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2(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51)]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책망과 그들이 받게 될 7가지 화(마23:1~3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FMqiP3xq2mc
1. 들어가며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까지의 과정은 사실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흠이 있는지 없는지를 검증받는 시간이었다(출 12:3~6). 그러므로 당시 유대 사회를 이끌던 모든 세력, 즉 대제사장, 장로, 바리새인, 사두개인, 헤롯 당원, 율법사들이 총동원되어 예수님을 책잡으려 찔러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 어떠한 흠도 찾지 못했다(마 22:46).
예수께서 흠 없는 제물이 되셔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만약 그분에게 단 하나의 죄라도 있었다면, 그분의 죽음은 자신의 죄 값일 뿐, 인류의 죄를 대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롬 6:23), 죄가 있으셨다면 부활하실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 자신이 죄 없으시다는 강력한 증거이자, 동시에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그리하여 모든 종교 지도자의 맹렬한 시험을 통과하시고 당신의 흠 없으심과 신적 권위를 증명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반격에 나서신다. 마태복음 23장은 예수님께서 당시 종교 지도자들, 특히 백성들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치부와 위선을 낱낱이 드러내시며 강력하게 책망하시는 내용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완전히 작정하게 된다. 오늘날 진리를 전하는 사역자들이 이단으로 정죄받고 비난받는 모습은, 당시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일과 어쩌면 그렇게 일치하는지...
따라서 이번 시간에 우리는 이 말씀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남을 정죄하기보다 ‘나는 과연 예수님 앞에 책망받을 요소가 없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우리가 책망받고 고칠 수 있다면 우리도 역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지만, 만약 깨닫지 못하고 자신을 거짓으로 포장한 채 살다가 죽는다면, 그는 마지막 순간에 슬피 울며 이를 가는 비극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구체적인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받게 될 7가지 화(禍)는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을 책망할 요소는 없는지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2.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경고하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마 23:1-12)
예수께서는 먼저 무리와 제자들을 향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따르되 분별해서 따를 것을 가르치셨다(마 23:1-2).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외식(外飾)’, 즉 겉과 속이 다른 위선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갖고 있었던 문제들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첫째,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위선을 가지고 있었다(2-4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2-3절). 그렇다. 여기에 나오는 ‘모세의 자리’란 회당에 실제로 존재했던 돌 의자로서(고라신 회당 유적 등에서 발견됨),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며 재판하는 권위의 상징으로 놓여진 것이었다. 이때 예수께서는 그들의 가르침(율법 자체)은 인정하셨으나, 그들의 행위는 따르지 말라고 하셨다.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백성들에게는 지키기 힘든 무거운 짐(수많은 율법 조항과 전통)을 묶어서 사람들의 어깨에 지워주었다(4절). 오늘날에도 목회자가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성도들에게만 거룩한 삶을 강요한다면, 이들과 똑같은 위선자가 될 수 있다.
둘째,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는 위선을 가지고 있었다(5-7절).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5절). 사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모든 신앙 행위의 동기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의 인정’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경문(經文)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5절) 다녔다. 여기서 ‘경문’(테필린)이라 함은 신명기 6:4-9 등의 말씀을 적어 넣은 작은 상자로, 이마와 팔에 매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옷술’은 겉옷 자락에 다는 술(치치트)이다. 그들은 이 경문 상자를 남들보다 더 크게 만들고 옷술을 더 길게 늘어뜨림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경건하고 율법을 잘 지키는지를 과시하고자 하였다. 또한 그들은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받는 것을 좋아하”였다(6-7절). 그들은 어디서나 상석에 앉기를 원했고, 사람들이 자신을 ‘랍비’(선생님)라고 부르며 존경해 주기를 갈망했다. 이는 섬김이 아닌 군림의 자세 바로 그것이었다.
셋째, 그들은 높아지고 대접받으려는 교만을 가지고 있었다(8-12절).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과 같이 되지 말라고 경고하시며 세 가지 호칭을 금하셨다. 첫째로,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고 하셨다(8절). 왜냐하면 그들의 선생은 오직 한 분(아마도 성령님 내지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고 하셨다(9절). 왜냐하면 그들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영적 아버지 행세를 하며 군림하려고 하였다. 셋째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고 하셨다(10절). 왜나하면 그들의 지도자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이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만 받으셔야 할 영광과 권위를 사람이 가로채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높아지려는 욕망 자체가 위선이며 죄악임을 지적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가야 할 길을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11-12절)는 말씀으로 요약하셨다. 이것은 참된 제자는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의 삶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임을 알려주신 것이다.
