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22(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04)] 5대제사에 대한 특별규례는 어떤 것이었는가(레6:8~7:3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bCDrXS50qMI
1. 들어가며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이야기는 사실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레위기에 들어서면 왠지 딱딱해진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신약의 복음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짐승의 피를 뿌리고 각을 뜨는 이스라엘의 제사법이 오늘날 나와 상관이 없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약의 제사 제도는 단순히 지나간 이스라엘의 고대 종교 의식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어떻게 인류의 죄를 완벽하게 속량하시고 저주를 끊어내실 것인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위대한 구속사의 설계도다.
하나님께서 레위기를 통해 명령하신 5대 제사에는, 우리가 죽음 이후 천국에 입성하는 구원의 조건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상급을 짓는 헌신의 원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내가 주일마다 성전에 나아와 드리는 예배와 일상에서의 기도가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열납되고 있는지, 아니면 아무런 효력 없이 땅에 떨어지는 종교 행위에 불과한지는 바로 이 제사법의 특별 규례를 통해 명확히 진단할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의 기초인 속죄의 은혜부터, 뼈를 깎는 헌신과 치열한 영적 전투에 이르기까지 제사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구약의 5대 제사 중 의무제와 자원제의 궁극적인 영적 차이와 목적은 무엇인지, 그리고 속건제의 영적 원리를 통해 우리 육체와 가문에 견고하게 진을 치고 있는 가난과 질병의 잔챙이 귀신들을 완벽하게 박살 내도록 이끄는 진리의 실상을 깊이 살펴 보도록 하자.
2. 구약의 5대 제사 중 의무제와 자원제의 궁극적인 영적 차이와 목적은 무엇인가?
레위기에 기록된 제사는 크게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라는 다섯 가지로 분류된다(레 1-7장). 그런데 하나님은 이 5대 제사를 그 성격과 목적에 따라 '의무제'와 '자원제'라는 두 가지 뚜렷한 범주로 나누어 놓으셨다. 그런데 우리가 이 두 범주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장차 천국에 들어가는 문제와 그곳에서 어떤 지위를 얻게 되는지를 결정짓는 핵심 열쇠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먼저 속죄제와 속건제는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강제성을 띤 '의무제'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십계명을 어기거나 이웃과 하나님께 손해를 끼친 죄를 지었을 때 이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와 형벌을 피할 길이 없다. 신약의 의미로 볼 때 의무제는 지옥의 둘째 사망을 면하고, 이 땅에서 겪는 질병과 가난의 저주를 끊어내어 구원의 문턱을 넘기 위한 필수적인 생존의 조건이다.
반면 번제와 소제, 화목제는 지옥을 피하기 위해 억지로 드리는 제사가 아니다. 나를 구원해주신 십자가의 은혜가 너무나 감격스러워, 나의 시간과 물질과 생명까지도 기쁨으로 바치는 자발적인 헌신, 즉 '자원제'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의무제인 속죄의 은혜만 값싸게 취하고 자원제에는 철저히 무관심하다. 그러나 영안을 열어 천국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의무제만으로 겨우 천국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멀리 떨어진 변두리나 꽃밭에 거주하는 평범한 백성의 신분을 갖는다. 오직 자원제를 통해 기쁨으로 헌신한 자들만이 천국에 자신만의 거대한 대저택을 소유하고, 집 앞의 아름다운 연못을 소유하여, 그 안에 생명수가 흐르게 하는 사람들이 된다. 나의 자발적인 헌신 없이는 천국의 찬란한 집과 144,000명의 상속자 반열은 결단코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3. 번제단 위의 불을 항상 꺼지지 않게 하라는 규례는 성도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자원제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며 핵심적인 제사가 바로 '번제' 제사다. 번제는 제물의 가죽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제단 위에서 남김없이 불태워 그 연기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전적인 희생의 제사다. 하나님은 이 번제를 드릴 때 제사장들에게 매우 엄중하고도 각별한 특별 규례 하나를 명령하셨다. 그것은 제단 위의 불을 항상 피워 결코 꺼지지 않게 하라는 것이었다(레 6:12-13).
