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역자론(09)] 하나님이 보낸 사람 다윗, 그는 어떻게 준비되었고 쓰임받았는가?(행13:16~22)_2025-02-05(수)
https://youtu.be/2yiRx3oFQEA
사역자론(09)
하나님이 보낸 사람 다윗,
그는 어떻게 준비되었고 쓰임받았는가?
동탄명성교회 · 정보배 목사
1. 들어가며
하나님의 사람들의 앞길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유익한 일이다. 그들이 걸어간 길은 오늘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보여 주는 표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의 인물들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그가 어디에서 준비되었고, 무엇 때문에 넘어졌으며, 어떤 성품과 순종으로 하나님께 쓰임받았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분량이 다섯 달란트인지 두 달란트인지 한 달란트인지도 알아야 한다. 분량보다 지나치게 큰 일을 자기 힘으로 감당하려 하면 지치고 무너지기 쉽고, 할 수 있는 일보다 적게 행하면 게으른 종이 된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분량으로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평신도도 집사로서 하나님의 일꾼이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주의 종도 맡은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순히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쓰시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은사와 능력이 나타난다고 해서 자동으로 합당한 일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사역을 위하여 맡기신 도구이지 그 사람의 소유가 아니다. 주님의 손에 들린 마른 막대기가 홍해를 가르는 데 쓰일 수 있지만, 주님께서 거두시면 다시 막대기일 뿐이다. 이것을 잊고 은사를 자기 것으로 여기면 교만해지고, 결국 받은 은사가 자신을 무너뜨리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영 분별이 필요하다. 귀신의 가르침을 성령의 인도라고 착각하면 열심히 달려가면서도 잘못된 길에 설 수 있다. 성경을 모르면 자기 생각과 체험을 판단할 기준이 사라진다. 하나님께서 과거의 믿음의 사람들을 어떻게 준비시키고 사용하셨는지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의 행적을 살펴보며 나는 어디가 부족한지, 무엇이 같은지, 어떤 부분을 더 훈련받아야 하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은사가 클수록 자신을 점검해 줄 영적 지도자가 필요하며, 성경에 근거한 바른 권면에 순종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모세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영도자로 준비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쓰시기 위하여 팔십 년을 준비시키셨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사실을 배우게 하셨다. 오늘 살펴볼 다윗에게는 모세와 다른 사명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실 든든한 왕국의 모형을 보여 줄 왕으로 작정되었다. 그래서 다윗의 준비는 왕에게 필요한 자질과 성품과 순종을 갖추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설명하며 사울과 다윗을 대조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으며, 그를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증언하셨다. 또한 다윗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의 구주 예수를 세우셨다(행 13:21-23).
다윗의 생애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 수 있다. 자질만 준비되어서는 안 되고, 성품만 좋아서도 안 되며,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뜻과 방법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사울이 폐위되고 다윗이 선택된 이유와 모세와 구별되는 다윗의 사명, 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과 성품, 마지막 순종의 훈련이 어떻게 준비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은 왜 사울을 폐하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는가?
사울과 다윗은 모두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고 각각 사십 년 동안 다스렸다. 두 사람에게 모두 전쟁을 수행할 자질이 있었다. 그 시대의 왕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능력은 주변 나라의 공격을 막고 백성을 보호하는 전쟁 수행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사울도 처음에는 전쟁에 능한 사람으로 선택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끝까지 보신 것은 외형과 능력만이 아니었다. 자질은 있었지만 성품과 순종이 무너지자 그는 왕으로서 합당하지 않게 되었다.
사울의 결정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명령 가운데 자기 생각을 집어넣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셨지만, 그는 아각 왕을 살려 두고 좋은 양과 소를 남겼다. 그것을 하나님께 제사하려 했다고 설명했으나,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사울이 고안한 제사가 아니라 말씀에 대한 순종이었다.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선포했다(삼상 15:22-23).
