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제 성 경 연 구 원 2014-2 강의안 게재/김양일 목사 편저

작성일 작성자 주평화

 

 

 

국 제 성 경 연 구 원

 

(김양일 목사 편저)

 

성경에 대한 이해와 적용을 위한 자료

 

1. 성경의 구성과 분류(P 2-4)

 

2.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와 이론(P 5-18)

 

3. 신약 성경 연구에 대한 요약(P 19-37)

 

4. 성경 통독에 대하여(P 38-41)

 

5. 성경 중요 요절 암송 집(180)(P 42-55)

 

6. 성경 공부에 유익한 인터넷 앱과 블로그(P 56-60)

 

 

1. 성경의 구성과 분류

 

성경은 구약(Old Testament)과 신약(New Testament)으로 대별합니다

 

구약 성경은 총 39권으로, 929, 23090절로 구성되어 있고

 

신약 성경은 총 27권으로, 260, 7949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총 66권에 118931039 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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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Old Testament> 39권의 책

 

(1) 율법서 (5) -- 모세가 기록한 모세 5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우주 만물의 창조와 시작, 인류의 범죄와 타락,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과 그 족장들의 역사를 기록함

 

 

(2)역사서 12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하, 열왕기상 하, 역대상 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BC1500-400 -- 10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흥망성쇠를 기록한 책 입니다

 

가나안 정복 사사시대의 역사, 사울과 다윗 솔로몬의 왕국시대, 그리고 솔로몬 이후 분렬된 왕국인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흥망의 역사와,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에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의 남은 자들에 대한 역사

 

 

(3)시가서 (5)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 훌륭한 시와 지혜의 문학 작품으로 많은 교훈과 위로가 담긴 성경입니다

(4) 대 선지서=(5권의 대 예언서)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예언을 기록한 글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일어날 장래의 일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불신과 배교에 대하여 예언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 입니다

 

 

(5) 소 선지서=소 예언서로 12권입니다.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 호세아부터 스바냐 까지는 바벨론 포로 전에 활동한 선지자들의 이름입니다.

학개. 스가랴. 말라기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후에 활동한 선지자들입니다.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후에 신 구약 중간 약400년의 공백기간이 있었습니다

 

 

신약 (New Testament> 27권의 책

 

(1) 복음서 (4)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과 탄생과 성장, 그리고 3년 반의 공생애 기간 중에 행하신 복음전파 사역과 치유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으며,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승천의 사건을 통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며 기록하신 책입니다.

 

마태복음은 왕이신 예수, 마가복음은 종으로 오신 예수, 누가복음은 인간이신 예수,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각각 강조하고 있습니다.

 

 

(2)역사서 (1)

 

사도행전

 

*예수님 승천하신 후, 성령강림과 함께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하여 세워진 초대교회의 모습과 사도들의 복음 전파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바울 서신 (13)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바울서신은 바울이 쓴 서신으로, 옥중서신 목회서신 일반서신으로 분류합니다.

 

*일반 서신 (6) --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후서

 

*옥중 서신 (4) --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목회 서신 (3) --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교회를 다스리는 법에 대하여 교회 지도자들에게 준 편지입니다.

 

 

(4)공동 서신 8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 1,2,3, 유다서. 히브리서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대해 기록하고 있으며, 믿음과 고난과 재림과 소망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5)예언서 (1)

 

요한계시록

 

* 밧모섬에 유배된 사도요한이, 환상 중에 앞으로 일어날 재림과 세상의 마지막 날의 징조와 영원한 세계에 대한 예언을 기록한 선지서입니다.

 

 

신약성경에 구약의 850번의 성구가 인용됨

 

 

2.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와 이론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여기서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란 첫째로는 성경의 내용, 즉 메시지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리키며, 다음으로는 성경 자체에 대한 바른 이해, 즉 성경이 무엇이며 어떻게 기록되고 전수되어 왔는가 하는 등에 대한 바른 이해, 곧 바른 성경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가 본문 해석에 관한 것이라면, 후자는 본문 형성에 관한 것이다. 필자가 본고에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후자에 관한 것이며 오늘날의 본문 비평학(textual criticism)도 그 가운데의 한 면이다.

 

.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

 

우선 성경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이에 대해서는 딤후3:15 이하가 잘 말해주고 있다. 딤후3:15-17의 말씀은 신·구약 성경 본문 가운데에서 성경 자체에 관하여 가장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구절이다. 그 본문은 성경의 유일성(唯一性)에 관한 논급으로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15절의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는 오직 성경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특질을 가리킨다. 이 세상에는 철학, 역사, 문학, 예술, 과학 등 수많은 분야에 관한 책이 있지만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책은 오직 성경뿐이라는 것이다.

 

둘째, 16절 전반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라는 말씀은 성경의 기원에 관한 것으로서, 이 세상의 모든 다른 책은 단지 인간인 어떤 저자만에 의해 기록된 책인데 대해, 성경만이 (모세, 이사야, 마태, 바울 등 인간 저자와 함께)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책이라는 것이다.

 

셋째, 16절 후반의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는 세상의 다른 모든 책과는 달리 성경만이 가지는 유일한 내용을 가리킨다. 이 세상에 있는 다른 모든 책들은 각기 그 어떤 분야(철학, 역사, 과학, 문학, 예술 등)에 관한 지식을 주는 것인데 대해 성경(바울이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썼을 때는 아직 신약성경이 없었으므로 본문에서의 성경은 구약만을 가리킨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이 말씀을 적용해석할 때는 신약성경도 포함함은 물론이다)만이 인간의 죄를 책망하고 잘못된 것을 옳게(의로)바로잡아 주는 책이라는 것이다.

 

넷째, 17절의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는 성경의 목적을 가리키는 말씀으로서, 이 세상의 다른 모든 책과는 달리 성경은 정치인이나, 경제인, 학자, 기술자, 예술인 등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가 어떠한 사람이든지 간에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네 가지, 즉 성경의 특질, 기원, 내용, 목적은 다 성경의 유일성 또는 독특성을 천명한 것으로서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어떤 성경 본문을 강해하기에 앞서 먼저 성경의 특성에 관한 이 본문을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대한예수교장로회의 12신조는 그 첫 항에서 성경에 관하여 "신구약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규범이다"('유일의 법칙'은 잘못된 표현이다)라고 규정하여 올바른 성경관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이 본문이 담고 있는 세 가지 의미를 생각해 보자.

 

첫째, 신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물론 신구약 성경의 모든 말씀이 실제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란 뜻이 아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말씀 가운데에는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하신 말씀도 있지만(: 1:3 "빛이 있으라"), 그 이외에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말씀(: 5-7장 산상보훈), 신구약 성경의 여러 저자(모세, 이사야, 마태, 바울 등)의 말이 있고(성경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며, 신약의 서신은 전적으로 저자만의 말이다), 천사의 말이 있는가 하면(16:8), 마귀의 말도 있고(4:3), 동물의 말이 있는가 하면(22:28) 식물의 말도 있다(9:9-15). ·구약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본문 가운데의 말이 실제적으로 누구의 말이든지 간에 그것이 성경에 기록될 때는 저자에 의하여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뜻이다.

 

둘째, 성경은 신앙과 행위에 관하여 정확무오한 말씀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적극적인 의미와 소극적인 의미가 있다. 적극적인 의미로는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관해서만 정확무오한 말씀이라는 것이요, 소극적인 의미로는 성경이 신앙과 행위 이외에서는 정확무오한 말씀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실제적인 내용이 밝혀주는 사실이다. , 앞서 딤후3:15에서 본 대로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책으로서의 독특한 성격을 가진다.

 

성경 가운데에는 역사도 있고, 문학도 있고, 과학(당시)도 있으나 성경은 결코 역사책이나 문학책이나 과학책이 아니다. 따라서 성경 안에 기록된 역사나 과학에는 일부 오류가 있는 것도 사실이나(이에 대해서는 후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성경의 오류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본래적으로 역사를 가르치거나 과학을 가르치기 위해서 쓰여진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부 극단 보수주의자들이 마치 성경은 세상의 모든 사항에 대해 정확무오한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는 다르며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관해서만 정확무오한 말씀인 것을 바로 알아야 한다.

 

셋째, '유일의 규범'이라는 의미는 성경만이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관한,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데"(딤후3:15) 정확무오한 규범이라는 것으로서 성경의 절대성을 나타낸다. 세상에는 어떤 고답적인 지식을 전해주는 책도 많고, 성현들의 훌륭한 교훈서도 많지만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관한 절대적인 규범이 되거나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것이 못되며, 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규범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한 가지 부언할 것은 우리가 말하는 성경이란 신·구약 66권을 말하는 것이며 구약의 정경성에 관해서는 마르시온(Marcion, 2세기의 이단자)으로부터 불트만에 이르기까지 부정적인 비평도 있었으나 그것이 잘못된 견해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 개신교는 외경(로마 카톨릭에서는 정경)도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 영감(靈感)과 원본에 대한 바른 이해

 

영감을 의미하는 헬라어는 데오프뉴스토스(theopneustos)는 데오스(theos, 하나님)와 프네오(pneo, 숨쉰다)의 합성으로서, 딤후3:16에만 나오는 낱말(소위 hapakslegomena)로서 하나님께서 성경(원본)을 기록하는 사람에게 기록자가 인간적인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자신(하나님)의 영적인 통제력을 행사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영감으로 쓰였다고 할 때 그 표현은 기록에 보다도 기록자(성경의 원저자)에게 초점을 두는 것이다. 벧후1:21은 이 사실에 대하여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언급하고 있다.

 

성경영감설은 일찍이 유대교의 전통과 신약성경(딤후3:16과 벧후1:21 )을 기초로 하여 형성된 성경관이지만 종교개혁 때까지는 로마 카톨릭교회의 강한 교황권 때문에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있다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란 구호를 외쳤던 종교개혁자들에 의하여 그 권위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부정적인 성경비평학으로 인해 성경의 영감설 내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의 권위가 도전을 받다가 금세기에 와서는 바르트의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Die Theologie des Wort Gottes)에 의하여 다시 그 권위를 되찾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의 권위에 관한 논쟁(영감설과 그에 따르는 성경 무오·유오설)은 그 후로도 바르트와 불트만 및 그의 제자들 사이에서 계속되는 논쟁으로 이어졌고, 미국에서는 1929년 메이첸(G. Machen)이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세움으로써 프린스턴신학교의 분열을 가져오기에 이르렀다.

그러면 이토록 신학의 논쟁점이 되어온 성경영감설은 어떠한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제 이 문제를 영감의 성질, 영감의 방법, 영감의 범위 등으로 나누어 고찰해 보자.

 

첫째, 성경의 영감은 그 성질에 있어서 기계적 영감(mechanical inspiration)이 아니고 유기적 영감(organic inspiration)이다. 극단적 보수주의 신학자들에 의하여 주장되는 기계적 영감설은 성경을 기록한 저자는 성령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아 그들 자신이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성령이 지시하시는 대로만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기록한 성경의 내용에는 저자 자신들의 개인적인 요소(그들의 지식, 경험, 사상, 개성 등)가 개입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메시지를 기록하는데 사용된 기계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유기적 영감설은 하나님께서 성경의 저자를 기계적으로 사용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개인적인 지식이나 경험, 사상이나 개성 등을 그대로 사용하시면서 당신의 메시지를 기록하도록 성령으로 감동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에는 그 기록자의 개인적인 지식, 경험, 사상, 개성 등 뿐 아니라 심지어 그들이 즐겨 쓰는 용어나 문체까지도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살펴볼 때, 성경의 내용이 밝혀 주는 진실은 결코 전자, 즉 기계적 영감이 아니고 유기적 영감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유태인을 위하여 복음서를 쓴 마태는 그가 잘 알고, 또 그의 독자들이 잘 알고 있는 구약성경의 구절을 많이 인용하고 있으며, 누가복음에서는 누가가 당시에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 즉 죄인, 여자, 이방인 등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한복음에는 헬라의 이원주의 사상에 대한 요한의 관심이 반영되어 있으며 그가 애용하는 용어로 '', '생명', '사랑', '진리' 등이 특별히 많이 나타나 있다. 우리는 이상과 같이 성경의 실제적인 사실에서 저자의 개인적 요소가 다 나타난 것을 알 수 있으며, 또 이러한 개인적인 요소가 추호도 하나님의 영감을 제한하거나 배제하지 않은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 성경의 영감은 그 방법에 있어서 축자적 영감(verbal inspiration)이 아니고 개념적 영감(conceptual inspiration)이다. 즉 성경의 영감은 저자(원본의 기록자, 로마서에서와 같이 원본의 기록자와 저자가 다를 때에는 저자)가 성경(원본)을 기록할 때 하나님께서 어휘의 선택이나 자구(字句)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지배하여 조금도 다름(相異)이나 틀림(相違)이 없도록 하셨다는 것이 축자적 영감설인데 대해 개념적 영감설은 저자가 성경을 기록할 때 하나님께서 하신 영감은 그러한 글자 한 자 한 자에 이르기까지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타내고자 하시는 내용을 개념(의미)상으로만 바로 기록하도록 영감하시고, 어휘의 선택이나 표현의 기술 방법 등은 저자에게 맡기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얼른 생각하면 하나님의 영감이 전자와 같은 것이라면 아무런 논란의 여지가 없고 문제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성경의 실제는 전자와 같지 않음을 증명해 주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가 없다. 이러한 사실을 몇 가지 실례를 들어 논증해 본다. 우리는 이러한 실례를 성경 가운데, 그 사본이 아니라 원본에서 동일한 사건이나 사실이 문자적으로 동일하게 기록되지 아니하고 각기 다르게 기록된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논증을 두 가지만 들어보자.

