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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qMsXMbjNKFI
날짜 2026-02-04
본문말씀 마채복음 26:57~27:10
설교자 정보배목사

2026-02-04(수) 수요기도회

제목: [마태복음강해(61)] 산헤드린 공회의 심문과 베드로의 부인과 가룟 유다의 최후(01)(마26:57~27: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qMsXMbjNKFI

 

 

1. 들어가며: 네 개의 시선으로 본 예수 그리스도의 일대기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를 탐구하고 있다. 복음서는 마치 네 명의 서로 다른 감독이 한 분의 주인공을 두고 찍은 네 편의 영화와 같다. 마태는 예수를 유대인의 왕으로, 요한은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곧 하나님 자신으로 조명한다. 각기 다른 눈으로 보았기에 그 기록은 풍성하며, 동시에 오차 없는 진리의 말씀을 이룬다. 그중에서도 마태복음은 우리에게 '하늘들의 왕국(Kingdom of Heaven)', 즉 장소로서의 천국에 들어가는 실제적인 원리를 가르쳐준다.

  필자는 30년이 넘는 목회 여정 동안 성경을 연구하고 영적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며 한 가지 엄중한 사실을 깨달았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그분의 경륜을 오해하여 성 밖 어두운 데로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천국에서 주님 보좌 가까이 살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교리들을 교정하고,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직전, 가장 치욕스럽고도 부당했던 산헤드린 공회의 재판 현장으로 들어간다. 그곳은 인간의 불의와 하나님의 공의가 충돌하는 지점이며,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스스로 죄인이 되신 거룩한 희생의 장소다. 이 비참한 재판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침으로써, 우리가 섬기는 주님이 누구시며 우리는 어떤 믿음의 자리에 서야 하는지 깊이 묵상해보고자 한다.

 

2. 산헤드린 공회는 어떻게 '하나님의 대리 기구'에서 '악마의 조직'으로 타락했는가?

  예수님을 심문한 '산헤드린(Sanhedrin)'은 유대 민족의 최고 의결 기구였다. 그 뿌리는 멀리 구약 시대 모세가 광야에서 세운 70명의 장로제에 있다. 하나님은 모세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판결을 돕기 위해 성령이 충만한 장로들을 세우셨고, 이들은 백성들의 송사를 하나님의 법대로 처리하는 거룩한 직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역사가 변천하면서 이 신성한 기구는 점차 권력과 욕망의 소용돌이로 변질되었다.

  예수님 당시의 산헤드린은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하여 사두개파(제사장 가문), 바리새파(서기관 및 율법 학자), 그리고 백성의 장로들 등 총 7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입법, 사법, 행정은 물론 종교적 결정권까지 장악한 무소불위의 권력 집단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로마 권력과 결탁하여 기득권을 유지하기에 급급한 부패한 조직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들의 자리를 더 사랑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대신, "이 사람을   가만두면 우리 민족의 자리가 위태롭겠다"는 정치적 계산을 먼저 했다. 가야바를 중심으로 한 이 조직은 결국 참된 진리를 죽이기 위해 거짓 증거를 조작하는 '악마의 회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권력이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산헤드린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3. 예수님의 재판이 인류 역사상 가장 추악한 '사법 살인'인 이유는 무엇인가?

  산헤드린에서 벌어진 예수님의 재판은 법의 이름으로 자행된 명백한 '사법 살인'이었다. 유대교 법전인 미쉬나(Mishna)에 따르면,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다룰 때는 엄격한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판은 다음의 네 가지 결정적인 불법을 저질렀다.

  첫째, 재판 시간의 위반이다. 유대 법에 따르면 모든 재판은 해가 떠 있는 낮에만 가능하며, 밤에 하는 재판은 무효다. 그러나 그들은 가룟 유다를 앞세워 밤중에 예수님을 체포한 뒤 한밤중에 심문을 강행했다. 둘째, 재판 장소의 위반이다. 공식 재판은 성전 안 '다듬은 돌의 방(Gazith)'에서 열려야 하지만, 그들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사저로 예수님을 끌고 갔다. 셋째, 판결 시기의 위반이다. 유죄 판결, 특히 사형 언도는 심리한 다음 날 내려야 한다. 하룻밤을 자며 감정을 가라앉히라는 배려다. 그러나 그들은 당일 즉석에서 사형을 결의했다. 넷째, 증거와 증인의 부재다. 2인 이상의 일치된 증언이 있어야 하지만, 그들이 세운 거짓 증인들의 말은 서로 맞지 않았다. 이 모든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고 오직 '예수를 죽여야 한다'는 결론을 정해놓고 달려간 재판은 법의 탈을 쓴 폭력일 뿐이었다. 예수님은 이 모든 불법을 온몸으로 받아내셨다. 그것은 불법한 우리를 법적으로 해방하시기 위해 주님이 치르셔야 했던 처절한 비용이었다.

