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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6. 17. (수) ·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 동탄명성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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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jSwetb9mgtA
날짜 2026-06-17
본문말씀 레위기 15:12~33
설교자 정보배 목사

2026-06-17(수) 수요예배

제목:[레위기강해(11)] 정결법(04) 유출병은 어떻게 깨끗함을 받아야 했는가? (레위기 15:1~33)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jSwetb9mgtA

 

1. 들어가며

  레위기 15장은 현대 독자에게 가장 낯설고 조심스러운 본문 가운데 하나다. 왜냐하면 남자의 유출(流出), 설정(泄精), 부부 관계 후의 부정, 여자의 월경, 비정상적인 혈루가 모두 정결법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의 사람들은 이런 본문을 읽다가 쉽게 질문한다. 왜 하나님께서는 정상적인 생리 현상까지 부정하다고 하셨는가? 왜 남자와 여자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성막 가까이 나아가기 전에 씻고 정결하게 해야 한다고 하셨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레위기의 큰 흐름을 알아야 한다. 레위기는 단지 제사 규정만의 책이 아니다. 레위기는 속죄받은 백성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레위기는 1장부터 10장까지가 제사와 제사장 위임을 중심으로 속죄의 길을 보여 주고 있다면, 11장부터는 정결과 성결의 길을 보여 준다. 음식섭취와 사체 접촉 정결법(11장), 해산 후 여인의 정결법(12장), 나병의 정결법(13-14장), 유출 정결법(15장) 외에도 피, 성적 질서, 절기와 삶의 거룩함까지 모두 하나님 백성의 삶을 정리해 준다.

  레위기 15장은 그 흐름 가운데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다룬다. 유출은 히브리어로 ‘주브’ 계열의 말과 연결되며, '흐르다', '흘러나오다'라는 뜻을 가진다. 남자의 유출자는 ‘자브’라 할 수 있고, 여자의 유출자는 ‘자바’라 할 수 있다. 본문은 단순히 위생 규칙만 말하지 않는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성막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명과 피와 씨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중대한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타락한 인간이 어떻게 정결함을 입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레위기 15장의 결론은 매우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부정 가운데 성막을 더럽히고 죽지 않도록 그들을 부정에서 떠나게 하라고 하셨다(레 15:31). 그러므로 유출병 규례는 단순한 고대 의식법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려는 백성이 반드시 배워야 할 정결의 원리를 담고 있다.

레 15:31 너희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들의 부정에서 떠나게 하여 그들 가운데에 있는 내 성막을 그들이 더럽히고 그들의 부정한 중에서 죽지 않도록 할지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뒤 우리는 더 이상 동물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정결의 원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로 속죄를 이루셨을 뿐 아니라, 회개하는 자를 씻어 정결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받는 데서 멈추지 말고,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 실제 삶과 영적 상태가 깨끗해지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유출병의 정결법이 왜 속죄받은 성도에게 정결과 생명과 회개의 길을 가르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속죄와 정결은 왜 구별되어야 하는가?

  레위기를 읽을 때 가장 먼저 붙잡아야 할 것은 '속죄'와 '정결'의 구별이다. '속죄'는 죄값을 덮고 죄인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은혜다. '정결'은 더러움에서 씻김받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에 합당한 상태로 회복되는 과정이다. 속죄가 없으면 하나님께 나아갈 근거가 없다. 그러나 정결이 없으면 속죄받은 백성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삶을 살 수가 없다.

  구약의 제사법에서 피는 속죄의 핵심이었다. 피가 생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피가 생명을 위하여 속죄한다고 하셨다(레 17:11). 피는 죽음으로 죄값이 처리되었음을 보여 주며, 동시에 생명이 생명을 대신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러나 속죄와 정결은 동일한 말이 아니다. 죄값을 덮는 것과 더러움을 씻는 것은 서로 연결되지만 구별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도 마찬가지다. 예수의 피는 믿는 자를 속죄한다. 동시에 죄를 자백하는 자를 깨끗하게 한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증언한다(요일 1:9). 여기에는 용서와 정결이 함께 들어 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러므로 회개는 구원을 얻기 전 한 번만 하는 입문 절차가 아니다. 회개는 속죄받은 성도가 정결함을 입기 위해 평생 붙들어야 할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누구든지 믿음으로 예수의 피를 의지할 때 속죄의 은혜를 받는다. 그러나 죄를 자백하고 돌이킬 때 그 피가 실제로 우리 안의 더러움을 씻고 악한 영의 합법적 근거를 제거한다.