먼저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건을 기술하는데 있어서 4복음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 세밀한 부분에까지 언급하면 문자적으로 다른 것이 열 곳도 넘지만 그 중 세 가지 사실만 들어본다.

 

1. 무덤에 찾아간 사람에 대하여 네 복음서는 다음과 같이 달리 기록하고 있다.

 

마태 :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마가 :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

누가 : "이 여자들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또 저희와 함께 한 다른 여자들"

요한 : "막달라 마리아"

 

2. 그들이 무덤에 간 시각에 대하여는

 

마태 :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마가 :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은 때에"

누가 :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요한 :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

 

3. 무덤에 나타난 실체에 대하여

마태 : "주의 천사"

마가 : "흰옷을 입은 한 청년"

누가 :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

요한 : 언급이 없음

 

위의 예에서 보면, 1에서 무덤에 찾아간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만이 네 복음서에 공통으로 기록되었을 뿐 그 이외는 다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2의 무덤에 간 시각에 대해서는 안식 후 첫날 새벽이라는 점에서는 네 복음서가 공통되나 그 이상의 세밀한 서술에서는 네 복음서가 다 다르다. 3의 무덤에 나타난 실체에 대해서는 기록된 네 복음서가 다 다르다.

다음 가이사랴 빌립보 도상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한 신앙고백의 내용에 대해서도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각각 다음과 같이 달리 기록하고 있다.

 

마태 : "주는(당신은)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가 : "주는(당신은) 그리스도시니이다"

누가 :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위의 예에서 보면 베드로의 고백에서 그리스도라고 한 점은 세 복음서에 공통되나 그 이외는 고백의 내용으로나마(마태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로도 고백), 그 표현에 있어서나(마가에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두 가지의 역사적인 사건을 기술함에 있어서 복음서는 분명히 세 복음서간에, 또 네 복음서간에 문자적으로는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 즉 성경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공통되고(동일하고) 상치되거나 결여된 것이 없다. , 주님 부활하신 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몇 사람이 무덤을 찾아갔다는 사실과 가이사랴 빌립보 도상에서 베드로가 주님께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사실은 조금도 틀림이 없이 기록하고 있다.

 

부활의 사건이 네 번이나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한 번 일어난 사건이요,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가이사랴 빌립보 도상에서는 한 번만 있었던 사건으로 믿을진대, 그리고 그 이야기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을 믿을진대, 그 영감이란 축자적 영감이 아니고 개념적 영감이라는 것이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경우에 성경 저자에 대한 하나님의 영감을 믿으면서 축자적(문자적) 영감을 고집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감의 능력을 제한하는 중대한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그리고 동일한 사건에 대한 복음서간의 기록이 세밀한 부분에서는 문자적으로 같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성경의 오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전술한 바와 같이 성경의 영감은 저자에 대한 기계적인 영감이 아니라 유기적인 영감이어서 저자 자신의 지식, 경험, 사상, 개성 등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네 복음서 저자는 모두가 영감을 받아서 기록했으며 각기 그들이 가진 지식과 경험의 한도 내에서 다시 말하면 그들의 들은 대로, 본대로, 아는 대로만 정직하게 기록한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성경의 메시지 내용을 저자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는 데 있어서 낱말의 문자 하나 하나에 이르기까지 영감을 주어 기록하고자 하셨다면, 저자가 기계적으로 영감을 받게 하셨을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을 기록하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소식과,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행위에 관한 가르침을 주는데 있는 것이지 결코 어떠한 역사적인 보도를 정확하게 하는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일 성경의 영감을 그 성질에 있어서 기계적 영감이라고 한다면 축자적 영감이 그 당연한 결과가 될 것이나, 유기적 영감으로 이해한다면 축자적 영감은 논리상 성립될 수가 없으며, 그것이 유기적 영감이요, 개념적 영감인 것은 기록된 성경의 실상이 충분히 증명해 주고도 남음이 있다. 이러한 이해가 아니고서야 광야에서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 사람의 소를 고린도전서 108절에서는 23,000명이라 하고, 민수기 259절에서는 24,000명이라 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셋째, 성경의 영감은 그 범위에 있어서는 부분적 영감이 아니고 전체적 영감이다. 18세기 합리주의 사상의 영향 아래에서 어떤 성경학자들은 성경의 범위를 내용에 따라 구별하여, 영감은 교리적 내용에만 한정되고 역사적 내용에는 영감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성경 안에 있는 역사의 기술에 있어서는 다소간 오류가 있기도 하므로 그러한 구별을 하였으나, 역사적인 오류가 결코 성경의 영감의 사실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합당한 이론이 될 수가 없다.

 

성경의 저자에 대한 영감은 그 내용이 역사이거나 교리적인 것이거나, 문화적인 장르에 있어서도 산문이거나 시이거나 예언이거나 묵시이거나, 말의 주체가 하나님이거나 사람이거나 심지어 마귀이거나 간에 성경 내용의 전 범위에 미치는 것이다(여기 마귀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마귀가 말을 하는데 영감을 주셨다는 뜻이 아니라, 마귀의 말을 바로 그대로 기록하도록 성경의 저자에게 영감을 주셨다고 하는 뜻이다).

 

어떤 학자는 성경의 영감을 신약에만 국한시키나 그것도 성경의 내용(딤후3:16)과 상치된다. 그러므로 성경의 영감은 창세기 11절부터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 마지막 절까지 되어진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의 영감은 정경에 한정되는 것이므로,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로마 카톨릭교회와는 달리 외경(카톨릭 측으로는 정경)의 영감은 인정할 수가 없다.

 

넷째, 성경의 영감이란, 엄밀히 말하면 원본의 저자에 대한 것이다. 성경의 내용이 영감 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영감을 받은 저자에 의해서 기록된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영감이 사본의 필사자(筆寫者)에게도 주어졌다고 주장하나 이것은 옳은 견해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본은 파피루스, 양피지 사본을 합쳐서 대문자 사본, 소문자 사본, 성서일과표 등 모두 5,500개도 넘는데 그 중의 단 둘도 완전히 동일한 것이 없으며, 바로 이 사실이 사본의 필사자에게는 하나님의 영감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본 필사자에게, 원본의 저자에게와 같이 영감을 주셨다면 모든 사본이 어떻게 이처럼 다를 수가 있을까? 만일 하나님께서 사본의 팔사자에게 영감을 하셨는 데도 불구하고 사본간에 서로 다르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중대한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대다수의 성경학자들은 그들이 성경의 영감에 대하여 언급할 때, 사본이나 역본의 영감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는데, 이는 사본이나 역본의 필사자나 역자에게 영감이 없었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여서 도무지 언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학자는 독자들이 만일에라도 오해를 할까 하여 사본의 필사자나 역자에게 영감이 없었다는 것을 분명히 지적하기도 하는데 그 사례를 셋만 들어본다.

 

미국의 유명한 보수주의 신학자인 루이 벌코프(L.Berkhof)는 그의 책성경해석학(Principles of Biblical Interpretation)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이 모든 세부분에까지 완전무오하게 영감 되었다고 하는 주장은 다만 원본만을 언급하는 것이며, 지금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사본들이나 현대판 성경이나 번역본들을 같은 의미에서 언급한 것은 아니다"(위 번역서 44)

 

피녹크(C. H. Pinnock)는 그의 책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변증(A Defense of Biblical Infaiivility)에서 "영감은 성령에 의해 영감된 사람들이 구술했거나 기록한 말씀에 관한 것이지 사본의 필사에 관한 것이 아니다"(15).

 

기독교대백과사전(기독교문사 간행)은 영감에 대하여 "영감은 성서의 진리주장을 확실히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본이 아닌 원본(친필)과 관련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필사자들의 잘못이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위의 책 641).

 

우리는 영감이 성경의 원본의 저자에게만 해당된다는 데 대해서 더 이상의 증명이 필요치 않다.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본 필사자에게도 영감이 있었다고 억지 이론을 고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가공할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모름지기 겸손하고 정직하지 않으면 안된다.

 

. 사본에 대한 바른 이해

 

맨 처음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이나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성경의 원본은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지만 오늘날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한편 그 없어진 원본을 보고 베껴 쓴 사본은 수천 개나 남아 있어 없어진 원본의 내용을 알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사본의 필사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길이 보존하고자 하는 열정과 또 그 말씀을 널리 보급하고자 하는 사명감으로 그들의 심혈을 기울여서 원본을 베껴 썼다. 경건한 필사자들은 원문을 베껴 써내려 가다가 하나님의 이름 네 문자(Tetragrammaton)YHWH가 나오면 그때마다 손을 깨끗이 씻고 쓰기까지 그들의 정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이토록 정성을 다하여 필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이 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지라, 사본이 수백 년 동안 필사를 거듭해 오는 과정에서 거기에는 얼마간의 착오가 생기게 되었다. 이제 그러한 착오의 구체적인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본다.

 

첫째, 필사자의 비고의적인 착오로 본문이 잘못 베껴진 것인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있다.

1. 필사자가 잘못 보아서 생긴 착오로서 1) 서로 비슷한 헬라어 글자(모양이나 붙여쓰기, 띄어쓰기를 잘못함으로)를 잘못 구별하여 착오를 일으킨 경우(: 딤전3:16, 벧후2:13, 6:5 )가 있는가 하면, 2) 필사하는 대본의 두 행이 같은 낱말이나 음절로 끝났을 때 필사자가 그 두 번째 행을 빠뜨리고 베낌으로 착오를 일으키는 경우(: 10:32, 고전9:2 ) 등이 있다.

 

2. 필사자가 잘못 들음으로 생긴 착오로서 이것은 받아쓰기를 하는 경우에 생길 수 있는 사례이다. 예컨대 롬5:1echomen(가지자)echomen(가진다), 11:16heterois(다른 것들)hetairois(동료, 친구) 등이다.

 

3. 잘못된 기억 때문에 생긴 착오로서, 동의어가 혼동되어서 쓰이거나(apoek), 낱말들이나 한 낱말 안의 글자의 자리가 바뀌어 필사되는 경우(: 1:5, 14:65 )이다.

 

4. 필사자가 자신의 간단한 주해를 본문 사이에 끼워 둔 것을 그 다음 필사자가 그것을 본문으로 잘못 판단해서 본문으로 베껴 씀으로써 생긴 착오로서 요5:3-4, 고후8:4 등의 경우이다.

 

둘째, 필사자들이 그 전 필사본의 어떤 부분이 문맥으로나 내용상으로 잘못된 것으로 알고,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의도로 첨가하는 경우이다. 예컨대 눅11:2-4에 있는 주기도문의 짧은 본문 필사자는 그것보다 더 친숙하고 긴 형태인 마6:9-13의 본문으로 보충하여 마태복음에 있는 주기도문과 같이 만들었으며, 5:32의 필사자는 마9:13"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에 한 마디가 빠져 있다고 생각하여 "회개시키려"란 말을 첨가한 것이다(이 점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의 메츠거의신약의 원문, 그 전수와 오류 그리고 회복(The Text of the New Testament, Its Transmission, Corruption and Restoration))을 보라).

 

어쨌든 성경의 사본은 이상과 같은 원인 등으로 그 필사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로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6:9-13에 이어지는 주기도문의 송영 부분은 비록 본문이 아니고 난하주(본문비평장치)에 수록되기는 하였으나 사본의 종류가 7가지로 달리 되어 있어 사본의 다양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데, 이제 그 실상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1) ".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 아멘"

 

2) ",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 아멘"

3) "권능과 영원무궁토록 당신의 것입니다"

 

4)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

 

5) "나라와 영광이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 아멘"

 

6)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나라가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 아멘"

 

7) "아멘"

 

위의 7가지 다른 사본에서 마지막 것을 제외하고는 나라와 권능과 영광 세 가지 중에서 혹은 셋, 혹은 둘, 혹은 하나를 언급하는 차이는 있어도 그 내용에서 보면 송영(doxology)이라는 근본적인 의미상으로는 차이가 없다. 더욱이 첫째와 둘째 사본간에는 송영 바로 앞 문장의 마지막 낱말 포네루ponerou() 다음에 종지부(.)가 찍히느냐, 휴지부(,)가 찍히느냐의 차이 뿐이다.