사울은 전쟁에서 승리한 뒤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다. 하나님께서 주신 왕권을 자기 이름과 영광을 높이는 도구로 바꾸었다. 왕이 된 뒤 자신의 위치를 넘어선 것이다. 교만은 자신을 크게 말하는 태도에만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일을 자기가 결정하고, 맡겨진 것을 자기 소유처럼 사용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판단 아래에 두는 것이 교만이다. 사울은 왕권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잊고 자기 권력을 지키려 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에게 임한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도 기뻐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다음 시대를 위하여 세우시는 사람을 충성스러운 부하로 보지 않고 자기 왕권을 빼앗을 경쟁자로 보았다. 권력을 지키려는 마음이 하나님의 뜻보다 커지자 다윗을 죽이려 했다. 이처럼 자질이 아무리 뛰어나도 성품과 순종이 준비되지 않으면 받은 직분과 은사가 자신을 파괴하는 도구가 된다.
다윗은 사울과 달랐다.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말씀은 다윗이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완전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를 살피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 뜻보다 앞에 두려는 사람이었다. 죄를 범했을 때에는 왕권을 지키는 일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일을 더 두려워했다. 책망을 받았을 때 자기 지위를 내세우며 선지자를 막지 않고 회개했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찾으시되 능력만 있는 사람에게 나라를 맡기지 않으신다. 전쟁을 잘하는 자질과 함께 자신을 낮추는 겸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는 신실함, 분노를 다스리는 절제와 온유, 말씀에 순종하는 중심을 보신다. 사울은 자질의 준비에는 통과했지만 성품과 순종에서 실패했다. 다윗은 광야와 사람과 사건을 통하여 이 모든 부분을 훈련받았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모세에 비해 다윗은 어떤 일꾼으로 작정된 인물이었는가?
모세와 다윗은 모두 구약을 대표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맡은 사명은 서로 달랐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은 성전과 율법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모세를 중심 인물로 제시한다. 모세는 애굽의 종살이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영도자로 필요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애굽 왕궁 사십 년과 미디안 광야 사십 년을 경험하게 하셨다. 애굽의 체제와 학문을 알고 광야의 길을 아는 준비가 출애굽 사역에 필요했다.
모세는 팔십 년의 준비를 마친 뒤에도 순종의 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는 자신이 입이 뻣뻣하고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론을 돕는 자로 붙이시고 표적과 능력을 주셨다. 모세는 결국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과 은사를 붙여 그 일을 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배웠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는 사람에게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다윗은 출애굽의 영도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실 왕국의 모습을 보여 줄 왕으로 작정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한 뒤 주변 나라의 공격을 막고 나라를 견고하게 세워야 했다. 그 왕국은 왕 개인의 영광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참왕으로 다스리시는 나라여야 했다. 그러므로 다윗에게는 전쟁에 능한 자질과 함께 자기 위에 계신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는 성품이 필요했다.
다윗은 본래 양을 따르던 목동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목장에서 그를 불러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다(삼하 7:8-9). 목자는 양을 먹이고 위험에서 지키며 길을 잃지 않게 인도한다. 하나님은 양 떼를 돌보던 책임을 통하여 백성을 돌볼 왕의 마음을 준비시키셨다. 왕은 백성을 자기 영광을 위한 도구로 삼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은 양 떼로 알고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다윗에게 맡겨진 왕국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왕국이었다.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의 설교에서 다윗을 칭찬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에서 구주 예수를 세우셨다고 선포했다. 다윗은 약속의 계보 안에 놓인 왕이었고, 그의 왕국은 완전한 종착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를 보여 주는 표상이었다. 예수께서 다윗의 뿌리요 자손으로 일컬어지시는 까닭도 이 구원 경륜과 연결된다.
그러므로 모세의 중심 사명이 애굽에서 백성을 이끌어 내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면, 다윗의 중심 사명은 그 땅에서 하나님 중심의 왕국을 견고하게 세우는 것이었다. 모세에게 율법과 광야의 인도가 중요했다면, 다윗에게는 전쟁과 왕적 통치와 찬양과 예배의 질서가 중요했다. 두 사람 모두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순종해야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사명에 맞는 서로 다른 환경과 자질을 준비시키셨다.
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찬양의 질서를 세우며 성전 건축을 준비했다. 그는 나라의 중심에 자기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예배를 두려 했다. 전쟁에서 이겨 영토를 안정시키는 일과 하나님을 높이는 예배가 함께 가야 했다. 이것이 다윗에게 맡겨진 왕적 사명의 특징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힘만으로 세워지지 않으며, 하나님을 참왕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뜻에 복종할 때 든든히 세워진다.
