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역자론(02)]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기 위해서 사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은?(딤후2:20~21)_2025-01-21(화)
https://youtu.be/F4bwyYQniGk
1. 들어며
사람은 우연히 이 땅에 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육체로는 부모의 유전자를 따라 태어나지만, 영으로는 하나님께서 뜻을 두고 보내신 존재다. 그러므로 인생에는 보냄이 있고, 때가 되면 부르심이 있으며, 그 부르심을 따라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 이 사실을 모르면 신앙생활은 쉽게 흔들린다. 어떤 일을 하다가도 다른 길로 옮겨 가고, 사람의 말에 휘둘리며, 고난이 오면 뒤로 물러서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왜 이 시대에, 왜 이 가정에, 왜 이 말씀 앞에 세우셨는지를 아는 사람은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권면했다(벧후1:10~11). 여기서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목적 있게 불러내신 사실을 가리키며, 택하심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자신의 뜻 안에서 구별하셨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부르심을 굳게 한다는 것은 막연한 종교 감정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자리와 길을 확인하고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것이다.
벧후1:10~11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그리하면 결코 실족하지 아니하리니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그러나 부르심을 말할 때에는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일반적 부르심이 있고, 특정한 시대와 사역을 위하여 따로 보내심을 받은 특별한 부르심이 있다. 일반적 부르심을 받은 사람도 결코 작은 존재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구원받고, 자기 집을 구원으로 이끌며,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과 함께 복음의 길을 섬겨야 한다.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말씀과 회개와 영적 전쟁의 현장에서 많은 영혼을 깨우기 위하여 더 엄중한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런데 부르심이 있다는 말은 곧 자동으로 완성된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처럼 그릇을 빚으시지만, 그릇이 더러워지면 귀히 쓰임받기 어렵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금그릇으로 부르셨다 할지라도 그가 회개하지 않고, 자기 욕망을 붙들고, 죄와 악한 영에게 붙들려 있으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부르심의 문제는 반드시 회개와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사람은 어떤 부르심으로 부르심을 받으며, 하나님께 쓰임받을 그릇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람은 어떤 부르심으로 부르심을 받는가?
사람은 먼저 성도로 부르심을 받는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들”이라고 했다(롬1:7). 여기서 성도는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만이 아니다. 하나님께 속하도록 불러냄을 받은 거룩한 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것은 우연한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내셨다는 증거다. 하나님은 죄와 세상과 우상 가운데 있던 사람을 복음으로 부르시고, 회개와 믿음으로 주께 돌아오게 하신다.
롬1: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 일반적 부르심의 첫 목적은 구원이다. 사람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회개함으로 구원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첫 열매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바울과 실라는 주 예수를 믿으라고 말했고, 그리하면 그와 그의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다(행16:31). 이것은 한 사람이 먼저 믿는 일이 개인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먼저 믿은 자는 자기 집과 자기 주변을 향한 하나님의 통로가 된다.
행16: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일반적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자기 구원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먼저 믿은 사람은 집안의 신앙적 장자가 되어야 한다. 혈통의 장자는 따로 있을 수 있지만, 영적인 장자는 먼저 주님을 붙든 사람이다. 가족이 반대하고, 오해하고, 조롱해도 정도의 길을 걸어야 한다. 주일과 말씀과 회개를 가볍게 여기면서 가족 전도를 말하면 힘이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이 오래도록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지조를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믿음을 통하여 집안의 문을 여신다.