 

그리고 이 7가지 다른 사본 중에서 학자들은 본문비평장치에서 첫째 것을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수록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 본문이 시내산 사본, 바티칸 사본 등 가장 권위 있는 사본의 본문이며 또 터툴리아누스, 오리게네스 등 유력한 교부들이 그 본문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본문을 후대의 첨가라 해서 받아들이지 않는 로마 카톨릭교회를 제외하고는 절대 다수의 개신교의 주기도문은 첫째 것을 채택하고 있다.

 

21:28-32에 있는 두 아들의 비유에서 보면, 위의 경우와는 달리 내용상 정반대의 두 가지 사본이 있다(문구상으로는 6가지). 즉 아버지가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는 말에 대해서 한 사본의 본문은 맏아들이 가겠다고 했다가 안 가고, 둘째 아들이 안 가겠다고 했다가 간 것으로 되어 있는데 대해(우리말 성경 개역본과 새번역의 본문), 다른 사본은 맏아들이 안 가겠다고 했다가 가고, 둘째 아들이 가겠다고 했다가 안 간 것으로(우리말 성경 공동번역, 표준새번역, 한국천주교200주년 기념 신약성서 등의 본문) 되어 있다.

 

이상의 두 가지 다른 사본 중에서 여러 나라의 성경 번역에서는 어느 것을 택하였는가? 여기에는 한 가지 경향이 있다. 즉 옛 번역에서는 첫째 사본의 본문을 선택한 편이었으나(KJV, 중국의 문리역 등 예외도 있다) 최근의 번역에서는 둘째 사본의 본문을 택한 것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다(RSV, GNB, NIV, LB, JB, NRSV, 일어 공동역, 신공동역, 중국의 현대중문역(現代中文譯), 금일성경(今日聖經), 당대성경(當代聖經), 독일의 현대역, 불어 현대역 등. 한편 KJV, 중국어성경文理역 등 오래 전의 번역도 예외적으로는 여기에 속한다). 따라서 우리말 성경도 개역과 새번역(1967)에서는 전자를 따랐는데, 공동번역(1971)과 표준새번역(1993)에서는 최근의 본문비평의 결과를 따라 후자를 따르기로 하였다.

 

이상과 같이 여러 가지로 다른 본문의 사본을 세밀히 비교, 대조하여 없어진 원본의 본문을 재구성해 보고자 하는 노력이 본문비평인 바, 이 작업은 실로 어려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성경 연구가들은 원본의 본문을 재구성하는데 있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1) 어려운 본문과 쉬운 본문이 있을 때에는 더 어려운 본문을 원본에 가까운 것으로 본다.

 

2) 긴 본문과 짧은 본문이 있을 때에는 더 짧은 본문을 원본에 가까운 것으로 본다.

 

3) 조화가 잘된 본문 형태보다는 얼마간 불일치한 본문 형태를 더 원본에 가까운 것으로 본다.

 

4) 어떤 본문이 같은 문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 저자의 일반적 용어나 문화적 양식에 맞지 않을 때, 또는 어떤 한 부분이 전체 문맥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들어가 있을 때, 그러한 사본의 본문은 잘못된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는 것 등이다.

 

그런데 본문을 비평하고 사본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두어 가지 곡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사본에 있어서의 영감의 문제는 사본 필사자에 대한 영감의 문제라는 점이다. 즉 사본 필사자에게 영감이 없었다고 하는 것(전술)과 사본의 내용의 영감 여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둘째, 사본의 내용이 영감된 것이냐 하는 문제는 그 대답이 너무나 쉽고 간단하다. 즉 사본이 원본을 정확하게 필사하여 보존하고 있는 범위 안에서는 그 내용에 있어 영감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왜냐하면 성경의 원본이 영감된 것이기 때문이다.

 

패튼(Patton)박사는 그의 성경의 영감이란 책에서 "정확무오한 원본은 전사생들의 노고에 의하여 영구히 보존되었다고 본다. 상위(틀림)가 생겼다면 사생들의 잘못된 실수로 말미암아 일어난 중요치 않은 세부에 그치는 것뿐이다"라고 하였다(L. Berkhof, 성경해석의 원리(Principles of Biblical Interpretation), 김진홍 역, 46).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원본의 중요치 않은 세부에 있어서는 필사자들의 실수로 잘못 기록되어 원본과 다른 것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본의 필사자에게는 영감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만일 성경의 원본이 기록될 그 때에 오늘날과 같이 복사기가 있어서 그것으로 복사를 하였다고 가정을 한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영감이 작용할 여지조차 없으며, 영감이 없이도 원본과 100퍼센트 틀림없는 사본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며, 오늘날 우리가 하는 본문비평연구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사본 필사자들의 사소한 실수로 인해서 본문비평이라는 성가신 일을 하기는 하지만, 한편 그들 사본 필사자들이(영감이 없이도) 그들의 신앙적인 정열과 성의 있는 노력으로 영감된 원본의 대부분이 잘 필사되고 전승되어진 데 대해서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 역본에 대한 바른 이해

 

오늘날 대다수의 성경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은 각기 자기들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이다. 원본은 없어졌지만 그 말씀은 사본을 통하여 전승되고, 우리는 그 사본을 우리의 말로 번역을 해서 읽게 된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번역본은 1993년 말 현재 세계성서공회연합회의 보고에 따르면 2,062개 언어에 이른다. 그러면 성경의 번역에는 문제가 없는가? 우리는 위에서 성경의 사본에 관한 몇 가지 문제점을 보았거니와 성경의 번역에는 실로 그 이상의 문제가 있다.

 

사본에 있어서는 사본의 필사자가 영감된, 정확무오한 원본을 정확하게만 베껴 썼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지만 번역에 있어서는 제한된 능력을 가진 인간인 번역자가 성경 원문, 특히 어려운 원문을 번역하는데 있어서 각기 다른 이해에서 달리 번역할 수가 있고, 그 중에는 오역의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성경이 번역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비평의 대상이 되었던 것도 각기 저마다의 원문 이해에 차이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오늘날까지의 성경 번역사상 가장 훌륭한 번역이라고 인정되었던 번역본도 오늘날의 본문비평 연구의 결과에 비추어 보면 번역된 본문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한 가지 예를 그 유명한 킹 제임스 역본(King James Version)으로 들어보자.

 

흠정역(欽定譯, The Authorized Version)이라고도 불리는 이 번역본은 당시 영국왕 제임스 1(James )가 최고의 석학 54명으로 하여금 번역하게 하여 1611년에 간행된 것인데, 요한 웨슬리는 1758년에 무려 12,000여 곳을 수정하여 신약개정판을 내었거니와 이 비율로 치면 신·구약 성경 전체로는 수정할 곳이 40,000군데도 훨씬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거기에다 당시 흠정역이 번역대본(text)으로 삼았던 소위 '공인본문' 또는 '표준본문'이라고 불리었던 Textus Receptus라는 헬라어 원문도 오늘날의 본문비평의 결과로 되어진 헬라어 원문 네슬·알란트(Nestle-Aland)Novum Testamentum Graece 27판이나 UBS The Greek New Testament에 비하면 정확성이 훨씬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Textus Receptus를 대본으로 하지 않은 세계의 모든 번역은 다 틀린 번역이고, Textus Receptus를 대본으로 한 킹 제임스 역본이 가장 훌륭한 번역이라는 일부 극보수층의 주장은 교계를 혼란케 하는 어이없는 주장이다. 과거 100년 동안의 전세계적인 본문비평적 연구를 전혀 외면하고 19세기말의 학계가 신약 본문 중 가장 빈약한 것(the scholarship of the nineteenth century had conclusively demonstrated it - Textus Receptus -to be the poorest form of the New Testament text)이라고 한 Textus Receptus를 현재 가장 바른 본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세계의 절대 다수의 성경번역에 도전하는 일이다.

 

성경의 번역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그 대본(text)을 잘 선정해야 하는데, 현재 구약으로는 Biblia Hebraica Kittel(BHK)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BHS)가 있고 신약으로는 전술한 네슬·알란트의 Novum Testamentum Graece(NTG)와 세계성서공회연합회(the United Bible Societies)The Greek New Testament(GNT)가 있다. 위의 각각 두 가지의 구약과 신약의 원문 성경이 달리한 것은 주로 본문비평장치(난하주)이며, 본문은 거의 동일하다.

성경의 번역이 잘못된 경우는 실로 수다하지만 여기서는 그 중 한 가지만을 예로 들고자 한다. 우리말 성경에서 '독생자(獨生子)로 번역된 말의 원어는 ho monogenes huios인데, 이것은 잘못된 번역이라는 것이 절대 다수 학자들의 견해이다. 영역 성경에서 보면, 킹 제임스 성경까지는 'the only begotteon Son'으로 번역되었으나 1881년의 개역 이후로는 'begotteon'을 삭제하고 'the only Son'으로 바로잡은 것을 볼 수 있다(, American Standard Version은 예외). 그 이유는 원어 monogenes(monogenes의 합성어)genesgennao(beget, 낳는다)에서 유래된 줄로 알았는데, 사실은 genos(kind, 종류)에서 유래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the only begotton Son이 중국어 성경에서 문자 그대로 '獨生子'로 옮겨지고, 같은 한자를 쓰는 우리말 성경에도 그대로 옮겨 쓰게 된 것이다(자세한 것은 나채운의 주기도·사도신경·축도170-190면 참조). 그러나 현재는 중국어 성경 현대중문역본(現代中文譯本)에서도 '獨子'로 쓰고, 영어역 RSV, NEB, GNB, NIV, JB, LB, NRSV 등도 다 'the only Son'으로 번역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번역의 대본(text)을 원문(히브리어 또는 헬라어)으로 하지 않고 기존의 권위 있는 번역본으로 하는 수가 있다. 예를 들면 민24:3에서 개역은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을 따라서 "눈을 뜬 자"라고 번역하지 아니하고, 라틴어역인 불가타를 따라서 "눈을 감았던 자"라고 번역하고 마소라 본문은 난하주에 수록하였다(민영진, 국역성서연구35-36면 참조).

이 경우 원어로는 ShetumSetum의 차이뿐, 둘 중의 어느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서 뜻은 전혀 반대가 되는데, 따라서 이 낱말, 나아가서 그 문장이 가지는 의미는 전적으로 번역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 경우 만일 번역자가 없어진 원본의 원어와 다른 것을 택하여 번역했다면 그것은 본의는 아니나 오역이 될 수밖에 없다.

 

인칭대명사의 경우 번역자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의도적으로 원문과는 달리 번역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는 구약에 여러 곳 있으나(나채운의 우리말 성경연구188-194면 참조) 그 중 한 가지만 예시하면 단2:36에서 우리말 개역성경은 "그 꿈이 이러한즉 내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하리이다"로 번역하고 있는데 여기의 "내가"는 히브리어 원문에는 "우리가"로 되어 있으나 번역자는 그 뜻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내가"로 바꾸고 그 난하주에 히브리어로는 "우리가"로 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원어에 해당되는 번역어(수용어)가 없기 때문에 도저히 원어의 뜻을 정확하게 나타낼 수 없는 본문이 있다. 예컨대 요21:15-17에 있는 예수님과 베드로간의 사랑의 문답에서 우리말 성경에서는 예수께서 두 번 물으신 것은 아가페의 사랑이고, 예수님께서 세 번째 물으신 것과 이 두 가지 사랑이 다른 말로 되어 있지만 우리말로는 다같이 '사랑'이라고만 되어 있어 원문의 뜻을 완전히 나타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이 경우는 영어, 독어, 불어, 일어, 중국어 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외에 히브리어 성경이나 헬라어 성경에 있는 어희(語戱)나 알파벳 구문의 경우에서도 우리말로는 결코 원문 그대로 번역할 수가 없다(나채운,우리말 성경연구308-309면 참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번역에는 이처럼 어려운 문제들이 있으므로 학자들에 의하여 몇 가지 번역 이론이 주장되어 왔는데, 거기에는 직역과 의역, 문자역과 자유역, 형식적 일치의 번역과 역동적 동등성의 번역 등의 대립적 번역 원칙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번역 원칙 중 어떤 것이 적용되느냐는 원어와 번역어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번역을 철저하게 문자적으로만 해야 된다고 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잘못된 견해이다.

 

두어 가지 예를 들어보자. 8:11에서 헬라어 원어 anaklithesontai는 문자적으로 직역을 한다면 "기대어 눕는다"라고 해야 하지만 이는 유대인들이 식사할 때에 가지는 자세로서 우리에게 이해가 안되므로 주로 직역을 한 개역성경에서도 "앉으려니와"로 번역하였는데 이 경우에도 "기대어 누우려니와"로 해야 한단 말인가?

 

또 마19:24"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에서 '바늘귀'에 해당되는 헬라어 원어는 문자적으로는 '바늘구멍(hole)'인데 이런 경우에도 번역어인 우리말의 표현을 무시하고 '바늘구멍'으로 하자는 말인가? 이 경우는 영어에서도 'needle's hole'이라고 하지 않고 needle's eye(문자적으로는 '바늘 눈')라고 번역한다(기독교사상 199310월호 필자의 논문 "표준새번역에 대한 바른 이해" 110면 참조).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때까지 "형제들아" 또는 "brothers"라고 번역해온 헬라어 hoiadelphoi"형제 자매들이여" 또는 "brothers and sisters"라고 번역한 표준 새번역이나 New Revised Standard Version의 입장도 수용해야 한다.