레 6:12-13 제단 위의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서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서 불살라 지며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어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제단 위의 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제사장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나무를 가져다 태우고 번제물을 가지런히 올려놓아야 했다. 밤새워 불침번을 서며 제단의 열기를 유지하는 것은 뼈를 깎는 수고와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다. 이 불은 영적으로 오늘날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해 피워 올려야 할 기도의 불꽃, 회개의 불꽃을 의미한다. 예배를 향한 열정과 새벽을 깨우는 기도의 불씨가 내 심령의 번제단에서 단 하루라도 꺼져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간절한 촉구다.
우리가 매일 밤낮으로 회개 기도문을 낭독하며 기도의 불을 지필 때, 처음에는 은혜가 넘치지만 이내 육체의 피곤과 더불이 영적인 권태기가 찾아온다. 내 몸속에 깊이 뿌리내린 악한 영들이 회개의 불길을 끄기 위해 졸음을 쏟아붓고 온몸의 관절을 쑤시게 하며 해코지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때 피곤하다는 핑계로 기도의 불을 꺼뜨려 버리면, 내 영혼의 제단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리고 마귀가 다시 내 삶의 주도권을 쥐고 흔들게 된다. 번제단의 불을 사수하는 것은 사탄의 공격을 뚫고 내 영혼을 정결하게 유지하는 처절한 영적 생존의 싸움이다.
4. 화목제물 중 감사 제물에 누룩이 들어간 유교병을 예외적으로 허용하신 영적 이유는 무엇인가?
화목제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평과 친교를 누리기 위해 드리는 기쁨의 자원제다. 화목제는 그 목적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감사제', 서원한 것을 갚는 '서원제', 그리고 마음에 우러나와 드리는 '자원제(낙헌제)'가 있다. 그중에서도 감사제를 드릴 때 하나님은 매우 독특한 예외 규정을 하나 두셨다. 본래 하나님께 바치는 모든 소제물에는 부패와 죄를 상징하는 누룩을 절대 넣지 못하게 하셨으나, 화목제의 감사 예물을 드릴 때만큼은 무교병과 함께 누룩이 들어간 유교병(발효된 떡)을 바치는 것을 특별히 허락하신 것이다(레 7:13).
레 7:13 또 유교병을 화목제의 감사 제물과 함께 그 예물로 드리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왜 죄를 상징하는 누룩이 들어간 떡을 기꺼이 받아주셨을까? 여기에는 연약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가슴 뭉클한 긍휼과 사랑의 원리가 숨어 있다.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께 감사 헌금을 드리고 교회를 위해 봉사한다고 할지라도, 그 내면의 동기를 깊이 파헤쳐 보면 100퍼센트 순결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체면 치레나 육신적인 이기심이라는 누룩이 조금씩은 섞여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에 약간의 불순물과 연약함(누룩)이 섞여 있을지라도, 십자가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애쓰는 그 감사의 마음 자체를 갸륵하게 여기시고 눈감아 주신다는 뜻이다. 나는 내 속의 귀신이 완전히 빠져나가고 완벽해진 후에야 감사 헌금을 드리겠다며 헌신을 미루는 것은 마귀의 속임수다. 감사의 마음이 우러나올 때 주저하지 말고 즉시 예물을 드리라. 비록 내 헌신이 유교병처럼 흠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향기로운 제물로 기쁘게 흠향하시고 천국의 거룩한 상급으로 쌓아주신다.
5.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둘째 사망을 면하게 되는 속죄제의 위대한 은혜는 무엇인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결코 회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의무제인 '속죄제'다. 속죄제는 아담의 원죄와 우리가 지은 모든 죄악으로 인해 마땅히 받아야 할 지옥의 형벌, 곧 영혼의 둘째 사망을 면하기 위해 피를 흘리는 제사다(계 2:11, 20:6, 14, 21:8). 인간의 어떠한 도덕적 수양이나 고행으로도 이 끔찍한 영원한 사망의 죗값을 스스로 치를 수는 없다.
계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물과 피를 다 쏟으심으로써 인류를 위한 완벽하고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어주신 것이다. 우리가 지옥의 형벌에서 벗어나는 길은 너무나도 명확하고 단순하다. 내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나의 죄를 사하는 대속의 피로 믿고, 입술로 시인하여 영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롬 10:9-10).