4. 다윗은 든든한 왕국을 이 땅에 세워야 할 왕으로서 어떤 자질을 준비해야 했는가?
다윗에게 먼저 필요했던 자질은 전쟁에 능한 전사의 자질이었다. 당시 왕은 주변 나라의 공격을 막고 백성을 보호해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어느 날 갑자기 골리앗 앞에 세우지 않으셨다. 가족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막내로서 들에서 양을 치게 하셨고, 그 자리에서 사자와 곰을 상대하게 하셨다. 사람의 눈에는 뒤처진 자리였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왕을 만드는 훈련장이었다.
다윗에게 양 한 마리는 가벼운 소유물이 아니었다. 사자나 곰이 새끼를 물어 가면 뒤쫓아 가서 치고 그 입에서 양을 건져 냈다. 짐승이 일어나 자신을 해하려 하면 수염을 잡고 쳐 죽였다. 이 경험은 골리앗 앞에서 갑자기 생긴 용기가 아니었다. 그는 아무도 보지 않는 작은 전쟁에서 책임과 담력을 배웠다. 무엇보다 자신을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건지신 분이 여호와이심을 알았다(삼상 17:34-37).
다윗은 골리앗의 키와 무기를 먼저 보지 않았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가 모욕당하는 것을 보았다. 자신이 강하다고 자랑한 것도 아니다. 과거에 구원하신 여호와께서 이번에도 건지실 것을 믿었다. 이것이 영적 전사의 자질이다. 오늘날 주의 일꾼은 사람과 혈육을 원수로 삼는 것이 아니라 배후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과 싸울 줄 알아야 한다. 동시에 승리를 자기 능력으로 착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도구를 들어 쓰셨음을 알아야 한다.
두 번째는 찬양하는 자질이었다. 목동의 들판은 다윗에게 찬양의 학교가 되었다. 그는 자연 만물을 바라보며 창조주 하나님을 찾았고 수금을 타며 하나님을 노래했다. 가족 안에서 소외된 자리에 있었어도 비관에 머물지 않았다. 자신이 양을 돌보는 동안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보시는 참목자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여호와는 자신의 목자시며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었다(시 23:1-4).
찬양은 다윗에게 취미나 장식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고백하고 자기 영혼을 하나님께 맞추는 일이었다. 그는 왕이 된 뒤에도 찬양을 나라의 중심에 두었다. 레위인 가운데 사천 명이 다윗이 만든 악기로 여호와께 찬송하도록 조직했다(대상 23:5). 목동 한 사람이 들판에서 정성껏 올린 찬양이 훗날 공동체의 예배 질서를 세우는 자질이 되었다.
세 번째는 영을 분별하고 악한 영을 물리치는 자질이었다. 사울을 번뇌하게 하던 악령이 임할 때 다윗이 수금을 타면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떠났다(삼상 16:23). 음악 자체가 자동으로 귀신을 쫓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맡기신 찬양과 영적 권세가 함께 쓰인 것이다. 다윗은 눈에 보이는 전쟁만이 아니라 영적 전쟁을 감당할 준비도 갖추었다.
전사의 담력과 찬양자의 마음과 영 분별의 은사는 서로 떨어진 준비가 아니었다. 다윗이 맡은 양을 사랑하고, 들판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구원하시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한 삶 안에서 함께 자랐다. 하나님은 작은 책임에 충성하는 시간을 통하여 장래의 사명에 필요한 자질을 준비시키신다. 지금 맡은 자리가 작아 보여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자질은 사람을 쓰임받게 하는 첫 단계일 뿐이다. 전쟁을 잘하고 찬양을 잘하며 영적 은사가 있다고 해서 합당한 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은사를 자기 것으로 착각하면 전사의 힘은 폭력이 되고, 찬양은 자기 이름을 높이는 수단이 되며, 영적 권세는 사람을 지배하는 도구가 된다. 그래서 다윗에게는 자질보다 더 깊은 성품의 준비가 필요했다.
5. 다윗은 과연 주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성품들을 어떻게 갖추게 되었는가?