 

. 맹목적 보수신앙의 모순성과 위험성

 

이상에서 우리는 성경의 영감과 원본, 사본, 역본 등에 관한 중요한 점들을 고찰해 보았거니와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는 그 어떤 신학이론보다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어떤 신학이론도 성경을 기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소위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성경에 기초하여 신학이론을 세우는 것과는 정반대로 그들 나름대로 어떤 신학이론이나 교리를 정립해 놓고 그것에다 성경의 본문을 적용시키는 exegesis(reading out)가 아니라, eisegesis(reading into)를 하는 과오를 범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한 가지 실례가 성경의 영감과 원본, 사본, 역본 등에 대한 잘못된 이해이다.

 

그리하여 성경의 영감에 대해서도 무조건 성경의 영감을 철저하게만 주장하면 그것이 마치 가장 좋은 신앙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영감은 사본 필사자에게도, 나아가서 성경 번역자에게도 되었다고 고집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의 고집은 이미 위에서 밝힌 대로 사본이나 역본의 실제와는 다르므로 그것이 무식의 소치가 아니면 맹목적인 신앙일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말해서 만일 사본의 필사자에게 하나님의 영감이 있었다면 어찌하여 수천 개의 사본이 다 같지 아니한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그들은 곧잘 대답을 회피하고 "우리는 그렇게 믿습니다"라고만 말한다. 그러나 어떠한 학문적인 이론을 주장, 즉 논단(論斷)을 하는데 있어서는 충분한 논증(論證)을 해야 하고, 그 논증에는 바른 논거(論據)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논거나 논증도 없이 논단만을 내세우는 것은 이 얼마나 맹목적인 신앙의 발로인가?

이러한 맹목적인 신학이론은 또한 그들이 주장하는 다른 신학이론에 정면으로 모순되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사본 필사자에게 영감이 되었는데도 그 결과가 그렇게 다르다면 하나님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말밖에 안되니 이 얼마나 큰 모순인가? 사본 필사자에 대한 영감을 주장하여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게 된다면 이야말로 영감설에 대한 과오보다도 더 큰 과오(신관에 대한)를 범하는 것 아닌가?

 

만일 그들이 사본 필사자나 역자에 대한 영감과 사본 자체나 역본 자체(내용)에 대한 영감을 혼동한다면 그것 또한 어이가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성경 원본의 저자에게 영감을 받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 신앙과 행위에 관한 정확무오한 유일의 규범이 되는 그 내용이 영감이 안된 사본 필사자나 번역자의 실수나 착오로 극히 적은 일부분이 일치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전수되어 온 것은 말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본 필사자나 성경 번역자의 실수나 착오로 야기된 극히 적은 부분의 차질은 추호도 성경 전체에 대한 영감성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완전성을 침해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원본이 없고 사본과 역본만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없지 않은가?

 

성경의 원본이 없는 것은 참으로 섭섭한 일이다. 그러나 그 원본이 경건한 사본 필사자의 최선의 노력으로 필사되어 그 메시지가 오늘의 우리들에게까지 전수된 것은 또한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한편 성경의 본문(사본)이 오랫동안 본문비평학자들에 의하여 원본에 더 접근되고, 그것에 따라서 오늘날 점점 더 성경이 잘 번역되고 있는 것 또한 다행한 일이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의 번역본이 과거의 어느 시대의 번역 성경보다도 원본에 가깝게 번역된 것임을 믿고 자부해도 좋다.

우리는 성경이 사본 필사자나 번역자에게까지도 영감이 되고, 그것은 세상의 모든 사물과 사항에 대한 척도가 되며 문자적으로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다고 하는 주장이야말로 성경의 권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성경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성경의 원본에도 서로 불일치한 점이 있으며, 사본의 필사자나 번역자에게는 영감이 없으므로 사본간의 불일치가 있고 번역상의 오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본이나 역본이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관한 정확무오한 유일의 규범이라고 하는 데에 진정으로 성경의 권위가 바로 세워지고 성경이 바로 이해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3. 신약 성경 연구에 대한 요약

 

마태복음

1) 마태복음서 개론

마태복음이 신약에서 첫번째로 위치한 것은 복음서 중에 연대기적으로 가장 먼저 쓰여진 복음서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다른 어떤 복음서보다도 구약과 신약의 예수님의 관계를 잘 연결해 주기 때문이다.

즉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약속된 메시아적 왕이자 다윗왕가의 후손으로서 구약과 신약을 잇는 다리역할을 하기 때문에 신약의 맨 처음에 놓여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마태복음은 이방인보다는 유대인들에게 주신 말씀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특히 구약에 대한 인용과 언급을 신약의 다른 책들보다 더 많이 언급하고 있다.(130)

마태는 교회를 명시적으로 언급한 유일한 복음서이며(16:18, 18:17), 유일하게 다른 복음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구절이 32회 등장한다. 또한 예수님의 긴 설교인 산상수훈(5-7)이 있으며 이 산상수훈의 주제는 마5:48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여기서 온전하라는 단어는 죄가 전혀 없거나 도덕적으로 완전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되기를 바라시는 온전함, 완전함, 성숙함을 가리킨다. 즉 우리가 이 세상의 삶에서 절대로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목표는 계속해서 주님을 향한 더 큰 섬김으로 나아가도록 우리에게 도전할 것이다.

 

**산상수훈의 10가지 주요부분**

1. 팔복(5:3-12):그리스도 왕국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삶이 받는 복, 그 복의 주인공이 될 것.

2. 소금과 빛(5:17-48): 그리스도인의 삶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을 최대화 할 것.

3. 참된 의로움(5:17-48): 하나님의 율법의 더 깊은 의미를 되새길 것.

4. 위선이 없는 실천(6:1-18): 구제, 기도, 금식의 올바른 동기를 생각할 것.

5. 그리스도인의 관심사(6:19-34): 하나님의 나라에 최우선 순위를 둘 것

6. 심판에 대한 경고(7:1-6): 이웃들을 부주위하게 판단하지 말 것

7. 기도하라는 초대(7:7-12): 기도의 복과 특권을 누릴 것

8. 두 길(7:13-14): 멸망으로 이끄는 길은 넓고 생명으로 이끄는 길은 좁다. 그러므로 좁은 길을 선택할 것

9. 나무와 그 열매(7:15-20): 열매로 삶을 알리라!

10.행동의 중요성(7:21-29) :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순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2) 저자에 대하여

마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하나인 마태(9:9-13)라는 것이 전통적 의견이다. 당시 사람들은 흔히 이름을 두 개씩 가졌는데 그의 이름을 히브리어로는 레위(5:27-32)라고 불렀다. 그는 알패오의 아들로 본래 세관에 앉아 사무를 보는 세관 관리로 가버나움에서 일했다(5:27-28).

마태는 예수님께서 저를 부르셨을 때에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을 만큼 진실했으며 일설에 의하면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제일 먼저 유대인들에게 전도한 사람이었으며 후에 아시아와 마게도니아에서 전도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가복음

사복음서 중 가장 짧고 단순한 마가복음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가르침보다는 그 분의 행동과 사역에 대해 신속하게 설명하고 있다. 마가복음에 기록된 사건들은 대부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도 실려있지만 마가는 그 사건들을 훨씬 더 현장 중심적이며 직접적이고 빠르고 짧고 생생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는 실용적인 것을 좋아하는 로마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적합하게 기록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마가복음에는 , 즉시라는 단어로 번역되는 헬라어 유데오스 라는 단어가 신약의 나머지 책들에 나온 것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이 등장한다.

또한 마가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신 예수님의 능력과 권위에 집중하여 교사로서의 능력과 권위, 사단과 귀신, , 안식일, 자연, 질병, 죽음, 율법적인 전통, 성전을 능가하는 능력과 권위를 집중 조명한다.그리고 이 복음서는 거의 40%를 할애하여 복음의 핵심적인 부활에서 절정에 이르는 예수님의 생애의 마지막 8일을 설명하고 있다.

 

마가복음의 저자는 본래 유대식 이름으로 요한이지만, 마가라는 로마식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요한 마가이다(12:12).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바나바의 생질이며(4:10) 베드로의 제자였다(벧전5:13).

그는 바나바와 바울이 제1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 동행하였다가 도중 버가에서 되돌아왔다. 그 이유는 자신의 삼촌이었던 바나바가 바울에게 모든 영적리더십을 양도하는 것 때문이었다. 그 일로 2차 선교여행에서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바울의 영적리더십을 인정하고 다시 바울을 따랐으며 바울이 옥에 갇혔을 때 그를 돌보았고(딤후4:11), 일설에 의하면 베드로와 함께 전도하다가 베드로가 순교한 후 마가 또한 알렉산드리아에서 전도하다가 순교하였다고 한다. 학자들은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홋이불을 벗어버리고 도망한 사람이 마가일 것이라고 추측한다(14:51).

 

**마가복음에 나타나는 메시아 비밀”**

마가복음의 몇몇 대목에서 예수님은 자기가 누구인지 혹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증거하는 장면을 본 것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이를 신학적으로 메시아 비밀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변화산에서 자신의 영광을 제자들에게 보여준 이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사건을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9:9)”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예수님은 왜 메시아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비밀로 하기 원하셨을까?

 

1. 비밀로 하라는 많은 명령들은 기적을 일으킨 이후에 내려졌는데 이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단순히 기적을 행하는 자로 여기는 것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단지 육체의 질병을 고치고 기적을 행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죄를 용서하고 구원을 베풀려고 온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은 여기저기 이동하기 쉽고 제자들의 사역이 방해받지 않기 위해 불필요한 공개를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즉 철저한 사역중심이다.

3. 이를 통해 볼 때, 예수님은 단순하게 자신의 권능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받고 섬기고 자신을 철저하게 희생하기 위해 오신 것임을 볼 수 있다(10:45)

 

누가복음

두 권으로 이루어진 책 중에 첫번째는누가복음이고 두번째 책은 사도행전이다. 누가는 이방인 의사로 예수님의 역사적 생애를 연대순으로 정리한다. 누가복음은 4복음서 중 가장 길고 광범위한 복음서로 죄인을 찾아 구원하러 오신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다.

 

누가복음은 또한 예수님의 사역, 죽음, 부활로 나아가기 전에 자세하게 예수님의 계보, 탄생, 초기 생애를 제시한다. 본서의 내용에는 다른 복음서에 비해 여자들과 가난한 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인자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기까지 했으나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부활의 능력을 통하여 영생의 길을 열어주고 참된 제자도를 훈련하여 제자로서 삶을 살게 하는 모습이 대비되어 나온다.

 

저자 누가는 헬라파 유대인으로 사랑받는 의사였다(4:14). 누가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드로아에서 처음으로 바울과 동행하였으며(16:10), 지혜있고 학식이 많은 사람으로 마지막에는 바울을 따라 로마까지 함께 갔던 인물이다(28:16, 24).

누가가 이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은 주님의 사역을 정리하여 데오빌로에게 드릴 목적과 특히 헬라인들로 하여금 인자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닫고 확신있게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누가복음의 특징**

1. 복음은 전세계적이며 전 인류적인 것이다:

마태와는 달리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를 아담에게까지 소급함으로, 예수님이 전 인류의 구세주가 되심을 보여주며 세례 요한의 활동에 관해서도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3:6)는 이사야의 말을 인용해서 복음이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까지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누가는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이 팔레스틴 지역을 넘어 전 세계적이며 유대인을 엄어 전 인류적인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2. 연대기적 방법과 지리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부터 그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까지, 즉 예수그리스도께서 주로 팔레스틴 안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다루어지고 있다.

이에 비해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부터 바울이 로마에 입성할 때까지, 즉 예수님의 제자들이 땅끝까지 이방인을 상대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다루어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활동을 담고 있고 사도행전은 제자들의 활동을 담고 있다. 또한 누가복음은 주로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까지 이르는 복음 전파과정이 다루어지고 있고 사도행전은 예루살렘부터 시작하여 로마에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을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라 말한다면 사도행전은 로마로 가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전도와 선교가 크리스챤의 사명이요 교회의 사명임을 선포한다.

 

누가는 당시의 시대가 종말의 시대라고 믿었고 그래서 임박한 종말 사상을 가지고 살았던 자들이 종말이 오지 않자 복음 신앙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재림지연문제). 이같은 상황에서 신앙적인 지도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신앙적 해답을 제시한다.

 

누가는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님이 오시기까지 온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1:8) 즉 전도와 선교가 기독교인의 사명이요 교회의 사명이며 우리는 바로 그것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선포한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담고 있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 누가복음에서 기독교 신앙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며 이같은 관심은 부자들에 대한 경고로 나타난다(14:12-13, 18:22). 즉 가난한 자에 대한 축복선언과 더불어 부자에 대한 저주선언이 나란히 강조되고 있다.(6:20,24/16:19-21 거지 나사로의 비유/ 12:16-21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세리와 죄인에 대한 관심: 누가복음은 세리와 죄인은 소외되고 버림 받은 존재로 언급하고 있는데(5:30, 7:34, 15:1), 이들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당시 사회에서 죄인 취급 받던 세리와 죄인의 친구”(7:34)라고 언급하고 있다.