  레위기 11장부터 15장까지는 이 정결의 필요성을 반복해서 보여 준다. 11장은 음식과 사체 접촉을 말한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것과 접촉하는 것이 사람을 부정하게 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12장은 해산 후 여인의 정결을 말한다. 사람의 몸 안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는 일도 타락한 세상 안에서는 정결을 요구한다. 13장과 14장은 나병의 진단과 정결을 말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부정이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15장은 유출병을 말한다. 사람의 몸의 생식기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성막 앞에서 정결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가르친다.

  이 구조는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바깥의 부정만 다루지 않으신다. 안에서 나오는 부정도 다루신다. 접촉의 부정만 다루지 않으신다. 생명과 연결된 몸의 유출도 다루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겉으로 드러난 죄만 회개해서는 안 된다. 마음과 몸과 영적 상태 안에 숨어 있는 더러움까지 하나님 앞에 내어놓아야 한다.

  예수님도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밖에서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막 7:21~23). 레위기의 정결법은 신약에서 폐기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더 깊은 내면의 정결로 성취된다.

막 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속죄와 정결을 구별하지 못하면 구원론이 약해진다. 속죄만 강조하면 성도가 죄와 더러움을 가볍게 여길 위험이 있다. 정결만 강조하고 속죄를 놓치면 인간의 노력으로 깨끗해지려는 율법주의에 빠진다. 바른 길은 예수의 피로 속죄받고, 그 피를 의지하여 날마다 자백하고 회개함으로 정결함을 입는 것이다.

 

 

3. 나병은 왜 거역과 교만의 부정을 드러내는가?

  레위기 15장의 유출병을 보기 전에,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나병의 진단과 정결법과 관련하여 누가 과연 나병에 걸리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왜 하나님께서는 나병의 정결법을 매우 까다롭고 강하게 요구하셨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레위기 13장과 14장에서 다룬 나병의 정결법의 규례를 보면, 정결을 매우 강하게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나병은 히브리어로 ‘차라아트’라 불린다. 이 말은 현대 의학의 한센병만 가리키지 않는다. 피부의 병변, 의복의 오염, 집에 생긴 부정까지 포함하는 넓은 정결법 용어다. 그러므로 오늘날 어떤 피부병이나 한센병을 곧바로 특정 죄의 결과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다만 성경에 기록된 대표적 사건들을 살펴보면, 차라아트가 영적으로 무엇을 경고하는지 알 수 있다.

  구약 성경에서 나병과 연결된 대표적 인물들을 보면 어떤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구약성경에는 총 5명이 나병환자를 소개한다. 첫째로, 모세는 출애굽기 4장에서 손을 품에 넣었다 빼니 나병이 생겼고, 다시 넣었다 빼니 회복되었다. 그것은 모세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표징이었다. 그러나 둘째로, 미리암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아론과 함께 모세를 비방하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거역했다. 그때 미리암에게 나병이 생겼다(민 12:10). 이는 하나님의 질서와 권위를 거역하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 준다.

민 12:10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

  셋째로, 이방인으로서 아람나라의 벤하닷2세의 군대장관 나아만도 나병환자였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왜 나병에 걸렸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넷째로, 엘리사의 수종자 게하시도 나병에 걸렸다. 그는 엘리사의 종이었지만 나아만에게서 은과 옷을 몰래 받아 탐욕을 채웠고, 거짓말까지 했다. 엘리사는 나아만의 나병이 게하시와 그의 자손에게 붙을 것이라고 선언했다(왕하 5:27). 게하시의 죄는 단순한 욕심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치유의 영광을 물질로 바꾸고, 하나님의 종의 이름을 이용하여 자기 이익을 취한 죄를 지었던 것이다.

왕하 5: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 같이 되었더라

  다섯째로, 남유다의 웃시야 왕도 나병에 걸렸다. 그는 왕으로서 강성해지자 마음이 교만해졌고, 제사장이 해야 할 향단의 분향을 자신이 하려고 성전 안으로 들어갔다. 제사장들이 막았지만 그는 분노했고, 바로 그때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다(대하 26:19). 이는 월권의 죄를 보여 준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무시하고 자기 권세로 거룩한 직무를 침범하면, 영적 부정이 드러나는 것이다.