  

4. 왜 예수님은 거짓 고소에는 침묵하셨으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질문에는 당당히 응답하셨는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예수님은 기이할 정도로 침묵을 지키셨다. "손으로 지은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짓겠다 했다"는 등 거짓 증인들이 온갖 왜곡된 말을 쏟아낼 때도 주님은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으셨다. 이는 이사야 53장 7절의 예언대로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과 같은 모습이었다. 만약 주님이 여기서 논리적으로 반박하여 무죄를 입증하셨다면 인류를 위한 대속 제물의 길은 막혔을 것이다. 주님은 스스로 죄가 되기 위해 그 거짓의 오물을 묵묵히 뒤집어쓰셨다.

  그러나 침묵하시던 주님이 입을 여신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며 "네가 찬송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라고 물었을 때다. 주님은 지체 없이 대답하셨다. "네가 말하였느니라. 내가 그니라(Ego Eimi)." 이 고백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음에도 주님은 당신의 신성(Divinity)만큼은 결코 타협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그 여호와이며, 출애굽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스스로 있는 자'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주님은 허위 사실에는 침묵하셨으나, 진리 그 자체에 대해서는 목숨을 걸고 증언하셨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의 태도를 본다. 억울한 일에는 참아낼지언정, 예수가 곧 하나님이라는 이 절대적인 진리 앞에서는 비겁하게 입을 닫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5. 대제사장 가야바가 자기 옷을 찢은 행위가 지닌 역설적인 심판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님의 "내가 그니라"는 선언을 듣자마자 가야바는 분노하며 자기 옷을 찢었다. 그는 이것을 신성모독에 대한 거룩한 분노로 포장하며 "더 이상 무슨 증인이 필요하겠느냐"고 외쳤다. 그러나 이 행위야말로 가야바 스스로가 대제사장으로서의 자격을 파기한 불법적인 일이었다. 레위기 21장 10절은 대제사장이 어떤 경우에도 자기 옷을 찢지 말라고 엄격히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야바가 옷을 찢은 것은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 구속사적으로 거대한 전환점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제 짐승의 피로 드리는 구약적 제사 제도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인간 대제사장이 스스로 율법을 어기며 옷을 찢었을 때, 하나님은 그 자격을 박탈하셨다. 그리고 그 앞에 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참된 대제사장으로 등극하셨음을 만천하에 공포하신 것이다.

  훗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 사건은, 가야바가 찢은 옷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이제 너희의 가증한 제사는 끝났다. 나의 아들이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완성했다"는 선언이다. 가야바는 예수를 신성모독자로 정죄하기 위해 옷을 찢었지만, 하나님은 그 찢어진 옷 사이로 인류 구원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다.

  

6. 사도 요한과 베드로는 어떻게 대제사장 가문의 뜰에 들어갈 수 있었는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모든 제자가 흩어졌던 그 어두운 밤, 유독 두 사람, 요한과 베드로만이 예수님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은 삼엄한 경비가 삼엄한 요새와 같아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요한복음 18장에 숨겨진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하게 된다. 요한은 그곳에 당당히 들어갔으나, 베드로는 문 밖에서 서성여야만 했다.

  사도 요한이 대제사장 가문의 뜰에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요한의 아버지 세베대는 갈릴리에서 일꾼을 거느린 대규모 수산업자였고, 예루살렘의 고위층, 특히 대제사장 가문에 싱싱한 고기를 납품하는 일종의 '특수 관계인'이었다. 또한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는 대제사장 가문의 혈통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에, 요한은 어릴 때부터 예루살렘의 권력 중심부를 넘나드는 인맥을 갖추고 있었다. 덕분에 그는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 신분의 위협 없이 안뜰까지 깊숙이 동행할 수 있었다.

반면 갈릴리 촌부였던 베드로는 문지기 여종에게 가로막혀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때 사도 요한이 빛을 발한다. 안뜰에 먼저 들어가   상황을 살피던 요한은 베드로가 밖에서 떨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문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문을 지키는 여종에게 자신의 신분을 내세워 말을 하여 베드로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온다. 요한의 '영적 인맥'과 '주도적 역할'이 아니었다면 베드로는 주님의 마지막 심문 과정을 지켜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환경과 인맥은 이처럼 위기의 순간에 진리의 길을 열고 동역자를 보호하는 도구로 쓰여야 함을 사도 요한의 사례는 잘 보여준다.