 

여인에 대한 관심: 누가복음은 여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 사렙다 과부(4:26), 나인성 과부(7:11이하), 마리아와 마르다(10:38이하), 예루살렘성에서 우는 여인들(23:27이하) 등 모든 이야기에서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부정적인 쪽보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마리아인에 대한 관심: 누가복음은 복음서 가운데 사마리아인들에 대해 가장 호의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9:51-56).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류(10:29-37)를 통해서 유대인들이 경멸하고 천대하던 사마리아인을 오히려 유대인이 따라야 할 모범으로 강조하고 있다.

또한 눅17장의 10명의 문둥병자 고치심에 관한 내용을 보면, 10명 중 한 사람 사마리아 문둥병자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발 아래 엎드려 감사했음을 선포한다(17:15-16). 유대인이 아니라 오히려 사마리아인을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훌륭한 신앙인, 모범적인 예배자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로 볼 때 가히 파괴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방인에 대한 관심: 누가복음을 특별히 이방인의 복음서라고도 부른다. 그것은 누가의 사상이 보편주의이고 그의 관점이 세계적이기 때문이다. 마태와는 달리 예수님의 족보를 온 인류의 조상인 아담에게까지, 하나님에게까지 소급한다. 또한 이방인들, 특히 로마인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로마의 관리와 총독들에게까지도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이었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기까지 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4. 두 아담의 비교에 대하여: 유혹을 이기는 비결

아담과 그리스도는 모두 세 가지 측면의 유혹에 직면했다. 아담은 그 유혹에 무릎을 꿇었고 그 결과 인류에게 죄와 죽음이 들어오게 되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유혹이 끊임없이 부딛쳐 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유혹을 이길 수 있을까? 가장 심플하면서도 가장 파워풀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을 쫓아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에 대적하였고 그 결과 인류는 의롭다함과 영생함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억하라! 성경을 자세히 보면 약할 때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강할 때 실패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귀의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라

마귀의 시험은 항상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3가지의 길로 미혹하며 통해 들어온다. 마귀의 시험은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도록 미혹하여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성도는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므로 영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변하게 하고 혼잡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못하게 한다,

 

<요일 2:16 - 3:6 - 첫번째 아담 ----- 4:1-13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

 

마귀의 시험 :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가감시켜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하도록 유혹한다.

마귀의 수작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이 세상을 사랑하도록 선악과로 유혹한다.

 

육신의 정욕 ------ 먹음직도 하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김의 방법 :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

 

안목의 정욕 ------ 보암직도 하고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이며 마귀에게 경배하라

*이김의 방법 :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이생의 자랑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 여기서 뛰어 내리라

*이김의 방법 :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하나님의 뜻을 행하라! 하나님이 높이신다

 

요한복음

 

1. 요한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공관복음)과는 전혀 별개의 복음서다.

공관복음은 예수님의 삶 가운데 일어난 동일한 사건들을 많이 다루고 있는 것에 비해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육신이 되신 하나님이고 영원한 말씀으로 이 땅에 오셨고, 인간들의 죄를 대신해 속죄물로 죽으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요한복음은 매우 순수하고 간결한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신학적인 통찰력은 대단히 무게가 있고 심오하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복음서 중에서도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깊이가 있고 가장 위대한 힘이 있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차이점**

 

1)장소와 시간의 강조점이 다르다: 예수님이 활동하신 장소에 대해 마지막 주간만 제외하고 공관복음에서는 주로 갈릴리 사역을 다루고 있으나, 요한복음에서는 유대지방에서의 사역이 강조되었다.

시간상으로도 공관복음은 한번의 유월절만을 언급하여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이 1년인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반해 요한복음은 세번(2:13, 6:4, 13:1) 언급하여 공생애 기간이 3년 이상이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2) 언어상의 용법이 다르다: 공관복음에서 특징적인 표현형식은 비유이며 여기에서 교훈적인 진술을 가미한 짧고 생생한 구절들과 쉽게 기억될 수 있는 간단한 사건들이 많이 나타난다. 반면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교훈은 긴 강론형식으로 되어 있다.

 

3)관점이 다르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나라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반해 요한복음의 강론들은 대부분이 예수님 자신에 관한 것과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특별히 영생이라는 주제에 집중되고 있다.

 

 

2. 요한복음에는 보혜사 성령님께서 오실 것을 선포하고 있다.

요한은 유일하게 보혜사(파라클레토스), 곧 성령님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나눌 때 예수님은 앞으로 오실 성령님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예수님은 성령님이 자신에 대해 증인이 될 것이며 성령의 사역은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나서 시작될 것을 선포하셨다.

 

3. 요한복음은 성경 중에서 그 기록 목적을 가장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요한복음 2031절에 보면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선포한다.

즉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지적인 확신(믿게 하려함)과 영적인 확신(믿고 생명을 얻게 하려함)을 주기 위해 예수님의 기적을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의 핵심 동사는 믿는다이고, 믿는다는 것에는 이에 대한 지식(8:32, 10:38)과 결단(1:12, 3:19, 7:17)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4. 요한복음은 서로 다른 반응을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요한복음의 두드러진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배척이라는 두가지 반응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자는 영생을 얻지만(영접), 그를 거절하는 자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게 된다(배척).

5. 요한복음은 연대순이라기보다는 주제별로 되어 있다.

7가지 기적들과 7가지 그리스도의 나는 ---이다라는 에고 에이미(ego eimi)라는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한복음 헬라어 본문에는 주님의 의미심장한 나는 ---이다는 말씀을 23회나 언급하고 있다. 그 중 이 세상을 향한 자신의 구원적 관계를 표현하는 7개의 대표적인 내용이 본서에 등장한다.

그런데 나는---이니라는 말씀은 구약에서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이 말은 불타는 가시덤불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이 자신을 표현하는 형식으로서(3:14), 신성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17:1, 15:25, 35:3, 3:12).

 

**7가지 기적(표적)**

물이 포도주로 변함 (2:1-12) :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다.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침(4:46-54): 예수님은 거리와 관계없이 다스리신다.

베데스다 연못에서 병자를 고침(5:1-17): 예수님은 시간과 관계없이 다스리신다.

5천명을 먹이심(6:1-14):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다.

물 위를 걷고 풍랑을 잔잔케 하심(6:15-21): 예수님은 자연을 다스리신다.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침(9:1-41): 예수님은 세상이 빛이시다.

죽은 나사로를 살림(11:17-45): 예수님은 죽음을 다시리는 권세를 가지셨다.

 

**7가지 에고에이미 (나는 ---이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나는 양의 문이다(10:7)

나는 선한 목자다(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나는 참 포도나무다(15:1)

 

6. 저자에 대하여

 

요한복음의 저자는 사도 요한(: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이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으로 야고보와 형제간이다. 그는 보아너게-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가졌는데 이것은 그의 성격 때문인 듯 하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던 제자였으며(21:20), 베드로, 야고보와 더불어 예수님의 측근자였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예수님과 동반하였던 인물이다(5:37, 9:2, 14:33).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1,2,3 서신을 썼으며 말년에는 밧모섬에 유배되어 가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다.

 

**세례요한과 사도요한은 다른 인물이다**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와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한 인물이고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요한복음을 기록한 인물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선구자로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 사이에서 난 아들이며 예수님과는 친척관계로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출생한 인불이다.(1-2)

그는 디벨리우스 황제(AD26) 때 유대광야 요단강변에 나타나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복음을 외쳤던 인물이다(3:1). 그는 회개의 표로 세례를 베풀었으며 예수님도 요단강가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3:15, 1:9, 3:21).

그는 구약 선지자의 최후의 인물이라 여겨졌으며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인물이고(11:11-13), 분봉왕 헤롯 안디바의 불의한 결혼을 비난하여 목베임을 당하였다 (6:17-29, 14:3-12, 28년 경)

 

7. 4복음서에 나타난 예수그리스도의 칭호에 대하여:

예수(이에수스/예수, 여호수아): “여호와는 구원이시다(Jehovah is salvation)” 라는 뜻의 히브리어를 번역한 것임

그리스도(크리스토스/메시아): “기름부음을 받은 자 or 메시아라는 헬라어 요어인 크리스토스(Christos)의 음역인 그리스도, 둘 다 구원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외에 예수님은 구원자, 대제사장, 독생자, 말씀, 모퉁이돌, 목자장, 생명의 떡, 선지자, 선한목자, 세상의 빛, 아담, 마지막 아담, 아브라함의 씨, 알파와 오메가, 양의 큰 목자, 영광의 주, 왕의 왕, 주의 주, 인자,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맨 먼저 살아나신 분, 하나님과 인간의 중재자, 화목제물, 하나님의 거룩한 자, 하나님의 어린양 등으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로마서의 배경: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쓴 것이다(1:7). 거기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섞여 있었다.(1:13, 2:17). 로마 교회의 성도들은 지중해를 중심한 여러지방에서 로마로 이주해 온 사람들일 것이다.

바울은 이 편지를 쓸때까지 한번도 로마를 방문한 일이 없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세계의 수도인 로마로 가기를 원했다(15:23-25). 그래서서 그 준비로 이 편지를 썼던 것이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고린도에 얼마동안 머물러 있는 동안 쓴 것이다(57년 경).

 

바울은 로마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실제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구원과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기본적 진리에 관해 쓴 것이다. 그리고 로마서는 갈라디아서를 쓰던 때에 거의 같은 시기에 쓴 것으로 이 두 편지는 비슷한 점이 많으며, 그 핵심사상은 구원이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다는 것이다.

 

이 주제는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모든 경험의 기초인데 그것은 기본적인 접근이 확립되지 않는 한 아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서신은 특별히 이방인에게 전하는 것이다. 바울는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말하고 있으며(1:5), 하나님의 구원은 이방인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며 헬라인 사이에 아무 차별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

즉 로마서의 중심 내용은 의는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이 만민의 구원의 길이 된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의 배경

 

고린도는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 상당히 중요한 지리적 지점에 있는 지역이다. 헬라 본토에서 페로폰네소스 반도로 나가는 바로 길목에 있어서 육로와 수로로 상업상 교통이 빈번한 곳이었다.

고린도에는 잡다한 인종이 모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각 곳으로부터 모인 우상들도 많았고 생활은 사치하였으며 윤리적으로는 방탕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런 곳에 바울은 전도하여 교회를 세웠다.

 

바울은 글로에의 집안 식구들이 고린도에 다녀와서 전도하는 말을 통해서, 고린도교회가 가지고 있는 파당의 문제, 계모와 같이 사는 부도덕한 생활문제, 또 신자들끼리 관청에 소송하는 문제 등에 있어서 고린도 교회의 영적생활과 전도사역을 위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한 고린도교회에서도 그 교회의 발전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바울의 의견을 묻는 편지도 보내왔던 것 같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여러 문제에 대하여 실제적인 해답과 교훈을 주기로 하고 이 편지를 썼다. 바울은 3차 여행을 하는 중에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면서 (고전16:8), 57년 이 편지를 썼다. 신약 성서에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로 한 서신이 둘 밖에 없다.

 

고린도후서의 배경

 

고린도 교인 중에는 바울이 먼저 고린도교회로 보낸 편지에서 말한 몇 가지 조건을 곡해하고 바울을 몹시 비평하였다. 그 후 바울은 마게도냐로 가서 빌립보에서 지난 번 고린도로 보냈던 디도를 만났다.

바울은 디도에게서 고린도교회의 형편을 듣고 디도를 보낸 목적이 성공된 것을 알고 안심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 편지를 기록하여 디도와 그의 동행편에 고린도로 이 편지를 보냈다.

 

고린도후서는 교리적 교훈이나 또는 교회의 질서보다도 개인적인 면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고린도전서와는 다르다. 인간 바울이 보다 더 뚜렷하게 나타나며, 그의 감정, 희망, 혐오, 비전, 책임 등이 잘 드러나고 있다. 또한 후서는 조직적인 교훈은 별로 없으나 전서보다 개인적인 감정이 많으며 책의 구조도 전서와 같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바울에게는 원수들의 증상과 비방이 많았다. 육체대로 행하는 자(고후10:2), 겁쟁이(고후10:10), 진정한 사도가 아님(고후11:7), 12사도 중 하나가 아니니까 복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함(고후11:5, 고후12:11) 등 기타 여러가지로 중상하고 비방했다.

그러나 바울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9)”는 말씀에 따라 고난 중에서도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담대하게 살았다.

갈라디아서의 배경

 

바울은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이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갈라디아는 넓은 지방이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제 3차 전도여행을 하는 중에 53-56년 경에 에베소에서 기록하였다고 보는 견해와 수리아 안디옥에서 49년 경에 기록하였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 편지는 토론적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이 편지를 보냈다. 바울이 제 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면서 마침 어떤 교사가 갈라디아 지방에 와서 만일 사람이 구원을 얻으려면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침으로 해서 믿음으로 의로와진다는 근본 진리가 가리워지게 되었다.

