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4(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58)] 향유부은 여인과 마지막 만찬(02)(마26:1~3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4En_PV1zdjg
1. 들어가며: 성 금요일이 아니라 성 목요일이다
성도들은 새로운 해가 되면 고난주간을 보내며 예수님의 십자가 행적을 묵상한다. 흔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날을 '성 금요일(Good Friday)'이라고 부르고, 그 전날 밤에 최후의 만찬을 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을 정밀하게 연구해 보면, 기존의 상식과는 조금 다른 시간표가 드러난다.
예수께서는 요나의 표적처럼 "밤낮 사흘(3일 3야)"을 땅속에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마 12:40). 그런데 만약 예수께서 금요일 오후에 돌아가시고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시게 되면, 3일 3야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예수님은 수요일 혹은 목요일에 잡히시고 십자가를 지셨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는 편의상 '성 금요일'이라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성만찬과 체포가 이루어진 날은 '성 목요일' 혹은 그 이전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날짜 계산 자체가 아니다. 그 긴박했던 마지막 밤, 예수님을 둘러싸고 벌어진 인간 군상들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한쪽에서는 스승을 팔아넘길 음모를 꾸미는 세력들이 있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자신의 전부인 옥합을 깨뜨린 여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주께서는 묵묵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시는 새 언약을 맺으신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 우리는 마태복음 26장의 현장으로 들어가서, 가룟 유다의 발빠른 계산과 마리아가 깨뜨린 옥합 사이에서 나의 신앙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냉철하게 점검해 보기를 원한다.
2. 베다니의 여인은 왜 옥합을 깨뜨렸는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의 어느 날이다. 예수께서는 베다니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가셔서 식사를 하셨다. 그때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는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될 만큼 충격적이고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요한복음 12장에서 보면 이 여인은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였다.
그렇다면 장소는 왜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었을까? 당시 나병환자는 마을에 들어올 수 없었다. 격리되어야 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집에서 식사를 하셨다는 것은, 시몬이 이미 '나병에서 고침을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고로 신학자들은 이 시몬을 마르다와 마리아의 아버지이거나, 혹은 마르다의 남편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생각해 보라. 오빠 나사로는 죽었다가 무덤에서 살아났다. 아버지(혹은 친척) 시몬은 하늘의 형벌(天刑)이라 불리는 나병에서 깨끗함을 입었다. 이 집안은 예수님께 빚진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예수님께 감사를 표현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녀는 향유를 깨뜨렸다. 그런데 그 항유는 무려 '나드 한 근'이었다. 가격으로 치면 '300 데나리온'어치가 된다. 이는 노동자의 1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거금이다. 오늘날 화폐 가치로 환산한다면, 아마도 수천만 원에 달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깨뜨린 항유 옥합은 처녀가 결혼을 하기 위해 평생 모아놓은 지참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기꺼이 그 병의 목을 깨뜨렸다. 그리고 향유를 붓되 조금만 부은 것이 아니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쏟아부었다. 왜 그랬을까? 분명이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주님이 베푸신 은혜가 너무 컸을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에서 생명을 건져 주신 은혜 앞에서 돈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 은혜를 받은 자는 계산하지 않는다. 낭비라고 여길 만큼 과도하게 드리는 성향이 있다. 왜냐하면 주님의 사랑이 그 어떤 물질보다 크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고로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린 것은 단순히 향유를 부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인생 전체'를 주님께 쏟아부은 신앙 고백이었다.
3. 가룟 유다는 왜 '허비'라고 비난했는가?
그런데 이러한 감동적인 장면을 보고 분개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었다. 제자들 중에서도 요한복음은 그가 바로 '가룟 유다'가 주동자였음을 밝힌다. 그때 가룟 유다는 소리쳤다.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마26: 8~9)
겉으로 보면 가룟 유다의 말은 매우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것처럼 들린다. 300 데나리온이면 가난한 사람 수백 명을 먹일 수 있는 돈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한순간에 바닥에 쏟아버리다니, 얼마나 아까운가? 이것이 세상의 계산법이고, 이성이 지배하는 종교의 논리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속마음을 정확히 꿰뚫어 본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요 12:6)고 해석해준다.