3. 예수께서 선포하신 일곱 가지 화(禍)의 내용은 무엇인가? (마 23:13-36)
예수께서는 이제 무리와 제자가 아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직접 향하여 일곱 가지 화(禍)를 선포하신다. 여기서 ‘화 있을진저’(οὐαί, 우아이)라는 말은 ‘오호 통재라!’, ‘슬프도다!’라는 극한의 안타까움과 심판의 경고를 담은 탄식이다. 이 일곱 가지 화는 모두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는 구절과 짝을 이루며, 그들의 구체적인 위선과 죄악을 폭로한다. (마태복음 23장 14절은 일부 후대 사본에만 삽입된 구절로, 가장 권위 있는 고대 사본들에는 존재하지 않기에 7가지 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7가지 화는 대체 무엇인가?
첫째, 제1화는 천국 문을 닫는 죄(13절)를 가리킨다.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그들은 율법 교사로서 백성들을 천국으로 인도해야 할 사명이 있었으나, 오히려 잘못된 가르침과 위선적인 삶으로 천국 문을 가로막았다. 자신들도 들어가지 못할 뿐 아니라, 들어가고자 하는 자들까지 막아서는 잘못된 구원관을 전파했다. 오늘날에도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식의 잘못된 교리로 성도들을 안심시켜 회개하지 못하게 막는다면, 이와 동일한 화를 입게 될 것이다.
둘째, 제2화는 배나 더 지옥 자식을 만드는 죄(15절)를 가리킨다.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그들은 전도에도 열심이었으나, 그 열심의 결과는 사람들을 천국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위선과 잘못된 교리를 주입하여 ‘배나 더 지옥 자식’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잘못된 구원관을 가진 자의 열심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도구가 된다.
셋째, 제3화는 맹세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의 죄(16-22절)를 가리킨다. “화 있을진저 눈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그들은 성전 자체보다 성전의 금을, 제단보다 그 위의 예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궤변으로 맹세를 가르쳤다. 이는 본질(성전, 제단)보다 비본질(금, 예물)을 더 중시하는 물질주의와 탐욕을 드러낸 것이다. 그들은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용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금보다, 제단이 예물보다 더 크며, 결국 모든 맹세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셨다.
넷째, 제4화는 더 중한 바를 버린 죄(23-24절)를 가리킨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들은 박하, 회향, 근채(향신료나 채소)와 같은 아주 사소한 것의 십일조까지 계산하여 바치는 외적인 경건을 자랑했다. 그러나 율법의 더 근본적인 정신인 정의(공의), 긍휼(자비), 믿음은 내버렸다. 예수님께서는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하시며, 십일조와 같은 외적 순종도 필요하지만 내면의 본질적인 가치를 잃어버려서는 안 됨을 강조하셨다.
다섯째, 제5화는 겉만 깨끗하게 하는 죄(25-26절)를 가리킨다.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그들은 정결 예식 등을 통해 겉모습은 깨끗하게 꾸몄지만, 그들의 내면(안)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겉이 아닌 안(내면)을 먼저 깨끗이 하라고 명하셨다.
여섯째, 제6화는 회칠한 무덤 같은 위선의 죄(27-28절)를 가리킨다.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회칠한 무덤은 겉은 하얗고 아름답지만 속은 시체 썩는 냄새와 더러움으로 가득하다. 이처럼 그들의 경건한 겉모습 이면에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 차 있었다.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이중적인 삶을 사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7화는 선지자들을 핍박한 조상들의 죄를 따르는 죄(29-36절)를 가리킨다. 그들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30절)고 말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말이 거짓임을 폭로하셨다. 그들은 조상들이 선지자들을 죽였듯이, 지금 자신들 앞에 서 있는 가장 큰 선지자이신 예수님과 그분이 보내실 제자들(선지자, 지혜 있는 자, 서기관)을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채찍질하고, 박해할 것이기 때문이다(34절). 그들은 입술로는 조상들의 죄를 비판했지만, 실제로는 그 조상들의 악한 행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4. 예수께서 책망하신 ‘눈먼 인도자’는 오늘날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눈먼 인도자여”(16절, 24절), “눈먼 바리새인이여”(26절)라고 반복해서 책망하셨다. 그들은 스스로 백성을 인도하는 지도자라고 자처했지만, 영적으로는 눈이 멀어 진리를 보지 못하고 백성들을 구덩이로 함께 끌고 들어가는 위험한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와같이 눈이 먼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교만과 탐욕, 외식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조상 대대로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는 그들의 눈과 귀를 막아버렸다. 이방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하는 ‘절’이라는 행위는 악한 영들이 머리와 눈, 귀로 들어오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러한 영들은 사람에게 불신앙과 의심의 영을 불어넣어, 성경을 읽어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목회자나 신학자가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연구한다 할지라도, 회개를 통해 자신 안에 있는 불신앙과 의심의 영, 교만과 탐욕의 영을 쫓아내지 않으면, 그도 역시 ‘눈먼 인도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눈 먼 지도자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든지 아니면 상징적으로만 해석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살아있는 능력과 영적 세계의 실상을 부인한다. 그리고 오히려 진리를 전하는 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한다.