바울은 이러한 교훈이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하였고 그리고 저들의 자유를 멀리하게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 편지를 썼다. 바울은 대단히 노한 어조로 이 편지를 기록하였기 때문에 이 책에는 사랑(5:13-22절은 예외)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바울은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8)고 말함으로써 저들의 잘못을 비난하였다.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는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갈라디아서는 짧은 서신이긴 하지만 마치 종교개혁자 루터와 같이 유대교를 박차고 일어나는 독립선언이라고 한다면, 로마서는 칼빈과 같이 기독교 근본 교뢰를 조리있게 해설한 조직신학이라고 하겠다. 갈라디아서는 로마서와 같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입는 교리를 논의하였다.

 

에베소서의 배경

에베소는 당시 소아시아의 수도로 그리스도교 역사상 3대 중요도시(예루살렘, 안디옥, 에베소)의 하나이다.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을 할 때에 에베소교회를 설립하였다. 처음 바울의 설교를 듣고 믿기 시작한 사람들이 자기 집에 가지고 있던 많은 마술에 관한 서적을 불살라 버린 도시이다(19:19).

 

에베소에는 다른 서신들과 달리 개인에 대한 문안이나 언급이 조금도 없고 어떤 특정지방으로 보내는 기분도 없는 회람용 서신이다. 에베소서를 통하여 교회라는 한 주제가 전체에 흐르고 있다.

이 서신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초신자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영적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신앙적으로 성숙하면서도 보다 풍부한 지식과 생명을 얻으려는 신자에게 보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최고의 목적인 구원의 거룩한 계획을 잘 나타나 있고 후반부에서는 신자의 행위가 행함이라는 말로 강조되어 있다.

 

빌립보서의 배경

 

바울이 제2차전도여행 때 드로아에서 환상을 본 뒤에 마게도냐로 건너가서 그 지방 수도인 빌립보에 들렸었다.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로 이 지방은 정치의 중심지였지만 유대인의 회상은 없었다.

빌립보는 구라파 기독교의 출생지로, 구라파에서 제일 먼저 교회가 세워진 곳이다. 최초의 신자는 자주장사 루디아였으며, 바울과 실라가 사귀 들린 여종 하나를 고쳐 준 탓으로 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서 옥사장과 그의 집 식구가 회개하여 빌립보에 교회가 설립되었다.

빌립보 교회 교인들이 바울을 대하는 사랑이 두터워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갔을 때에도 한두번 도운 일이 있었고(4:16), 지금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에는 에바브로디도편에 돈을 보내고 그리고 그로 하여금 바울을 시종들게 했다(4:18).

그 후 에바브로디도가 중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다가 회복되어 빌립보에 돌아가기를 원했으므로 그 기회에 로마에서 이 편지를 썼다. 빌립보에서는 두 논제, 즉 복음과 기뻐하라는 것이 뚜렷이 강조되고 있다.

 

골로새서의 배경

 

골로새라는 도시는 에베소에서 내륙쪽으로 약 100마일 떨어진 곳이며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 가까우며(4:13), 함께 초대 기독교 교회의 중심지였다.

골로새교회는 바울이 직접 전도해서 세운 것이 아니었다(2:1, 1:4).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에 믿게 된 것으로 보이는, 이곳 출신이며 바울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에바브라가 세운 교회이며(1:7), 빌레몬의 집에서 모였다(2) 바울은 이곳을 방문하지도 않았다. 이 서신은 바울이 로마 옥중에 있을 때 60-61년 경 골로새로 가는 두기고 편에 보낸 것이다.

 

에바브라는 자기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가지고 로마까지 바울을 찾아갔다. 문제는 골로새 지방에 나타난 이단 사상이었다.

 

1) 유대주의적인 할례(2:11), 의식(2:14), 음식과 절기 등(2:16)의 문제

2) 금욕주의와 고행(2:16,20-23)의 문제

3) 천사 숭배(2:18)의 문제

4) 인간 지식 숭배(2:8) 문제 등에 관해 써보낸 서신이다.

 

 

데살로니가전서의 배경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의 중요한 도시다.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때 이곳에서 세 안식일에 걸쳐 전도한 결과 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나 그 성에 사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항하여 소동을 일으켜서 바울은 할 수 없이 그곳을 떠나게 되었으나 그곳의 어린 신자들의 영적생활에 걱정이 되었다.

 

바울이 고린도에 가 있는 동안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의 소식을 가지고 왔다. 퍽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디모데는 그 교회의 두어가지 문제를 가지고 왔는데 바울은 이에 대한 편지를 써서 보낸다. 주후 51년 경.

 

이 서신의 내용은 대체로 두 면으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유대인의 박해 아래서도 데살로니가 교회가 굳게 서 있는데 대한 칭찬이요, 둘째는 저들 가운데 자라고 있는 어떤 잘못과 오해를 교정시키는 일이다.

여기서 주요 문제는 예수의 재림문제이다. 사람이 예수를 믿다가 예수 재림하시기 전에 죽으면 주님이 재림하시더라도 만나보지 못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소긍로 끌려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재림의 시기 문제다(살전5:11). 주님께서는 아무 경고하심이 없이 재림하실 것이므로 재림의 날을 미리 알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언제 오시든지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말한다.

 

데살로니가 후서의 배경

 

고린도에 있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전서를 기록한지 수개월 후에 기록한 것이다. 데살로니가에 갔던 디모데는 모든 일이 다 순조롭게 진행되어간다는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으나, 그곳의 몇 사람은 예수의 재림에 대하여 너무나 신경이 과민하여 예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하면서 아무 일도 안 하고 주님이 오시기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남의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었고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비신자들의 비난이 거세져서 이 둘째 서신을 기록하여 다시 디모데 편에 보냈다.

 

예수의 재림에 대한 논란에서 바울은 동요하거나 두려워하지 말 것을 경계하고(살후2:1,2), 반드시 배교하는 일이 먼저 있고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며(살후2:3-7),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다. (살후2:8-12). 그러나 하나님이 저들을 택하셔서 거룩하게 하시고 구원을 얻게 하시기 때문에 믿음에 굳게 서라고(살후2:13-17) 격려하고 있다.

 

바울은 주의 말씀이 널리 퍼져서 영광스럽게 되고, 악한 사람에게서 건져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살후3:1-5). 그리고 교인들 대부분이 자기들의 상업을 중지하고 아무 것도 안 하면서 주님이 오시기만 기다리는데 대해서,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고 말하며 일하기를 권면하였다.

 

 

디모데전서의 배경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를 둔 디모데는 루스드라에서 태어났다(16:1, 20:4). 그는 어려서부터 유대인의 신앙 안에서 자라며 성서를 배웠다. 바울의 제자가 되어 2차 전도여행 때부터 바울을 따르기 시작했다(16:1-3).

바울은 디모데를 아들과 같이 여겼으며 그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하여 마게도냐(19:22), 고린도(딤전16:10), 에베소(딤전1:3) 등지에 바울의 파송을 받아 가기도 하였다. 바울이 첫번째 죄수로 로마에 있을 때 그는 함께 있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디모데를 보내어 목회하게 하였다. 세월이 흘러 교회는 점차 확장되었지만 동시에 이단을 주장하는 거짓교사도 일어나고, 또 교회 치리의 필요성도 생기고 실제 생활의 순결에 대한 주의를 줄 필요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젊은 디모데로 하여금 이런 일을 착오없이 잘 처리하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이 서신을 기록하여 보낸 것이다.

이 서신 전체에 걸쳐서 바울이 아버지와 같은 사랑의 마음이 넘치고 있다. 바울은 돈에 대한 충고를 하고 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6:10)고 하였다. 또 바울은 디모데에게 포도주를 조금씩 들라고 권면하였다(딤전5:23). 이것은 마셔도 좋다는 말이 아니라 약으로 조금씩 마시라는 뜻이다. 바울 시대에는 포도주가 보통 사용하는 약이었다.

 

 

디모데후서의 배경

 

디모데후서는 바울 서신 중 최후의 것으로 두번째 로마에 갇혀 있는 동안에 기록한 것이다. 주후 67년 경이었을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바울은 로마에서 일단 석방되어 그 후 서반아에 갔다가 다시 동방으로 와서 고린도와 밀레도를 거쳐(딤후4:20), 드로아까지 갔다가 (딤후4:13) 드로아에서 갑자기 체포되어 다시 로마로 호송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 때 바울의 제자 가운데 그를 바린 사람들이 많았으며 (딤후1:15-4:10) 바울과 함께 있는 사람은 누가 뿐이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이 가까운 것을 알고 (딤후4:6-8) 더욱 디모데를 보기를 원하여 (딤후4:9,20), 이 서신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이 마지막 서신의 내용은 개인적 감상, 행정 정책, 회상, 교훈, 슬픔, 확신 등이 뒤섞여 있다.

 

이 서신의 주 목적은 바울 자신은 이미 끝나버린 어려운 임무를 감당해야 할 디모데에게 기운을 돋우어 주기 위한 것이나, 바울은 우리를 구원하신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우리를) 부르심은오직 자기 뜻과은혜대로 하심 (딤후1:9)임을 상기시키면서,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전쟁에 나아가는 (딤후2:3) 심정으로 충성할 것을 말하고 있다.

 

개인생활이나 교회와의 공적 관계에 있어서 항상 주의 종임을 알고 논쟁을 하지 말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도록 도우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말씀을 전파하는 일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알렸다.

 

 

디도서의 배경

 

이 서신은 바울이 로마에서 첫번 옥에 갇혔다가 풀려나온 뒤 마게도냐에서 기록한 것 같다. 디도는 이방인의 한 사람이었으며 바울과 함께 역사한 청년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교회의 형편이 낙담적이었다.

새로 설립된 교회로 교인들은 품행이 경솔한 것을 2장에서 볼 수 있다. 바울은 이 짧은 서신 가운데서 여섯번이나 (1:16, 2:7,14, 3:1,8,14) 선한 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며, 윤리적 해석(1:12,13)과 특히 할례당의 논쟁(1:10)이 두드러진다.

이 서신에는 장로를 세우는데 있어서 건전한 도덕적 표준을 세우라고 권하고 있다(1:5-9). 반대론에 대한 가장 좋은 공격은 훌륭한 생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로의 기능 중 하나가 바로 거짓 교훈의 횡포를 막는 일이다(1:10-16).

 

이렇게 도덕적으로 고상한 생활을 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되도록 교훈하시는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구속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선한 일을 하기에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2:11-15)

그리스도인의 사회를 향한 의무를 말하고 있다. 집권자들을 존경할 것과 선한 일을 행함으로 선한 국민이 되라는 (3:1-11), 그리고 다시한번 쓸데없는 이론적 말씨름을 경고한다.

 

빌레몬서의 배경

 

이 서신은 한 장으로 되어 있으며 바울의 서신 가운데서 가장 짧다. 이 빌레몬서는 바울이 자기 친구 빌레몬에게 다른 친구 오네시모를 위하여 써보낸 순수한 개인적 서신이다.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의 지도적 인물이었으며 그 지방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집에 모여서 예배드릴 정도로(1,2) 큰 집에 사는 부자였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는데 주인에게 무엇을 훔쳐가지고 도망한 사람이었다.

 

오네시모는 로마까지 왔다가 어떻게 해서 로마에 있는 바울과 접촉했는지 몰라도 아무튼 바울을 만난 오네시모는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속한 사람이므로 그를 로마에 그대로 데리고 있을 권리가 없었다. 그리고 오네시모도 주인에게 저지른 잘못을 어떻게 해서라도 보상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당시 로마법에 따르면 주인은 자기 종에 대해 생사권을 가졌었다. 만일 빌레몬이 그의 종 오네시모를 찾기만 한다면 어떤 행동도 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두기고 편에 골로새 교회에 보낼 서신을 기록하는 참에(4:7) 빌레몬에게도 간략한 서신을 써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면서(4:9) 오네시모를 종으로 영접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믿는 형제로 대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오네시모로 인해서 손해를 입은 것이 있으면 바울 자신이 보상하겠다고 청하고 있다. 그런데 바울은 빌레몬에게 그의 종 오네시모를 놓아주라고 말하지 않고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 받아달라고만 하였다. 바울은 이 서신을 통하여 주인과 종의 관계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라고 하는 새로운 수준에 놓아주었다.

 

일반서신

 

히브리서의 배경과 사상

 

1. 배경: 히브리서는 바울 서신에도 일반서신에도 들지 않는 특이한 성격을 가진 서신이다. 저자에 대해서는 누군지 알지 못하며 오리겐이 말한 대로 누가 히브리서를 기록했는지는 하나님만 아신다는 것이 가장 적절한 대답니다.

이 서신은 어떤 개인이나 개교회로 보낸 편지가 아니라 어떤 그룹의 교회들에게 보낸 것으로 유대 그리스도인인 것만은 틀림없다. 팔레스틴에 사는 사람들인지 로마에 사는 사람들인지는 알 수 없다.