대하 26:19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들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이 모든 사건을 연결해보면, 나병의 영적 의미가 보인다. 나병은 겉으로 피부에 드러나는 병이지만, 성경의 사례에서는 사람 속의 교만과 거역과 탐욕과 월권이 겉으로 드러나는 표지처럼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하지만 모든 현대 질병을 이런 식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성경이 보여 주는 영적 원리는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거역하고, 자신의 위치를 넘어서며,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 것으로 취하려는 태도는 공동체를 더럽히는 심각한 부정이 나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병환자는 진영 밖에 있어야 했다. 이는 단순한 격리 조치만이 아니다. 죄와 부정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준다. 특히 거역과 교만은 전염성이 강하다. 한 사람의 불순종은 말과 태도와 미혹을 통해 다른 사람을 흔들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이 진단하게 하시고, 부정이 확인되면 격리하게 하셨다.

  레위기의 정결법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약함이 아니다. 실패도 아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거역을 회개하지 않는 마음이다. 다윗도 넘어졌지만 회개했다. 그러나 사울은 자기 변명과 불순종 가운데 굳어졌다. 나병의 정결법은 성도가 거역과 교만의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함을 보여 준다.

 

 

4. 나병에서 깨끗하게 되는 길은 왜 순종과 감사인가?

  레위기 14장의 나병 정결 절차는 매우 엄격하다. 먼저 제사장이 진영 밖으로 나가 그 사람이 나았는지 확인한다. 그 후 살아 있는 정결한 새 두 마리, 백향목, 홍색 실, 우슬초를 가져오게 한다. 한 마리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고, 다른 새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그 피에 찍어 정결함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린다. 그리고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놓아준다(레 14:4~7). 이것은 죽음과 생명, 속죄와 해방을 함께 보여 주는 강력한 표징이다.

레 14:7 나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고 그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놓을지며

  그 뒤에도 절차가 끝나지 않는다. 나병에서 나은 자는 자기의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몸을 씻어야 한다. 그리고 여덟째 날에는 속건제, 속죄제, 번제, 소제를 드린다. 특히 속건제 숫양의 피를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바른다. 이것은 제사장 위임식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한 엄숙함을 가진다. 귀는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손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을 해야 한다. 발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야 한다.

  그렇다면 나병은 어떻게 해서 나을 수 있을까? 그것은 순종이다. 나병의 부정이 거역과 교만의 표지를 담고 있었다고 한다면, 나병에서의 정결케되는 비결은 순종이다. 왜냐하면 거역의 반대는 순종이기 때문이다. 월권의 반대는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탐욕의 반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아만 장군의 치유사건은 이것을 잘 보여 준다. 그는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이었지만 나병환자였다. 엘리사는 그에게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말했다. 처음에 나아만은 분노했다. 그러나 결국 종들의 권면을 듣고 순종했다. 그가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갔을 때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었다(왕하 5:14).

왕하 5: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종'이다. 요단강 물 자체가 신비한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정결의 길을 연 것이다. 거역의 부정은 순종으로 풀린다. 나아만은 자기 체면과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굴복했다. 바로 그때 정결함을 받았다.

  그렇다면 신약에서 나병은 어떻게 치유되었는가?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열 명의 나병환자가 나온다. 그런데 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때 예수님을 향하여 자기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쳤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 자리에서 즉시 손을 대고 고치시지 않았지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다(눅 17:14). 그러자 그들은 제사장들에게 찾아갔다. 그들은 아직 자기들의 눈에 보이는 치유의 변화가 나타나기 전에 말씀을 따라갔다.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 것이다.

눅 17: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러나 열 명 모두가 같은 결론에 이르지는 않았다. 한 사람만 돌아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눅 17:19). 열 명은 육체의 깨끗함을 받았지만,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더 깊은 영혼의 구원의 선언까지 들었다.

눅 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것이 나병 정결법의 영적 결론이다. '순종'은 정결의 문을 열고, '감사'는 구원의 깊이를 드러낸다. 성도는 죄를 깨닫고도 자기 생각을 붙들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순종해야 한다. 또한 깨끗함을 받은 뒤에는 그 은혜를 자기 공로로 취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회개도 이와 같다. 회개는 감정의 후회가 아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 생각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정결함을 경험한 뒤에는 “내가 잘해서 깨끗해졌다”고 말하지 않고, “주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셨다”고 감사하는 것이다.