또한 사람은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는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는 자리로, 어떤 사람은 찬양하는 자리로, 어떤 사람은 전도와 섬김의 자리로, 어떤 사람은 물질로 복음의 길을 돕는 자리로 부르심을 받는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강단에 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사람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데 참여해야 한다. 일반적 부르심은 작지 않다. 그 부르심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자에게도 하늘의 상이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사람은 특별한 사명으로 부르심을 받는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고백했다(롬1:1).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모든 신자의 기본 부르심이라면,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특별한 사역을 위한 부르심이다. 하나님은 특정한 시대, 특정한 말씀, 특정한 영적 전쟁을 위하여 사람을 따로 준비하여 보내신다.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따라서 사람은 크게 두 부르심 안에 있다. 하나는 구원받고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도록 부르시는 일반적 부르심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특정한 경륜을 이루기 위하여 사역자로 세우시는 특별한 부르심이다. 둘 중 어느 부르심이든 가벼운 것은 없다. 일반적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자기 집과 교회를 살려야 하고,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더 큰 책임과 고난을 감당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기 부르심을 알고 그 자리에서 충성하는 것이다.
3. 일반적 부르심과 특별한 부르심은 어떻게 다른가?
일반적 부르심은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다. 그 목적은 구원과 거룩함과 증인의 삶이다. 성도는 죄에서 부르심을 받았고, 세상에서 구별되어 주님께 속한 자가 되었으며, 이제는 자기 집과 주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주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모든 성도가 감당해야 할 일반 사명의 원리다(행1:8).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일반적 부르심은 먼저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예루살렘은 내 가정과 내 교회와 내 주변이다. 많은 사람이 땅끝을 꿈꾸지만 집안 복음을 가볍게 여긴다. 그러나 주님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증인이 되게 하신다. 기생 라합은 자기만 살지 않고 가족을 모아 살렸다. 빌립보 간수도 자기 집과 함께 복음을 들었다. 먼저 믿은 자에게는 가족 구원을 위한 책임이 있다. 이것이 일반적 부르심의 실제다.
특별한 부르심은 다르다. 특별한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특정한 사역을 위하여 구별하시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모태에 짓기 전부터 알려졌고, 배에서 나오기 전에 성별되었으며,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워졌다(렘1:5). 바울도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함을 입고 은혜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했다(갈1:15~16). 이는 특별한 사명자가 자기 열정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보냄 가운데 세워진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렘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갈1:15~16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흔히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은사와 달란트가 주어진다. 다윗은 전쟁에 능한 왕으로 쓰임받기 위해 어릴 때부터 사자와 곰을 상대하며 강하게 빚어졌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쓰임받기 위해 말씀과 율법과 언어와 논리의 훈련을 받았다. 사무엘은 기도의 어머니 한나를 통해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성막 안에서 자랐다. 하나님은 사명에 맞는 길을 미리 준비하신다.
그러나 특별한 부르심이 있다고 해서 그 길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정은 있으나 고정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뜻 있게 보내셨더라도 그가 회개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며, 고난을 싫어하고,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그 사명은 훼손될 수 있다. 사울은 왕의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순종하지 못해 무너졌다. 반대로 다윗은 실수했으나 회개함으로 다시 세움을 받았다. 부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일반적 부르심과 특별한 부르심은 서로 경쟁 관계가 아니다. 특별한 사명자가 있다고 해서 일반 성도의 부르심이 작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특별한 사명자와 일반 성도가 함께 복음의 길을 이루게 하신다. 주께서는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가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마10:40~41). 이것은 보내심을 받은 종과 함께 길을 걷는 사람도 그 사역의 열매와 상에 동참한다는 뜻이다.
마10:40~41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그러므로 일반적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나는 특별 사명자가 아니니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나는 부르심을 받았으니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일반 성도는 자기 자리에서 충성해야 하고, 특별 사명자는 더 많이 회개하고 더 철저히 순종해야 한다. 두 부르심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다.
4. 하나님은 어떤 그릇으로 쓸지를 어떻게 정하시는가?
성경은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비유한다. 토기장이는 흙을 손에 들고 그릇을 빚는다. 어떤 그릇은 귀히 쓰이고, 어떤 그릇은 천히 쓰인다. 그러나 이 비유를 운명론으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사람을 빚으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은 동시에 사람의 회개와 반응도 보신다. 예레미야 18장에 나오는 토기장이의 집에서 그릇이 망가지자 토기장이는 그것을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으로 다시 만들었다(렘18:3~6).