기록한 연대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대략 주후 64-48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멸 되기 전의 것이라고 본다. 이 서신의 독자들은 믿기 시작한 사람들이 아니고 얼마동안 믿어 오다가 핍박을 받아 낙심하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보낸 서신으로 알려져 있다.

 

2. 전체 내용과 주요사상: 이 서신의 전체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가 율법을 통하여 온 계시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계속 비교하면서 전개시킨다. 예수 그리스도가 드린 제사는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는 것은 제사장으로서 그 자신을 하나님께서 받으실만 한 완전한 제물을 단번에 드려서 율법 아래서 범한 죄를 옮기셨기 때문이다(9:15, 10:10, 19).

그리스도가 마련하신 이 영원한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달성할 수 있으며 이 믿음은 또한 구약시대의 영적 지도자들이 가졌었다. 이 믿음이 저들로 하여금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보증과 인내를 가져다 주었다.

 

야고보서의 배경과 사상

 

1. 야고보서의 배경: 이 서신의 기자는 주님의 동생 야고보다. 신약성서에는 야고보가 셋이 있는데(3:17, 15:40, 13:55) 주님의 형제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영도자였고 예루사라렘 회의를 주재하였다(15:13).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각지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써보낸 것으로 주후 46-49년 경에 기록했을 것으로 본다.

 

2. 전체내용과 주요사상: 이 서신은 전부 106절로 되어 있는데 그 중 54절이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이 서신은 교회보다는 그리스도적 생활과 증거에 있어서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주고, 핍박을 받을 때 낙심하지 말 것을 격려하는 서신이다.

 

야고보서를 행함의 사도라고 이름하고, 사랑의 사도 요한과 믿음의 사도 바울과 소망의 사도 베드로와 한 고리에 묶고 있다. 흔히 야고보와 바울의 교훈이 정반대인 것 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그 둘의 차이는 강조점과 정의의 문제일 뿐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응답한 것은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한 것이다.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드린 것은 믿음은 행위로 말미암아 나타나야 된다는 것을 증거한 것이다(2:21-24). 그러므로 이 둘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것이다.

 

베드로 전서의 배경과 사상

1. 배경: 베드로전서의 저자는 12사도 중의 하나인 베드로이다. 주후 64년 경 기록하였을 것이다. 본문에는 바벨론에서 기록된 것이라고(벧전5:13) 말했으나 실상은 로마를 가리키는 은어일 것이다. 이것은 소아시아 여러 도시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편지다.

 

2. 전체내용과 주요사상: 이 서신을 받아 읽을 사람들은 핍박을 받는 중이었기 때문에 위로의 말이 필요했다. 여기에는 희망이 그 지배적 사상인데 흔히 이 책을 가리켜 희망의 서신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베드로가 그리스도와 가진 개인적 경험이 반영되어 있는데,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는 의지할 데 없던 감정이었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그의 소망은 다시 살아났다(벧전1:3).

 

베드로는 다섯번이나 그리스도의 고난을 말하고 있는데 (벧전2:2, 3:18, 4:1,13, 5:1) 마치 겟세마네와 십자가의 광경을 보여주는 것 같다. 특히 예수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벧전1:3)는 말씀은 베드로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새로운 인생을 향한 재생의 기쁨을 갖게 한다.

 

베드로후서의 배경과 사상

1. 배경: 베드로전서와 같이 베드로가 소아시아에 있는 동일한 그리스도교로 보낸 것이다. 주후 약 64-66년 경의 기록으로 본다.

 

2. 전체내용과 주요사상: 베드로 전서는 박해에 관련된 경계였으나 후서는 교회안의 이단에 대한 경계이다. 이 서신의 주제는 지식이다. 거짓 교사들이 저들의 지식을 자랑하는데 대해 참 지식을 보여주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다또는 지식이란 말이 16번이나 나타나 있다. 참지식은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과(벧후1:3) 그의 약속을 통해서(벧후1:4) 선물로 주신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단이 교회에 들어올 것이며(벧후2:1-2), 저들의 결정적 잘못은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으로 이것들은 도덕적 해이를 수반한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범법자들을 이미 심판하셨고 반드시 심판할 것이다(벧후2:4-10). 그러므로 미래에 대한 소망은 하나님의 참 지식 안에 있다.

 

요한일서의 배경과 사상

1. 배경: 요한이 노인이 된 후 90-91년 경 에베소에서 기록하였다. 이 서신에는 구약의 인용문이 한 곳도 없다.

2. 전체내용과 주요사상: 이 때는 교회와 회당이 완전히 분리되었고 믿음과 행위의 논쟁도 끝난 때이다. 그러나 이때 거짓 교훈들이 들어왔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는 사상으로 나중에는 가현설이란 이단으로 발전되었다.

그리고 죽은 분은 인간인 예수님이었고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 고난에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여기에 대해서 이 서신을 기록하게 된 것이다. 이 서신의 목적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교회에 침투해 온 거짓 교회를 타파시키기 위해서이다. 이 서신에는 빛과 사랑이라는 두 낱말이 두드러진다.

 

빛 안에 행함을 통한 확신, 그리스도인의 신령한 행위는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요일1:7).

깨끗함을 얻는 것은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다. 또한 빛 가운데 행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요일2:7-11). 그러나 빛 안에 행하는 사람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은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요일2:12-17).

 

사랑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런 사랑을 나타내며 또한 하나님을 위하여 살기를 배워야 한다(요일4:7-21). 그리고 하나님께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긴다. 이 세상을 이긴 이김은 곧 우리의 믿음이다(요일5:1-12). 결국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요한이서의 배경과 사상

 

요한일서는 거짓 선생들을 따라갈 위험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록되었다. 그의 두번째 서신서는 비슷한 시험에 빠져 있는 택함을 입은 어떤 부녀와 그의 자녀들을 위해 기록되었다. 요한은 자신의 요점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요이1: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비록 그리스도인들의 삶 가운데 사랑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긴 하지만 의도적으로 진리를 파괴하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감상적으로 포용해서는 안된다고 요한은 가르치고 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서로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참된 사랑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요한은 단호히 경고하면서 편지 하나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므로 직접 방문하여 자세히 다루기를 약속하고 있다.

 

짧은 본서의 중심주제는 독자들이 처음부터 들은’(6) 사도들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곧게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계속 순종하면서 살도록 격려하기 위해 본서를 썼다.

 

요한삼서의 배경과 사상

 

요한삼서는 성경에서 가장 짧은 책이지만 매우 개인적이고도 생동감있는 책이다. 사도 요한이 보낸 순회 선생들에 대해 정반대의 태도를 보인 두 인물의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본 서신의 중심 주제는 가이오의 진실함과 섬기는 자세 그리고 디오드레베의 과실과 이기주의의 비교다.

 

사도요한은 요한일서에서 하나님과의 사귐에 대해 논했고 요한이서에서는 거짓 선생들과의 사귐을 금했고 요한삼서에서는 믿는 형제들간의 사귐을 격려하고 있다. 가이오에 대한 요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면서, 가이오가 진리 가운데 계속 행하여 복음 전하는 자들을 친절히 접대한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다.

그러나 무리 중 몇몇은 칭찬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디오드레베는 생활 속에서 사랑 대신 교만함이 가득 차서 사도 요한의 훈계의 말조차 듣지 않았다. 그러나 가이오는 정 반대의 인물이었다.

요한은 이 같은 부정적인 예를 들어 가이오를 격려하려 했다. 경건한 성품과 진리에 대한 충성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요한의 칭찬뿐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을 안겨다 줄 것이다.

유다서의 배경과 사상

 

1. 배경: 저자는 야고보의 형제 유다이다. 신약성서에서는 유다라는 사람이 많이 있으나 야고보의 동생이 되는 유다는 예수의 형제 가운데 한 사람(6:3)으로 주후 66-80년 경에 기록했을 것이다.

 

2. 전체내용과 주요사상: 저들에게 이 편지를 써야 될 사정이 생겼다. 그것은 교회에 들어온 사람 중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유를 여러가지 부도덕한 일에 쓰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실례를 들어서 저들의 장차 받을 형벌이 얼마나 클 것인가를 말한다.

 

세 가지 역사적 실례

애굽에서 구원하여 낸 후에 믿지 않는 자들을 멸하신 일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

소돔과 고모라

 

이 사람들의 범죄를 모세오경에 큰 반역과 같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가인과 발람과 고모라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 생활이나 말에 있어서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면 우리 안에 계시는 주 예수는 멸망하는 자리에서 우리를 보호하여 주실 것이므로 혹 시험에 들 때라도 용기를 얻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배경과 전체사상

 

저자는 사도 요한이다(1:4, 22:8). 계시록은 교회가 로마에 의해 박해를 받아 황제숭배를 강요당하던 시기에 기록되었다. 계시록의 문체가 요한복음이나 요한의 세 서신들과는 다른 것이 있지만 묵시문학의 고유한 성격이나 계시가 환상으로 주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죄수로 있던 요한의 환경 등을 고려해 볼 때 문체의 차이는 쉽게 이해된다.

 

이 책은 그리스도 계시의 중심이다(1:1). 계시록은 세상의 악한 음모가 계속 반복되고 고조될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사단은 이 땅에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려는 주님의 뜻에 대항하고 있다. 이 오랜 싸움은 영광스런 백보좌 앞에서 마지막 심판, 새 예루살렘의 도래, 영원한 시작으로 끝이 난다.

 

부활하시고 영광을 얻으신 주님은 땅위에 있는 교회들을 보살피신다(2,3). 주는 예배와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시며 죽임을 당하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어린양이다(4). 장차 땅위에 임할 칠년 대 환난의 심판도 어린양의 진노의 표현이다(6:16,17). 그리고 주의 재림(19:11-21), 성도와 함께 천년 간 통치하실 일(20), 새하늘과 새땅(21,22)의 환상이 계속 이어진다. 1장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 2,3장은 지금 있는 일들, 4-22장은 장차 될 일들을 예언한 것이다.

 

소아시아 일곱교회

 

1. 일곱교회에 보낸 편지의 통일성

이 펀지들에서는 각기 다른 내용을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동일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로 각 교회의 수신자들은 그 교회의 사자들이다. 둘째로 편지의 내용은 각기 다양하지만 발신자이신 예수께서는 자신을 꼭 밝히고 있다(1,8,12,18). 뿐만 아니라 각 편지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행위를 안다고 선언하셨다.

 

셋째로 각 교회에 적절한 칭찬이 제시되어 있다(2-3,6,9,13,19)

넷째로 각 교회에 대한 책망이 제시되어 있다(4,14,15,20)

다섯째로 각 교회에 필요한 권면이 제시되어 있다(5,10,16,25)

여섯째로 각 교회에 필요한 경고와 이기는 자들에게 약속이 제시되어 있다(7,10,11,17,26,27)

 

2. 일곱교회에 보낸 편지의 반복성

첫째로 각 편지들은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라는 표현을 통해 각 개인들에게 영적인 교훈들을 환기시키고 있다(7,11,17,29). 둘째로 각 편지들은 단어, 구절, 교회에의 경고 등을 서로 반복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신구약 성경의 다른 부분, 계시록의 다른 부분에서의 표현을 반복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인자라는 호칭(7:13, 10:5),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9:2,3의 변화산상의 예수). 생명나무(7; 22).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것(11;20), 교회에 대한 경고(4; 24:12의 제자들에 대한 경고) 등이다. 이런 반복들은 강조의 의미를 지닌다.

 

3. 일곱교회에 보낸 편지의 다양성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 개개에 대한 칭찬과 책망과 충고와 권면은 모두 달랐다

 

 

 

 

 

 

4. 성경 통독에 대하여

홍수가 온 세상을 넘쳐흐르는 날에는 물은 많은데도 마실 물이 없습니다. 흙탕물과 구정물이 샘물 근원까지도 덮쳐서 맑은 물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지식의 홍수, 정보의 홍수, 책의 홍수, 뉴스의 홍수, 매스 미디어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디 가야 청량한 생수가 솟아나는 샘터가 있는지 찾을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책들도 하도 많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읽어도 어차피 다 읽을 수도 없고 또 다 읽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왕에 책을 읽을 바에는 영원불멸의 진리가 살아 숨쉬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성경 말씀을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통독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복을 주시는 길이 있다면, 첫째는 지혜를 주시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금덩어리를 내려주시지는 않습니다. 성경말씀은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유익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둘째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시는 길입니다. 모든 복되고 아름다운 일들은 사람을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복 받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소개하여 주시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고 성경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큰 도움을 받습니다, 성경 안에서 우리는 노아를 만나고 아브라함을 만나고 다윗, 요나단, 솔로몬, 사무엘, 모세, 여호수아, 갈렙, 이사야, 예레미야부터 말라기까지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과 거룩하고 담대한 선지자들을 만나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열두 제자를 만나고 바울사도와 의원 누가, 마가, 실루아노, 디모데, 디도, 아리스다고, 두기고, 에바브라, 브리스길라, 아굴라이분들은 육체로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있으나 그 믿음으로써, 그들의 삶으로써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우리들만 시간을 내면 이분들은 언제나 거기에 있습니다. 그분들은 변함없이 성경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에스라 성경강좌에 오시면 이분들을 한꺼번에 다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통독(通讀) : (책이나 문장 따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내리읽음]

 

아래의 글은 성경연구전문기관인 에스라하우스에 실린 것을 전재한 것입니다.