 

 

5. 유출병은 어떤 종류의 부정을 가리키는가?

  이제 레위기 15장의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유출병'은 사람의 몸, 특히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에서 무엇인가가 흘러나오는 상태를 가리킨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 경우를 다룬다. 첫째, 남자의 비정상적인 유출이다(레 15:2~15). 둘째, 남자의 설정과 부부 관계 후의 정결이다(레 15:16~18). 셋째, 여자의 월경으로 인한 부정이다(레 15:19~24). 넷째, 월경 기간이 아닌데도 피가 오래 흘러나오는 비정상적 혈루다(레 15:25~30).

레 1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몸에 유출병이 있으면 그 유출병으로 말미암아 부정한 자라

  첫째로, 남자의 비정상적 유출 곧 성병(임질이나 매독 등)으로 인한 유출은 침상과 앉은 자리와 접촉한 물건까지 부정하게 한다. 그가 만진 질그릇은 깨뜨리고, 나무 그릇은 물로 씻어야 했다. 이는 유출의 부정이 개인 안에 머물지 않고 접촉을 통해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병리적 유출은 몸의 질서가 깨진 상태이며, 공동체적 정결까지 흔들 수 있는 상태다.

  둘째로, 여자의 비정상적 혈루도 마찬가지다. 월경 기간이 아닌데도 여러 날 피가 흐르거나 월경 기간을 넘어서 계속 흐르면, 그 유출이 있는 동안 부정하다고 하셨다(레 15:25). 마가복음 5장의 열두 해 혈루증 여인이 바로 이와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옷자락을 믿음으로 만졌을 때 혈루의 근원이 말랐다(막 5:29).

레 15:25 만일 여인의 피의 유출이 그의 불결기 외에 여러 날이 계속되든지 그 유출이 불결기를 지나 계속되면 그 부정을 유출하는 날 동안은 무릇 그의 불결한 때와 같이 부정한즉

막 5: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배운다. 레위기의 정결법은 병자를 혐오하라는 법이 아니다. 병자와 약자를 공동체 밖으로 몰아내고 끝내 버리라는 법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정결의 길을 마련하셨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부정은 분명히 다루어야 하지만, 정결의 길도 분명히 열려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이다.

  또한 유출병은 성과 몸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가볍게 다루지 말라고 가르친다. 사람은 영만 가진 존재가 아니다. 몸도 하나님께 속해 있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 몸이 접촉하는 것, 몸으로 맺는 관계까지 하나님 앞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몸을 자기 마음대로 쓰는 소유물로 보지 말아야 한다. 몸은 성령의 전이 될 수도 있고, 악한 영이 틈타는 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레위기 15장은 이 사실을 의식법의 언어로 가르친다. 부정한 유출이 있을 때 몸을 씻고 옷을 빨고 기다려야 한다. 병리적 유출이 그치면 제사를 드려야 한다. 이는 성도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몸과 마음과 영적 상태를 아무렇게나 가지고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는 의학적 질병이 있으면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영적 의미도 살펴야 한다. 몸의 질서가 깨졌을 때, 마음과 삶과 영적 상태도 하나님 앞에서 점검해야 한다. 질병을 모두 죄로 단정해서는 안 되지만, 질병을 통해 회개와 정결을 돌아보는 것은 성경적이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서도 사람을 부르시고, 더 깊은 정결의 자리로 인도하신다.

 

 

6. 정상적인 유출도 왜 부정하다고 하셨는가?

  레위기 15장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은 정상적인 유출도 왜 부정하다고 선언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남자의 설정은 생리적 현상이다. 부부가 동침하여 설정하는 것도 정상적인 부부 관계 안에서 일어날 수 있다. 여자의 월경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여성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정상적인 생리 현상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정결법의 대상으로 다루셨다.

레 15:16 설정한 자는 전신을 물로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레 15:19 어떤 여인이 유출을 하되 그의 몸에 피가 흐르면 이레 동안 불결하니 그를 만지는 자마다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레위기의 “부정하다”는 말은 그 현상 자체가 도덕적 죄라는 뜻이 아니다. 월경하는 여인이 죄를 지었다는 뜻이 아니다. 정상적인 부부 관계가 죄라는 뜻도 아니다. 레위기의 부정은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정결이 필요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는 의식적 부정이다. 그러나 의식적 부정 안에는 깊은 영적 상징이 담겨 있다.

