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3(수) 수요기도회
제목: [레위기강해(22)] 성결법(09) 사람과 땅의 성결례와 순종의 상관관계(레26:1~4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 목사
https://youtu.be/SbcpbzHMOMM
[이 메세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7가지 질문들]
1. 레위기의 속죄·정결·성결은 예수님의 피와 물, 성령의 순종으로 어떻게 이어지는가?
2. 레위기 26장은 왜 공동체의 성결을 다루며, 신명기 28장과 무엇이 다른가?
3. 말씀에 순종할 때 사람과 땅은 어떤 복을 받으며, 최고의 복은 무엇인가?
4. 불순종이 계속될 때 징계는 어떤 다섯 단계로 깊어지는가?
5. 사람이 땅의 안식을 막으면 하나님은 사람과 땅을 어떻게 다루시는가?
6. 하나님께 돌아가는 참된 회개에는 어떤 네 가지가 필요한가?
7. 회개한 백성을 위해 하나님은 어떤 언약을 기억하시고 무엇을 회복하시는가?
[설교핵심]
이 설교는 순종과 불순종, 그리고 회개가 인간과 땅의 운명에 미치는 상관관계를 체계적으로 설명합니다. 정보배 목사는 순종의 보상으로 주어지는 최고의 복을 하나님의 임재로 규정하며, 반대로 불순종의 끝은 질병과 가난을 거쳐 결국 국가적 멸망과 땅의 황폐화라는 단계별 징계로 이어진다고 경고합니다. 특히 메시지는 신명기 28장과 달리 회개를 통한 회복의 약속이 강조되어 있는데, 이는 자기 죄와 조상의 죄를 자복하고 징벌을 달게 받는 겸손한 태도를 전제로 합니다. 결국 이 설교는 성도들이 예수의 피와 성령에 의지하여 철저히 회개함으로써, 저주를 끊고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복구하여 천국 기업을 물려받는 진정한 성결의 삶을 살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레위기강해(22)
성결법(09)
사람과 땅의 성결례와 순종의 상관관계
(레 26:1-46)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이번 시간은 레위기 강해 스물두 번째이자 성결법 아홉 번째 시간이다. 나는 2010년에도 레위기를 강해했지만 다시 읽으면서 거대한 보화의 광맥을 발견한 듯했다. 회개(悔改, repentance)와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할 내게 레위기는 속죄(贖罪, atonement)만이 아니라 정결(淨潔)과 성결(聖潔)을 가르쳐 주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세우신다. 제사장이 백성을 잘 인도해야 하지만 백성도 제사에 참여하여 속죄받고, 더러워진 것을 씻으며,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어느 한쪽만 열심을 낸다고 이 일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한때 갈라디아서 2장 20절과 3장 13절,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거듭 암송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저주에서 속량받았으며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얻었다는 말씀은 참으로 귀하다. 그러나 그 말씀을 입으로 반복하면서 내 안의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회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몸속에 고름이 차 있는데 파스만 붙이며 이미 나았다고 되뇌는 것과 같다. 정결해지지 않은 채 봉사하면 진실한 섬김 대신 겉모양만 남을 수 있다. 나는 그 위험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어떤 길을 열어 놓으셨는가? 속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근거한다. 정결은 그 피와 물로 계속 씻음을 받는 일이다. 성결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구별된 삶을 사는 일이며, 신약의 성도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레위기 26장은 이 성결이 사람뿐 아니라 땅과 공동체에까지 관계됨을 보여 준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레위기의 속죄·정결·성결이 어떻게 이어지고, 공동체가 순종하거나 불순종할 때 사람과 땅에 무슨 일이 일어나며, 회개한 백성을 하나님이 어떻게 회복하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레위기의 속죄·정결·성결은 예수님의 피와 물, 성령의 순종으로 어떻게 이어지는가?
레위기 전체의 자리를 알아야 26장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제1장부터 제10장까지는 제사와 제사장의 직무를 중심으로 속죄를 다룬다. 제1장부터 제7장까지 제사법이 나오고, 제8장에는 제사장 위임식, 제9장에는 아론이 처음 드린 제사, 제10장에는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이 나온다. 제11장부터 제17장까지는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되는 정결법이고, 제18장부터 제27장까지는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생활을 가르치는 성결법이다. 이 배열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이 그 자리에 멈추지 않고 정결과 성결로 나아가야 함을 일깨운다.