렘18:3~6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은 그 사람을 어느 시대에 보낼지, 어느 나라와 민족에 보낼지, 어느 가정에 보낼지, 남자로 보낼지 여자로 보낼지, 어떤 은사와 달란트를 주어 보낼지를 아신다. 육체적으로는 부모의 유전자를 따라 외모와 기질과 재능을 받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부르심과 사명을 따라 길이 열린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가르치는 달란트를 가지고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찬양과 섬김과 전쟁의 은사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달란트가 있다고 해서 곧 귀히 쓰이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그릇은 두 가지가 함께 필요하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주신 부르심과 은사다. 둘째는 그 그릇의 깨끗함이다. 바울은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으며,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곧이어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고 말했다(딤후2:20~21). 이것이 핵심이다. 그릇의 재료보다 중요한 것은 그릇의 정결이다.
딤후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특별한 사명으로 보내셨더라도 그가 더러우면 쓰임받기 어렵다. 반대로 처음 보기에는 질그릇처럼 보일지라도 회개하고 깨끗하게 되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토기장이시라는 말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알아서 쓰신다”는 뜻이 아니다. 토기장이의 손에 자신을 맡기고, 깨뜨려지고, 다시 빚어지고, 깨끗하게 준비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사람은 자기 부르심을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의 예언 한마디를 붙들고 자신이 큰 사명자라고 생각하지만, 말씀도 모르고 회개도 하지 않으며 순종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릇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다. 하나님은 허황된 꿈을 좇는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준비된 사람을 쓰신다. 사명자는 자기가 어떤 그릇인가를 묻기 전에, 지금 깨끗한 그릇인가를 물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은 그릇을 쓰실 때 공동체 안의 질서를 무시하지 않으신다. 말씀을 맡은 자, 교회를 감독하는 자, 앞서 훈련받은 자가 있다. 은사와 달란트가 있다고 해서 질서를 깨뜨리면 그릇은 금방 더러워진다. 토기장이가 그릇을 빚을 때도 불과 물과 손길을 거친다. 사명자도 말씀과 회개와 순종과 고난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을 통과할 때 비로소 주인의 손에 붙들린 그릇이 된다.
5. 쓰임받을 그릇이 되기 전 반드시 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께 쓰임받을 그릇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다. 회개 없이 쓰임받으려는 것은 더러운 그릇에 거룩한 것을 담으려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능력이 없어서 사람을 쓰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더러워서 쓰임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악한 영들이 안에 가득하고, 조상들의 우상숭배와 자신의 죄가 정리되지 않았는데 은사와 사명만 구하면 위험하다.
회개는 단지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수준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며, 예수의 피로 씻김을 받아야 한다. 우상숭배, 음란, 거짓, 탐욕, 교만, 혈기, 미움, 원망, 불순종, 반역의 죄를 주님 앞에 내놓아야 한다. 자신이 지은 죄뿐 아니라 조상으로부터 흘러온 죄의 흐름도 끊어야 한다. 그래야 악한 영이 붙들고 있던 합법적 근거가 무너진다.
요한일서는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한다(요일1:9). 여기서 자백은 헬라어 호몰로게오와 관련하여 “같은 말을 하다, 인정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하나님께서 죄라고 하시는 것을 나도 죄라고 인정해야 한다. 핑계하지 않고, 합리화하지 않고, 남 탓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주님, 맞습니다. 제가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한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회개는 세 가지 방면을 포함한다. 첫째, 지적인 회개다. 내가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말씀 앞에서 깨닫는 것이다. 둘째, 감정적인 회개다. 그 죄 때문에 주님을 아프게 했음을 애통하는 것이다. 셋째, 의지적인 회개다. 그 죄에서 돌이켜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가룟 유다는 무죄한 피를 팔았다고 인정했고 마음으로 뉘우쳤지만 주님께 돌아가지 않고 스스로 목매었다. 그것은 회개의 완성이 아니라 후회에 머문 것이다. 참된 회개는 반드시 주님께 돌아간다.