  그 상징의 중심에는 '생명'이 담겨 있다. 남자의 씨는 생명을 잉태하게 하는 통로다. 히브리어 ‘제라’는 씨앗, 후손, 자손을 뜻한다. 또한 여자의 피도 역시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 레위기는 피를 생명으로 본다(레 17:11). 남자의 씨와 여자의 피는 모두 생명의 신비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이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일은 단순한 위생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 죽음의 경계에 관한 표지로 다루어진다.

  첫째, 여인의 월경은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가능성과 연결된다. 임신이 되면 월경은 멈춘다. 월경은 생명이 잉태되지 않았을 때 몸 밖으로 피가 흘러나오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레위기 15장의 관점에서 월경은 여성 자체를 더럽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피조 세계 안에서 생명이 잉태되지 못하고 피가 밖으로 흘러나오는 현실을 보여 주는 표지로 볼 수 있다.

  둘째, 남자의 설정도 생명과 연결된다. 씨가 생명 잉태의 목적 안에서 사용되지 않고 밖으로 흘러나왔을 때, 그것은 생명의 가능성이 몸 밖으로 나간 상태가 된다. 그러므로 정결법은 남자에게도 씻음을 요구한다. 이것은 남자에게 더 가볍고 여자에게만 무거운 법이 아니다. 남자도 씻어야 하고 여자도 씻어야 한다. 생명과 관련된 유출 앞에서 모두가 하나님께 정결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창조 질서와도 연결된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셨다(창 1:28). 성은 쾌락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성은 언약 안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가정을 세우며 하나님의 형상을 이어 가는 통로다. 타락 이후 인간의 성은 욕망과 죄와 악한 영의 통로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과 생명과 피와 씨의 문제를 거룩하게 다루도록 정결법을 주셨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따라서 정상적인 유출의 부정은 몸을 혐오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몸을 더 깊이 존중하라는 뜻이다. 몸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신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뜻이다. 생명과 연결된 것을 하나님 앞에서 아무렇게나 다루지 말라는 뜻이다.

  현대의 성도는 이 말씀을 문자적 의식으로 반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원리는 살아 있다. 성도는 성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피와 씨와 생명의 문제를 장난처럼 다루지 말아야 한다. 남녀의 몸은 하나님께서 생명과 언약을 위해 주신 거룩한 그릇이다. 그러므로 정결법은 우리에게 몸을 통해 생명을 배우고, 생명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을 가르친다.

 

 

7. 성적 유출은 왜 영적 교류와 생명 질서의 문제인가?

  레위기 15장을 오늘의 성도에게 적용할 때 반드시 다루어야 할 문제가 있다. 성적 결합은 단순한 육체적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된다고 말한다(창 2:24). 사도 바울도 음행의 죄를 몸 밖의 죄와 구별하여,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한다고 말했다(고전 6:18). 이는 성적 결합이 몸과 영혼과 언약의 영역을 모두 포함하는 깊은 연합이기 때문이다.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고전 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그러므로 성도는 성적 접촉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순한 윤리 문제가 아니다. 영적 세계와도 연결되어 있다. 부부 관계는 하나님이 정하신 언약 안에서 거룩한 것이지만, 음행과 혼전 성관계와 불륜과 동성적 음행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생명 질서를 거스른다. 이러한 죄는 악한 영에게 틈을 줄 수 있으며, 가문과 세대의 영적 영향이 서로 얽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사람을 영의 눈으로 보면, 남여의 성적 결합은 영적 교류가 일어나는 장인 것을 알 수 있다. 무속인들의 음행, 그리고 이들의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은 성경에서도 자주 함께 나타난다. 바알과 아세라 숭배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성적 타락과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성적 부정은 한 개인의 몸만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세계의 문을 여는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혼전 순결은 단지 옛날 도덕이 아니다. 그것은 영적 보호다. 부부의 정결은 단지 가정 윤리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울타리를 지키는 것이다. 성도가 성적 거룩함을 지키는 것은 자기 몸을 보호하고, 배우자를 보호하고, 자녀와 후손에게 흘러갈 영적 영향을 보호하는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을 정죄하는 마음이 아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 정죄만 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죄를 가볍게 넘기지도 않으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다(요 8:11). 은혜는 죄를 덮어 방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켜 다시 살게 하는 능력이다.