그럼, 왜 왜 가룟 유다는 돈에 욕심을 내고 있었는가? 그것은 그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이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님을 통해 한자리 차지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재정을 맡았으니, 자기 주머니를 채우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에게 예수님은 단지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수단이었지 목적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보인 헌신은 헌신이 아니라 '허비(Waste)'로 보인 것이다. 내게 이익이 되지 않을 때에는 가차 없이 비난하는 신앙, 주님께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며 "그 돈이면 차라리..."라고 계산하는 신앙, 이것이 가룟 유다의 영성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기대가 무너지자 예수님을 팔아넘기기로 결단한다. 가격은 고작 '은 30개'. 이는 노예 한 사람의 몸값이자, 300 데나리온의 10분의 1도 안 되는 헐값이다. 마리아는 300 데나리온을 드려도 아깝지 않았지만, 유다는 은 30개에 스승을 팔았다. 사랑하면 전부를 드려도 부족하지만, 이용하려 하면 가치가 떨어지는 순간 헌신짝처럼 버린다. 당신은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이용하고 있는가?
4. 예수님은 왜 그녀의 행동을 '장례 준비'라고 하셨는가?
제자들은 비난했지만, 예수님은 마리아를 변호하셨다.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그리고 놀라운 해석을 덧붙이신다.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을 여러 번 예고하셨다. 그러나 제자들 중 누구도 그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누가 더 크냐"며 자리다툼을 하고 있었다. 오직 마리아만이 주님의 죽음을 예감했다. 여인의 직감이었을까, 영적인 통찰이었을까? 그녀는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주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향유를 부어드릴 수 없다.
실제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급하게 무덤에 안치되느라 제대로 된 장례 절차를 밟지 못했다. 안식일이 지나고 여인들이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갔을 때는 이미 부활하신 뒤였다. 즉,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향유를 바른 사람은 전 인류 역사상 마리아가 유일했다. 마가복음 14장 7절에서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어 아무 때나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타이밍(Kairos)'**이다. 헌신에도 때가 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효도해야지, 돌아가신 뒤에 제사상 차리는 것은 소용없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육체가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의 발을 씻겨드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붙잡은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헌신할 기회는 영원하지 않다. 물질이 있을 때, 건강이 있을 때, 감동이 올 때 즉시 깨뜨려야 한다. "나중에 하겠다"는 사람은 영원히 못 한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주님을 섬길 때, 주님은 그것을 "내 장례를 준비한 거룩한 헌신"으로 기억해 주신다.
5. 예수님은 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는가?
마태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요한복음 13장을 보면 이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이 아주 파격적인 행동을 하신다. 식사 도중에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뒤,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이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발을 씻겨주는 것은 가장 천한 종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냄새나는 제자들의 발을, 심지어 잠시 후면 자신을 배신할 가룟 유다와 베드로의 발까지 씻겨주셨다. 이것은 육체를 입고 계신 동안 보여주실 수 있는 **'사랑의 절정'**이었다. "내가 너희를 이만큼 사랑한다. 너희가 나를 버리고 도망갈 것도 알지만, 그래도 나는 너희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 씻김을 기억하고 다시 돌아오라."
예수님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서 사랑하신 게 아니다. 더러운 발, 배신의 발까지도 품으시는 '끝없는 사랑'이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릎을 꿇고 더러운 곳을 닦아주는 것이다. 우리도 그 사랑을 받았기에, 이제는 형제의 발을 씻겨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내가 받은 사랑이 클수록, 나는 더 낮아져서 섬길 수 있다.