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는 순간, 내 인간적인 행위의 선악과 상관없이 생명 주는 영이신 보혜사 성령께서 내 영혼 속으로 뚫고 들어오시는 우주적인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피를 보고 우리의 흉악한 죄를 덮어버리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해 주신다. 이것은 오직 십자가의 공로로만 주어지는 전적인 은혜요, 자랑할 수 없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물이다(엡 2:8-9). 이 위대한 속죄제의 은혜 덕분에 우리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인 둘째 사망의 공포에서 해방되어 천국 생명책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엡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6.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가시관을 쓰고 채찍에 맞으며 처절하게 고난당하신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이 단순히 우리 영혼을 지옥에서 건져내는 속죄 제물로만 죽으시려 했다면, 그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숨을 거두시기만 하면 충분했을 것이다. 구약의 어떤 제사에서도 제물을 바칠 때 짐승을 채찍으로 때리거나 가시관을 씌워 고문하라는 규례는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죄 없으신 예수님은 로마 군병들의 채찍에 맞아 등과 가슴의 살점이 처참하게 뜯겨 나가고, 머리에 날카로운 가시관이 찔리며, 목이 말라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는 끔찍한 육체적 고난을 더 당하셔야만 했는가?
그것은 예수님이 속죄 제물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저주를 대신 갚아주시는 '속건 제물'로 오셨기 때문이다. 구약의 속건제는 이웃이나 하나님께 손해를 입힌 것에 대해 원금에 이자까지 덧붙여 철저히 배상하는 제사다. 우리가 조상 대대로 우상을 숭배하고 십계명을 어긴 죄악은, 우리 육체와 삶에 찢어지는 가난과 불치병, 그리고 끔찍한 정신 질환이라는 무서운 형벌(저주)을 합법적으로 가져왔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가 현세에서 당해야 할 이 끔찍한 질병과 가난의 대가를 대신 배상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당신의 온몸을 찢으며 속건 제물로서의 징벌을 미리 당겨서 받으신 것이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외침은, 주님의 그 처절한 고난이 바로 나의 병마와 저주를 탕감하기 위한 영원한 속건의 배상금이었음을 웅장하게 선포하고 있다.
사 53:4-5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질병)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7. 예수님이 저주를 담당하셨음에도 성도들이 여전히 질병과 가난에 시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서 심각한 영적 딜레마에 부딪히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속건 제물이 되사 우리의 질병과 가난의 저주를 모두 담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예수를 믿고 있는 수많은 성도들은 여전히 병원에 누워 암과 투병하고 있고, 파킨슨병으로 몸이 굳어가는 이들도 있으며, 숨이 막히는 가난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가? 주님이 지불하신 속건제의 배상금이 부족해서인가? 그러나 그것은 결코 그렇지 않다.
원금이 십자가에서 완벽하게 탕감되었다 할지라도, 내 육체와 혈관 속에 이미 견고하게 진을 치고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은 결단코 알아서 우리 몸에서 떠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의 피가 내 삶의 질병과 저주를 끊어내는 실제적인 능력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에는 반드시 자백이라는 거룩한 영적 파이프를 통과해야만 한다(요일 1:9). 조상들이 죽은 조상에게 제사드려 불러들인 질병의 영, 불교의 부처에게 수천 번 절을 올려 끌어들인 가난의 영, 무당을 불러 굿을 하며 심어놓은 정신병의 영, 그리고 소작농을 억압하고 남의 재산을 착취한 죄악을 낱낱이 내 입술로 자백하고 변상하는 속건의 회개를 거치지 않으면, 귀신들은 합법적인 거주권을 주장하며 절대 떠나지 않는 것이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가 철저하게 죄를 고백하고 필요하다면 하나님께 눈물의 회개 예물을 드릴 때, 비로소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신 그 속건제의 효력이 내 몸에 강력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다. 자백 없는 칭의의 구원에만 머물러 있는 한, 우리를 옭아맨 귀신의 족쇄는 결코 풀리지 않음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한다.
8. 가문을 타고 내려온 끔찍한 저주의 실체를 끝장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결단해야 하는가?