회개는 사명자의 첫 단추다. 특별한 부르심이 있어도 회개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은사가 있어도 회개하지 않으면 교만해진다. 말씀을 알아도 회개하지 않으면 사람을 살리는 말씀이 아니라 정죄하는 지식이 된다. 그러므로 쓰임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회개하는 사람이다.
또한 회개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처음 회개는 구원의 길로 들어가게 하지만, 날마다의 회개는 그릇을 깨끗하게 유지하게 한다. 사역자는 사역이 커질수록 더 많이 회개해야 한다. 사람들의 인정이 올 때 교만을 회개해야 하고, 물질이 들어올 때 탐욕을 회개해야 하며, 반대가 올 때 혈기와 미움을 회개해야 한다. 회개가 멈추는 순간 사명자는 자기 안의 악한 영에게 틈을 내주게 된다.
6. 회개와 칭의는 어떻게 다른가?
회개와 칭의는 구별해야 하지만 분리해서는 안 된다. 칭의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법정적 선언이다. 사람은 자기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 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했다(롬3:23~24).
롬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칭의의 근거는 예수의 피다. 사람이 착해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화목제물로 오셔서 우리의 죄값을 담당하셨기 때문에 믿는 자에게 의롭다 하심이 주어진다. 그러므로 칭의는 속죄와 연결된다. 레위기의 제사법이 피를 통하여 죄를 덮는 속죄를 보여 주었다면,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그 속죄를 완성한다.
그러나 회개는 단순히 법정적 지위만을 말하지 않는다. 회개는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가는 실제적인 방향 전환이다. 처음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의 길에 들어가게 한다. 그리고 계속되는 회개는 성도의 삶을 깨끗하게 한다. 그래서 요한일서 1장 9절은 이미 믿는 자들에게도 죄를 자백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자백하는 자의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러므로 칭의와 회개는 이렇게 구분할 수 있다. 칭의는 예수의 피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이다. 회개는 그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가 실제 삶에서 죄를 자백하고 악한 영의 근거를 끊으며 깨끗해지는 길이다. 칭의는 신분과 지위의 문제이고, 회개는 관계와 정결과 성화의 문제다. 칭의가 없으면 죄인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회개가 없으면 의롭다 함을 받은 성도라도 더럽혀진 삶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둘을 혼동하면 큰 문제가 생긴다. 어떤 사람은 칭의를 강조하다가 “나는 이미 의롭다 함을 받았으니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위험하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회개를 자기 공로로 만들어 “내가 많이 회개했으니 내가 의롭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잘못이다. 회개는 의롭다 함을 사는 값이 아니다. 회개는 예수의 피로 받은 은혜 안에서 더 깨끗하게 주님께 돌아가는 길이다.
레위기적으로 말하면, 속죄와 정결은 둘 다 필요하다. 피는 속죄를 말하고, 물과 피는 정결을 말한다. 예수께서 물과 피로 임하셨다는 요한일서의 말씀은 그분이 우리를 속죄하시고 또한 깨끗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요일5:6).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의 피로 의롭다 함을 받고, 날마다 회개함으로 정결해져야 한다.
요일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 구원받은 성도가 회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구원받은 성도가 회개하지 않으면 가장 먼저 정결이 막힌다. 예수의 피로 속죄의 은혜를 받았더라도, 실제 삶에서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더러움이 남아 있다. 죄가 남아 있으면 악한 영이 근거를 가진다. 그 근거를 통해 질병, 가난, 두려움, 음란, 혈기, 우울, 원망, 교만, 불순종이 계속 역사할 수 있다.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는 성도는 구원받았다는 이름은 있어도 실제 삶에서는 귀신에게 눌려 살 수 있다.