다윗에게 준비된 성품은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겸손과 사랑과 신실함과 절제와 온유다. 이 성품들은 왕궁에서 이론으로 배운 것이 아니다. 목동의 자리와 사울의 추격, 광야의 공동체, 요나단과의 언약, 아비가일의 권면 같은 실제 사건을 통하여 훈련되었다. 하나님은 다윗이 왕좌에 오르기 전에 권력을 바르게 사용할 성품부터 준비시키셨다.
첫째, 다윗은 겸손했다. 그는 자신이 본래 이름 없는 목동이었고 하나님께서 목장에서 불러 왕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왕이 된 뒤에도 자신 위에 여호와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했다. 겸손은 자기를 쓸모없는 존재라고 학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에게서 무엇을 받았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다. 다윗은 받은 자리의 크기보다 그 자리를 주신 분의 크기를 보았다.
그에게 왕권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였다. 밧세바 사건으로 큰 죄를 범했을 때 왕좌를 지켜 달라고 먼저 구하지 않았다.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시며, 자신을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말고 성령을 거두지 말아 달라고 간구했다(시 51:10-12). 그는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난 것을 보았기에 은사와 지위가 남아도 하나님께 버림받으면 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둘째,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다. 왕궁이 평안해졌을 때 자신은 백향목 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마음 아파했다(삼하 7:1-3). 하나님께서 먼저 집을 지어 달라고 요구하신 것이 아니었다. 다윗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어 드리고 싶다는 사랑이 나온 것이다. 그는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렸으므로 직접 성전을 건축하지는 못했지만, 아들 솔로몬이 건축하도록 재료와 질서를 준비했다.
셋째, 다윗은 사람과의 약속에 신실했다. 광야에서 그에게 모인 사람들은 처음부터 잘 훈련된 용사들이 아니었다. 환난 당한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모였고 그 수가 사백 명가량이었다(삼상 22:2). 다윗은 그들을 버리지 않고 우두머리가 되어 책임졌다. 어려운 사람들을 품고 함께 훈련하며 공동체를 세우는 과정에서 왕의 신실함이 자랐다.
요나단과 맺은 약속에도 신실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처럼 다윗을 경쟁자로 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실 것을 알아보고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으며, 위험을 알려 다윗을 보호했다. 다윗은 왕이 된 뒤 요나단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을 찾아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사울의 밭을 돌려주고 항상 왕의 상에서 먹게 했다(삼하 9:7).
넷째, 다윗은 인내하고 절제했다. 사울은 약 십 년 동안 다윗의 생명을 노렸지만, 다윗은 엔게디 광야의 굴과 십 광야의 진영에서 사울을 죽일 기회를 두 번이나 거절했다. 엔게디의 굴에서는 사울의 겉옷 자락만 베고도 마음이 찔렸다. 사울이 이미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것을 알았어도 그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라는 질서를 무시하지 않았다(삼상 24:6).
다윗은 보복할 권한을 하나님께 돌려드렸다. 여호와께서 자신과 사울 사이를 판단하시고 필요하면 사울에게 보복하실 것이나, 자기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다고 했다(삼상 24:12). 이것은 사울의 악을 옳다고 인정한 태도가 아니다. 사울의 잘못을 분명히 알면서도 자신이 심판자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은 것이다. 자기 위치와 하나님의 위치를 구별하는 겸손이 절제를 가능하게 했다.
다섯째, 다윗은 온유함을 배웠다. 갈멜에서 다윗의 사람들이 나발의 목자들을 보호했지만, 나발은 양털을 깎는 풍성한 날에도 다윗의 요청을 모욕적으로 거절했다. 다윗은 분노하여 사람들을 이끌고 나발의 집을 치러 갔다. 그때 아비가일이 길을 막고 지혜롭게 권면했다. 다윗이 친히 보복하여 무죄한 피를 흘리면 장차 왕이 되었을 때 마음에 걸림과 슬픔이 될 것이라고 일깨웠다.
아비가일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실 것이며 그의 생명은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여 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호하실 일을 다윗이 혈기로 대신하지 말아야 했다(삼상 25:28-31). 바른 조언은 상대의 사명을 무너뜨리는 정죄가 아니라 그 사명이 한순간의 실수로 더럽혀지지 않게 붙드는 말이다.