6. 성만찬은 유월절 식사와 무엇이 다른가? (4가지 성취)
세족식이 끝난 후, 예수님은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하셨다. 누가복음 22장 15절을 보면 예수님의 비장한 각오가 느껴진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원문에는 '원하고'가 반복되어 "간절히 열망했다"는 뜻이다. 이것이 제자들과 나누는 마지막 식사이자,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는 사랑의 절정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떡을 떼어 주시며 "이것은 내 몸이다" 하시고, 잔을 주시며 "이것은 내 피다"라고 하셨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행하는 **'성만찬(Lord's Supper)'**의 기원이다. 예수님은 단순한 기념식을 만드신 것이 아니다. 이 예식 안에는 구약의 중요한 4가지 예언과 약속을 성취하는 거대한 비밀이 담겨 있다.
첫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 직무의 성취다. 창세기 14장에서 멜기세덱은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며 축복했다.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성도들에게 생명의 떡과 언약의 포도주를 공급해 주시는 분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둘째, 유월절 어린 양의 성취다. 출애굽기 12장에서 이스라엘은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죽음의 재앙을 피했다. 예수님은 친히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셔서, 당신의 피를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사망 권세가 넘어가는(Pass-over) 기적을 이루셨다.
셋째, 속죄일 제사의 성취다.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씻기 위해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갔다. 예수님은 짐승의 피가 아닌 자기의 피를 가지고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히 9:12). 성만찬의 잔은 바로 그 속죄의 피를 상징한다.
넷째, 새 언약(New Covenant)의 체결이다. 예레미야 31장은 하나님이 날이 이르면 이스라엘 집과 새 언약을 맺을 것이라 예언했다. 옛 언약(율법)은 돌판에 새겼지만, 새 언약은 마음에 새긴다. 예수님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눅 22:20)라고 선언하심으로, 이제 율법의 조문이 아니라 예수의 피와 생명으로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가 맺어졌음을 공포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찬에 참여할 때, 우리는 단순히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 아니다. 멜기세덱이 주는 승리의 양식을 먹고, 유월절 어린 양의 보호를 받으며, 속죄의 은총을 입고, 하나님과 맺은 새 언약의 백성임을 확증하는 것이다.
7. 주님이 남기고 가신 유일한 유산, '피(Blood)'의 효능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면서 육체(살과 뼈)는 하늘로 가져가셨다. 그렇다면 이 땅에 남겨두신 것은 무엇인가? 바로 **'피(Blood)'**다. 물론 물리적인 피는 땅에 쏟아져 사라졌지만, 그 피가 가진 영적인 효력과 권세는 이 땅에 영원히 남아 있다. 예수님이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고 하신 것은, 그 피의 능력을 소유하고 사용하라는 뜻이다.
예수의 피에는 어떤 능력이 있는가? 첫째, 속죄(Atonement)의 능력이다. 어떤 흉악한 죄라도 예수의 피가 닿으면 눈처럼 희게 된다. 둘째, 축사(Exorcism)의 능력이다. 귀신은 예수의 피를 가장 무서워한다. 내가 사역 현장에서 귀신 들린 사람에게 "예수 피!" 하고 외치면, 그 악한 영들이 견디지 못하고 떠나가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다. 피는 귀신에게 염산과 같다. 그들의 권리를 녹여버리고 무력화시킨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셨다. 몸은 찢어 생명 양식으로 주시고, 피는 쏟아 죄 씻음과 승리의 무기로 주셨다. 명태는 머리부터 내장까지 버릴 것이 없다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랴. 그분은 피 한 방울까지 우리를 위해 남겨두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피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죄책감이 들 때, 몸이 아플 때, 악한 영이 공격할 때, 주저하지 말고 예수의 피를 뿌리고 바르라. "예수의 피가 나를 덮는다. 더러운 귀신아 떠나가라!" 이것이 주님이 남기신 유산을 누리는 방법이다.
8. 사랑함이 많은 자가 많이 사함 받는다는 원리는 무엇인가?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주님은 가룟 유다에게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고 경고하셨다.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러나 유다는 끝내 돌이키지 않았다. 반면, 베드로는 세 번 부인했지만 통곡하며 회개하여 수제자가 되었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었는가? **'사랑'**이다.