정결법의 내용을 보라. 제11장은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 제12장은 출산한 여인, 제13장과 제14장은 나병, 제15장은 남녀의 유출을 다룬다. 제16장의 대속죄일(大贖罪日, Day of Atonement)은 단지 제4장에 이미 나온 속죄제를 반복하는 장면이 아니다. 피로 지성소와 성소와 제단을 깨끗하게 하는 정결의 자리에서 읽어야 한다(레 16:16-20, 33). 제17장은 피를 함부로 먹지 말아야 할 이유와 피가 속죄에 쓰인다는 사실을 가르친다(레 17:10-11). 나는 제16장이 왜 이 자리에 있는지 깨닫고 나서야 가을 절기의 속죄일을 풀어 갈 실마리를 얻었다.
제18장부터 제22장까지는 개인과 제사장의 성결을 자세히 가르친다. 이스라엘 사람은 애굽과 가나안의 풍속을 따르지 말고, 금지된 성관계와 동성 간의 성행위와 짐승과의 성행위를 멀리해야 했다(레 18:3-23). 제19장은 부모를 경외하고 안식일을 지키며 이웃에게 거짓과 불의를 행하지 말라는 계명을 다시 들려준다. 제20장은 몰렉에게 자녀를 바치지 말고 신접한 자와 박수를 따르지 말라고 한다. 제21장과 제22장은 제사장이 시체와 접촉하는 일, 결혼, 몸의 흠, 드릴 제물의 흠을 다룬다. 하나님께 가까이 서서 백성을 섬기는 제사장일수록 더 철저하게 깨끗해져야 한다. 오늘 주의 종에게도 얼마나 깊은 회개가 필요한가.
제23장부터는 온 백성이 함께 지켜야 할 성결례가 펼쳐진다. 제23장은 안식일과 절기, 제24장은 성막 안의 등잔과 진설병 및 성막 밖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한 일과 그에 대한 판결, 제25장은 안식년과 희년을 다룬다. 그리고 제26장은 공동체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거나 맞설 때 사람과 땅에 임할 결과를 밝힌다. 제사장 개인의 성결과 백성 개인의 성결이 아무리 중요해도, 한 민족이 함께 행해야 할 순종을 대신할 수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로 우리를 위한 제사를 단번에 이루셨다. 그러므로 그 피를 의지하여 믿은 뒤에는 죄를 자백하는 회개로 계속 정결해져야 한다. 내가 전하는 회개에는 죄가 행위책에 기록된 것을 씻고, 죄를 통하여 들어온 악한 영을 내보내는 일이 포함된다. 피와 물로 씻는 정결 뒤에는 성령께 순종하는 성결의 삶이 따라야 한다. 예수님의 피를 말하면서 자백을 버릴 수 없고, 회개를 말하면서 순종을 버릴 수 없다.
요한일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가 성령이라고 말한다(요일 5:6-8). 이 세 가지를 읽을 때 나는 레위기가 가르친 정결과 성결의 길을 함께 본다. 물과 피로 씻음을 받고 성령께 순종해야 한다. 킹제임스 성경의 해당 대목에 성부·성자·성령이 등장하는 표현과 개역개정의 ‘성령과 물과 피’는 같지 않다. 나는 이 차이를 지적하며 바로 이 물과 피와 성령을 놓치지 말라고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들은 우리가 날마다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깨끗해져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는 일이다.
내 경험에서도 한 번 악한 영의 집을 파괴했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지는 않았다. 들어왔던 영은 다시 들어오려 하며, 사역의 자리에서 공격도 받는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회개하며 예수님의 피로 자신을 덮고, 귀와 눈을 살피며 영적 상태를 점검한다. 말씀을 준비한 뒤 눈을 눌러 볼 때와 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뒤의 느낌이 다르다고 경험했다. 이것은 내가 겪고 전하는 사역의 체험이다. 무당의 신기를 지닌 채 예수라는 간판만 달고 능력을 행하는 일이 없도록 더욱 조심해야 한다. 능력의 겉모양보다 자백하는 회개와 말씀을 믿고 따르는 순종이 중요하다.