동탄명성교회가 꿰뚫어 본 성경의 정확한 종말론적 타임라인에 따르면, 지금 이 시대는 하늘에서 천년왕국이 진행 중에 있으며, 악한 영들의 대장인 사탄 마귀의 본체는 지금 황금 쇠사슬에 묶여 무저갱에 갇혀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지금 이 땅에서 우리의 가정과 육체를 처참하게 파괴하며,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저주를 퍼붓는 영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탄 본체가 아니라, 조상들의 우상 숭배를 타고 내려와 내 몸을 숙주 삼아 기생하고 있는 무당의 영, 제사의 영, 질병의 영과 같은 잔챙이 귀신들이다.
이 잔챙이 뱀들과 귀신들은 우리가 예수 이름의 권세와 십자가의 피를 뿌리며 짓밟을 때 충분히 쫓아낼 수 있는 패잔병들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수많은 성도가 적당한 종교 생활에 안주하며 이 더러운 뱀들을 내 몸속에 고스란히 방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여기서 회개를 멈추고 영적 전투를 포기한다면, 이 끔찍한 저주의 뱀들은 고스란히 내 사랑하는 자녀들의 핏줄을 타고 내려가 그들의 인생을 생지옥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독한 전사의 결단으로 무장해야 한다. "내 대에서 이 지독한 뱀들과 귀신들의 뿌리를 기필코 끝장내겠다"는 일사각오로 회개의 검을 뽑아 들어야 한다. 남들이 천 번을 회개한다면 나는 만 번을 회개해서라도 엎드려 피 튀기는 영적 전투를 벌이겠다는 투지를 불태워야 한다. 질병과 가난의 잔챙이 귀신들을 낱낱이 도려내고, 하나님 앞에 나의 생명과 시간을 아낌없이 드리는 자원제의 헌신을 쌓아 올릴 때, 주님은 우리를 모든 저주에서 해방하실 뿐만 아니라 천국 보좌 앞의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로 이끌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9. 나오며
우리는 레위기의 5대 제사에 감춰진 웅장한 구속사의 섭리를 살펴보았다. 번제와 소제로 온전한 헌신을 바치시고, 속죄제와 속건제로 우리의 영혼과 육체의 저주를 완벽하게 속량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은 그 어떤 신학적 교리로도 다 담아낼 수 없는 위대한 기적이다. 주님은 지옥의 형벌을 면하게 하심과 동시에, 우리가 이 땅에서 당하는 질병과 가난의 고통까지도 당신의 살을 찢어 미리 배상해 주셨다.
그러므로 이제 한 번 구원받았으니 모든 것이 끝났다는 얄팍한 구원파적 맹신과 적당주의를 빠져 지내서는 아니 된다. 속죄의 은혜에만 기대어 귀신이 저주를 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더이상 저주가 없다고 주장하는 세뇌 교육에 자신의 미래를 맡겨서는 아니 된다. 매일 새벽 기도의 불씨를 살려내어 내 육체와 혈통 속에 숨어 들어온 무당과 제사의 잔챙이 귀신들을 가차 없이 박살 내어야 한다. 질병과 가난의 원흉을 입술의 자백과 십자가의 피로 씻어내야 한다. 날마다 피 튀기는 회개의 전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내 가문을 옭아매던 모든 저주의 사슬을 내 대에서 기필코 끝장내고, 마침내 새 예루살렘 성의 눈부신 보좌 앞에서 만국을 호령하는 찬란한 이기는 자로 영원히 우뚝 서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6년 04월 22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레위기의 5대 제사를 통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헌신과 회복의 원리를 설명하며, 특히 자원제와 의무제의 차이를 강조합니다. 번제와 소제, 화목제는 인간이 형편에 따라 최선을 다해 드리는 자발적 헌신을 의미하며, 하나님은 결과의 크기보다 중단 없는 기도의 불과 같은 마음의 중심을 기뻐하신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반면 속죄제와 속건제는 영원한 생명과 육체의 저주를 해결하기 위한 필수적인 의무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 모든 제물이 되심으로써 인류에게 구원과 치유의 길을 열어주셨음을 밝힙니다. 결론적으로 정보배 목사는 예수님이 이루신 속건 제물의 효력이 삶에 실제가 되기 위해서는 조상의 죄까지 포함한 철저한 자백과 회개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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