그러므로 만약 오늘날도 교회의 지도자가 눈이 멀게 된다면 그를 따르는 성도들도 역시 함께 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아니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먼저 철저히 회개하여 영적인 눈을 떠야 한다. 그리고 성도들은 무조건 지도자를 따를 것이 아니라 그 가르침이 진정 성경적인지 분별하면서 따라가야 한다(행 17:11).
5. 이 무서운 책망을 받은 자들의 최종 운명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의 최종 운명을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겐네마', 자손, 소산, 열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게헨나')의 판결을 피하겠느냐”(33절)는 무서운 말씀으로 가름한다. 여기서 ‘뱀’(옵히스), ‘독사’(에키드나)는 사탄 마귀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위선적인 행위의 배후에 사탄이 있으며, 그들이 결국 사탄의 자식처럼 행하다가 사탄과 그의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불, 즉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신 것이다(마 25:41).
그렇지만 예수님의 이러한 책망은 그들을 저주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 중 단 한 명도 지옥에 들어가서는 아니 될 것이기에, 빨리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마지막 경고로 주신 사랑의 절규인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들을 귀가 없었던 그들, 이미 눈이 멀어버린 자들이었던 그들은 더이상 예수님의 책망을 듣지 못했다. 그리고 듣고 회개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분노하면서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더욱 구체화시켜 나갔다.
이러한 일들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일어날 수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 하나님의 책망이 자기자신의 귓가에 들릴 때 즉시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는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책망을 거부한 채 오히려 진리를 대적하며 자신의 의를 고집하는 자는, 아무리 높은 종교적 직분과 명성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마지막 시간에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6. 나오며
마태복음 23장의 일곱 가지 화(禍)는 단순히 2천 년 전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 앞에 외식하며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한 엄중한 경고의 말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과연 어떠한가?
혹시 잘못된 구원관에 안주하여 천국 문을 닫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물질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혀 본질을 잊고 살고 있지는 아니한가? 혹시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지만 속은 탐욕과 방탕, 불법으로 가득 찬 ‘회칠한 무덤’은 아닌가? 혹시 입술로는 과거 선지자들을 존경한다 하면서, 오늘날 진리를 전하는 참된 종들을 비난하고 핍박하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이러한 모습이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께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는 무서운 책망을 듣고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신의 책망하는 소리에 들릴 때에 즉시 회개하는 것이다. 내 속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은 내 죄 때문에만 들어와있는 것이 아닌만큼, 나의 죄와 더불어 내 조상들의 죄까지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내 속에 들어있는 교만과 탐욕, 외식과 불법의 영들을 철저히 몰아내야 한다. 왜냐하면 회개를 통해서만이 나의 내면을 깨끗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 우리도 역시 겉과 속이 같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회개하는 자를 찾으신다. 책망을 달게 받고 돌이키는 자에게는 천국의 문이 열릴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고집부리는 자에게는 화(禍)가 임할 것이다. 부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고, 모든 위선을 벗어버리고 진실하게 회개함으로써, 칭찬받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5년 11월 12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영상 설교는 마태복음 23장의 내용에 기반하여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 특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준엄한 책망과 경고를 다룹니다. 설교자는 이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율법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외식적인 행위를 비판하며, 이들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막고 오히려 지옥 자식으로 만드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성경 원본 및 사본 논쟁을 통해 마태복음에 기록된 '일곱 가지 화'가 원래는 일곱 가지였음을 밝히며, 이 화들은 잘못된 구원관 제시, 물질적 탐욕,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태도, 그리고 하나님이 보낸 참 종들을 핍박하는 행위 등으로 요약될 수 있음을 설명합니다. 궁극적으로 이 메시지는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자신 안에 있는 위선의 요소를 돌아보고 회개하여 섬기는 자가 될 것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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