나는 아침마다 귀를 비벼 보고 눌러 보기도 한다. 아픈 곳이 있는지 살피면서 아직 내게 달라붙으려는 영이 있는지 확인한다. 말씀을 준비하고 새벽 두 시쯤 잠자리에 들 때에는 눈을 눌러 보면 밝은 빛이 느껴지는데, 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날에는 회색빛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는 내가 사역 가운데 겪은 개인적 체험이다. 한 번의 체험이나 한 번의 축사에 안주하지 말고, 날마다 자신을 정결하게 하며 말씀을 가까이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준비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시간이 성결에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내 삶에서 확인했다.
3. 레위기 26장은 왜 공동체의 성결을 다루며, 신명기 28장과 무엇이 다른가?
안식년을 생각하면 공동체의 성결이 왜 필요한지 선명해진다. 하나님은 일곱째 해에 땅을 쉬게 하셨다(레 25:2-7). 그해 저절로 난 것은 땅을 가진 사람만 독점할 수 없고, 남종과 여종과 품꾼과 함께 사는 사람, 가축과 들짐승도 먹게 된다. 다른 사람은 계속 농사를 지어 소출을 거두는데 나 혼자 땅을 쉬게 한다면 손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므로 온 백성이 함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땅이 원래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공동체 전체가 행동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회개도 자기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나는 내 안의 악한 영의 집이 파괴된 뒤에도 계속 회개한다. 나를 통해 섬김을 받아야 할 사람들과 아직 남아 있는 자녀들이 있기 때문이다. 목자가 쓰러지면 양 떼가 흩어진다. 성도가 자기만 괜찮아졌다고 회개를 그만두거나 이웃의 짐을 외면한다면 공동체의 정결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교회가 함께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는 까닭도 각자의 몸과 가정에서 시작한 회개가 다른 사람과 다음 세대를 살리는 데 이어지기 때문이다. 안식년과 회개가 같은 방식의 의식이라는 뜻이 아니라, 나 하나만을 생각하는 태도로는 공동체의 성결을 이룰 수 없다는 말이다.
레위기 26장 1절과 2절은 이 공동체가 먼저 지켜야 할 기본을 말한다. 우상을 만들거나 석상 앞에 경배하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키며 성소를 경외해야 한다(레 26:1-2). 하나님을 향한 관계가 무너지면 땅을 쉬게 하는 일도, 이웃을 바르게 대하는 일도 지속할 수 없다. 제3절부터는 그분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라고 한다. 순종은 예배당 안의 말에 머무르지 않고 땅을 경작하는 법, 서로를 대하는 법, 온 민족이 살아가는 법으로 나타난다.
신명기 28장도 순종과 불순종을 선포한다. 제1절부터 제14절까지는 성읍과 들, 자녀와 가축,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 들어감과 나감에 임하는 복을 말한다.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어 때를 따라 비를 주시고, 원수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하게 하시며, 백성이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신다(신 28:1-14). 제15절부터 제68절까지는 불순종에 따른 저주를 훨씬 길게 들려준다. 성읍과 들과 몸의 소생이 저주를 받고, 질병과 빼앗김과 흩어짐이 뒤따른다. 나는 긴 경고 속에서도 하나님이 백성의 돌아옴을 기다리시며 거듭 깨우치시는 마음을 본다.
레위기 26장에는 신명기 28장과 맞닿으면서도 특별히 붙잡아야 할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징계(懲戒, discipline)가 단계별로 더 무거워진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단번에 민족을 끝내지 않으시고 징계 속에서도 ‘그렇게까지 되어도’ 순종하지 않는지 물으신다(레 26:18, 21, 23, 27). 다른 하나는 원수의 땅에 끌려간 백성이 죄를 자복하고 마음을 낮출 때 언약(言約, covenant)을 기억하여 회복하시겠다는 약속이다(레 26:40-45). 이 회개의 길이야말로 정결과 성결의 문맥에서 26장을 읽을 이유다.
여기에는 사람과 땅이 함께 놓여 있다. 사람이 말씀에 순종하면 사람이 평안을 누리고 땅도 소출을 낸다. 사람이 거역하면 병과 패배가 오고, 땅은 비와 열매를 잃는다. 거역이 끝까지 이어지면 사람은 땅에서 쫓겨나고, 땅은 비로소 쉬게 된다. 그러나 쫓겨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은 사람뿐 아니라 그 땅도 기억하신다. 공동체의 운명을 한 사람의 경건이나 한 번의 행사로 줄여서는 안 된다. 제사장과 백성이 함께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4. 말씀에 순종할 때 사람과 땅은 어떤 복을 받으며, 최고의 복은 무엇인가?