  

7.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부패한 권력의 끝은 어떠한가?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승리감에 도취하여 예수님께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며 희롱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법을 지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수호하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썩게 되어 있으며, 그 부패는 반드시 비참한 파멸을 불러온다. 그들은 거짓 증인을 세워 의인을 죽였고, 진실을 말하는 자의 입을 막았다.

  그로부터 40년 뒤인 AD 70년, 예루살렘은 로마 군대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혔다. 예수님이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셨을 때 그토록 분노했던 그들이었지만, 정작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허물어질 때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배가 고파 자기 자식을 삶아 먹는 비극이 그 도성에 일어났다. 그것은 의인을 억울하게 죽이고 거짓을 밥 먹듯 했던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이 불러온 영적인 심판의 결과였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진실을 조작하고 자기보다 뛰어난 자를 제거하려 드는 세력들은 산헤드린의 말로를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 심판의 날에 우리는 모두 주님 앞에서 자신이 말한 것과 행한 것을 직고(Direct Account)해야 한다. 거짓의 아비 사탄에게 속아 뻔뻔한 위선자로 살 것인가, 아니면 목숨을 잃을지언정 정직한 진리의 편에 설 것인가? 산헤드린의 심문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8. '한 분 하나님'을 아는 자가 누리는 영적 권세는 무엇인가?

  이 모든 혼란스러운 재판 과정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이다. 산헤드린은 예수님을 '하나님을 사칭하는 미친 인간'으로 보았지만, 우리는 그분이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한 분 하나님'임을 믿는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신 이유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12군단 더 되는 천사를 불러 산헤드린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었지만, 우리 죄를 속량하기 위해 스스로 무력해지신 것이다.

  예수님이 곧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아는 자는 기도의 차원이 달라진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물러가라"고 선포할 때, 그 이름에 담긴 '한 분 하나님'의 권세가 실리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문자에 갇혀 그분을 죽였으나, 우리는 성령을 통해 그분의 실체를 만난다. 주님을 아는 지식이 깊어질수록 우리의 영권(靈權)은 강해지며, 사탄의 어떤 위협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불완전한 지식에 머물지 말라. 산헤드린의 거짓 판결을 뚫고 부활하셔서 만왕의 왕이 되신 주님을 바라보라. 그분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분 안에 있다는 이 신비로운 연합을 확신할 때, 우리는 이 땅의 어떤 부당한 재판과 고난 속에서도 넉넉히 이기는 자로 살아갈 수 있다.

  

9. 나오며: 진실의 성읍인 새 예루살렘을 향하여

  이번 시간에 우리는 산헤드린 공회의 그 어둡고 불의한 밤을 통과해 보았다. 거짓 증언이 난무하고, 권력이 진리를 조롱하며, 사랑하는 제자가 부인하는 그 비참한 현장 속에 우리 주님이 서 계셨다. 주님은 그 불법을 통해 우리의 죄값을 다 치르셨고, 침묵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완성하셨다.

  세상은 지금도 우리에게 거짓과 타협하라고 유혹한다. 산헤드린처럼 힘을 합쳐 진실을 묻어버리려 한다. 그러나 기억하라. 거짓의 끝은 멸망이지만 진실의 끝은 영원한 생명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끝까지 정직하게 주님 편에 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모두가 진실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신다. 고로 겉으로만 경건한 척하는 외식을 버리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진실만을 말하며 진리만을 따라가겠다"는 거룩한 결단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주님 앞에 서는 날,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과 함께 진리의 성읍인 새 예루살렘 성에 당당히 입성하는 저와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란다.

 

2026년 2월 4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산헤드린 공회에서 겪은 불법적인 심문 과정을 중심으로 당대의 부패한 종교 권력을 비판합니다. 본 설교는 성경의 네 복음서를 각기 다른 관점을 가진 영화 감독에 비유하며, 특히 마태복음은 천국 입성과 예수님의 왕권을 강조하는 독특한 시각을 견지하고 있음을 설명합니다. 특히 본 설교은 예수님에 대한 사형 판결이 시간, 장소, 절차, 증거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모두 율법을 어긴 위법한 재판이었음을 폭로하며, 이를 통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권력의 부패와 거짓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신자들이 세속적인 거짓에 매몰되지 않고 진실과 회개를 통해 거룩한 삶을 회복하여 궁극적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영적 교훈을 목적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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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26.02.05 By갈렙 Views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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