회개하지 않으면 영적 성장이 멈춘다. 어린아이 신앙에 머물게 된다. 아가서의 관점에서 보면, 신부는 백합화와 비둘기 같은 순결의 단계에서 멈추면 안 된다. 원수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전투하는 신부가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다른 신부를 낳고 양육하는 신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죄와 상처와 악한 영에게 계속 묶이므로 전투하는 신부로 자라지 못한다. 순결한 마음도 흐려지고, 주님의 임재도 놓치게 된다.
회개하지 않으면 사명도 막힌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귀한 그릇으로 쓰고자 하셔도 더러운 그릇은 쓰기 어렵다. 바울은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다고 했다(딤후2:21). 이 말씀은 반대로 자기를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지 않다는 뜻도 된다. 은사와 달란트가 있어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 은사는 오남용될 수 있고, 사역은 자기 자랑이나 사람을 붙드는 일로 흐를 수 있다.
딤후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회개하지 않으면 징계가 올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신다. 징계는 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돌이키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징계를 받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더 큰 환난으로 들어갈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의 이세벨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그녀가 회개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씀하신다(계2:21~23). 주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시며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으신다.
계2:21~23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더 무서운 것은 끝까지 이기지 못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주님은 사데 교회에 이기는 자는 흰 옷을 입을 것이며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계3:5). 이 말씀은 성도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말씀이다. 구원받았다는 이름만 붙들고 회개하지 않으며 죄 가운데 살다가 끝내 이기지 못하면, 생명책의 이름 문제까지도 두렵게 살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나는 이미 구원받았으니 괜찮다”는 방심을 버려야 한다.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경고가 있다는 것은 동시에 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있다는 뜻이다. 다윗은 무서운 죄를 범했지만 회개함으로 다시 세움을 받았다.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 통곡하고 돌이켜 사명을 회복했다. 삼손도 은사를 잃은 것처럼 보였으나 마지막 순간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회개는 회복의 문이다. 성도는 넘어졌다는 사실보다 회개하지 않는 상태를 더 두려워해야 한다.
8. 오늘날 내가 흔히 행할 수 있는 실수는 무엇인가?
오늘날 성도가 흔히 행할 수 있는 첫 번째 실수는 부르심을 욕망과 혼동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신다는 말은 내가 높아진다는 뜻이 아니다. 사명은 자기 이름을 내는 길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는 길이다. 그런데 사람은 쉽게 “나는 특별하다”는 생각에 빠진다. 특별한 부르심을 말하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말씀을 배우지 않고, 질서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명이 아니라 자기 욕망일 수 있다.
두 번째 실수는 일반적 부르심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나는 특별 사명자가 아니니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성도에게도 귀한 사명이 있다. 자기 집을 살리고, 교회를 세우고, 복음의 길을 돕는 일이 있다.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가 선지자의 상을 받듯이, 하나님이 보내신 일을 함께 섬기는 자에게도 상이 있다. 그러므로 작은 섬김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 냉수 한 그릇도 주님은 기억하신다.
마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세 번째 실수는 칭의를 회개의 면허증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나는 예수 믿고 의롭다 함을 받았으니 이제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적 믿음이 아니다. 칭의는 예수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은혜다. 그러나 회개는 그 은혜 안에서 계속 정결하게 되는 길이다. 회개 없는 칭의 이해는 결국 성도를 방심하게 하고, 악한 영에게 합법적 근거를 남겨 준다.
네 번째 실수는 사람을 원수로 보는 것이다. 사명자의 길에는 반대자가 있고,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으며,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도 있다. 그러나 성도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미워하면 악한 영이 원하는 길로 들어간다.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영을 분별해야 한다. 사람은 살려야 하고, 악한 영은 대적해야 한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사명자는 분노와 혈기에 묶인다.
다섯 번째 실수는 고난이 오면 부르심을 의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면 모든 길이 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사명자들은 거의 모두 고난을 통과했다.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고도 오랜 시간 쫓겨 다녔다. 예레미야는 맞고 갇혔다. 바울은 수없이 고난을 당했다. 고난은 부르심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라, 그릇이 빚어지는 과정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고난 속에서 회개와 순종을 잃지 않는 것이다.