레위기 26장의 복은 추상적인 말이 아니다. 하나님이 규례와 계명을 지켜 행하는 백성에게 철따라 비를 주시므로 땅은 산물을 내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레 26:3-4). 타작이 포도를 딸 때까지 이어지고, 포도 따기가 다음 파종 때까지 이어진다. 묵은 곡식을 다 먹기도 전에 새 곡식이 들어온다(레 26:5, 10). 땅의 복은 하늘의 비와 밭의 결실과 풍족한 식탁으로 드러난다. 사람이 땅을 소유했다고 해서 그 열매를 자기 힘만으로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 주시는 복도 구체적이다. 그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고 평화롭게 누우며, 사나운 짐승과 칼의 두려움에서 벗어난다(레 26:5-6). 전쟁에서는 다섯이 백을, 백이 만을 쫓는다(레 26:7-8). 하나님이 돌보시므로 백성은 번성하고 창대해지며 언약을 누린다(레 26:9). 그러므로 순종의 복을 돈 한 가지로만 읽지 말아야 한다. 거주할 안전, 원수를 이기는 힘, 다음 세대의 번성, 하나님의 돌보심이 모두 사람에게 주어지는 복이다. 땅의 산물과 사람의 평안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이 모든 복의 끝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복은 무엇인가? 나는 제11절과 제12절을 읽을 때 답을 분명히 들었다. 하나님은 성막을 백성 가운데 세우고 그들 가운데 행하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레 26:11-12). 곡식이 많은 것보다 더 큰 복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는 것이다. 이 임재(臨在, presence)가 사람을 참으로 복되게 한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백성을 이끌어 내시고 멍에의 빗장을 부수어 바로 서서 걷게 하신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하시겠다고 하신다(레 26:13). 이것은 땅을 하나 더 얻는 복과 견줄 수 없다.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시고 성령께서 나를 다스리시면, 내가 하는 말과 섬김을 통하여 살아 계신 주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악한 영을 만나도 그 앞에서 떨지 않고 사람을 해방하는 통로가 된다. 이것이 내가 붙잡은 순종의 최고의 복이다.
누군가는 순종해서 집이나 땅을 샀다고 간증한다. 그것도 감사할 일이지만 그 소유를 몇 년 뒤 잃을 수도 있다. 소유의 많고 적음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재서는 안 된다. 내가 동탄에 있든 다른 고장에 있든, 심지어 다른 나라에 가든 성령께서 나를 온전히 지배하신다면 어디서든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열매는 악한 영도 흉내 낼 수 있지만 하나님이 사람 안에 실제로 거하시는 일은 그렇게 만들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복과 땅의 복을 구하면서도 그 모든 복의 중심인 하나님의 임재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5. 불순종이 계속될 때 징계는 어떤 다섯 단계로 깊어지는가?
순종의 복 다음에는 불순종의 징계가 나온다. 그런데 하나님은 불순종한 백성을 처음부터 원수의 땅에 던져 없애지 않으신다. 말씀을 듣지 않고 규례를 멸시하며 언약을 배반할 때 징계를 시작하시고, 그 징계를 받고도 돌아오지 않으면 다시 더 무겁게 치신다(레 26:14-18). 본문에는 일곱 배나 더 징벌하겠다는 경고가 거듭 나온다(레 26:18, 21, 24, 28). 왜 여러 단계로 치시는가? 고통의 자리에서도 백성이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이다. 이 순서를 읽어야 끝의 회복 약속도 이해할 수 있다.
첫 단계는 제14절부터 제17절까지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두워지고 생명이 쇠약해지며, 애써 뿌린 씨의 열매를 대적이 먹는다. 싸움에서는 패하고 미워하는 자의 지배를 받는다. 쫓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하는 두려움이 찾아온다. 병에 걸리고 빼앗기며 패배하는 것이다. 나는 신명기 28장에서도 폐병과 열병, 여러 질환이 불순종의 경고 속에 등장하는 것을 보았다(신 28:21-22, 27). 성경의 경고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둘째 단계는 제18절부터 제20절까지다. 앞의 재앙을 겪고도 청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백성의 교만을 꺾으시고 하늘을 철과 같게, 땅을 놋과 같게 하신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고 땅이 굳어 산물을 내지 못하며, 나무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 땀 흘려 수고했지만 거둘 것이 없는 가난이 온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농사짓는다고 하면서도 그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거역하면 땅의 결실을 자기 힘으로 지킬 수 없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몸과 전쟁의 문제로 경고를 받다가 이제 일상의 먹을거리와 땅의 소출까지 잃는다.