요 8: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성적 유출과 정결의 문제를 다룰 때 사람을 혐오해서는 안 된다. 성병에 걸린 사람, 성적 죄로 무너진 사람, 가정 안에서 상처받은 사람을 향해 조롱하거나 멸시해서는 안 된다. 주님은 그들도 회개하고 돌아와 정결함을 입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동시에 죄를 죄라고 말해야 한다. 성적 질서가 무너지면 생명 질서가 무너지고, 생명 질서가 무너지면 가정과 후손과 영적 상태까지 흔들리기 때문이다.

  특히 동성애와 성적 타락의 문제도 창조 질서와 생명 질서 안에서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 결합을 통해 생명을 잉태하게 하셨다. 성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통로다. 그것을 생명과 언약에서 분리하여 욕망과 쾌락만을 위한 것으로 만들면, 인간은 몸의 목적을 잃어버린다. 성도는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되지만, 죄와 거짓된 영의 흐름은 분명히 분별해야 한다.

  영적 전쟁은 사람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다. 악한 영과 죄의 통로를 대적하는 것이다. 성도는 성적으로 무너진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회개와 복음으로 이끌어야 한다. 동시에 자기 자신과 자녀들에게 성적 정결을 가르쳐야 한다. 성은 생명의 자리이므로 정결해야 한다. 몸은 성령의 전이므로 거룩해야 한다.

 

 

8. 예수의 피와 회개는 어떻게 성도를 정결하게 하는가?

  레위기 15장의 정결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구약의 사람은 유출이 그치면 몸을 씻고 옷을 빨고, 경우에 따라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한다. 그분은 단번에 드려진 참 제물이시며, 더 좋은 피로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셨다(히 9:14).

히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예수의 피'는 사람의 더러워진 양심을 깨끗하게 한다.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한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한다. 이것이 정결의 목적이다. 정결은 단지 죄책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다. 레위기의 정결법이 성막을 더럽히지 않게 하려는 목적을 가졌다면, 신약의 정결은 성령의 전인 성도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그런데 이 정결은 자백하는 회개와 연결된다. 믿음으로 예수의 피를 의지하는 것은 속죄의 길이다. 그러나 죄를 자백하고 돌이키는 것은 정결의 실제적 통로다. 죄를 숨기면 악한 영은 합법적 근거를 붙든다. 우상숭배, 음행, 거역, 교만, 탐욕, 불순종, 혈기와 분노, 거짓과 미혹을 자백하지 않으면 그 죄를 발판으로 들어온 영들이 계속 역사할 수 있다.

  그러므로 회개는 악한 영을 내보내는 길이다. 자백은 단순한 말이 아니다. 자백은 죄의 근거를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예수의 피를 적용받는 행위다. 죄가 드러나고 예수의 피가 들어오면, 악한 영은 붙들 근거를 잃는다. 이것이 회개와 축사의 실제적 연결이다.

  그런데 나병의 정결법도 이것을 보여 준다. 속건제의 숫양의 피가 나병에서나은 자의 귀와 손과 발에 발라졌다. 이는 듣는 것, 행하는 것, 가는 것이 정결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유출병의 정결법도 이것을 보여 준다. 몸을 씻고 옷을 빨아야 했다. 이는 몸의 상태와 삶의 외적 행실이 함께 정결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의 피와 회개는 이 두 원리를 모두 성취한다. 속은 피로 씻기고, 삶은 회개의 열매로 바뀐다.

  성도는 정결함을 단번의 감정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결은 계속되는 과정이다. 구원받은 성도가 날마다 회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님을 믿어 속죄받았다고 해서 더 이상 씻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이미 목욕한 자도 발은 씻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요 13:10). 이것은 구원받은 자에게도 매일의 정결이 필요함을 보여 준다.

요 1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회개는 성도를 더럽히는 모든 통로를 닫는 일이다. 음식과 접촉의 부정을 돌아보듯이, 무엇을 보고 듣고 만지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해산의 정결을 돌아보듯이, 자녀와 후손에게 어떤 영적 영향을 흘려보내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나병의 정결을 돌아보듯이, '거역'과 '교만'과 '월권'의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유출병의 정결을 돌아보듯이, 성과 생명과 몸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해야 한다.

  이 길은 무거운 율법주의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길이다. 깨끗한 자가 보좌 가까이 간다. 죄와 악한 영이 많이 남아 있으면 천국에서도 영광이 약해진다. 그러나 회개하여 정결함을 입은 자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에서 정결을 사모해야 한다. 속죄받은 자답게 정결해야 하고, 정결한 자답게 성결해야 하며, 성결한 자답게 영광의 나라를 준비해야 한다.

