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40) 회개할 자범죄는 무엇인가?(21) 불충성의 죄(마25:14~23)_2020-01-12(화)

https://youtu.be/tNtrFK4iaT0

 

1. 불충성의 죄란 무엇인가?

  불충성의 죄란 충성하지 않은 죄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맡은 일에 충성하지 않은 것입니다. 맡겨진 일에 신실하지 않게 행동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죠. 이런 사람은 보통 조삼모사합니다.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변덕스럽습니다. 그리고 늘 짜증냅니다. 자기자리를 지키지 못합니다.

 

2. 충성이란 어떤 뜻인가요?

  그렇다면, 불충성의 반대는 "충성"은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그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직무에 한결같이 성실하게 임하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맡겨진 일과 자리를 끝까지 신실함으로 지켜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특별히 "충성"이라는 헬라어단어는 "충성"이 어떤 의미인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사실 헬라어에서 "충성"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문맥에 따라서 다른 단어가 그 뜻으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헬라어로 "충성"이라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피스티스"입니다. 피스티스는 보통 "믿음"으로 번역된 단어입니다. 하지만 문맥에 따라 그것은 "충성"으로도 번역되는 것입니다. 어떤 문맥입니까? 주인이 있을 때입니다. 주인이 무엇인가를 맡길 때에 등장하는 "피스티스"는 "충성"이라고 번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헬라어로 "피스티스"는 믿음, 신실함, 신뢰성, 엄숙한 약속, 확신, 충성으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고전4:2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그렇습니다. 맡기는 자가 있고 그것을 맡은 자가 있을 때, 맡은 자에게 필요한 것이 "충성됨, 신실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5장에 보면,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오는데 그중에 "충성"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 역시 헬라어원문을 보면, "피스티스(믿음)"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인과 관련지어서 쓰일 때에는 "충성"이란 뜻으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3. 백마를 타시고 재림하시는 분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적그리스도의 세력들 곧 사탄에 속한 천사들과 왕들과 사람들을 처단하기 위해 재림하시는 예수의 모습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그분의 이름을 "충신과 진실"이라고 했습니다(계19:11). 여기서 "충신"은 "피스티스"의 형용사형으로 "피스토스(충성스러운)"라는 뜻이며, "진실"은 "알레데이아(진리)"의 형용사형태인 "알레디노스(참된, 진실한, 거짓이 없는, 진리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도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을 때에는 아버지의 말씀에 충성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원래 하나님이지만 아들로서 사실 때에는 항상 아버지를 가리켜서 "나를 보내신 자"라고 하시면서 충성했던 것입니다. 이는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아 이 땅에 그 일을 수행하는 자라는 것을 항상 생각하고 사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아들로서의 사역은 재림과 심판까지인데, 그중에 재림의 장면이 요한계시록 19장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때도 역시 주님은 "충성"과 "진리"일 것입니다.

 

4. 충성된 자에게 주시는 상은 무엇인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맡겨진 일에 충성된 자에게 놀라우 상을 허락하십니다. 그것은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계2: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이 말씀은 고난과 핍박받고 순교하는 교회를 상징하는 "서머나교회"에게 주신 말씀인데, 주님께서는 고난 중에서 믿음이 변치 않고 충성한 자들에게 한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죽도록(죽기까지)" 충성했던 자들에게 주시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주님과 복음을 위해 내놓은 자들을 위해 주님께서는 천국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자들은 장차 결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할 것입니다(계2:11)" 

 

5. 어떤 자가 불충성한 자이며 그런 자는 어떻게 이것을 극복할 수 있나요?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비유는 대표적인 충성됨에 관한 비유말씀입니다(마25:14~30). 어떤 주인이 3명의 종들에게 각각 그의 능력을 따라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맡은 자는 가서 열심히 일했습니다("장사했다"는 번역은 잘못된 것임). 그래서 또 자기가 받은 만큼의 분량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것을 땅에 감추었다가 주인이 돌아오자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 종은 주인이 왜 자기에게 그것을 맡겼는지를 전혀 몰랐습니다. 맡겨진 충성된 자에게 더 큰 것으로 맡겨주시려는 뜻이 있음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능력대로 주신 것인데, 자기에게는 적게 주었다고 주인은 인색한 사람으로 나쁘게 생각했습니다. 작은 것에 충성하면 더 큰 것으로 맡겨주시는 주인의 뜻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불충성된 자였습니다. 그런데 맡겨진 일에 신실하지 않은 자에게 하나님은 더 이상 다른 것을 맡기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못했던 분들은 자기를 홀대했다고 불평불만했던 것을 거두어들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을 불충성으로 이끌어가는 사탄의 영을 쫓아내야 합니다. 사탄은 처음부터 주인에게 충성하지 않은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맡겨주시던지 맡겨진 일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큰 것으로 맡겨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021년 01월12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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