여섯 번째 실수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다. 조급하면 사울처럼 월권하게 된다. 조급하면 사람의 방법으로 길을 열려고 한다. 조급하면 말씀보다 결과를 앞세운다. 그러나 사명자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은 무기력이 아니다. 기다리는 동안 더 깊이 회개하고,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며, 맡겨진 작은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
일곱 번째 실수는 사랑하는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다. 사명자의 길에는 반드시 내려놓음의 시험이 온다. 직업, 취미, 안정, 사람의 인정, 가족의 기대, 자기 꿈까지 주님 앞에 올려놓아야 할 때가 있다.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그 지점이 약점이 된다. 사명자는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의 주인이 주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실수는 회개를 뒤로 미루는 것이다. “나중에 하겠다”는 마음은 위험하다. 오늘 주님이 책망하시는 죄가 있다면 오늘 돌이켜야 한다. 회개를 미루면 더러움은 깊어지고, 악한 영은 더 강하게 자리를 잡으며, 영적 감각은 둔해진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길이 열린다. 부르심은 회개하는 사람 안에서 선명해지고, 그릇은 회개를 통하여 깨끗해지며, 사명은 회개한 자를 통하여 안전하게 이루어진다.
9. 나오며
우리는 사람의 부르심과 일반적 부르심과 특별한 부르심,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그릇 준비와 회개와 칭의의 차이, 그리고 회개하지 않는 성도의 위험과 오늘날 흔히 범할 수 있는 실수들을 살펴보았다. 하나님은 사람을 우연히 보내지 않으신다. 성도로 부르시고, 가정을 살리게 하시며, 교회를 세우게 하신다. 또한 어떤 사람은 특별한 시대와 사역을 위하여 따로 구별하신다.
그러나 부르심은 방심의 근거가 아니라 책임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 일반적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자기 집과 교회와 복음의 길을 충성스럽게 섬겨야 한다.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는 더 많이 회개하고, 더 깊이 말씀 앞에 서며, 더 큰 고난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부르심이 클수록 그릇은 더 깨끗해야 하고, 사명이 클수록 자기 부인을 더 깊이 배워야 한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이시다. 그러나 토기장이의 손에 붙들린 흙은 깨어지고 빚어지는 과정을 지나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어떤 그릇으로 쓰실지만 궁금해할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깨끗한 그릇인지 살펴야 한다. 회개는 그릇을 깨끗하게 하는 길이다. 칭의는 예수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은혜이며, 회개는 그 은혜 안에서 실제로 죄를 자백하고 정결해지는 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칭의를 붙들되 회개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가 회개하지 않으면 영적 성장은 막히고, 악한 영의 근거는 남으며, 사명은 흐려질 수 있다. 더 나아가 끝까지 이기지 못하는 자의 위험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회복의 길이 있다. 다윗도 회개했고, 베드로도 회개했으며,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다시 세우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넘어졌다는 사실보다 회개하지 않는 상태를 더 두려워해야 한다.
오늘의 실수는 대개 큰 데서 오지 않는다. 작은 방심, 작은 타협, 작은 교만, 작은 미룸에서 시작된다. 부르심을 욕망으로 착각하지 않아야 하고, 일반 사명을 작게 여기지 않아야 하며, 칭의를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 면허증으로 삼지 않아야 한다. 사람을 원수로 보지 않아야 하고, 고난 때문에 부르심을 의심하지 않아야 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마지막 시대의 성도는 자기 부르심을 굳게 해야 한다. 일반 성도는 일반 성도답게 충성해야 하고, 특별 사명자는 특별 사명자답게 자신을 더 정결하게 해야 한다. 모두가 한 몸 안에서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리하여 회개로 깨끗해지고 부르심을 굳게 하여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으로 준비되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5년 01월 21일(화)
정보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