  하나님의 경륜은 분명하다. 창조 때 하나님은 생명을 주셨다. 타락 때 인간은 죄와 사망 아래 들어갔다. 율법은 속죄와 정결의 길을 그림자로 보여 주었다. 한 분 하나님께서는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피 흘려 속죄를 이루셨다. 성령께서는 믿는 자 안에 오셔서 성전을 삼으셨다. 이제 성도는 회개와 정결을 통해 악한 영을 내보내고 거룩한 신부로 준비되어야 한다. 마지막에는 깨끗한 세마포를 입은 자들만이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계 19:7~8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그러므로 레위기 15장은 낡은 의식법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성도에게 묻는다. 너는 속죄받은 뒤 정결해지고 있는가? 너는 몸과 성과 생명을 거룩하게 여기고 있는가? 너는 거역과 교만을 회개했는가? 너는 예수의 피로 씻김받고 악한 영을 내보내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성도는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의 피를 의지하여 자백하는 회개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9. 나오며

  레위기 15장의 유출병 정결법이 속죄받은 성도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살펴보았다. 유출병 규례는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통해 생명과 피와 씨의 문제를 가르치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백성에게 정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정상적인 생리 현상까지 정결법의 대상으로 다룬 것은 그 자체를 죄악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타락한 피조 세계 안에서 생명과 죽음의 문제를 몸으로 깊이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성도는 '속죄'와 '정결'을 구별해야 한다.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받는 속죄의 은혜를 붙들어야 하며, 동시에 죄를 자백하고 회개함으로 실제로 깨끗해지는 정결의 길을 걸어야 한다. 속죄만 말하고 정결을 말하지 않으면 신앙은 방종으로 기울 수 있다. 정결만 말하고 속죄를 잊으면 인간의 노력과 율법주의로 기울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의 피 안에서 속죄와 정결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

  또한 성도는 거역과 교만과 월권의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미리암과 게하시와 웃시야의 사례는 하나님의 질서와 영광을 침범하는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 준다. 그러나 나아만과 열 명의 나병환자의 사례는 순종과 감사의 길이 정결과 구원의 문을 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성도는 실패했을 때 변명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순종으로 돌이켜야 한다.

  성도는 성과 몸과 생명의 문제를 거룩하게 다루어야 한다. 몸은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물건이 아니라 성령의 전이다. 남자의 씨와 여인의 피는 생명 질서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성도는 성적 접촉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부부의 언약 안에서 성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며, 음행과 불륜과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성적 타락을 회개해야 한다.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되지만, 죄와 악한 영의 통로는 분명히 분별해야 한다.

  성도는 회개를 통해 정결해져야 한다. 자백하는 회개는 악한 영이 붙든 합법적 근거를 제거하는 길이다. 예수의 피가 들어가면 죄가 씻기고, 악한 영은 더 이상 머물 근거를 잃는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회개해야 하며, 회개를 통해 자신과 가정과 후손에게 흘러가는 영적 영향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

  마지막 시대의 성도는 단지 구원받았다는 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보좌 가까이 가는 성도, 어린양의 신부로 준비되는 성도, 생명을 살리는 성도, 악한 영을 내보내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레위기의 정결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 깊은 회개의 복음으로 성취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속죄받은 자답게 정결해야 하고, 정결한 자답게 성결해야 하며, 성결한 자답게 천국의 영광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의 피와 회개로 정결함을 입고 생명을 살리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6월 17일(수)

정보배 목사

 

 

 

[설교핵심]

이 설교는 속죄와 정결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를 통해 구원의 단계를 설명하며, 특히 나병과 유출병이 지닌 영적인 의미와 회복의 절차를 다룹니다. 나병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거역과 교만의 죄가 발현된 결과로 규정되기에, 이를 치유받고 공동체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제사장 위임식에 준하는 철저한 순종과 정결 의식이 필수적임을 강조합니다. 또한 생리적 현상인 유출병을 부정하다고 본 이유는 그것이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지지 못한 생명의 상실이자 부부 관계를 통한 악한 영의 교류 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라고 독창적으로 풀이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가 일평생 자백과 회개를 통해 자신을 깨끗하게 유지함으로써, 칭의를 넘어 성화와 영화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신앙적 권고를 목적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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