셋째 단계는 제21절과 제22절이다. 또다시 하나님을 거슬러 청종하지 않으면 들짐승이 달려들어 자녀를 움키고 가축을 멸하며 백성의 수효를 줄인다. 길마저 황폐해진다. 내가 어릴 때 살던 곳에서는 밤의 들짐승을 두려워했고, 어머니와 산에 갔다가 호랑이 똥이라고 알려 주신 것도 보았다. 전기가 늦게 들어온 집에서 호롱불을 켜고 살았으며, 물에 튀어 들어간 벼룩을 잡던 가난한 날들도 있었다. 보리밥을 먹던 때에 쌀밥을 얻으면 아까워 오래 씹었다. 내가 겪은 그 시절의 두려움과 궁핍을 떠올리면 자녀와 가축을 들짐승에게 빼앗기는 경고가 먼 이야기가 아니다.
넷째 단계는 제23절부터 제26절이다. 앞선 일을 당하고도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께 대항하면 칼이 임하여 전쟁이 일어나고, 성읍에 모여 피하려 할 때에도 염병이 퍼진다. 양식이 끊어져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어도 배부르지 못한다(레 26:25-26). 전쟁, 전염병, 기근이 함께 온다. 성벽 안에 숨었다고 안전하지 않고, 떡이 조금 있다고 배부른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경고를 계속 거부하면 징계가 사람의 생존을 위협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내가 자란 전라도에는 ‘단골래’라고 부르던 무당이 동네마다 있었고 외할머니의 할머니가 무당이었다. 나는 이런 가문의 지난날과 후손에게 이어진 고통을 돌아보며, 하나님 아닌 것을 섬기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권한다.
다섯째 단계는 제27절부터 제39절까지 이어진다. 또다시 청종하지 않으면 포위와 기근이 극심해져 아들과 딸의 살을 먹는 참혹한 지경에 이른다(레 26:29).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던 산당과 분향단을 부수고, 성읍과 성소를 황폐하게 하신다. 땅을 황무하게 하며 백성을 여러 민족 중에 흩으신다(레 26:30-33). 마지막 징계는 단지 개인의 질병이나 가난이 아니다. 나라가 무너지고 땅에서 쫓겨나 원수의 땅에 살게 되는 것이다. 남은 자도 자기 죄와 조상의 죄 때문에 그곳에서 쇠잔해질 수 있다(레 26:38-39). 이것이 불순종이 끝까지 이어질 때 맞는 최악의 결과다.
이스라엘의 이 경고를 읽으면서 나는 우리 민족도 돌아본다. 조상에게 제사하는 일을 효도의 의무로 여기던 풍속, 일본의 지배 아래 겪은 35년, 오늘 우리가 무엇을 따르고 있는지를 생각한다. 나는 성도들에게 조상 제사를 끊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거듭 권한다. 나라가 아직 있고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내가 공산화와 동성애의 인정, 회개하지 않는 교회를 두고 경고하는 까닭도 하나님을 거역하는 길 끝에 민족적 무너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말씀 앞에서 자신과 공동체의 순종을 살펴야 한다.
6. 사람이 땅의 안식을 막으면 하나님은 사람과 땅을 어떻게 다루시는가?
레위기 26장이 특별한 까닭은 사람에게 내리는 징계와 땅이 누릴 안식을 함께 말하기 때문이다. 땅은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항하거나 다른 신을 섬기겠다고 선택하지 않는다. 사람의 손에 맡겨진 땅은 안식년이 되어도 사람이 계속 갈아엎고 씨를 뿌리면 쉬지 못한다. 땅에 발이 달려 떠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그 땅에서 옮기신다. 사람이 원수의 땅에 사는 동안 자기 땅은 황무하여 비로소 쉬게 된다(레 26:34-35). 이것은 제25장에서 명령하신 안식년을 거역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 말씀은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이스라엘 사람은 자신이 그 땅을 차지했으니 원하는 대로 계속 수확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쉬어야 한다. 제25장의 안식년에는 땅의 자생 소산을 주인만이 차지하지 않고 종과 품꾼, 가축과 들짐승도 먹는다(레 25:6-7). 주인의 욕심이 이 질서를 깨뜨리면 사람도 땅도 함께 손상된다. 마침내 하나님은 사람을 내보내 땅에 안식을 주신다. 사람이 누리지 못한 쉼을 땅이 황폐한 상태에서 누리게 된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가.