다윗의 훌륭함은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즉시 멈춘 데에 있다. 그는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이라는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다. 한 여인의 권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혈기를 막으셨음을 인정했다. 절제는 화가 전혀 나지 않는 성품이 아니라 화가 났을 때 하나님의 뜻을 듣고 행동을 멈출 수 있는 힘이다. 온유는 약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강한 힘을 하나님의 뜻 아래에 두는 성품이다.
다윗은 처음부터 모든 성품이 완성된 사람이 아니었다. 사울의 추격을 받으며 인내와 절제를 배웠고, 요나단과 광야의 사람들을 통하여 사랑과 신실함을 배웠으며, 아비가일의 권면을 통하여 혈기와 분노를 다스리는 온유함을 배웠다. 하나님은 사람과 사건을 사용하여 왕의 성품을 빚으셨다. 좋은 동역자는 무조건 우리 편을 들며 감정을 부추기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사명을 잃지 않도록 필요한 순간에 멈춰 세워 주는 사람이다.
6. 마지막 훈련 코스로서 다윗은 어떻게 순종할 준비를 하게 되었는가?
다윗의 준비는 자질과 성품에서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훈련 코스는 순종이었다. 자질은 일을 감당할 능력이고, 성품은 그 능력을 바르게 담는 그릇이다. 그러나 자질과 성품이 있어도 하나님의 때와 방법에 순종하지 않으면 자기 뜻을 이루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일꾼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만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누구의 뜻을 따라 할 것인가를 배워야 한다.
모세도 마지막에는 순종을 배웠다. 팔십 년 동안 준비된 뒤에 자신이 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하나님께서 아론과 은사와 능력을 붙여 주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인정할 때 출애굽의 도구로 쓰일 수 있었다. 다윗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에 능하고 찬양과 영적 은사를 받았지만, 그 능력을 자기 때와 감정대로 쓰지 않고 하나님의 통제 아래에 두어야 했다.
순종의 핵심 시험은 사울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났다. 십 광야에서 사울과 군대가 깊이 잠들자 아비새는 창으로 사울을 단번에 찌르겠다고 했다. 다윗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여호와께서 사울을 치시든지 죽을 날이 이르든지 전장에서 망하든지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며, 자신은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지 않겠다고 했다(삼상 26:9-11).
다윗에게 왕좌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였다. 사울을 죽이면 더 빨리 왕이 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질서를 깨뜨리면서 얻는 왕좌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약속을 자기 손으로 앞당기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때를 기다렸다. 순종은 결과가 늦어져도 하나님의 방법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기다림은 무능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다스리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신다는 약속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방법까지 믿었다. 이것이 사울과 다윗의 차이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도 자기에게 좋아 보이는 방법을 섞었다. 다윗은 자기에게 유리한 기회가 와도 그것이 하나님의 질서를 어기면 거절했다. 순종은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인간의 기술이 아니라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태도다.
순종하려면 자신을 점검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누구도 스스로 온전하지 않다. 자기 눈으로 자기 전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성경에 근거하여 점검해 줄 영적 지도자가 필요하다. 다윗에게는 사무엘과 나단과 갓 같은 선지자가 있었고, 요나단과 아비가일 같은 동역자가 있었다. 그들은 다윗을 무조건 칭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도왔다.
은사와 영적 체험도 점검받아야 한다. 귀신의 가르침을 성령의 인도라고 착각하면 강한 체험이 오히려 잘못된 길을 확신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성경을 기준으로 삼아 영을 분별하고, 바른 지도자의 권면을 들으며, 지적받을 때 변명보다 말씀을 앞세워야 한다.
돕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도 순종이다. 요나단은 다윗의 생명을 지켰고, 아비가일은 다윗이 무죄한 피를 흘리지 않게 막았으며, 광야의 용사들은 함께 전쟁을 수행했다. 하나님은 사명을 주실 때 은사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을 붙이신다. 동역자의 도움을 하나님의 손길로 받아야 한다.