사람의 말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지 않고서는 잘 알 수 없는 것같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아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결코 처음만 보거나 중간중간 여기저기를 보거나 끝만 보아서는 하나님의 깊고 넓으시며, 크고 높으시며,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처음엔 글자를, 다음은 단어를, 그 다음은 문장, 그 다음은 문단, , , 전서를 읽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만 성경을 읽었다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알기 위하여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려 하지 않고 "성경에 관하여" 쓰여진 책을 읽습니다. 성경통독사경회에서는 성경 안으로 (into the bible) 인도하여 안내합니다.

경험있는 안내자의 도움을 받음으로써 크게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 다. 성지순례를 가서도 안내자의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에덴동산으로부터 시내산, 갈보리산, 새 하늘과 새 땅까지, 바벨탑을 쌓은 시날평지에서부터 그 큰 성 바벨론이 무너지고 하늘의 새 예루살렘까지, 시조 아담으로부터 큰 백보좌에 앉으신 심판주를 알현하기까지 안내자의 도움말은 필요합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예언된 말씀들이 기억에서 생생할 때 그 성취되는 역사를 보고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들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읽는 성경은 대체로 주제별로 혹은 종류별 편집으로 되어서 시대적인 배경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것을 다시 시대순으로 재구성하여 읽게 되면 예언서와 역사서가 동시에 이해가 되고 초대교회의 모습과 사도행전적인 역사와 서신서들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는 성경공부나 설교를 통하여 들어본 성경상식들은 대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사건이나 인물들을 다루게 됩니다. 솟아 오른 산봉우리만 보고 계곡이나 심산유곡들은 보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통독사경회에 오시면 모든 봉우리와 계곡 유곡으로 내려가고 진리말씀의 강물에 이르러 말씀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영적인 양식을 편식하던 습관을 버리게 될 것입니다.

 

전문 낭독사가 낭독하는 음성을 들으면서 눈으로 읽으면서 마음으로 감동을 느끼면서 두뇌로 이해하면서 안내자의 안내해설을 듣고 나면 혼자서 10년을 읽어온 것보다 통독하는 한 주간에 더 많은 것을 더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도하여 오신 수많은 문제들이 많은 물소리 같고 폭포수와도 같은 66권의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한꺼번에 응답받으시게 될 것입니다.

알게 모르게 지어왔던 갖가지 죄와 허물들에 대하여 가차없는 지적을 받을 때 온전한 회개에 이르게 되고 영적으로 종합진찰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하게 경청하며 성심으로 봉독한 후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 또 사탄의 정체는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야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어떻게 섬길 것인지,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고 섬길 것인지, 또 사탄을 어떻게 대적하고 어떻게 이길 수 있을 것인지를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유능한 탤런트는 시나리오를 통독해야 합니다. 연출자의 의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드라마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드라마는 역사를 말함이요, 연출자는 하나님이요, 시나리오는 성경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주인공이 되려하고 주역만 맡으려 하는 자들이 있어서 역사는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성경은 생명의 말씀이요, 사명의 말씀이며 계명의 말씀입니다. 생명의 기원, 생명의 의미, 생명의 가치, 생명의 구원,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성경 안에서 분명합니다. 그 생명으로 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가를 가르쳐 알게 합니다. 생명은 사명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또 계명의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통하여서만 자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철학은 "너 자신을 알라!" 하고 종교인들은 자기를 완성하려고 애쓰지만 성경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는 우리 자신의 영원한 참 모습을 알 수 없고 다만 성경말씀대로 살고 나서 천국에 갔을 때 거기서 우리의 영원한 참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경통독사경회는 상당한 인내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진실함과 성실함으로 승리하신 분들에게는 세계 역사상 어느 부흥회, 어떤 사경회, 어떤 성경연구과정보다도 풍성한 은혜와 진리를 주님께서 주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현대를 가리켜 오염된 시대라 합니다. 물도 공기도 하늘도 땅도 산이나 바다, 심지어 지구궤도에까지도 오염되었고 어질러졌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공급되는 영혼의 양식마저도 오염되어가고 있습니다. 생수의 수원지인 신학대학에까지 민주주의, 사회주의가 오염되었고, 개인주의, 집단주의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주지주의, 신비주의로 기울어지고, 형식주의, 배금주의, 물량주의가 오염되어 확산되고 있습니다. 오직 한 가지 오염되지도 변하지도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 양식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을 통독하신 후엔 성경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어려운 책이 아니라 쉬운 책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지금까지 출판된 모든 책을 합한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말한 패트릭 헨리의 말에 공감하고 찬성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대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 다음 가장 값진 선물은 성경입니다. 선물을 주신 분께 대한 바른 자세는 그 선물의 가치를 바로 알고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성경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어떤 구절, 어떤 소절들을 "너희는 이를 요절로 여겨서 암송하여라!" 라고 말씀하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요 3:15을 물으면 대개가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3:17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살전 5:15을 물으면 아무도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편지가 왔다면 어떻게 읽는 것이 옳습니까? 그 중에 어느 구절이 요절인지 찾는 것이 옳을까요? 가장 바른 방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읽어나가는 것이 옳은 방법입니다. 그에 앞서 누가 누구에게 보내온 사연인지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한번 통독하여서 그 내용을 다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개역한글성경은 그 분량이 1,754 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책입니다. 우리가 보통 사람이라면 적어도 10여차례 정도는 반복하여 통독을 해야만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처음 통독한 사람들은 자신이 '성경책을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를 알았다'고 말하게 됩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며,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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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경 중요 요절 암송 집(180)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의 신성 

요한복음 1:1,14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히브리서 1:8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예수님의 인성

히브리서 4: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누가복음 2:52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님의 부활 

고린도전서 15:3,4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린도전서 15:20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나타내심 

요한복음1:18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히브리서 1:3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구속자이신 예수님 

누가복음 19:10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베드로전서 1:18,19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예수님의 재림 

데살로니가전서 4:16,17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요한일서 3:2,3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증거하시는 성령 

요한복음 16:13,14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고린도전서 12:3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내주하시는 성령 

로마서 8: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갈라디아서 4:6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통치하시는 성령 

에베소서 5: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갈라디아서 5: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계시하시는 성령 

고린도전서 2:9,10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요한복음 14: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능력을 주시는 성령 

고린도전서 2:4,5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하였노라.

데살로니가전서 1:5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은사를 주시는 성령 

고린도 전서 12:11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2:4-6은사는 여러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하 나 님

 

하나님의 능력 

예레미아 32:17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과 드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

하나님의 지혜

로마서 11:33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하나님의 임재 

예레미아 23:24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하나님의 은혜 

고린도후서 9:8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영광 

역대상 29:11-13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하나님의 성실 

데살로니가후서 3:3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하나님은 영이심 

요한복음 4: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 

베드로전서 1:15,16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광대하심 

145:3여호와는 광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광대하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

하나님의 사랑 

요한일서 4: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의 긍휼 

시편 86:15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하나님의 절대 주권 

로마서 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랑으로 말함

진실을 말함 

에베소서 4: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골로새서 3:9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험담을 피함 

잠언 17:9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잠언 11:13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

은혜스럽게 말함 

골로새서 4:4-6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너희 말을 항상 은혜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잠언 15:1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죄를 시인함 

야고보서 5:16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마태복음 5:23,24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경청함 

야고보서 1:19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잠언 18:13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책망을 받아 들임 

잠언 9:8,9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와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마태복음 18:15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사랑으로 대함

다른 사람을 용서함 

에베소서 4:32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하라.

골로새서 3:13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오래 참음 

에베소서 4:2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디모데후서 2:24,25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분노를 다스림 

에베소서 4:26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골로새서 3:8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악의를 버림 

히브리서 12:15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에베소서 4:31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억울한 일을 참음 

베드로전서 2:20,21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로마서 12:19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시기심을 버림 

잠언 27:4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

야고보서 3:16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사랑으로 행함

화목한 생활 

로마서 15:5,6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하려 하노라.

고린도전서 1:10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다른 사람을 섬김 

마태복음 20:26,27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갈라디아서 5:13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남을 먼저 생각함 

로마서 15:2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빌립보서 2:3,4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하라.

서로 격려함 

데살로니가전서 5:11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전도서 4:9,10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불쌍히 여김 

마태복음 9:36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로마서 12:15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온유하게 대함

야고보서 3:17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갈라디아서 6:1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약 속

 

약속의 중요성 

베드로후서  1:3,4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하셨으니

고린도후서  1:20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선교를 위한 약속들 

고린도후서 1:3,4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린도전서 3:7,8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열매맺는 삶을 위한 약속들 

시편 1:2,3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베드로후서 1:8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고난 중 도우심을 위한 약속들  베드로전서 5:10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고린도후서 12:9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공급을 위한 약속들 

에베소서 1:3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시편 37:4,5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용서에 대한 약속들 

요한일서 2:1,2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시편 103:12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말 씀

히브리서 4: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능력 

이사야 55:10,11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영감 

베드로후서 1:20,21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2:13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영양 

예레미야 15:16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욥기 23:12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알아야 함 

사도행전 17:11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요한복음 5:39,40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순종해야 함 

요한복음 8:31.32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마태복음 4: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확실성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17:17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믿 음

믿음의 시련 

베드로전서 1:6,7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1:2-4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불신의 결과 

히브리서 4:2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 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히브리서 10:38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믿음의 투쟁 

에베소서 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디모데전서 6:11,12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믿음의 근원 

히브리서 11: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로마서 10: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행하는 믿음 

히브리서 6:12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야고보서 2:17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믿음으로 의롭게 됨 

갈라디아서 2:16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로마서 5:1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승 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승리 

고린도전서 15:5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린도후서 2:14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승리의 무기 

고린도후서 10:4,5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에베소서 6:10,11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마귀를 이김 

요한계시록 12:11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 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야고보서 4:7,8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육신을 이김 

로마서 8:5,6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로마서 13:14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세상을 이김

요한일서 4:4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요한일서 5:4,5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누구뇨.

죄를 이김 

시편37:31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로마서 6:12,13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순 결

 생각

빌립보서 4:8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디도서 1:15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마음 

누가복음 6:45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잠언 4:23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태복음 6:22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마태복음 5:28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 4:3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고린도전서 6:13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에베소서 4:29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마태복음  12:36,37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행동 

데살로니가전서 5:22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디모데전서 5:1,2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하고,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기 도

 

구하고 행하라 

마태복음 21:22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7:7,8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은밀한 기도 

마태복음 6:6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가복음 1:35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하나님의 응답 

예레미야33:3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에베소서 3:20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그의 뜻대로 기도함 

요한일서 5:14,15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7,18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중보의 기도 

사무엘상 12:23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마태복음 9:37,38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찬 양 

히브리서 13:15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시편 146:1,2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전도

 

모든 사람에게 전파함 

골로새서 1:27,28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하나님의 사신이 됨 

고린도후서 5:19,20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 

데살로니가전서 2:4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모든 사람을 섬김 

고린도전서 9:19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시기를 분별함 

요한복음 4:35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생명을 나눔 

데살로니가전서 2:8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죄의 실재 

로마서 3:10-12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죄의 결말 

데살로니가후서 1:8,9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리스도께서 값을 치루심 

베드로전서 2: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선물로 주신 구원 

디모데후서 1:9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믿고 영접함 

로마서 10:9,10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구원의 확신 

요한복음 10:28,29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변명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다 

잠언 21:2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포기할 게 너무 많다 

마가복음 8:3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해할 수 없다 

요한복음 7:17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나는 아직 그렇게 선하지는 못하다

누가복음 5:31,32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요한복음 5:44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나는 지속하지 못할 것이다. 

히브리서 7:25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좀더 기다려 보겠다 

잠언 27:1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위선자가 너무 많다 

로마서 14:12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 

요한복음5:39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다른 종교는 어떠한가 

잠언 14:12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하나님은 아무도 지옥에 보내시지 않을 것이다 

마태복음 25:41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이교도들은 어떻게 되나 

로마서 1:20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의 위치

구속받음 

베드로전서 1:18,19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 없는 어린 양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한 것이니라.

화목하게 됨

고린도후서 5:18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사함받음 

에베소서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율법에서 해방됨 

로마서 6:14,15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런즉 어찌 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하나님께로 남 

갈라디아서 3:26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제사장이 됨 

베드로전서 2:9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의롭게 됨 

고린도후서 5:21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거룩하게 됨 

고린도전서 1:30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완전하게 됨 

히브리서 10:14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의롭다 하심 

로마서 3: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천국 시민이 됨 

빌립보서 3:20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온전하게 됨 

골로새서 2:9,10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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