그러므로 사람과 땅의 성결례는 따로 떨어진 두 의식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땅도 제때 쉬고 열매를 낸다. 사람이 탐욕과 불순종으로 땅을 몰아붙이면 하나님은 소출을 멈추고 마침내 거주하는 사람을 쫓아내신다. 제34절과 제35절 뒤에는 원수의 땅으로 흩어진 사람들이 바람에 불린 잎사귀 소리에도 놀라며 서로 넘어지는 모습이 나온다(레 26:36-37). 자기 땅에서는 땅을 쉬게 하지 않았고, 남의 땅에서는 자신이 두려움 속에 쇠잔해진다. 순종의 복에서 약속하신 평안한 거주와 정확히 반대되는 자리다.
땅을 다시 얻는 길은 힘으로만 돌아와 다시 점유하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이 왜 사람을 옮기셨는지 깨닫고 죄를 자복해야 한다. 땅의 문제는 사람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땅을 안식하게 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땅을 기억하시면 사람도 다시 돌아올 길을 얻는다(레 26:40-43). 안식년을 지키는 일도, 원수의 땅에서 회개하는 일도 공동체의 순종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결을 개인의 마음속 문제로만 좁히면 이 장의 절반을 잃어버린다.
7. 하나님께 돌아가는 참된 회개에는 어떤 네 가지가 필요한가?
이스라엘이 원수의 땅에 끌려갔다고 해서 모든 길이 닫힌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제40절과 제41절에서 돌아올 길을 열어 놓으셨다. 여기서 나는 참된 회개의 네 요소를 본다. 첫째는 자기의 죄악과 조상의 죄악을 자복하는 것이다. 제39절은 남은 자가 자기 죄로 쇠잔하고 조상의 죄로도 쇠잔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내 죄만 입에 올리고 조상에게서 이어져 온 우상숭배를 모른 체해서는 안 된다. 조상을 구원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 죄가 후손에게 미친 영향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고 씻음을 구한다는 말이다.
둘째는 왜 이런 자리에 이르렀는지 깨닫는 것이다. 백성은 자기가 우연히 원수의 땅에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항했으므로 하나님도 그들에게 대항하여 끌어 가셨음을 알아야 한다(레 26:40-41). 고통만 빨리 끝내 달라고 구하면서 그 원인을 알려 주지 않으면 같은 길로 돌아간다. 자기 죄와 조상의 죄, 하나님 말씀에 맞선 완고함을 깨닫는 것이 회개다. 신앙생활에 어려움이 생길 때에도 먼저 남을 탓하거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묻기보다 내 마음과 행위를 말씀 앞에 놓아 보아야 한다.
셋째는 할례 받지 아니한 마음이 낮아지는 것이다. 자복과 깨달음이 있어도 마음속에 ‘나는 충분히 했으니 이제 복을 내놓으셔야 한다’는 요구가 남아 있다면 아직 하나님께 굴복하지 않은 것이다. 겸손히 내가 잘못했다고 인정해야 한다. 나는 성도들이 회개기도문을 천 번, 이천 번 읽은 숫자를 서로 견주며 왜 내게는 변화가 없느냐고 따지는 모습을 경계한다. 가문마다 쌓인 죄와 그 영향도 같지 않다. 회개 횟수를 하나님께 값을 치르는 계산서처럼 내밀어서는 안 된다. 마음이 낮아져야 자신의 죄를 진실로 볼 수 있다.
넷째는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도 놀랐다. 징계가 시작되자마자 억울하다고 대항하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회개의 자세가 아니다. ‘내가 저지른 죄로 이런 고통을 당해도 마땅합니다’라고 인정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징계를 달게 받으며 그분께 돌아와야 한다. 형벌을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죄를 변명하지 않고 하나님의 판단 앞에 서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가 참된 회개의 기도가 된다(레 26:40-41).
이 네 가지는 서로 바꾸거나 하나만 떼어 놓을 수 없다.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징계가 왜 왔는지 깨닫고, 마음을 낮추며, 받아야 할 형벌을 기쁘게 받는다. 나는 앞으로도 이 네 가지를 성도들에게 가르치려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자백하는 회개로 정결해지고, 그 뒤에는 같은 죄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회개를 지루한 반복이라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이 사람을 씻어 다시 세우시는 복된 길이 그 안에 있다.