자신의 분량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두 달란트만 남기면 게으른 것이지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의 일을 억지로 흉내 내면 맡기지 않은 짐에 눌릴 수 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필요한 자질과 은사를 주시고 살아온 과정을 통해 사명을 준비시키신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받은 분량을 발견하여 성품과 순종으로 감당해야 한다.
결국 자질과 성품과 순종은 함께 가야 한다. 자질은 일을 감당하게 하고, 성품은 그 일을 바르게 담게 하며, 순종은 그 일을 하나님의 뜻과 방법 안에서 이루게 한다. 영적 지도자와 동역자는 이 세 가지가 어긋나지 않도록 점검하고 보완한다. 이 준비가 함께 이루어질 때 은사는 사람을 살리고, 직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일꾼은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맡은 길을 걸어갈 수 있다.
7. 나오며
하나님이 보낸 사람 다윗이 어떤 사명을 위하여 준비되었고 쓰임받았는지를 살펴보았다. 모세가 애굽의 종살이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영도자로 준비되었다면, 다윗은 그 땅에 하나님 중심의 든든한 왕국을 세울 왕으로 작정되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맡기신 사명에 맞게 환경과 자질과 만남을 준비하신다.
다윗에게는 왕국을 지킬 전사의 자질과 하나님을 높일 찬양자의 자질과 영을 분별하고 악한 영을 물리칠 영적 자질이 필요했다. 이 준비는 왕궁이 아니라 목동의 들판에서 시작되었다. 사자와 곰에게서 양을 지키는 책임, 홀로 수금을 타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 자신을 건지신 여호와를 신뢰하는 믿음이 골리앗과 전쟁과 왕국을 감당할 자질로 자랐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질보다 성품을 더 깊이 다루셨다. 다윗은 자신이 목장에서 불려 나온 사람임을 기억함으로 겸손을 지켰고, 자기 왕궁보다 하나님의 궤를 먼저 생각함으로 사랑을 나타냈다. 광야의 사람들을 책임지고 요나단과의 언약을 지킴으로 신실함을 보였으며, 사울을 죽일 기회에 칼을 거둠으로 인내와 절제를 배웠다. 아비가일의 권면을 듣고 분노를 멈춤으로 온유함을 갖추었다.
마지막에는 순종이 필요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그 약속을 자기 손으로 앞당기지 않았다. 왕좌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때와 질서를 기다렸다. 자질이 있어도 성품이 없으면 은사가 자신을 무너뜨리고, 성품이 있어도 순종하지 않으면 자기 뜻을 행하게 된다. 자질과 성품과 순종이 함께 준비되어야 하나님께서 안심하고 맡기시는 일꾼이 될 수 있다.
우리도 자신의 준비 상태를 정직하게 점검해야 한다. 자질은 있는데 성품이 부족하지 않은지, 성품을 말하면서 실제 순종을 미루고 있지 않은지, 은사를 자기 것으로 여기고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한다. 성령의 인도와 귀신의 속임을 분별하기 위하여 성경을 가까이하고, 자신을 점검해 줄 영적 지도자와 지혜로운 동역자의 권면을 받아야 한다. 은사가 크다는 이유로 점검을 면제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 교만의 영과 완고하게 하는 악한 영을 경계해야 한다.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이고, 권면을 거부하며, 받은 은사로 자기 이름을 높이려는 마음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은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사용해야 한다. 주님께서 붙여 주신 사람을 사랑하고 약속에 신실하며, 분노가 일어날 때 하나님의 뜻 아래에서 절제하고, 잘못을 깨달으면 즉시 돌이켜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나온 시간을 헛되게 버리지 않으신다. 지금의 작은 책임과 외로운 자리와 반복되는 시험도 장래의 사명을 위한 훈련이 될 수 있다. 남의 분량을 탐내지 말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 전쟁의 자질을 준비하되 승리를 자랑하지 않고, 찬양의 은사를 사용하되 자기 이름을 높이지 않으며, 영적 권세를 받되 언제나 주님의 도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쓰임받는 것만을 구하지 말고 바르게 준비되어 끝까지 쓰임받기를 구해야 한다. 자질과 성품과 순종을 함께 갖추고, 성경과 영적 지도자의 점검 아래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람과 사명을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 그리하여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5년 02월 05일(수)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