 붙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돌은 유대종교지도자들에게는 그들을 깨는 돌이 되었, 그들을 가루로 만드는 돌이 되고 말았다(마 21:44).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수 있지만, 그분을 대적하고 거부하는 자는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결론적으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제 유대인들로부터 빼앗아, 그 나라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새로운 백성, 즉 이방인들을 포함한 교회에게 주시겠다는 것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러자 이 선포를 들었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이 비유가 자신들을 가리켜 하신 말씀인 줄 알고 예수를 붙잡고자 시도했으나, 무리를 두려워하여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6. 나오며: 열매 맺는 백성이 되라
이번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과, 그에 대한 예수님의 지혜로운 답변을 통해 참된 순종과 불순종의 실체를 살펴보았다. 두 아들의 비유는 지금도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입술로만 ‘예’라고 대답하는 딴 이와 같은가, 아니면 비록 처음에는 거역했더라도 뉘우치고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는 첫째인 이와 같은가?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또한 우리에게 경고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과 하나뿐인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청종하여 열매맺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분의 음성을 거역하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에 같은 사람인가?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맡기신 포도원, 즉 우리의 삶과 가정, 교회에서 마땅히 맺어야 할 회개의 열매, 순종의 열매, 사랑의 열매를 찾고 계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이처럼 혈통이나 종교적 지위로 들어가는 곳이 결코 아니다. 오직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만이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비록 이스라엘이 버렸으나 하나님께서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믿어야 한다. 그분 앞에 우리의 교만과 죄악을 깨뜨리고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열매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말뿐인 신앙인이 아니라, 삶으로 열매 맺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상속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설교요약] 본 설교는 마태복음 21장 23-46절을 통해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과 비유에 담긴 교훈을 다룬다. 첫째,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세례 요한의 권위’에 대한 역질문으로 그들의 위선을 드러내신다(마 21:24-25). 둘째,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 말로만 순종하는 종교 지도자들보다 회개하고 순종하는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을 선포하신다(마 21:31-32). 셋째,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아들까지 죽이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의 역사를 고발하며, 그들에게 임할 심판과 하나님 나라가 ‘열매 맺는 백성’에게로 옮겨질 것을 예고한다(마 21:43). 넷째,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것처럼(마 21:42), 배척받은 예수님은 구원의 유일한 기준이 되시며, 그분을 믿고 회개하는 자는 구원을 얻지만 거부하는 자는 멸망한다. 결국 참된 순종과 회개의 열매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유일한 자격임을 강조한다.
2025년 10월 15일(수)
정보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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