8. 회개한 백성을 위해 하나님은 어떤 언약을 기억하시고 무엇을 회복하시는가?
네 가지로 회개할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는가? 제42절은 하나님이 야곱과 맺은 언약, 이삭과 맺은 언약,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하신다고 말한다. 제45절에서도 애굽에서 이끌어낸 조상과 맺은 언약을 다시 기억하신다. 하나님은 백성을 향해 하신 약속을 지키고 땅과 사람의 회복을 이루신다. 아브라함에게는 자손과 땅을 약속하셨고, 이삭과 야곱에게도 그 약속을 이어 가셨다(레 26:42, 45).
레위기는 여기서 이름을 야곱, 이삭, 아브라함의 순서로 말한다. 나는 이 거꾸로 놓인 순서를 읽으며 하나님이 회개한 자에게 넉넉히 주시려는 마음을 떠올렸다. 아브라함에게 이삭 한 사람, 이삭에게 야곱 한 사람이 있었지만 야곱에게서는 열두 아들이 나왔다. 마태복음의 좋은 땅 비유도 백 배와 육십 배와 삼십 배의 결실을 말한다(마 13:8). 나는 이 숫자와 이름의 순서를 묵상하며, 하나님이 회개한 백성에게 풍성한 열매를 주고 싶어 하신다고 전한다. 숫자의 크기만 붙들 것이 아니라, 약속을 믿고 돌아오는 사람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땅에 관한 말에서 멈추지 않는다. 백성이 원수의 땅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내버리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아주 멸하지 않고, 그들과 맺은 언약을 폐하지 않으신다(레 26:44). 네 가지 부정의 약속이 얼마나 큰 소망인가. 심한 징계를 받는 자리에 있어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끝내지 않겠다고 하신다. 그들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돌아올 수 있는 까닭은 하나님이 먼저 언약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씀 앞에서 천국의 성 밖에 이른 사람에게까지 소망을 품어 보았다. 자기 죄의 형벌을 달게 받는다면 언젠가 성 안에 들어가도록 해 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이 확정된 교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레위기 26장의 약속을 읽다가 ‘아주 멸하지 아니하리라’는 하나님의 마음에서 내가 품게 된 조심스러운 소망이다. 그러므로 죽은 뒤에 형벌을 달게 받겠다고 미루지 말고 이 땅에 있을 때 회개해야 한다. 지금 눈물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
말씀을 그대로 믿고 걷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신다. 나는 눈에 뚜렷한 증거가 보이지 않고 귀에 특별한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에도 말씀을 믿고 걸었다. 돌아보니 주님이 그 말씀대로 이끄셨다. 우리도 회개하여 정결해지고 순종하여 거룩해져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람을 기억하시고 땅을 기억하시며, 자손이 번성하도록 돌보신다. 나는 성도들이 이 회복을 몸과 가정과 공동체에서 실제로 경험하고, 장차 천국의 기업(基業, inheritance)을 누릴 이기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회개하다가 지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을 아주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이상 낙심할 이유가 없다. 내 형벌을 달게 받으며 이 땅에서 돌이키고, 오늘 내게 맡기신 사람을 위해 다시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회개하는 성도 한 사람이 다른 이에게 회개의 본이 되고, 그 가정과 교회가 함께 정결과 성결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9. 나오며
레위기 26장에서 사람과 땅에 주시는 순종의 복, 불순종에 따른 다섯 단계의 징계, 땅이 누리는 안식, 네 요소를 갖춘 회개와 언약에 따른 회복을 살펴보았다. 사람의 복과 땅의 복 가운데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를 그분의 백성으로 삼으시는 일이다. 반대로 끝까지 거역하면 사람은 땅에서 쫓겨나고 원수의 땅에서 쇠잔해진다. 그 사이에서 하나님은 여러 번 징계하시며 돌아올 기회를 주신다.
회개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복이다. 우리는 자기 죄와 조상의 죄를 자복하고, 징계의 까닭을 깨닫고, 마음을 낮추며, 죄의 형벌을 달게 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피로 정결해지고 하나님의 임재와 언약의 회복을 누리며 성령께 순종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6년 09월 23일(수)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