누가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500 데나리온 빚진 자와 50 데나리온 빚진 자의 비유를 드시며 "사함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 7:47)고 하셨다. 역으로 말하면, 많이 탕감받은 자는 주님을 많이 사랑한다. 그리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자는, 그 사랑 때문에 더 많은 죄와 허물을 용서받는다. 이것이 '사랑의 면죄부' 원리다.
내가 아는 어떤 성도님은 자녀가 조현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조상의 무당 죄와 우상숭배의 저주가 내려온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수천 번 회개 기도를 해야 그 저주가 풀린다. 그런데 어떤 분은 불과 몇 달 만에 자녀가 낫기도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대통령이 광복절에 '특별 사면'을 내리듯이, 하나님도 **'특사(Special Amnesty)'**를 내리실 때가 있다. 언제인가? 부모가 눈물로 자복하며, 목숨 걸고 주님을 사랑하고 매달릴 때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 자식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린 그 사랑을 보시고 예수님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하셨다. 회개의 분량도 중요하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주님을 향한 절절한 사랑이 기적을 만든다. 당신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가? 회개의 횟수를 채우기보다, 옥합을 깨뜨리는 사랑으로 주님의 마음을 울려보라. 주님이 감동하시면, 10년 걸릴 치유가 단번에 일어날 수 있다.
9. 나오며: 계산하는 신앙이 아니라 옥합을 깨뜨리는 사랑으로
예수께서 이 지상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실 때에 그분의 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계산하는 사람이었다. 가룟 유다는 300 데나리온을 계산했고, 은 30개를 계산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해 얻을 이익을 계산하다가, 수지가 맞지 않자 주님을 팔아버렸다. 계산하는 신앙의 끝은 멸망이다. 그는 스스로 목매어 죽었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 떨어졌다.
다른 한 사람은 깨뜨리는 사람이었다. 베다니의 마리아는 계산하지 않았다. 300 데나리온이 아깝지 않았다. 오직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자신의 미래(결혼 지참금)와 자존심(머리카락으로 씻음)을 깨뜨려 주님께 부어드렸다. 주님은 그녀를 "내 장례를 준비한 자"라 칭찬하시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그녀의 행한 일도 기억되리라고 하셨다.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직도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가? "이만큼 헌신하면 복 주시겠지?", "이건 너무 과한 거 아니야?" 주님을 이용하려는 마음을 버려라. 주님은 중심을 보신다. 때로는 무모해 보일지라도, 옥합을 깨뜨려 전부를 드리는 사랑을 하라.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마라. 그리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만찬의 감격 속에 거하라.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베드로처럼 통곡하며 돌아오면 주님은 받아주신다. 예수의 피는 우리의 모든 더러움을 씻어내기에 충분하다. 오늘 이 밤, 계산기를 던져버리고 마리아처럼 향유 옥합을 들고 주님 발앞에 엎드리자. "주님, 나는 주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내 생명도, 내 물질도 다 주님의 것입니다." 이 고백이 터져 나올 때, 당신의 가정에 흐르던 저주는 끊어지고, 향기로운 그리스도의 향기가 가득 채워질 줄로 믿는다.
2026년 01월 14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본 설교는 마태복음 26장을 바탕으로 향유 부은 여인과 가룟 유다를 대조하며 참된 신앙의 자세와 회개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본문은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바쳐 예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마리아의 헌신과 스승을 은 30에 팔아넘긴 유다의 배신을 비교하며, 주님을 이용하려는 이기심을 버리고 오직 사랑으로 섬길 것을 권면합니다. 특히 저자는 고난 주간의 시점을 바로잡으며,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성찬식을 제정하신 사건이 인류를 향한 끝없는 사랑의 표현이자 생명을 나누어 주신 새 언약의 성취임을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성도는 지은 죄가 크더라도 가룟 유다처럼 자폭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처럼 진실하게 회개해야 하며, 이러한 회개와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의 사랑만이 삶의 저주를 끊고 영원한 구원에 이르는 길임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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